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난하는 자들에게는 적극적 연합이 필요하다
1. 「계시록」에는 무슨 두 상징적 여인이 언급되어 있으며, 그들의 정체는 무엇입니까?
성서의 마지막 책을 보면, 두 상징적 여자가 서로 대조를 이루고 있읍니다. 그 하나는 큰 ‘바벨론’이요,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어린 양의 “아내”입니다. 첫째 여자는 “음녀”로 낙인 찍혀 있읍니다. 둘째 여자는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로서 처녀입니다. (계시 17:3-6, 15; 21:9) 둘 다 종교 조직인데 하나는 부정한 조직이고 다른 하나는 깨끗한 조직입니다.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는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처녀와 같은 충실한 추종자들인 144,000명으로 이루어진 회중이며 그들 모두는 영적 ‘이스라엘’인들입니다. 큰 ‘바벨론’은 고대 ‘바벨론’으로부터 나온 거짓 종교 세계 제국입니다. 따라서 이것은 참 그리스도교에 반대되는 종교를 행하는 모든 자들로 이루어져 있읍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도 ‘요한’은 “이 여자가 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증인들의 피에 취”하였음을 보았읍니다. (계시 17:6) 그러므로 큰 ‘바벨론’을 이루는 종교들은 그리스도교가 아니며, ‘바벨론’적이고 그러므로 거짓입니다.
2. 그리스도교국과 큰 ‘바벨론’ 사이의 관계는 무엇이며, 이 점은 어떻게 뚜렷이 나타납니까?
2 그리스도교국은 ‘로마’ 세계 강국의 탁월한 종교 조직이 됨으로써 사실상 큰 ‘바벨론’의 딸이 되었읍니다. 그에 관하여 이러한 기록이 있읍니다. “그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하였더라.” (계시 17:5) 그러므로 그리스도교국이 그 종교적 어미를 모방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그 어미에 관한 기록은 이러합니다. “땅의 임금들도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고 땅에 거하는 자들도 그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다.” (계시 17:1, 2) 그리스도교국은 세상과 친밀한 벗 관계를 즐기고 있읍니다. 이 사실은 야고보 4:4의 내용을 생각나게 합니다.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되게 하는 것이니라.” 그리스도교국에서 볼 수 있는 교회와 국가간의 많은 연합은 그리스도교국에게 영예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연합은 그리스도교국을 영적 음녀, 세상 정치에 참여하는 자로 낙인을 찍습니다. 그리스도교국은 인류를 위한 거짓되고 부정한 피난처로 단죄됩니다.
3. 그리스도교국을 포함하여 큰 ‘바벨론’의 운명은 어떻게 분명히 묘사되어 있읍니까?
3 큰 ‘바벨론’에게 일어날 일은 또한 그리스도교국에게도 일어납니다. 두가지 길이 있지 않습니다. 계시록 17장은 상징적 언어로 기록되었지만 오해의 여지없이 명백합니다. 그 장에 묘사되어 있는 ‘드라마’의 최절정에 이르러 우리는 이러한 내용을 보게 됩니다. “네가 본바 이 열뿔과 짐승[큰 ‘바벨론’이 음녀로서 그 등에 타고 있음]이 음녀를 미워하여 망하게 하고 벌거벗게 하고 그 살을 먹고 불로 아주 사르리라.” 그리 아름다운 양상이 아닙니다.—계시 17:16.
큰 ‘바벨론’으로부터 하나님의 참 여자에게로 도망하라
4. (ㄱ) 계시록 18:4-8에서 ‘요한’은 무슨 강력한 외침을 들었으며, 그것은 왜 긴급한 것이었읍니까? (ㄴ) 이 외침에 대해 일부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지도 모르며, 그러나 오늘날 우리 모두는 무슨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읍니까?
