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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사적 결합깨어라!—1991 | 2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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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사적 결합
“중대한 위기.” 부시 미국 대통령의 언명이다. “끔찍한 사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스타」지의 기술이다. “유행병.” 「U.S.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지의 보도다. “사회악.” 우려하는 한 시민의 표현이다.
무서움을 일으키는 AIDS 바이러스에 대한 묘사인가? 그런 것이 아니다. 현재 대부분의 나라들에서 AIDS보다 더 많은 피해자를 초래하는 또 다른 종류의 역병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무엇인가? 치사적 결합 즉 음주와 운전이 겹치는 일로 인한 역병이다.
매년 세계적으로 약 30만 명이 교통 사고로 죽는다. 부상자 수백만 명 중 수십만 명이 평생 불구가 된다. 재정적 손실은 해마다 수십억 달러에 달한다. 그 대부분의 원인은 알코올 관련 사고다.
지난 1990년까지 10년 간 미국에서 약 10만 명이 AIDS로 죽었다. 그러나 같은 10년 간 약 25만 명이 알코올 관련 교통 사고로 죽었다. AIDS는 대개 난잡한 성행위자와 정맥 주사에 의한 마약 상용자에게 직접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음주 운전자는 자신만 아니라 무고한 주위 사람도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다.
흔히 음주와 운전을 겸하는 것은 전혀 예기치 않던 사람에게 매우 폭력적인 죽음을 초래하며 가정을 풍비박산시킨다. 그것은 자녀 잃은 부모, 부모 잃은 자녀, 배우자간의 사별을 초래한다.
음주 운전 풍조를 막으려는 노력
이런 파괴적인 풍조를 막으려고 많은 노력이 기울여진다. 미국에서 RID(음주 운전 추방회)와 MADD(음주 운전 반대 어머니회)같은 민간 단체들이 대중 각성 운동을 벌여 왔다. DWI(취중 운전) 제지 프로그램도 있다. 다른 나라에도 그와 비슷한 단체들이 있다. 이러한 단체들은 피해자들의 권리 향상과 법적 개선을 촉진하는 데 기여한다.
법 시행 기관들은 음주 검문소 같은 것을 설치하여 음주 운전자를 적발하려는 노력을 가일층 기울인다. 주류 판매자들에게 형사 책임을 지게 하는 여러 가지 법도 제정하였다. 운전자들에게 기존 법들을 일깨우려고 옥외 광고 게시판을 사용하기도 한다.
계속 늘어나는 사망자 수
이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세계 전역에서 음주 운전으로 인한 사망자 수는 계속 늘어난다. 브라질에서는 21분마다 한 사람—매년 약 2만 5000명—이 알코올 관련 사고로 죽는다. 이것은 브라질의 교통 사고 사망자 총수의 약 50퍼센트에 해당한다. 영국과 독일의 경우 교통 사고 사망자 총수의 5분의 1 가량은 알코올과 관련된 것이라고 한다. 멕시코의 경우 여러 보도 자료에 의하면 교통 사고 사망자 5만 명 중 80퍼센트는 ‘근본적으로 음주 운전으로 야기된, 인간 과실’ 때문이라고 멕시코 시의 「엘 우니베르살」지는 보도한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교통 사고 사상자 중 25퍼센트 이상은 알코올과 관련이 있다고 추산된다. 미국의 경우 보통 1년에 알코올 관련 사고로 약 65만 명이 다치는데, 그중 약 4만 명은 중상이며, 2만 3000명—교통 사고 사망자 총수의 절반 정도—이상이 죽는다.
음주 운전을 막으려는 애타는 노력의 일환으로 미국 워싱턴 주에 DWI 피해자단이 조직되었다. 이것은 술기운이 있는 채 운전한 혐의로 기소된 사람을 처벌하는 법적 과정의 일부가 되었다. 이런 프로그램이 현재 미국의 여러 지역에서 운영된다. 그 목적은 위반자로 하여금 무책임한 운전의 비참한 결과를 직접 보게 하는 것이다. 법정은 죄를 범한 사람에게 피해자와 그 가족의 진술을 잘 듣고 치러진 참혹한 대가를 실감해 보도록 선고한다. 본지는 그러한 사례를 가까이서 살펴볼 기회를 제공받았다.
