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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영된 다가오는 “큰 환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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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영된 다가오는 “큰 환난”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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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70
파70 5/1 197-204면

전영된 다가오는 “큰 환난”

“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할 것이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마태 24:21, 22.

1. 언제 그리고 ‘예루살렘’과 관련된 무슨 사건이 있은 뒤에 ‘다니엘’은 전 인류 역사상 최악의 재난기에 관한 예언을 받았읍니까?

이천 오백 여년 전, 막강의 ‘바벨론’ 제국이 전복된 후에 연로한 예언자 ‘다니엘’은 전 인류 역사상 최악의 재난기가 도래할 것에 관한 예언을 받았읍니다. (다니엘 10:1-12:1) 그러나 그는 그 일로 인하여 마음과 정신의 안정을 잃어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들었읍니다. (다니엘 12:13) 80여년간이나 ‘다니엘’은 중동의 ‘유프라테스’ 강 유역에 위치했던 우상 숭배로 유명한 ‘바벨론’에 억류되어 있었읍니다. 거룩한 도시 ‘예루살렘’이 멸망될 때 ‘다니엘’은 ‘바벨론’에 있었기 때문에 안전하였으며, ‘바벨론’ 황제는 통용 기원전 607년에 ‘예루살렘’을 멸망시켰읍니다. (다니엘 1:1-2:1, 14) 그러나 강대국 ‘바벨론’이 전복되기 직전에 ‘다니엘’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예루살렘’이 재건되리라는 보증을 얻었읍니다. ‘예루살렘’과 ‘유다’ 지역은 ‘다니엘’의 친구인 예언자 ‘예레미야’가 예언한 바와 같이 칠십년 동안만 황폐하게 되어 있었읍니다. (다니엘 9:1-3) 그러나 그보다도, 하나님의 천사는 ‘다니엘’에게 오랫 동안 고대했던 “메시야 곧 왕”(난외주)이 재건된 ‘예루살렘’에 임할 것을 확언하였읍니다. 그러나 그것은 연로한 ‘다니엘’의 생전에 있을 일이 아니었읍니다.

2. (ㄱ) ‘다니엘’이 들은 바에 의하면 “메시야 곧 왕”은 언제 ‘예루살렘’에 나타나게 되어 있었으며, 이것은 무슨 기간의 시점이 될 것이었읍니까? (ㄴ) 그 후에 재건된 ‘예루살렘’에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되어 있었읍니까?

2 ‘다니엘’ 시대로부터 얼마나 오래 뒤에 있을 일이었읍니까? 하나님의 천사는 ‘다니엘’에게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 “메시야 곧 왕”과 관련하여 그의 시간표에서 햇수로 70주 즉 490(7 × 70)년을 따로 구별하셨음을 알려주었읍니다. 햇수로 69주의 끝 즉 483년 뒤에 ‘다니엘’의 동족에게 메시야가 나타나게 되어 있었읍니다. 이것은 언제부터 계산됩니까? ‘예루살렘’을 재건하고 성벽을 복구하라는 명령이 날 때부터입니다. 그러므로 메시야의 출현은 햇수로 일흔번째 주의 시점이 될 것이지만 그 주의 중간 즉 그 주가 시작된지 3년반 후에 메시야는 “끊어”질 것이며, 이로 말미암아 ‘예루살렘’에서의 “제사와 예물”이 그칠 것이었읍니다. 햇수로 70주가 끝난 후에 “황폐케 하는” “미운 물건”으로 인하여 ‘예루살렘’에는 무시무시한 재난이 닥칠 것이었읍니다. (다니엘 9:24-27) ‘예루살렘’에 임할 이 재난은 인류 사상 최대의 재난기가 될 것입니까? ‘다니엘’은 그 대답을 얻지 못하고 죽었읍니다.

3. (ㄱ) 어떻게 그리고 언제 메시야는 정확하게 때를 맞추어 출현하셨읍니까? (ㄴ) “일흔번째 주”의 중간에 그는 어디에 있었으며, 누구와 함께 있었읍니까?

3 메시야라는 칭호는 “기름부음 받은 자”를 의미합니다. 통용 기원 29년 가을에 한 사람이 기름부음을 받았읍니다. 그는 어떤 인간에게서가 아니고 하나님에 의해서, 그리고 머리에 붓는 기름으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았읍니다. 하나님께서는 시간을 엄수하시어 정확하게 때를 맞추어 햇수로 일흔번째 주 시초에 기름붓는 이 일을 하셨읍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된 그의 아들 예수께서 ‘요단’ 강 물에서 침례자 ‘요한’에 의하여 침례를 받은 직후에 그에게 기름부으셨읍니다. 예수께서는 성령으로 이처럼 기름부음을 받아 “메시야 곧 왕”이 되셨읍니다. 그리하여 메시야가 출현하였으며, 시련의 일흔번째 주—햇수로 계산하여—는 시작하였읍니다. 메시야께서는 하나님의 메시야 왕국을 전파함으로써 기름부음으로 말미암아 그가 하도록 임명된 일을 수행하기 시작하셨읍니다. 이 일을 하기 때문에 그에게는 ‘예루살렘’과 ‘유대’와 인근 지역에 많은 적들이 있게 되었읍니다. 햇수로 일흔번째 주의 중간 즉 기원 33년 이른 봄에 예수 메시야는 그가 선택한 열두 사도들과 함께 ‘예루살렘’에 있게 되었읍니다.

