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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망한 사랑하는 사람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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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망한 사랑하는 사람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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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8
파88 9/15 4-7면

사망한 사랑하는 사람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그 귀염둥이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앞 기사에 언급된) 비탄에 잠긴 어머니는 자기의 죽은 아기가 어디로 갔는지 줄곧 생각하였다. 그 아기는 하늘에 있는가 아니면 다른 어느 곳에 있는가?

앤드루의 어머니는 얼마 후에 한 가지 대답을 듣게 되었다. 슬픈 소식을 듣고서, 역시 로마 가톨릭 교인인 맏딸이 이렇게 대답해 준 것이다. “앤드루는 림보에 있어요.” 그러면 과연 그러한가?

림보는 어디에 있는가 혹은 무엇인가?

「컨사이스 옥스퍼드 사전」은 림보에 관하여 이렇게 설명한다. “지옥의 변방 지역으로, 그리스도 이전의 의로운 사람들 및 세례받지 않은 유아들의 가상적인 거처; ·⁠·⁠· 돌보아지지 않거나 망각된 상태.” 림보에 관하여 「신 가톨릭 백과사전」은 이렇게 설명한다. “오늘날 그 용어는, 지옥에 가서 영원한 벌을 받기에 합당하지는 않으나 속죄되기 전에는 하늘에 들어갈 수 없었던 사람들의 영혼의 상태와 장소(선조들의 림보) 혹은 단지 원죄 때문에 지복직관(至福直觀)에서 영원히 제외되는 영혼들의 상태와 장소(어린이의 림보)를 지칭하기 위하여 신학자들에 의해 사용된다.”

그러나 그 백과사전은 또한 이렇게 설명한다. “세례를 받지 않고 죽은 유아들의 운명은 참으로 복합적인 것이다. ·⁠·⁠· 림보에 관한 문제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신학적인 문제 중의 하나다. 림보의 존재에 관한 교회의 공식 지지는 찾아볼 수 없다.” 이 점을 확증하여, 「신 브리태니카 백과사전」은 이렇게 설명한다.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 존재하는 상태 혹은 장소로서의 림보에 대한 교리를 공식적으로 전혀 지지한 바 없기 때문에, 림보에 대한 개념은 해결되지 않은 문제로 남아 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독실한 가톨릭 교인 중에는 림보에 관한 개념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이 점을 주의깊이 고려하기 바란다. 즉 아기들이 단지 세례받지 않았기 때문에 모호하고 이해할 수 없는 장소에 영원히 거하도록 정죄받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성서는 림보에 관하여 언급하는가? 그렇지 않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림보에 관한 언급이 전혀 없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은 중요한 질문이 생긴다. 즉 아기들을 포함하여, 사람이 죽으면 어디로 가는가?

죽은 사람은 어디로 가는가?

그리스도교국의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견해는 사람이 죽으면 하늘로 올라가거나 지옥에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하여 성서는 무엇이라고 알려 주는가? 성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산 자는 죽을 줄을 알되 죽은 자는 아무 것도 모르[느니라.]” (전도 9:5) 그러므로 죽은 자는 아무 것도 모른다. 그들은 어디엔가에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 글자 그대로 온전히 죽은 것이다. 그들은 아무 것도 의식하지 못한다.

성서 시편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말씀은 그 사실을 확증해 준다. “죽은 자가 여호와를 찬양하지 못하나니 적막한데 내려가는 아무도 못하리로다.” (시 115:17)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찌니 그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생각, 신세]가 소멸하리로다.”—시 146:3, 4.

그러면 영혼은 어떠한가? 그것은 불멸이 아닌가? 결코 불멸이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믿는 것과는 반대로 영혼은 불멸이 아니다. 이 사실이 성서에 다음과 같이 명백히 나와 있다. “범죄하는 그 영혼이 죽으리라.” (에스겔 18:4, 20) 사도 행전 3:23에서는 다음과 같이 그 점을 더욱 확증해 준다. “누구든지 그 선지자[예수]의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영혼, 신세]는 백성 중에서 멸망 받으리라.”

죽음은 모든 것의 끝인가?

죽음이 반드시 모든 것의 끝은 아니다. 성경은 죽은 자의 부활을 명백히 가르친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요한 5:28, 29) 더우기 예수께서는 지상에서의 봉사 기간중에 몇 사람을 부활시키셨다. 가장 놀라운 사건은 예수의 친구인 나사로의 경우였다. 그는 나흘 동안 죽어 있었다. 그러나 예수께서 “나사로야 나오라”고 외치셨을 때, 죽어 있던 나사로가 반응을 보이며 무덤에서 나왔다. 지켜보던 많은 사람들에게 얼마나 감격적인 일이었겠는가! 게다가 마리아와 마르다 곧 나사로의 누이들에게는 얼마나 기쁨에 넘친 일이었겠는가!—요한 11:38-45.

나사로는 그 나흘 동안 어디에 있었는가? 하늘인가? 림보인가? 아니다. 성서는 그 점을 말하거나 암시하지도 않는다. 만일 나사로가 어디엔가에 살아 있었더라면, 분명히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그 점에 관하여 이야기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성서에서 이렇게 말하는 바와 같다. “죽은 자는 아무 것도 모르[느니라.]”—전도 9:5.

가슴을 푸근하게 해주는 또 하나의 사건이 나인 성에서 일어 났다. 예수께서는 성문에 가까이 오셨을 때, 장례 행렬을 만나셨다. 죽은 자는 과부인 “그 어미의 독자”였다. 당연히 과부는 비통하게 울고 있었다. 이러한 장면은 예수의 친절하고 사랑 많은 마음을 움직였다. 그분은 가까이 가셔서 행렬을 멈추게 한 다음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죽은 자가 일어났다! 그 어머니의 감격어린 기쁨과 지켜보던 사람들의 놀라움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누가 7:11-17.

