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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1990
깨90 7/15 16-19면

투우—예술인가, 만행인가?

「깰 때이다」 스페인 통신원 기

일이 터졌을 때 루시오는 불과 19세였다. 때는 세비야의 봄철이었고, 유명한 마에스트란사 투우장은 만원이었다. 그런데 루시오는 소가 큰소리를 내며 지나갈 때 약간 지나치게 가까이 있었다. 성난 소의 뿔이 그의 오른쪽 눈을 후벼 파냈다.

퇴원을 하자, 그는 세 달 동안 꾸준히 케이프 곧 붉은 천을 놀리는 연습을 했다. 그는 한쪽 눈을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평생의 꿈을 단념하고 싶지 않았다. 여름이 끝날 무렵, 그는 세비야의 투우장으로 돌아와 투우를 하였으며 대승리를 거두고 투우장에서 받들려 나갔다. 그는 “투우는 일종의 도박이다. 그러나 투우의 실정이 그러하다”고 시인했다.

투우사의 극적인 모습이 작곡가, 작가 및 영화 제작자에게 영감을 주었다. 아마도 이 때문에, 수많은 관광객은 스페인이나 멕시코를 구경하면서 투우장에 가보지 않는다면 미흡한 감을 갖는 것 같다.

그러나 투우장을 가득 채우는 사람들은 관광객들만이 아니다. 유명한 마타도르 곧 주역 투우사들은 수많은 박식한 지방 팬들을 마드리드, 세비야 및 멕시코 시의 거대한 투우장으로 이끌어 들인다. 열광적인 팬들에게는, 위대한 투우사는 몸 동작으로 미를 창조하기 위해 죽음을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 예술가로서 고야나 피카소에 견줄 수 있는 예술가다.

그러나 스페인 사람 모두에게 투우 기질이 있는 것은 아니다. 최근의 한 여론 조사에서는, 60퍼센트가 투우에 거의 혹은 전혀 관심이 없음을 나타냈다. 스페인의 여러 단체는 “고통을 가하는 행위는 예술도 문화도 아니다”라고 주장하면서 이 “국가적 축제”를 반대하는 운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고대 전통

사람을 소와 싸우게 하는 일은 어떤 사람에게는 매혹적이고, 다른 사람에게는 혐오감을 일으키는 것으로, 하나의 고대 전통이다. 지중해 사람들은 들소의 불굴의 정신을 오랫동안 존경해 왔다. 이집트의 파라오들은 소를 산 채로 사냥했는가 하면, 크레타의 왕자들과 공주들은 돌진해 오는 소의 뿔 위로 공중제비를 함으로써 소에 도전하기도 하였다.

통용 기원 첫 천 년 동안, 로마인과 모슬렘의 지배는 전통적인 스페인 쇼가 될 투우에 영향을 주었다. 쇠퇴해 가는 로마의 원형 극장이 투우장으로 개조되었는데, 투우장은 아직도 어느 정도 로마의 원형 극장을 닮았다. 말을 타고 소에게 창을 던지는 일은 무어인들이 처음 시작하여 현재 그 의식에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18세기에 와서야 비로소 투우가 오늘날의 쇼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이 때쯤, 당시의 투우는 귀족층에서 직업적인 하위층으로 넘어갔다. 이 무렵에 고야가 독특한 직업복을 디자인하였는데, 그 복장은 금과 은으로 화사하게 장식되어 있기 때문에 오늘날에는 트라헤 데 루세스 곧 “빛의 복장”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적당한 소를 구하는 데 주의가 집중되었다.

여러 종류의 소

사실상 들소는 17세기에 중부 유럽의 숲에 있는 마지막 본거지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지난 300년 동안, 스페인의 들소는 투우의 종으로 선택된 덕분에 생존해 왔다. 들소와 사육한 소와의 주된 차이는 위협을 받을 때 소가 반응을 나타내는 방식이다. 사나운 이베리아 소는 자기 앞에 무엇 혹은 누가 움직이든지 간에 끊임없이 공격한다.