4. 그는 성전 숭배자들에게 그들의 “집”에 관하여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으며, 언제까지 다시는 그를 볼 수 없게 되어 있었읍니까?

4 유월절이 되기 3일 전 즉 ‘니산’월 11일 화요일에 예수께서는 재건된 ‘예루살렘’ 성전을 방문하셨읍니다. 그는 이미 재건된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하신 바 있읍니다. 그러나 이번에 그 분은 ‘예루살렘’에서 숭배하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집”인 종교적 전이 그들에게 버린바 되었다고 명백히 말씀하셨읍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이셨읍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여호와]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 (마태 23:37-39) 그는 성전을 떠나셨으며, 아무도 예수께서 성전 안에 계신 것을 다시 보지 못하게 되었읍니다.

5. (ㄱ) 예수께서는 성전 돌에 관하여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읍니까? (ㄴ) 그날 얼마 후에 감람산에서 그의 사도들은 그에게 무슨 질문을 하였읍니까?

5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오실 때에 그의 사도들은 성전 건물과 돌에 예수의 주의를 이끌었읍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버림받은 성전의 끔찍한 결과를 ‘예루살렘’ 사람들에게 이러한 말씀으로써 알리셨읍니다.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 (마태 24:1, 2) 그날 얼마 후에 그와 그의 사도들은 감람산 위에서 성전을 바라보았읍니다. 사도들이 ‘예루살렘’과 그 성전을 내려다 볼 때 그들은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기억하였읍니다. 그래서 그들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게 되었읍니다. “우리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언제 이러한 일들이 있을 것이며, 무엇이 당신의 임재와 사물의 제도의 결말의 징조가 될 것입니까?”—마태 24:3, 신세.

6. 사도들이 질문을 세 부분으로 한데는 어떠한 근거가 있었읍니까?

6 언제 이 모든 일이 일어나서 ‘예루살렘’과 성전의 멸망이 초래될 것입니까? 예수께서는 ‘예루살렘’ 사람들이 “찬송하리로다 주[여호와]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라고 그에게 말할 때까지 그들이 그를 다시 보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으므로 언제 그 분은 그가 가신 곳으로부터 돌아와서 다시 임재(臨在)하실 것입니까? 이 모든 일이 일어나면 사물의 제도의 끝이 될 것이므로 사물의 제도의 결말은 언제일 것입니까?

7. 사도들은 어떤 범위의 질문을 하였으며, 그 질문으로써 그들이 우선적으로 알고자 한 것은 무엇이었읍니까?

7 분명히 이 사도들은 그들이 질문하고 있었던 그 세 가지 것에 무엇이 내포되어 있는지를 알지 못하였읍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알고 계셨으며 그러므로 그는 그들이 예상한 것보다 긴 대답을 하셨읍니다. 그는 그들이 예측한 것보다 먼 후일에까지 미치는 대답을 하셨읍니다. 그러나 그들은 무엇보다도 ‘예루살렘’과 성전이 언제 멸망되게 되어 있는지를 알기를 원한 것이 분명합니다. 그 일은 그들의 시대에, 그들 세대에 있을 것이었읍니까?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삼중적인 질문의 그러한 부면에 관하여 먼저 언급을 하시어 문자적인 ‘예루살렘’과 성전에 직접 적용시키셨읍니다. 그는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8, 9. 예수께서 사람들을 미혹할 것이라고 예언하신 사람들은 자신이 예수라고 주장할 것입니까? 그리고 왜 그들은 ‘유대’인들에게 특별한 공감을 일으킬 것이었읍니까?

8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끝은 아직 아니니라.”—마태 24:4-6.