4 계시록 18장 첫 부분에서 우리가 다음과 같은 긴급하고도 긴요한 외침을 듣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 하루 동안에 그 재앙들이 이르리니 곧 사망과 애통과 흉년이라. 그가 또한 불에 살라지리니 그를 심판하시는 주[여호와] 하나님은 강하신 자이심이니라.” (계시 18:4-8) 당신은 이러한 외침을 듣고 순응하였읍니까? 아마 당신은 그리스도교국의 교회들의 위선을 보아 왔으며, 자신이 과거에 교회 성원이었다면, 그러한 교회를 떠났다고 말할지 모릅니다. 현 세대에는 전혀 종교적 배경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그러면서도 하나님이 계실 것으로 믿는다고 애매하게 말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읍니다. 당신은 단순히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으로 만족을 느낍니까? 만일 당신이 그와 같이 소극적이고 애매한 태도를 가진다면 참으로 안전한 피난처에 있다거나 그러한 피난처를 찾고 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교국을 포함한 현 사물의 제도의 끝이 다가오고 있다는 모든 증거로 볼 때 ‘우리는 이 다가오는 절정의 날에 누구의 편에 서 있는가?’ 하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읍니다.
5. 144,000명에 대한 환상 후에 ‘요한’은 무슨 무리의 사람들을 보았으며, 무엇이라고 설명하였읍니까?
5 아마 당신은 앞서 논한 바와 같이 하늘의 희망을 가진 사람들로 이루어진 “천국” 반열에 자신이 속하지 않았다고 말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은 당신이 하나님의 은총을 받을 수 없다거나 하나님의 날개 아래로 피난할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시 91:4) 계시록 7:4-8에서 영적 ‘이스라엘’의 144,000명에 관하여 기술한 다음에 우리는 이러한 말을 읽게 됩니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더라].” 그 다음에 이들의 신분을 이렇게 더 밝혀 줍니다.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 얼마나 환영할 만한 양상입니까!—계시 7:9-17.
6. (ㄱ) 예수께서는 이 사람들에 관하여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읍니까? (ㄴ) 그분은 어떤 면으로 이 점을 매우 개인적인 것으로 설명하셨으며, 무슨 훌륭한 확증을 주셨읍니까?
6 이 “큰 무리”를 이루고 있는 사람들이 누구인가를 더욱 나타내고, 당신도 그들 중에 들어오도록 초대하기 위해, 우리는 예수께서 양으로 비유하신 추종자들에 관하여 하신 말씀을 상기시키고자 합니다. 예수께서는 자기 보좌에 함께 참여할 자들에 관하여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왕국]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고 말씀하셨읍니다. (누가 12:32) 그렇습니다. “적은 무리”입니다. 그러나 또 다른 때에 자기의 “양들”에 관하여, 그리고 ‘양들을 위하여 영혼을 바치는’ “선한 목자”이신 자신에 관하여, 더 자세히 설명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터이니 저희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또한 그분은 이 점을 매우 개인적인 것으로 말씀하셨읍니다. 조금 전에 그분은 “그[목자]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고 말씀하셨읍니다. 이 말은 만일 당신이 자신을 부인하고 계속 그분을 따름으로써 그분의 참 양이 된다면 그분은 당신 개인을 아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또한 아주 개인적인 면을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읍니다. “내 양은 [다른 어떠한 음성이 아니라]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개인적으로]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얼마나 안전한 피난의 웅대한 확장입니까?—요한 10:3, 16, 27-29, 또한 마태 16:24 참조.
7. ‘베드로’는 “거짓 선생들”에 관하여 무엇이라고 경고하였읍니까?
7 ‘우리가 누구의 편에 서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돌아가서, 이 점에 관한 영감받은 사도 ‘베드로’의 말을 고려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는 둘째 편지 뒷부분에 가서 이렇게 경고하였읍니다.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저희는 멸망케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 그는 이러한 거짓 그리스도인들을 염두에 두고 나중에 이렇게 기록하였읍니다.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여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리라].”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교국의 교직자들과 그들의 추종자들의 일반적인 태도가 아닙니까? 당신의 태도는 그렇지 않으리라고 믿습니다.—베드로 후 2:1, 2; 3:3, 4.
