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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81 05월호 3-7면
  • 연로한 부모를 보살피는 일—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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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로한 부모를 보살피는 일—어떻게?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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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슷한 자료
  • 예수의 본
  • 좋은 마련이 유명 무실하게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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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떻게 할 수 있는가?
  • 회중에서 할 수 있는 많은 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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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1
파81 05월호 3-7면

연로한 부모를 보살피는 일—어떻게?

“댁의 어머님은 지금 점점 쇠약해지고 계십니다.” 의사의 말이었다. “양로원에 빈 자리가 있는지 알아 봐야 하겠읍니다.”

딸이 깜짝 놀란 반응을 보였다. 그의 어머니도 마찬가지였지만, 고통이 수반된 점에서 달랐다. 어머니의 눈 앞에는 쓸쓸한 커다란 양로원의 영상이 어른거렸으며, 어느덧 불행한 노인들 틈에 앉아 있는 자신의 모습이 선히 떠오른 것이었다. 그러나 딸의 명랑한 목소리에 어머니는 현실로 되돌아왔다.

“어머님,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와 함께 사실 수 있도록 ‘잰’과 의논해 볼께요.”

어머니는 고개를 저었다. “얘야, 아니다. 너는 지금도 식구들 돌보느라 할 일이 너무 많지 않니? 그리고 ·⁠·⁠·”

그 딸은 후일에 이렇게 기술하였다. “어머님의 입은 ‘아니다’라고 말씀하셨지만, 눈은 ‘제발 나를 홀로 버려두지 말아다오. 너희와 함께 살게 해주려무나’라고 애원하고 계셨다.”

그러나 노인들에게 아주 적합한 양로원들도 있다. 그 어머니가 그런 곳에 들어가는 편이 더 낫지 않았을 것인가? 왜냐하면, 이제 그 딸은 자신의 직속 가족을 보살피는 일에 더하여 어머니마저 돌보아야 할 입장이 될 것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 어머니는 사위집 가족과 진정 일치 조화할 수 있을 것인가?

이러한 여러 가지 질문이 생기게 됨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리고 노인들의 수가 증가함에 따라 이같은 질문에 직면하는 가족들이 늘어가고 있다. 성서는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어떠한 지침을 제시하고 있는가?

예수의 본

예수 그리스도께서 형주에 달려 계셨을 때 그 엄청난 고통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연로한 어머니의 처지를 염두에 두고 계셨다. ‘마리아’는 그 때 홀어머니였음이 명백하며, 죽음을 목전에 둔 예수는 자신이 떠나간 후의 어머니 보살피는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하고 계셨다. 그의 이부(異父) 형제들은 아직껏 그분께 대하여 믿음을 두고 있지 않았다. 그분의 제자가 아니었던 것이다. 따라서 예수께서는 가장 친밀했던 제자 ‘요한’에게 어머니 ‘마리아’를 보살피도록 부탁하셨다. 성서는 형주 옆의 그 곳 상황을 이렇게 말한다.

“예수께서 그 모친과 사랑하시는 제자[‘요한’]가 곁에 섰는 것을 보시고 그 모친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요한 19:26, 27.

자녀들이 부모들을 심중히 생각해야 함은 하나님의 뜻이며 하나님의 법에서도 명하는 바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10계명 중 다섯째 계명을 청종하여 행동하고 계셨던 것이다. 그 계명은 이러하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그러므로 부모에게 감사를 표명하는 사람은 여호와로부터 풍부한 상을 받을 것이다.—출애굽 20:12.

좋은 마련이 유명 무실하게 되다

그러나 수많은 다른 율법과 마찬가지로 다섯째 계명도 점차 유명무실하게 되었다. 이기적인 이유로 많은 ‘유대’인들은 부모를 소홀히하기 시작하였으며 부모들이 자기들을 얼마나 사랑스럽게 돌보아 왔었는가를 망각하였다. 후일에 종교 지도자들은 종교적 의무를 다하면 부모 보살피는 일을 무시해도 좋다는 견해를 감히 끌어 들였다. 예수께서는 이러한 잘못을 강력히 반대하셨다. 이런 식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무시한다면, 하나님을 헛되이 숭배하는 것이라고 그분은 말씀하셨다.—마가 7:6-13.

