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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일 루터교는 멸절 위기에 있는가?
    깨어라!—1987 | 9월 15일
    • 독일 루터교는 멸절 위기에 있는가?

      「깰 때이다」 독일 연방 공화국 통신원 기

      독일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는 다음과 같은 보도를 듣고 일부 시청자들은 깜짝 놀랐을지 모른다. “루터교는 장래를 전혀 내다볼 수 없읍니다.” 더욱 놀라운 점은, 루터교의 창시자이자 종교 개혁의 시조인 마르틴 루터가 태어난 지방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그러한 보도가 있었다는 사실이다.a

      사실, 독일 연합 복음주의 루터교의 교인 수는 약 2,500만명이라고 하는데, 최근의 공식 조사에 따르면, 그 수는 독일 내에 있는 다른 모든 프로테스탄트 단체의 교인을 다 합한 수의 약 45배라고 한다. 그렇지만 루터교는, 본지 표지에 나와 있는, 서베를린의 카이저 빌헬름 메모리얼 교회의 폭파된 모습과도 같이 붕괴되고 있다.

      1961년에는 독일 국민 전체의 50퍼센트 이상이 루터교인이었다. 1970년에는 그 수치가 49퍼센트였고, 1980년에 이르러서는 46퍼센트가 되었다. 그러다가 차츰 나아지는 듯했다. 독일의 한 일간지는 1981년 초에 이렇게 보도했다. “독일의 루터교는 10년 전의 침체 상태로부터 벗어났다. ·⁠·⁠· 교인 탈퇴에 대한 우려는 ·⁠·⁠· 한시름 놓게 되었다.”

      그러나 1984년의 교인 수를 보면 그같은 낙관이 속단이었음을 알게 된다. 현재의 추산으로는 루터교인의 수가 금후 10년 이내에 4,500,000명이 더 줄어들 것이라고 한다. 이대로 간다면 2030년경에는, 루터교인 수가 현재의 삼분의 일도 채 못될 것이다.

      교인들이 떠나는 이유

      앞서 언급한 1986년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이전에 루터교인이었던 일곱 사람은 그들이 불만을 품게 된 여러 가지 이유로서 다음과 같은 점을 들었다. 교회의 일요 스포츠 반대, 교회가 공산주의 게릴라 활동을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일, 교회가 정부의 국방 정책을 옹호하는 점, 교회가 두명의 동성애 교직자를 해임한 일, 교회가 동물을 소홀히 하는 점. 그런가 하면, 교인의 수입에서 교회세를 공제하는 제도를 못마땅해 하는 사람도 있었다. 주목할 만하게도, 하나님을 언급한 사람은 두 사람뿐이었다. 그렇지만, 그것이 종교적 실태의 전부는 아니지 않은가?

      교인 수가 감소하는 것도 심각한 일이지만, 그보다 더 우려되는 점은 “참으로 한심한 교인들의 종교 상태”라고 저명한 루터교 신학자인 요한네스 한센은 말한다. 그러하기에 정규 일요 예배에 참석하는 교인이 6퍼센트도 못되며, 대도시에서는 그보다 더 적은 실정이다. 네명 중 한 사람만이 교회에 참석하거나 성서를 읽는 것을 그리스도인에게 요구되는 것으로 본다. 사실상 열명 중 여덟 사람은, 세례와 견신례를 받은 다음 준수하고 신뢰할 만하게 생활하기만 하면 나무랄 데 없이 훌륭한 루터교인이라고 말한다.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지가 한 사설에서 이렇게 지적한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루터교의 위기는 교인 수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영적인 힘의 결핍에 기인한 것이다”!

      영적인 힘이 결핍되어 있기 때문에 교인들의 교회에 대한 견해에 그 점이 반영된다. 그들은 교회의 유구한 역사를 칭송하고, 멋진 교회 건물을 자랑하며, 교회가 제공하는 사회적 혜택을 이용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은 “하나님을 찾기” 위하여 교회에 가기 보다는 자연을 택한다. 이 때문에 한 교회 지도자는, 사람들이 자연을 좋아하는 김에 아예 장례식까지 산림청에 의뢰해도 될텐데, 굳이 교회에다 장례식을 의뢰하는 이유를 알 수 없다고 빈정거렸다.

