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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낙태 문제—6000만 명을 죽이는 것이 해결책인가?
    깨어라!—1993 | 6월 1일
    • 낙태 문제—6000만 명을 죽이는 것이 해결책인가?

      황당하게 놀란 열다섯 살 된 한 소녀는 떠나가는 남자 친구를 눈물 고인 눈으로 노려본다. 남자 친구로부터 바보같이 왜 임신했냐는 말을 들은 것이다. 소녀는 남자 친구가 자기를 사랑하는 줄로 알았다.

      한 여인은 여섯째 아기를 임신했음을 알게 되자 눈앞이 캄캄했다. 남편은 실직하였고, 다섯 아이는 밤마다 주린 배를 움켜쥐고 잠자리에 든다. 어떻게 한 아이를 더 키울 수 있단 말인가?

      “도저히 아기를 낳을 형편이 못 됩니다.” 옷을 잘 차려 입은 한 여인이 의사에게 설명한다. 이 여인은 마침내 전문직 자격증을 취득하여 새로운 직업을 가질 참이었다. 남편은 변호사 일에 온 정신을 쏟고 있다. 이들에게 아기를 키울 시간이 어디 있겠는가?

      이런 사람들은 완전히 동떨어진 세계에서 살면서 제각기 난처한 문제에 직면하지만 해결책은 같은 것을 택한다. 낙태다.

      낙태는 정치·사회·의학·신학계에서 열띤 논쟁을 불러일으키면서, 90년대에 격렬한 논란이 된 문제다. 미국에서 낙태 반대자들은 태아의 권리를 위해 시위 운동을 벌인다. 낙태 찬성자들은 자유라는 근거와 여성의 결정권으로 맞선다. 낙태를 반대하는 십자군과 낙태를 찬성하는 자유 투사들은 선거 운동, 법정, 교회, 심지어 거리에서도 싸움을 벌인다.

      수많은 사람은 주도권을 잡으려는 양측의 격렬한 논쟁에 끼여 갈팡질팡하고 있다. “선택권 지지”(pro-choice: 낙태 찬성), “생명권 지지”(pro-life: 낙태 반대)라는 말은 바로 어중간한 상태에 있는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주의 깊이 선택한 용어다. 자유를 우상화하는 이 시대에 선택권을 좋아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렇지만 생명권을 지지하지 않을 사람이 또 어디 있는가? 낙태 찬성 그룹들은, 안전하지 않은 불법 낙태 수술을 받다가 죽은 억압받는 여자들의 상황을 극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옷걸이용 철사를 내보인다. 낙태 반대자들은 낙태된 수많은 아기의 끔찍한 광경을 떠올리게 하려고 낙태된 아기를 담은 커다란 병을 내보인다.

      더할 나위 없이 끔찍한 이 비극은 로렌스 H. 트라이브가 지은 책 「낙태: 절대적 사실의 대립」(Abortion: The Clash of Absolutes)에 적절하게 묘사되어 있다. “태아가 실제로 사람임을 쉽게 그려 볼 수 있고, 태아의 상태를 중요시하고 가엾게 여기는 많은 사람은 임신부와 임신부가 처한 곤경을 거의 헤아리지 않는다. ·⁠·⁠· 임신부와 임신부의 몸을 쉽게 그려 볼 수 있고, 임신부에게 자기 삶을 주관할 권리가 있다고 외치는 다른 많은 사람은 임신부 속에 있는 태아를 거의 그려 보지 않으며 태아에게 허용될 수 있는 삶을 실제적인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이 도덕 전쟁이 계속 벌어지는 동안 올해에도 5000만 명에서 6000만 명의 태아가 권리 싸움터에서 희생될 것이다.

      감정을 자극하는 이 문제에서 당신은 어느 쪽을 지지하는가? 다음의 주요 질문에 어떻게 대답하겠는가? 결정권은 근본적으로 여성에게 있는가? 낙태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과연 있는가? 생명은 언제 시작되는가? 그리고 별로 제기되지 않지만, ‘생명과 출산의 창조주께서는 낙태를 어떻게 보시는가?’ 하는 궁극적인 질문도 있다.

