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들은 하나님의 분노를 피할 성역이 되는가?
1-3. 세계가 직면하고 있는 위기를 생각할 때에 어떠한 질문들이 떠오릅니까?
이 세계가 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거의 의심하지 않습니다. 만일 3차 세계 대전의 위협이 현실화될 경우 사람들이 피신할 만한 곳이 있읍니까? 더욱 중요한 질문으로, 이 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기간에 안전한 곳이 있읍니까? 하나님께서 지상의 일에 전적으로 통치권을 행사하실 때에 보호를 받기 위하여 하나님의 승인을 얻을 만한 방법이 있읍니까?
2 교회 회원이 되는 것이 안전을 확약할 것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소위 “그리스도교” 나라들의 교회들을 그리스도교국이 여겨온 것처럼 성역으로 간주하실 것입니까?
3 만일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교국의 교회를 떠나서 여호와의 증인들의 집회에 참석한다면, 그는 안전한 피난처를 얻었다고 간주할 수 있읍니까? 설사 어떤 사람이 자칭 그리스도인들이라고 공언하는 대부분의 사람들 보다 성서에 대한 지식이 더 많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확실한 보호책이 됩니까?
4.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대하신 일들을 살펴보면, 이러한 질문에 대해 어떤 대답이 나오게 됩니까?
4 하나님께서 과거에 자기의 백성 ‘이스라엘’과 관련하여 행하신 일들을 살펴보면,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으로, 우리는 “그렇지 않다, 하나님의 보호를 받을 자격을 갖추려면 훨씬 더 많은 것이 관련되어 있다” 하고 말할 수 있읍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예루살렘’ 도시와 자기의 이름을 두시었던 ‘예루살렘’ 성전에 대해 하신 일들을 안다면 우리는 신성 통치자의 견해를 이해할 수 있읍니다.
5. 기원전 612년에 ‘예루살렘’의 입장은 오늘날 그리스도교국의 상태와 어떤 면에서 비슷하였읍니까?
5 기원전 612년에 ‘유다’ 땅과 그의 수도 ‘예루살렘’은 상태가 오늘날의 그리스도교국의 상태와 대단히 비슷하였읍니다. 문자적으로 도덕적으로 오염이 심하였읍니다. 불법과 폭력이 그 땅에 가득하였읍니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공언하는 자들 사이에 우상 숭배와 기타 이교적이고 타락한 숭배 형태가 성행하였읍니다. 심지어 성전내에서도 대단히 충격적인 일들이 자행되었읍니다. 또한 이교 세계 강국인 ‘바벨론’과의 파괴적인 전쟁의 위협이 계속 되었기 때문에 공포와 고민이 끊치지 않았읍니다. 이와 비슷한 문제들이 오늘날 그리스도교국에도 둘러 싸여 있읍니다.
표하는 일과 살륙 하는 일
6, 7.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있었던 상태때문에 행동을 취하실 것을 ‘에스겔’에게 어떻게 밝히셨읍니까?
6 따라서 ‘이스라엘’의 보이지 않는 신성 통치자이신 여호와께서는 행동을 취하지 않을 수 없었읍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과 그 성전을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침범할 수 없는 성역으로 생각하실 것이었읍니까? 여호와께서는 항상 하시듯이 자기의 의향을 미리 밝히셨읍니다. 하나님의 예언자 ‘예레미야’가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의 불쾌하심을 그 백성들에게 경고하는 동안, ‘바벨론’에 사로잡혀 있던 ‘에스겔’은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 ‘예루살렘’에 대한 환상을 보았읍니다. 그는 그의 예언서에 다음과 같이 보고합니다.
7 “[여호와께서] 또 큰 소리로 내 귀에 외쳐 가라사대 이 성읍을 관할하는[주의를 기우린, 신세] 자들로 각기 살륙하는 기계를 손에 들고 나아오게 하라 하시더라.”—에스겔 9:1.
