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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들 하나님인가, “하나님의 아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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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들 하나님인가, “하나님의 아들”인가?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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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4
파84 4/15 14-18면

아들 하나님인가, “하나님의 아들”인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태 16:16.

1. (ㄱ) 많은 교인들은 예수에 관해 어떠한 견해를 가지고 있읍니까? (ㄴ) 예수께서는 이와 관련하여 무슨 흥미있는 말씀을 하신 일이 있읍니까?

예수는 하나님이었읍니까? 그리스도교국 교회의 많은 성원들은 그렇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하나님”이라고 부르신 분이 계시다는 것을 아십니까? 직접 성서 요한 복음 20:17을 펴서 그 귀절 뒷부분에 나오는 예수 자신의 말씀을 읽어 보십시오.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그 말에 놀랐다면, 아마 성서가 예수와 하나님에 관해 알려 주는 몇 가지 다른 사실들에 대해서도 놀랄 것입니다.

2. 성서는 그 외에도 예수와 하나님과의 관계에 관하여 무슨 흥미있는 점들을 알려 줍니까?

2 잠시, 예수의 탄생을 ‘마리아’에게 알린 천사에 대해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마리아’의 아기가 하나님이 될 것이라고 하지 않고 “하나님의 아들”이 될 것이라고 하였읍니다. (누가 1:35) 그리고 성경은, 어떤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하나님 자신”이 대속물로 제공하기 위해 땅에 오셨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셔서 그렇게 하게 하셨다고 말합니다.—갈라디아 4:4, 5; 요한 1서 4:9, 10.

3, 4. (ㄱ) 그리스도교국의 삼위일체 교리는 ‘베드로’와 침례자 ‘요한’이 한 말과 어떻게 일치하지 않습니까?

3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자기를 누구라고 믿느냐고 질문하신 일이 있읍니다. ‘시몬 베드로’는 “주는 하나님”이라고 대답하였읍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말하였읍니다. 예수는 ‘베드로’를 시정하셨읍니까? 그렇지 않으셨읍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마태 16:15-17.

4 하나님은 삼위일체라고 믿는 종교 저술가들은 “아들 하나님”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그러나 침례자 ‘요한’은 예수를 “아들 하나님”이라고 부르지 않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렀읍니다. 예수의 제자들은 “당신은 아들 하나님입니다”라고 말하지 않고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라고 말하였읍니다. 이 두 가지 말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읍니다.—요한 1:34; 마태 14:33.

아버지가 더 크신가?

5. 예수의 하늘에서의 지위에 관하여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읍니까?

5 성서는 예수의 인간 이전 존재에 관하여 알려 줍니다. 그분은 ‘아브라함’이 나기 전에 존재하셨고, “창세 전에” 하늘의 아버지와 함께 계셨으며, 그분은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로서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었읍니다. (요한 17:5; 8:58; 골로새 1:15-17) 예수께서는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형주]에 죽으”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읍니다. 성서는 또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께서] ·⁠·⁠·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 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니라.]”—빌립보 2:8, 9; 에베소 1:17, 20, 21.

6-8. 예수께서 아버지와 관련된 자기의 지위에 관해 어떻게 말씀하신 것들이 있읍니까?

6 그러나 예수께서는 동등됨이 아니라 거듭거듭 아버지께 대한 복종을 나타내셨읍니다. 그분은 아버지께서 자기를 보내셨으며, 아버지께 가르침을 받았으며, 말할 것을 아버지께서 지시하신다고 말씀하셨읍니다. (요한 3:17; 5:36; 6:38; 12:49, 50) 예수께서는 아버지가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었다고 말씀하시고 자기 추종자들도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 알”게 되었다고 말씀하셨읍니다.—요한 17:4, 6, 18, 25.

7 심지어 예수의 원수들조차도 그분이 자기가 하나님이라고 말했다고 비난하지 않았읍니다. 그들은 그분이 하나님을 자기 아버지라고 부르심으로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셨다고 말하였읍니다. 그들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예수를 죽이려고 하였읍니다. “하느님을 자기 아버지라고 하시며 자기를 하느님과 같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정말 잘 들어 두어라. 아들은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고 그대로 할 뿐이지 무슨 일이나 마음대로 할 수는 없다.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아들도 할 따름이다.”—요한 5:18, 19, 공동 번역.

