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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수께서 자라나신 곳
  • 깨어라!—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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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1979
깨79 10월호 39-43면

예수께서 자라나신 곳

집필 요원 기

‘디베랴’ ‘버스’ 정류소에는 승객들이 앉는 ‘벤취’가 있고 그곳으로 ‘버스’가 들어 온다. ‘나사렛’행 ‘버스’가 정차하는 곳을 찾아 아내와 나는 ‘벤취’에 앉아 있었다. 우리는 1,900여년전 예수께서 자라나신 곳을 방문한다는 기대로 가슴이 벅차 있었다. 우리가 차표에 관해 묻자 옆에 있던 젊은 여자가 “승차하신 후에 사면 돼요” 하고 대답해 주었다.

몇분 후에 ‘버스’가 도착하였는데 그 때까지 승차하려고 기다리고 있던 사람이 꽤 있었다. 승차 후에 우리는 다시 지도를 꺼내 확인해서 ‘나사렛’이 32‘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으며 도중에 ‘가나’를 통과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참으로 의미심장한 곳이다! 우리는 수년 동안 종종 ‘이스라엘’ 여행에 관하여 얘기했었다. 그러던 중 지난 봄에 우리에게 기회가 주어졌고 지금 우리는 이곳에 와 있는 것이다!

우리와 함께 여행하는 일행은 그 날 전세 ‘버스’로 계획된 관광 여행이 없었다. 우리는 그 다음날에야 그 일행이 ‘나사렛’을 통과할 것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우리는 ‘나사렛’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갈릴리’ 바다 근처인 이곳에서 이 지방 아침 ‘버스’를 타게 된 것이다. 우리는 예수께서 자라나시고 지상 생애의 대부분을 보내신 이 지방이 어떤지 종종 궁금해 했었다.

‘나사렛’으로 가는 길에서

우리가 ‘디베랴’를 벗어나자 ‘버스’는 자주 정차하여 손님을 태웠다. 곧 서있을 자리만 남았다. ‘갈릴리’ 바다는 해수면에서 거의 210‘미터’나 낮다. 반면에 ‘나사렛’은 해수면에서 약 360‘미터’ 높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처음 몇 ‘미터’는 가파른 경사지를 올라가야 하였다. 또한 그만큼 ‘갈릴리’는 우리에게서 멀어졌다. 만일 예수와 사도들처럼 걸었다면 쉬운 여행이 아니었을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하였다. 한참을 오른 후에 “해수면”이라는 팻말에 이르렀을 때는 참으로 이상하였다!

우리는 사람을 구경하기에 바빴다. 길고 흰두건을 쓴 ‘아랍’인들, 작업복을 입은 농부들, 제복을 입은 ‘이스라엘’ 군인들이 있었는데 많은 군인들이 여자였다. 곧 우리의 길은 비옥한 계곡에 다달았다. 우리가 ‘다볼’ 교차로에 이르렀을 때에는 약 9‘킬로미터’ 남쪽에 위치한 이 유명한 산을 볼 수 있었다. 우리는 예수께서 틀림없이 이 산을 잘 알고 계셨으며 또 오르신 일도 있을 것으로 알고 있었다. ‘다볼’ 산은 ‘나사렛’에서 불과 약 8‘킬로미터’ 동남쪽에 있으며 광활하고 아름다운 ‘이스르엘’ 평야(‘에스드렐론’ 평야라고도 함) 동쪽 끝에 우뚝 솟아있다.

그러나 우리는 ‘나사렛’으로 가는 더 빠른 길인 남서쪽 방향으로 계속 달렸다. ‘버스’가 ‘가나’에서 정차하여 손님이 내리고 탈 때 우리는 내려서 그 계곡을 둘러보고 싶었다. 그러나 ‘나사렛’에 가고자 하는 욕망이 앞섰다. 이제 ‘버스’는 더 산지대를 오르고 있었다. ‘가나’에서 약 6‘킬로미터’를 지나 ‘나사렛 엘리트’(상부 ‘나사렛’)에 다달았다. 이곳은 ‘유대’인들만이 사는 현대 도시이다. 마침내 우리는 고대 ‘나사렛’으로 내려왔다.

두개의 ‘나사렛’

우리는 각각 크기가 다른 두개의 별개 도시를 보고 놀랐다! 우리는 고대 ‘나사렛’이 ‘이스라엘’에서 ‘아랍’ 사람들만 사는 도시 중 약 40,000명의 ‘아랍’ 사람들만 사는 가장 큰 도시임을 알게 되었다. 이전에는 ‘나사렛’이 틀림없이 매우 보잘것 없는 도시였다.