예수의 제자들은 하나님께서 궁핍한 부모는 물론 조부모조차 보살필 것을 요구하신다는 사실을 매우 잘 이해하고 있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편지하였다.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녀가 있다면, 그들은 가족에게 충성을 나타내고 부모와 조부모의 은혜에 보답하는 일을 첫째 가는 의무로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승인하시기 때문입니다.” (디모데 전 5:4, 신 영어 성서) 여기에서 자녀의 첫째 가는 의무가 무엇이라고 하였는가? 그것은 그들의 어린 시절에 부모에게서 그리고 심지어 조부모에게서 받았던 보살핌에 보답하는 것이다. 그렇다. 더 이상 자신을 돌볼 수 없는 부모와 조부모는 자녀가 보살펴야 하며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승인하신다.

오늘날 세상에는 ‘부모를 공경하는 마음’이 별로 없다. 오히려 “자기 일은 자기가 돌보아야 한다. 나 자신의 문제만도 벅차다”는 식의 태도가 흔하다. 이처럼 각박한 생각의 결과는 자명하다. 즉 보살펴주는 사람들이 거의 없는 까닭에 비참한 인생의 “황혼”을 보내고 있는 노인들이 허다하다는 것이다.

노인들에게 필요한 것들

어떤 사람들은 인생의 말기에 이르러, 유년기처럼 무력하게 된다. 유아들은 자산(資産)이었지만, 노인들은 부채(負債)가 될 뿐이다. 사람들은 어머니의 팔에 안겨 있는 무력한 아기에게는 많은 주의를 기울인다. 그러나 쇠약한 노인이 방에 들어오면 관심을 표하는 사람이란 거의 없다. “뭐, 이제 살 만큼 사셨는데” 하는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일반적으로 노령과 피로감은 보조를 맞춘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들이라면 아주 쉽게 할 수 있는 일들도 노인들에게는 많은 노력이 필요할 수 있다. 집안 일제 청소, ‘페인트’ 칠하기, 뜰 가꾸기 등은 젖혀 놓고라도, 매일의 가정 허드렛일조차도 그들의 능력에 부칠 수 있다.

때때로 노인들은 너무나 피곤한 나머지 따뜻한 식사를 준비하거나 장보기를 해 올 수가 없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특히 적절한 영양식이 필요하다. 종종 그들은 싱싱한 과일과 야채를 소홀히 한다. 그리고 흔히 노인들은 음료를 너무 적게 마시기 때문에 수분 부족 상태 즉 탈수증 징후를 나타내게 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자꾸 졸게 되고 결국 착란 상태에 빠질 수 있다.

대개 노인들은 소음과 부산스러움을 피하고 싶어하며, 조용히 한 구석에서 하루의 일과를 지켜보기를 더 좋아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그들은 주위 사물들에 계속 흥미를 갖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 당신이라면, 충만하고 흥미있는 인생을 즐긴 연후 전적으로 무시되기를 바라겠는가? 물론 그렇지 않을 것이다! 노인들에게 가해질 수 있는 최악의 “처벌”은 무용지물이라는 고독감이다. 그런데 만약 방해가 된다고 해서 연로한 부모를 요양원에 넣어 버린다면, 그것은 그들에게 이러한 처벌을 가하는 것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 말은 여하한 환경하에서도 연로한 부모를 요양원에 모시는 것은 최선의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뜻이 아니다. 신체 조건상 반드시 침대에 누워 있어야만 하거나, 꼭 그렇지는 않더라도 계속적인 보양(保養)을 필요로 할 수가 있다. 당신은 그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서 일해야 할지 모르며, 따라서 집에 있으면서 그러한 보살핌을 베풀어 드리지 못할 입장에 있을지 모른다. 가족 성원 중 아무도 그렇게 할 입장에 있지 않을지 모른다. 환경이 이런 사람들에게 일부 요양원은 좋은 마련임이 입증된 바 있다.

어떻게 할 수 있는가?

한 가족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부모님이 우리와 함께 사는 것, 아니면 양로원에 가는 것 중 하나를 스스로 택하게 하였읍니다. 그분들은 즉시 우리와 함께 사는 편을 택하였읍니다.”