투우는 이러한 특성에 따라 좌우되며, 스페인의 가축 사육자들은 그러한 특성을 끊임없이 키우려고 한다. 투우장으로 거칠게 나아가는 결정적인 순간까지 4년 동안 소를 애지중지한다. 투우장에 들어가기 전, 소는 결코 투우사나 붉은 천을 본 적이 없다. 만일 있다면, 소는 기법을 기억하여 너무 위험해질 것이다. 그러나 소는 천의 색깔이 빨강이든 다른 무슨 색이든 간에 (소는 색맹임) 본능적으로 움직이는 천을 향해 돌진한다. 약 20분 만에, 모든 것이 끝나고, 450킬로그램이 나가는 소의 시체는 투우장 밖으로 끌려나가게 된다.

투우의 전개 단계

다채로운 개회식에서, 세 명의 마타도르, 그들의 조수들 및 피카도르들을 포함한 모든 참가자는 투우장 주위를 줄지어 행진한다. 각 마타도르에게는 두 마리의 소가 배정되며, 두 번의 싸움을 하는 동안 그 소들과 개별적으로 싸운다. 싸움이 벌어지는 동안 내내, 악단은 활기찬 동작과 감동적인 전통 음악을 곁들이는 한편, 나팔 신호는 드라마의 세 테르시오스 곧 3막의 각 단계의 시작을 알린다.

첫 단계는, 마타도르가 큰 붉은 천을 가지고 여러 차례 예비적인 손놀림을 하여 소를 격동시킨 후 시작된다. 피카도르 곧 기마 투우사가 강철 날 달린 창을 가지고 말을 타고 투우장에 들어온다. 소는 격동되어 말을 향해 돌진한다. 이 말의 옆구리는 푹신한 갑옷에 의해 보호를 받는다. 피카도르는 창으로 공격을 막아내면서 소의 목과 어깨 근육을 찌른다. 이것은 소의 근육을 약화시켜 소로 하여금 돌진할 때 어쩔 수 없이 머리를 더 낮추게 하는데, 이것은 최종적으로 죽이는 데 특히 중요하다. (위의 삽화 참조) 두 번 더 공격을 한 후, 말을 탄 피카도르는 투우장을 떠나고, 싸움의 둘째 테르시오 곧 제2막이 시작된다.

이 단계에서 마타도르의 조수 곧 반데리예로가 나서는데, 그의 역할은 두 쌍이나 세 쌍의 반데리야 곧 강철 미늘이 달린 단창을 소의 어깨에 꿰찌르는 것이다. 반데리예로는 약 20-30미터 떨어진 거리에서 고함을 치고 몸짓을 해서 소의 주의를 사로잡는다. 소가 돌진해 옴에 따라, 반데리예로는 소를 향해 달려가면서 바로 마지막 순간에 갑자기 옆으로 비키면서 소의 어깨에 두 개의 창을 꿰찌른다.

싸움의 마지막 부분에서, 마타도르는 소와—단독으로—정면으로 맞선다. 싸움의 이 결정적인 대목이 숨막히는 순간이라고 한다. 이제 마타도르는 물레타 곧 주홍색 서지 천이나 풀란넬 천을 사용해서 그 동물을 속인다. 그는 소와 가까운 거리를 유지하면서 그 동물을 격동시켜 필사적으로 돌진해 오게 하지만 소가 자기 몸에 점점 더 가까이 옴에 따라 붉은 천으로 소를 조절한다. 싸움의 이 단계는 “사실상 사람과 소와의 싸움이 아니라 사람이 자신과의 싸움 즉 사람이 소의 뿔을 감히 얼마나 가까이 오게 할 수 있는가, 관중을 기쁘게 하기 위해 사람이 얼마나 접근할 것인가?”에 대한 것이라고 전해진다.