이 도시가 「‘히브리’어 성경」이나 「탈무우드」에는 언급이 없다. 또한 저서에서 약 45개나 되는 ‘갈릴리’ 도시를 기술한 제1세기 ‘유대’ 역사가 ‘플레비우스 요세퍼스’도 이 도시의 이름은 언급하지 않았다. 심지어 ‘갈릴리’ 사람들까지도 이곳을 보잘 것없게 여겼었다. 이 점은 나중에 예수의 사도 중 하나가 된 ‘나다나엘’이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고 한 말에서도 알 수 있다. (요한 1:46) 19세기의 한 방문객은 ‘나사렛’의 인구를 3,000정도로 어림잡았으며 이렇게 주장하였다. “이 도시는 역사상 이전 어느 시대보다도 점점 더 번창하는 것 같으며 지금도 확장하고 있다.”

근년에 와서 대단히 성장하였다. 1950년 이래로 ‘나사렛’은 배로 확장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또한 우리가 방금 통과한 산 위로 ‘나사렛 엘리트’가 있다. 1957년에 건설되기 시작한 새로운 ‘유대’인의 도시 ‘나사렛 엘리트’는 인구가 20,000명 정도된다. 이 도시가 두 도시 중 더 전망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친절한 사람들

‘버스’에서 내리자 우리는 ‘나사렛’의 가장 오래된 지역을 향하였다. 우리는 소위 “‘마리아’의 우물”에 도착했다. 지금은 이곳에 교회 하나가 서 있다. 그러나 ‘나사렛’에는 이 우물 뿐이라는 것을 볼 때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가 가족을 위하여 물을 길었던 바로 그 우물일 것이다.

우리가 가고 있는데 이발소 문을 막 열면서 한 이발사가 우리에게 인사를 건넸다. (우리는 많은 ‘이스라엘’인들이 영어를 유창하게 말하는 것을 알았다.) 잠간 이야기하다가 우리는 그가 그리스도교인임을 알고 약간 놀랬다. 사실 우리가 그 때까지 만난 ‘아랍’인들은 모두가 회교도였다. 그는 ‘나사렛’에 사는 ‘아랍’인의 반은 그리스도교인이고 반은 회교도라고 설명해 주었다. 그는 이웃 상점을 향해 목례를 하고서 “저 사람은 회교도이지만 우리는 서로 잘 지내죠”라고 말하였다. 이 이발사는 우리에게 열기를 피해서 들어와 차를 좀 들라고 권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그 지역을 조금이라도 더 보고 싶어서 굳이 그러나 조심성있게 사양하였다.

몇분 후에 우리는 좁고 꼬불꼬불한 길로 들어 왔는데 그 길 한가운데는 당나귀들이 다니도록 홈이 파져 있었다. 길 양쪽에는 가지 각색 물건을 파는 상점들이 늘어서 있는데 옷을 밖에 걸어 놓은 상점도 있고 갓잡은 양고기를 상점 앞에 갈고리에 끼어 걸어 놓은 곳도 있었다. 무겁게 짐을 실은 당나귀가 그 길로 내려오는 것을 보고 우리는 이러한 광경이 예수께서 이곳에 사시던 약 2,000년전의 광경과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간식을 위해서 뭘 좀 사려고 우리는 마대에 맛있어 보이는 온갖 견과와 마른 과일이 잔뜩 있는 상점에서 멈췄다. 아주 친절하게 우리를 맞이해 들인 점원은 앉아서 ‘아랍’ ‘코오피’를 들라고 권하였다. 우리는 ‘코오피’를 마신 후에 현대 ‘나사렛’ 생활에 관하여 몇가지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가 성서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18세의 그리스도교인인 이 ‘아랍’ 소년은 친절하게도 그곳을 안내해 주겠다고 자청하였다.

보람있는 성서 토론

우리는 특정한 성서 사건이 관련된 배경이 있는 위치에 관심이 있었다. 성서에는 ‘나사렛’ 사람들이 예수의 가르침에 노하여 그를 “동네 밖으로 쫓아내어 그 동네가 건설된 산 낭떠러지까지 끌고 가서 밀쳐 내리치고자 하되 예수께서 저희 가운데로 지나서 가”셨다는 기록이 있다. (누가 4:28-30) 우리의 안내자인 ‘줄리안’은 이러한 일이 발생했다고 생각되는 곳을 향하여 그 도시 남쪽으로 우리를 데리고 갔다.

