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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 장자가 되기를 원하는가?깨어라!—1992 | 6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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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 장자가 되기를 원하는가?
거의 모든 사람이 원하는 것 같다. 그리고 백만 장자가 되는 가장 쉬운 방법은—널리 퍼진 견해에 따르면—복권이나 축구 복권a으로 횡재하는 것이다.
널리 퍼진 인기에 영합하여—그리고 복권으로 생기는 가외의 수입을 원하여—모스크바에서 마드리드까지 그리고 마닐라에서 멕시코 시에 이르기까지 정부들은 무려 1억 달러에 달하는 상금을 주는 국영 복권을 후원한다.
실제로 몇몇 사람들은 백만 장자가 된다. 한 영국인은 25년 동안 축구 복권을 산 끝에 드디어 기록적인 액수의 상금을 탔다. 50센트를 걸고 거의 150만 달러를 탄 것이다. 뉴욕의 한 여인은 더 엄청난 액수의 상금을 탔는데, 그는 플로리다 주 복권으로 5500만 달러를 탐으로써, 세계 최고액의 상금 당첨자로 손꼽히게 되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예외적인 경우다. 좀더 전형적인 것은 스페인의 한 중년 사무원의 경우다. 그는 30년 동안 매주 복권을 샀다. 거액이 당첨된 적은 한 번도 없지만 그는 여전히 기대에 차 있다. “언제나 당첨되기를 기대한다”고 그는 말한다. 그와 비슷하게, 캐나다 복권에 주급을 전부 쓴 몬트리올의 한 남자는 많은 사람의 견해를 요약하여 이렇게 설명하였다. “이런 복권은 서민들이 더 나은 생활을 꿈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하지만 그는 당첨되지 않았다.
복권이 어디서나 사람들의 마음을 끌고 있지만,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다른 형태의 도박을 즐기고 있다. 즉 슬롯 머신 노름을 한다. 이 외팔 강도는 하룻밤 사이에 부자를 만들어 주지는 않지만, 도박을 하는 사람에게 즉시 상금—꽤 많은 액수인 경우도 있음—을 탈 기회를 준다. 그리고 더는 슬롯 머신이 카지노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흥겨운 가락, 번쩍이는 불빛, 이따금 동전이 좌르륵 쏟아지는 소리는 유럽의 많은 카페, 클럽, 식당, 호텔에 슬롯 머신이 널리 보급되어 있음을 광고한다.
프랜시스는 뉴욕 시에 사는 연로한 과부다. 그는 매주 두세 차례 버스를 타고 두 시간 반이나 걸리는 뉴저지 주, 애틀랜틱 시에 간다. 도착하면 그 도시의 카지노로 간다. 카지노에서 그는 여섯 시간 남짓 슬롯 머신으로 노름을 하다가 집에 돌아온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애틀랜틱 시가 없었다면, 무엇을 하고 지냈을지 알 수 없군요. 이것이 우리네 낙이자 일이지요.”
다른 사람들에게는 도박이 단순한 오락 이상의 것이다. 그것은 틀에 박힌 일상 생활에서 벗어나는 길, 혹은 재물을 얻으려는 심산으로 시도해 보는 일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도박은 생활의—필수적인 것은 아닐지라도—중요한 부분이다.
스페인 코르도바의 루시아노는 “내가 도박을 하는 이유는 그에 따르는 모험을 즐기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이렇게 덧붙인다. “변명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 나는 우울했었고, 그 때문에 빙고 노름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운에 맡기는 다른 노름을 찾았지요. 주머니가 두둑해서 노름을 할 준비가 되어 있을 때면 기분이 그만입니다.” 회사 이사로서의 직업을 잃은 또 다른 상습 도박꾼은 나쁜 버릇을 끊어 볼 생각을 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끊는다구요? 결코 끊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내 생활이니까요.” 그의 대답이다.