8. ‘베드로’는 계속하여 특히 우리 시대를 위해 어떻게 경고하였습니까?
8 우리 모두의 진실한 태도는 그 사도의 계속되는 교훈과 일치할 것으로 우리는 믿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이전 하늘과 땅, 곧 이전 사물의 제도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다고 말한 다음에 그는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그 다음, 그는 하나님께서 더디신 것 같이 보인다고 하여 오늘날 많은 사람들처럼 성급해지지 말 것을 경고하였읍니다. “주[여호와]의 약속은 어떤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그 이유는 이것입니다]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는, 현재 ‘사단’의 보이지 않는 지배를 받고 있는 상징적 하늘과 땅이 멸망될 ‘여호와의 날이 도적같이 올’ 것을 다시 경고하였읍니다.—베드로 후 3:5-10.
9. 하나님의 참으심에 대해 올바른 견해를 가지는 것이 왜 중요합니까?
9 다음에 이러한 교훈이 계속됩니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여호와의 날의 임재를, 신세]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베드로 후 3:11, 12) 오늘날의 조소자들은 하나님의 참으심으로부터 유익을 얻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이것을 인식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회개할 것을 바라시고 매우 친절을 베풀어 오셨읍니다. 사도 ‘바울’이 이렇게 기록한 바와 같습니다.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케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느뇨?” (로마 2:4) 하나님의 친절하심을 멸시한다면 우리에게 화가 있을 것입니다!
10. 무슨 기초 위에,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우리는 베드로 후서 3:14의 호소에 순응할 수 있읍니까?
10 그러나 적극적인 면으로, 우리는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라는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하며, 우리가 ‘여호와의 날의 임재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한다는 것을 어떻게 나타낼 수 있읍니까? 한 가지는, 우리의 생명의 희망이 천적인 것이든 지적인 것이든, 우리 모두가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고 말한 ‘베드로’의 계속되는 호소에 순응하는 것입니다. (베드로 후 3:12, 14) 그렇습니다. 우리는 항상 도덕적으로 썩지 않으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우리는 성실을 유지해야 하며, 여호와께 온 영혼을 다한 헌신으로 “마음이 청결”해야 합니다. (마태 5:8) 우리는 모두 불완전하고 매일 잘못을 저지르지만, 성서의 다음 편지인 요한 1서 1:7에 언급된 바와 같이, “저[하나님]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그리스도인 회중, “적은 무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다른 양”의 “큰 무리” 안으로 들어오든지 간에 그들은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될 수 있으며 또한 그렇게 해야 합니다.—요한 1서 2:2; 계시록 7:14.
11. 계시록 18:4에서는 거짓 종교를 버리는 것만이 아니라 어떻게 할 것을 나타냈읍니까?
11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당신은 서로 예리한 대조를 이루는 두 상징적 여자를 기억합니까? 한 여자는 그리스도교국을 포함한 큰 ‘바벨론’인 음녀요, 다른 여자는 그리스도인 회중, 곧 어린 양의 아내인 처녀입니다. 큰 ‘바벨론’에서 나와 모든 거짓 종교를 버리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계시록 18:4에서 누구에게 ‘거기서 나오라’고 말하였읍니까? 그들은 “내 백성”이었읍니다. 이것은 당신이 하나님의 백성, 그분의 헌신한 종 혹은 노예이며, 선한 목자 예수 그리스도의 추종자 곧 그의 “양”임을 확실히 나타내야 함을 의미합니다. 이에 관한 더 자세한 지식을 얻기 위하여, 우리는 「히브리어 성경」으로 그리고 계시록 18:4의 명령 뿐만 아니라 성서 마지막 책의 많은 내용의 근거가 되는 예언들로 가보아야 합니다.
12. (ㄱ) ‘이사야’의 예언에서는 여호와의 천적 조직에 관하여 무엇이라고 하였읍니까? (ㄴ) 그리스도 예수는 이 조직과 관련하여 어떤 역할을 하였읍니까?
