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교를 물리치고 진리에 고착하라!
“지내쳐 그리스도 교훈 안에 거하지 아니하는 자마다 하나님을 모시지 못하되 교훈 안에 거하는 이 사람이 아버지와 아들을 모시느니라.”—요한 2서 9.
1, 2. (ㄱ) ‘사단’은 여호와의 백성 가운데 있는 진리의 빛을 소멸시키기 위하여 종종 어떠한 노력을 기울였읍니까? (ㄴ) ‘여호와의 증인’들이 배교를 물리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여호와 하나님은 영적 진리의 근원이십니다. 그러므로 시편 필자는 합당하게도 그분에게 “주의 빛과 주의 진리를 보내[소서]”라고 기도하였읍니다. (시 43:3) 따라서 여호와의 참 숭배자들을 식별시켜 주는 표는 바로 진리입니다.—요한 8:31, 32; 17:17.
2 여호와의 백성들 가운데 있는 진리의 빛을 소멸시키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사단’ 마귀는 종종 그리스도인 회중을 배교적인 가르침을 통하여 부패시키려고 애써 왔읍니다. (고린도 후 4:1-6; 유다 3, 4) 그러나 ‘사단’의 이러한 시도는 실패해 왔읍니다. 그 이유는 여호와의 충실한 증인들이 배교를 물리치고 영적 진리에 고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 및 예수 그리스도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려면, 그렇게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이렇게 기술하였기 때문입니다. “지내쳐 그리스도 교훈 안에 거하지 아니하는 자마다 하나님을 모시지 못하되 교훈 안에 거하는 이 사람이 아버지와 아들을 모시느니라.”—요한 2서 9.
3. 우리는 요한 2서와 3서를 고려해 봄에 따라 어떤 질문들에 대한 답을 얻게 될 것입니까?
3 하지만 배교를 저항하기 위하여 ‘여호와의 증인’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리고 그들은 “진리 안의 동료 일군들”로서 그리스도인 관심사를 어떻게 증진시킬 수 있읍니까? (요한 3서 8, 신세) 그 대답을 얻기 위해 우리는 기원 98년 경에 소 ‘아시아’의 ‘에베소’ 근처에서 써 보낸 사도 ‘요한’의 두번째와 세번째 영감받은 서한들을 고려해 보도록 합시다.
진리와 사랑이 필수적이다
4, 5. (ㄱ) 사도 ‘요한’이 자신을 가리켜 “연로자”라고 부른 것이 합당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택하심을 입은 부녀”와 그의 “자녀”는 누구였읍니까?
4 ‘요한’은 그의 두번째 서한을 이러한 말로 시작하였읍니다.
“장로[연로자, 신세]는 택하심을 입은 부녀와 그의 자녀에게 편지하노니 내가 참으로 사랑하는 자요 나뿐 아니라 진리를 아는 모든 자도 그리하는 것은 우리 안에 거하여 영원히 우리와 함께할 진리를 인함이로다.”—요한 2서 1, 2.
5 제1세기 말경에 사도 ‘요한’은 실로 연령이 대략 100세 정도에 이른 “연로자”였으며, 또한 매우 원숙한 영적 장성과 연륜을 가진 장로의 한 사람이기도 하였읍니다. (갈라디아 2:9 비교) “택하심을 입은 부녀”라고 말했을 때, 그는 어떤 밝혀지지 않은 장소에 있던 특정한 회중을 지칭한 것이었을지 모르며, 그러한 말을 사용한 것은 박해자들을 교란시키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그럴 경우에 그의 “자녀”는 영적 자녀들로서 그 회중의 성원들이자 하늘의 부르심을 받고 하나님에 의해 “택하심을 입은” 영으로 출생한 그리스도인들이었을 것입니다. (로마 8:16, 17; 빌립보 3:12-14) 한편, ‘쿠리아’(“부녀”를 뜻하는 희랍어)는 어느 그리스도인 여인의 개인 이름이었을지도 모릅니다.