      “결핍된 것으로 여겨지는 점은 초기 루터교인들의 특징이었던, 하나님과 하나님의 진리에 대한 열정”이라고 미국의 한 잡지는 몇해 전에 논평하였다. 많은 루터교인이 자신의 교회를 유아 세례와 견신례 및 혼례식을 위한 편리한 장소로 밖에 생각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무엇 때문에 그들은 자연에서 하나님을 구하다가, 사망시에 “품위있는 장례식”을 위해서만 교회를 찾는가? 영적인 힘이 결핍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각주]

      a 정확히 말해서, 루터가 태어나서 오래도록 생활한 곳은, 흔히 동독이라고 칭하는 현재의 독일 민주 공화국이다.

  • “만일 나팔이 분명치 못한 소리를 내면 ···”
    깨어라!—1987 | 9월 15일
    • “만일 나팔이 분명치 못한 소리를 내면 ·⁠·⁠·”

      “만일 나팔이 분명치 못한 소리를 내면 누가 전쟁을 예비하리요.” (고린도 전 14:8) 독일 루터교인들—그 교회 전도자들—이 냉담한 태도를 나타내는 이유는 교회가 분명치 못한 소리를 내고 있기 때문인가? 그 증거를 고려해 보자.

      신분 위기

      지난 200년간, 프로테스탄트교는 점차 그 원래의 신앙 고백을 저버렸다고 루터교 부제인 볼프람 라크너는 주장한다. 따라서 현재 독일의 프로테스탄트교는 “심각한 신분 위기에 처해 있다.”

      이같은 신분 위기는 1930년대에 더욱 분명히 드러났는데, 윌리엄 L. 시어러가 그의 저서 「제 3 제국의 흥망」(The Rise and Fall of the Third Reich)에서 이처럼 설명한 바와 같다. “독일 프로테스탄트교인들의 ·⁠·⁠· 믿음은 분열되었다. ·⁠·⁠· 국가 사회주의의 부흥으로 인해 더욱 분열되었다. ·⁠·⁠· 그들 중에 한층 더 광적인 나치파들은 1932년에 ‘독일 그리스도교 신앙 운동’을 조직하였으며 ·⁠·⁠· [이어서] 나치의 인종 정책과 지도권 원리를 열렬히 지지하였다. ·⁠·⁠· 자칭 ‘고백 교회’라고 하는 또 하나의 소수 집단이 ‘독일 그리스도교 신앙 운동’에 반기를 들었다. ·⁠·⁠· 양단간에 놓이게 된 대다수의 프로테스탄트교인들은 ·⁠·⁠· 양다리를 걸쳤다가, 결국 대부분이 히틀러 쪽으로 가담했다.”

      사실상 루터의 일부 가르침은 히틀러에게 유용했다. 루터의 “두 왕국” 교리, 즉 하나님께서 세속 권위와 교회 권위를 통하여 세상을 다스리신다고 하는 교리는 공무원들에게 엄격히 복종할 것을 촉구하였다. 그러하기에 루터교 간행물인 「운제르 키르케」는, “대부분의 독일 프로테스탄트교는 ·⁠·⁠· 바이마르 민주 정권의 종식을 열광적으로 축하하며, 새로운 독재자를 환호하였다”고 시인한다. 루터교회는 루터의 강력한 반유대주의 견해를 받아들이기에, 아리아인계가 아니면 일체 교직자로 임명하지 않았다.

      그러면 “고백 교회”는 어떠한가? 고백 교회는 1934년에 바르멘 선언을 채택하였는데, 이 선언은 국가 사회주의 이념에 반대를 표명한 것이었다. 하지만 최근에 베를린에서 열린, 제 3 제국 기간 중의 프로테스탄트교 전시회에서 밝혀진 바를 보면, 프로테스탄트 교직자 중 삼분의 일만이 “고백 교회”를 지지했으며, 그나마도 그들 모두가 히틀러를 적극 반대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히틀러는 필시 그러한 반대를 보고 모든 루터교인이 반대한다고 오인하였을 것이다. 그로 인하여, 루터교는 본의 아니게 정치적으로 반대하는 입장에 놓이게 되었다고 「독일 저항 운동 1933-1945년」(Der deutsche Widerstand 1933-1945)이란 책은 단언한다.