      낙태는 옛날부터 있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는 낙태가 흔했다.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에 유럽에서는 태동기 전 즉 임신부가 태아의 움직임을 느낄 수 있기 전에 하는 낙태는 허용할 만한 것으로 여겼다. 성혁명과 더불어 응분의 결과 곧 원치 않는 수많은 임신이 초래되었다.

      1960년대는 여성 운동으로 특징을 이루었다. 이 운동의 기초석은 이른바 생식권이다. 일부 사람들은 강간이나 근친 상간으로 임신하게 된 여자 혹은 건강이 위태로운 임신부의 낙태 권리를 부르짖는다. 의료 과학 기술 덕분에 모태를 검사하여 분만 결함 여부와 아기의 성별을 알아낼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의사의 비관적인 진단 때문에 낙태하는 경우도 있다. 40세가 넘은 임신부는 기형아를 낳을까 봐 걱정할지 모른다.

      가난에 찌든 나라들에서, 피임법을 쓰기 어려운 많은 여성은 자녀를 더 낳으면 부양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일부 임신부들은 낙태 찬성론의 정의를 확대 적용하여, 단지 임신 시기가 좋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혹은 태아의 성별을 알아보고 나서 단순히 원치 않기 때문에 낙태한다.

      이런 논쟁에서 마구 튀어 나오는 공격적인 말은 생명이 언제 시작되느냐 하는 문제와 관련이 있다. 수정란 세포가 생명체라는 사실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문제는 어떤 상태의 생명체인가 하는 것이다. 단순한 세포 조직인가? 아니면 인간인가? 도토리가 도토리나무인가? 그렇다면 태아는 사람인가? 태아에게 인권이 있는가? 말씨름은 끝날 줄 모른다. 병원에서 조산아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손에 땀을 쥐며 일하던 의사가 그 조산아와 같은 달 수의 태아를 죽이기 위해 또 땀을 흘린다는 사실은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인가! 아기가 모태 안에 있을 때 죽이는 것은 법으로 허용되지만, 모태 밖에 있을 때 죽이는 것은 살인이다.

      아예 임신을 하지 않기 위해 마음만 먹으면 피임법을 쓸 수 있는, “해방된” 여권 신장론자들이 낙태를 합법화하라고 소리지른다. 이들은 사실상 이미 수태하고 생식할 능력을 사용한 후에 이른바 생식권이라는 것을 격렬하게 주장한다. 그들이 실제로 원하는 것은 그 생식을 취소할 권리다. 정당한가? “내 몸이에요!” 그러나 사실인가?

      임신부: ‘내 몸이다!’

      아기: “아니에요! 제 몸이에요!”

      「낙태 문제 지침서」(Abortion—A Citizens’ Guide to the Issues)는 임신 첫 12주 안에 “젤리 상태의 조그마한 조직 덩어리는 매우 쉽게 제거할 수 있다”고 알려 준다. 낙태를 “조직 덩어리를 제거하는 것”으로 혹은 “수태의 산물을 지우는 것”으로 보는 것이 옳은 일인가? 혹은 이런 말들은 달갑지 않은 사실을 부드럽게 나타내고 불편한 양심을 편하게 하려고 꾸며댄 표현들이 아닌가?

      원치 않는 그 조직 덩어리는 자체의 염색체 단위를 온전히 갖춘 생명체로 무럭무럭 자란다. 염색체는 예언된 자서전처럼 독특한 개인이 형성되어 가는 자세한 이야기를 알려 준다. 저명한 태아학 연구 전문 교수 A. W. 라일리는 이렇게 설명한다. “생물학적으로 우리는 어느 단계의 태아든지 그것이 모체의 단순한 부속 기관이라는 견해를 가질 수 없다. 발생학적으로 태아는 수태될 때부터 어머니와는 분리되는 개체다.”

      무책임한 행위

      그렇지만 많은 사람은 낙태를 쉽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원치 않는 임신을 하지 않으려는 절박한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은 발생하는 어떤 “사고”이든 처리하기 위한 안전 장치로 낙태를 이용하려고 한다.

