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피하지 말고 끝까지 부지런하라
“동일한 부지런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라].”—히브리 6:11.
1. 하나님의 선물을 올바로 인식한 그리스도인들은 그에 대해서 어떻게 행동하는지 설명하십시오.
여호와께서 행하신 모든 일을 올바로 인식하면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행동을 하고자 하는 욕망이 솟아납니다. ‘베드로’는 형제들에게 보낸 두번째 편지에서 이 사실을 기술하였으며, 하나님의 승인을 받고 왕국의 축복에 들어가기 위하여 요구된 점들을 상기시켰읍니다.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베드로 후 1:3-7) 인식이 좋은 그리스도인들은 발전을 하고자 할 것이며, 그러한 목적을 위하여 부지런히 노력하고자 할 것입니다.
2. 넘어지는 것을 방지하는 보호책은 무엇입니까?
2 그리스도인들이 그렇게 힘쓰는 목표는 대단히 가치 있는 목표라고 ‘베드로’는 말합니다.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 게으르지 않고 열매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리라].” (베드로 후 1:8) 잘못하면 넘어질 수도 있읍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도록 보호해 주는 것은 무엇입니까? 중요한 한 가지는, 전도 봉사에 대단히 바쁘게 일하는 것입니다! 끝까지 중지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불의치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히브리 6:10-12.
3. 히브리 12:18-27에 묘사된 배경은 무엇이며, 어떠한 경고가 주어졌읍니까?
3 ‘예루살렘’에 있는 그리스도인 회중에 보낸 편지 뒷 부분에서 그는 왜 그렇게 해야 하는가를 설명하였읍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모세’를 통하여 율법을 받은 ‘이스라엘’ 사람들보다 우월한 위치에 있읍니다. (히브리 12:18-21) 그리스도인들은 단순히 문자적인 산에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시온’과 ‘예루살렘’, 천사들의 총회, 장자의 회중, 최고의 심판관이신 하나님과 중보자이신 예수께 나아갑니다. 하나님께서 땅과 하늘을 진동시켜서 흔들거리는 것들을 모두 제거하실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관련된 모두에게 대단히 중요한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히브리 12:22-27) 이러한 배경이 있으므로 그들은 회피해서는 안됩니다. “너희는 삼가 말하신 자를 거역하지[회피하지, 신세] 말라. 땅에서 경고하신 자를 거역한[회피한, 신세] 저희가 피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하늘로 좇아 경고하신 자를 배반하는 우리일까보냐? 그 때에는 그 소리가 땅을 진동하였거니와 이제는 약속하여 가라사대 내가 또 한번 땅만 아니라 하늘도 진동하리라 하셨느니라. 이 또 한번이라 하심은 진동치 아니하는 것을 영존케 하기 위하여 진동할 것들 곧 만든 것들의 변동될 것을 나타내심이니라.”—25-27절.
4. 책임에 대한 원칙이 어떤 비유로 설명되었읍니까?
4 그러므로 헌신한 그리스도인은 자기의 책임을 경히 여겨서는 안됩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책임을 물으실 것입니다. 이 원칙을 예수께서는 어느 두 아들의 말과 행동에 대한 비유에서 설명하셨읍니다. “맏아들에게 가서 이르되 얘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하니 대답하여 가로되 아버지여 가겠소이다 하더니 가지 아니하고 둘째 아들에게 가서 또 이같이 말하니 대답하여 가로되 싫소이다 하더니 그 후에 뉘우치고 갔으니 그 둘 중에 누가 아비의 뜻대로 하였느뇨?”—마태 21:28-31.
5. (ㄱ) 회피하지 말도록 무슨 격려의 말씀이 있읍니까? (ㄴ) 필요한 뒷받침과 힘을 누가 줍니까?
5 동료들과 하나님에 대한 모든 책임을 거역 혹은 회피하는 일이 흔히 있읍니다. 자기들에 대한 여호와의 뜻을 알고 그것을 부지런히 수행하는 참 그리스도인들과 연합해보면 크게 차이가 있읍니다. 그들은 고대 ‘예루살렘’과 같이 하나님의 다음과 같은 격려적인 명령을 따릅니다.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리라].” (스바냐 3:16, 17) 그러한 축복과 번영을 보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에게 즐거움이 넘칩니다. 하나님의 뜻을 열심히 행하는 자들은 여호와께서 친히 뒷받침하시고 힘주십니다.—빌립보 4:13.
어떤 사람들은 핑계한다
6. 어떤 사람들은 어떤 면에 책임을 회피합니까?