6. (ㄱ) ‘요한’이 말한 “진리”란 무엇입니까? (ㄴ) “진리”가 어떻게 순수한 그리스도인들 안에 거하며, 그들과 “영원히” 함께 있읍니까?
6 여하튼, ‘택하심을 입은 부녀와 그의 자녀’는 ‘요한’과 “진리”를 알게 된 기타 모든 여호와의 증인들에게 진실로 사랑을 받았읍니다. 그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전체 가르침이었읍니다. 그 진리에 고착하는 것은 구원을 위해 필수적인 일이었읍니다. (요한 4:24; 에베소 1:13, 14; 요한 1서 3:23) 고금을 통하여 여호와의 증인들 간에 사랑이 존재하는 기본적인 한 가지 이유는 그들이 “진리”에 대한 공통적인 사랑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진리가 그들의 마음 속에 계속 머물러 있다는 점에서 그것은 그들 “안에 거”합니다. 이 진리는 한결같은 동반자로서 그러한 순수한 그리스도인들과 “영원히” 함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참으로 오늘날 ‘여호와의 증인’들의 귀중한 소유이며, 그들은 그것에 대하여 천적 아버지께 감사하고 있읍니다.
7. 과분하신 친절, 자비 및 평화가 어떻게 하나님과 그리스도 두분에게서 옵니까?
7 “진리”에 충실하게 고착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축복이 보장되어 있읍니다. 그 사도는 그 점을 지적하여 이렇게 부언하였읍니다.
“은혜[과분하신 친절, 신세]와 긍휼[자비, 신세]과 평강[평화, 신세]이 하나님 아버지와 아버지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진리와 사랑 가운데서 우리와 함께 있으리라.” (요한 2서 3)
죄많은 인간들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과분하신 친절, 신세]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는 점에서 과분하신 친절은 여호와와 예수 두분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로마 3:23, 24) 그와 비슷하게, 천적 아버지는 자비의 근원이시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자비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불완전한 인간들에게 이르게 됩니다. (히브리 4:14-16; 유다 20, 21) 이에 더하여, 여호와와 평화로운 관계를 갖기 위해서는 죄인들이 그들의 죄를 속죄받을 필요가 있으며, 이 일은 대속 희생으로서의 예수의 죽음을 통하여 가능하게 되었읍니다.—골로새 1:18-20.
8. 요한 2서 3절에 나오는 “진리와 사랑 가운데서”라는 말은 무엇을 의미한 것일 수 있읍니까?
8 ‘요한’은 “진리와 사랑 가운데서”라는 말을 덧붙였읍니다. 그가 그렇게 말한 것은 순수한 그리스도인들이 ‘진리와 사랑과 더불어’ 과분하신 친절, 자비 및 평화를 즐기고 있음을 말한 것일지 모릅니다. 혹은 ‘요한’은 여호와의 종들이 진리 안에 거하고 계속 사랑을 나타낸다면, 이러한 축복들을 맛보게 될 것이라는 의미로 말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진리와 사랑 가운데서 행함’
9, 10. (ㄱ) ‘요한’에게는 왜 ‘심히 기뻐할’ 이유가 있었읍니까? (ㄴ) 진리에 관하여 어떻게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읍니까?
9 그 사도는 자신이 개인적으로 기뻐할 이유를 들면서 또한 건전한 훈계를 베풀어 이렇게 덧붙였읍니다.
“너의 자녀 중에 우리가 아버지께 받은 계명대로 진리에 행하는 자를 내가 보니 심히 기쁘도다. 부녀여, 내가 이제 네게 구하노니 서로 사랑하자. 이는 새 계명 같이 네게 쓰는 것이 아니요 오직 처음부터 우리가 가진 것이라.”—요한 2서 4, 5.