      통계가 알려 주는 바에 따르면, 금세기에 사춘기 연령이 낮아졌다. 따라서 자녀를 가질 수 있는 연령이 낮아졌다. 그런 청소년은 자녀를 갖는 특권에 따르는 막중한 책임에 대해 가르침받는가? 미국인 남녀는 보통 16세에 동정을 잃는다. 다섯 명 중 한 명은 열세 살이 되기 전에 동정을 잃는다. 기혼 남녀 중 3분의 1은 혼외 정사를 갖고 있거나 가진 적이 있다. 난잡한 성행위를 하는 사람들은 낙태하기 일쑤다. 에이즈가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매춘을 합법화하라는 외침이 이따금 있듯이, 낙태를 합법화하면 어느 정도 낙태 수술을 안전하게 할 수 있겠지만, 이것은 도덕병을 널리 퍼뜨릴 수 있고 실제로 널리 퍼뜨리는 온상을 만들었다.

      폭력 피해자인가, 상황 피해자인가?

      흥미롭게도, 연구 결과가 알려 주듯이, 강간을 당해 임신한 경우는 극히 드물다. 미국 미니애폴리스에서 강간 피해로 보고된 3500건을 차례로 조사한 결과 임신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었다. 이전 체코슬로바키아에서 8만 6000건의 낙태 중 강간당해 임신한 경우는 22건뿐이었다. 그러므로 강간이나 근친 상간으로 임신했기 때문에 낙태하려는 비율은 매우 적다.

      고칠 수 없는 분만 결함을 지닌, 심하게 기형이 된 아기를 낳을 것이라는 끔찍한 진단을 받은 경우는 어떠한가? 결함의 초기 조짐을 보고 일부 의사들은 서둘러 낙태를 하라고 강력하게 권한다. 의사들은 진단에 대해 절대적으로 자신할 수 있는가? 많은 부모는 그런 섬뜩한 예견이 근거가 없는 때도 있었음을 증언할 수 있다. 이들이 낳은 예쁘고 건강한 자녀는 그 사실을 증명한다. 결함이 있다고 생각되는 자녀를 낳아야 하는데도 마냥 좋아하는 부모도 있다. 사실, 미국의 경우 태아에게 어느 정도 결함이 있을 것이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낙태하려는 사람은 1퍼센트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독자가 이 기사를 읽는 동안에도 수백 명의 태아가 죽어 간다. 어디서 그런 일이 벌어지는가? 그리고 관련된 사람들의 생활은 어떤 영향을 받는가?

  • 낙태의 비참한 희생자
    깨어라!—1993 | 6월 1일
    • 낙태의 비참한 희생자

      해마다 5000만 명에서 6000만 명의 태아가 낙태로 죽는다. 이 숫자를 헤아려 볼 수 있는가? 이것은 하와이 제도 전체 인구를 한 주일마다 전멸시키는 것과 마찬가지다!

      정확한 숫자를 모으기가 어렵다. 정부들이 대부분 낙태 기록을 꼼꼼하게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낙태가 제한되어 있거나 불법인 곳에서 전문가들은 단지 추측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낙태 상황은 다음과 같다.

      미국의 경우, 편도선 수술 다음으로 가장 흔한 것이 낙태 수술이다. 해마다 150만 건 이상의 낙태 수술이 행해진다. 이 중 대다수—다섯 명 중 네 명—의 여성은 미혼이다. 독신 여성 중에는 아기를 낳는 것보다 임신 중절하는 경우가 갑절이나 되었다. 한편 결혼한 여성 중에는 대개 낙태하는 경우보다 출산하는 경우가 열 배나 되었다.

      인구 대부분이 가톨릭교인인 중앙 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의 낙태법은 세계에서 가장 엄격하다. 그렇지만, 불법 낙태가 마구 행해져 여성의 건강에 심각한 위험을 초래한다. 예를 들어, 지난해에 브라질 여성 중 약 400만 명이 낙태하였다. 그중 무려 40만 명은 합병증 때문에 의료 처치를 받아야 하였다. 라틴아메리카의 경우 모든 임신의 4분의 1 가량은 중절된다.

