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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서의 땅을 더 잘 알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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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서의 땅을 더 잘 알게 됨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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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미깊은 장소
  • 예수의 봉사를 생생하게 상기시켜 주는 곳들
  • 오랫 동안 잊지 못할 기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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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74
파74 6/15 284-287면

성서의 땅을 더 잘 알게 됨

작년 7월 18일부터 9월 26일까지 약 3,500명의 여호와의 증인들은 특별한 마련을 이용하여 성서의 땅을 구경하였다. 이들 여행자들은 ‘프랑스’에서 온 800여명과 영국에서 온 비슷한 수의 사람들과 북미에서 온 750여명과 북‘유럽’의 기타 나라에서 온 수백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여러 해 동안 이들 중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히브리’인 예언자들과 하나님의 아들과 그의 사도들의 봉사와 관련된 장소를 직접 구경하기를 갈망하였다. 그들은 ‘이스라엘’에 머무는 동안 북쪽으로 멀리 ‘헤르몬’ 산으로부터 ‘네겝’의 ‘브엘세바’로 통하는 길과 지중해에서 사해에 이르기까지 여행하였다.

의미깊은 장소

그들에게 지적된 많은 지역은 산이거나 이전 도시들의 폐허였다. 무관심한 관찰자에게라면 그러한 것들은 인상적인 것으로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성서 연구생들에게 ‘모레’ 언덕, ‘다볼’ 산, 고대 ‘사마리아’와 ‘벧엘’의 유적은 의미심장하였다. 이곳들은 여호와께서 그의 목적을 반대한 사람들을 심판 집행하신 곳들이다. 명백히 볼 수 있었던 바와 같이 그러한 장소가 지금도 있다. 그러한 곳에 대한 성서의 기록은 상상이 아니다.

뜨거운 햇볕을 받으며 여행단은 ‘므깃도’ 산 꼭대기로 올라가서 한 때 있었던 성채들의 증거를 보았다. 이곳에서는 그 아래에 있는 ‘에스드렐론’ 평야를 잘 내려다 볼 수 있었다! ‘갈멜’ 산맥을 통과하는 길 입구 근처에 위치한 곳에서 이 도시는 남쪽, 북쪽, 동쪽에서 이곳을 통과하는 통상로를 쉽게 장악할 수 있었음이 분명하였다. ‘애굽’의 한 ‘바로’는 “‘므깃도’를 정복하는 것은 수천개 성읍을 정복하는 것이다!” 하고 말하였다고 한다. 이 도시의 장악은 성서 시대에 국제적인 정치적 군사적 우월성을 의미하였다. 방문객들은 ‘아마겟돈’이라는 이름(“므깃도 산”이라는 뜻)이 세상의 정치적 강국들에 대한 하나님의 다가오는 승리와 결부되어 있는 이유를 이해하기 어렵지 않았다.—계시 16:14, 16.

예수의 봉사를 생생하게 상기시켜 주는 곳들

‘갈릴리’에서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문의 여지 없이 하나님의 아들로 식별하게 해 주는 사건들을 상기하였다. 어느 이른 아침에 그들은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를 건너기 시작하였다. ‘프랑스’에서 온 방문객은 이렇게 보고하였다. “특히 나에게 인상깊었던 순간은 우리가 타고 여행하던 배가 앞바다에서 멈추고 안내인이 마태 복음 14:23-33을 읽었을 때였읍니다.” 그들은 예수께서 그곳 물 위를 걷고 그분이 폭풍에게 말하고 잠잠하게 하신 때를 상상할 수 있었다. 이러한 일들을 단순한 인간의 능력으로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이 있겠는가?

여행자들은 북쪽 해안의 ‘가버나움’에 상륙하여 폐허만을 볼 수 있었다. 여기에는 예수의 지상 봉사 후 어느 때에 건축된 회당의 잔적이 있었다. 이 도시에서 예수께서는 악귀를 쫓아내시고 각종 병을 고쳐 주셨다. 주민들은 그분이 죽은 자를 일으키기까지 하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믿지 않았다. 영적 의미로 ‘가버나움’은 예수의 임재와 가르침과 기적으로 하늘까지 높아졌으나 예수께서는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고 말씀하셨다. (누가 10:15) 이번 여행에서 구경한 폐허들은 그분의 말씀이 성취되었음을 증명하였다.