9 사람들을 미혹하는 그러한 자들은 ‘나는 예수이다’ 하고 말하면서 올 것이 아니라 메시야라는 칭호를 사용하여 “나는 그리스도이다” 하고 말하면서 올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메시야라고 공언하는 자들은 ‘유대’인이라야 하며 이방인이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예루살렘’이 멸망의 위기에 봉착한 것을 고려할 때 그들은 거룩한 도시의 구원자, 보존자로서 올 것이었읍니다. 그러한 이유로 그들은 ‘유대’인들에게 큰 공감을 일으켜 많은 사람들을 미혹할 것이었읍니다. 그들은 참다운 “메시야 곧 왕”이신 예수께서 선포하신 것 즉 ‘예루살렘’과 성전의 멸망과 반대되는 소식을 전할 것이 었읍니다. 이러한 경고로써 예수의 제자들은 하나님의 영의 기름부음을 받지 않은 그러한 자칭 그리스도들이 거짓임을 알 수 있었읍니다.

10. 예수께서 이 점에 있어서 거짓 예언을 하시지 않았음을 무엇이 증명합니까?

10 예수께서는 이 점에 있어서 거짓 예언을 하지 않으셨읍니다. 사실 ‘풀래비우스 요세퍼스’는 「‘유대’인 전쟁사」라는 그의 역사서 제6권 54항에서 세 명의 거짓 메시야에 관하여 언급합니다. 그는 이것이 ‘로마’ 제국에 대항하는 반역의 한 가지 원인이 되었으며 그 반란이 ‘예루살렘’을 멸망으로 인도하였다고 말하였읍니다.

“난리와 난리 소문”

11. 사도들은 언제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게 되어 있었읍니까?

11 거짓 그리스도들이 출현할 뿐만 아니라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친히 임재하시지 않을 것을 암시한 것임) 사도들은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게 되어 있었읍니다. 어떤 전쟁들은 사도들이 있는 곳에서 매우 가까이에서 일어날 것이므로 전쟁의 소리를 그들은 직접 들을 것이며 멀리서 일어나는 난리의 소문만을 듣지 않을 것입니다. 언제 이 일이 있을 것입니까? 여기에서 예수의 예언적 말씀은 지적 ‘예루살렘’의 멸망의 묘사로 인도되고 있으므로 이러한 전쟁들은 그의 예언의 때와 거룩한 도시의 멸망 사이에 있을 것이었읍니다. 특히 사도들이 그러한 전쟁에 관하여 “듣”게 되어 있다면 그러합니다.

12. (ㄱ) 이러한 난리들과 다음 절(7절)에서 언급된 국제적인 전쟁에 대하여 어떠한 질문이 생깁니까? (ㄴ) ‘누가’의 기록에는 여기에 변경점이 있으므로 일부 주석가들은 어떤 식으로 주장하게 되었읍니까?

12 그렇다면 바로 다음 귀절인 7절에 예언된 전쟁은 어떠합니까?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라.]” 이러한 전쟁들은 바로 전에 예언된 전쟁과 다릅니까? 복음서의 필자 ‘누가’의 같은 기록은 여기에서 변경점을 두고 있읍니다. “난리와 소란의 소문을 들을 때에 두려워 말라 이 일이 먼저 있어야 하되 끝은 곧 되지 아니하니라”는 예수의 말씀을 인용한 후에 ‘누가’의 기록은 이렇게 되어 있읍니다. “또 이르시되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큰 지진과 기근과 온역이 있겠고 또 무서운 일과 하늘로서 큰 징조들이 있으리라.” (누가 21:9-11) ‘누가’의 기록에 있는 이러한 변경점을 어떤 주석가들은 예수께서 여기에서 화제를 바꾸는 것으로 이해해 왔읍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이치적일 수가 없읍니다. 왜냐 하면 예수께서는 아직도 ‘예루살렘’의 멸망으로 논제를 이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13. (ㄱ) 그러한 난리가 일어나도 사도들은 어떻게 생각하여서는 안되었읍니까? (ㄴ) 그러한 전쟁들이 사도 시대에 일어났읍니까?

13 그렇다면 분명히 그 예언의 첫 번째 적용에 있어서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의 임박한 멸망 전에 일어나게 되어 있는 국제적 전쟁을 지적하고 계셨읍니다.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날 것이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예수께서는 그들이 왜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들을 것인지를 설명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러한 전쟁이 일어난다고 해서 동요되어서는 안되었읍니다. 그리고 세속 역사에 의하면 예수께서 승천하신 때와 거룩한 도시가 멸망된 때 사이에 전쟁들이 있었읍니다. 서남 ‘아시아’에서 ‘파르티아’ 전쟁이 있었으며, ‘로마’의 영토였던 ‘포올’과 ‘스페인’에서 반란이 일어났었읍니다. ‘아시나에우스’와 ‘알리나에우스’가 ‘로마’ 제국 동편의 ‘파르티아’에 대항하여 일으킨 전쟁이 있었읍니다. ‘아디아베네’ 땅의 ‘이자테스’ 왕에 대한 ‘파르티아’의 선전포고도 있었읍니다.a

14. (ㄱ) 그 당시에 ‘유대’인들에게 영향을 끼친 민족들이 대적해 일어나는 일이 있었읍니까? (ㄴ) ‘랍비’들은 나라와 민족들의 전쟁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하였읍니까?