10 ‘요한’에게는 크게 기뻐할 이유가 있었읍니다. 왜냐하면 “진리에 행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믿음을 두고 있었고 서로에 대한 사랑을 가지고 있었으며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내신 본을 따르는 데 진력하고 있었읍니다. (히브리 12:1-3; 요한 1서 3:23) 만일 ‘요한’이 ‘쿠리아’라는 이름의 여인에게 편지를 보낸 것이라면, 그의 육적 자녀들 가운데 얼마는 진리 안에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자녀” 혹은 “택하심을 입은 부녀”라는 말을 상징적인 의미로 사용한 것이라면, 그가 기뻐할 수 있었던 것은 밝혀지지 않은 장소에 있던 회중의 일부 성원들이 배교를 저항하고 진리에 고착하며 여호와께 대한 충실한 생활을 추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실로 충성스러운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들은 진리에 고착하는 일 즉 진리에 “행하는” 일을 항상 그들의 의무로 여겨 왔읍니다. 그들에게는 이것이 그들의 천적 아버지의 계명이며, 그들은 그것을 지키는 것을 짐스럽게 여기지 않습니다.—비교 요한 1서 5:3.
11. (ㄱ)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지키는 데는 무엇이 요구되었읍니까? (ㄴ) ‘요한’이 이것은 ‘새 계명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11 그 사도는 그 “부녀”에게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지킬 것을 부탁하였읍니다. (요한 1서 3:11 비교) 독실한 사람들에 대한 여호와의 뜻을 피력하시면서 예수께서는 자기의 제자들에게 ‘자기가 그들을 사랑한 것 같이 서로 사랑하라’고 명령하셨읍니다. 그 계명은 이웃을 사랑할 뿐 아니라 또한 다른 사람을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내어 줄 정도로 자기 희생적인 사랑을 요하였읍니다. (레위 19:18; 마태 22:39; 요한 10:14, 15; 13:34; 15:13) 그 계명은 그들이 하나님과 헌신한 관계에 들어가던 “처음부터”—사실상, 예수께서 맨 처음 그 계명을 주신 이래, 분명히 기원 33년 오순절에 그리스도인 회중이 설립되던 당초부터 그리스도의 추종자들에게 구속력이 있었읍니다. 바로 그러한 의미에서 그것은 ‘요한’이 말한 바와 같이 ‘새 계명이 아니’었읍니다.
12. ‘요한’이 ‘계명은 이것이니 너희가 그것 가운데서 계속 행하라’고 말했을 때, 그가 뜻한 바는 무엇이었읍니까?
12 사랑에 관해 말하면서 ‘요한’은 이렇게 부언하였읍니다.
“또 사랑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 계명을 좇아 행하는 것이요 계명은 이것이니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바와 같이 그[그것, 신세] 가운데서 행하라 하심이라.” (요한 2서 6)
참 숭배자들은 그들이 여호와를 온 마음과 영혼, 힘 및 정신을 다하여 사랑하기 때문에 그분께 기꺼이 순종합니다. (누가 10:27, 신세) “처음부터” 즉 예수께서 봉사를 하신 때부터 혹은 그들이 하나님께 헌신하였을 때부터 ‘요한’의 편지를 받은 사람들은 사랑에 관한 계명을 받고 있었읍니다. 그러나 그 사도가 ‘계명은 이것이니 ··· 너희가 그것 가운데서 계속 행하라’고 말했을 때, 그가 뜻한 바는 무엇이었읍니까? “그것”이 사랑에 관한 “계명”을 가리키는 말일 수도 있지만(신 영어 성서) “사랑” 그 자체를 가리키는 말일 가능성이 짙습니다. 그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이든, ‘그것 가운데서 행하라’는 것은 서로 사랑을 계속 나타내라는 의미였읍니다.—요한 1서 3:18; 비교 로마 13:8-10.
배교자를 경계하라
13. (ㄱ) 어떤 사람들 가운데서 “속이는 자”들이 개종자들을 얻으려고 애썼읍니까? (ㄴ) “속이는 자”들은 무슨 거짓 가르침을 퍼뜨리고 있었읍니까?
