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치타워 온라인 라이브러리
워치타워
온라인 라이브러리
한국어
  • 성경
  • 출판물
  • 집회
  • 파77 4/15 189-192면
  • 히브리서: 더 나은 숭배와 그 요구 조건

관련 동영상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동영상을 불러오지 못했습니다.

  • 히브리서: 더 나은 숭배와 그 요구 조건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77
  • 소제목
  • 비슷한 자료
  • 그리스도인 제도의 우월성
  • 격려, 권고, 경고
  • 성서 제58권—히브리서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것으로 유익하다’
  • 히브리서 소개
    신세계역 성경 (연구용)
  • 인내하도록 다른 사람을 격려함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73
  • 히브리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
    성경 통찰, 제2권
더 보기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77
파77 4/15 189-192면

히브리서: 더 나은 숭배와 그 요구 조건

기껏해야 옛 숭배 방식을 설명하고 있는 오래 된 서신이 무슨 가치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 모른다. 그렇다. 1,900여년 전에 기록된 편지가 오늘날 당신에게 어떤 유익을 줄 수 있는가? 이제 살펴 보겠지만, 분명히 성서 「히브리서」로부터 우리 모두 큰 유익을 얻을 수 있다.

여호와의 증인들(1931년 이전에는 성경 연구생으로 알려져 있었음)은 「히브리서」를 항상 높이 평가해 왔다. 여러 해 전에 어떤 외부 인사들은 「히브리서」에서 인용하는 것이 성경 연구생의 특징이라고 생각하였다. 성경 연구생들은 1881년에 발행된 아주 기본적인 성서 연구 보조서인 「그림자인 성막」을 40여년에 걸쳐 널리 사용해 왔는데, 그 책은 ‘이스라엘’에서 행해진 숭배의 모든 양상을 「히브리서」를 중심으로 다루고 있다. 이러한 말을 읽을 수 있다. ‘그 책에서 “하나님의 경륜”이 처음으로 명확히 제시되었다. 즉 144,000명은 하늘에서 살게 되고 회복된 인류를 위해서는 지상 낙원이 마련되어 있다는 점이다.’—1909년 7월 15일호 「파수대」(영문) 216면.

누가 그 중요하고도 계몽을 주는 「히브리서」를 썼는가? 사도 ‘바울’이 필자라고 믿을 만한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한 가지는 「히브리서」의 내용이 ‘바울’ 특유의 방식에 따라 논리적으로 전개되어 있다. 「히브리서」를 보면 그 필자는 「히브리어 성서」를 아주 잘 알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바울’은 확실히 그러한 사람이었다. 어휘, 문체, 비유 등을 보더라도 ‘바울’이 필자인 것 같다. 그 필자가 ‘디모데’를 잘 알고 있었고 그와 함께 여행하려고 한 것이나 ‘이탈리아’에서 기록했다는 사실 등을 보아도 그렇다.

더우기 희랍이나 ‘아시아’의 그리스도인들은 처음부터 ‘바울’을 「히브리서」의 필자로 생각하였다. 가장 결정적인 증거들 중 하나는 1931년에 발견된 ‘체스터 비이티 파피루스’ 제 2호(P46)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사본의 일부로서 86장으로 되어 있는데, 맨 앞에 「로마서」가 나오고 그 다음에 「히브리서」가 있고 그 외에도, ‘바울’의 서한이 일곱개가 더 들어 있다. 그 사실은 통용 기원 200년경에 「히브리서」가 ‘바울’의 편지로 받아 들여졌음을 알리는 것이다.

사도들이 사망한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많은 성서 학자들이 그에 대해 이의를 제기해 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이 제시한 이론은 어느 것이나 충분히 논파할 수 있는 것들이다. 「히브리서」에 나오는 어떤 단어들은 ‘바울’이 보통 사용하는 어휘와 다르다는 점을 흔히 지적한다. 그러나 그 편지의 목적이나 자신이 알려지는 것을 꺼려하였을 것임을 감안할 때 그가 어느 정도 색다른 단어들을 사용한 이유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역시 그러한 점 때문에 다른 편지들에서보다 더 우아한 희랍어를 사용하였을 것이다. 그 서두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는 사실상 서한이라기보다 차라리 하나의 논문을 작성하고 있었다.