14 이러한 전쟁들이 ‘예루살렘’과 직접 관계가 없던 전쟁들이었음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는 전쟁들 즉 순수한 이방 전쟁을 예언하셨음을 기억하십시오. ‘로마’ 제국의 지배하에 있던 ‘유대’인들에게는 나라가 없었읍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다른 민족을 대적하여 일어났고 ‘시리아’인들과 ‘사마리아’인들을 포함하여 이웃의 다른 민족들은 ‘유대’인들을 대항하여 일어났으며 그 결과 수만명의 ‘유대’인들이 죽임을 당하였읍니다. 그 동안 ‘유대’인들은 크나큰 타격을 받았읍니다. 많은 ‘랍비’들은 ‘유대’인들에게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고 도시가 도시를 대적하여 일어나면 그것이 메시야의 때 즉 메시야의 출현이 가까왔음을 증명한다고 말하였읍니다.

15. 그 당시의 지진에 대하여는 어떻게 말할 수 있읍니까?

15 그 당시 지진도 있었으며, 그 일은 기록으로 남아 있읍니다. ‘클라우디우스 시저’ 통치 기간에 ‘크레타’ 섬에서 지진이 있었으며, ‘서머나’에서도 있었으며, ‘히에라폴리스’와 ‘골로새’, ‘키오스’, ‘밀레도’, ‘사모스’에서도 지진들이 있었읍니다. ‘네로’ 황제의 통치 중에 또 다른 지진이 일어나 ‘라오디게아’ 도시를 엎어버렸읍니다. ‘로마’에서도 지진이 있었다고 ‘라틴’ 역사가 ‘타시투스’는 보고하였읍니다. ‘요세퍼스’는 그의 저서 「유대인 전쟁사」 제4권 제4장 5항에서 ‘유대’ 전역을 뒤흔든 무시 무시한 지진에 관하여 설명합니다.

16. 그 당시 식량 부족과 온역은 어떠하였읍니까?

16 기근도 있었읍니다. 한번의 기근은 사도 행전 11장 27-30절에 기록되어 있는데 이 기근은 그리스도인 예언자 ‘아가보’가 예언하였으며 ‘클라우디우스’ 통치 중에 있었읍니다. 보고에 의하면 ‘예루살렘’의 많은 ‘유대’인들이 이 기근으로 인하여 아사하였읍니다. 물론 식량 부족과 그에 수반되는 영양실조로 인하여 사람들은 질병에 걸리게 마련이며 온역이 휩쓸게 됩니다. 그것은 예수께서 예언하신 대로였읍니다.

17. (ㄱ) 그러한 모든 일을 무엇으로 해석하여서는 안되었으며, 그러나 그러한 일들은 제자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게 되어 있었읍니까? (ㄴ) 그들은 무엇에 대한 경고를 받았으며, 무슨 사업이 각처에서 수행되어야 하였읍니까?

17 그러나 이러한 일들은 “큰 임금의 성”인 ‘예루살렘’의 멸망 직전의 전조가 아니었읍니다. 그러한 일들을 예언하신 후에 예수께서는 이렇게 부언하셨읍니다. “이 모든 것이 재난의[진통의, 신세] 시작이니라.” (마태 24:8) ‘예루살렘’과 관련되어 있는 한 그러한 일들은 그 도시와 ‘유대’ 지역에 있을 재난의 진통의 시작이었읍니다. 그러나 그러한 일들은 거룩한 도시의 즉각적인 종말과 ‘유대’의 황폐를 의미하지 않았읍니다. 그러나 그러한 일들이 적어도 ‘예루살렘’의 재난의 진통의 시작이었다는 사실은 그리스도인들로 “끝은 아직 아니”기 때문에 나태해지거나 긴장을 푸는 대신 더 큰 활동을 하도록 격동시키는데 충분했을 것입니다. (마태 24:6, 5:35) 그들은 대규모의 사업을 수행해야 하였읍니다. 그리고 종교적 박해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하는 데에는 큰 노력과 꾸준함이 요구되었읍니다. 그러므로 9-13절에서 예수께서는 사도들에게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에 의하여 오게 될 박해와 불법의 증가와 그리스도인 인내의 필요성에 관하여 경고하시고 이렇게 부언하셨읍니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태 24:14.

18. (ㄱ) 부활되신 예수께서는 승천하시기 전에 어떠한 부가적인 명령을 하셨읍니까? (ㄴ) ‘예루살렘’이 멸망되기 전에 그 사업이 어느 정도로 수행되었었읍니까?