      대서양 너머 아프리카 대륙의 낙태법도 엄하다. 낙태 수술을 받다가 상처를 입거나 죽는 경우가 허다하다. 특히 불법 시술자의 도움을 받으려고 하는 가난한 여성이 그런 일을 당한다.

      중동 전역의 여러 나라들에는 엄격한 법조문이 있다. 그런데도 여전히 낙태가 널리 행해지며, 값비싼 수술비를 치를 여유가 있는 여성들이 수술을 받는다.

      서유럽에서는 대개 낙태를 어느 정도 허용한다. 가장 자유로운 곳은 스칸디나비아다. 영국 국립 보건부는 1967년에 낙태가 합법화된 이후 낙태 건수를 수집하였다. 영국 보건부는 낙태 건수가 갑절로 늘었음과 아울러 사생자, 성 매개 질환, 매춘, 수많은 생식 질환이 증가하였음을 보고하였다.

      동유럽에는 변화의 물결이 심하게 일고 있다. 그 곳의 낙태법 역시 변화가 심하다. 구소련 지역의 경우 낙태는 해마다 1100만 건이나 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것은 세계에서 손꼽을 정도로 많은 수다. 피임약이나 기구가 별로 없고 생활 형편도 어렵기 때문에, 그 지역의 일반 여성은 생애중에 여섯 차례에서 아홉 차례 낙태할 것이다.

      동유럽 전체가 대체로 해방을 추구한다. 극단적인 예는 루마니아다. 이 곳에서 이전 정권은 인구를 늘리려고 낙태와 피임법을 단단히 금하였다. 여자들은 적어도 자녀 넷을 낳아야 하였다. 이 때문에 1988년에 루마니아의 고아원들은 버려진 아이들로 가득 차고 넘칠 지경이었다. 그래서 1989년에 출범한 혁명 정부가 낙태에 대한 그런 제한 규정을 없애자 임신 네 건 중 세 건이 낙태로 끝나고 있다. 이 비율은 유럽에서 가장 높은 셈이다.

      낙태가 가장 많은 곳은 아시아다. 중화 인민 공화국은 하나 낳기 정책과 강제 낙태를 실시하여 연간 1400만 건의 낙태로 단연 앞자리를 차지한다. 일본에서 낙태한 산모는 낙태된 아기를 기념하려고 작은 형상에 옷가지와 장난감으로 꾸며 놓는다. 일반 사람들은 경구 피임약 복용을 몹시 꺼리며, 가족 계획을 하는 주된 방법은 낙태다.

      아시아 전체에 걸쳐, 특히 인도에서는 의료 기술로 인해 여권 운동가들이 난처한 상황에 빠지게 되었다. 양수 검사와 초음파 검사 같은 과학 기술로 인해 갈수록 더 빨리 임신 초기에 아기의 성별을 알아낼 수 있게 되었다. 오랫동안 동양 문화권에서는 딸보다 아들을 좋아해 왔다. 그래서 성별 검사와 낙태를 다 쉽게 할 수 있는 곳에서 낙태되는 태아는 대개 여자이고, 그 결과 남녀 출산 비율이 맞지 않는다. 이제 여권 신장 운동은 사실상 여자 태아를 낙태할 여성의 권리를 주장해야 하는 어이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

      사내아이를 더 좋아하는 아시아에서, 의사들은 수많은 여자 태아를 낙태시킨다

      산모의 느낌

      여느 수술과 마찬가지로 낙태 수술에도 상당한 위험과 고통이 따른다. 임신부의 자궁 입구 즉 자궁 경관은 태아를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 단단히 닫혀 있다. 이 부분을 확장하여 기구를 삽입하면 고통스럽고 상처가 날 수 있다. 흡인 낙태를 하는 데는 30분 정도가 걸리는데, 그 동안 다소 심한 통증과 경련을 겪는 임신부도 있다. 염수(塩水) 낙태는 조기 분만을 유도하는 것이다. 때로는 분만 촉진제인 프로스타글랜딘을 주입하여 조기 분만을 유도한다. 수축이 여러 시간 혹은 심지어 여러 날 지속될 수 있으며, 고통스럽고 감정적으로 지치게 할 수 있다.