[4면 사진 자료 제공]
Dominic D. Massita. Sr/Accident Legal Photo Service of New Y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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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와 가해자의 대면깨어라!—1991 | 2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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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와 가해자의 대면
배경: 뉴욕 주 북부 제니시 군(郡) DWI 피해자단. 상황: 여섯 사람이 한결같이 각자의 가족 사진을 들고 슬퍼하면서 취중 운전으로 기소된 위반자들에게 잘못을 깨닫게 하려고 고통스러운 진술을 한다.
다음의 내용은 그들의 진술에서 본지가 발췌한 것이다.
피해자
한 아버지: “이 아이가 우리 아들 에릭입니다. 유머감도 풍부하고 희색 만면한 더할 나위 없는 아들이었지요. 나는 이제 17세 된 아들을 잃은, 애처롭고 비탄에 잠긴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일순간에 우리의 꿈, 장래 희망, 사랑이 사라졌습니다. 음주 운전자가 앗아간 겁니다.
“아내와 함께 묘지에 갑니다. 우리가 매달릴 수밖에 없는 마지막 수단입니다. 비석에 새겨 놓은 에릭의 이러한 말을 읽습니다. ‘진심으로 두 분을 그리워할 겁니다. 우리가 헤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헤어지게 되면 안녕이라는 말을 결코 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울고 말 겁니다.’ 그리고 우리 역시 안녕이라는 말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젊은 과부: “저희 가족의 사진입니다. 22세 된 한 남자가 결혼 피로연에서 떠나면서 자기는 술에 취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자신의 픽업 트럭을 몰고 어둡고 낯선 길을 고속으로 달려가면서 경고 표지를 보았는데도 무시하였고 그 후 멈춤 표지를 지나치면서 계속 달리다가 우리 차를 들이받았지요. 그 다음 순간 기억나는 것으로는 가슴에 고통스러운 압박을 느껴 깨어난 것이었습니다. 눈을 뜨려고 애를 쓰면서 핸들 위에 엎어져 있는 남편을 어렴풋이 보았어요. 아기가 우는 소리도 들리더군요. ‘어떻게 된 거에요?’라는 질문을 한 기억이 납니다.
“아무 대답이 없더군요. 31세 된 남편 빌, 여섯 살 된 큰 아들, 네 살 된 쌍둥이 두 아들 모두 죽었습니다. 남아 있는 유일한 희망은 9개월 된 딸아이인데, 이 아이는 머리가 심하게 다쳐 입원하였습니다.
“음울하게 비가 오는 수요일 아침, 병실에 누워 있을 때, 남편과 세 아들의 장례가 치러졌지요. 네 개의 관, 으스러진 네 구의 시체, 다시는 보거나 듣거나 만져 볼 수 없는 네 사람에 대해 생각하였습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했겠습니까?
“어린 딸과 함께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집을 팔았지요. 그 집에서는 지난날이 자꾸 생각나서 살 수가 없더군요. 남편과 귀여운 세 아들이 묘지에 묻혀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기가 어렵습니다. 그 어떠한 보살핌도, 염려도, 사랑도 남편과 아이들을 보호하는 데 충분치 않았습니다. 내가 느끼는 고통, 좌절, 공허감은 이루 형언할 수 없습니다. 남편과 아이들의 삶은 너무도 짧았습니다.
“내 가족의 생명을 앗아간 사람은 악당이거나 알코올 중독자이거나 상습범이 아니라 단지 하루 저녁 사교 활동을 위해 나섰던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술을 마시고도 운전한 사람 때문에 이 엄청난 대가를 치르는 것입니다. 결코 이런 일이 여러분이나 여러분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일어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한 어머니: “딸아이의 이름은 론다 린입니다. 6월 21일에 고등 학교를 졸업할 예정이었지요. 6월 10일은 운전 교습 과정을 마치는 날이었습니다. 그날 파티를 즐기고 과음을 한 두 사람이 무책임한 운전을 하였습니다. 일순간에 그들은 론다의 생명만 아니라 운전 조교와 급우 두 명의 생명까지 앗아갔습니다.
“그날 오후 론다가 사고를 당했다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론다에게 가봐야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병원에 도착해 보니 론다를 보러가지 말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확인해 보지 않을 수 없었어요. 그래서 흰천을 걷게 하였지요. 딸아이의 얼굴은 온통 부어 있었고 몹시 상처가 났더군요. 아이의 귀여운 눈을 바라보며 팔을 만져 보기는 하였지만 으스러진 몸을 더 낫게 할 수 없었습니다. 기껏해야 딸아이의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어루만질 뿐이었습니다. 아무런 반응이 없더군요. 죽은 것입니다.