동기는 가지각색이지만, 도박자의 수가 적지 않음은 분명하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미국의 성인 네 명 중 세 명은 도박을 한다. 스페인과 그 외에 도박이 성행하는 나라의 비율도 그와 비슷하다. 과연 도박은 대기업이다. 세계 기업체들 중에서 39개 국의 연간 복권 매출액보다 많은 매출액을 올리는 업체는 극소수다.
분명히, 도박의 마력은 대단한 것이다. 그러면 그것은 무해한 매력인가? 아니면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가? 고대의 잠언은 이렇게 경고한다. “속히 부하고자 하는 자는 형벌을 면치 못하리라.” (잠언 28:20) 이 말은 도박으로 부자가 되려는 사람들에게 해당되는가?
[각주]
a 축구 경기의 결과를 놓고 도박을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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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의 가슴 아픈 대가깨어라!—1992 | 6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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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의 가슴 아픈 대가
보비는 런던 북부의 어느 거리에 주차해 있던 차 안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23세의 젊은 나이에 자살한 것이다.
한동안 거리에서 잠을 자던 노인이 복지 센터에 찾아왔다. 그는 매우 허약했는데, 나흘 동안 음식을 먹지 못하였고, 심장병 치료를 위해 처방된 약도 먹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섯 자녀의 아버지인 에밀리오는 비탄에 잠겨 있다. 그는 아내와 자녀에게 버림받았다. 이제 가족은 그에게 말도 걸지 않는다.
자살자, 부랑자, 버림받은 아버지. 이들은 외견상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현대 사회에서 드물지 않은 불쌍한 사람들 가운데 세 명이다. 그러나 각각의 비극에는 공통 요인—도박 중독이 있다.
많은 충동 강박성 도박꾼들은 자신에게 문제가 있음을 인정하려 하지 않으며, 가족 성원들은 흔히 사회적 수치를 면하려고 그 문제를 감춘다. 그러나 날마다 전세계의 수많은 가정이 그 파멸적인 중독 때문에 괴로움과 절망에 빠진다.
충동 강박성 도박꾼의 수가 얼마나 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미국에는 적게 잡아도 1000만 명 정도가 있을 것으로 본다. 나라들마다 도박 기회가 급증함에 따라 그 수는 어디서나 경종을 울릴 정도로 계속 늘어난다. 충동 강박성 도박은 “가장 빨리 증가하는 중독”으로 묘사된다.
새로 도박 중독에 걸린 많은 사람은 단지 “자신의 행운을 시험”해 보고 싶어서 심심풀이로 도박을 하는 것으로 시작하였다. 그러다가 악몽 같은 도박 중독에 걸린 것이다.
도박을 억제하지 못하는 이유
무엇이 심심풀이로 도박하던 사람을 충동 강박성 도박꾼으로 바꾸어 놓는가? 원인은 다양하지만, 도박을 하는 사람들은 이런저런 방법으로 생의 어느 시점에서 도박 없이는 살 수 없다고 느끼기에 이른다. (7면 네모 참조) 일부 도박꾼들은 그들의 생활에서 맛볼 수 없는 흥분을 도박에서 발견한다. 한 도박꾼은 이렇게 설명하였다. “따느냐 잃느냐는 내게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내기를 할 때, 특히 주위 사람들보다 돈을 많이 걸 때면, 내가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인물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사람들은 나를 우러러보지요. 아주 짜릿한 기분입니다!”
외로움이나 우울증 때문에 도박을 하는 사람도 있다. 네 자녀의 어머니인 에스터의 남편은 군인인데, 남편은 종종 집에서 멀리 떠나 있었다. 에스터는 외로운 나머지 오락장에 가서 슬롯 머신 노름을 하기 시작하였다. 얼마 안 있어 그는 날마다 여러 시간 노름을 하였다. 시장에서 물건 살 돈을 금방 도박에서 잃었으며, 문제가 불어났다. 그는 도박에 쓰는 돈을 남편에게 숨기려고 애를 썼으며, 한편 하루에 200달러나 드는 중독을 계속 지탱하려고 은행이나 다른 사람에게서 돈을 빌리느라 혈안이 되었다.