8 예수께서는 자기의 드높여진 지위에도 불구하고 사도들에게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니라”고 말씀하셨읍니다. (요한 14:28) 어떤 사람들은 그것이 단지 예수께서 아직 지상에 계셨기 때문이며 이제는 그분이 승천하여 하늘에 계시므로 더는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서는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

9. ‘바울’은 부활되신 예수와 하나님의 차이를 어떻게 알려 주었읍니까?

9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에도 그분의 추종자들은 계속 아버지는 아들보다 크시다고 가르쳤읍니다. 20여년 후에 ‘바울’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에 관하여 기술하였읍니다. (로마 15:6, 새번역) 그 말을 주의 깊이 살펴보십시오. ‘바울’은 예수의 하나님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아버지와 예수 사이만이 아니라 하나님과 예수 사이도 항상 구분하고 있읍니다. 그는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관해 쓰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의 편지에 나오는 전형적인 인사의 말은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로마 1:7; 고린도 전 1:3; 고린도 후 1:2; 갈라디아 1:3; 에베소 1:2; 빌립보 1:2) ‘바울’은 또한 그리스도가 하나님이라고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하나님을 완벽하게 대표하고 있다고 기술하기도 하였읍니다. (고린도 후 4:4) 그러나, 하나님은 삼위일체라고 믿는, 「리빙 바이블」의 번역자는 이 귀절을 “하나님이신 그리스도”(Christ, Who is God)라고 바꾸어 놓았읍니다. 그러나 그것이 실제와 다르기 때문에 난외주에 “문자적으로는 ‘하나님의 형상이신’”(Leterally, ‘Who is the image of God’)이라고 달아 놓았읍니다.

10. 「계시록」은 예수와 하나님 사이의 차이를 어떻게 알려 줍니까?

10 성서 「계시록」도 예수와 아버지 사이만이 아니라 예수와 하나님 사이도 구분하고 있읍니다. 「계시록」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것이라.]” (계시 1:1) 예수께서 승천하신 지 60여년이 지난 때인데도 「계시록」은 높여지신 하늘의 예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는 것으로 인용하고 있읍니다. “이기는 자는 내가 내 하나님의 성전의 기둥이 되게 할 것이요 ·⁠·⁠· 나는 내 하나님의 이름과 내 하나님의 도시,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또 나의 새 이름을 그 사람 위에 쓰겠다.”—계시 3:12, 새번역.

11. 성서의 마지막 장에는 예수와 하나님이 어떻게 구분되어 있읍니까?

11 성서의 마지막 장에 이르기까지 하나님과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는 계속 구분되어 있읍니다. 그 마지막 장에서 찬란한 새 ‘예루살렘’의 거대한 하늘 보좌는 가상적인 삼위일체의 보좌가 아니라,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 묘사되어 있읍니다. (계시 22:1, 3) 이러한 말들이 그 말의 원 뜻이 아닌 다른 뜻이 있는 것으로 만들려고 애쓰도록 가르침받아 오지 않았다면 그러한 말들은 이해하기 어렵지 않은 말들입니다.

“권능의 우편”

12. (ㄱ) 예수께서는 자신이 부활된 후에 어떤 위치에 있게 될 것이라고 설명하셨읍니까? (ㄴ) 시편 110:1은 예수께서 여호와가 아니심을 어떻게 알려 줍니까?

12 예수를 죽일 이유를 찾던 그분의 적들은 그분이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느냐고 물은 것이 아니라,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를 질문하였읍니다. 그분은 이렇게 대답하셨읍니다. “네게 말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마태 26:63, 64) 그보다 일찌기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은 ‘다윗’의 말을 인용하여 자신에게 적용시키셨었읍니다.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으라 하셨도다.” 예수께서는 자신이 여호와라거나 어떤 비성경적인 삼위일체의 일부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자기는 하나님의 때와 목적이 이루어져 가는 것을 기다리면서 여호와의 우편에 있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읍니다.—시 110:1; 마태 22:42-44.