      낙태 때문에 오는 합병증에는 출혈, 자궁 경관 손상이나 파열, 자궁 상처, 응혈, 마취 반응, 경련, 발열, 오한, 구토가 있다. 태아나 태반의 일부가 자궁 안에 남아 있을 경우 특히 감염될 위험이 많다. 낙태를 깨끗하게 하지 않는 일이 흔히 있으며, 이럴 경우 남아서 썩어 가는 조직을 제거하기 위해 혹은 심지어 자궁 전체를 제거하기 위해 수술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미국과 영국 그리고 구(舊)체코슬로바키아 정부에서 실시한 연구 조사의 제안에 따르면, 낙태 수술을 받을 경우 나중에 불임, 난관 임신, 유산, 조산, 분만 결함이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다.

      미국의 공중 위생국장을 지낸 C. 에버릿 쿠프는 “낙태를 한 후, 다시는 가질 수 없는 아기를 애절하게 원하는 여인의 감정 반응이나 죄책감에 대한 연구”를 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말하였다.

      낙태에 관한 연구 대상 그룹에는 하나님의 법과 생명에 대한 존중심 때문에 동정을 유지하는 정숙한 젊은 그리스도인들을 포함해야 한다. 이렇게 조사하면 그런 젊은 그리스도인들이 좀더 건전한 관계와 더 큰 자중심, 지속적인 정신의 평화를 누리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태아의 느낌

      어머니의 포근한 태 속에서 편안하게 지내다가 갑자기 치사적인 힘의 공격을 받은 아기의 느낌은 어떨 것인가? 우리는 상상할 뿐이다. 체험담은 결코 들어볼 수 없으니까.

      낙태는 대개 임신한 지 12주 안에 한다. 이 무렵에 자그마한 태아는 호흡을 하고 삼키는 일을 한다. 태아의 심장도 뛴다. 자그마한 발가락을 움직이고 주먹을 쥐며 양수 속에서 재주넘기도 한다. 고통도 느낀다.

      많은 경우 태아를 자궁에서 떼어 내고 칼날 같은 것이 붙어 있는 진공 튜브로 빨아들여 양동이에 담는다. 이 방법을 진공 흡인법이라고 한다. 강한 흡인력(가정용 진공 청소기 흡인력의 29배)으로 태아의 몸을 찢는다. 자궁 경관을 확장하여 소파 수술로 태아를 낙태하는 경우도 있다. 소파 수술은 고리 모양의 칼로 자궁 내막을 긁어내면서 태아를 잘게 써는 것이다.

      16주가 넘은 태아는 염수 낙태법 즉 소금 중독법으로 죽이기도 한다. 긴 바늘로 양수 주머니를 찔러 양수를 일부 빼낸 다음 그 자리에 농축된 소금 용액을 넣는다. 태아가 액체를 삼키고 호흡함에 따라 태아의 연약한 폐에 유독한 용액이 들어가며 태아는 발버둥치고 경련을 일으킨다. 독소의 부식 작용 때문에 살갗이 타서 벗겨진 채로 오그라든다. 태아의 뇌에서 피가 나오기 시작한다. 이따금 하루 남짓 지나 분만이 시작되기도 하지만, 몇 시간 지나면 고통스러운 죽음이 찾아온다. 살아 있지만 죽어 가는 아기가 나오는 것이다.

      태아가 너무 많이 자랐기 때문에 그런 방법으로 죽일 수 없는 경우 한 가지 방법이 더 있다. 즉 제왕 절개술이다. 이것은 생명을 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생명을 없애기 위한 왜곡된 목적의 제왕 절개술이다. 임신부의 배를 가르고 거의 언제나 살아 있는 아기를 끄집어낸다. 이 때 우는 아기도 있다. 그렇지만 아기가 죽도록 버려둔다. 어떤 경우는 질식시키거나 익사시키며, 다른 방법으로 죽이기도 한다.