그런가 하면 횡재를 한 것에 재미가 붙어 강박 관념에 사로잡힌 사람도 있다. 충동 강박성 도박 문제 권위자인 로버트 커스터는 이렇게 설명한다. “대체로 도박 경력 초기에 그리고 꾸준히 돈을 따는 사람들이 충동 강박성 도박꾼이 된다.” 그 후 돈을 계속 따려는 욕망을 억제할 수 없게 된다.
미신의 교묘한 덫
많은 도박꾼들은 논리보다는 직감에 따라 행동한다. 이성만을 따른다면, 간단히 확률을 계산해 보아도 도박을 할 생각이 나지 않을 것이다. 예를 들어 보자. 미국에서 벼락에 맞아 죽을 확률은 약 170만분의 1이다. 국영 복권에 당첨될 확률은 그보다 적어도 배나 희박하다.
벼락에 맞을 것을 기대하는 사람이 누구인가? 치료 불능의 염세주의자나 기대할 것이다. 그렇지만 복권을 사는 사람은 거의 누구나 자기 번호가 당첨될 꿈을 꾼다. 복권에 당첨될 전망이 훨씬 매력적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가능성이 거의 없는 것을 많은 사람이 기대하는 이유는 미신 때문이다. 그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행운의 숫자”를 고르면 필시 당첨될 것이라고 확신한다.—8면 네모 참조.
스페인의 수학자 클라우디오 알시나는 도박이나 복권과 같이 우연에 좌우되는 노름에서 숫자가 아니라 문자를 사용한다면, 당첨될 가능성은 똑같을지라도 마력—그리고 필시 상당한 수익금—이 사라질 것임을 지적하였다. 특정한 숫자가 불러일으키는 매력은 대단한 것이다. 어떤 사람은 9, 7, 6, 0이라는 숫자를 좋아하는 한편, 생일이나 천궁 도표와 같은 것에서 “행운의 숫자”를 고르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이상야릇한 일을 지침으로 삼는 사람도 있다.
한 남자는 어느 날 몬테카를로 카지노에 가다가 뜻하지 않게 기분 나쁜 일을 당했다. 머리 위로 날아가던 비둘기가 그의 모자에 오물을 떨군 것이다. 바로 그날 그는 1만 5000달러를 땄다. 비둘기가 오물을 떨군 것이 길조였다고 확신한 그는 카지노에 들어갈 때면 먼저 “하늘의 표징”을 받기를 기대하면서 어김없이 카지노 주위를 맴돌았다. 그런 식으로 많은 도박꾼들은 미신에 사로잡혀 돈을 따는 일이 결코 끝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도박꾼들은 그런 생각에 흔히 따르는 강박 관념의 무자비한 손아귀에 사로잡히며, 결국 파멸에 이르게 된다.
돈을 사랑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돈을 벌려고, 되도록이면 거액을 벌려고 도박을 한다. 그러나 충동 강박성 도박꾼의 경우, 벌어들이는 돈에는 특이한 마력이 있다. 로버트 커스터의 설명에 따르면, 그런 도박꾼의 눈에 “돈은 중요한 것이다. ··· 돈은 우정이다. ··· 돈은 약이다.” 그러면 그런 사람에게 돈이 그토록 대단한 의미를 갖는 이유는 무엇인가?
도박계에서 사람들은 거액을 따는 사람, 혹은 거액을 잃는 사람을 칭송한다. 사람들은 그런 사람 주변에 있기를 원한다. 그러므로 도박꾼이 따는 돈은 자신이 중요한 사람, 멋진 사람이라는 표시가 된다. 또한 돈을 따면 자기 문제를 잊게 되고 느긋해지며 우쭐한 기분이 든다. 연구가 제이 리빙스턴의 말에 따르면, 충동 강박성 도박꾼은 “자신의 감정적 밑천을 모두 돈 바구니에 넣는다.” 이것은 비극적인 잘못이다.
허황된 기대가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거듭거듭 잃게 되면, 돈은 갈수록 중요해진다. 이제 필사적으로 본전을 찾으려고 한다. 빚쟁이에게 갚을 돈, 다시 돈을 따기 위한 밑천을 어떻게 긁어 모을 것인가? 오래지 않아 그는 끊임없이 현금을 찾는 생활에 빠진다.