18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되신지 수 주일 후 그리고 승천하시기 전에 그 분은 그의 제자들에게 이렇게 명령하셨읍니다. “그러므로 가서 모든 나라의 백성으로 제자를 삼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침례를 주고, 내가 여러분에게 명령한 모든 것들을 그들이 지키도록 가르치십시오.” (마태 28:19, 20, 신세) 며칠 후 오순절 후에 충성스러운 제자들은 이 일을 시작하였읍니다. 그 결과는 어떠하였읍니까? 사도 ‘바울’이 ‘로마’에 투옥되어 있었던 때인 60년 혹은 61년경에 그는 소‘아시아·골로새’에 있는 그리스도인 회중에게 편지하면서 그들의 소망에 관하여 이렇게 말할 수 있었읍니다.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은] ···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니라.]” (골로새 1:23) 그 때에 ‘바울’은 ‘파이오니아’ 복음 전도자로서 하나님의 왕국의 기쁜 소식을 ‘스페인’에 가서 전하기를 원하였읍니다. (로마 15:23, 24) 그러한 하나님의 왕국의 전파는 기원 70년에 ‘예루살렘’이 멸망되기 10년 전에 땅의 거민들에게 이미 행하여졌읍니다. 이 일이 수행되기 전에는 “끝”이 올 수 없었읍니다.—마태 24:14.

제1세기 ‘예루살렘’의 종말

19. 그러나 어떠한 일이 신속한 행동을 촉구하는 표지가 될 것이었으며, 왜 그러합니까?

19 “끝”이 오는 것을 언급하신 후에 예수께서는 즉시 기원 1세기 중에 끝이 임할 거룩한 도시에 관하여 언급하셨읍니다. 마태 복음 24:15-22에 의하면 그는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찐저]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찌어다 지붕 위에 있는 자는 집안에 있는 물건을 가질러 내려 가지 말며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질러 뒤로 돌이키지 말찌어다.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너희의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 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할 것이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

20. 제자들은 ‘유대’에서 도망하게 되어 있었으므로 예수의 교훈의 세부점은 그들에게 왜 적절하였읍니까?

20 예수께서는 여기에서 확정적으로 ‘유대’ 지역을 언급하셨읍니다. 그는 제자들에게 그 곳에서 도망하라고 교훈하셨으며 그것은 제자들이 ‘유대’인들에게 거룩한 도시인 ‘예루살렘’에서 도망할 것도 의미하였읍니다. ‘유대’ 지역은 안식일의 율법이 시행되는 곳으로서 사람들이 먼 거리를 여행하거나 짐을 운반하기가 어려웠으며 또한 그곳에서 도망하는 사람들에게까지도 성벽 도시의 문들이 닫혀져 있었읍니다. 그러므로 임신한 ‘유대’인 여인들이나 유아가 딸린 여인들이 급히 뛰어가기란 훨씬 더 어려웠을 것입니다. 또한 날씨가 험한 겨울에 도망하는 것은 그러한 여인들 뿐만 아니라 다른 모두에게도 어려웠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예언하신 지시에 유의하여 모두는 도망해야 하였으며 필요하다면 지붕에서 지붕으로, 그리고 밭에서 성 밖으로 도망해야 하였읍니다. 지체하지 말고 전 ‘유대’에서 도망해야 하였읍니다!

21. 다가오는 재난에 대한 무엇 때문에 그들은 최대한으로 서둘러 도망할 필요가 있었읍니까?

21 그러나 왜 그렇게 서둘러야 합니까? 왜냐 하면 이제 드디어 “끝”이 가까왔기 때문입니다.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면 아무 “육체가 구원을 받지 못” 할만큼 파괴적인 “큰 환난”이 촉박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은 감하여질 것이었읍니다. 그러한 환경하에서는 ‘유대’에 있는 소수의 사람들의 육체만이 구원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큰 환난”에서 구원을 받지 못할 대다수의 사람들 틈에 끼지 않기 위하여 그들에게 현명하고 안전한 길은 예수의 교훈을 청종하여 ‘유대’에서 나와 외부에 있는 산으로 도망하는 것이었읍니다.

22, 23. (ㄱ) 그러면 멸망의 가증한 것이 결코 서서는 안될 “거룩한 곳”은 무엇이었읍니까? (ㄴ) ‘누가’의 평행되는 기록은 그곳이 참으로 “거룩한 곳”이었음을 어떻게 증명합니까?

22 그렇다면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 있게 될 “거룩한 곳”은 무엇이었읍니까? 전 ‘유대’에서 어느 장소가 “거룩한 곳”이었읍니까? 그곳은 성도 ‘예루살렘’과 바로 그 근처였읍니다. 그곳은 “멸망의 가증한 것”이 어느 때에도 있어서는 안되는 “거룩한 곳”이었읍니다. (마가 13:14-20) 사실 예수의 예언에 관한 복음서 필자 ‘누가’의 평행되는 기록은 명백하게 ‘예루살렘’ 이라고 그곳 이름을 밝히고 있읍니다. 누가 복음 21장 20-24절은 이러합니다.