“괴로운 일이었지만 남편과 아들들에게 딸아이의 죽음을 알려야 하였어요. 이제 우리의 삶은 참담한 공허감 때문에 전과 같지 않습니다. 한번만이라도 딸아이를 붙잡고 안아볼 수 있다면. 삶은 결코 전과 같지 않을 겁니다. 우리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추억뿐입니다.”
가해자
한 청년: “내 이야기는 이제까지 진술된 것과 다릅니다. 23개월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어제 일같이 생생하게 기억나는군요. 그날 밤 여자 친구가 볼링 리그전을 하던 중이라 술을 몇 잔 들면서 여자 친구의 경기를 지켜 보았습니다. 이어지는 두 시간 반 동안 맥주 대여섯 잔을 마셨습니다. 이 정도면 문제 없고, 더구나 집에 가려면 한 시간이나 더 있어야 하니까 하고 생각하였습니다.
“집으로 출발한 지 30분 정도가 지났는데, 길에 구급차가 있었고, 교통 정리를 하는 사람이 길 한가운데 서 있었습니다. 그 사람을 보았을 때는 너무 늦었습니다. 갑자기 방향을 틀면서 브레이크를 밟았어요. 앞 유리가 깨질 때 ‘사슴이나 개면 좋겠다!’고 혼자말을 하였지요. 하지만 그게 아님을 알고 있었습니다. 차에서 내려 그 사람에게 가서 ‘괜찮습니까? 괜찮나요?’하고 소리를 질렀어요. 아무 대답이 없더군요. 그 사람 곁에 서서 얼굴을 내려다 보았습니다. 온몸에 소름이 끼치더군요.
“주(州) 경찰관들이 와서 이것저것 묻더군요. 그러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매우 협조적이기는 한데 걷는 모습이나 말하는 투가 우스꽝스럽군요. 술을 마셨습니까?’ 경찰관들은 나를 데리고 경찰 초소로 가서 검사를 하였습니다. 0.08[미국 대부분의 지역에서 불법 혈중 알코올 농도치]이었습니다. 이런 일이 있게 된 것이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이런 일은 결코 내게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 왔거든요. 하지만 이제 나는 중과실 치사죄인 DWAI[음주 운전]죄를 범한 것입니다.
“교사 자격증을 취득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때였습니다. 교사에 대한 사회의 시각을 생각해 보십시오. 사람들은 교사라면 도덕적으로 흠잡을 데 없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나는 그렇게 처신해 왔는데 이제 그 모든 것을 잃게 된 것입니다.
“집행 유예 1년에, 면허 정지 19개월, 벌금 250달러를 선고받았고, 1주일 간 구치소에 있었으며, 지역 봉사를 600시간 하였고, 알코올 상담 과정을 9주간 거쳤습니다. 그것뿐만 아니라 밤잠을 자다가 죽은 사람의 얼굴이 떠올라 몸을 떨면서 깨어나기가 일쑤였습니다. 그리고 모든 벗과 가족을 볼 낯이 없었습니다. 계속 살아 간다는 것이 힘겨운 투쟁처럼 여겨졌습니다. 이렇게 해서라도 살 가치가 있는지 의문스럽더군요. 다시 학생들을 가르치러 가서 그들 모두를 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학생들 중 몇 명이나 내가 저지른 일을 알고 있을지 몹시 궁금해지더군요. 그리고 온통, 죽은 사람의 가족에 대한 죄책감과 자책에 사로잡혔습니다.
“사고가 나던 밤 이제까지 살면서 가장 하기 힘겨웠던 일을 해야 했는데, 어머니에게 전화를 하여 ‘어머니, 제가 사고로 사람을 죽였어요. 집까지 갈 차편이 필요합니다’라고 말하는 일이었습니다. 어머니가 도착하였을 때 우리는 서로 붙잡고 울었습니다. 내가 가장 미워하는 사람일지라도 내가 겪은 일을 겪지 않기를 바랍니다. 음주 운전하는 사람들—바로 이런 문제가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원합니다. 여러분이 이 모임을 마치고 나갈 때 우리를 기억하면서 가기를 바랍니다. 우리를 결코 잊지 마십시오.”