      히틀러가 패망하자 루터교도 붕괴되었다. 적대시하던 양편 중 어느 쪽이 루터교의 참다운 신분을 반영하였는가? 루터교의 나팔 소리가 그토록 분명치 못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을 얻기 위하여, 후에 독일 연방 공화국의 대통령이 된 구스타프 하이네만을 포함하여 11명의 주요 프로테스탄트 교직자는 1945년 10월에 이른바 슈투트가르트 참회 모임을 가졌다. 그들은 나치 정권에 반대했었음에도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좀더 담대하게 자신의 신념을 고백하지 못한 것을, 좀더 충실하게 기도 가운데 한 말대로 하지 못한 것을, 좀더 즐거이 믿음을 표현하지 못한 것을, 좀더 열렬하게 사랑을 나타내지 못한 것을 자책하는 바이다.” 이 교직자들은 이러한 선언이 분명한 나팔 소리가 되어 활기찬 새 출발을 하게 해줄 것으로 기대했다.

      종교적 나팔인가, 정치적 나팔인가?

      아마도, 현대의 많은 독일 루터교인은 자신들의 교회가 그토록 나약하게 히틀러를 반대한 것을 수치스럽게 여긴 나머지 이제는 걸핏하면 정부 시책을 공박하려 드는 것 같다. 예로서, 유럽의 반핵 운동을 처음 조직한 사람들 중에는 루터교 교직자들이 포함되어 있다. 1984년에 일단의 독일 북부 루터교 교직자들은 징병 연령층의 젊은이들에게 병역을 거부하라고 종용하였다. 그러나 교회측은 그처럼 종용하는 행위를 정죄하면서, 그것은 “그와는 달리 생각하는 그리스도인들의 감정에 대해 상당히 정치적으로 편협”을 보인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루터교회는 1986년 총회에서 정치 문제를 논할 권리를 주장하면서 정치 문제를 거론하였다. 루터교회는 아이슬란드에서 열린 초강대국 수뇌 회담의 결과에 대해 실망을 표명했고 난민, 실직, 핵무기 공장에 대한 정부 시책에 관해 장황하게 토론했다.

      물론, 이같이 정치에 적극 가담하는 것을 모두가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 만일 루터가 현재 살아 있다면, 틀림없이 그런 일을 정죄할 것이라고, 종교 개혁가—루터 연구 권위자인 하이코 오베르만 교수는 말한다. 그리고 요즈음에는 그리스도인 믿음의 순수성이 인종 차별 정책이나 미사일 배치에 대한 태도에 의해 쉽사리 평가되고 만다고 루터교 부제인 롤프 셰프부히는 한탄한다.

      정치 문제에 대한 견해 차이로 인해 루터교가 분열되고 있음이 분명하다. 아울러 한스 게르노트 융 주교가 최근에 표현한 바와 같이 교회와 국가간의 “오랜 정사(情事)”가 “권태의 조짐”을 보이고 있으며, “시큰둥”해지고 있음이 분명하다. 따라서 1986년에 독일의 한 고위 정치인이 이처럼 질책한 것도 이해할 만하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보다도 죽어가는 삼림에 대해 더 길게 토론하므로 본연의 사명을 잊어버렸다.”

      그 명칭이 암시하듯이, 프로테스탄트교(protestantism)는 그때까지 있어 온 것에 항거(protest)하려는 욕망에서 생겨난 것이다. 그러므로 그 시초부터 프로테스탄트교는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사상을 용납하고, 개방적인 생각을 가지고 접근하며, 시대적 표준을 기꺼이 수용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러한 점에 대해 프로테스탄트 신학보다 더 잘 설명해 주는 것은 없다. 교리를 지배하는 최종 권위—가톨릭에 있어서의 교황청과 같은—도 없이, 신학자는 누구나 자신의 신학 해석 나팔을 불 수 있도록 허용되었다.