그렇게 비참한 곤경이 수많은 도박꾼의 삶의 현실이다. 그런 도박꾼은 남녀 노소를 불문하고 온갖 계층에서 나온다. 그리고 누구라도 도박에 빠질 수 있다. 최근에 십대들과 주부들 중에서 도박 중독이 급증하는 것을 볼 때 알 수 있다.
십대와 주부 중독자
청소년은 금방 돈을 벌 수 있는 전망을 주는 매혹적인 슬롯 머신이나 그 외에 우연에 좌우되는 노름에 쉽게 빨려든다. 영국의 한 도시에서 실시된 조사에 따르면 14세 청소년 다섯 명 중 네 명은 정기적으로 슬롯 머신 노름을 하며 그들 대부분은 9세 때 그것을 시작하였다. 일부 청소년은 도박을 하느라고 수업에 빠지기도 하였다. 미국의 고등 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6퍼센트는 “필시 병적 도박증일 듯한 징후를 나타냈다.”
스페인 마드리드의 과거 도박꾼들로 구성된 한 자조(自助) 단체의 회장 마누엘 멜가레호는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이 슬롯 머신으로 한 번이라도 거액의 상금을 타면 쉽게 도박에 걸려들 수 있다고 본지에 설명하였다. 하룻밤 사이에 도박은 기분 전환과 열중의 대상이 된다. 얼마 안 있어, 청소년 중독자는 집의 귀중품을 팔거나 집에서 돈을 훔치며, 심지어 중독에 드는 비용을 대려고 소소한 절도를 하거나 매춘 행위를 한다.
전문가들은 주부들 중에서 충동 강박성 도박꾼의 수가 상당히 증가함을 지적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현재 충동 강박성 도박꾼의 총 숫자의 약 30퍼센트가 여자다. 그런데 2000년이 되면 그 비율은 50퍼센트가 될 것으로 추산된다.
두 딸의 어머니로서 노동자 계층에 속해 있는 마리아는 충동 강박성 도박꾼이 된 많은 주부들의 전형적인 예다. 지난 7년 동안 그는 빙고와 슬롯 머신에 3만 5000달러—주로 가계비—를 사용하였다. 그는 이렇게 한숨짓는다. “돈은 영원히 사라졌습니다. 지갑에 50달러가 있을 때, 카페에 들어가서 [슬롯 머신에 돈을 쓰는 대신] 그 돈을 자녀를 위해 사용할 힘이 내게 있을 날을 고대합니다.”
악몽으로 바뀌는 꿈
도박을 지탱하는 기초는 부질없는 꿈이다. 일부 도박꾼들에게 부자가 될 꿈은 일시적인 것이지만, 충동 강박성 도박꾼들에게는 그 꿈이 강박 관념, 필사적으로 추구하는 강박 관념이 되어, 결국 파산하거나 교도소에 가거나 심지어 죽음에 이르게 된다.
도박은 합당한 욕구—해볼 만한 기분 전환, 약간의 흥분, 어느 정도의 부수입, 혹은 일상 생활의 염려에서 벗어나는 맛—를 충족시켜 줄 것을 약속한다. 그러나 충동 강박성 도박꾼들이 비참한 경험을 통해 깨닫듯이, 숨은 대가는 엄청난 것일 수 있다. 그런 욕구를 다른 데서 충족시킬 수 있는가?
[7면 네모]
충동 강박성 도박꾼의 모습
도박꾼은 얼마를 잃든지 상관없이 계속 도박을 한다. 혹시 돈을 따면, 그 돈으로 계속 도박을 한다. 원하면 언제든지 도박을 그만둘 수 있다고 장담할지 모르지만, 충동 강박성 도박꾼은 주머니에 돈이 있는 한 며칠도 못 가서 무엇인가 내기를 하지 않고는 못 배긴다. 그에게는 도박하려는 병적 충동이 있다.
