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치타워 온라인 라이브러리
워치타워
온라인 라이브러리
한국어
  • 성경
  • 출판물
  • 집회
  • 파05 4/15 25-29면
  • 당신의 믿음은 당신을 움직여 행동하게 하는가?

관련 동영상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동영상을 불러오지 못했습니다.

  • 당신의 믿음은 당신을 움직여 행동하게 하는가?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2005
  • 소제목
  • 비슷한 자료
  • 학문적인 연구
  • 똑똑한 머리, 믿음 없는 마음
  • ‘말씀을 행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 당신의 활동에는 상이 있다
  • 계속 선을 행함
  •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74
  • 여호와께서는 오늘날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시는가?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99
  • 성서의 법과 원칙으로부터 개인적으로 유익을 얻음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70
  • 침례는 믿음을 나타낸다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6
더 보기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2005
파05 4/15 25-29면

당신의 믿음은 당신을 움직여 행동하게 하는가?

한 장교는 몸이 마비된 자신의 종을 예수께서 고쳐 주실 수 있다고 확신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장교는 예수를 자기 집으로 초대하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그가 합당한 사람이 못 된다고 생각하였거나 이방인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대신에, 그 장교는 유대인의 연로자들 몇 사람이 예수께 나아가 “선생님, 저는 당신을 제 지붕 아래로 모셔들이기에 적합한 사람이 못 됩니다. 단지 말씀만 하시면 제 하인이 나을 것입니다”라고 말하도록 하였습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이 멀리서도 병을 고칠 수 있다고 그 장교가 믿고 있음에 유의하시고, 자신을 따라오는 무리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에게 진실을 말하는데, 나는 이스라엘 가운데 아무에게서도 이렇게 큰 믿음을 본 적이 없습니다.”—마태 8:5-10; 누가 7:1-10.

이 일은 우리가 믿음의 필수적인 요소에 초점을 맞추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참다운 믿음은 단순히 수동적으로 믿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뒷받침됩니다. 성서 필자 야고보는 “믿음도 행함이 없다면 그 자체가 죽은 것입니다”라고 설명하였습니다. (야고보 2:17) 실제 본보기를 통해서, 믿음에 행동이 따르지 않게 될 때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검토해 보면 이 점이 더욱더 분명해집니다.

기원전 1513년에 이스라엘 나라는 율법 계약에 의해 여호와 하느님과 관계를 맺게 되었습니다. 그 계약의 중개자로서 모세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와 같은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너희가 나의 목소리에 엄밀하게 순종하여 참으로 내 계약을 지키면, 너희는 틀림없이 ··· 거룩한 나라가 될 것이다.” (탈출 19:3-6) 그렇습니다. 이스라엘의 거룩함은 순종하느냐에 달려 있었습니다.

여러 세기 후에 유대인들은 율법의 원칙을 적용하는 것보다 율법을 연구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보기 시작하였습니다. 알프레트 에더샤임은 자신의 저서 「메시아 예수의 생애와 시대」(The Life and Times of Jesus the Messiah)에서 이와 같이 썼습니다. “[랍비들] 즉 ‘세상의 위대한 자들’은 행함보다 연구가 먼저라고 오래전에 결정해 놓았다.”

물론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느님의 요구 조건을 부지런히 연구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친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내가 당신에게 명령하는 이 말씀을 당신의 마음에 두어야 합니다. 당신은 그것을 당신의 아들들에게 부지런히 가르치고, 당신이 집에 앉아 있을 때나 길을 걸을 때나 누울 때나 일어날 때나 그것을 말해야 합니다.” (신명 6:6, 7) 그러면 여호와께서는 과연 율법 연구가 율법과 조화되거나 율법에서 알려 주는 행동보다 중요하다는 뜻으로 말씀하신 것이었습니까?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학문적인 연구