      신학 나팔수들의 불협화음

      이로 인하여 아주 이상한 소리도 나왔다. 그 한 가지 예를 「타임」지는 1979년에 이렇게 보도하였다. “프로테스탄트 교직자가 되려면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가? 이 시대의 여러 경우에서 그러하듯이, 믿어도 되고 믿지 않아도 된다. 특히 독일은 수십년 동안 프로테스탄트교의 모호한 견해의 진원지였다. 그런데, 지난주 서독의 연합 복음주의 루터교는 다소 한계를 정해보려고 ·⁠·⁠· 이단이라는 이유로 교직자 파울 슐츠를 직위 해제하였다. ·⁠·⁠· 1971년 이래로 슐츠는, 다음과 같은 점을 설교하였다. 인격체로서의 하나님의 존재는 ‘인간이 고안한 위안물.’ ·⁠·⁠· 기도는? 단순한 ‘자기 성찰.’ ·⁠·⁠· 예수는? 나중에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영광을 부여한,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한 평범한 사람.” “슐츠의 견해가 새롭거나 심지어 드문 것이 아니”라는 점은, 그가 청문회 중에도 “종종 신학생들의 열렬한 응원을 받는 이야기를 했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직위 해제 조처를 취하고도, “그 위원회는 개인적인 ‘폭넓은’ 해석은 여전히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한 신문 사설은 이 개인적인 폭넓은 해석을 지적하면서, 프로테스탄트 신학은 “개념적 명확성과 이론적 정확성”이 결여되어 있으며, “진부한 독단론과 다를 바 없는, 박약하게 여겨지는 초보적인 잡동사니 신학”이라고 평가한다. 스위스의 한 프로테스탄트 회보는 이렇게 부언한다. “그리스도교의 ‘양자 택일’ 이해”는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다’는 식의 견해로 대치”되었다. 신학자들끼리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a

      루터교는 몰락의 길을 걷고 있는가?

      루터교의 위기는 실은 믿음의 위기이다. “초보적인 잡동사니 신학”을 흡수하고 흐리멍덩한 지침 곧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다”는 식의 지침을 따라온 사람들이 과연 믿음을 발전시킬 수 있겠는가? 프로테스탄트교는, 그처럼 분명치 못한 나팔 소리를 들은 교인들이 감동되어 그리스도인 활동을 할 것으로 기대할 수 있겠는가?

      1932년에, 신학 교사 디트리히 본회퍼는 이렇게 비평했다. “그것[루터교]은 어디든지 가려 하기 때문에 결국 아무 데도 가지 못하고 있다.” 루터교가 자기 신분을 찾기에는 너무 늦었는가? 대다수의 교회 관리는, 일반적인 소생 방법으로는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데 동의한다. 새롭고도 색다른 어떤 것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그것이 무엇인가? 주교직에서 은퇴한 한스 오토 뵐버는 이렇게 말한다. “루터교의 미래는 방법의 문제가 아니라 내용의 문제이다. ·⁠·⁠· 중요한 것은 소식이다. ·⁠·⁠· 다시 말해서, 우리의 성패는 성서에 대한 우리의 태도에 달려 있다.”

      참으로 그렇다.

      [각주]

      a 금세기의 특출한 프로테스탄트 신학자인 카를 바르트는 동료 신학자인 파울 틸리치의 이론들을 “혐오스러운 것”으로 평했다고 한다. 또한 바르트는 일부 성서 기록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에 의문을 제기한 신학자 루돌프 불트만의 견해에 강한 반대 의사를 표명하였다.

      [7면 네모]

      그리스도인 중립을 위해 누가 분명한 나팔 소리를 내었는가?

      “우리는 아직도 제 2차 세계 대전 당시의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의 최후에 대해 거의 아는 바가 없으며, 현재까지 다음과 같은 점만 알 뿐이다. 루터교인 중에서 헤르만 슈퇴어와 마르틴 가우거는 군복무를 단호히 거부하였다. ·⁠·⁠· 가톨릭교인 중에서는 7명이 거부하였고 ·⁠·⁠· 전통적으로 평화주의자인 독일 메노파 교도들은 제 3 제국 기간 중, 1938년 1월 10일에 장로 및 교직자 회의에서 결정된 ‘방어 해제 원칙을 실천’하지 않았다. 독일의 퀘이커 교도 2명이 병역을 거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이름이 알려진 제 칠일 재림교도 7명은 충성 선서를 거부하고 ·⁠·⁠· 처형당했다. 여호와의 증인 (성경 연구생) 중에서 희생자가 가장 많았다. 1939년에 ‘위대한 독일 제국’내에는 약 20,000명이 이 ·⁠·⁠· 종교 조직에 속해 있었다. 독일에서만도 약 6,000 내지 7,000명에 달하는 여호와의 증인이 제 2차 세계 대전 중에 병역을 거부하였다. 따라서 게슈타포와 친위대는 그 집단을 각별히 주목했다.”—에버하르트 롬 저 「평화를 위해 죽다」(Sterben für den Frieden), 1985년 발행.