6 사람들이 책임을 받아들이지 않고 회피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읍니다. 타락한 인간 성품은 저항이 가장 적은 길로 가려하는 경향이 있읍니다. 자기 가족을 부양하지 않는 아버지가 있다든가 심지어는 원치 않는 영아를 유기하는 어머니가 있다는 말을 우리는 흔히 듣습니다. 결혼의 책임을 받아들이지 않고 아이를 낳는 수 많은 십대 미혼 아버지들이 그러한 예입니다. 심지어 헌신한 그리스도인들도 생활상의 의무를 회피하려는 널리 퍼진 경향을 경계할 필요가 있읍니다.
7. (ㄱ) 어떤 종류의 논리가 회피하는 결과를 초래합니까? (ㄴ) 항상 누구의 뜻을 행하지 않으면 안됩니까?
7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회피하려고 하는 것이나 약속한 것보다 덜하려는 행동은, 일반적으로, 그릇된 인간적인 논리에서 나온 결과입니다. ‘베드로’가 그런 일을 저지른 일이 있었읍니다. 그는 한 때 예수께 책임을 회피하라고 권고하였읍니다. 그의 의도는 좋았을지 모르지만 권고한 말은 아주 좋지 않은 것이었읍니다.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하여 가로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니라].” (마태 16:21-23) 그렇습니다. 여호와의 뜻을 인식하였다면 그 일 행하기를 주저해서는 안됩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언 3:5, 6.
8. ‘요나’가 체험한 일을 볼 때에 책임 회피에 대하여 무엇을 배우게 됩니까?
8 때에 따라서는 이러한 회피는 자신과 하나님밖에 모를 것입니다. ‘요나’가 그러한 경우였을 것입니다. 그는 ‘니느웨’라는 큰 도시에 가서 임박한 재난을 경고하라는 임명을 받고 다른 곳으로 도망하였읍니다. (요나 1:1-3:10)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그가 회피하는 것을 허락치 않으셨읍니다. ‘요나’는 징계를 받은 다음 두번째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응하여 “여호와의 말씀대로 일어나서 ‘니느웨’로” 갔읍니다. 실로 극적이고 놀라운 결과가 발생하였읍니다! “‘니느웨’ 백성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무론 대소하고 굵은 베를 입은지라. 하나님이 그들이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감찰하시고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요나 3:5, 10) 경우에 따라서는 한 도시 전체를 구원하는 문제가 아닐지 모르지만 여호와의 임명을 기꺼이 수행하는 것이 언제나 가장 지혜로운 일입니다.
9, 10. 왜 우리는 봉사에 고착해야 하며, 누구와 같아서는 안됩니까?
9 만일 당신이 여호와께 생명을 바쳤다면, 당신의 일에 충실히 고착하십시오. ‘요나’같이 도망가는 죄를 짓지 말고, 당신의 자리를 회피하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최근의 ‘뉴스’ 보도에 따르면, 미국에서만도 약 800명 가량의 ‘로마 가톨릭’ 사제들과 수도사들과 수녀들이 매년 교직을 이탈한다고 합니다. 다음과 같은 논평은 그에 대한 전형적인 것입니다. “현재와 같은 교직 형태는 내가 생존할 수 있는(죽거나 기형이 되지 않고 생활하고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는) 형태가 아니다. 나는 그렇지 않은 형태를 찾아야 한다.” (「뉴욕 타임즈」, 1969년 3월 8일호) 이러한 추세가 미치는 강한 충격을 1971년 9월 27일자 「롱 아일랜드 프레스」지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읍니다. “현재와 같은 추세를 발전시키지 않는다면, 미국 내의 ‘가톨릭’ 사제직은 ‘노인의 불균형에 처’하게 될 것이며, ‘우리 사회에서 생존할 수 있는 세력으로 존속하지’ 못할 것이다. ··· 1970년에는 10명이 성직에 취임하면 23명이 그 자리를 떠났다.”
10 또 다른 종류의 책임 회피가, ‘로마’ 발신 1971년 4월 27일자 「뉴욕 타임즈」 특별 기사에 나타났읍니다. 그 제목은 “더 많은 사제들이 ‘로마’의 빈민굴에서 일할 것을 촉구하다”였읍니다. “[‘로마’의] 사교 대리[‘델라콰’ 추기경]는 거의 300만의 주민과 500개소의 교회를 가진 이 도시에 8,000명의 ‘로마 가톨릭’ 사제들이 살고 있으나 사방에 퍼진 빈민촌에서 봉사하는 교직자들은 십여명에 불과하다고 말하였다.”