우리는 ‘줄리안’이 성경에 관심을 나타내는 것을 보고 매우 기뻤다. 그는 「복음 성서」(현대 영어 성서) 한권을 가지고 있으며 즐겨 읽는다고 말하였다. 우리가 함께 가는 도중에 그는 ‘나사렛’의 한 교직자가 위에 언급된 상황에서 예수께서는 낭떠러지로 떨어졌지만 기적으로 올라오셨다고 가르치더라고 말하였다. 나는 가지고 있던 성서를 펴서 물론 그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음을 알려 주는 이 귀절을 읽어 주었다.

그러자 이제 ‘줄리안’은 우리에게 한 가지 질문을 하였다. 그는 “나는 여러 사람에게 이것을 물었는데 만족한 대답을 얻지 못했읍니다. 예수께서는 형제들과 누이들이 있으셨나요?” 하고 물었다.

대답으로 나는 성서 마태 13:54-56을 펴 주었다. 거기에는 예수의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는 이름을 언급한다. 그 다음 귀절은 이와 같다. “그 누이들은 다 우리와 함께 있지 아니하냐?” 더군다나 우리는 ‘요셉’이 “첫째 아들을 낳기까지” ‘마리아’와 동침하지 않았다고 성서가 명백히 말해 줌을 보여 주었다.—마태 1:25, 듀웨이역 성서.

‘줄리안’은 ‘마리아’가 평생 동정녀라는 ‘가톨릭’의 가르침이 성서에 없다는 것을 수긍하였다. 나는 “그리고 일반 교회에는 성서가 뒷받침해 주지 않는 가르침들이 있지요. 예를 들면 ‘림보’나 연옥 그리고 악한 자가 지옥불에서 영원한 고초를 받게 된다는 가르침 같은 것이지요” 하고 설명해 주었다. ‘줄리안’은 이러한 가르침이 성서가 알려 주는 바와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였다. 그는 성서가 말하는 것만 믿는다고 말하므로 우리를 기쁘게 하였다.

이미 우리는 이 마을 끝에 와 있었다. 이곳에 바로 그 산 낭떠러지가 있었다. 여기가 그 도시의 사람들이 예수를 밀쳐 내리려던 바로 그 장소일 것이다. ‘줄리안’은 예수께서 거의 2,000년 전에 ‘나사렛’에서 살던 분임을 확실히 믿었다. 나는 그에게 “그러나 예수께서는 지금도 살아계시며 우리에게 유익을 주실 수 있음을 믿나요? 그리고 그분은 증오와 편견이 매우 만연된 불쾌한 세상 상태를 변화시키실 것이라는 사실을 믿나요?” 하고 물어 보았다.

그는 주저하지 않고 “예.”라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그는 불쌍한 자를 공평하게 판단하며 백성을 공의로 다스릴 왕의 출현에 관한 성귀를 언급했다. 나는 흥분하여 성서 이사야 11장을 펴서 이것이 그가 염두에 두고 있는 성귀가 아니냐고 묻고는 읽기 시작했다. “공의로 빈핍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공의로 그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몸의 띠를 삼으리라.”—4, 5절.

내가 읽기를 마치자 ‘줄리안’은 이것이 바로 자기가 생각한 성귀였다고 말하였다. 나는 이것이 메시야 예수에 관한 예언이라고 지적하였다. 그리고 나서 나는 그리스도의 통치하에 누리게 될 평화를 말해 주는 계속되는 귀절로 그의 주의를 이끌었다. 그 일부는 다음과 같다.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찐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6-9절.

‘줄리안’은 이 귀절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이것이 내가 좋아하는 성귀”라고 말하였다. 나도 이 성귀를 좋아한지 오래 되었다고 말하였다. “우리는 결국 이것이 문자적으로 성취될 것을 믿지요. 그리고 예수께서 오래 전에 이곳 ‘갈릴리’에서 행하신 병든 자를 고치시고 심지어 죽은 자를 일으키신 것과 같은 기적들은 그분이 자기의 왕국 통치하에서 전세계적인 규모로 행하실 일을 미리 보여 주신 것”이라고 나는 말하였다.

예수께서 방문하신 곳들

이제 우리는 ‘나사렛’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예수께서 행하신 기적 중의 한 가지 예를 들면 나는 “예수께서 한 과부의 아들을 부활시키신 곳”이 ‘나인’ 성이라고 말하였다. (누가 7:11-17) ‘이스르엘’ 골짜기로 남동쪽을 가리키면서 나는 이렇게 말하였다. “‘나인’이라는 마을이 저쪽으로 약 8‘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아직도 있지요. 성서에 언급된 그 마을이 아직도 같은 곳에 있을 거예요.”