그는 계속 빚을 진다. 빚쟁이에게 빚을 갚을 수 없을 때, 가장 급한 빚부터 먼저 갚고 계속 도박을 하기 위해 더 많은 돈을 빌리느라 혈안이 된다. 조만간 그는 부정직하게 된다. 심지어 고용주의 돈을 빼내어 도박을 할지 모른다. 대개는 그러다가 해고당한다.
모든 것, 아내와 자녀조차도 도박 다음 자리에 온다. 그의 충동 강박성 때문에 보나마나 부부 싸움이 벌어지고 결국 별거나 이혼으로 끝날 수 있다.
심한 죄책감 때문에 갈수록 더 움츠러든다. 다른 사람에게 말하기를 어려워한다. 결국 심한 우울증에 걸리고, 심지어 자살을 기도할 가능성도 있다. 자기가 빠진 곤경에서 벗어날 길을 찾지 못한다.
[8면 네모와 삽화]
몬테카를로에서 떼돈을 번 사람
영국인 찰스 웰스는 1891년 7월에 몬테카를로 카지노에 갔다. 며칠 만에 그는 만 프랑으로 백만 프랑을 벌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넉 달 후에 또 그렇게 벌었다. 다른 많은 도박꾼들은 그의 “비법”을 알아내려고 노력했으나 소용없었다. 웰스는 언제나 결코 비법은 없다고 단언하였다. 사실 이듬해 그는 돈을 모두 잃었으며, 무일푼으로 죽었다. 어처구니없게도, 이 일화는 카지노에서 떼돈을 번 선전 사례가 되었다. 이 이야기는 국제적으로 유명해져서 잊혀질 줄 모른다.
몬테카를로 오류
많은 도박꾼들은 슬롯 머신이나 룰렛 바퀴에 기억력이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룰렛 노름을 하는 사람은 지금까지 특정한 숫자가 연속해서 나왔으면, 룰렛 바퀴에서 그 숫자와 비슷한 숫자가 계속 나올 확률이 높다고 가정한다. 그와 비슷하게 슬롯 머신으로 노름을 하는 사람들은 특정 머신에서 한 동안 상금을 타는 일이 없었다면 틀림없이 곧 상금이 나올 것이라고 으레 생각한다. 그런 그릇된 가정을 몬테카를로 오류라고 한다.
룰렛 바퀴 그리고 슬롯 머신으로 상금을 타게 하는 구조는 모두 순전히 우연에 좌우된다. 그러므로 이전의 상황과는 전혀 무관한 것이다. 「신 브리태니카 백과 사전」에서 지적하듯이, 이렇게 우연에 좌우되는 노름에서 “매번 할 때 특정한 결과를 산출할 가능성은 다른 모든 경우와 똑같다.” 그러므로 당첨될 확률은 할 때마다 똑같다. 하지만 몬테카를로 오류는 많은 도박꾼들을 망하게 하였고 카지노를 흥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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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익한 것보다 나은 것깨어라!—1992 | 6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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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익한 것보다 나은 것
도박꾼들은 거의 모두가 도박을 시작하기 전보다 더 가난해진다. 흔히 도박으로 거액을 번 소수의 사람들조차 그들이 번 돈이 행복을 보장하는 수단이 아님을 알게 된다.
일본의 36세 된 한 독신 남자는 4만 5000달러 복권에 당첨되었다. 그는 당첨금으로 집을 살 계획을 하였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그를 시기하고 헐뜯는 말을 하자, 그는 당첨금을 탈 만한 가치가 없다고 판단하였다. 직장 동료들이 깜짝 놀라게도, 그는 당첨된 복권을 동료들이 보는 앞에서 불태웠다.
플로리다의 경찰은 한 여인을 체포하였는데, 그는 복권으로 500만 달러의 당첨금을 탔는데도 며느리를 죽일 계략을 꾸몄다. 아들의 말에 따르면, 그 여인은 투자를 잘못하고 지나치게 소비하여 당첨금을 다 써버렸기 때문에, 광기에 사로잡혔다.