13. ‘스데반’은 믿음을 위해 순교하기 직전에 무엇을 보았읍니까?

13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 때문에 순교한 최초의 사람인 ‘스데반’은 하늘에 계신 부활되신 예수에 관한 환상을 보았읍니다. 그는 예수께서 하나님이 되신 것 혹은 삼위일체의 한 부분이 되신 것을 보았읍니까? 그렇지 않았읍니다. 예수와 ‘다윗’이 예언한 바대로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예수를 보았읍니다. 「리빙 바이블」에는 ‘스데반’이 “하나님 곁에, 즉 그분의 우편에서 계신 메시야 예수를” 보았다고 되어 있읍니다.—사도 7:55, 56.

14. ‘다니엘’의 환상은 “인자 같은 이”에 관하여 무엇을 알려 줍니까?

14 이것을 보여 주는 더 큰 장면이 ‘다니엘’이 본, 옛적부터 항상 계신 분에 관한 찬란한 환상 가운데 들어 있읍니다. ‘다니엘’은 이렇게 기술하였읍니다. “내가 또 밤 이상 중에 보았는데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 부터 항상 계신 자에게 나아와 그 앞에 인도되매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로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라. 옮기지 아니할 것이요 그 나라는 폐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다니엘 7:13, 14) 예수는 옛적부터 항상 계신 분 즉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었읍니다. 예수는 인자(人子)였읍니다. 그리고 이 인자가 하늘에 계신 자기 아버지 앞으로 가까이 인도되어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받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들이 그를 섬기게’ 되었다는 점에 유의하십시오.—비교 마태 25:31.

15. 「계시록」은 이 큰 무리가 무엇을 알고 있음을 알려 줍니까?

15 성서의 「계시록」은, 모든 민족과 언어로부터 나와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는 큰 무리가 하나님과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 사이의 차이를 아는 사람들일 것임을 명백히 알려 줍니다. 그들은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다고 찬양의 함성을 외치기 때문입니다. 이에 더하여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의 ‘시온’ 산에 서 있는 144,000명은 “그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을 가지고 있읍니다.—계시 7:9, 10; 14:1.

누구의 아들인가?

16. 예수께서 ‘유대’인들이 자기들의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분이 바로 자기 아버지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들은 어떻게 이해하였읍니까?

16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알고 있었읍니다. 그들은 다음과 같은 예수의 말씀이 누구에 관한 것인지 알고 있었읍니다. “내게 영광을 돌리시는 이는 내 아버지시니 곧 너희가 너희 하나님이라 칭하는 그이시라.” (요한 8:54) 이 하나님은 누구였읍니까? 그들이 그 이름을 여전히 발음하였든 발음하지 않았든 간에, 그들은 성경 사본들에서 그분의 이름을 보았으며, 그 이름은 회당의 두루마리들에 들어 있었고 그들이 읽고 사용한 희랍어 「칠십인역」 성서 번역판에 ‘히브리’ 글자로 표기되어 있었읍니다. (“그리스도인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이름” 6면 기사 참조) 여호와는 예수의 또 다른 이름이 아닙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을 자기의 친 아버지”라고 부르시고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 칭하셨을 때, 그 말을 들은 ‘유대’인들은 그분이 ‘히브리’ 네 글자 YHWH로 쓰이는 이름을 가진 분의 아들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임을 이해하였읍니다. 그분은 자기가 여호와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아들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요한 5:18; 11:4.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새 언약

17, 18. (ㄱ) 새 언약에 관한 ‘예레미야’의 예언에는 무슨 중요점들이 들어 있으며, 그 예언은 얼마나 중요한 것입니까? (ㄴ) 이 언약의 중보는 어떻게 하셨읍니까?

17 새 언약에 관한 ‘예레미야’의 중요한 예언은 ‘유대’인들만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들도 여호와의 이름을 위할 백성이 되게 되어 있었음을 알려 줍니다. ‘히브리’어 원문에 나오는 대로 하나님의 이름을 제대로 사용한 성서 번역판이라면 그곳은 다음과 같이 되어 있읍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 ·⁠·⁠·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예레미야 31:31-34.