12 ‘이사야’의 예언에 의하면, 여호와의 메시야 종인 그리스도 예수는 지상에서 그의 역할을 수행하시기 전에 ‘하나님의 충실한 아들들’로 이루어진 여호와의 천적 조직의 한 성원이었읍니다. (욥 1:6; 2:1; 38:7) 이 천적 영의 조직은 창조주 여호와와 결혼한 “아내”의 역할을 합니다. 마치 고대 ‘이스라엘’ 나라가 율법 언약에 들어왔을 때에 여호와와 결혼한 지적 아내로 상징된 바와 같습니다. (이사야 54:1, 5-8) 여호와께서는 지상의 메시야 종으로 일하도록 그의 천적 맏아들을 선택하셨읍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어머니 같은 여호와의 조직이 그 아들을 산출하여 남편의 우주 주권의 주요 입증자가 되게 하였읍니다. 이 종이 지상에서 일을 충실히 성취한 후 죽은 자로부터 부활되셨을 때 하늘에 있는 어머니 같은 조직은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분으로 그를 받아 들였읍니다. (골로새 1:18; 계시 1:5, 17, 18.) 그 여인의 기쁨이 이사야 54:1에 이와 같이 예언되어 있읍니다. 들어 보십시오. “잉태치 못하며 생산치 못한 너는 노래할찌어다. 구로치 못한 너는 외쳐 노래할찌어다. 홀로 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음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13. (ㄱ) ‘바울’은 이사야 54:1을 어떻게 그리고 누구에게 적용하였읍니까? (ㄴ) 이와 일치하게 예수께서는 이사야 54:13을 어떻게 적용하셨읍니까?
13 사도 ‘바울’은 이 성귀를 ‘바벨론’의 포로 생활에서 돌아온 ‘유대’ 나라에 적용하지 않고 하늘에 있는 여호와의 아내 같은 조직에게 적용합니다. 갈라디아 4:22-5:1에서 ‘바울’은 수도를 ‘예루살렘’에 두었던 나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한 ‘유대’ 나라를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아내 같은 조직과 대조하여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고 말합니다. ‘이사야’의 예언에 의하면, 하나님의 천적 조직은 메시야 예수 외에도 많은 자녀를 갖게 되어 있었읍니다. 그러나 잉태치 못하는 여인과 같이 그들을 오랫 동안 기다렸던 것입니다. 그 여자는 메시야 예수의 보조자들인 144,000명의 영적 어머니가 될 것이었읍니다. 이 사실이 “위에 있는 ‘예루살렘’”, “하늘의 ‘예루살렘’” 혹은 “‘시온’ 산”에게 말한 이사야 54:13에 명백히 나타나 있읍니다. 그 내용은 이러합니다. “네 모든 자녀는 여호와의 교훈을 받을 것이니 네 자녀는 크게 평강할 것이[라].” 이렇게 이해하는 것이 올바르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성귀를 요한 6:45에서 자기 제자들에게 적용시키신 사실로 증명됩니다.—히브리 12:22.
14. 하나님의 조직은 지상에서 무엇으로 대표되어 있으며, 따라서 어떻게 적극적으로 연합해야 합니까?
14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내 같은 천적 조직은 지상에서 그리스도 예수의 제자들 곧 잘 교육되고 잘 훈련된 보조자들로 대표되었다고 말할 수 있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큰 ‘바벨론’인 부정한 음녀로부터 도망할뿐 아니라 지상에서 어린 양 그리스도 예수의 처녀 같은 추종자들로 대표된 “하늘의 ‘예루살렘’” 곧 하나님의 참 여자와 밀접히 교제함으로써 그곳으로 피신해야 합니다. 이것은 오늘날 여호와의 증인으로 알려진 그리스도인 단체 안에서 그 상황을 분명히 보게 됩니다. 그들 가운데는 하나님의 영으로 기름부음을 받아 하늘의 희망을 갖게 된 자들의 남은 자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읍니다. 이 주축을 향해 “다른 양”의 “큰 무리”가 계속 모여들어 ‘한 목자 아래 한 무리’를 이루고 있읍니다.—요한 10:16.