  • 프로테스탄트교와 그 신자의 미래!
    깨어라!—1987 | 9월 15일
    • 프로테스탄트교와 그 신자의 미래!

      “나는 지금까지 7학기 동안 루터교 신학을 연구해 왔으며, 루터교 교직자가 되려고 합니다”는 말로 시작되는 편지가 독일의 한 신문 편집자 앞으로 왔는데, 그 편지 내용이 1986년 11월의 한 신문에 이렇게 실렸다. “지적하고 싶은 점은, 우리의 훈련 과정이 기본적으로 성서를—그 겉장만 남기고—모두 찢어 버리는 일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입니다. ·⁠·⁠· 대부분의 강사들은 학생들의 믿음을 파괴하거나 믿음의 기초인 성경을 무가치한 것이 되게 하고, 사회주의라는 ‘신 복음’을 가르치는 일을 통해 교회에 완전히 새로운 내용을 제시하고 있읍니다. 하나님은 죽었지만, 사회주의는 영속한다! 예수는 무덤 속에서 끝났기에, 우리가 자신을 구원해야 한다! 이것이 많은 교직자가 일요일마다 설교하는 내용입니다. 우리는 성서를 배울 새로운 프로그램을 시급히 필요로 하지만, 현재로서는 교회가 그러한 마련을 하지 못하게 하고 있읍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토록 천대받는 상황에서, 교회와 교인들이 영적인 혼란에서 회복될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 18세기의 한 성서 번역가는 이처럼 정확히 지적하였다. “교회의 건강 상태는 교회가 성경을 취급하는 방식으로 판정된다.”

      신개혁자가 도움을 줄 수 있는가?

      “현재 디트리히 본회퍼는 금세기의 그 어느 신학자보다도 영예를 받으며, 자주 그의 말이 인용된다”고 신학 교수인 게오르크 훈테만은 말한다. “고백 교회”의 주요 성원이었던 본회퍼는 1943년에 나치에 의해 감금되었고, 히틀러 암살 음모 관련 혐의로 1945년에 처형되었다. 훈테만은, 본회퍼야말로 교회가 필요로 하는 신개혁자였을 것이라고 말한다. 본회퍼의 설교문 중에서 발췌한 다음 내용에 유의하면서, 이렇게 자문해 보라. 그의 말을 청종하는 것은 루터교에 무엇을 의미하는가? 내가 속한 교회에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종교에서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 한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참을 가르쳐야 한다는 점이다.” 이 점은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바와 일치한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진리, 새번역]으로 예배할찌니라.”—요한 4:24; 또한 요한 8:32; 14:6; 16:13 참조.

      당신은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이 실제로 모두 참되다고 확신하는가? 당신의 교회는, 사람이—죽을 수 없는—불멸의 영혼을 갖고 있다고 가르치는가, 아니면 성서와 일치하게 “범죄하는 그 영혼이 죽으리라”고 가르치는가? (에스겔 18:4, 20) 당신의 교회는 하나님의 이름이 없다거나 하나님의 이름은 예수라고 가르치는가, 아니면 성서와 일치하게 “여호와라 이름하신 주만 온 세계의 지존자”라고 가르치는가? (시 83:18) 당신의 교회는 이 지구가 불로 멸망될 때 선한 사람은 모두 하늘에 갈 것이라고 가르치는가, 아니면 성서와 일치하게 “의인이 땅을 차지함이여 거기 영영히 거하리로다”라고 가르치는가?—시 37:29; 또한 시 104:5 참조.

      “그것[교회]은 가르침의 순수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분투해야 한다.” 이 점은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바와 일치한다. “누룩 ·⁠·⁠· [곧]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교훈을 삼가라.”—마태 16:12; 또한 고린도 전 5:8 참조.

      당신의 교회는 “개인적인 폭넓은 해석”을 환영하는가, 아니면 “형제들아 ·⁠·⁠· 너희 교훈을 거스려 분쟁을 일으키고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저희에게서 떠나라”는 하나님의 교훈과 일치하게 행동하는가?—로마 16:17; 또한 디모데 후 2:16-18; 요한 2서 9, 10 참조.