18 그리스도인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영적 ‘이스라엘’과 세우신 이 새 언약을 논하는 데 「히브리서」의 4개 장(7-10장)을 할애하고 있읍니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피를 통해 유효하게 된) 이 언약을 세우신 분이라고 시사하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그리스도께서 그 언약의 “중보”라고 말합니다. 그것을 세우신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었읍니다. ‘바울’은 그 중보에 관해 이렇게 기술하였읍니다. “그리스도께서는 ·⁠·⁠· 오직 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셨느니라.]”—히브리 8:6; 9:15, 24.

19. 이 예언은 누가 그리스도인 새 언약 안에 있는 사람들의 하나님이 될 것이라고 말합니까?

19 ‘예레미야’는 누가 새 언약 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하나님이 될 것이라고 말합니까? 여호와라고 하였읍니다! ‘내가 세우겠다’, ‘내가 두겠다’,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겠다’고 말씀하신 분은 여호와이십니다. 그리고 이 예언은 새 언약 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 관해 이렇게 말합니다.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 ·⁠·⁠·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러므로 참으로 그리스도인 새 언약 안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그리고 그들과 연합한 다른 충실한 그리스도인들—여호와를 알고 섬기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400여년 전에 ‘존 캘빈’은 이렇게 기술하였읍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알라’는 이 말은 믿음의 첫째 요소를 지적하는 말이다.”—「예언자 예루살렘의 책과 애가서 주해」 136면, ‘존 캘빈’ 저, ‘존 오웬’ 역.

상황의 변화

20. 예수의 말씀을 듣던 사람들은 무엇을 깨달을 필요가 있었읍니까?

20 예수 시대에 그분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을 알고 있었읍니다. 그들의 조상들은 여호와를 숭배하였고 그들 가운데는 여호와의 전이 있었읍니다. 그들이 인식할 필요가 있었던 것은 예수를 공경하고 따르는 것의 중요성이었읍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모두가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 같이 아들을 공경”해야 하며 “아들을 공경치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를 공경치 아니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읍니다.—요한 5:23.

21, 22. (ㄱ) 이러한 상황은 오늘날 어떻게 정반대가 되었읍니까? (ㄴ) 우리는 무엇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까?

21 오늘날의 상황은 정반대가 되었읍니다. 그리스도교국의 교회의 성원들은 아들에 관하여는 대단히 많이 말하지만 “그를 보내신 아버지”에 관해서는 간과합니다. 사실, 예수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빌립보 2:9-11.

22 많은 사람들이 간과해 온 것처럼 그 사실, 다시 말해, 우리가 예수를 시인하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오늘날 많은 종교 지도자들은 아버지를 거의 잊어버렸으며, 그리하여 그들의 신도들까지도 아버지를 거의 잊어버렸읍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하늘에 계신 자신의 아버지에게 기도하면서 ‘영생을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아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읍니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불충분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분에 대해서도 배우고 그분을 따라야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계속해서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요한 17:3.

복습 질문

◻ 성서에는 예수와 하나님이 다른 분임을 알려 주는 어떤 언급들이 있습니까?

◻ 예수께서 하늘로 돌아가신 후에도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니라”는 예수의 말씀은 여전히 참되었습니까?

◻ ‘다윗’과 ‘다니엘’은 하늘에서의 예수의 위치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무슨 말을 하였습니까?

◻ 새 언약에 관한 예레미야의 예언은 참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에 관하여 알게 될 것을 어떻게 알려 줍니까?

[17면 네모]

“아들 하나님”—후에 생긴 사상

「신 가톨릭 백과사전」 13권 426면은 이렇게 말한다. “신약에서 예수가 아들 하나님이라는 사상을 전달하고 있느냐를 묻는 것”은 “나중에야 비로소 생겨난 그분에 대한 준거기준(準據基準)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와 그분의 사도들은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가르쳤지만 “아들 하나님”의 사상을 발전시킨 것은 후대의 교직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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