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숨김을 얻음
“여호와를 찾으며 공의와 겸손(온유, 신세)을 구하라 너희가 혹시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숨김을 얻으리라”—스바냐 2:3.
1. 우리는 오늘날 왜 ‘스바냐’의 이름과 예언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까?
‘여호와께 숨김을 얻음’—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예언자 ‘스바냐’의 이름 이면에 숨어 있는 뜻입니다. 그 이름은 “여호와께서 숨기셨다”를 의미합니다. 당신은 여호와께 숨김을 얻고자 원합니까? 당연히 그러해야 합니다. 그것은 오늘날 세상이 재난과 절망 속으로 더욱 깊이 빠져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의로우신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이러한 상태가 오래 계속되도록 허락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분의 ‘아마겟돈’의 날은 가깝습니다. 우리 모두는 ‘스바냐’의 예언에 깊은 관심을 갖지 않으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그 예언이 그 결정의 날에 관하여 많은 것을 알려 주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떻게 피난처를 발견할 수 있는지, 즉 ‘여호와께 숨김을 얻’을 수 있는지를 알려 줍니다.
2. 그 예언은 왜 영향력에 있어서 결코 미약하지 않습니까?
2 ‘스바냐’는 기원전 659년에 통치를 시작한 ‘유다’, ‘요시야’ 왕의 통치 초기에 예언을 하였읍니다. 이 때는 여호와께서 ‘유다’와 ‘예루살렘’을 황폐시키기 약 50년 전이었읍니다. ‘스바냐’는 그의 예언의 간결성 때문에 종종 “소 예언자들” 중 한 사람으로 불리웁니다. 그러나 그의 예언의 영향력은 결코 미약하지 않습니다. 그 예언은 ‘스바냐’ 시대에 무시될 수 없는 하나님의 소식을 담고 있었읍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20세기까지도 임박한 여호와의 맹렬한 분노의 날 동안 안전한 곳 발견하기를 바라는 모든 사람들이 마땅히 청종해야 할 강력한 경고를 하고 있읍니다. 그것은 사도 ‘베드로’가 “어두운 곳을 밝혀주는 등불”로 비유한 여호와의 강력한 “예언의 말씀”의 일부입니다.—베드로 후 1:19, 새번역; 또한 로마 15:4 참조.
3. (ㄱ) ‘스바냐’의 예언은 어떻게 즉각적인 유익을 가져왔읍니까? (ㄴ) 왜 그 상태는 계속될 수 없었읍니까?
3 ‘스바냐’는 충실한 왕 ‘히스기야’의 현손인 것 같습니다. 왕족 출신의 예언자로서 그가 ‘유다’ 방백들에게 여호와의 맹렬한 심판을 선포하는 데에는 참으로 담대하지 않으면 안되었을 것입니다. (스바냐 1:1, 8) 명백히도 그의 예언은 어린 왕 ‘요시야’ 시대에 유익한 결과를 가져왔읍니다. ‘요시야’는 나라에서 거짓 종교를 일소하였으며, “여호와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행한 모든 선한 일”로 잘 알려지게 되었읍니다. (역대 하 34:3, 14, 19, 33; 35:26) 그 결과, 여호와께서는 심판의 집행을 일시 동안 유예하셨읍니다. 그러나, ‘요시야’의 의로운 행로도 그의 백성이 빠져 있는 악을 제거하거나, “무죄한 자의 ··· 피로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한 그의 조부 ‘므낫세’의 죄를 속하지는 못하였읍니다. (열왕 하 24:3, 4) 여호와의 심판의 날은 다가왔읍니다!
“여호와의 말”
4. (ㄱ) 그 예언은 어떠한 결정적인 말로 시작됩니까? (ㄴ) 그것은 ‘유다’의 재난의 근원이 무엇임을, 그리고 어떻게 밝혀 줍니까?
4 여호와께서는 ‘스바냐’를 통하여 악을 완전히 종식시킬 것을 명백히 하셨읍니다. 그 예언은 이러한 말로 시작합니다.
“내가 지면에서 모든 것을 진멸하리라 ··· 여호와의 말이니라.”