      “심판 날에, 하나님께서는 틀림없이 우리에게, ‘인상적인 개혁 행사들을 기념했느냐고 물으시는 것이 아니라, 나의 말을 잘 듣고 그것을 지켰느냐?’고 물으실 것이다.” 이 점은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바와 일치한다. “내 형제들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이 사람들이라.”—누가 8:21, 난외주; 또한 마태 7:21; 요한 15:14 참조.

      당신의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얻는 것 보다도 관례라든가 의식 및 건물에 더 역점을 두는가? “모이기를 폐하 ·⁠·⁠· 지 말고 ·⁠·⁠· 그[심판]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라는 교훈과는 달리 이따금 축제일에만 교회에 나가도 충분한 것으로 간주되는가?—히브리 10:25.

      당신의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날마다 읽도록 권하고, 그것을 이해하도록 개인적인 도움을 베풀며, 하나님의 말씀이 요구하는 바를 행하도록 동기를 부여하는가?

      “종교는 일, 어쩌면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어렵고도 가장 확실한, 최고로 거룩한 일일 것이다.” 이 점은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바와 일치한다.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요한 4:34.

      당신의 교회는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하나님의 일이, ‘이 천국[왕국, 신세] 복음을 모든 민족에게 증거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하는 일이라고 가르치는가? (마태 24:14; 또한 마태 28:19 참조.) 당신의 교회는 이 영광스러운 왕국 소식을 ‘당신이 가진 희망에 대하여 설명을 요구하는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알려 주라고 적극적으로 권하는가?—I 베드로 3:15, 새번역.

      적어도 위에 언급된 예들에서, 본회퍼는 그의 교회에 훌륭한 조언을 하였다. “그렇지만 그의 말 곧 교회에 준 그의 개혁적 훈계가 그토록 완전히 무시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하고 훈테만은 질문한다. 그러나 더욱더 의미 깊은 질문은 이것이다. 즉 그리스도 예수의 권위있는 말씀이 그보다 더 심하게 무시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서독 사회는 “신종 이교도는 아니라 할지라도 후기 그리스도인” 방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한다고 신학자인 울리히 베츠는 말한다. 루터교는 서독 사회 내의 적어도 2,500만이나 되는 루터교인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한다. 나쁜 열매를 맺는 나무가 의심스럽게 여겨지듯이, 거짓 그리스도인을 산출하는 교회 역시 의심스럽게 여겨진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설명하셨다.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마태 7:16-18.

      이러한 점을 정직하게 평가해 보는 것이 좋다. 당신의 교회는 어떤 종류의 열매를 맺고 있는가? 교인들의 성품을 개선시켜 주는가? 가족, 공동 사회 및 세계적인 차원으로 평화와 연합을 촉진시키는가? 마약 남용이나 부도덕 및 범죄에 빠지지 않게 해주는가? 모든 사람이 당신이 속한 교회의 성원이 된다면 이 세상은 더 살기 좋은 곳이 될 것이라고 서슴없이 단언할 수 있는가?

      독일 루터교인이었던 사람들이 그처럼 정직한 평가를 한 후에 다른 곳에서 영적인 지침을 찾게 된 이유를 밝히는, 다음 면에 실린 내용에 유의해 보기 바란다.

      당신이 속한 교회가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다 하더라도, 당신은 행동으로 옮길 것인가?

      정직하게 조사해 본 결과 알게 된 사실에 대하여 언짢기만 하다면, 그저 불평만 할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일을 해야 한다. 한 저널리스트는, 교회는 곧 교인들이라는 카를 바르트의 말을 논평하면서 “교인들은 ·⁠·⁠· 교회가 말하고 행하는 것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논리적인 결론을 내렸다. 그러므로 이렇게 자문해 보라. 나는 내가 속한 교회가 말하고 행하는 모든 것에 대하여 기꺼이 함께 책임을 질 것인가? 그리고 교회의 모든 성원을 영적인 형제들로 가지게 된 것에 대하여 참으로 자랑스럽게 여기는가?

      이러한 질문들을 고려하면서, 계시록 18:4, 8의 의미를 간과하지 않도록 하라. 그 귀절은 하나님을 불쾌하시게 하는 거짓 종교 세계 제국에 관하여 이야기하면서, 이렇게 지적한다.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 [왜냐하면] 하루 동안에 그 재앙들이 이르리니 곧 사망과 애통과 흉년이라 그가 또한 불에 살라지리니 그를 심판하신 주 하나님은 강하신 자이심이니라.”