13 사랑과 진리 가운데서 계속 행하기 위해서는 노력이 요구되었을 것입니다. 그 이유를 설명하면서 ‘요한’은 이렇게 기술하였읍니다.
“미혹하는 자[속이는 자, 공동번역]가 많이 세상에 나왔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것이 미혹하는 자[속이는 자, 공동번역]요 적그리스도니[라.]” (요한 2서 7)
분명히 일부 거짓 선생들은 참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서 개종자들을 얻으려고 애쓰면서 두루다니고 있었읍니다. (비교 사도 20:30) 비록 그들 스스로는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였지만, 이들 “속이는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한 인간으로서 육체로 오셨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한 거짓 가르침은 하늘로 높여진 예수의 지위를 포함하여 메시야와 대속주로서의 그분의 역할을 아예 부인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마가 1:9-11; 요한 1:1, 14; 빌립보 2:5-11.
14. ‘요한’이 배교자들을 “속이는 자이고 그리스도의 적”이라고 부른 이유는 무엇입니까?
14 ‘요한’은 이들 배교자들을 “속이는 자이고 그리스도의 적”(공동번역)이라고 칭하였읍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가르침은 기만적이었으며 그들은 스스로 그리스도를 반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사도가 “많은 적그리스도”라고 한 사실로 보아 그리스도의 적이 된 개인들의 수가 많았음을 알 수 있읍니다. 그러나 그들 모두는 “적그리스도”라고 지칭된 하나의 복합적인 사람을 구성하고 있었읍니다. (요한 1서 2:18) 예수가 그리스도이시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부인하는 것은 그분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 가운데 일부 혹은 전부를 부인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충실한 여호와의 증인들은 그러한 거짓 선생들의 견해를 완전히 물리칩니다.
15. (ㄱ) 스스로 ‘삼가함’으로써, 영으로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은 무슨 “온전한 상”을 얻게 될 것입니까? (ㄴ) 여호와의 증인 누구나가 배교적인 가르침을 경계해야 할 이유는 무엇입니까?
15 진리에서 돌아서서 배교하는 것은 위험하므로 ‘요한’은 이렇게 강권하였읍니다.
“너희는 너희를 삼가 우리의 일한 것[수고하여 얻은 것, 공동 번역]을 잃지 말고 오직 온전한 상을 얻으라. 지내쳐 그리스도 교훈 안에 거하지 아니하는 자마다 하나님을 모시지 못하되 교훈 안에 거하는 이 사람이 아버지와 아들을 모시느니라.” (요한 2서 8, 9)
“좋은 소식”을 전파한 수고의 결과로 ‘요한’과 그 외의 사람들이 “얻은” 열매는 당시에 이 서한을 받을 사람들이 개종한 것이었었읍니다. 그러나 그들 자신이 영적으로 ‘삼가함’으로써만 그들은 여호와와 그분의 아들로부터 나오는 과분하신 친절, 자비 및 평화를 “잃지” 않을 것이었으며, 또한 진리와 사랑 가운데서 함께 결속된 모든 사람들과의 동료 관계를 지속하게 될 것입니다. 충실하기만 하면, 영으로 기름부음받은 ‘요한’의 동료 신자들은 여호와께 대한 보람있는 봉사를 계속 즐기게 될 것입니다. ‘요한’이 “온전한 상”에 관해 이야기한 의도 가운데는 분명히 기름부음받은 충실한 그리스도인들이 받게 되는 하늘의 “면류관”이 포함되어 있었읍니다. (계시 2:10; 고린도 전 9:24-27; 디모데 후 4:7, 8; 야고보 1:12) 물론, 여호와의 증인은 누구나 배교적인 가르침을 물리쳐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들에게서, 천적인 것이든, 지적인 것이든, 영원한 생명을 앗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16. (ㄱ) 배교자들은 어떻게 ‘지내치’고 있읍니까? (ㄴ) 충실한 여호와의 증인들은 어떻게 “아버지와 아들을 모시”고 있읍니까?