여호와 보시기에 가증한 모든 것이 뿌리뽑혀 멸절될 것이었읍니다. 이 “말”은 ‘유다’의 재난의 이면에 무엇이 있는지를 매우 직접적으로 지적해 줍니다. 즉 거짓 종교가 있었읍니다! 여호와께서 계속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내가 ‘유다’와 ‘예루살렘’ 모든 거민 위에 손을 펴서 ‘바알’의 남아 있는 것을 그곳에서 멸절하며 ‘그마림’(외국 신)이란 이름과 및 그 제사장들을 아울러 멸절하며 무릇 지붕에서 하늘의 일월성신에게 경배하는 자와 경배하며 여호와께 맹세하면서 ‘말감’을 가리켜 맹세하는 자와 여호와를 배반하고 좇지 아니한 자와 여호와를 찾지도 아니하며 구하지도 아니한 자를 멸절하리라.”—스바냐 1:2-6.
5. (ㄱ) ‘바알’ 숭배는 왜 하나님의 백성 사이에 용납의 여지가 없었읍니까? (ㄴ) 그 숭배에는 어떠한 가증한 행위들이 수반되었읍니까?
5 참으로 악한 일이었읍니다! ‘유대’인들은 여호와께 대한 순결한 숭배를 버리고 주변 나라들의 ‘바알’ 숭배를 따랐읍니다. 인간 희생, 종교 의식으로서의 매음, 벙어리 우상 숭배, 물질적인 번영을 구하는 형식적인 기도가 수반되는 ‘바알’ 숭배는 여호와의 숭배자들에게 용납의 여지가 없었읍니다. (민수 25:1-5; 예레미야 7:30, 31; 11:17; 19:3-5) 거짓 종교는 그들이 온갖 종류의 그릇된 행실에 빠지게 하였읍니다. ‘유다’의 제사장들은 “외국 신 제사장”들과 친교를 맺음으로 첫째 계명을 범하였읍니다. (출애굽 20:2, 3) ‘므낫세’ 왕의 나쁜 본을 따라, 그들은 “하늘의 일월성신”을 숭배하였으며 영매자들에게 인도를 구하였읍니다. (역대 하 33:1-6) ‘어느 종교에나 좋은 점이 있다’는 거짓 전제에 따라, 그들은 우상 신 ‘말감’을 여호와와 동일시하였읍니다. 그들은 살아 계신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나갔기 때문에, “믿지 아니하는 악심”을 발전시켰읍니다.—히브리 3:12.
6. 우리는 ‘유다’와 오늘날의 그리스도교국의 행위 사이에서 어떠한 뚜렷한 상응점을 보게 됩니까?
6 오늘날 그리스도교국에는 어떠한 차이가 있읍니까? 그리스도교국의 나라들은 금세기 동안 전쟁이라는 제단 위에 수백만의 생명을 희생시킴으로 엄청난 유혈죄를 짓고 있읍니다. 그리스도교국 교직자들은 양편에서 그러한 전쟁들을 지지하였읍니다. 그러므로 유혈죄는 그들에게 있읍니다. (예레미야 2:34, 35 비교) 온갖 종류의 성적 부도덕에 빠진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그리스도교국의 사람들은 혼전 성, 난잡한 성 관계, 아내 교환, 이혼, 동성애와 같은 일에 빠져 있으며, 많은 교직자들까지도 그러한 행위를 못본 체하거나 묵과하기까지 함을 보게 됩니다. 성서의 표준과 얼마나 상반됩니까!—고린도 전 6:9, 10; 히브리 13:4.
7. (ㄱ) 오늘날 우리는 배교한 유대인들이 행한 강신술 및 연합 신앙과 관련하여 어떠한 평행점을 발견할 수 있읍니까? (ㄴ) 이 점에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에는 어떠한 시기에 적절한 충고가 있읍니까?