      의사의 느낌

      여러 세기 동안 의사들은 숭고한 히포크라테스 선서에 표현된 가치관을 받아들였다. 그 선서의 일부는 이러하다. “나는 요청을 받을지라도 아무에게도 극약을 주지 않겠으며 또 극약을 먹도록 권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어떤 여자에게도 파멸적인 [낙태용] 좌약을 주지 않을 것이며, 죄짓는 일 없이 영예롭게 의술을 펴겠습니다.”

      모태 속의 생명을 끊는 의사들은 무슨 윤리적 갈등에 시달리는가? 조지 플레시 박사는 이렇게 설명한다. “수련의 시절에 낙태 수술을 할 때는 감정적 괴로움이 없었습니다. ·⁠·⁠· 낙태 수술을 수백 차례 한 후에야 언짢은 느낌이 들더군요. ·⁠·⁠· 왜 달라졌을까요? 의사로서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한 부부가 와서 낙태 수술을 해달라고 하더군요. 임신부의 자궁 경관이 단단히 닫혀 있는 상태여서 확장하기 어려워 수술을 할 수 없었습니다. 한 주 후에 자궁 경관이 더 부드러워졌을 때 다시 오라고 했습니다. 그 부부는 다시 와서는 생각을 바꾸었다고 말하더군요. 나는 일곱 달 후에 그 부부의 아기를 받았습니다.

      “여러 해 후 이 부부와 함께 회원으로 가입해 있는 테니스 클럽의 풀장에서 그들의 아들 제프리와 놀게 되었습니다. 제프리는 명랑하고 귀여운 아이였습니다. 단지 기술상의 어려움 때문에 제프리의 생명을 없애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아찔하더군요. ·⁠·⁠· 단지 임신부가 요청한다고 해서 발육된 태아의 사지를 찢는 것은 사회가 허용하지 않아야 할 사악한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의 경우, 낙태를 하려고 찾아오는 여성 다섯 명 중 네 명은 미혼이다

      낙태 수술을 돕는 일을 중단한 한 간호사는 낙태 진료소에서 근무할 때 하던 일에 대해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는 낙태된 아기의 신체 부위 수를 세는 일도 해야 하였습니다. ·⁠·⁠· 임신부의 자궁 속에 태아 몸의 일부가 남게 되면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까요. 나는 조각난 몸을 보면서 팔 둘, 다리 둘, 몸통, 머리가 다 있는지 확인하였습니다. ·⁠·⁠· 내게는 네 자녀가 있습니다. ·⁠·⁠· 내 직장 생활과 개인 생활 사이에는 도저히 조화될 수 없는 엄청난 차이가 있었습니다. ·⁠·⁠· 낙태는 힘겨운 일입니다.”

  • 생명—소중히 여겨야 할 선물
    깨어라!—1993 | 6월 1일
    • 생명—소중히 여겨야 할 선물

      여호와 하나님께서 인간 가족에게 자녀를 갖는 특권을 주셨을 때, 이것은 참으로 놀라운 선물이었다! 부부가 결합하여 낳은 이 어여쁜 산물, 이 귀여운 아기는 그를 소중히 여기고 보살펴 주려고 기다린, 서로 사랑하는 행복한 부부의 팔에 안길 것이었다. 아기의 삶이 펼쳐질 때 이 가족에게는 기쁨이 충만할 것이었다.

      그렇지만 아담과 하와의 죄 때문에, 인류 가족 가운데 태어난 아기들에게는 비참한 결과가 따르게 되었다. 인류의 첫 어머니는 죄의 결과로 저주를 받아 자녀를 낳을 때 고난과 신체적 고통을 겪어야 하였다. 그리고 그 후손들은 죄많은 환경에서 살게 되었으므로, 자녀를 기르는 것은 감당하기 어려운 도전이 되었다. 따라서 오늘날의 복잡한 세상에서 자녀를 갖는 것이 흔히 기쁨과 거리가 먼 것도 놀랄 일이 아니다. 하지만 태아에 대한 창조주의 견해는 어떠한가? 도덕 풍조가 변했으므로 창조주의 견해도 달라졌는가? 결코 달라지지 않았다. 전세계의 태아에 대한 창조주의 견해와 관심은 변함이 없다.