피해자단의 결론
피해자단 단장 퍼트리샤 존스턴은 알코올로 인한 충돌 사고로 아버지를 여읜 자신의 비참한 경험을 되새기면서 결론을 내렸다.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알코올이 초래하는 비탄의 눈물을 병에 담아서 그것을 ‘최후의 한잔’ 술이 되게 할 수 있다면, 이와 같은 프로그램은 결코 필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끝으로 사회자는 방청인들에게 질문이 있는지 물었다. 아무도 묻는 사람이 없었다. 단지 많은 사람은 “두번 다시 나는 음주 운전을 하지 않을 겁니다”라는 말을 하며 눈시울을 적셨다.
이러한 피해자단 마련으로 인해, 적발된 위반자들이 다시 음주 운전을 하게 되는 비율에 어느 정도나 영향이 미칠지는 두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를 엄청나게 무서운 문제로 심화시키는 것은 실제로 음주 운전을 하면서도 적발되지 않는 사람들의 수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는 사실이다.
최근 미국 법무부 법무 통계국의 보고에 따르면 최근 한 해 동안 거의 200만 명이 DUI(음주 운전)로 붙잡혔다. 그러나 또한 통계에 따르면 DWI(취중 운전)로 한 사람이 적발될 때 무려 2000명은 검문 검색이 없는 지역에서 버젓이 운전을 한다고 하는데, 이 수만큼 사고가 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그토록 치사적이고 무책임한 행동을 조장하는 환경을 무엇이 조성해 왔는가? 음주 운전을 막으려는 싸움이 계속되는데도 번번이 패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일부 대답을 살펴보기로 하자.
[7면 삽화]
피해자단 앞에서 가해자가 진술하는 광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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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 잘못인가?깨어라!—1991 | 2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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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 잘못인가?
“술취하는 것”은 사회의 많은 사람들에게 “용납되는 일”이라고 뉴욕 주, 모호크 유역 알코올 중독 방지회의 짐 밴더우드는 말한다. 불행한 일이지만 과음이 사회 구성의 일부임을 단호히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오랜 동안 대부분의 사회는 습관적인 음주와 과음마저도 허용해 왔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그런 방임적 태도를 모방해 왔다. 밴더우드가 이렇게 기술한 바와 같다. “영화를 보면, 우리는 언제나 우리보다 술을 많이 마시고도 여전히 밖에 나가 멋진 카우보이 노릇을 할 수 있는 사람에게 박수를 보냈다. 그것은 일종의 자부심을 북돋우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 시각을 어떻게 배격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음주 운전으로 상해 행위를 저지른 사람에게 주된 잘못이 있겠지만, 알코올에 대해 균형잡히지 않은 태도를 지닌 방임적이고 탐닉적인 사회에도 어느 정도 잘못이 있다.
“음주는 용납되는 정도가 아니라 열렬히 장려된다”고 범죄 예방 담당관 짐 톰프슨은 말한다. 그는 “갖가지 스포츠 행사는 맥주 업계와 같은 주류 산업을 끼고 운영된다”고 본지에 말하였다. 여러 스포츠 행사중에 “TV에 가장 많이 나오는 선전은 맥주 선전이며, 사회의 온갖 인기인들이 나와 자기가 좋아하는 맥주를 권한다”고 그는 지적하였다.
전국 방송인 협회와 전국 광고인 협회는 C. 에버릿 쿠프 전임 미국 공중 위생국장의 주관 아래 열린 연방 강습회에 참가하기를 거부하였다. 무엇 때문인가? 그 강습회가 음주 운전과 과실 문제를 다루었기 때문이다. 강습회 교육반을 담당한 퍼트리샤 월러 박사는 이렇게 기술하였다. “우리[사회]가 이 문제를 초래하였으며 사람들은 텔레비전에 나오는 어느 것이든 알아차릴 수 있을 만큼 나이 든 이래 우리가 그들에게 가해 온 온갖 압력에 굴복할 정도로 어리숙하다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책임이 없으며 그것은 우리 문제가 아니다’[라고 사회는 말한다.]”
오늘의 청소년 위반자—내일의 문제 음주자
음주는 텔레비전, 영화, 광고 매체 등 여러 수단을 통해 미화된다. 이것은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의 정신에 ‘술을 마시면 한결 멋지게 살 수 있다’는 메시지를 넣어 준다.