7 점성술, 복술, 영매술—이러한 것들도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 가운데서 보게 됩니다. ‘모든 종교는 동일한 목적지로 인도한다’는 구실로 오늘날의 그리스도교국에는 연합 신앙 운동이 만연해 있읍니다. 거짓 종교의 미신들이 성서와 혼합되어 있읍니다. 이렇게 하여, 일년에 한 번 자기의 죽음을 기념하라는 예수의 명령에 순종하는 대신, 그리스도교국은 관능적인 사랑의 여신, ‘아스다롯’(‘아스타르테’, 희랍어)의 이름을 딴 부활절(Easter)을 강조하며, 토끼 및 부활절 달걀과 같은 다산의 의식 및 상징물들을 혼합시켰읍니다. 그러한 습관에 빠진 사람들은 사무엘 상 7:3의 훌륭한 충고를 따르는 것이 마땅합니다.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 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 섬기라. 너희를 ··· 건져내시리라.” 그렇습니다, 우리가 여호와의 입증의 날에 참여하도록 초대받는 사람들 가운데 끼기를 원한다면, 여호와와 그분의 말씀 및 그분의 요구 조건에 존경심을 나타내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스바냐’가 이렇게 말한 바와 같습니다.
“주 여호와 앞에서 잠잠할찌어다. 이는 여호와의 날이 가까왔으므로 여호와가 희생을 준비하고 그 청할 자를 구별하였음(초대받은 자를 거룩하게 하셨음, 신세)이니라.”—스바냐 1:7.
8. “여호와의 말씀”은 어떤 위험한 생각에 대하여 경고합니까?
8 ‘스바냐’ 시대에 여호와의 숭배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에 대한 그분의 시험은 철저하였읍니다. 따라서 여호와의 말씀은 이렇게 계속됩니다.
“그때에 내가 등불로 ‘예루살렘’에 두루 찾아 무릇 찌끼같이 가라앉아서 심중에 스스로 이르기를 여호와께서는 복도 내리지 아니하시며 화도 내리지 아니하시리라 하는 자를 벌하리[라.]” (스바냐 1:1, 12)
그러한 자기 중심적인 사람들은 현 상태로 만족하였읍니다. 그들은 아무도 그들의 포도주 통에 있는 찌끼를 휘젖는 것을 원하지 않았읍니다. 그들은 오늘날의 믿음 없는 그리스도교국과 같았으며, ‘지금이 참으로 “마지막 날”이라는 증거가 어디 있는가?’ 하고 여호와를 숭배하는 일에서 떨어져 나간 사람들과 같았읍니다. 그러한 생각은 ‘스바냐’ 시대에 비참한 결과에 이르렀읍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 시대에는 훨씬 더 큰 재난이 될 수 있읍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전세계 사물의 제도의 끝을 직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베드로 후 3:3, 4, 10.
9. ‘유다’의 날에서와 같이, 지금 물질적이 아니라 영적인 견해를 발전시키는 것이 왜 그렇게 중요합니까?
9 그러한 믿음 없고, 물질주의적인 사람들에 대하여, 여호와께서는 계속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들의 재물이 노략되며 그들의 집이 황무할 것이라, 그들이 집을 건축하나 거기 거하지 못하며 포도원을 심으나 그 포도주를 마시지 못하리라.” (스바냐 1:13)
세상적 소유물들은 하나님의 심판 날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날 그러한 물질을 추구하는 대신에, 성경적인 인생관을 배양하고, 젊은이들이 여호와께 대한 전 시간 봉사를 위하여 자신을 준비시키는 것이 얼마나 더욱더 실제적이겠읍니까! ‘보물을 땅에 쌓’는 대신에 ‘하늘에 있는 보물’을 선택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행복합니다!—마태 6:19-21; 전도 12:1; 디모데 전 6:6-8.
“큰 날이 가깝도다”
10, 11. 여호와께서는 어떻게 그리고 왜 그의 큰 날을 ‘재촉’하십니까?
10 다음에, 주권자이신 주께서는 친히 이렇게 보증하십니다.
“여호와의 큰 날이 가깝도다. 가깝고도 심히 빠르도다.”—스바냐 1:7, 14.