율법 연구를 대단히 중시하는 것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이치에 맞게 보였을지도 모릅니다. 한 유대 전승에 따르면, 하느님께서 친히 매일 세 시간씩 율법을 연구하셨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일부 유대인들이 ‘하느님이 정기적으로 율법을 연구하신다면, 지상의 피조물들도 그와 같이 하는 데 몰두해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추리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기원 1세기 무렵에 랍비들은 율법의 분석과 해석에만 매달리다 보니, 사고방식이 완전히 왜곡되어 버렸습니다. 예수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 말만 하고 행하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무거운 짐들을 묶어 사람들의 어깨에 지우지만, 그들 자신은 손가락으로도 그것들을 움직이려고 하지 않습니다.” (마태 23:2-4) 그러한 종교 지도자들은 수많은 규칙과 규정들을 만들어 보통 사람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웠지만, 위선적이게도 허점들을 만들어 내서 자신들은 그 동일한 법을 지키지 않아도 되게 해 놓았습니다. 더 나아가, 학문적인 연구를 집중적으로 한 사람들은 “율법의 더 중한 것, 곧 공의와 자비와 충실은 무시”하였습니다.—마태 23:16-24.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그들의 의를 굳게 세우려고 결국 자기들이 옹호한다고 주장한 바로 그 율법을 범하고 말았으니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입니까! 여러 세기 동안 줄곧 율법의 단어들과 기타 사소한 점들에 대해 논쟁을 벌였지만 그들은 하느님과 더 가까워지지 않았습니다. 그로 인한 결과는 사도 바울이 “헛된 말”과 “모순된 이론”과 거짓 “지식”이라고 부른 것에 의해 믿음에서 벗어나게 된 것과 비슷하였습니다. (디모데 첫째 6:20, 21) 하지만 또 다른 심각한 문제는 끝없는 연구가 그들에게 미친 영향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움직여 올바른 행동을 하게 하는 믿음을 갖게 되지 못하였습니다.

똑똑한 머리, 믿음 없는 마음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생각은 하느님의 생각과 참으로 달랐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직전에, 모세는 그들에게 “내가 오늘 여러분에게 경고하는 모든 말에 여러분의 마음을 기울이고, 여러분의 아들들에게 명령하여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주의하여 행하게 하십시오”라고 말하였습니다. (신명 32:46) 하느님의 백성은 분명히 율법을 연구할 뿐만 아니라 율법을 행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였습니다.

하지만 거듭거듭 이스라엘 나라는 여호와께 불충실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올바른 행동을 한 것이 아니라 “믿음을 나타내지 않고 그분의 음성을 듣지 않았습니다.” (신명 9:23; 재판관 2:15, 16; 역대 둘째 24:18, 19; 예레미야 25:4-7) 마침내 유대인들은 메시아이신 예수를 배척함으로 가장 불충실한 행동을 저질렀습니다. (요한 19:14-16) 그리하여 여호와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배척하시고 이방 사람들에게로 주의를 돌리셨습니다.—사도 13:46.

우리도 동일한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반드시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함정이란 머리가 똑똑하면 마음에 믿음이 없어도 하느님을 섬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달리 표현하면, 우리의 성서 연구는 학구적인 지식을 쌓는 것 이상이 될 필요가 있습니다. 정확한 지식은 우리의 마음에 감동을 주어 우리의 생활에 좋은 영향을 주어야 합니다. 채소 가꾸기를 공부하고서 씨앗을 전혀 심지 않는다면 그것이 이치에 맞는 일이겠습니까? 물론, 채소 재배법에 대해 어느 정도의 지식을 얻을 수는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결코 아무것도 수확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성서 연구를 통하여 하느님의 요구 조건을 배우는 사람들도 진리의 씨가 마음에 감동을 주어서 그 씨가 싹이 트고 자신들을 움직여 행동하게 하도록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마태 13:3-9, 19-23.

‘말씀을 행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사도 바울은 ‘믿음은 듣는 것에서 생긴다’고 말하였습니다. (로마 10:17)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에서 시작하여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믿음을 나타내게 되기까지 이러한 자연스러운 진행 과정에 의해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누릴 전망을 갖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단순히 ‘나는 하느님과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하는 것 이상이 요구됩니다.