“일반 어린이는 법정 음주 연령이 되기 전에 TV에서 술 마시는 장면을 7만 5000회나 본다”고 미국 텔레비전 폭력 방지 연합회의 T. 래디키 박사는 말한다. 영국의 조사가 앤더스 핸슨은 영국에서 TV 시청률이 가장 높은 시간의 프로그램을 조사한 결과 모든 연속극의 71퍼센트에 음주 장면이 나옴을 밝혀냈다. 한 시간당 음주 장면은 평균 3.4회 나왔는데 “음주로 인해 [교통 사고와 살인 같은] 특정한 결과가 초래되는 장면은 극히 드물었다”고 핸슨은 개탄하였다.
칼럼니스트 콜먼 매카시는 「워싱턴 포스트」지에 기고하면서 그 점을 이렇게 말한다. “운동 선수였다가 술집 광고인이 된 사람들이 ··· 재미있게 노는 모습으로 선전과 판촉 운동을 벌이는데, 이것은 연소자의 관심을 사로잡고 대학생들에게 술을 마시는 것, 그것도 많이 마시는 것이 사회 생활을 잘하는 데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심어주려고 고안된 것이다. ‘기막힌 맛, 부담 없는 술’이라고 선전하는 광고인의 말을 빌리자면, 한잔할 줄 모르는 사람은 사회인으로서 뒤떨어진 사람이라고 한다.”
소련에서도 음주 운전은 국가의 주요 문제다. 일부 관리들은 음주 습관이 바뀔 수 있을 것인지 의아해 한다. “이것은 우리 러시아인의 체질에 배어 있다”고 한 관리는 말하였다. 그것이 사실일지 모르나 많은 사람은 술을 마시는 것을 일종의 기분 전환으로 여긴다. 그렇기 때문에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은 음주 환경에서 자란다.
J. 밴더우드는 미국에 “청소년 음주 문화”가 있다고 하면서 이렇게 설명한다. “술은 소프트볼, 볼링, 미식 축구 최강전, 흥겨운 시간과 맞먹는다. 오락 활동에는 술이 따르고, 술이 있는 곳에 오락이 있다.” 그는 이렇게 지적한다. “심리적으로, 사회적으로 혹은 신체적으로 중독되지 않은 사람은 그런 상황 밖에서 자란 사람일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어서 이렇게 경고한다. “조사 결과 알게 된, 잘 증명된 한 가지 사실은 14세나 15세 혹은 16세 때 과음하기 시작한 사람은 1년 내에 중독될 수 있으며, 20대 초에 과음하기 시작한 사람은 몇 년 내에 중독될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16세에서 24세 연령층의 으뜸가는 사망 원인이 알코올 관련 교통 사고라는 것이 이상할 것이 있겠는가? 필시 다른 여러 나라에서도 그것이 첫째가는 사망 원인일 것이다. 그러므로 월러 박사는 금주 방향으로 이끄는 가정 분위기에서 자녀를 양육하려는 성실한 부모는 “반대 [방향으로] 이끄는” 방임적 사회와 맞부딪친다고 결론내린다.
그러므로 오늘의 청소년 음주자는 내일의 만성 문제 음주자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흔히 갱생 치료를 거부하는데, 이것은 도로상의 대중 안전에 크나큰 위협 요소다. 34세 된 한 상습 위반자는 주에서 지정한 알코올 프로그램을 거친 후 마구 술을 마시고는 자기 픽업 트럭을 몰고 켄터키의 한 간선 도로에서 중앙선을 넘어 달렸다. 그는 십대 승객들을 많이 태운 한 버스와 충돌하였으며, 27명—24명은 청소년, 3명은 성인—을 화염 속에 숨지게 하였다. 사실, 음주 운전자로 기소된 사람들 중 4분의 1 이상은 이전의 위반자로 판명되었다.
술—합법 마약
많은 권위자들은 술이 합법(공인) 마약이라는 사실에 대중의 주의를 이끈다. 권위자들은 술을 그 외의 여러 중독성 약물과 동일시한다.