이 청년은 하늘이나 림보에 간 일에 관하여 이야기할 것이 있었는가? 없었다. 어떻게 이야깃거리가 있을 수 있었겠는가? “죽은 자는 아무 것도 모르”기 때문이다. 성서는 또한 죽음을 깊은 잠에 비한다. 다윗은 이렇게 말하였다.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나를 생각하사 응답하시고 나의 눈을 밝히소서 두렵건대 내가 사망의 잠을 잘까 하[나이다.]” (시 13:3) 더우기 예수께서는 나사로를 부활시키시기 바로 전에 죽음을 잠에 비하셨다.—요한 11:11-14.

이제 또 하나의 질문이 생긴다.

선한 사람들로서 하늘에 가는 사람이 있는가?

그렇다. 얼마의 선한 사람들은 분명히 하늘에 간다. 교회에 다니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지 않은 점으로서 선한 사람들 곧 참 그리스도인들에 관해 매우 관심을 끄는 사실이 있는데, 그것은 두 그룹의 선한 사람들이 있다는 점이다. 소수 그룹의 선한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통치하기 위하여 하늘에 가며, 한편 다수 그룹의 선한 사람들은 지상에서 영원한 생명을 즐길 것이다. 아마 이 사실이 당신을 놀라게 할지 모른다. 그러므로 이 흥미있는 제목에 관하여 성서에서 무엇이라고 알려 주는지를 고려하기로 하자.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원래의 목적은 무엇이었는가?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셨을 때, 그분은 그들이 에덴 동산에서 잠시 동안 삶을 즐긴 다음 죽어서 하늘로 가도록 의도하셨는가? 그렇지 않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땅에 관해서 다음과 같이 특별한 임무를 주셨던 것이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창세 1:28) 그리고 여호와께서는 정한 목적을 변경하시지 않는다. 시편 89:34에서 그분은 이렇게 선언하신다. “내 입술에서 낸 것도 변치 아니하리로다.” 그러므로 에덴의 낙원은 틀림없이 회복될 것이며 여호와의 충실한 종들 곧 앞서 언급한 대다수의 선한 사람들로 된 그룹이 그 낙원을 즐길 것이다.

소수의 그룹은 하늘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통치하는 매우 특별한 특권을 받게 된다. 달리 말하면, 그들은 예수와 함께, 땅에 사는 사람들을 다스리는 일에 참여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주기도문 가운데서 그리스도인들이 기도로 구하는 왕국 정부인 것이다. 흥미롭게도 같은 주기도문 가운데 이러한 말씀이 들어 있다.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태 6:9, 10.

성서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서 통치하는 큰 특권을 누리게 될 사람들의 수가 얼마나 되는지를 알려 주는가? 물론, 알려 준다. 계시록 14장 1절은 이렇게 말한다.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 사만 사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 계시록에는, 첫 구절인 계시록 1:1(신세)에서 알려 주듯이, 상징 곧 “표징들”이 많이 사용되어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어린 양”은 예수 그리스도다. (비교 요한 1:29.) 또한 시온 산은 이스라엘의 정치적 수도가 아니라 “하늘의 예루살렘”을 말한다.—히브리 12:22.

계시록 7장에서는 앞서 언급된 하늘에 속한 그룹과 땅에 속한 그룹 양편에 관한 내용을 알려 준다. 4-8절에서는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맞은 자들”이 144,000명임을 알려 준다. 이것은 또 하나의 상징적 표현이며 영적 이스라엘 곧 “하나님의 이스라엘”을 의미한다. (갈라디아 6:16) 로마서 2:29에서는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찌니[라]”고 알려 준다. 다음으로 계시록 7:9은 땅에 속한 그룹에 대하여 이렇게 묘사한다.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있더라.]”

선한 사람들이 땅에서 살 것이다

수십억의 선한 사람이 지상 낙원에서 살 것이다. (누가 23:43) 독자는 그들 가운데 속하기를 원하는가? 물론 원할 것이다. 오염, 기근, 범죄, 질병, 고통 및 무시무시한 핵전쟁의 가능성이 없는 깨끗해진 땅에서 산다는 것은 얼마나 큰 특권인가! 성서는 참으로 그러한 일을 예언하는가? 그렇다. 참으로 예언한다. 성서는 이렇게 말한다. “행악하는 자는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기대하는 자는 땅을 차지하리로다 ·⁠·⁠· 온유한 자는 땅을 차지하며 풍부한 화평으로 즐기리로다 의인이 땅을 차지함이여 거기 영영히 거하리로다.”—시 37:9, 11, 29; 비교 마태 5:5.

그러면 죽은 아기들은 어떻게 되는가? 그들 역시 지상 낙원에 있을 것인가? 아기들은 존재하지도 않는 림보에 가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의 기억 속에 있는 어린이들은 우리가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에 들어 있는 놀라운 약속들 중의 하나인 죽은 자의 부활로 인해 돌아올 것이다. (요한 5:28, 29; 사도 24:15) 아마 독자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사별하여 그들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종종 궁금히 여길지 모른다. 성경에 비추어 보면 부활을 기다리면서, 그들이 잠들어 있음이 분명하다. 독자는 지상 낙원에서 살 수 있는 놀라운 희망에 대해 더욱 알기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여호와의 증인이 다음번에 독자의 집을 방문할 때 이러한 문제에 대해 그들과 함께 이야기해 보지 않겠는가?

[6면 삽입]

얼마의 선한 사람들은 분명히 하늘에 간다. 그들은 누구인가?

[5면 삽화]

나사로는 죽어 있는 동안 어디에 있었는가?

[7면 사진 자료 제공]

Photo taken at Brooklyn Botanic Gar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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