8-10. (ㄱ) 그 도시에 “주의를 기울인 자들”이 ‘시드기야’ 왕과 그의 귀족들이 아님을 어떻게 압니까? (ㄴ) 살륙하는 기계를 가진 여섯 사람은 누구였읍니까?
8 ‘살륙하는 자’로서 그 도시에 “주의를 기울인 자들”은 그 당시 ‘유대’ 왕인 ‘시드기야’와 귀족들이 아니었읍니다. 이들 통치자들은 ‘바벨론’의 위협을 제거하도록 도와 달라고 애굽의 ‘바로’에게 간청하였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는 누구를 부르셨읍니까? ‘에스겔’은 그들에 대해 본 바를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읍니다.
9 “내가 본즉 여섯 사람이 북향한 윗문 길로 좇아 오는데 각 사람의 손에 살륙하는 기계를 잡았고 그 중에 한 사람은 가는 베옷을 입고 허리에 서기관의 먹 그릇을 찼더라. 그들이 들어 와서 놋 제단 곁에 서더라.”—에스겔 9:2.
10 전부 일곱명인 이들은 행동을 취할 완전한 집단이었읍니다. 그들이 온 방향은 ‘바벨론’ 사람들이 ‘예루살렘’을 치러 올 방향이었읍니다. 그러나 살륙하는 기계를 든 이 “여섯 사람”은 ‘바벨론’ 군대라고 하지 않았읍니다. 그들은 하늘 군대를 대표하였으며, 그 군대는 실제로 ‘바벨론’ 군인들을 지상의 대리자로 사용할 수 있었읍니다.
11-13. ‘가는 베옷을 입은 사람’과 그의 사명에 대해 설명하십시오.
11 일곱째 “사람”도 군인이었읍니까? 그렇지 않았읍니다. 그는 평화의 사명을 띤 서기관이었읍니다. ‘에스겔’은 다음에 이렇게 말하고 있읍니다.
12 “‘그룹’에 머물러 있던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올라 성전 문지방에 이르더니 여호와께서 그 가는 베옷을 입고 서기관의 먹 그릇을 찬 사람을 불러 이르시되 너는 ‘예루살렘’ 성읍 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하라 하시고.”—에스겔 9:3, 4.
13 그러므로 ‘가는 베옷을 입은 사람’은 분명히 평화롭고 생명을 구하는 사명을 받았읍니다. 서기관에게 그 사명을 주기 전에 하나님의 임재는 환상 가운데서 이전에 묘사된 바 있는 하늘 병거로부터 “성전 문지방”으로 이동하였읍니다. 그것은 분명히 성전 안에 있는 지성소의 문지방을 의미하였을 것입니다. 여기서 여호와께서는 표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붓과 먹을 가지고 있는 ‘가는 베옷을 입은 사람’에게 명령을 내리셨읍니다.
14, 15. 누가 ‘가는 베옷을 입은 사람’으로부터 “표”를 받게 되어 있었으며, 그들을 어떻게 찾아낼 것이었읍니까?
14 ‘예루살렘’의 일반 거민들과 구별해주는 표를 누가 받을 것이었읍니까? 우상 숭배, 부도덕, 기타 하나님을 불쾌하게 하고 하나님의 분노를 일으키는 가증한 것들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받게 되어 있었읍니다. 그들은 의로운 일과 하나님의 이름에 불경을 돌리고 모독을 돌리는 일때문에 “탄식하며 우는 자”들이었읍니다.
15 ‘가는 베옷을 입은’ 이 상징적인 사람은 ‘예루살렘’ 도시에 있는 각 집을 찾아가서 표받기에 합당한 자들을 다 찾아낼 것이었읍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참 숭배자임을 나타내는 표를 받을 필요가 있었읍니다.
살륙을 먼저 당할 자들
16, 17. “표”는 무슨 가치가 있었읍니까?
16 그 표는 무슨 가치가 있었읍니까? 여호와께서 다음에 살륙하는 기계를 가진 “여섯 사람”에게 주신 명령에 그 대답이 들어 있읍니다.