백악관 특별 브리핑에서 부시 미국 대통령은 음주 운전이 “크랙처럼 손상케 하며, 집단 폭력처럼 종잡을 수 없고, 크랙과 집단 폭력을 합한 것보다 더 많은 수의 청소년의 생명을 앗아간다”고 언명하였다. 그는 또한 “우리는 자녀에게 술이 마약임을 가르쳐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독자가 이제까지 술을 마약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면 독자만 그런 것은 아니다. 교통 안전 담당관 C. 그레이지아노는 “많은 사람이 그것을 연관 짓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이렇게 덧붙인다. “법률가, 의사, 판사 누구에게나 술이 영향을 미칠 수 있다. ··· 그것은 접하기 쉽고 매우 손쉽게 구할 수 있다!” 술은 대부분의 나라에서 합법적이기 때문에 여러 유형의 상점에서 구할 수 있다. 제한 조치가 거의 없는 경우가 흔하다.
원칙적으로 볼 때, 술은 열량을 함유하고 있기 때문에 음식으로 취급된다. 그러나 술은 신체의 중추 신경계를 억제하기 때문에 약물로 분류되기도 해야 한다. 술은 다량으로 섭취할 경우 바르비투르산염의 경우처럼 신체를 마비시킨다. 술은 “분위기를 바꾸어 놓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일종의 긴장 완화제다”라고 J. 밴더우드는 말한다. “술은 사람의 억제력을 이완시키며 사고 과정을 변하게 한다. 자신이 실제로 할 수 없는데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한다.” 바로 여기에 음주 운전의 문제가 있다. 그가 이렇게 결론내리는 바와 같다. “손상된 운전 능력에 대해 손상된 판단력을 내리는 손상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어려운 상황—이혼, 실직, 가정 문제—에 봉착한 사람들은 흔히 압력과 긴장을 해소하려고 과음을 한다. 이런 상황에 처한 사람들은 “DWI를 포함하여 비합리적이고 무책임한 방식”으로 처신한다고 「알코올 연구지」(Journal of Studies on Alcohol)는 말한다.
하지만 반드시 술에 취한 사람만 운전 능력에 지장을 받는 것은 아니다. 단지 한두 잔만 마신 운전자도 판단력이 흐려질 수 있으며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이러한 사회악은 실로 비참한 것이다. 이것은 상업적 탐욕과, 합법적이지만 상당히 위험할 수 있는 물질에 대한 방임적 태도가 치사적으로 혼합되어 더럽혀진 사회악이다. 그렇다면 이런 비극을 당해 애통해 하는 사람들에게 위로가 될 만한 것은 무엇인가? 치유책을 발견할 수 있다는 진정한 희망은 과연 무엇인가?
[10면 삽입]
과음을 하는 십대들은 1년 내에 중독될 수 있다
[10면 삽입]
술 취한 사람만 운전 능력에 지장을 받는 것은 아니다
[9면 삽화]
텔레비전 같은 여러 수단을 통해 음주가 미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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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에게 위로가 될 만한 것은 무엇인가?깨어라!—1991 | 2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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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에게 위로가 될 만한 것은 무엇인가?
알코올 관련 사고로 사랑하는 사람을 갑자기 잃은 사람들은 “‘안녕’ ··· 혹은 ‘사랑해요’라는 말 한마디 할 틈이 없다”고 「음주 운전 사고에 따른 유족의 비탄」(Survivor Grief Following a Drunk-Driving Crash)의 저자 재니스 로드는 기술한다.
살펴본 바와 같이 유족은 충격, 경악, 분노, 절망 등 여러 가지에 대처해야 한다. 그런 식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죽는 일은 지속적인 상실감을 낳는다. 유족은 자신들이 겪는 아픔이 도저히 치유될 수 없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많은 권위자들은 그러한 상실감이 야기하는 고통을 잘 알기 때문에 매년 엄청나게 많은 사상자 수를 줄일 수 있는 법규나 제한 조항을 제정하려고 노력한다. 예로서, 한 관리는 음주 운전 과실자들의 약점이 되는 특성을 지적하였으며, 그런 사람들을 위해 보도 센터를 설립할 것을 제안하였는데, 그런 곳에서 교육, 직업, 마약 상담을 베풀어 줌으로 과실자들이 ‘심기 일전하고 강화됨으로’ 자신의 약점을 극복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실제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그런 것이 아무리 바람직하다 해도 인간이나 인간이 만든 기관은 피해자가 받은 상처를 결코 지울 수 없으며, 그 누구도 죽은 사람을 돌아오게 할 수 없다. 모든 손상을 없애는 데 필요한 것을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제공할 수 없다. 참으로 필요한 것은 체제가 완전히 다른 세상, 수많은 생명을 앗아가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흥분’이라는 오늘날의 이기적이고 파멸적인 개념에 토대를 두지 않은 세상이다.