그러나 문제는 어떻게 부모들이 기거할 곳을 만들어줄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모든 가족에게 가능한 일이 아니겠지만, 많은 가족들은 그것이 가능함을 알게 되었다. 만일 다락방이 있다면 특히 소년들은 그런데서 잠자기를 좋아한다. 또는 어린이 침실에다 2단 침대를 놓아 사용하면 공간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 아마 전 가족이 할아버지나 할머니 또는 두분에게 방을 내드릴 수 있도록 좀더 큰 집으로 이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소 노약한 분을 집으로 모시는 데는 미리 많은 생각을 할 필요가 있다. 마루에 헐거운 ‘매트’를 놓는다면 위험할 수 있다. 또한 다음과 같이 자문해 보라. 복도의 전등불은 충분히 밝은가? 욕실 및 복도 벽에 손잡이가 있는가? 침대의 높이가 그분들에게 편리한가? 밤중에 도움이 필요할 때 울릴 수 있는 ‘벨’이 있는가?

하루 종일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은 건강상 좋지 않은데, 확실히 노인들에게 그러하다. 감자 껍질 벗기기에서부터 (다소간 기력이 있다면) 아기 보기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하고 싶어할 작은 일거리들이 많이 있다. 어느 그리스도인 여인은 눈이 잘 보이지 않는 어머니에게 뜨개질을 가르쳐 드렸는데, 그 결과 그 연로한 부인은 더욱 행복해졌다. 만일 노인들이 여전히 무엇인가 어느 정도 잘 할 수 있다면, 당신이 그 일을 더욱 깨끗하게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들에게 “어머니 노릇”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노인들에게 있어서는 어린이들을 데리고 노는 것처럼 즐거운 소일거리란 없다. 그리고 많은 꼬마들은 그러한 교제를 굉장히 즐긴다! 어린이들을 위해서, 할아버지나 할머니만큼 많은 시간을 갖고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며, 그분들이 이야기해 주는 것처럼 흥미있는 이야기나 경험담을 말해 줄 수 있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만일 연로한 부모가 더 이상 걸을 수 없다면, ‘휘일체어’를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처음에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타도록 하는 데는 다소간의 어려움이 있을지 모른다.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그러나 그들이 이제 더 자주 외출할 수 있을 것임을 알게 된다면, 대개 모든 반대는 누그러질 것이다.

그러나 궁핍한 부모가 홀로 살기를 원하거나, 또는 결국 양로원에 들어가게 되었다면 어떻게 할 수 있는가? 그러한 경우에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그 쇠약하거나 외로운 부모와 더욱 가까이 있을 수 있도록 그 근처로 이사를 하였다. 그리고 손자녀들 중 하나를 보내어 조부모 댁에서 밤을 지내게 할 수도 있다. 또는 조부모가 요양원에 있는 경우라면 정기적으로 방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더 가까운 곳으로 이사하는 일이 가능하지 않다면, 그 이웃의 어떤 사람에게 부탁하여 부모를 정기적으로 찾아가 뵙고 보살펴 드리도록 마련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경우라도 때때로 연로한 부모나 조부모를 방문하여 간단한 “검사”를 하는 것이 물론 적절할 것이다. 식사와 난방면에서 필요한 것을 모두 얻고 있는가? 모든 것이 깨끗한가? 수리해야 할 것이 있는가? 혹시 고독감이 자라고 있지나 않은가? 건강은 어떠한가? 그들이 적절한 보살핌을 받도록 유의하는 것은 당신의 책임이라는 것을 기억하라.

무엇보다도 연로한 부모에게는, 당신이 그분들을 극진히 사랑하며 당신에게 결코 귀찮은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확신시켜 드릴 필요가 있다. 이따금씩 상냥하게 팔로 감싸주고 푸근히 껴안아 드리라. 노인들은 사랑에 찬 따뜻함과 접촉을 크게 필요로 한다. 그리고 노부모가 무엇인가 이야기할 때에는, 이미 당신이 들은 말이라 할지라도 주의깊이 듣도록 하라. 노인들은 사람들이 자기들의 말에 대해 더 이상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될 때 대단한 고통을 느낀다. 사람들에게 불필요한 존재라는 느낌으로 말미암아 침울감에 빠질 수 있고, 급기야는 수명마저 단축될 수 있다.

회중에서 할 수 있는 많은 일들

그러나 충실하고 연로한 그리스도인인데 믿는 자녀가 없는 경우, 그는 사랑에 찬 도움을 일체 받을 수 없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하나님의 진리의 길에서 연로해지도록 충실히 활동해 왔고 마침내 쇠약해진 그러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하나님의 집[가족, 신세]”인 그리스도인 회중에서 사랑에 찬 보살핌을 베풀음이 마땅하다.—디모데 전 3:15; 5:16.

