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치타워 온라인 라이브러리
워치타워
온라인 라이브러리
한국어
  • 성경
  • 출판물
  • 집회
  • 파81 08월호 30-33면
  • ‘가톨릭’이 천년기 희망을 앗아가다

관련 동영상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동영상을 불러오지 못했습니다.

  • ‘가톨릭’이 천년기 희망을 앗아가다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1
  • 소제목
  • 비슷한 자료
  • “천년기 신앙”에 대한 경멸
  • “교부들”의 증언
  • 누가 참으로 “사도적”인가?
  • 배교가 그리스도교 희망을 왜곡하다
  • 신 ‘플라톤’ 철학이 천년기 희망을 대신하다
  • ‘아우구스틴’이 “천년기가 없을” 것이라고 단정하다
  • 묵시—두려워할 만한 것인가, 고대할 만한 것인가?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99
  • 그리스도인들과 천년기 희망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1
  • 천년기 희망의 승리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1
  • 하나님의 왕국 통치 아래 있을 인류의 천년기—문자적이어야 할 이유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7
더 보기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1
파81 08월호 30-33면

‘가톨릭’이 천년기 희망을 앗아가다

천당 아니면 지옥! 얼마나 현격한 갈림길인가! 그러나 그러한 두 갈래의 전망만이 수많은 ‘가톨릭’교인들, ‘프로테스탄트’교인들, ‘유대’교인들 및 회교도들 앞에 놓여져 있다. ‘가톨릭’교인에게는 천당에 가는 길 도중에 연옥(煉獄)이 또 있다. 그러나 이러한 두려움과 이러한 희망은 매우 모호하기 때문에 많은 진실한 신자들은 그러한 것들이 근거가 있는지를 의심한다.

‘프랑스’의 종교 저술가 ‘쟈끄 뒤께스느’가 두 명의 ‘가톨릭’교인과의 다음과 같은 대화를 기록할 수 있었다는 것은 별로 이상한 일이 아니다. (남자에게) “당신은 지옥을 믿습니까?—아니오, 결코 믿지 않습니다! ·⁠·⁠·—그러면 천당은요? 지옥처럼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여자에게) “우리가 죽으면 어떻게 된다고 생각하십니까?—우리가 죽으면요? 글쎄요, 나는 몇년 동안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믿는 것을 중단하였어요.—무슨 뜻이죠?—살아남는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물론 누구나 육체가 죽는 것을 볼 수 있읍니다. 아마 영혼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모르겠어요. 정말 모르겠읍니다. ·⁠·⁠·—그러나 당신도 여전히 하나님을 확고히 믿고 있지요?—그렇고 말고요.—무엇 때문에 믿음을 갖게 되었읍니까?—희망을 갖기 위해서지요.”—「현대인들에게 있어서의 하나님」(불어)

‘가톨릭’ 교회가 그 신도들에게 확고한 믿음을 불러 일으키는 희망을 주지 못하였음이 매우 명백하다. 사실상, 그리스도교국의 모든 전통적 종교가 지금 거두고 있는 나쁜 열매들 얼마는 의심과 불신이다. ‘가톨릭’ 교세가 강한 많은 나라들에서 “천당”이라는 모호하고 불투명한 희망은 수백만의 사람들로 하여금 믿음을 잃고 지상에서의 품위있는 생활을 바라는 그들의 자연스럽고 정당한 욕망의 성취를 위해 공산주의로 향하지 않도록 막기에 불충분함이 입증되었다. 하늘에서의 “영원한 지복”이라는 불확실한 희망 대신에, 많은 사람들은 “칠십 평생” 지상에서의 행복한 생활에나 만족하려고 희망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러한 희망마저 허망하다는 것이 입증되고 있다.

“천년기 신앙”에 대한 경멸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미지근한 “그리스도인”들이 되어 그리스도인 희망의 성취보다도 눈 앞에 닥친 현실에 더 관심이 있다. 한 가지 이유는 그리스도교국의 교회들이 그 희망을 왜곡시켰기 때문이다. 그들은 천년기, 즉 그리스도의 1,000년 통치에 희망을 두는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을 경멸하는 말을 한다. 예를 들어, 매우 높이 평가되고 있는 방대한, 불어판 「가톨릭 신학 사전」은 “천년기 신앙”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메시야’의 일시적인 통치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믿는 그릇된 신앙, 때때로 그들은 그 길이를 천년이라고 생각한다. ·⁠·⁠· 5세기 이후로는 천년기 신앙이 더는 거론되지 않고 있는데, 극히 드물게 소수 야릇한 종파들이 거론하고 있다.”