“큰 잔치”
11. 누가 14장에 있는 큰 잔치에 관한 예수의 비유는 어떻게 적용됩니까?
11 예수께서는 회피하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큰 잔치에 관한 비유에서 설명하셨읍니다.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배설하고 많은 사람을 청하였더니 잔치할 시간에 그 청하였던 자들에게 종을 보내어 가로되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 하매 다 일치하게 사양하여 하나는 가로되 나는 밭을 샀으매 불가불 나가 보야야 하겠으니 청컨대 나를 용서하도록 하라 하고 또 하나는 가로되 나는 소 다섯 겨리를 샀으매 시험하러 가니 청컨대 나를 용서하도록 하라 하고 또 하나는 가로되 나는 장가 들었으니 그러므로 가지 못하겠노라 하는지라.” 청함을 받은 사람들은 많았으나 그들은 오고 싶어하지 않고 회피하였으며 핑계를 꾸며댔읍니다. 한 사람은 자기가 사 놓은 소를 보러가야한다고 말하였읍니다. 농촌에 사는 사람으로, 귀중한 가축인 짐 끄는 소를 보지도 않고, 살피지도 않고 산 사람이 어디 있겠읍니까? 그러므로 그 “어떤 사람”은 속지 않고 얄팍한 핑계의 이면을 꿰뚫어 보았읍니다. 그들은 단순히 회피하는 것이었읍니다.—누가 14:16-20.
12. 가난하나 관대한 어느 과부의 헌금으로부터 어떤 교훈을 받게 되는지 설명하십시오.
12 만일 우리가 온 영혼을 다한다면, 모든 핑계를 버리고 여호와께 대한 봉사를 첫째로 두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할 수 있는 환경이 그 정도 뿐이라면, 단지 몇 시간의 야외 봉사도 여호와께 커다란 기쁨이 됩니다. 예수께서는 한 때에 사람들이 성전 헌금궤에 돈을 넣는 것을 관찰하셨읍니다. 부자들은 동전을 많이 넣었읍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어느 가난한 과부의 온 마음을 다한 관대함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 여자는 가치가 대단히 적은 동전 두닢을 넣었읍니다. (마가 12:41-44) 야외 봉사에서 모든 사람들이 다 동일한 양을 할 수는 없읍니다. 어떤 사람들의 경우에는 한 시간이나 두 시간도 대단히 관대한 봉사입니다.
13. 여호와를 섬기는 일에 기꺼이 책임을 받아들인다면 어떠한 결과를 볼 수 있읍니까?
13 여호와께 생명을 바친 다음, 자기의 능력과 재산과 환경을 똑바로 평가해 보면, 파이오니아 봉사에 들어갈 수도 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여호와께 대한 사랑과 자기네 헌신을 충분히 수행하려는 열망 때문에, 이러한 단계를 택한 결과 커다란 축복을 받았읍니다. 어떤 사람들은 가르치고 전파하는 사업에서 단지 약간만 담당하는 것으로 만족치 않고 크게 도움이 필요한 곳으로 이사하여 봉사한 결과 훌륭한 결과를 얻었읍니다. 생활조건은 보다 원시적이고, 여행거리는 멀지 모르지만, 힘이 더 들고 고생이 되더라도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증명하기 위하여 그처럼 솔선적인 태도를 나타낸 사람들을 여호와께서는 축복하시며, 그러한 사업을 성취할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고린도 후 4:7; 고린도 전 2:4, 5; 에베소 3:20, 21.
14. (ㄱ) 어떻게 각자는 자기의 짐을 질 수 있읍니까? (ㄴ) 우리가 비용을 계산해야 할 이유를 비유를 들어 설명하십시오.
14 여러 해 동안의 경험을 쌓은 사람이든지, 새로운 사람이든지, 우리 모두는 ‘우리의 짐을 지라’는 권고를 받고 있읍니다. (갈라디아 6:5) 당신은 단지 몇 달 동안 성서를 배워서 이제 헌신과 침례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 조건들을 배웠읍니까? ‘그렇게 하려면 일을 해야 할 것이고 시간과 노력이 들텐데요.’ 하고 당신은 말할 것입니다. 사실입니다. 그렇게 할 만한 가치가 있읍니까? 뿐만 아니라 ‘나는 비용을 계산해 보아야 하지 않겠읍니까?’ 하고 말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도 자기가 끝마칠 수 없는 일을 시작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읍니다. (누가 14:28-30) 그러나 예수께서는 강력한 권고와 힘찬 비유를 통하여, 그리스도인들에게 진보를 나타내라고 하셨으며, 봉사의 기회를 특권으로 생각하라고 하셨고, 전도 봉사에서 형식적인 봉사를 충분한 것으로 생각지 말라고 하셨읍니다.—「“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니이다”」, 185-190면 참조.