17 “너희는 그 뒤를 좇아 성읍 중에 순행하며 아껴 보지도 말며 긍휼을 베풀지도 말고 쳐서 늙은 자와 젊은 자와 처녀와 어린 아이와 부녀를 다 죽이되 이마에 표 있는 자에게는 가까이 말라. 내 성소에서 시작할찌니라.”—에스겔 9:5, 6.
18. (ㄱ) 놀랍게도 살륙하는 일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읍니까? (ㄴ) 성전 안은 안전하리라는 그릇된 생각에 따라 성전 안에서 우상 숭배를 하는 자들은 어떠하였읍니까?
18 사람들의 머리를 치는 일을 어디서 시작하게 되어 있었는지 보십시오. 여호와의 성소에서 부터 시작하게 되어 있읍니다! 우상 숭배적인 ‘이스라엘’ 사람들은 성전 내부는 안전하다고 느꼈을 것입니다. 그들은 우상을 위하는 그들의 거짓숭배는 거룩한 곳을 더럽히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살륙당한 시체는 성소를 더럽힐 것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그 명목만 지닌 성소에서 멀리 떠나셨으며, 그에 대한 증거로 우상 숭배로 성소를 더럽히는 자들의 시체로 그 곳을 더럽히려고 하셨읍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이 되었읍니다. “그들이 성전 앞에 있는 늙은 자들로부터 시작하더라. [여호와께서]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는 성전을 더럽혀 시체로 모든 뜰에 채우라. 너희는 나가라 하시매 그들이 나가서 성읍 중에서 치더라.”—에스겔 9:6, 7.
19. 우리 자신이나 자녀들의 안전에 대해 오늘날 우리는 어떠한 그릇된 생각을 버려야 합니까?
19 따라서 사람이 교회나 성전 구역 안에 또는 여호와의 증인의 왕국회관 안에 있다 해도, 그가 하나님의 의로운 법에 일치하게 생활하지 않는다면, 여호와의 분노로부터 그 사람이 보호를 받지 못할 것입니다. 심지어 어린 아이들이라 하더라도 그 부모들이 깨끗한 숭배 안에서 “여호와의 훈계와 정신적 단속”으로 그들을 교육시키지 않았다면, 보호를 받지 못할 것입니다. 신성 통치자의 분노가 그 도시에 폭발할 때에 그 당시 ‘예루살렘’에서 연령이나 성별이 보호를 받을 이유가 되지 못하였읍니다. 표를 받지 않은 부모들은 자기들의 어린 자녀의 죽음에 대하여 책임이 있을 것입니다.—에베소 6:4, 신세; 출애굽 20:5.
20, 21. 성소에서 살륙하는 광경을 보고 ‘에스겔’의 머리에 어떠한 질문이 떠 올랐으며, 여호와께서는 무엇이라고 대답하셨읍니까?
20 우상 숭배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성소 안에서 죽임을 당하는 광경을 보고 ‘에스겔’의 머리에는, 만일 성전과 같은 거룩한 장소에서도 전연 살아남지 못한다면, ‘예루살렘’ 도시밖에 사는 사람들로서는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겠는가? 하는 의문이 떠 올랐을 것입니다. ‘에스겔’은 그 광경에 충격을 받아서 다음과 같이 질문하였읍니다. “그들이 칠 때에 내가 홀로있는지라. 엎드리어 부르짖어 가로되 오호라 [지존하신] 주 여호와여 ‘예루살렘’을 향하여 분노를 쏟으시오니 ‘이스라엘’ 남은 자를 모두 멸하려 하시나이까?”—에스겔 9:8.
21 ‘에스겔’의 질문에 여호와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읍니다.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의 죄악이 심히 중하여 그 땅에 피가 가득하며 그 성읍에 불법이 찼나니 이는 그들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이 땅을 버리셨으며 보지 아니하신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들을 아껴보지 아니하며 긍휼을 베풀지 아니하고 그 행위대로 그 머리에 갚으리라.”—에스겔 9:9, 10.