      당신은 당신이 속한 교회가 하나님께서 멀지 않아 멸망시키겠다고 말씀하신 거짓 종교의 일부가 아니라고 진심으로 믿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당신의 생명은 100퍼센트 확실한 것에 달려 있다. 당신은 그 정도로 확실한 것을 믿고 있는가?

      거짓 종교에는 미래가 없으며, 그것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도 미래는 없다. 참 종교는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과 더불어 영원히 존속할 것이다. 그 점을 고려하여 선택해야 한다.

      [9면 네모와 삽화]

      여호와의 증인은 대회에서—이를테면, 이 사진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드라마를 통하여—성서 원칙을 일상 생활에 적용하는 점에 관한 실용적인 교훈을 제공받는다. 정치적 언쟁이나 교리적 차이로 인해 불분명해지지 않은, 이처럼 분명한 진리의 나팔 소리는 미래에 대한 그들의 희망이 더욱 강해지게 하며, 그리스도인 행실과 활동을 고무시킨다. 대회에 참석하여 직접 살펴보기 바란다!

      [11면 네모]

      루터교인이었다가 여호와의 증인이 된 사람들의 이야기

      “여호와의 증인에 대해 첫째로 인상적이었던 점은, 그들의 대회에서 본 청결함과 정직성이었읍니다. 나는 다른 사람들도 참석하여, 증인 가운데 있는 진정한 사랑을 직접 느껴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W. R., 이전의 교회 관리자.

      “나는 일요일마다 교회에 나갔어요. 그렇지만 설교는 길어야 20분이었고, 인생의 목적이라든가 사후 생명에 대한 나의 의문점을 거의 풀어 주지 않더군요. 여호와의 증인은 성서를 통하여 곧바로 그 대답들을 알려 주었고, 나는 그들과 일대일로 이야기할 수 있었읍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데에는 단순히 일요일 아침마다 교회 종소리를 듣고 나가서 찬송가를 부르고 설교를 듣는 것 이상이 포함되어야만 하지요. 진실한 진리 탐구자라면 결코 그것만으로 만족할 수는 없을 겁니다! 무언가를 더 하고 싶을거예요.”—E. B., 이전의 주일 학교 교사.

      “교회 장로로서의 나의 활동은 성서적인 일과는 전혀 무관했고, 순전히 사무적인 일만 하였읍니다. 내게 아주 도움이 된 것은 하나님의 이름이 여호와라는 것을 알게 된 점이었는데, 교회에서는 결코 들어보지 못한 이름이었지요. 나는 성서에 들어 있는 수많은 진리에 깊은 감명을 받았읍니다.”—E. M., 이전의 교회 장로.

      “여호와의 증인이 처음으로 나에게 이야기했을 때, [그들과 우리 사이의] 차이점이 분명하더군요. 그들이 나에게 성서에 관하여 이야기하고자 원한 일은 아주 생소하고 이상한 일이었읍니다. 나는 첫째로 그들이 급료를 받고 전도 활동을 하는지를 물어보았읍니다. 그렇지 않다고 대답하더군요. 둘째로는 그들이 세계 대전에 가담했는지 물어보았읍니다. 그들은 많은 증인이 강제 수용소에 수용되어 있었다고 설명했읍니다. 마침내 나는, 믿음을 위해서라면 죽음까지도 불사하는 사람들을 찾았읍니다.”—H. M., 이전의 교회 관리자.

      “내가 나가던 교회의 교직자에게, 모든 교직자가 자기 나름대로의 해석을 갖고 있는 이유를 설명해 달라고 했더니, ‘모든 교직자는 신도들이 하나님을 최대한 선용할 수 있게 만드는 방식으로 하나님을 묘사할 권리를 갖고 있다’고 대답하더군요. 후에 나는 여호와의 증인의 서로 다른 두 회중에 참석해 보았읍니다. 그들 사이의 완전한 일치 조화에 놀라고 말았어요. 그리고 연설 내용들도 대단히 가치 있었으며, 각자가 자신의 성서로 직접 찾아서 읽어볼 수 있도록 항상 성귀들로 뒷받침되어 있더군요! 내가 들어 왔던 많은 설교와는 참으로 대조적이었읍니다!”—U. P., 이전의 교회 사회 봉사자이자 교구 보모.

      [10면 삽화]

      지역 대회들은 여호와의 증인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왕국을 전파하는 일을 하도록 고무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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