      성경에서는 모태에서 자라는 아기가 별개의 독특한 인간임을 분명히 알려 준다. 생명은 수태시에 시작된다. 세상에 태어나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미 보아 오신 아기를 사람들이 보게 되는 것일 뿐이다. 에스겔은 “태를 연 모든 아기”에 대해 말한다. (에스겔 20:26, 「신세」) 욥은 “모태의 문”을 묘사하며 유산된 아기를 “빛을 보지못한 아이”라고 부른다.—욥 3:10, 16.

      모태에서 자라는 가냘픈 생명체에 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부드러운 관심에 유의해야 한다. 그분은 예레미야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를 복중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느니라.]” (예레미야 1:5) 다윗은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은밀한데서 지음을 받고 땅의 깊은 곳에서 기이하게 지음을 받은 때에 나의 형체가 주의 앞에 숨기우지 못하였나이다 내 형질이 이루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나이다.]” (시 139:15, 16) 욥은 하나님을 “나를 태 속에 만드신 자”, “우리를 뱃속에 지으신 자”라고 부른다.—욥 31:15.

      그러면 아기를 원치 않는데도 임신하여 절망에 빠진 임신부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어떤 염려를 나타내시는가? 창조주께서는 어버이가 져야 할 막중한 책임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아신다. 임신부가 어려운 상황에 있으면서도 경건한 요구 조건을 존중하여 아기를 낳기로 할 경우, 창조주께서는 그런 결정을 축복하시지 않겠는가? 어버이는 아기를 행복하게 키우기 위해 창조주의 도움을 기도로 구할 수 있으며 또 마땅히 구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말씀 가운데서 이미 자녀를 키우는 데 적용할 수 있는 최상의 조언을 하셨다. 성서 원칙을 가정 생활에 적용하면 축복된 결과를 얻게 된다. 자녀를 경건하게 키우는 데서 오는 기쁨과 보람은 자녀를 키우면서 치르는 어떤 희생보다 가치 있다. 자부심을 가진 어버이라면 누구나 이 사실을 증언할 수 있을 것이다.

      성폭행이나 근친 상간으로 임신한 경우, 여호와께서는 문제를 다르게 보시는가? 임신부에게 한 행위는 범죄였지만, 아기를 탓할 수는 없다. 아기의 생명을 끊는 것은 또 하나의 폭력 행위로 대응하는 것일 뿐이다. 분명히 여호와께서는 그런 성폭행으로 임신한 피해자들이 경험하는 감정적 상처를 잘 아시며, 산모와 아기가 후유증을 균형 있게 극복하도록 도우실 수 있다.

      태아를 만삭이 될 때까지 그냥 두면 임신부의 생명이 위태로울 것이라고 의사가 말할 경우에는 어떠한가? 앨런 굿마처 박사는 이렇게 기술하였다. “오늘날 거의 어떤 임신부든 암이나 백혈병 같은 불치병에 걸려 있지 않는 한 무사히 분만할 수 있다. 그런 병이 있다 해도, 낙태로는 생명을 구하기는커녕 연장시킬 수도 없을 것이다.” 「아메리카나 백과 사전」은 이렇게 말한다. “임신부들은 대개 의료상의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경우에도 무사히 분만할 수 있으므로, 임신부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낙태할 필요가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낙태는 대개 아기를 갖지 않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낙태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태로워지는 상황은 매우 드물다. 하지만 분만할 때 그런 상황이 실제로 벌어지면 어버이는 산모의 생명과 아기의 생명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결정은 어버이에게 달려 있다.

      생명의 창조주께서 출산 능력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분명한 지침을 마련하신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창조주께서 보시기에 키울 생각도 없이 생명을 심는 것은 죄다. 생명을 없애는 것이 죄인 것처럼.