예수께서는 추종자들에게 그들을 움직여 행동하게 하는 믿음을 가지라고 강력히 권하셨습니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이 계속 많은 열매를 맺어 내 제자임을 증명하면, 이것으로 내 아버지께서 영광스럽게 되십니다.” (요한 15:8) 후에 예수의 이부동생 야고보는 ‘말씀을 행하는 사람이 되고, 듣기만 하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라고 썼습니다. (야고보 1:22) 그러면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예수께서는 말씀과 모범을 통하여 우리가 하느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을 알려 주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지상에 계실 때 왕국 권익을 증진시키고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셨습니다. (요한 17:4-8) 어떤 방법으로 그와 같이 하셨습니까? 많은 사람들은 예수께서 병든 사람과 신체장애인을 고쳐 주신 기적을 떠올릴지 모릅니다. 그러나 마태의 복음서에서는 그 주된 방법을 이와 같이 명백하게 밝혀 줍니다. “예수께서는 모든 도시와 마을로 여행을 떠나시어,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왕국의 좋은 소식을 전파하[셨다].” 예수께서 자신의 봉사를 단지 몇몇 벗과 친지 또는 인근 지역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에게 어쩌다 말씀하시는 것으로 제한하지 않으셨음이 분명합니다. 그분은 “갈릴리 전역을 두루” 다니시며 사람들을 방문하기 위하여 이용 가능한 모든 수단을 이용하셔서 기운을 다해 힘써 노력하셨습니다.—마태 4:23, 24; 9:35.

예수께서는 추종자들에게 제자를 삼는 활동에도 참여하도록 지시하셨습니다. 참으로 그분은 그들이 본받아야 할 완벽한 모범을 남기셨습니다. (베드로 첫째 2:21) 예수께서는 충실한 제자들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가서 모든 나라 사람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침례를 베풀고 내가 여러분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지키도록 가르치십시오.”—마태 28:19, 20.

물론, 전파 활동에 참여하는 것이 참으로 도전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친히 “보십시오! 내가 여러분을 보내는 것이 마치 어린 양을 이리 가운데 보내는 것과 같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가 10:3) 반대에 직면하게 될 때, 불필요한 고통이나 염려를 겪지 않기 위해 뒷걸음치는 것이 사람의 자연스러운 경향입니다. 예수께서 체포되시던 날 저녁에도 그와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사도들은 두려움에 질려 도망하였습니다. 그날 저녁 얼마 후에 베드로는 예수를 알지 못한다고 세 번 부인하였습니다.—마태 26:56, 69-75.

그에 더하여, 당신은 사도 바울도 좋은 소식을 전파하기 위하여 고투를 하였다고 말했다는 것을 알면 놀랄지 모릅니다. 그는 데살로니가 회중에 이와 같이 편지하였습니다. “우리 하느님에 의하여 담대해져서 심한 고투를 하면서 여러분에게 하느님의 좋은 소식을 말하였습니다.”—데살로니가 첫째 2:1, 2.

바울과 그의 동료 사도들은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왕국에 관해 말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모두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당신도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가장 중요한 방법은 여호와를 의지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여호와께 온전한 믿음을 둔다면, 그 믿음은 우리를 움직여 행동하게 할 것이며 우리는 그분의 뜻을 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사도 4:17-20; 5:18, 27-29.

당신의 활동에는 상이 있다

여호와께서는 우리가 그분을 섬기기 위해서 기울이는 노력을 잘 알고 계십니다. 예를 들어, 그분은 우리가 병들거나 지쳤을 때 알고 계십니다. 우리가 어떤 것에 불안해하거나 자신이 없어 하는지를 아십니다. 경제적인 문제가 우리를 짓누르고 있거나 우리의 건강이나 감정 때문에 우리 마음대로 일이 되지 않을 때, 여호와께서는 언제나 우리가 처한 상황을 알고 계십니다.—역대 둘째 16:9; 베드로 첫째 3:12.