승자가 된 패자
도밍고는 충동 강박성 도박꾼이었으며, 다섯 자녀의 아버지였다. 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돈을 따면 더 나빠졌다. 모종의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여, 돈을 딴 것이 우연이 아님을 증명해 보이려고 다시 도박장으로 달려가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강박 관념에 사로잡히자, 마약에 취한 사람처럼 되었다. 도박을 계속하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아내와 자녀를 버릴 태세가 되어 있었다. 다시는 도박을 하지 않겠다고 아내에게 거듭 맹세했지만, 속으로는 그런 약속이 부질없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 한번은 아내에게 도박을 완전히 끊었다고 확언하면서도, 바로 그 순간에 다음 내기 돈을 어디서 구할까를 궁리하던 일이 생각난다.
“내 돈과 아내의 돈을 모두 잃고, 사업도 잃었으며, 빚더미에 올라 앉았다. 무엇이든 내기를 하지 않고 지나는 날은 하루도 없었다. 그러다가 자신을 살펴보지 않을 수 없는 일이 생겼다. 여호와의 증인과 성서를 연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배워 알게 된 것에 감명을 받았다. 그러나 그 즉시 도박을 끊지는 않았다. 함께 연구한 증인이 참을성을 무척 나타내 준 것에 대해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곧 성서 소식이 내게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그것은 내가 허튼 꿈의 세계를 버리고 하나님께서 나를 보시듯 자신을 보는 데 도움이 되었다. 매우 충격을 받았다. 몹시 부끄러웠다. 제1세기에 사도 바울의 이런 편지를 받은 사람들과 같았다. ‘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뇨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니라.’—로마 6:21.
“하나님과 그분의 이름, 그분의 성품, 특히 그분의 자비를 알고 감동을 받자 생활 방식을 바꾸고 싶어졌으며, 나보다는 다른 사람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마침내 도박 습관을 완전히 끊고 아내와 함께 침례를 받았다.
“예수께서는 진리가 우리를 자유케 하리라고 말씀하셨다. (요한 8:32) 내 경우에 분명히 그러하였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가 내게 생활에서 따라야 할 가치 있는 것을 주었고, 내게 자중심을 다시 갖게 하였으며, 크나큰 만족을 가져다 주었다. 이전의 도박 친구 하나를 도와 나처럼 인생을 다시 시작하게 할 수도 있었다. 그와 그의 아내가 침례받았을 때, 도박판에서 따본 그 무엇보다 더 큰 흥분을 맛보았다.
“지난 20년간 푼돈일지언정 돈내기를 해본 적이 없다. 그것이 쉬운 일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내게 베풀어 주신 것은 내가 도박으로 충족시켜 보려고 한, 그런 욕구 이상의 것을 채워 주었다.”a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는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경의 견해다. 그리고 하나님의 교훈을 따르는 사람들은 도박이 가져오는 슬픔을 피할 뿐 아니라, 도박에서 얻게 되는 그 무엇보다 훨씬 나은 것을 그분이 그들에게 베푸심을 알게 된다.
훨씬 더 가치 있는 자산
1세기에 바울은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썼다. “네가 ··· [그들에게] 명하여 ···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한 일을 행하고 ···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디모데 전 6:17-19.
취해야 할 한 가지 보물은 하나님 앞에서 갖는 좋은 이름이다. 이것은 “참된 생명”—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한다. 이것은 이제까지 제공된 것 중 가장 큰 상이다. 예수께서는 하나님께 기도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들이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신 당신과 당신이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지식을 섭취하는 것, 이것은 영원한 생명을 의미합니다.”—요한 17:3, 「신세」.
불확실한 상금과는 달리 하나님께서 제공하시는 상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은 누구나 그리고 모두가 받을 수 있다. 그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은 누구라도 원할 만한 온갖 흥분을 맛보게 되고, 자중심을 갖게 되며 의미 있는 삶을 누리게 된다. 한편 도박의 가슴 아픈 대가를 생각할 때, 영국의 이런 옛 격언을 기억하는 것이 좋다. “주사위를 가장 잘 던지려면 아주 던져 없애라.”