그러나, 이 권위있는 ‘가톨릭’ 저서는 ‘메시야’의 1,000년 통치를 믿는 사람들을 경멸하는 말을 하면서도 천년기 신앙이 5세기 이전에는 거론되었었다는 것을 시인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천년기 희망은 5세기 중에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 이유는? 역사는 성서 자체의 계시, 즉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1,000년 통치를 믿었다는 것을 확증해 주는가? 그리고 만일 그러하다면, 수많은 ‘가톨릭’교인들 및 ‘프로테스탄트’교인들이 어떻게 하여 천년기 희망을 빼앗기게 되었는가? 유명한 참조 서적들과 역사 서적들이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답으로 어떠한 점을 알려 주는지 살펴 보도록 하자.

“교부들”의 증언

‘가톨릭’ 참고 서적들은 초기의 “교부”들 다수가 그리스도의 1,000년 통치, 즉 천년기를 믿었고 또 가르쳤다는 것을 인정한다. 「가톨릭 백과사전」은 이렇게 말한다. “나중에 ‘가톨릭’교인들 중에서, 성 ‘요한’[사도]의 제자인 ‘히에라폴리스’의 ‘파피아스’ 주교가 ‘천년기 신앙’의 옹호자로 등장하였다. 그는 자기의 교리를 사도 시대 사람들로부터 받았다고 주장하였다. ‘이레네우스’는 말하기를, 제자 ‘요한’을 보았고 그의 말을 들은 다른 ‘장로’들도 그로부터 천년기 신앙을 주(主)의 교리의 일부로 배웠다고 한다. ·⁠·⁠·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성 ‘바나바’(2세기 초)의 사도 서간에서 천년기 사상들을 찾아 볼 수 있다. ·⁠·⁠· 소 ‘아시아’ 출신으로 성 ‘폴리카르프’의 동료들의 영향을 받은 ‘리용’의 성 ‘이레네우스’는 천년기 사상들을 받아 들였고 자기 저서에서 ‘그노시수’파에 반대하여 그것을 논하고 옹호하였다. ·⁠·⁠· 순교자인 ‘로마’의 성 ‘주스틴’은 그의 저서 「‘트라이폰’과의 대화」(제80-81장)에서 ‘유대’인들에게 반대하여 천년기 교의(教義)를 옹호하고 있다. ·⁠·⁠· ‘아시아’ 지방에서 천년기 신앙이 계속된 것에 대한 증인은 성 ‘멜리도’, 즉 2세기의 ‘사르데스’의 주교이다. ·⁠·⁠·

“·⁠·⁠· ‘몬타누스’파의 주창자인 ‘터툴리안’은 그 교리를 설명하기를 ·⁠·⁠· 말세에는 약속된 위대한 왕국, 새 ‘예루살렘’이 설립되어 일천년간 계속될 것이라고 한다. 이 모든 천년기 신앙 저술가들은 구약의 예언서들의 여러 귀절들, 성 ‘바오로’의 편지들 중 몇 귀절 및 성 ‘요한’의 묵시록[계시록]에 호소하고 있다.”—‘고딕’체로는 본지에서.

누가 참으로 “사도적”인가?

‘프로테스탄트’ 교회들과 ‘여호와의 증인’보다 우월함을 보이기 위한 ‘로마 가톨릭’ 교회의 주요 논증들 중 하나는 자기들이 사도 시대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그리스도교 전통의 유일한 수호자라는 주장이다. 「가톨릭 사전」은 그 점을 이렇게 묘사한다. “‘로마’ 교회는 사도적이다. 그 교회의 교리는 한때 사도들에게 계시되었던 신앙이고, 그 신앙을 더하거나 빼는 일 없이, 수호하고 설명하기 때문이다.”—‘고딕’체로는 본지에서.

그러나, 「가톨릭 백과사전」이 천년기 희망을 가르친 것으로 예시한 사람들은 ‘가톨릭’ 교회 자체가 가장 오랜된 “교부”들 중에 끼는 사람들로 인정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 중 두 사람(‘폴리카르프’와 ‘파피아스’)은 사도 ‘요한’을 직접 보고 그의 말을 들은 것으로, 그리고 그리스도 자신과 다른 사도들을 알고 지낸 다른 제자들도 만난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예시된 기타 모든 사람들, 2세기 혹은 3세기 초의 “교부들”, 즉 “학자들”은 모두 그리스도의 1,000년 통치를 믿었다.