      낙태 문제를 놓고 벌이는 입씨름은 이 제도가 끝날 때까지 계속될 것이 뻔하다. 그러나 생명의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과 그분의 법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에게는 결코 논란의 여지가 없다. 생명은 그 시작부터 보호하고 소중히 여겨야 할 귀중한 선물이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낙태를 봄

      결혼의 띠 밖에서 임신하였고 어머니가 될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젊은 여자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래도 아기를 낳아야 하는가? 임신부가 어리석고 부도덕하게 행동했다고 해서 아기에 대한 창조주의 감정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아기를 낳으면 산모는 부도덕으로 인한 자연스런 결과를 실제로 깨닫게 되므로 하나님의 법이 지혜로움을 실감하게 된다. 불법적인 성행위의 결과를 지워 버리면 고통스런 죄 의식이 남거나 앞으로 더 대담하게 부도덕한 행위를 하게 될 수 있다.

      짐을 나눠 질 아버지가 없을 경우, 자녀를 키우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하늘에 계신 우리의 아버지와 튼튼한 관계를 갖는다면, 어머니는 자녀를 키우는 데 필요한 도덕적 힘과 감정적 힘, 지원을 얻고 인도를 받을 수 있다. 그분은 또한 홀어버이의 짐을 더는 데 도움이 되는 그리스도인 회중을 마련하셨다.

  • 이 종교들에 해결책이 있는가?
    깨어라!—1993 | 6월 1일
    • 이 종교들에 해결책이 있는가?

      낙태 문제 때문에 도덕적 곤경에 빠진 많은 사람은 영적 지도자의 인도를 구한다. 영적 지도자들은 어떤 반응을 나타내는가?

      가톨릭 교회는 낙태를 단호히 반대하며, 생명은 수태시에 시작된다고 가르친다. 정치에 가담한 일부 사제들은 낙태를 지지하는 가톨릭 정치인들을 파문하도록 교황에게 요청한다. 그렇지만 많은 가톨릭교인은 낙태를 지지하며 자유를 부르짖는다.

      장로 교회(미국)의 보고에 따르면, 목회자 중 46퍼센트는 “성서에서 낙태를 잘못이라고 가르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교회의 공식 입장은 낙태를 지지하는 것이다.

      연합 그리스도 교회 16차 총회에서는 ‘적절한 가족 계획 혜택을 받고 합법적으로 안전한 낙태를 선택할 수 있는 남녀의 권리를 옹호’하기로 결의하였다.

      복음주의 루터 교회의 방침은 낙태가 “최후 수단으로서만 선택되어야 한다”고 언명한다. 하지만 이 교회는 낙태를 “죄”라고 하거나 “생명은 수태시에 시작된다”고 말하려 하지 않았다.

      남침례회는 낙태를 강력히 반대한다. 그러나 미국 침례 교회는 이렇게 언명한다. “낙태에 관한 우리 교회의 공식 견해는 나뉘어 있다. 따라서 낙태에 대해 어떤 공식 방침을 옹호할 것인지는 각 사람이 자기 신념에 따라 할 자유가 있다.”

      유대교도 분열되어 있다. 정통파는 대부분 낙태를 반대하는 반면, 개혁파와 보수파 유대교인은 대개 낙태를 지지한다.

      이슬람교는 수태 후 40일까지는 무슨 이유로든 낙태를 허용한다. 그러나 그 기간이 지난 후에는 임신부의 생명이 위태로울 경우에만 낙태를 허용한다. 「하디트」는 이렇게 말한다. 태아(胎芽)는 “40일간은 씨의 형태[로 있다]. 그 다음 그만큼의 기간에는 핏덩어리다. 그 다음 그만큼의 기간에는 살덩어리다. 그 다음 ·⁠·⁠· 천사가 파견되어 아기에게 생명의 호흡을 불어넣는다.”

      신도(神道)에는 낙태에 대한 공식 견해가 없으며, 낙태를 개인의 결정에 맡긴다.

      힌두교인과 불교인, 시크교인은 전반적으로 생명에 대한 존중심을 가르친다. 그러나 이들은 낙태 논쟁에 끼어들지 않는다. 환생을 믿기 때문이다. 낙태는 태아를 다른 생명체로 보내는 것에 불과하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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