23 “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찌며 성내에 있는 자들은 나갈찌며 촌에 있는 자들은 그리로 들어가지 말찌어다 이 날들은 기록된 모든 것을 이루는 형벌의 날이니라 그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니 이는 땅에 큰 환난과 이 백성에게 진노가 있겠음이로다 저희가 칼날에 죽임을 당하며 모든 이방에 사로잡혀 가겠고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리라.”

24. (ㄱ) ‘유대’에 있는 그리스도인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이 군대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어떻게 목격하게 되었읍니까? (ㄴ) 이것을 보고 그들은 무엇을 알았읍니까?

24 ‘유대’에 있는 그리스도인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본 때는 언제였읍니까? 그때는 ‘유대’인들이 반란을 일으켜 ‘세스티우스 갈루스’ 장군이 지휘하는 ‘로마’ 군대가 그 도시를 공격하게 된 기원 66년이었읍니다. 그때는 초막절(장막절)을 축하할 때인 10월 19-25일이었읍니다. 이것은 예언자 ‘다니엘’ 이 예언한 햇수로 70주가 기원 36년에 끝난지 꼭 30년 뒤가 됩니다. ‘유대’인들의 ‘티쉬리’월 30일째 되는 날 즉 11월 3/4 일경에 ‘세스티우스 갈루스’ 장군은 군대를 이끌고 이 도시를 공격하였읍니다. 5일간 성전 벽을 공격하여 6일째 되는 날 성전 벽을 무너뜨리는 데 성공하였읍니다. 그러자 갑자기 별 이유도 없이 그는 군대를 철수시켰으며, 추격한 ‘유대’인들의 손에 상당한 피해를 입었읍니다. 그리하여 ‘예루살렘’과 ‘유대’인들에게 임할 전례없는 “큰 환난”은 그때 시작되지 않았읍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인 ‘유대’인들은 “큰 환난”이 가까왔다는 것을 알았읍니다.

25. (ㄱ) 그러므로 ‘유대’에 있는 제자들은 서서는 안될 곳에 무엇이 서 있는 것을 보았읍니까? (ㄴ) 다니엘 9:26, 27은 이 일과 이것이 가져올 황폐를 어떻게 예언하였읍니까?

25 이러한 방법으로 그리스도인 ‘유대’인들은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서는 안될 “거룩한 곳”에 서는 것을 목격하였읍니다. 그때는 그곳에 ‘로마’ 군대가 그 도시 주위에 ‘유대’인들이 거룩하게 여기는 땅에 섰을 때, 특히 성전 벽을 무너뜨렸을 때였읍니다. 이것은 다니엘 9:27에 예언된 “미운 물건”이었읍니다. 그 귀절을 보면 햇수로 일흔번째 되는 주에 일어날 사건들을 묘사한 후에 ‘다니엘’은 이렇게 계속 말합니다. 또 이 “미운 물건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케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재건된 ‘예루살렘’의 이 황폐에 관하여는 앞절(26ㄴ)에 자세히 나와 있는데 그 말은 이러합니다. “장차 한 왕[지도자, 신세]의 백성이 와서 그 성읍과 성소를 훼파하려니와 그의 종말은 홍수에 엄몰됨 같을 것이며 또 끝까지 전쟁이 있으리니 황폐할 것이 작정되었느니라.” 예수께서는 ‘다니엘’이 이 “미운 물건” 혹은 “가증한 것”을 예언하였다고 말씀하셨읍니다.

26. (ㄱ) 예언된 이 “지도자”는 누구였으며, “백성들”은 누구였으며, 언제 땅으로 들어가는 홍수가 있었읍니까? (ㄴ) ‘유대’에 있던 ‘유대’인 “택하신 자들”은 어떻게 이 일을 모면하였읍니까?

26 그러면 “장차” 올 한 지도자는 누구였읍니까? 그의 백성은 실제로, “성읍과 성소”를 훼파하였읍니다. 그 지도자는 기원 69년에 ‘로마’ 황제가 된 ‘베스파시안’ 장군의 아들인 ‘티투스’ 장군이었읍니다. ‘히브리’어 성경에는 군대를 “백성”이라고 한 경우가 여러 번 있읍니다. 또한 군대는 공격당하는 땅으로 들어가는 홍수와 같다고 묘사되어 있읍니다. “지도자”인 ‘티투스’ 장군의 군사적 “백성”이 홍수같이 넘쳐들어가는 이 일은 기원 70년 봄 이전에는 일어나지 않았읍니다. ‘갈루스’ 장군의 군대가 66년 11월에 퇴각한 때부터 기원 70년 이른 봄까지 3년 5개월 이상의 간격이 있었읍니다. 그 절호의 공백 기간에 ‘예루살렘’과 ‘유대’에 있는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그곳에서 도망하여 외부 산으로 갈수 있는 기회를 포착하였읍니다. 왜냐 하면 그들은 예수의 말씀으로부터 ‘예루살렘’의 황폐가 가까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읍니다. 그리하여 이들 그리스도인들인 “택하신 자들”이 도피하였읍니다.