바로 그 권위있는 「가톨릭 신학 사전」은 ‘파피아스’보다 더욱 “지적”이고 “똑똑한” ‘파피아스’와 동시대 사람들도 “그의 천년 통치 신앙에 합세하여 그 믿음을 그리스도인 신앙의 필수적 교의 중 하나로 간주하였다”고까지 말하고 있다. 동 ‘가톨릭’ 참고서는 ‘주스틴 마터’에 관하여 말하기를, 그는 동시대 사람들 일부가 천년기에 대한 자기 견해에 함께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 문제에 있어서 자신을 “보다 ‘완전한 정통파 교리의 수호자’로 여겼다”고 한다. ‘이레네우스’에 관하여 그 사전은 이렇게 말한다. “그에게 천년기 신앙은 전통적 가르침의 일부이다. ·⁠·⁠· 성 ‘이레네우스’는 천년기 신앙 없이는 성경을 정확하게 설명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제 10권 1761, 1762난 (‘고딕’체로는 본지에서)

그러므로 누가 참된 사도적 가르침과 전통에 더 가까운가? 그리스도의 1,000년 통치를 여전히 믿고 있는 사람들을 ‘야릇한 종파’라고 얏보는 ‘로마 가톨릭’ 교회인가, 아니면 천년기 희망을 소중히 여기는 ‘여호와의 증인’인가? 어떻게 하여 그 희망이 ‘가톨릭’ 교리에서 빠지게 되었는가?

배교가 그리스도교 희망을 왜곡하다

앞 기사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통용 기원전 몇 세기 동안에 일어난 배교로 인하여 ‘유대’인들은 부활의 희망 대신에 선천적 영혼불멸에 대한 이교 신앙을 갖게 되었으며 그들의 본래의 ‘메시야’ 희망은 정치적 희망으로 바뀌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일어 날 것으로 예언되었던(사도 20:29, 30; 데살로니가 후 2:3; 요한 1서 2:18, 19) 배교가 일어나 천년기 희망을 왜곡시켰다.

‘유대’인 학자 ‘휴 J. 숀필드’는 이렇게 말한다.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땅의 왕국 희망으로부터 멀어지는 일은 2세기에야 비로소 성행하게 되었다.” “불변성, 충성 및 인내를 호소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훨씬 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환멸을 느껴, 교회를 떠나거나 그리스도교의 본질에 대해 땅에 고착된 해석을 덜 제시하는 그러한 선생들을 따르게 되었다.”

하늘의 ‘메시야’ 왕국 즉 정부를 통해 지상에 회복될 낙원을 기다리는 희망으로부터 이처럼 “멀어지는 일”에 관하여 「신약 신학 신 국제 사전」(제2권 “낙원”제하에서)은 이렇게 말한다. “교회 역사가 한층 더 흐르면서 많은 가외의 성서 주제들, 그림들 및 사상들이 낙원의 개념 속에 흡수되었다. ·⁠·⁠· 낙원에 대한 교회의 추측 및 대중적 경건에 대한 개념은 다음과 같은 사실과도 관련을 갖게 되었다. 즉 영혼불멸 교리가 들어와, 죽은 자의 부활의 희망과 새 창조를 수반하는(계시 21 f) 신약의 종말론을 대신하게 되었고, 그리하여 영혼이 사후에 심판을 받고 현재는 다른 세계처럼 생각되고 있는, 낙원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고딕’체로는 본지에서.

이처럼 희랍의 영혼불멸 교리의 침투로 배교한 그리스도인들은 낙원을 땅으로부터 하늘로 옮겨 놓았으며 본래의 천년기 희망을 버리게 되었다. 이 점을 확증하여 「브리타니카 백과사전」(1977년판)은 이렇게 시인한다. “그리스도교 신학에 미친 희랍 사상의 영향은 천년기 세계관을 침식하였다.”

신 ‘플라톤’ 철학이 천년기 희망을 대신하다

그 결과 천년기 희망은 배교에 희생이 되고 말았다. 그 적대자들은 그 희망과 투쟁하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천년기 신앙의 적대자들을 열거하면서, 「가톨릭 신학 사전」은 ‘로마’의 사제 ‘가이우스’(2세기말, 3세기초)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천년기 신앙을 이기기 위해 그는 묵시록[계시록] 및 성 ‘요한’의 복음서의 정전성을 명백하게 부인하였다.” 권위있는 동 ‘가톨릭’ 참고서는 3세기의 ‘알렉산드리아’ 주교인 “성” ‘디오니시우스’는 천년기 신앙을 반대하는 논문을 썼으며, “성 ‘요한’의 「묵시록」에 대한 믿음을 기초로 이 견해에 고착한 사람들을 방해하기 위해, 그 정전성을 부인하기를 망설이지 않았다”는 것도 알려 준다.