여행자들은 북쪽으로 더 멀리 ‘가이사랴 빌립보’를 방문하였는데, 이곳에서 사도 ‘베드로’는 그가 목격한 것에서 절대적인 확신을 얻고 예수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하고 인정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근처에서 그들은 ‘헤르몬’ 산을 보았는데, 그 산은 틀림없이 예수께서 변화되셨고 하늘에서 “이는 ··· 내 아들이요 ··· 저의 말을 들으라”는 음성이 들렸던 “높은 산”이었을 것이다. (마태 16:16; 17:1, 5) 이들 방문객들이 이러한 일의 진실성을 확신하게 된 것은 이러한 장소를 구경하였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 중 한 사람이 말한 바와 같이 이곳을 찾아온 결과로 “우리는 영적으로 더 부해졌”을 뿐이다.

여행자들이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함에 따라 그들은 자주 예수께서 이곳에 계시던 때를 생각하였다. 그들은 산 중턱에 세워진 고대 ‘나사렛’에서 예수께서 자란 비천한 환경을 실감하였고 이곳 회당에서 그분이 ‘이사야’ 두루마리로부터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라는 임명을 공개적으로 낭독한 일을 상기하였다. (이사야 61:1; 누가 4:16-21) 그들은 냉방시설이 있는 ‘버스’를 타고 여행하고 있었지만 예수께서 이 모든 산악지대를 도보로 여행하신 사실에 대하여 자주 이야기하였다.

덥고 건조한 기후는 그들에게 예수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사람들을 칭찬하신 말씀의 의미를 더해 주었다. (마태 10:42)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서 손님의 발을 씻어주는 이곳의 고대 접대 방법이 참으로 기분을 상쾌하게 하였을 것임을 회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예수께서는 그의 사도들에게 그러한 사랑이 깃든 봉사를 하셨던 것이다.—요한 13:3-5.

이와 대조적으로 여행자들이 ‘가버나움’에 있는 연자 맷돌로 안내되어 그것이 얼마나 무거운가를 보았을 때, 그들은 예수께서 그리스도인 형제를 넘어지게 하는 사랑이 부족한 사람을 경고하신 말씀의 강력한 힘을 느꼈다. 그 분은 이렇게 말씀하셨던 것이다. “저가 이 작은 자 중에 하나를 실족케 할찐대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이우고 바다에 던지우는 것이 나으리라.”—누가 17:2.

‘예루살렘’은 여행의 절정이었다. ‘버스’가 북쪽에서 감란산으로 횡단하고 갑자기 성벽을 두른 도시가 시야에 들어오자 감개가 무량하였다. 물론 여호와의 고대 성전이 그곳에 지금은 없다. 그 도시는 기원 70년에 ‘로마’ 군대에 의하여 완전히 멸망되었었다. 그러나 감람산에 서서 보면 아직도 고대 도시의 지리적 특성을 분별할 수 있다.

서쪽으로 ‘기드론’ 골짜기 건너편에 도시의 북쪽으로 ‘모리아’ 산이 보인다. 그곳이 아마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삭’을 바치려고 왔던 곳일 것이다. 바로 그 곳에서 여호와의 천사는 ‘다윗’에게 여호와께 제단을 만들라고 교훈하였으며 그곳에 그의 아들 ‘솔로몬’은 여호와의 영광스러운 성전을 건립하였다. 왼쪽으로, 성전 지대의 남쪽으로 ‘다윗’ 성이 한 때 ‘시온’ 산에 서 있던 곳을 볼 수 있으며 더 멀리 ‘힌놈’의 골짜기가 있다.

