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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교가 긴장 요소를 완화시킬 수 있는가?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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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2
파82 3/15 4-8면

종교가 긴장 요소를 완화시킬 수 있는가?

압제, 굶주림, 하락하는 도덕 표준, 마약 남용, 핵 전쟁의 위협—이러한 것들은 일부 종교 교역자들로 된 정치 행동파가 제시하는 쟁점들의 일부이다. 확실히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나 그러한 문제들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정치 관여가 세계적인 긴장 요소들을 완화시키는 방법인가?

종교 지도자들이 정치에 관여하는 이유는 “도덕적인 풍조”를 조성하거나 정부가 “잘못된 행로”를 취할 때 경고해 주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마저 잘못된 행로를 취하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예를 들어, 최근에 ‘세르비아’ 애국심으로 인해 한 ‘세르비아’인 사제는 미국 주재 ‘유고슬라비아’ 영사의 집을 폭파하였다. 확실히 그러한 ‘테러’ 행동은 잘못된 것이며, 특히 사제가 범한 것일 때는 더욱 그러하다! 그의 동기야 어떠한 것이든, 사제는 하나님을 대표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그분을 믿는 사람들 모두에게 이렇게 명백한 주의를 주고 있다.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라.] ·⁠·⁠·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로마 12:19) 그 사제와 같은 행동은 일부 종교들이 베풀려고 노력하고 있는 도덕적인 인도를 약화시킨다.

심지어, ‘가톨릭’ 교회 내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혁명에 참여하는 사제들과 수녀들에 대해 심각한 의혹을 품고 있다. ‘콜롬비아 예수회’의 한 신자는 이렇게 말하였다. “무장 반란에서 일차로 고통을 받게 되는 사람들은 교직자나 주교들이 아니라, 바로 가난한 사람들일 것이다. 우리가 그러한 사태를 어떻게 지지할 수 있는가?” 교황도 특정한 정치 행동파를 진정시키려고 노력하여, 양떼를 반란을 위해 조직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영적 필요를 위해 봉사하는 것이 사제 혹은 수녀의 임무라고 말하였다.

‘세계 교회 협의회’가 혁명 단체들에게 준 기증금 역시 그와 비슷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그러한 기금을 받는 단체들 중 일부가 선교인들을 박해한 기록을 가지고 있음이 드러났을 때는 더욱 그러하였다! 구세군은 그 쟁점으로 인해 그 협의회에서 탈퇴하였다.

미국의 ‘프로테스탄트’ 압력 단체들까지도 비난을 받고 있다. 한 잡지 편집인은 이렇게 진술하였다. “기독교 권리 활동들에서, 예수의 남아있는 자취라고는 그의 이름뿐이다.” 그 편집인은 그러한 사람들이 정치에 관여함으로써 종교 교직자라기보다는 비양심적인 정치가들처럼 행동하고 있다고 느꼈음이 명백하다. 이것은 성서 필자 ‘야고보’의 훈계, 즉 참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도록 지켜야 한다는 훈계가 생각나게 한다.—야고보 1:27.

이처럼, 종교의 행동파는 생각있는 사람들의 머리에 난해한 의문들이 생기게 한다. 그러나 종교 지도자들이 정부의 특정한 정책들에 대해 “신중한” 조언을 하는 것에서 자신을 제한한다면 어떠한가? 이것조차 문제들을 일으킨다. 이들 지도자들은 서로 상반되는 조언을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긴장 요소들을 해결하는 데 아무런 도움도 안 된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어떤 종교가들은 군비 축소를 권유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자기네 나라가 “창세 이래로 가장 강력한 군대”를 보유하게 되기를 바라고 있다. ‘도덕적 다수파’는 “미국의 생존”과 미국의 자본주의 체제의 “생존”을 위해 진력한다. 그러나, ‘세계 교회 협의회’의 한 관리는 이렇게 기술하였다. “인류를 멸망, 쇠퇴, 착취 및 압제로부터 구출하기 위해서는 세계 혁명이 필요하다. 그러한 것들은 자본주의 체제의 산물이다.” 그는 계속하여 ‘쿠바’식의 그 “세계 혁명”을 찬양하였다.