16 배교자인 “속이는 자”들은 ‘지내쳐’ “그리스도 교훈 안에 거하지” 아니하였읍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수와 그분의 충실한 사도들이 가르쳐 준 진리에 고착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 이단자들은 여호와와 연합해 있지 않고 그분과 아무 관계도 맺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을 모시지” 못하였읍니다. (요한 1서 1:5, 6; 2:22-25) 그러나 충실한 여호와의 증인들은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시인’합니다. 그들은 그분의 대속 희생에 대한 믿음을 실천하며 그분과 그분의 충성스러운 사도들이 가르쳐 준 것에 고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태 20:28; 디모데 전 2:5, 6; 요한 2서 7) 이들 순수한 그리스도인들은 진리에 고착하고 있으며, 그리하여 그들은 아버지와 아들을 알고 그분들의 특성을 인식하고 그분들과의 친밀한 관계를 계속 즐김으로 말미암아 “아버지와 아들을 모시”고 있읍니다.
배교자들에 대한 태도
17. 요한 2서 10, 11에 의하면, 충성스러운 그리스도인들은 “속이는 자”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였읍니까?
17 그리스도인들은 후대하는 정신을 가져야 하지만, 참다운 믿음에서 떠난 배교자들에 대하여는 그렇지 않습니다. (베드로 전 4:9) ‘요한’은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이 점을 분명히 하였읍니다.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말라. 그에게 인사하는 자는 그 악한 일에 참예하는 자임이니라.” (요한 2서 10, 11)
“속이는 자들”은 두루 다니면서 거짓 가르침을 극성스럽게 퍼뜨렸읍니다. 물론, 어떤 헌신한 그리스도인이 이들 거짓 선생들을 자기 집에 맞아들임으로 동료감을 나타내는 것은 그릇된 일이었을 것입니다. 배교자들의 방문을 환영한다거나 그들이 떠날 때 “성공을 빈다”는 등, 여하한 종류의 인사를 하는 것 역시 부당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흠정역) 충실한 그리스도인이라면, 고의적으로 거짓 가르침을 조장하는 자가 그의 일에 성공하기를 원치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두말할 나위없이, 충성스러운 여호와의 증인들은 그러한 개개인들과 교제하지 않을 것입니다.—고린도 전 5:11-13.
18. 충성스러운 여호와의 증인들은 배교자에게 왜 인사조차 하지 않을 것입니까?
18 더구나 어떤 헌신한 여호와의 종이 그처럼 속이는 선생을 자기 집에 맞아들인다면, 그는 그 사람의 “악한 행실”의 “공범자”가 될 것입니다. (신 영어 성서) 그러므로 현대의 충성스러운 여호와의 증인들은 제명되었거나 이탈한 배교자에게 인사하거나 그가 자기의 그리스도인 집을 그릇된 교리를 퍼뜨리기 위한 장소로 사용하도록 허락치 않을 것입니다. 만일 믿음 안에 있는 어떤 사람이 배교자를 후대하고 그 결과로 어떤 여호와의 동료 숭배자가 영적으로 죽게 된다면, 그는 하나님 앞에 심각한 책임을 지게 될 것입니다.—비교 로마 16:17, 18; 디모데 후 3:6, 7.
19. 충성스러운 여호와의 증인들은 현대의 배교자들에 대하여 어떠한 태도를 취합니까?