15. 여호와의 증인 그들은 여호와의 날을 “바라보고” 있음을 어떻게 나타내고 있읍니까?
15 이것은 결코 헛된 주장이 아닙니다. 이들은 참으로 ‘여호와의 날의 임재를 바라보고 사모’하고 있읍니다. 모든 압력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 부정한 세상으로부터 점이 없이 처신함으로써 ‘깨끗한 종교와 더럽혀지지 않음’을 고수하고 있읍니다. 이들은 정치적 “짐승”이나 사람이 만든 그 “우상”인 국제 연합을 숭배하기를 거절합니다. 그들은 피흘리는 죄에 참여하지 않으며, 나라들의 잔인 무도한 전쟁이나 이 세상 정당에 참여하는 일이 없이 엄정 중립을 지킵니다. 그들은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음으로써 그들의 지도자 예수 그리스도의 본을 따르고 있읍니다.—야고보 1:27; 계시 13:1-15; 15:2-4; 요한 15:19; 17:14, 16.
16. 그들은 마태복음 24:14와 마태복음 28:18-20에 있는 두 명령을 어떻게 수행하고 있으며, 여호와께서 축복하신다는 무슨 증거가 있읍니까?
16 그들은 적극적인 면에 역점을 두어 인간의 유일한 희망과 피난처를 끊임없이 선포함으로써 “먼저 [천적 아버지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고 있음을 증명합니다. 예수께서 이렇게 예언하신 바와 같습니다. “이 왕국의 좋은 소식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사람이 거주하는 온 땅에 전파될 것입니다.” 그들은 또한 아직 시간이 있는 동안 부활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 즉 가서 모든 민족의 사람들로 제자를 삼아 그들에게 물의 침례를 베풀고 예수께서 명령하신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명령을 꾸준히 수행하고 있읍니다. (마태 6:33; 24:14, 신세; 28:18-20) 이 모든 일에 여호와의 축복이 있음을 볼 수 있읍니다. 여호와의 조직 안으로 들어오는 무리가 참으로 놀랍게 증가하는 점에서 뿐 아니라 전세계에 여호와의 헌신한 백성 가운데 평화스럽고 행복하고 안전하고 깨끗한 상태가 존재하는 점에서도 볼 수 있읍니다. 그것은 참으로 영적 낙원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이 성경적 초대를 듣고 순응해서 이 영적 낙원으로 와서 피난하도록 하십시오.
영적 낙원으로의 초대
17. 이사야 54:17과 이사야 55:1, 2에 무슨 약속과 초대가 있으며, 어떻게 소규모적으로 성취되었읍니까?
17 이사야 54장 끝에는 “위에 있는 ‘예루살렘’”의 영적 아들들에 대한 웅대한 약속이 있읍니다. “무릇 너를 치려고 제조된 기계가 날카롭지 못할 것이라. 무릇 일어나 너를 대적하여 송사하는 혀는 네게 정죄를 당하리[라].” (이사야 54:17) 그리고 나서 가슴을 설레게 하는 초대가 있읍니다.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너희가 ···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이사야 55:1, 2) ‘예루살렘’과 ‘유다’가 황폐될 것과 70년간 ‘유대’인들이 ‘바벨론’에 사로 잡혀 있을 것에 대한 ‘이사야’의 예언을 상기한다면 이 상태의 실마리를 알게 됩니다. ‘이사야’는 또한 그들의 해방이 ‘바사’의 ‘고레스’를 통하여 올 것을 예언하였으며, 이 ‘고레스’는 큰 ‘바벨론’을 무너뜨리고 멸망시킬 하나님의 메시야 종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예언적 모형으로 사용되었읍니다. (이사야 44:28-45:6) 그러나 오늘날은 어떠합니까?
18. 1914년부터 1919년까지의 여호와의 증인들의 경험은 위에 인용한 성귀들을 어떻게 성취하게 하였읍니까?