27. (ㄱ) ‘예루살렘’의 “큰 환난”이 시작될 하나님의 때는 연기되었읍니까? (ㄴ) 그 당시 위험에 처해 있었으며 여호와께서 안전한 곳에 가 있기를 원하신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누구였읍니까?

27 기원 70년 봄과 여름에, 예언된 “큰 환난”이 ‘예루살렘’에 임하여 ‘유대’인들의 생명에 막대한 손실을 초래하였습니다. 예수의 예언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임할 “큰 환난”에 대한 시기를 확정하셨읍니다. 그 분께서는 그 환난이 시작되는 때를 연기하지 않으셨읍니다. 그러므로 그 분께서는 기원 66년에 있었던 ‘세스티우스 갈루스’의 공격을 중지시킨 것을 위험에 처한 “택하신 자들”에게 도망하라는 신호로 삼으셨읍니다. ‘세스티우스 갈루스’는 ‘예루살렘’을 잠깐 사이에 손쉽게 점령할 수 있었으나 기회를 놓쳤읍니다. 그 때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아니었읍니다. “택하신 자들” 전부가 그 당시 위험 지구에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이미 ‘유대’ 지역의 외부와 ‘로마’ 제국 안팎에 수백명의 그리스도인 ‘유대’인들이 있었읍니다. 이들은 ‘예루살렘’의 멸망이 임박하였어도 위험하지 않았읍니다. ‘유대’ 지역 안에 있는 그리스도인 ‘유대’인들만 위험하였읍니다.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이 당할 “큰 환난”이 시작하도록 확정하신 때가 되기 전에 ‘유대’와 ‘예루살렘’에서 안전히 나오도록 목적하신 사람들은 이들 위험에 처한 “택하신 자들”이었읍니다. 하나님께서 불충실한 ‘예루살렘’과 ‘유대’에 복수하실 때에 이들이 멸망되어야 할 이유가 어디 있읍니까? 그들은 멸망받기에 합당하지 않았읍니다.

28. (ㄱ) 그렇다면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위험에 처해 있는 ‘유대’인들은 누구였읍니까? (ㄴ) 모든 “택하신 자들”을 위험지구 밖으로 안전히 나와 있게 하셨으므로 여호와께서는 ‘유대’와 ‘예루살렘’에 어떠한 행동을 하실 수 있었읍니까?

28 그때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예루살렘’과 ‘유대’에서 도망하였음으로 ‘예루살렘’이 당할 “큰 환난”의 피해를 입을 위험이 없었읍니다. 멸망의 위험에 처한 것은 그 도시 안에 갇히어 발이 묶인 믿지 않는 ‘유대’인들이었읍니다. ‘예루살렘’안에 있는 모든 ‘유대’인의 “육체”는 그 환난이 장기간이 되면 생명을 잃을 위험이 있었읍니다. 그러한 비그리스도인 ‘유대’인들은 ‘니산’월 14일 유월절을 축하하기 위하여 그 도시로 모여들었읍니다. 유월절에 이어 한 주일 동안의 무교병의 절기가 따르게 되었읍니다. 바로 이 때 ‘티투스’ 장군이 멸망의 운명이 정해진 그 도시로 그의 군사적 “백성”을 이끌고 급습하였읍니다. 그는 그 도시를 포위하고 도시 내에 있는 반역적 ‘유대’인들을 가두어 버렸읍니다. 그는 또한 그의 “백성”으로 하여금 도시 주위로 약 8‘킬로미터’ 길이의 말뚝 방파제를 치게 하여 한 사람도 도망하지 못하게 방비하였읍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때 모든 “택하신 자들”이 멸망의 운명에 처한 지역 밖에 있게 하셨으므로 ‘유대’와 ‘예루살렘’에 복수의 집행을 신속히 할 수 있었으며, 그 집행을 제한하여 단시일 내에 집중적인 멸망을 단행할 수 있었읍니다.

29. ‘예루살렘’은 얼마 동안 공격을 받았으며, 무엇이 공격을 단축시켰읍니까?

29 ‘예루살렘’이 받은 공격은 오래 걸리지 않았으며, ‘니산’월 14일로부터 ‘엘룰’월 6일(‘그레고리’ 역으로 9월 6일)까지 즉 6개월도 채 걸리지 않았읍니다. 기원전 609-607년에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을 공격한 때에는 18개월이나 걸렸읍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여러 가지 일들b이 기원 70년에 있었던 공격을 단축하는 데 기여하였읍니다.