바로 이 감람산에 앉아서 예수께서는 그의 사도들에게, 기원 1914년 이후에 우리가 보아온 세계적 사건들, 그리스도께서 왕권을 잡으시고 보이지 않게 임재(臨在)하여 계심을 증명하는 사건들을 생생하게 설명하셨던 것이다. (마태 24:3-14) 이러한 일을 말씀하신지 단지 수일 후에 분명히 이 동일한 산 옆인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께서는 체포되셨던 것이다. 다음날 아침 부당한 유죄 선고를 받고 그는 “해골의 장소”를 의미하는 ‘골고다’라는 곳에서 형주에 달려 죽으셨다. 여행자들은 ‘예루살렘’에 머무는 동안 이 일이 발생하였다고 믿어지는 장소 곧 북쪽 ‘다메섹’ 문 밖을 구경하였는데, 이곳 절벽의 바위 형상은 사람의 해골의 모습과 흡사하다. 그 근처에서 그들은 또한 많은 사람이 예수께서 묻혔던 곳이라고 믿고 있는 굴속의 빈 무덤을 구경하였다.

이러한 사건들이 발생한 정확한 지점을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참으로 중요한 것은 그곳에서 있었던 일과 그 일이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이다. 그리고 이번에 여행한 사람들은 이러한 곳을 구경하는 것이 그들로 하여금 사건들을 상상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랫 동안 잊지 못할 기억들

여행자들이 ‘이스라엘’의 방문과 결부시키는 기억들은 많으며 다양하다. 영국에서 온 한 주부는 한 ‘아랍’인이 농담조로 그의 열 일곱살난 매력적인 딸을 낙타 다섯마리와 바꾸자고 한 일을 아마 잊지 못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집에서 친지들에게 그들이 ‘예루살렘’ 안팎의 박물관에서 구경한 것에 대하여 이야기할 기회를 가졌다. 그 곳에서 하나님의 이름은 “‘라기스’의 서한들”에 뚜렷이 표시되어 있었다. 전시된 한 무덤의 비문은 이러하였다. “여호와는 온 땅의 하나님이시다.” 또 하나의 비문은 ‘바벨론’의 포로 생활을 언급하였다. 한 주목할 만한 비문에는 예수를 형주에 못박으라는 ‘유대’인 제사장들의 아우성에 굴복한 ‘로마’ 총독 ‘본디오 빌라도’의 이름이 있었다. 그리고 성서가 우리에게 정확히 전달되었음을 증명하는 성서 여러 부분의 고대 두루마리들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은 ‘이스라엘’에 있는 동료 증인들과 만난 흐뭇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 그러한 한 경우는 ‘갈멜’ 산 경사지대의 한 식당에서였다. 예언자 ‘엘리야’ 시대에 바로 이 지점에서 참 숭배와 거짓 숭배의 차이가 생생하게 실증되었었다. 여기에서 ‘바알’과 관련된 물질주의적 숭배가 거짓으로 폭로되었고 하늘에서 초자연적인 불이 나타나 보는 사람들은 감동을 받고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하고 시인하였다. (열왕 상 18:19-40) 방문객들은 ‘갈멜’ 산에서 점심 식사를 하는 동안 사람들을 물질주의에서 돌이켜 참 하나님의 숭배로 인도하는 현대 여호와의 증인의 사업에 대한 마음을 뜨겁게 하는 경험담을 들었다.

이 지방 증인들을 만난 다른 기회도 있었다. 특별히 고무적인 한 경우는 ‘스칸디나비아’의 여행자들이 ‘가이사랴’의 고대 ‘로마’ 극장에서 두개의 지방 회중과 만난 경우였다. 부분적으로 복구된 그 건축물의 훌륭한 음향 시설은 모두가 안락하게 들을 수 있게 해 주었고, 고대의 벽들은 여호와를 찬양하는 노래로 울리게 되었다.

사도 ‘바울’이 전파한 곳

사도 ‘바울’이 그의 선교 여행 중 ‘가이사랴’를 통과한 것은 한 번뿐이 아니었다. 그가 “좋은 소식”을 가지고 여행한 곳 가운데는 ‘구브로’(‘사이프러스’), 희랍, ‘로마’가 포함되어 있다. 작년에 성서의 땅을 찾은 많은 여행자들은 이러한 곳도 방문하였다.