매우 바쁘지만 기쁘다
15. ‘바울’의 경험에서 무엇을 배우게 됩니까?
15 그리스도인들의 생활은 한가한 생활이 아닙니다. 그러나 만족스럽고 행복한 생활입니다. 사도 행전 14:20-22에서는 축복된 경험을 몇 가지 말해 줍니다. ‘바울’의 생활은 본이 됩니다. “‘바울’이 일어나 성에 들어갔다가 이튿날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가서 복음을 그 성에서 전하여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고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안디옥’으로 돌아가서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거하라 권하[니라].” ‘바울’은 지칠줄 모르는 일군으로서 결코 권태감을 가지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근면에 대한 놀라운 기록이 아닙니까! (고린도 후 11:23-27) 그는 힘든 일을 회피하지 않았고, 여러 가지 역경을 이겨냈으며, 그 모든 일을 기쁘게 행하였읍니다. “내가 너희 영혼을 위하여 크게 기뻐함으로 재물을 허비하고 또 내 자신까지 허비하리니 너희를 더욱 사랑할수록 나는 덜 사랑을 받겠느냐?” (고린도 후 12:15) 역경과 고난이 그에게서 행복감을 앗아가지 못하였으며, 그로 불만을 품게 하지 못하였읍니다. 그는 특권과 성취감을 가지고 새 힘을 느꼈으며, 열심히 일한 다른 사람에게 영예를 돌렸읍니다.—디모데 후 4:7, 8; 로마 16:12.
16. 책임을 받아들일 수 있는 부면에는 어떤 것이 있읍니까?
16 그러므로 형제들이여 여러분은 야외 봉사에서, 회중 내의 형제들에게 도움을 주는 면에서, 책임을 받아들입니까? 그것도 자진적으로, 기쁘게 하십니까, 아니면, 핑계를 대고 회피합니까? 이 점은 각자가 자문해 보아야 할 문제입니다. 당신은 회중 집회의 일부분을 담당하라는 임명을 선뜻 받아들입니까? 임명되면, 충실하게 따르고, 회중 집회에서 맡은 부분을 충분히 준비하고, 연습을 하고, 신중하게 제공합니까? 당신은 틀림없이 그렇게 할 것이며, 확실히 칭찬을 받을 만할 것입니다. 회중 형제들은 당신의 사랑에 찬 노력을 크게 감사할 것입니다. 집회 참여는, 모두에게 가치있으며, 힘을 주고 격려를 주는 것입니다. 설사 그것이 단지 깊이 생각한 자진적인 해설이거나 질문에 대한 대답일지라도 그러합니다.—히브리 10:23-25.
17. 형제들은 회중 내의 부가적인 기회에 어떻게 응하는 것이 좋습니까?
17 회중 내에서 참으로 선한 일 곧 감독자의 직분을 얻으려고 노력하는 점에 있어서는 어떠합니까? (디모데 전 3:1) 당신은 자격을 구비하기 위하여 노력하였으며, 자진적으로, 열정적으로 활동하였읍니까? 아마 당신의 자진성을 다른 사람들은 관찰하였거나 관찰할 것이며, 당신은 더욱 더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틀림없이 선한 일 곧 올바른 일을 많이 하게 될 것입니다.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부득이 함으로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를 위하여 하지 말고 오직 즐거운 뜻으로 하며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라.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리라.”—베드로 전 5:2-4; 디모데 전 6:17, 18.
지금은 ‘힘쓸’ 때
18. 때가 많이 기울었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모름지기 어떠한 태도를 가져야 합니까?
18 우리는 성서를 연구한 결과 지금이 “마지막 때”도 저물어가는 때라는 사실을 배웠읍니다. 때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성서의 말씀을 확증하는 증거를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읍니다. 지금은 그리스도인들이 책임을 회피할 때가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그리스도인들은 열정적인 자진성, 진취적인 자진성을 가지고 봉사해야 합니다. 자신이 여호와께 그처럼 많은 빚을 지고 있는데, 여호와께서 요구하시는 분량에 스스로 한계를 정할 이유가 어디 있겠읍니까?