‘줄리안’은 자기가 그곳에 가본 적이 없지만, 친구와 함께 걸어서 ‘나인’에서 멀지 않은 ‘다볼’ 산에 가본 적이 있다고 말했다. 이것은 우리의 흥미를 끌었다. 왜냐 하면 예수께서도 젊었을 때 틀림없이 ‘나사렛’ 근처의 그러한 곳에 걸어 다니셨을 것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나사렛’은 ‘이스르엘’ 골짜기 위쪽 언덕 위에 자리잡고 있다. 그러므로 그곳은 그 골짜기로 그리 멀지 않다. ‘줄리안’은 어느날 아침 일찍 몇몇 친구와 함께 ‘나사렛’을 출발해서 ‘이스르엘’ 골짜기로 내려가 ‘다볼’ 산을 지나 ‘갈릴리’ 바다 근처까지 걸어갔다가 당일로 집에 돌아왔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날 밤에 녹아 떨어졌어요” 하고 말했다.

이러한 경험은 먼저 말한 ‘나인’에 관한 성서 이야기의 한 부면을 밝혀 주는 것이었다. 어떻게 그러한가? 누가복음 7:1에 의하면 예수께서는 그 유명한 산상수훈을 마치신 후에 “‘가버나움’으로 들어가”셨다. 그분은 ‘갈릴리’ 바다 북쪽 해변에 있는 그 도시에 계신 동안 백부장의 종을 고쳐 주셨다. (누가 7:1-10) 그 다음 11절은 이와 같이 말한다. “그 후에” 또는 일부 고대 사본에는 “그 다음 날 그분은 ‘나인’ 성으로 가셨다.” (누가 7:11, 대형판 신세계역 각주) 예수와 동행자들이 그러한 구릉지대를 당일에 걸어간 참으로 먼 32‘킬로미터’ 이상이나 되는 거리였다. 그러므로 오늘날 동일한 험준한 지대를 걸은 사람들이 그보다 더 먼 거리를 걸을 수 있음은 우리에게 의미 심장한 것이었다.

우리는 ‘디베랴’로 돌아가는 길에 ‘가나’의 ‘아랍’인 마을을 방문하고 싶다고 하였다. ‘줄리안’은 우리를 데려다 주겠다고 하였으며 심지어 우리의 ‘버스’ 요금까지 내 주었다. 예수께서 결혼 잔치에 참석하여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킨 첫 기적을 행하신 곳이 ‘가나’였다. (요한 2:1-11) 그러나 ‘디베랴’와 ‘나사렛’ 사이 도로변에 있는 이 ‘가나’가 성서에서 언급한 그 마을의 실제 위치인가 하는 의문이 생겼다. 성서의 ‘가나’는 ‘나사렛’ 북쪽 약 14‘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한 곳이라고 확증하는 증거가 있다. 하여간 우리가 예수께서 최초의 기적을 행하신 곳이라는 이 옛 마을을 거니는 것은 흥미있는 일이었다.

우리가 대로로 돌아오자 ‘줄리안’은 ‘디베랴’로 가는 ‘택시’를 잡았다. 그 운전사는 ‘미사’를 올리러 ‘비애티튜드’ 산에 있는 교회로 가는 한 사제를 태우고 있었다. 우리는 ‘줄리안’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뒷 자석으로 올라탔다. 운전사는 예수께서 산상수훈을 하신 곳이라는 그곳에 그와 함께 가도록 권했다. 그곳은 ‘갈릴리’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실로 아름다운 것이었다. 그 사제가 예배보러 간 사이에 우리는 운전사와 그 일대를 산책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성서 토론을 좋아하는 ‘나사렛’에 사는 또 한 사람을 만나게 되어 참으로 기뻤다! 그는 전에 ‘여호와의 증인’을 만난 적이 있으며 ‘여호와의 증인’의 가장 가까운 회중인 ‘하이파’에 있는 집회에 참석해 본 적이 있는 사람이었다. 성서에 나오는 제1세기 그리스도교의 특징들을 거의 한 시간가량 고려한 후에 그 운전자는 자진해서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진리를 설명하는 서적을 배부하고 싶습니다.” 그리고는 계속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나사렛’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것들을 기꺼이 배우고자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제가 돌아왔고 우리는 잠시 후 ‘디베랴’에 있는 우리가 묵고 있는 ‘호텔’ 앞에서 내렸다. 참으로 가슴이 벅차고 보람있는 날이었다! 우리는 예수께서 자라나신 곳을 구경한 것도 기뻤지만 특히 그분이 이 땅에 오셔서 하신 동일한 일—하나님의 왕국의 좋은 소식에 관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는—에 참여하였던 것이 참으로 기쁜 일이었다.—마가 1:38; 누가 4:43.

[41면 삽화]

‘나사렛’인들이 예수를 밀쳐 내리치려고 했었다고 생각되는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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