‘사이프러스’에서 그들은 ‘바울’과 ‘바나바’가 ‘로마’ 총독에게 전파한 곳인 ‘바보’를 구경하였다. 그리고 그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여호와의 의로운 길을 굽게 하려던 박수 ‘엘루마’의 반대를 받은 것과 같이, 오늘날도 그리스도교국의 교직자들은 그들의 사업에 대하여 잘못 전달함으로써 여호와의 백성들에 대한 증오심을 불러일으키려고 계속 노력하고 있음을 방문객들은 관찰하였다. (사도 13:6-12) 교직자들은 이 섬에서 자주 일어난 폭력 사건에 깊이 가담해 왔지만 그들은 여호와의 증인의 평화로운 대회장 근처 도로에 “천년기파[그들이 증인을 칭하는 말]는 나라의 적”이라고 비난하는 표지판을 내걸어 놓았다. 그러나 대회장을 방문한 사람들은 평화를 사랑하는 이들로부터 아무런 위험도 없다는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여행자들이 희랍으로 여행함에 따라 성서 사도행전의 더 많은 기록들이 되살아났다. ‘아덴’에서 그들은, ‘바울’이 이교 성전들이 있는 우뚝솟은 ‘아크로폴리스’ 성채의 전경을 바라보며 전파한 곳인 ‘아레오바고’로 올라갔다. (사도 17:19, 22) 그들은 고대 ‘고린도’의 폐허에서 ‘유대’인 반대자들이 총독 ‘갈리오’ 앞에서 심문하고자 ‘바울’을 데리고 온 ‘재판 자리’인 ‘베마’ 앞에 서 보았다. (사도 18:12) 그리고 그들은 ‘아볼로’ 숭배의 고대 중심지인 ‘델비’를 방문하였는데, 이곳에서 발견된 한 비문은 ‘갈리오’의 총독 직책을 언급하고 ‘바울’이 그 앞에 나타난 일자를 알아 내는 데 사용되어 온 더 많은 지식을 제공하여 주고 있다.

그들은 ‘로마’에서 기원 70년의 ‘예루살렘’의 멸망을 증언하는 ‘티투스’의 홍예문을 구경하였다. 그러나 이 멸망시에 그리스도인들은 생명을 보존하였다. 왜냐 하면, 그들은 예수의 경고를 청종하여 ‘로마’ 군대가 기원 66년에 그들의 포위망을 풀었을 때 ‘예루살렘’에서 나왔기 때문이었다. 그 역사적인 홍예문 가까이에 예수를 믿기를 거절하였기 때문에 ‘예루살렘’이 황폐될 때 ‘로마’에 노예로 이끌려 온 ‘유대’인들이 건축한 원형 경기장이 있다.

이보다 앞서, 바로 그곳 ‘로마’에서 ‘바울’은 성서의 영감받은 책 여섯 권을 기록하였다. 그 도시에는 그리스도인 회중도 하나 있었다. 그리고 작년에 ‘로마’를 찾아간 여행자들은 참 그리스도교에 대한 관심이 오늘날 매우 크다는 증거로 8월에 그 곳에서 열린 “하나님의 승리” 국제 대회에 55,000여명이 참석하는 것을 보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성서의 땅을 여행하는 것은 수확이 많은 경험이었다. 영국의 한 여행자가 표현한 바와 같다. “매우 선명하게 우리의 눈은 열려졌으며 성서에 언급된 지명들이 살아있게 되었읍니다. 그리고 나는 금후로 우리가 그 나라의 지리에 대한 정신적 영상을 가지고 성서를 읽을 수 있을 것임을 확신합니다. 앞으로 그 영상은 단순한 흑백으로가 아니라 총천연색으로 그리고 입체로 보일 것입니다.”

[285면 삽화]

예수께서 여러 가지 기적을 행하신 ‘갈릴리’ 바다를 건너며

[286면 삽화]

감람산에서 본 현대 ‘예루살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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