11 아무도 하나님께서 이 악한 세상을 심판하시는 것이 먼 장래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다. 오늘날, 지상에 있는 전 인류 생명이 파멸의 위협을 받고 있지만, 여호와께서는 그것을 묵과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이 핵 시대의 광란을 종식시킬 분은 정치성을 띤 인간들이 아니라, 주권자이신 주 여호와이십니다. 그분은 ‘아마겟돈’의 날을 ‘재촉’하실 것입니다. 그 심판의 집행을 방해하려는 어떤 “능한 사람”도 비참하게 울부짖지 않을 수 없읍니다. 여호와께서 친히 이렇게 선언하시기 때문입니다.
“그 날은 분노의 날이요 환난과 고통의 날이요 황무와 패괴의 날이요 캄캄하고 어두운 날이요 구름과 흑암의 날이요 나팔을 불어 경고하며 견고한 성읍을 치며 높은 망대를 치는 날이로다.”—스바냐 1:15, 16.
12. 그날에 선택적인 멸망이 있을 것임에 대하여 왜 우리는 기뻐할 수 있읍니까?
12 이 군사화된 세상의 요새가, 핵 ‘미사일’ 공격은 방어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여호와의 하늘 병기고에 있는 무기들에 대하여는 무익할 것입니다. 더욱이 ‘다윗’의 예언적인 말과 일치하게 멸망은 선택적이 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는 다 보호하시고 악인은 다 멸하시리로다.” (시 145:20) 참으로 그 날은 여호와 앞에서 존경심을 가지고 잠잠하지 않는 자들에게, 무서운 심판의 날이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스바냐’를 통하여 다음에 이렇게 선언하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사람들에게 고난을 내려 소경같이 행하게 하리니 이는 그들이 나 여호와께 범죄하였음이라. 또 그들의 피는 흘리워서 티끌같이 되며 그들의 살은 분토같이 될찌라.”—스바냐 1:17.
13. 그 분노의 날에 어떠한 투자들이 무익할 것입니까?
13 그 날에는 심지어 “중립”국에 있는 거액의 은행 구좌, 비장해 둔 금, 방대한 재산 투자, 또는 지하 은신처가 어떤 도움이 될 것입니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을 것입니다! 주권자이신 주 여호와께서 그 점을 명확히 하시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들의 은과 금이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능히 그들을 건지지 못할 것이며 이 온 땅이 여호와의 질투의 불에 삼키우리니 이는 여호와가 이 땅 모든 거민을 멸절하되 놀랍게 멸절할 것임이니라.” (스바냐 1:18)
이 최종 판결 날에는, ‘온 땅’이 하나님의 최종 심판 집행에 포함될 것입니다. 그러나 살아 남는 길이 있읍니다! 그것은 어떠한 길입니까?
“모일찌어다”
14. (ㄱ) ‘유다’와 (ㄴ) 그리스도교국이 스바냐 2:1의 호소를 청종하지 않은 어떠한 증거가 있읍니까?
14 자기 백성에 대한 마지막 호소에서와 같이, 하나님의 예언자는 장래의 생존자들에게 지금 이렇게 강권하고 있읍니다.
“수치를 모르는 백성아 모일찌어다 모일찌어다” (스바냐 2:1)
그러나 ‘유다’는 한 민족으로서 이 호소에 우호적인 반응을 나타냈읍니까? 기원전 607년의 그 민족에 대한 여호와의 맹렬한 처형은 그들이 그렇게 하지 않았음을 알려 줍니다. 그들은 계속 수치스러운 행로를 고집하였읍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였기 때문에 생존한 개인들, 즉 ‘예레미야’, ‘에벳멜렉’ 및 ‘요나답’ 가문의 사람들을 포함한 ‘유다’인과 다른 사람들이 있었읍니다. (예레미야 39:11, 12, 16-18; 35:18, 19) 상황은 오늘날도 비슷합니다. 뻔뻔스럽게도 그리스도교국은 ‘여호와의 증인’이 그 전 영역에 걸쳐서 선포한 왕국 소식을 반대하였읍니다. 그들은 열국의 유일한 희망으로서 그리스도 예수에 의한 하나님의 왕국을 배척하고 그 대신 인간이 만든, 오늘날 국제 연합이라고 알려진 대용물을 지지하였읍니다. 그리스도교국이 모이는 일은 오직 ‘아마겟돈’의 멸망으로 향하는 일뿐입니다.—시 2:2, 3; 계시 16:13-16,
15. 현대에 다른 어떤 모으는 일이 진행되어 왔읍니까?