성도덕 문제들에서까지도 종교 지도자들은 각기 다른 견해를 피력한다. 그러니 문외한들이야 어느 것이 지켜야 할 “도덕” 표준이고 어느 것이 피해야 할 “잘못된 행로”인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옳고 그른 것”은 자기가 태어난 나라, 자기가 속해 있는 정당, 자신의 피부색, 혹은 자신의 경제 상태에 따라 정해지는가? 아니면, 하나님께서는 어느 곳의 누구나에게 적용되는 표준을 세워 놓으셨는가?

여러 모로 종교의 정치 관여는 세상사에 “경건한” 요소를 이끌어 들이기는커녕, 혼란만 야기시켰다. 이것은 종교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없음을 의미하는가? 종교는 세상의 긴장 요소들을 완화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는 바가 없는가?

기여할 수 있는 최상의 방법

사실, 참 종교는 놀라웁게 기여할 수 있다. 그러나 기여할 수 있는 바가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몇 가지 기본적인 사실들을 이해해야 한다.

우선, 진정한 가치를 지니려면 종교는 인간이 아닌 하나님의 견해로 말해야 한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가? 성서는 이렇게 말한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디모데 후 3:16, 17) 교역자가 자기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다면, 그가 손에 성서를 들고 있다할지라도, 그 의견은 다른 사람의 의견보다 더 나을 것이 없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것이 참으로 성서, 즉 “성경”에 나와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하나님의 생각을 대표한다.

둘째로,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요한 18:36) 그러므로 성서에 기초한 참 종교는 세상의 정치에 대하여 중립을 지킨다. 그것은 어떤 나라, 인종, 정치 체제 혹은 경제 정책을 지지하지도 반대하지도 않는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의 어떤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의 왕국을 지지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께서 그 당시 ‘유대’인들과 ‘로마’인들 사이의 끊임없이 들끓는 논쟁에서 어느 편도 들지 않으신 것처럼, 이 세상의 정치적 논쟁에서 어느 편도 들지 말아야 한다.—마가 12:17.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처럼, 예수께서는 능력껏 병자와 가난한 자들에게 물질적인 도움을 베푸셨다. 그러나 그분은 정치에 관여하시지는 않았다. 그분의 주된 일은 “왕국의 좋은 소식”을 전파하는 것이었다. (마태 9:35) 이 동일한 “좋은 소식”을 전파하는 것이야말로 오늘날의 처신하기 어려운 세계 상태를 볼 때 그리스도인이 자기 이웃을 도울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이다.

왜 이것이 정치에 관여하는 것보다 더 나은가? 왜냐하면, 현실주의자라면 누구나 인정하지 않을 수 없듯이, 일부 정치가들의 부지런하고 진실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문제들은 결코 정치적인 조처로 온전히 해결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빈곤, 질병, 부패 및 기타 온갖 불행을 없애는 데는 초인간적인 권위와 능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성서가 설명하듯이, 그러한 일을 성취하실 유일한 분은 자기의 왕국, 즉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하는 자기의 하늘 정부를 통하여 그렇게 하실 하나님뿐이시다.—예레미야 10:23; 다니엘 2:44.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 추종자들에게 주신 사명은 세상의 정치가들에게 영향을 가하라는 것이 아니라, 제자를 삼으라는 것이었다. 오늘날 그들은 사람이 거주하는 온 땅에 “이 왕국의 좋은 소식”을 전파함으로써 그렇게 하고 있다. (마태 24:14, 신세) 그들은 인류에게 그 왕국이 왜 긴장 요소들을 없앨 것인지, 그리고 우리는 그 때가 현재 매우 가까왔음을 어떻게 아는지를 알려 주어야 한다. 그들의 일은 다른 사람들에게 그 왕국이 현재와 미래에 공히 내려 줄 축복들에 관해 알려 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되어 그러한 축복들에 참여할 수 있게 되도록 도와 주어야 한다.—마태 28:19, 20; 디모데 전 4:8; 계시 21:3, 4.

이 소식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최대의 가치가 있다. 그것은 그들의 가장 난해한 의문들을 없애주고, 현재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긴장 요소들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며, 그리하여 “모든 생각보다 뛰어난 하나님의 평화”를 얻는 방법을 그들에게 알려 준다.—빌립보 4:6, 7, 신세.

그것으로 충분한가?