이러한 점에 관하여 한 그리스도인 자매는 이렇게 편지했다. “남편이 진리 안에 있지는 않지만, 저는 허락을 받아, 아주 나이 많은(86세의) 영적 자매를 6년 이상 돌보아 오고 있읍니다. 그분을 친 할머니처럼 느꼈고, 그 사랑이 제 마음을 충동거렸던 것입니다. 처음에 그분은 아이들이든 누구든 주위에 있는 사람에게 명령하곤 하였기 때문에 큰 짐이 되었읍니다. 여호와께서 참으로 도와 주셨읍니다. 자녀들 역시 노인들을 어떻게 대해 드려야 하는지 알게 되었읍니다.”

다른 한 연로한 자매에 관하여 한 그리스도인 형제는 이렇게 편지하였다. “이 자매는 고되고 외로운 생활 끝에 76세의 나이로 침례를 받았읍니다. 심장병 환자이었고 게다가 걷는 데 어려움이 있었으므로 보통 이상의 보살핌을 받아야 하였지요. 그분은 그때 81세였고, 우리는 젊었고 결혼한 지 아직 2년밖에 되지 않았읍니다. 우리는 단지 잠간씩이라도 매일 방문함으로써 그분의 생활을 더욱 즐겁게 만드는 데 성공하였읍니다. 우리는 일거리들을 모두 처리해드렸고 제 아내가 세탁과 요리를 해드렸읍니다. 우리가 드릴 수 있었던 가장 큰 선물은 아들의 이름을 그분의 이름에 따라 지은 것이었읍니다. 그 자매는 그때 “이제는 내가 진짜 할머니가 되었군” 하고 우셨읍니다.”

그리스도인 회중 내의 다른 사람들도 연로한 분들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목적하신 바와 같은 보살핌을 받도록 하는 데 있어서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당신은 이와 같은 방법으로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기회에 유의하고 있는가?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는 마련

말할 필요도 없이, 연로한 부모를 집에 모신다는 것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렇게 한 사람들의 말을 좀 고려해 보라.

“그 일은 아주 훌륭한 일임이 입증되어 왔읍니다”라고 한 사람은 말하였다. “연로한 어머니가 계셔서 확실히 가족의 연합이 촉진되었읍니다.”

다른 그리스도인은 이렇게 편지했다. “우리가 남편과 아내로서 서로를 더욱 인식하게 되었고, 동시에 인내를 배웠다는 것은 참으로 축복입니다.”

또 다른 이는 이렇게 편지했다. “저희와 함께 살러 오셨을 때 어머니는 노약자였읍니다. 그러나 점차적으로 어머니는 집안에서 하시는 일의 양을 늘려 나갔고, 동시에 더욱 건강해지고 근력이 좋아지게 되었읍니다.”

만일 당신의 부모 중 한분이나 혹은 두분이 다 쇠약해진다면 당신은 이제 어떻게 하겠는가? 조용히 앉아서 머리 속으로 부모님이 당신의 어린 시절에 그리고 심지어 그 후에도 당신을 위하여 해주신 많은 일들을 “되새겨” 보는 것이 어떻겠는가? 이렇게 자문해 볼 것이다. 그분들이 아니었더라면 내가 지금 어디에 있을 것인가? 내가 부모님을 사랑스럽게 보살펴 드린다면, 그것은 자녀들에게 어떤 본이 될 것인가? 또한, 하나님께서는 내가 어떤 일하기를 원하시는가? 그분의 대답은 이러하다. “네 손이 선을 베풀 힘이 있거든 마땅히 받을 자에게 베풀기를 아끼지 말[라.]”—잠언 3:27.

[3면 삽화]

예수께서는 제자 ‘요한’에게 자신의 어머니를 보살피도록 부탁하셨다

[4면 삽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어렸을 때 받은 보살핌에 대하여 부모에게 보답해야 할 의무가 있다

[5면 삽화]

대부분의 노인들은 도움을 필요로 한다. 당신도 그들을 위하여 무엇인가 할 수 있겠는가?

[6면 삽화]

연로한 부모에게 당신의 사랑을 확신시켜 줄 때 그들은 위안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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