15 그러나, 또 다른 모으는 일이 지금 우리가 처해 있는 “말일”에 진행되어 왔읍니다. 첫째로, 주로 그리스도교국으로부터 참다운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을 모으는 일이 있었읍니다. 그 후에 “모든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언어에서” 임박한 환난을 통과해 생존할, 셀 수 없는 “큰 무리”를 모으는 일이 뒤따랐읍니다. (계시 7:1-4, 9, 14, 새번역; 이사야 2:2, 3) 누가 이 “큰 무리”를 구성합니까? 그들은 하나님의 예언자의 충고를 청종하는 일에 기꺼이 겸손함을 나타내는 온유한 사람들입니다.
16, 17. 지금 어떠한 ‘카운트 다운’이 진행중에 있으며, 따라서 생존을 위하여는 어떠한 외침에 응하지 않으면 안됩니까?
16 냉엄하게도, ‘아마겟돈’을 향해서 ‘카운트 다운’이 진행중에 있읍니다. 따라서 이 온유한 자들에 대한 이러한 하나님의 예언자의 경고는 시기에 적절합니다.
“명령이 시행되기 전, 광음이 겨같이 날아 지나가기 전, 여호와의 진노가 너희에게 임하기 전, 여호와의 분노의 날이 너희에게 이르기 전에 그리할찌어다.”
우리는 행동하지 않으면 안됩니다!—스바냐 2:2.
17 마치 믿음없는 ‘예루살렘’이 기원전 607년에 멸망당한 것과 같이, 동일한 이유로 그리스도교국이 멸망되어야 한다는 것이 여호와의 법칙이자 명령입니다. (에스겔 22:3-5) 그리스도교국은 유혈죄를 지었으며, 그 교직자들은 여호와의 법을 버렸읍니다. 그리스도교국의 종교는 거짓 종교 세계 제국인, 큰 ‘바벨론’의 일부입니다. 그에 대하여 사도 ‘요한’은 이렇게 기록하였읍니다. “네 복술을 인하여 만국이 미혹되었도다.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및 땅 위에서 죽임을 당한 모든 자의 피가 이 성 중에서 보였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를 갈망하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외침이 발하여진 것도 당연한 일입니다.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계시 18:4, 23, 24.
‘여호와를 찾으라’
18. 온유한 자들은 그 이상 어떠한 행동을 취해야 합니까?
18 그러나, 세상과 그 거짓 종교로부터 분리해 있는 것으로 충분합니까? ‘스바냐’는 온유한 사람들이 그 이상의 적극적인 행동을 취해야 한다고 알려 줍니다.
19. ‘여호와를 찾’는 데에는 무엇이 수반됩니까?
19 첫째로, 하나님의 예언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는 세상의 모든 겸손한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스바냐 2:3ㄱ)
그들은 여호와를 알고,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설명해 주신 바와 같이 그분의 놀라운 특성 및 목적에 대하여도 알고자 찾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들이 겸손히 이렇게 할 때,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와 같이 큰 상이 따르게 됩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요한 1:18; 17:3) 그들이 여호와를 찾는 일은 그들로 ‘온 마음, 영혼, 정신 및 힘’을 다하여 그분을 사랑하게 할 것이며,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요구하시는 “거룩한 봉사”를 수행하는 데 있어서 예수의 본을 따르게 할 것입니다.—마가 12:29, 30, 신세; 베드로 전 2:21; 마태 4:17; 계시 7:15.
20. 우리는 어떠한 종류의 의를 구해야 하며, 어떠한 확신을 가지고 그렇게 해야 합니까?
20 다음에, ‘스바냐’는 이렇게 말합니다.