18 제1차 세계 대전 중에 큰 ‘바벨론’은 그의 세상적 애인인 정치, 군사 및 사법적 권세를 이용하여 여호와의 증인들을 그의 손아귀에 넣었읍니다. 그때 박해와 금지령이 심하였으며, 여호와의 증인의 통치체의 성원들을 투옥시킴으로써 그 절정에 다다랐읍니다. 전망은 암담했읍니다. 그러자 벼란간 그들 앞에 예기치 않았던 전후 기간이 열렸읍니다. 여호와로부터 구출의 소식이 나왔읍니다. 설립된 메시야 왕국에 의해 큰 ‘바벨론’으로부터 구출한다는 성경적 소식이었읍니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증거는 위에서 언급한 성원들이 감옥에서 석방되고 그들이 모든 거짓 고발로부터 완전히 결백하게 된 점에 볼 수 있읍니다. 1919년 바로 그해에 「파수대」지에는 “두려움이 없는 자는 복되다”라는 주요 기사가 실렸읍니다. 이것은 1919년 9월 1일부터 8일에 ‘오하이오’ 주(미국) ‘시다포인트’에서 열린 대회의 주제였읍니다. 이 대회에서 앞으로 더 많은 영적 양식과 더 큰 일이 있다는 징조로서 새로운 격 주간지 「황금시대」의 창간이 발표되었읍니다. 당신이 상상할 수 있는 바와 같이, 이 모든 일들은 하나님의 참다운 종들에게 있어서 시원한 물, 힘을 주는 양식, 즐거움을 주는 포도주 및 기름진 젖과 같았읍니다.
19. 영적 낙원의 회복을 향하여 그 후 어떠한 진전이 있었읍니까?
19 이것은 시작 곧 하나님의 백성에게 영적 낙원이 회복되는 첫 단계에 불과하였읍니다. 그때부터 여호와의 증인의 현대 역사가 알려 주는 바와 같이 놀라운 전진이 시작되었읍니다. 이러한 역사적 기록은 누구나 볼 수 있고 살필 수 있읍니다. 더우기 일보 일보 전진하는 것이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성서의 저자의 인도하에 이루어졌음을 볼 수 있읍니다.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 너희는 기쁨으로 나아가며 평안히 인도함을 받을 것이요 ··· 들의 모든 나무가 손바닥을 칠 것이며 잣나무는 가시나무를 대신하여 나며, 화석류는 질려를 대신하여 날 것이라. 이것이 여호와의 명예가 되며 영영한 표징이 되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이사야 55:10-13.
20. 시편 1:1-3에는 이 낙원에 참여하라는 초대가 어떻게 표현되어 있읍니까?
20 영적 낙원에 대한 얼마나 웅대하고도 환영할 만한 묘사입니까!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밀접히 고착한다면 당신도 개인적으로 이 낙원에 참여하도록 초대를 받고 있읍니다. 시편 1:1-3에 있는 말씀과 같습니다. “복이 있는 사람은 ···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그러한 사람은 어떻게 됩니까?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21, 22. (ㄱ) 마태복음 25:34과 계시록 22:17-20은 이 초대를 어떻게 더욱 확대시키고 있읍니까? (ㄴ) 이 초대에 응하여 우리는 어떠한 개인적이고 적극적인 행동을 취할 수 있읍니까?
21 이 영적 낙원으로 들어가는 길은 아직도 열려 있읍니다. 들어와서 그것을 즐기라는 초대는 아직도 세계적으로 울려퍼지고 있읍니다! 예수의 비유 가운데서 왕이 이렇게 말한 바와 같습니다. “내 아버지께 복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마태 25:34) 사실상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이와 같은 초대의 말로 끝을 맺습니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 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요한’은 환상에서 마지막 말씀으로 그리스도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읍니다.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그때 ‘요한’은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고 열렬한 반응을 보였읍니다.—계시 22:17-20.
22 썩지 않는 “천국” 아래로 피난하십시오. 이와 같이 여러 차례, 간절히 표현한 초대에 당신은 열렬히 응하지 않겠읍니까? 당신은 오지 않겠읍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