그러한 참사가 옛일이 될, 더 나은 종류의 세상을 기대할 만한 건전한 근거가 과연 있는가? 그렇다. 분명히 있다. 사실, 그런 비극적인 일이 사라질, 이 땅의 신세계에 대한 확실한 희망이 있다. 신세계에서는 사고로 죽은 사람들까지 생명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이들이 사랑하는 사람들과 재회할 때의 즐거움은 이루 형언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신세계에서 시간이 지나면 과거의 참사에 대한 슬픈 기억들이 영원히 사라질 것이다.
신세계에 대한 그러한 희망은 하나님의 영감받은 말씀인 성서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성서는 이렇게 알려 준다. “[하나님이]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실 것이라.]” (이사야 25:8) 여기에는 죽은 사람을 무덤에서 돌아오게 하는 일이 포함될 것이다. 사도 바울이 이렇게 쓴 바와 같다. “나는 하나님 안에서 희망을 가지고 있읍니다. ··· 그 희망은 의로운 사람이나 불의한 사람이나 다 같이 부활한다는 사실입니다.” (사도 24:15, 새번역) 예수와 사도들은 죽은 사람을 부활시킴으로써 그것을 실증하였다.—누가 7:11-16; 8:40-42, 49-56; 요한 11:1, 14, 38-45; 사도 9:36-42; 20:7-12.
죽었다가 무덤에서 일으킴을 받은 사람들의 삶을 포함하여 신세계가 된 땅에서의 삶은 인간 완전성으로 아름답게 장식될 것이다. 하나님의 치유하는 능력으로 인해 그때 살아 있는 모든 사람의 정신과 몸은 온전한 상태가 될 것이다. “그 거민은 내가 병들었노라 하지 아니할 것이라.” “그 때에 소경의 눈이 밝을 것이며 귀머거리의 귀가 열릴 것이며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벙어리의 혀는 노래하리[라.]”—이사야 33:24; 35:5, 6; 또한 마태 15:30, 31 참조.
성서는 앞으로 이 땅에 펼쳐질 인류의 상태를 이렇게 묘사한다. “[하나님이]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계시 21:4) 다가오는 웅대한 혜택과 행복하게 하는 상태를 마련해 주실 분은 이렇게 언명하신다.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너희는 나의 창조하는 것을 인하여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할지니라.”—이사야 65:17, 18.
누구의 권위에 의해 그 모든 일이 있을 것인가? 희망의 웅대한 수여자, 우주의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의 권위와 능력에 의해 있을 것이다. 그분은 자신의 말씀에서 ‘의가 거할’ 그러한 새 제도가 머지않아 현재의 이기적이고 폭력적인 사물의 제도 즉 이미 “마지막 날”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이 제도를 대치할 것임을 보장하신다.—베드로 후 3:13; 디모데 후 3:1-5, 신세, 13; 잠언 2:21, 22.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의 위로
여호와의 증인은 여느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우리 시대의 비극적인 일에서 면제되어 있지 않으며 이 위험한 세상에서 죽음, 사고 혹은 그 외의 것으로부터 의당 하나님의 보호를 받을 것으로 기대하지도 않는다. 증인은 그러한 보호가 현 시대를 위한 하나님의 뜻이 아님을 안다. 전도서 9:11은 “시기와 우연[예기치 않은 일, 신세]이 이 모든 자에게 임함”이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증인은 오랫동안 하나님의 말씀에 주의를 기울여 왔다. 그분의 약속은 그 약속을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에게 영속적인 위로를 베풀어 주기 때문이다.
한 여호와의 증인은 음주 운전자로 인해 형부가 죽고 언니는 뇌를 심하게 다쳐 정신 장애자가 됨으로 지속적인 치료를 요하는 상태가 되어 몹시 괴로움을 당했다. 언니와 형부 역시 여호와의 증인이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허구한 날 걸핏하면 울음이 나오고 분노가 치밀었습니다. 이런 비극을 초래한 청년에 대해 분노하였고 그 청년을 좀더 단속하지 못한 그 부모에 대해서도 분노하였지요. 이따금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막지 않은 것에 대해 하나님과 천사들에게까지 분노를 느끼게 되더군요. 그분을 섬기던 훌륭한 두 사람을 이토록 버리시다니 하고 말이지요!