우리가 15권 ‘가톨릭’ 사전에서 한층 더 알게 되는 것은 3세기의 “교부”인 ‘오리겐’이 천년기의 지적 축복들을 믿는 사람들을 비난하였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성경을 ‘유대’인들처럼 해석”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오리겐’이 천년기 신앙을 그토록 반대한 그 밖의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가톨릭 백과사전」은 이렇게 알려 준다. “그의 교리들이 신 ‘플라톤’ 철학에 기초해 있었다는 것을 고려할 때 ·⁠·⁠· 그[‘오리겐’]는 천년기 신자들 편을 들어 줄 수가 없었다.” ‘플라톤’의 선천적 영혼불멸에 대한 믿음을 가졌던 ‘오리겐’은 ‘메시야’의 1,000년 통치의 지적 축복들을 영적 영역으로 옮겨 놓아야만 하였다.

‘아우구스틴’이 “천년기가 없을” 것이라고 단정하다

그러나 ‘가톨릭’ 및 ‘프로테스탄트’의 천년기 희망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한 사람은 의문의 여지 없이 “성” ‘아우구스틴’이었다. 「브리타니카 백과사전」은 “고대 그리스도교의 가장 위대한 사상가” 그리고 “신약 종교를 희랍 철학의 ‘플라톤’ 전통과 함께 거의 완전히 융합시켜버린 도가니”라고 묘사한다. ‘아우구스틴’은 그리스도의 1,000년 통치 기간에 지상에 회복될 낙원에 대한 본래의 희망을 정력적으로 반대하고 나섰다. 「가톨릭 백과사전」을 인용하면 이러하다. “성 ‘아우구스틴’은 마침내 천년기가 없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다. ·⁠·⁠· 그 위대한 학자는 ·⁠·⁠· 묵시록 20장에 대해 비유적 설명을 해 준다. 즉 이 장이 논하고 있는 첫째 부활은 침례를 통한 영적 재출생을 나타내는 것이고, 육천년 역사 후의 일천년간의 안식은 영원한 생명 전체를 말한다고 그는 말한다. ·⁠·⁠· 뛰어난 학자의 이러한 설명은 서방의 후계 신학자들에 의해 받아들여졌으며 보다 초기 형태의 천년기 신앙은 더는 지지를 못 받게 되었다.”

‘가톨릭’만 성경적인 본래의 천년기 희망을 그처럼 앗아간 것이 아니라, ‘프로테스탄트’도 그렇게 하였다. 1977년판 「브리타니카 대사전」은 이렇게 알려 준다. “‘아우구스틴’의 비유적 천년기 신앙은 교회의 공식 교리가 되었으며, 묵시 기대론[궁극적인 악의 멸망과 선의 승리에 대한 기대]은 지하로 들어갔다. ·⁠·⁠· ‘루터’교의 ‘프로테스탄트’ 개혁자들 ‘칼빈’주의자 및 영국 교회 전통들은 묵시 기대론자들이 아니었으며, ‘아우구스틴’의 견해에 확고히 부착해 있었다.”

‘가톨릭’ 및 ‘프로테스탄트’ 신학자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왕, 제사장 및 심판관들로서 다스리도록 불리움을 받는 제한된 수의 그리스도인들만을 위한 것으로 성서에 나와 있는 천적 희망을 의로운 사람들 모두에게 적용시키는 잘못을 범하고 있다. (계시 20:4-6; 누가 22:28-30) 이들 신학자들은 자기들의 “신자”들에게 하늘 곧 천당에서의 “영원한 지복”이라는 모호한 희망을 제시하고 있다. 하나님의 뜻을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시려는 그분의 목적은 그들의 기대 중에서 완전히 빠지게 되었다. (마태 6:10, 신세) 그러나 성서는 선택된 소수의 사람들을 위한 하늘에서의 영원한 생명만이 아니라, 셀 수 없이 많은 다른 사람들을 위한 지상에서의 영원한 생명의 놀라운 희망도 제시한다. 그리스도의 1,000년 통치 즉 천년기와 밀접히 관련되어 있는 이러한 이중적 희망은 다음의 두 기사에서 더욱 온전히 토론될 것이다.

[31면 삽화]

‘터툴리안’은 약속의 왕국이 설립되어 1,000년간 지속될 것으로 믿었다

[32면 삽화]

‘플라톤’의 영혼불멸을 믿은 ‘오리겐’은 땅에 대한 1,000년 통치를 부인하였다

[33면 삽화]

‘아우구스틴’은 희랍 철학에 성서의 가르침을 융합시켰으며 천년기는 없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한국어 워치 타워 출판물 (1958-2025)
    로그아웃
    로그인
    • 한국어
    • 공유
    • 설정
    • Copyright © 2025 Watch Tower Bible and Tract Society of Pennsylvania
    • 이용 약관
    • 개인 정보 보호 정책
    • 개인 정보 설정
    • JW.ORG
    • 로그인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