22. 여호와의 환상이 고대 ‘예루살렘’ 위에 그대로 실현되었다는 기록이 있읍니까?
22 5년 후에, ‘바벨론’ 사람들이 ‘예루살렘’을 파괴하였을 때에 여호와께서 여기에 하신 말씀은 그대로 실현되었읍니다.
보호를 주는 것
23. 왜 우리는 악한 도시에서 노소를 막론하고 멸하신 데 대하여 여호와께서 무자비하다고 비난할 수 없읍니까?
23 우리는 이 일들을 공평과 의로움이라는 관점에서 보아야지, 우리의 판단이 감상주의 때문에 흐려져서는 안됩니다. 그 땅을 더럽히고 폭력을 가득하게 하여 옳은 것을 행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살 수 없게 만든 자들을 여호와께서 멸하셨음을 우리는 확신할 수 있읍니다. (시 89:14; 베드로 후 2:9) 또한 하나님의 형 집행자들은 자행되는 가증한 일들에 무관심하고 묵인하는 자들을 죽였읍니다. 오직 참으로 슬퍼하는 자들만이 살아 남았읍니다. 그들이 슬퍼한 것은 그들의 “권리” 혹은 권익이 유린당하였기 때문만이 아니라, 주로, 불의가 자행되고 그것이 하나님의 이름에 모독을 돌리기 때문이었읍니다.
24.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에 대해 행하신 사실을 알게 되면, 무슨 그릇된 생각을 갖지 않게 됩니까?
24 그러므로, 자신이 책임질 만한 나이가 되었다면, 어느 누구도 자기 부모가 의롭기 때문에 보호를 받을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또한 어느 교회에 속한다던가, 하나님을 숭배하는 사람들과 함께 모인다던가, 성서에 대한 지식을 어느 정도 가진다고 해서 구원을 받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속임을 당하지 않습니다. (갈라디아 6:7) 하나님의 천사들은 말과 행동면에서 “영과 진리로” 하나님을 숭배하는 자들로 “표”를 받은 자들만 남겨둘 것입니다.—요한 4:24, 신세.
25. (ㄱ) 과거 ‘예루살렘’에서 실제 사람이 실제로 표하는 일을 수행하였읍니까? (ㄴ) 실제 효과를 내었던, 표하는 일이 어떠한 면으로 있었읍니까?
25 과거 ‘이스라엘’에서는 실제 사람이 모든 집을 돌아 다니면서 이마에 실제 표를 하는 일이 없었읍니다. 그것은 상징적인 표하는 일이었읍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과 보호에 따라 ‘예레미야’를 따르던 ‘바룩’과, ‘레갑’ 사람 ‘에벳멜렉’ 그리고 틀림없이 그 외에도 다른 사람들은 살륙을 피하였읍니다. 상징적으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이마에 실제 표가 있는 것처럼 뚜렷하게 “표”를 하셨읍니다. 그리하여 “여섯 사람” 곧 하나님의 천군들이 그 “표”를 보고 그들에게 가까이 하지 않게 하셨읍니다.
26. ‘예루살렘’에 대한 ‘에스겔’의 환상의 적용 문제에 관해 오늘날 어떠한 질문이 생깁니까?
26 현 20세기에 ‘예루살렘’과 같이, 그리스도교의 본거지라고 주장하는 그리스도교국에 폭력이 가득차 있읍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법에 대한 모독이 날이 갈수록 가중되고 있읍니다. 어디서 보호를 받을 수 있읍니까? 과거의 “표”하는 일에 해당할 만한 일이 오늘날 진행되고 있읍니까? 만일 진행되고 있다면 누가 그 일을 하고 있읍니까? 그 “표”는 무엇이며, 오늘날 그것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이러한 질문을 기초로한 기사가 다음 호에 나올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