“물론 그 일이 있게 된 것에 대해 하나님께 직접 책임이 있는 것도 아니며 그분이 그렇게 될 것을 바라신 것도 아님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이 우리의 모든 걸음을 지도하시며 그러한 해로운 일에서 우리를 보호하신다고 생각했었어요. 이제 이 점에 대해 보다 균형잡힌 견해를 가져야 함을 깨달았으며 해결책을 찾기 시작하였습니다.
“얼마간 시간이 흐른 후에 아픔을 잊기 시작하였으며 그리하여 문제를 추리할 수 있었습니다. 나는 아삽처럼 느꼈습니다. 그는 시편 73편에서 악인이 은총받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하였지요. 그러나 같은 그 시편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계속하여 사실이 그렇지 않으며, 하나님께서 악인에게 은총을 베푸시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정하신 때에 그들은 망하게 될 것임을 알려 주더군요.
“잘못은 내 사고 방식에 있었지 하나님께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는 성구를 잘못 적용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현재 사고나 병이나 죽음에서 자유케 될 것을 보장하시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그분의 신세계에서 그러한 축복을 베푸실 것임을 약속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실제로 말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현재 신체적인 면이 아니라 영적인 면으로 우리를 보호하신다는 점임을 이해하게 되자 분노가 차츰 사라지더군요. 아울러 이제는 재난의 실제 근원 즉 하나님께 반역한 때부터 살인자요 거짓말쟁이인 사단 마귀에게 초점을 맞출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성서는 고통으로 가득 찬 이 세상의 신이 바로 사단임을 분명히 알려 줍니다.—요한 8:44; 고린도 후 4:4.
“왜 고통이 있는지, 왜 하나님께서 고통을 허락하시는지 그리고 그분이 어떻게 고통을 제거하실 것인지에 대한 진리를 보다 온전히 인식하게 되자 하나님께서 우리의 적이 아니라 우리의 구원자이심이 분명해지더군요!
“또한 여호와께서 그분을 섬기는 사람들에게 성령을 통해 지탱할 힘을 주심을 아는 것은 크나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성서는 우리에게 성령이 ‘정상적인 것을 초월한 능력’을 공급할 것임을 보증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수단을 통하여 우리에게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딜 힘을 주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또한 사랑하는 사람을 부활로 보게 될 희망으로 우리를 위로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역경을 거뜬히 이겨낼 수 있는 것입니다.”—고린도 후 4:7, 신세.
훌륭한 미래
지나온 세월 동안 갖가지 형태의 비극적인 일이 여호와의 증인을 포함하여 많은 사람에게 있었다. 이것은 시기와 예기치 않은 일이 모든 사람에게 임한다는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임을 확증한다. (전도 9:11) 그러나 하나님의 종들의 경험은 또한 여호와께서 자신의 백성이 곤경에 처했을 때 위로하시고 지탱할 힘을 주시며, 그러한 재난이 옛일이 될 신세계에서의 훌륭한 미래를 보증하신다는 하나님의 말씀도 진리임을 확증한다.
하나님의 의로운 신세계에서는 동료 인간에 대한 순수한 사랑과 귀중한 선물인 생명에 대한 존중심이 있을 것임을 아는 것은 실로 위로가 된다. 이러한 훌륭한 특성은 현재 이 세상에 만연해 있는 이기심 그리고 사리 사욕을 위해 인간의 약점을 악용하는 태도를 대치할 것이다. 아울러 많은 사람에게 과음하거나 그 외의 마약을 취할 필요성을 느끼게 하는 현 세상의 염려와 압력, 두려움 역시 사라질 것이다.
바로 지금도 여호와의 증인은 연합케 하는 힘인 사랑으로 함께 결속된 세계적 형제 관계를 이룬다. (요한 13:34, 35) 이러한 형제 관계의 구성원들은 상실의 아픔을 겪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든든한 지원 체제를 마련한다. 그들은 이제까지 그렇게 해왔듯이 위로받기를 간절히 원하는 누구에게나 기꺼이 도움을 베푼다.—고린도 후 1:3, 4.
[13면 삽화]
성서는 죽은 자의 부활이 있을 것임을 약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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