19 한 때 ‘여호와의 증인’으로 봉사했던 사람들 가운데 얼마의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사도들의 가르침에 근거한 여러 가지 성경적 견해를 배척해 왔읍니다. 예를 들어, 그들은 현존하는 압도적인 증거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마지막 날”에 살고 있지 않다고 주장합니다. (디모데 후 3:1-5) 이들 배교자들은 ‘우리에게서 나갔지만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한 자들이었읍니다. (요한 1서 2:18, 19) 그러므로 그들은 기름부음받은 충성스러운 여호와의 증인들 및 그들의 동료들과 더는 벗 관계에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때문에 이들 이기적인 이단자들은 그들이 제아무리 하나님 및 그리스도와 친밀한 관계를 누리고 있다고 자랑할지라도 아버지 및 아들과 ‘사귀고’ 있지 않은 것입니다. 오히려 그들은 영적 암흑 속에 있읍니다. (요한 1서 1:3, 6) 빛과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이들 거짓 가르침을 조장하는 자들에 대하여 확고한 태도를 취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어떤 면으로든, 충성스러운 여호와의 증인들은 그처럼 불충실한 자들의 불경한 말과 행실을 여하한 방식으로든 지원함으로써 그런 자들의 “악한 행실”에 공범이 되기를 원치 않을 것입니다. 도리어 우리는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워야 할 것입니다.—유다 3, 4, 19.
진리에 고착하라
20. ‘요한’은 글로 쓰는 것보다 어떻게 하기를 희망하였읍니까?
20 동료 신자들에게 배교를 물리치고 진리에 고착하도록 강권한 다음에, ‘요한’은 그의 두번째 서한을 다음과 같은 말로 끝맺었읍니다.
“내가 너희에게 쓸 것이 많으나 종이와 먹으로 쓰기를 원치 아니하고 오히려 너희에게 가서 면대하여 말하려 하니 이는 너희 기쁨을 충만케 하려 함이라. 택하심을 입은 네 자매의 자녀가 네게 문안하느니라.” (요한 2서 12, 13)
그는 아직 자기 마음 속에 남아 있는 것을 글로써 전달하기를 원치 않았읍니다. 그래서 그는 ‘파피루스’ 종이와 자기의 갈대 붓 및 먹(아마 고무진, 그을음, 물의 검은색 혼합물)을 치웠읍니다.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곳을 찾아가 “면대하여” 즉 문자적으로 “입과 입으로” 이야기하여 친밀한 대화를 나누고 싶었읍니다. (왕국 행간 번역; 민수 12:6-8 비교) 이 연로한 사도의 방문은 확실히 풍성한 즐거움과 더불어 영적으로 매우 유익한 격려를 교환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비교 로마 1:11, 12.
21. 요한 2서의 끝맺는 말에서는 무엇을 역력히 볼 수 있읍니까?
21 여호와의 숭배자들을 함께 단합시키는 그리스도인 사랑을 ‘요한’의 인사말에서 역력히 볼 수 있읍니다. 만일 그가 ‘쿠리아’라는 이름을 가진 일 개인에게 편지한 것이라면, 그 여자에게는 분명히 육친의 자매가 있었으며 그의 육적 자녀들이 안부를 보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편지한 대상이 (아마 ‘에베소’에 있는) 또 다른 회중을 시사한 것이라면, 그가 말한 “자매”는 전체 회중을, 그리고 “자녀”는 그 회중의 개개인 성원들을 지칭한 말이었을 것입니다.
22. (ㄱ) ‘요한’의 두번째 영감받은 서한은 ‘여호와의 증인’들이 어떻게 하도록 도움을 줍니까? (ㄴ) 아직도 무슨 문제를 논할 필요가 있읍니까?
22 ‘요한’은 자기의 두번째 영감받은 서한에서 직선적으로 동료 신자들이 배교를 물리치고 진리에 고착하는 데 도움이 될 사랑에 넘친 교훈을 베풀었읍니다. 바로 오늘날의 ‘여호와의 증인’들은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 그렇게 하기로 굳게 결심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협력하는 “진리 안의 동료 일군들”로서 그리스도인 관심사를 증진시키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요한 3서 8, 신세) 이 일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당신은 대답할 수 있는가?
◻ ‘진리 가운데서 행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 “속이는 자”들은 무슨 거짓 가르침을 퍼뜨리고 다녔는가?
◻ 요한 2서 10, 11에 의하면, ‘여호와의 증인’들은 배교자들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17면 삽화]
충성스러운 여호와의 증인들은 언제나 배교를 배척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