‘바울’이 쓴 다른 13개의 서한에는 그의 이름이 자주 언급되어 있는데 「히브리서」에는 단 한번도 그의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고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있다. 그가 이름을 밝히지 않으려고 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유대’인들이 자기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있었고, 자신이 이방인의 사도로 알려졌기 때문일 것이다. ‘바울’이 이방인의 사도로 보내졌지만 ‘아나니아’는 ‘바울’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도 전파할 것이란 말을 들었다.—사도 9:15.

‘바울’이 그러한 서한을 보냈다는 것은 그가 동족인 ‘유대’인들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에도 부합된다. 그는 그들의 불신 때문에 심히 고민하였다. (로마 9:1-5; 10:1-4) 또한 그는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의 구제를 위해 많은 수고를 했다. (고린도 후 8, 9장) 그러므로 이들 그리스도인이 된 ‘유대’인들이 당하는 박해와 종교적인 압력을 염두에 두고 그들에게 권고와 훈계와 계몽적인 해설과 격려 및 엄한 경고 등으로 가득 찬 그런 서신을 보낼 만한 사람을 든다면 ‘바울’이 가장 유력하다.

“히브리서”라고 하는 이 논문 혹은 서한의 명칭을 ‘바울’ 자신이 붙였다고 분명히 말할 수는 없지만 그러한 이름은 아주 적절하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은 육적 ‘유대’인들이었기 때문에 ‘바울’이 그리스도인 새 사물의 제도가 옛 제도보다 우월함을 알리려고 제시한 논점을 온전히 인식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어디에 있는 ‘히브리’인들에게 편지하였는가? ‘로마’ 제국 전역에 흩어져 있는 ‘히브리’인들에게였는가? 물론 그러한 ‘히브리’인 모두가 그 편지로부터 유익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결론 부분을 고려해 볼 때 그 편지는 특정 지역에 사는 ‘히브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내진 것 같다. 그러기 때문에 ‘바울’은 자기가 ‘더 속히 너희에게 돌아가’고자 하는 점에 대해 언급하였고, “‘디모데’가 놓인 것을 ··· 알라. 그가 속히 오면 내가 저와 함께 가서 너희를 보리라”고 말하였다. (히브리 13:19, 23) 그 지역은 ‘예루살렘’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바울’은 언제 그 편지를 썼는가? 그 서신의 내용에 의하면 성전 숭배가 아직도 행해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 틀림없이 그 편지는 성전이 파괴되었던 통용 기원 70년 이전에 기록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바울’이 감옥에서 석방을 기다리고 있거나 갓 석방되었을 때이기 때문에 통용 기원 61년이라고 보는 것이 가장 타당할 것 같다. 그 편지를 쓴 곳은 어디인가? 자기와 함께 ‘이탈리아’에 있는 사람들의 안부를 전한 것을 보면 틀림없이 ‘이탈리아’—분명히 ‘로마’—에서 그 편지를 썼을 것이다.

그리스도인 제도의 우월성

유대교의 가르침에 의하면 약속된 ‘메시야’는 ‘아브라함’이나 ‘모세’ 심지어 천사들보다도 더 우월하다. ‘바울’은 그리스도인 제도의 우월성을 알리기 위해 사실이 그러함을 명백히 설명하고 있다. ‘바울’은 그 편지의 서두에서 여호와께서 과거에는 예언자들을 통해서 자기의 백성에게 말씀하셨으나 이제는 훨씬 더 우월한 대변자이며, 자신이 그를 통해 모든 것을 창조하신 바 있는 바로 그 아들을 사용하여 말씀하신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자, 하나님의 아들은 천사들보다 더 탁월한 이름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그들보다 더 우월하다. 그분의 지위는 훨씬 더 높다. 천사들은 그분에게 경의를 표하라는 명령을 받고 있다. 또한 그분은 아들이지만 천사들은 종에 불과하다.—히브리 1:1-14.

그리스도인의 새로운 숭배 제도는 제사장에 있어서도 더 우월하다. 율법 아래 있었던 대제사장들은 백성들뿐만 아니라 자신들을 위해서도 매일 매년 희생을 드리지 않으면 안되었다. 대제사장 예수는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기 때문에 자신을 위해서는 희생을 드릴 필요가 없고 나머지 인류를 위해서만 희생을 드리면 되었다. 그리고 그분은 완전한 희생물이기 때문에 단 한번의 희생으로 족하였다. 율법 아래 있던 대제사장들은 소나 염소의 피를 가지고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갔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모든 인류의 죄를 사하기 위하여 자기 피를 가지고 하늘로 들어 가셨다.—히브리 4:14, 15; 5:5, 10; 7:26-28; 8:1-3; 9:7-12, 25-28.