“공의(의, 신세) ··· 를 구하라.” (스바냐 2:3ㄴ)
위선적인 자기의 의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정확한 지식과 일치한 것이 아니라면 “하나님께 열심”이 있어도 아무 유익이 없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의에 자신을 복종시키기 위하여 그분의 의를 알지’ 않으면 안됩니다. 우리는 자신의 생활을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표준에 일치시켜야 하며 “참다운 의와 충성으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창조된” 그리스도인 인간성을 입어야 합니다. (로마 10:2, 3; 에베소 4:22-24, 신세) 이 참다운 의와 충성은 세상의 방종한 생각이나 방식이 우리의 생활에 스며들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예수께서 교훈하신 바와 같이, 우리는 “[하나님의] 왕국과 그의 의를 계속 첫째로 구”하고, 우리가 그분을 섬길 때, 그분은 우리의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필수품을 공급해 주실 것이며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우리를 보호해 주실 것임을 확신해야 합니다.—마태 6:31-33, 신세.
21. (ㄱ) 그 예언은 온유의 특성을 어떻게 강조합니까? (ㄴ) 이 점에 있어서, 우리는 무엇을 주의깊게 경계해야 합니까?
21 세번째로, 여호와의 예언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겸손[온유, 신세]을 구하라.” (스바냐 2:3ㄷ)
이미 ‘스바냐’는 그의 예언을 청종할 사람들을 ‘세상의 온유한 자들’이라고 묘사하였읍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는 이 특성을 거듭 강조하고 있읍니다. 우리가 거만하고, 강압적이고, 독단적이고, “자아 제일” 주의적인 태도를 나타내는 세상에 둘러싸여 있으므로, 계속 “온유를 구”하는 것은 참으로 필수적인 일입니다! 이러한 태도 가운데 얼마가 우리에게 스며들 위험성은 언제나 존재합니다. 우리는 경계해야 하며, 언제나 여호와와 그분의 조직으로부터 나오는 징계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자신을 그분의 뜻에 순응시킬 필요가 있읍니다. 우리는 결코 “일단 구원받으면 아주 구원받는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구원의 상은 ‘진리에 계속 거하는’ 자들을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잠언 22:4; 요한 8:31, 32; 요한 3서 3, 4.
22. (ㄱ) ‘스바냐’는 왜 “혹시”라고 말합니까? (ㄴ) ‘여호와께 숨김’을 받는 자들의 최종 결과는 어떠할 것입니까?
22 “세상의 모든 온유한 자들”에게 ‘스바냐’는 이제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혹시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숨김을 얻으리라.” (스바냐 2:3ㄹ)
왜 “혹시”입니까? 최종 구원은 개인의 행로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신 바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이 날에 겸손히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모든 온유한 사람들은 인내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에는 그분의 설립된 이 왕국의 좋은 소식을 모든 민족에게 증거하기 위하여 사람이 거주하는 온 땅에 전파하는 일이 포함되어 있읍니다. (마태 24:13, 14) 이렇게 함으로, 우리는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여호와께 숨김’을 받는 사람들 가운데 끼게 될 것입니다. 시편 필자 ‘다윗’은 그러한 사람들에 대하여 이렇게 기록합니다. “오직 온유한 자는 땅을 차지하며 풍부한 화평으로 즐기리로다.”—시 37:11.
[10면 네모]
“시간 문제일 뿐이다”
전 미국 대통령 ‘지미 카터’는 퇴임사에서 핵무기에 대하여 이렇게 시인하였다. “그 위험성은 더욱 증대되고 있읍니다. 초강대국들의 병기고가 그 크기와 정밀성에 있어서 증강되고 있으며, 다른 정부들이—미래에는, 아마도 수십개 정부들이—이러한 무기들을 보유하게 됨에 따라, 광기, 절망, 탐욕 또는 오판이 그 무시무시한 힘을 쏟아 놓을 것은 단지 시간 문제일 뿐입니다.” 그리고 세상에는 이미 광기가 만연해 있다! 1981년 1월 31일자 ‘뉴우요오크’ 「타임즈」지 사설은 초강대국들이 “군비를 억제하는 데 많아야 일년”이 있으며, 그렇지 않으면 “핵무기 제한에 대한 예지할 수 있는 모든 기회를” 놓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