마타도르가 이제 기가 꺾인 소를 마음대로 다룰 수 있게 되면, 죽일 준비를 한다. 이 때가 싸움의 절정에 달하는 순간이다. 마타도르는 소가 앞발을 함께 모은 채 죽이기에 이상적인 자세로 서 있는가를 확인한다. 그후 그는 소를 향해 움직여 소의 뿔에 이르러 갑자기 뿔에 받히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칼을 소의 어깨 사이에 꽂는다. 완벽한 경우에는, 칼이 대동맥을 절단하여 거의 즉사하게 한다. 이런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대부분의 소는 여러 번 시도를 해야 한다.

죽는 순간에도 소들은 치명적인 위협이 될 수 있다. 5년 전, 이요라는 유명한 21세의 마타도르가 최후의 일격을 가한 후 돌아섰다. 그런데, 소가 기운을 되찾아 한쪽 뿔로 그 불행한 마타도르의 심장을 찔렀다.

깎는 일과 죽음

많은 사람에게 투우는 다채롭고 흥분시키는 대규모 쇼다. 그러나 투우에는 여러 가지 비열한 면이 있다. 한 열광적인 팬은 “이 야비한 사업에서 존경할 만한 것은 소뿐이며, 사람들은 뿔 끝을 깎아내어 소에게 손상을 입힘으로써 소가 목표물을 찾는 데 어려움을 갖게 한다”고 비평하였다.a

투우 관리가 부패하였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며, 따라서 한 마타도르는 빈정대는 투로 자신이 소를 무서워한 것은 “투우장을 관리하는 사람을 무서워한 만큼의 절반”도 못 된다고 말하였다. 일류 마타도르들이 수백만 달러를 번다 해도, 경쟁은 격심하고, 부상과 죽음의 위험이 끊임없이 존재한다. 지난 250년 동안 약 125명의 저명한 마타도르 중 40명 이상이 투우장에서 죽었다. 대부분의 마타도르는 투우철마다 심하게든 가볍게든 적어도 한번은 뿔에 받혔다.

그리스도인의 견해

전술한 점을 고려해 볼 때, 그리스도인은 투우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사도 바울은 동물에게 친절을 나타내야 할 기본 원칙이 여전히 그리스도인에게 유효하다고 설명하였다. 그는, 모세에 의한 율법에서 이스라엘 농부에게 소를 사려 깊게 대할 것을 특별히 요구한 것을 인용하였다. (고린도 전 9:9, 10) 투우는 소를 대하는 인도적인 방식이라고 결코 묘사할 수 없다. 일부 사람들이 투우를 예술로 여기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고귀한 동물을 의식적인 행사에 의해 죽이는 일이 정당화되는가?

고려해야 할 또 다른 원칙은 생명의 신성함이다. 그리스도인이 단순히 자신의 남자다움을 나타내거나 관중을 흥분시키기 위해 고의적으로 생명을 위험에 처하게 해야 하는가? 예수께서는 자신의 생명을 불필요하게 위험에 처하게 함으로써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으셨다.—마태 4:5-7.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오후의 죽음」(Death in the Afternoon)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 “현대의 도덕적 관점 즉 그리스도인 관점에서 볼 때, 투우 전체는 변명할 여지가 없으며, 분명히 잔인함이 많고, 항상 위험이 있으며, 자초했건 예기치 않았건 간에 항상 죽음이 도사리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투우를 관람하러 가는 수많은 사람 중에는 기뻐하는 사람도 있고, 실망하는 사람도 있고, 혐오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사람들이 투우를 어떻게 여기든지 간에, 소의 창조주께서는 이러한 대규모 쇼를 즐겨 보지 않으신다. 많은 사람이 예술로 간주한다 해도, 투우는 참으로 하나님의 원칙에 위배되는 만행이다.—신명 25:4; 잠언 12:10.

[각주]

a 소 뿔을 깎는 일은 금지되어 있지만, 여전히 스페인에서 널리 행해진다.

[18면 삽화]

말을 탄 피카도르는 창으로 소의 목과 어깨 근육을 찌르면서, 소를 약화시킨다

칼로 소를 막 찌르려 하는 마타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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