더우기 율법 아래 있던 대제사장들은 죽었고 후계자가 있었으나 예수께서는 부활시에 불멸성을 받으셨기 때문에 더 이상 죽지도 않고 후계자도 필요없다. 그분은 또한 대제사장이실 뿐 아니라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왕 겸 제사장이시다. ‘멜기세덱’의 제사직이 ‘아론’의 제사직보다 더 우월하다는 점은 ‘아브라함’이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다는 점에서 잘 알 수 있다. ‘아론’은 ‘아브라함’의 허리에 있었기 때문에 ‘아론’도 그렇게 하였다고 할 수 있다. 우월한 대제사장이지만 그분은 시험을 치르셨고 그 결과 이제 비슷한 시험을 당하는 추종자들을 도울 수 있게 되었다.—히브리 7:1-24; 2:17, 18.

그분과 더불어 그리스도인 사물의 제도는 희생에 있어서도 더 우월하다. 소와 염소의 피는 죄를 결코 제거할 수 없지만 그리스도의 피는 그렇게 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하기 때문이다. 완전한 하나님의 아들은 불완전한 ‘모세’라는 종보다 우월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인 사물의 제도는 중보에 있어서도 우월하다. 예수께서는 더 좋은 언약의 중보이시며 그 언약은 구 언약이 산출하지 못한 “제사장 나라”를 산출하는 목적을 성취시킨다. (출애굽 19:5, 6) 그리스도인 제도의 법은 돌판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판에 새겨져 있다. 구 제도에는 여러 가지 형태의 안식일이 있었으나 그 제도 아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지 못했다. 그러나 새 제도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믿음과 순종을 통해서 들어갈 수 있는 안식을 제공한다. 참으로 그리스도인 사물의 제도는 구 제도보다 훨씬 더 우월하다.—히브리 10:1-20; 4:1-11.

격려, 권고, 경고

‘바울’이 쓴 「히브리서」에는 많은 격려와 권고와 배도에 대한 엄한 경고도 함께 들어 있다. 오늘날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바울’ 시대의 ‘히브리’ 그리스도인들과 마찬가지로 그 논문을 통해서 믿음이 강화될 수 있고 반대에 더 잘 대처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출 수 있다. 또한 ‘바울’의 그 훌륭한 말은 여호와를 올바로 섬기며 반대와 박해를 인내할 수 있도록 우리를 격려해 준다. 그러므로 제1장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르는 추종자들을 섬기도록 천사를 사용하신다는 격려적인 내용으로 끝을 맺고 있다.

그 다음 ‘바울’은 흘러 떠내려 가지 않도록 우리가 들은 것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도록 권고한다. 그는 우리가 주의를 게을리하고 하나님의 구원의 마련을 소홀히 하면 엄한 벌을 받게 된다고 경고한다. (히브리 2:1-4) 계속하여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담대함과 소망을 끝까지 굳게 간직하면 그리스도의 “집”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그는 다음과 같이 경고한다. “형제들아 너희가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심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염려할 것이요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퍅게 됨을 면하라.” 참으로 시기에 적절한 경고이다! 매년 얼마의 사람들이 부도덕한 행실 때문에 그리스도인 회중으로부터 제명되고 있다는 사실은 그러한 경고가 참으로 필요함을 강조한다!—히브리 3:6, 12, 13.

4장에서 ‘바울’은 아무도 ‘이스라엘’ 백성이 오랫 동안 나타내었던 같은 불순종의 본을 따르지 않도록 하나님의 안식으로 들어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갈 수 있는가? ‘이스라엘’ 백성과 같은 행동을 하는 대신 믿음을 나타내고 순종함으로써 들어갈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한다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그렇다.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하나님]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참으로 엄한 경고이다.—히브리 4:11-13.

그 다음에 ‘바울’은 (영적으로) 듣는 것이 둔해지고, 이미 선생이 되어야 마땅한데도 그렇기는커녕 그리스도교의 기본적인 진리를 다시 배워야 하는 그 ‘히브리’인 그리스도인들을 책망한다. 사실상 그들에게는 장성한 사람들이 먹는 단단한 음식이 아니라 영적 우유가 필요하다. 장성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선과 악을 분별할 줄 아는 것을 의미한다.—히브리 5:11-6:3.