30. (ㄱ) 그 공격은 짧았지만 얼만큼 비참하였읍니까? (ㄴ) ‘예루살렘’에 무엇이 계속 행하여졌으며, 언제까지 계속되게 되어 있었읍니까?

30 그 공격은 짧았지만 그 공격은 참혹하기 이를데 없었읍니다. 물론 그 때까지의 인류 사상 전무후무한 최대의 환난은 아니었읍니다. “멸망의 가증한 것”은 하나님 자신의 결정에 의하여 근절을 초래하지 않았읍니다. ‘유대’ 역사가 ‘풀래비우스 요세퍼스’는 110만명의 ‘유대’인들이 죽임을 당하였거나 또는 죽었다고 보고합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 임한 그 “큰 환난”의 날들을 짧게 하셨기 때문에 어떤 “육체”는 구원되었읍니다. ‘요세퍼스’는 97,000명이 생존하여 포로로써 애굽과 ‘로마’ 지역으로 끌려 갔다고 보고합니다.c 그 도시와 성전은 예수께서 예언하신 그대로 완전히 멸망되었읍니다. 그리하여 문자 그대로 ‘예루살렘’은 기원전 607년d에 ‘바벨론’인들에 의하여 ‘예루살렘’과 ‘유다’가 처음 멸망되고 황폐한 때로부터 이방인들(비유대인 나라들)에 의하여 계속 “밟히”게 되었읍니다. 그러나 언젠가 때가 되면 그 이방인의 때는 끝나게 되어 있었읍니다. 즉 그 때가 시작한 기원전 607년 가을부터 2,520년 후에는 끝나게 되어 있었읍니다. 그 때는 기원 1914년 입니다.—누가 21:24.

[각주]

a 「역사가의 세계사」 제8권 소제목 “‘파르티아’의 난세”, 70면부터 그 이하 참조.

b 예를 들면 ‘헤롯 아그립바’ 1세의 ‘예루살렘’ 북편 성벽 건축 사업은 의심많은 ‘로마’ 황제 ‘클라디우스 시저’의 명령으로 중단되었다. 기원 66년에 ‘로마’의 ‘세스티우스 갈루스’ 장군의 군대가 퇴각한 후에 ‘유대’인들은 ‘로마’ 군대가 ‘예루살렘’을 재침할 경우의 장기간의 공격을 대비하는 일을 소홀히 하였다. 이 뿐 아니라 ‘티투스’ 장군 휘하의 ‘로마’ 군대는 갑자기, 불시에 그 도시를 습격하였다. 설상가상으로 방위군은 내란에 말려들어 서로 싸우고 있었다. 그들은 기근이 아니라면 쉽사리 정복될 수 없었던 그들의 요새를 잃었다.

‘티투스’ 장군이 그 ‘예루살렘’을 함락한 후 그 도시의 성벽을 둘러보고 승전의 원인이 하나님께 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하나님께서는 확실히 이 전쟁에서 우리의 협력자이셨다. 그리고 이 요새에서 ‘유대’인들을 축출하신 분은 바로 하나님이셨다. 인간들의 손이나 어떠한 기계가 이러한 성채를 전복하도록 거들어 줄수 있겠는가?”—‘요세퍼스’의 「유대인 전쟁사」 제6권 제9장 1항.

c ‘요세퍼스’는 ‘유대’의 다른 곳에서 죽임을 당한 사람들을 계산하지 않고 ‘예루살렘’에서 포위되어 사망한 사람들의 수를 110만명으로 추산한다.—‘요세퍼스’의 「유대인 전쟁사」 제6권 제9장 3항.

d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즉 하나님의 심판을 완성하시기 위하여 이방 국가들에게 임명된 기간이 다 끝나는 때까지 ··· 이방인의 그 때는 의문의 ‘파로우시아’에 의하여 끝난다 ··· ‘카이로이에트논’[이방인의 때]은 예언으로부터 모두에게 친숙했고, 이미 시작되었던 ‘카이로이’[때]였을 것이며 그래서 예수 시대와 그 오래 전에 성취되고 있었다고 간주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오이 카이로이’[때]를 가지고 있다. (19:44과 비교하라.)”—신학박사 ‘에이취. 메이어’ 저 「‘마가’와 ‘누가’의 복음서 비평 해석 핸드북」 1884년 판권 소유.

[199면 삽화]

사도들이 예수께 던진 질문의 초점은 언제 ‘예루살렘’과 성전이 멸망받게 되어 있는가 였다. 예수께서는 그들이 예상한 것보다 긴 대답을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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