19. (ㄱ) 우리는 어떤 면에 책임을 회피하지 않아야 합니까? (ㄴ) 여호와께서는 어떻게 바치는 것을 가장 사랑하시며, 그것은 무엇을 이룰 것입니까?
19 그리스도인들에게 끝까지 부지런하고 게으르지 말라고 한 성서의 교훈은 대단히 실용적입니다. 그 점을 무시해서는 안됩니다. 야외 봉사에 온전히, 이치적으로 참여하는 일을 등한히 하거나, 형제들을 섬기는 일과 회중 일을 돕는 일에 발전하도록 하는 여러 가지 제안을 묵살하거나, 언제고 봉사의 기회에 자진하지 않는 일 등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바치는 것 중에서도 여호와께서 가장 사랑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봉사에 온 마음을 다하여 자신을 바치는 것입니다. (고린도 후 9:6, 7) 자신을 바쳐 일하면, 새 힘을 주고 활력을 주는 좋은 결과를 보게 될 것입니다. 「성서 시대의 일상 생활」이라는 책에서는, ‘바울’의 힘든 생활 계획 중 몇 가지 특색을 설명한 다음, 필자는, “우리는 그가 언제 식사를 하고 잠을 잘 시간이 있었는지 의아하게 된다”고 말하였읍니다. (308면) 그러나 그 저자는 욧점을 놓치지 않고, “이 모든 꾸준한 수고는 결과를 내었다”고 간단히 언급하였읍니다.—‘에이. 이. 베일리’ 저 (뉴욕, 1943년: ‘잘스 스크리브너스 선스’ 발행)
20. 전도 봉사에서 부지런히 하면 즐거움을 맛본다는 어떤 보증이 있읍니까?
20 예수께서는 그리스도인 봉사에 사람들을 내보내시면서, “추수할 것은 많되 일군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군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고 말씀하셨읍니다. 처음 보냄을 받은 70명은 기쁘게 일하였으며, ‘기뻐하면서 돌아’왔읍니다. (누가 10:2, 17)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행로를 따르고 있으며, 부지런히 하는 사람들은 전도 봉사에서 즐거움을 맛보고 있읍니다.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요한 13:17; 야고보 1:25.
21. (ㄱ) 우리는 어떻게 헛된 일에 빠지지 않을 수 있읍니까? (ㄴ) 회피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보상이 약속되어 있읍니까?
21 인간 생활 가운데는 헛된 일이 많이 있지만, 참 숭배와 관계된 일들은 헛되지 않으며, 실망을 주거나 허망하게 되지 않습니다. (전도 2:10, 11)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께 의지한다면 우리의 일은 반드시 성공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될 것입니다. (시 127:1) 현명한 사람은 ‘솔로몬’과 같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릴 것입니다.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 (잠언 16:3) 여호와께서는 우리의 사랑의 노동을 관찰하시며, 기억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회피하지 않을 경우 다음과 같은 약속된 보상이 있음을 알려 주십니다. “그들은 가옥을 건축하고 그것에 거하겠고 포도원을 재배하고 열매를 먹을 것이며 그들의 건축한데 타인이 거하지 아니할 것이며 그들의 재배한 것을 타인이 먹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 백성의 수한이 나무의 수한과 같겠고 나의 택한 자가 그 손으로 일한 것을 길이 누릴 것임이며 그들의 수고가 헛되지 않겠고 그들의 생산한 것이 재난에 걸리지 아니하리니 그들은 여호와의 복된 자의 자손이요 그 소생도 그들과 함께 될 것임이라.”—이사야 65:21-23; 또한 레위 26:3-5; 신명 28:4 참조.
22. 누가 우리에게 자기의 제자가 될 것을 권하며, 우리가 거기에 응하면 어떤 결과를 볼 것입니까?
22 그렇게 되기 전에도 야외 봉사나 회중 일에 부지런히 일하면, 지치지 않고 믿음이 튼튼하며, 행복하고 힘있게 지속해 나갈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의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마태 11:28-30.
[329면 삽화]
예수께서 알려주신 바와 같이 하나님의 초대를 받아들이지 않고 회피하는 사람들은 얄팍한 핑계를 댄다
[330면 삽화]
당신은 참으로 부지런히 야외 봉사를 하는가, 아니면 형식적인 봉사만 하는가?
[331면 삽화]
우리의 감독자들은 매우 열심히 봉사한다. 왜 나는 주저하는가? 나도 형제들에게 더 큰 봉사를 할 수 있도록 자격을 구비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지 않을 이유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