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 하나님을 드높이는 각주
당신은 일부 성서 번역판의 지면 아래에 작은 글씨로 나타나 있는 각주(腳註)에 주의를 기울여 보았는가? 그렇지 않으면 보통 성급하게 읽어버리고 마는가? 그러한 각주들을 지나쳐버렸다면 당신은 흥미있고 동시에 믿음도 강화해주는 중요한 점들을 놓친 것이다. 모든 각주들이 동일한 가치를 지닌 것은 아니지만 「신세계역」(영문) 대형판에 나오는 많은 각주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더욱 잘 인식하도록 우리에게 도움이 된다.
예를 들면, 이 대형판 창세기 5:22에 관한 각주에서는 왜 이 번역판에서 ‘하 엘로힘’을 “참 하나님”(the true God)이라고 번역하였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이 번역은 저명한 ‘히브리’어 학자 ‘제세니어스’의 설명을 근거로 하였다. 그는 정관사 “하”가 “전체 부류에 적용되는 단어들이 (단순히 관용적으로) 특정한 개체에게 국한될 때에” 사용된다고 설명하였다. 그리고 희랍어에서 다른 예들을 들었는데, ‘호 데오스’를 그는 문자적으로 “하나의 참 하나님”을 뜻한다고 하였다. 다른 번역판에서는 ‘엘로힘’과 ‘하 엘로힘’과의 이러한 차이를 볼 수가 없다.
이 대형판(신세)이 여호와를 더욱 잘 인식하도록 도움을 주는 또 다른 예는 “주권자이신 주 여호와”(Sovereign Lord Jehovah)라는 표현이다. ‘테트라그램마톤’을 “여호와” 또는 “야훼”라고 번역한 번역판에도 “주 여호와” 또는 “주 야훼”라고만 되어 있다. 왜 「신세계역」에서는 “주권자이신”이란 단어를 부가하였는가? 왜냐 하면, 창세기 15:2의 각주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보통 “주”(Lord)로 번역되는 ‘아도나이’라는 단어가 그러한 경우에는 탁월의 복수형으로 즉 문자적으로 번역한다면 “주들 여호와”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복수형은 수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탁월성을 나타내기 때문에 「신세계역」에서는 이 ‘주’가 보통의 ‘주’가 아님을 나타내기 위해 “주권자이신”이란 단어를 부가한 것이다. 참으로 여호와는 범상한 분이 아니고, 대단히 특별한 주, 곧 주권자이신 주이시다.
“웅대한 창조주”(Grand Creator)라는 표현에 대해서도 전도서 12:1의 각주에서 비슷한 설명을 하고 있다. 거기에 보면, “‘창조하다’라는 ‘히브리’어 동사의 분사형은 이곳에서 존대 혹은 탁월의 복수형으로 되어 있다”고 하였다. 단수형으로 “창조주”라고 한다면 원문에 충실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므로 합당하게, “웅대한 창조주”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이 점에 있어서도 이 점을 나타낸 다른 번역판은 찾아보기 힘들다. 하나의 예외로 ‘영’ 씨의 번역판이 있는데, 거기서는, “너의 청년 시절에 너의 창조주들(Creators)을 또한 기억하라”고 하였다. 그 말은 창조주가 한분이 아니라 더 많이 있다는 뜻인가? 이 귀절에 대하여 ‘손시노’ 성서 각주에서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만일 명사를 복수로 번역한다면 그것은 ‘장엄의 복수’이다. ‘하나님에 대한 이 칭호는 그분을 종국적인 원인이며 우리 신체의 설계자로서 강조하기 위해서 선택한 것이었다.’”
「신세계역」 신명기 18:5에 나타나 있는 각주도 빛을 던져준다. 그 각주에서는 이 귀절이 들어 있는 희랍어 70인역 파편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 파편은 기원전 2세기까지 소급하는 것이다. 그 안에 “희랍어 표현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나온 것이 아니라 ··· 하나님의 이름의 ‘히브리’어 ‘테트라그램마톤’(יהוה, YHWH)이 들어 있다. 이 ‘파피루스’ 수집품들의 다른 파편에 나오는 것 외에도, 이 사실은 여호와의 이름이, 희랍어 70인 역에서 「모세 오경」 전체에는 몰라도 「신명기」에는 ‘히브리’어 ‘테트라그램마톤’의 형태로 나타나 있었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 사실은 예수 당시에 사용되었던 「70인역」에 ‘히브리’어 ‘테트라그램마톤’이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하기 때문에 그 점은 대단히 큰 관심거리가 된다.
그리고 또한 출애굽기 23:28에서 많은 번역판들은 하나님께서 ‘가나안’ 사람들을 ‘이스라엘’ 사람들 앞에서 몰아내시기 위해 그들 앞에 “왕벌”(hornets)을 보내시겠다고 표현되어 있다. (개역 한글판, 흠정역, 미국 표준역, 예루살렘 성서, 신 미어 성서, 개역 표준역 참조) 이러한 표현은 하나님의 진실성을 의심하게 한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성경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사람들 앞에 왕벌을 실제 보내셨다는 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1971년판 「신세계역」 각주에서는 독일 성서 학자 ‘투드비히코엘러’의 설을 인용하여 이곳의 ‘히브리’어가 “낙심, 실망, 굴욕”을 의미하는 ‘아라비아’어 단어와 일치한다고 설명하였다. 따라서 「신세계역」에서는 여호와께서 “낙담한 감정을 내 앞에 보내”실 것이라고 표현하였다. 이 점은 사실 그대로였다. ‘여리고’의 기생 ‘라합’은 두명의 ‘이스라엘’ 정탐군에게 말하기를, “우리가 너희를 심히 두려워하고 ··· 너희의 연고로 사람이 정신을 잃었”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여호수아 2:9-11) 「신 영어 성서」도 「신세계역」과 일치하게 출애굽기 23:28을 하나님이 “너희 앞에 당황감을 퍼트릴” 것이라고 번역하였다.
그렇다, 「신세계역」 1971년판 각주는 여호와께서 유일하신 참 하나님, 주권자이신 주 그리고 자기의 약속을 이루시는 웅대하신 창조주이심을 잘 인식하도록 도움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