그것으로는 불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세속주의와 부도덕이 난무하고 있는 한 서방 나라에서 정치 활동을 하는 한 교역자는 이렇게 말하였다. “그리스도인들이 강인한 행동파 태도를 갖지 않으면 안될 것 같다. ·⁠·⁠·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끝장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사람들이 정치 활동가들이 되지 않으면 그리스도교는 무너지고 말 것인가?

가난한 나라의 일부 선교인들도 “좋은 소식”을 전파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사람들이 지금 도움을 필요로 한다고 믿고 있다. 그리하여 그들은 혁명 활동들에 참여한다. 그러나 확실히 현존하는 정부를 전복하려는 어떠한 기도도 다음과 같은 성서의 교훈에 위배된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로마 13:1) 그것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던 예수와 그분의 가까운 추종자들의 행동과도 정 반대된다. (요한 17:16) 그것은 긴장 요소들을 증가시킬 뿐이다.

예수께서는 자기 추종자들에게 이렇게 약속하셨다.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마태 28:20) 예수께서 죽으신 다음, 제1세기 중에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한 사람들은 그 약속을 믿었다. 그들은 정치에서 떠나 있었다. 그리고 박해받고 무신앙으로 둘러싸여 있었지만, 그리스도인 믿음은 생존하였다.

오늘날에도 예수께서는 여전히 자신의 추종자들과 함께 하신다. 그분은 그리스도인들이 정치에 관여하지 않아도 여전히 참 그리스도교를 보존하실 수 있다. 그리고 오늘날,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자기들이야말로 세상을 변화시켜야 할 사람들이라고 여긴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시켜 이 땅을 행복하고 긴장에서 벗어난 사람들로 가득한 낙원으로 변화시키실 것이다.—다니엘 2:44; 계시 21:4.

그러나 세상의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좋은 소식”으로 충분한가? 극동에서 수년동안 선교인으로 일한 한 ‘여호와의 증인’은 이렇게 말하였다.

“빈곤을 보고 슬퍼지는 때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가 가난한 사람들로 반란을 일으키도록 고무했더라도, 그것이 무슨 도움이 되었겠는가? 다음 정부는 좀 더 잘할 것이라고 누가 보장할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우리는 더 잘할 것으로 우리가 확신하는 정부, 곧 하나님의 왕국으로 주의를 이끌었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이 이 왕국에 관한 좋은 소식을 받아들였을 때 그들은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를 지각하게 되었다. 그들은 그분이 참으로 자기들을 돌보고 계심을 느꼈으며 그분이 자기들의 생명이 위험에 처했을 때 어떻게 도와 주시는가를 체험하였다. 이로 인하여 그들은 품위와 장래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었다.”

중앙 ‘아메리카’에서 수년간 “왕국의 좋은 소식”을 전파한 또 다른 ‘여호와의 증인’도 그의 말에 동의하였다. 그는 이렇게 부언하였다. “‘좋은 소식’을 받아들인 가난한 사람들은 그들이 이전에 가졌던 미신 관습, 그리고 흡연, 도박, 술취함 및 빈랑을 씹는 것 등과 같은 악습들을 내버렸다. 그리고 그들이 자기들의 자원을 보다 잘 활용하게 되기 때문에 그들의 물질적 형편이 종종 개선되는 때도 있다. 그리고 그들이 영적인 것들을 그들의 생활에서 첫째 자리에 둠에 따라, 물질적인 빈곤은 그들에게 덜 무거운 짐이 되었다. 그들은 더는 부유한 사람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기들이 부유한 많은 사람들이 갖지 못한 것을 가지고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만연한 불경건, 만연한 압제와 굶주림 및 현 사물의 제도의 다른 불행들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이러한 문제들이 끊임없이 존재한다는 것은 인류에게 하나님의 왕국이 절실하게 필요함을 나타내 준다. 이것은 행복한 미래를 맞이하고자 하는 사람 누구나가 가질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다. 그리고 성서에 기초한 참 그리스도교만이 사람들이 그것에 믿음을 두도록 실제로 도움을 베풀고 있다. 그렇게 하는 것이야말로 현대의 긴장 요소들을 완화시키는 데 현재로서 줄 수 있는 최상의 도움을 베푸는 것이다.

[6면 삽화]

예수께서는 자기 추종자들에게 정치 활동가가 되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제자들을 삼으라고 가르치셨다

[7면 삽화]

성서의 소식은 사람들이 그들의 생명이 위기에 처하였을 때 이겨낼 수 있도록 도와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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