바로 직후에 ‘바울’은 한 번 빛을 받고 나서 떨어져 나간 자들이 처한 운명에 대해 엄한 경고를 발하고 있다. 그러나 ‘바울’은 그의 편지를 받을 사람들에게는 더 좋은 것이 있음을 확신하였다. 그들은 동료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행한 선한 일을 하나님께서 보상해 주실 것을 확신할 수 있다. 그 후에 ‘바울’은 끝까지 소망을 굳게 간직하라고 그들과 또한 우리를 격려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굳건한 소망을 가질 만한 튼튼한 기초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뿐만 아니라 맹세까지 하셨기 때문이다! 변할 수 없는 그 두 가지 사실 때문에 확실하고 견고한 닻과 같은 소망을 가질 수 있다. 7장에서 ‘바울’은 우리를 격려하기 위하여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우리의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는 항상 살아 계시기 때문에 언제든지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다고 지적한다.—히브리 7:15-28.

그 다음 구 언약보다 새 언약이 우월하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바울’은 새 언약하에서는 하나님이 자비를 더욱 베푸실 것이며 사함을 받은 우리의 죄를 다시는 기억하시지 않을 것이라는 말로 우리를 격려한다. (히브리 8:7-12) 우리에게는 더 나은 대제사장과 더 나은 희생이 있기 때문에 죽은 행실에서 우리의 양심을 깨끗이 할 수 있고 우리가 살아 계신 하나님께 거룩한 봉사를 드릴 수 있다. (히브리 9:11-14) 우리가 그처럼 은총받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바울’은 다음과 같이 우리를 훈계한다.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아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확실히 그 “날”은 다가오고 있다.—히브리 10:22-25.

그 다음 그 사도는 그리스도인 숭배로부터 이탈하는 것은 죄를 완전히 제거할 수 있는 완전한 그리스도의 희생을 경시하는 것과 관련되기 때문에 그것은 율법의 마련을 저버리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고 말함으로써 배도의 결과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그렇다. 원수 갚는 것이 하나님께 있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 가는 것이 무”섭다는 것을 우리가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히브리 10:26-31.

그 다음에 ‘바울’은 이전에 많은 박해를 받았던 때를 상기하라고 촉구한다. 그는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담대함을 잃지 말라고 재차 권고하면서 인내가 필요하다는 점을 역설하고 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살 것이지만 하나님은 뒤로 물러가는 자들을 기뻐하시지 않는다.—히브리 10:32-39.

그 다음 11장에서 ‘바울’은 논리적인 순서에 따라 믿음에 관하여 독특한 토론을 전개시킨다. 그 장에서 그는 믿음을 정의하고, 하나님을 기쁘게 하기 위해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이야기하고, 수많은 믿음의 탁월한 본들을 들어 그에 관하여 설명한다. 구름 같은 증인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무거운 짐과 믿음이 없는 또는 상실하는 죄를 벗어 버리고 계속 인내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의 본을 바라보아야 한다.—히브리 12:1-3.

그 직후 ‘바울’은 여호와의 징계를 받아 들여야 하며 그것을 가볍게 여기거나 그것 때문에 실망하지 말라고 훌륭한 충고를 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징계를 받아 들이고 그로부터 유익을 얻게 되면 의의 화평한 열매를 맺게 될 것이며,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도와주고 남을 넘어지게 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권고한 후 ‘바울’은 ‘에서’를 경고의 본으로 사용하여 거룩한 것들에 대해 무감각하게 되지 않도록 경고를 한다.—히브리 12:4-17.

마지막 장에서 영감받은 사도는 성적 불결함, 돈을 사랑하는 일, 이상한 가르침에 끌려 다니지 않도록 경고하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인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들의 유익을 위해 순종하고 복종해야 하는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세번이나 언급하고 있다. ‘바울’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온갖 선한 것으로 우리를 채우시고 “그 앞에 즐거운” 것을 우리 속에 이루시기를 원한다는 기도로 결론을 내리고 있다.—히브리 13:4-24.

참으로 「히브리서」는 아주 중요하고 유익한 지식과 함께 우리가 믿음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돕는 간절한 권고와 훌륭한 격려와 엄한 경고로 가득차 있다. 우리가 이 성서 부분을 더 잘 알면 알게 될수록 그 유익이 더 클 것이다.

    한국어 워치 타워 출판물 (1958-2025)
    로그아웃
    로그인
    • 한국어
    • 공유
    • 설정
    • Copyright © 2025 Watch Tower Bible and Tract Society of Pennsylvania
    • 이용 약관
    • 개인 정보 보호 정책
    • 개인 정보 설정
    • JW.ORG
    • 로그인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