[각주]
a 여호와의 증인은 많은 충동 강박성 도박꾼들이 중독을 극복하도록 도움을 주었다. 일부 도박꾼들은 도박 중독자 갱생회와 같은 자조 단체의 도움을 받았다.
[10면 삽화]
지상 낙원에서 누리는 영원한 생명은 도박에서 얻는 그 무엇보다 훨씬 큰 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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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이 도박을 해도 되는가?깨어라!—1992 | 6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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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이 도박을 해도 되는가?
그리스도인이 무익한 것을 얻으려고 도박을 해야 하는가? 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리스도인에게 자신과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일할 것을 권한다.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 종용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데살로니가 후 3:10, 12.
한 사회학자는 복권을 ‘가난한 사람 다수가 소수의 사람을 부자로 만드는 수단’이라고 불렀다. 이것은 도박 전반에 걸쳐 맞는 말이다. 그리스도인이 비용을 댈 여유가 별로 없는 사람들의 돈을 챙겨서 부자가 되기를 원할 것인가? 그리스도인은 ‘이웃을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해야 한다. (마가 12:31) 그러나 도박은 사랑이 아니라 이기심을, 동정심이 아니라 무관심을 조장한다.
도박의 동기는 흔히 그리스도교와 어긋나는 탐심—탐욕—의 영이다. 로마서 7:7에서 바울은 “탐내지 말라”고 말하였다. ‘탐내다’라는 단어는 “몹시 열망하다, 갈망하다”를 의미한다. 이것은 이웃 사람의 돈을 따려는 도박꾼의 부당한 욕망을 묘사하는 말이 아닌가? 그런 욕망은 그리스도교의 이상인 나누어 주고 베푸는 일과 조화되지 않는다.
성서는 이렇게 말한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디모데 전 6:10) 이것은 거듭거듭 자신을 고통스럽게 찌르는 습관에 예속된 충동 강박성 도박꾼의 처지를 묘사하는 말이다.
예수께서는 사람을 “그의 열매로” 알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마태 7:20) 충동 강박성 도박꾼과 그 가족들이 겪는 비참한 상태 외에도, 도박은 오랫동안 부정직이나 범죄와 연관되었다. 「신 브리태니카 백과 사전」은 이렇게 기술한다. “도박에 붙어 있는 수많은 수치스런 낙인은 도박 조장자들이 부정직하기 때문에 초래된 결과다.” 조직된 범죄는 합법적인 도박과 불법적인 도박 활동 모두와 연관되었다. 그리스도인이 그런 산업을 간접적이라도 지원하고자 할 것인가?
이 일련의 기사 중 둘째 기사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도박에는 흔히 행운의 숫자, 행운의 날짜, 혹은 연속된 행운을 미신적으로 추구하는 일이 따른다. 여러 세기에 걸쳐 도박꾼들은 행운의 여신의 비위를 맞춰 환심을 사려고 부단히 노력해 왔다. 로마인들은 행운의 여신을 포르투나라고 하였으며, 결국 그 여신을 받들기 위해 로마 시에 신전을 26개나 세웠다.
그와 비슷한 신으로, 예언자 이사야는 배교한 이스라엘인들이 숭배한 갓이라는 신을 언급하였다. 그는 이렇게 썼다. “오직 나 여호와를 버리며 ··· 갓[“운수 신”, 난외주]에게 상을 베풀어 놓[는 너희여.]” (이사야 65:11) 한 해의 마지막 날에 운수 신 앞에 갖가지 음식을 차린 상을 베푸는 것이 관습이었다. 이런 식으로 고대 사람들은 오는 해에 행운을 잡기를 기대하였다.
하나님께서는, 무분별하게 갓 즉 행운의 여신을 신뢰하여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 사람들을 승인하시지 않았다. 행운을 의지하는 것은 참 하나님 여호와를 떠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변덕스러운 운명의 여신에게 굽실거릴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은 우리에게 훨씬 더 가치 있는 부를 약속하신 분, 결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으실 분인 참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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