불완전하고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우리의 믿음이 우리를 움직여 행동하게 할 때 여호와께서는 틀림없이 매우 기뻐하실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충실한 종들에게 가지고 계신 따뜻한 관심은 단순히 막연한 느낌이 아닙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약속을 해 주심으로 그 관심을 뒷받침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하느님의 영감을 받아 이렇게 썼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불의하지 않으시므로, 여러분이 거룩한 자들을 섬겨 왔고 또 계속 섬기면서 여러분이 그분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일과 사랑을 잊지 않으십니다.”—히브리 6:10.

당신은 성서에서 하느님을 “충실한 하느님, 그분에게는 불공정이 없”으시고 “자기를 진지하게 찾는 사람들에게 상 주시는 분”이라고 표현한 것을 믿을 수 있습니다. (신명 32:4; 히브리 11:6) 예를 들어, 미국 캘리포니아에 사는 한 여자는 이렇게 회상합니다. “아버지는 가족 부양을 하게 되기 전에 10년 동안 전 시간 봉사를 하셨지요. 아버지는 봉사를 할 때 여호와께서 어떻게 지원해 주셨는지를 저에게 재미있게 이야기해 주셨어요. 봉사를 나가기 위해 마지막 남은 돈을 휘발유 값으로 썼던 때가 적지 않았답니다. 하지만 봉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종종 문 앞에 뜻하지 않게 식료품이 있었지요.”

물질적인 지원에 더하여, “부드러운 자비의 아버지, 모든 위로의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감정적·영적 지원을 베풀어 주십니다. (고린도 둘째 1:3) 여러 해에 걸쳐 많은 시련을 인내해 온 한 증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를 의지하면 편안한 마음이 듭니다. 그렇게 하면 여호와를 신뢰하면서 그분이 당신을 돕기 위해 어떻게 행동하시는지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깁니다.” 당신은 “기도를 들으시는 분”께서 당신의 개인적 관심사에 주의를 기울여 주실 것을 확신하는 가운데 그분에게 겸손하게 나아갈 수 있습니다.—시 65:2.

영적인 수확을 하는 일꾼은 많은 축복과 상을 받습니다. (마태 9:37, 38) 많은 사람의 경우 공개 봉사에 참여하는 것이 건강에 도움이 되었으며, 당신에게도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사람들에게 증거하는 것이 우리가 하느님과의 좋은 관계를 더욱 튼튼해지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입니다.—야고보 2:23.

계속 선을 행함

하느님의 종들 가운데는 병약하거나 연로해서 아무래도 봉사를 하고 싶은 만큼 다하지 못하게 될 경우 여호와께서 실망하실 것이라고 결론 내리는 사람이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잘못된 것입니다. 건강이 좋지 않거나 가족 책임이 있거나 다른 상황으로 인해 제한을 받는 사람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도 바울이 병약함 또는 장애물 때문에 제약을 받고 있다고 느꼈을 때 ‘그것이 그에게서 떠나게 해 달라고 그가 세 번이나 주께 간청’하였다는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여호와의 봉사에서 더 많은 일을 이룰 수 있도록 바울을 고쳐 주신 것이 아니라 “나의 과분한 친절이 너에게 족하다. 나의 능력은 약함 가운데서 완전해지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고린도 둘째 12:7-10) 따라서 어떠한 어려운 상황을 인내하고 있다 하더라도 우리의 하늘 아버지께서는 당신이 그분의 권익을 증진시키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든 간에 그 일을 높이 평가하신다는 것을 확신하도록 하십시오.—히브리 13:15, 16.

우리의 사랑 많으신 창조주께서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이상을 우리에게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이 다만 바라시는 것은, 우리를 움직여 행동하게 하는 믿음을 우리가 갖게 되는 것입니다.

[26면 삽화]

율법을 연구하는 것으로 충분하였는가?

[29면 삽화]

우리의 믿음은 행함으로 뒷받침되어야 한다

    한국어 워치 타워 출판물 (1958-2025)
    로그아웃
    로그인
    • 한국어
    • 공유
    • 설정
    • Copyright © 2025 Watch Tower Bible and Tract Society of Pennsylvania
    • 이용 약관
    • 개인 정보 보호 정책
    • 개인 정보 설정
    • JW.ORG
    • 로그인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