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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 끝에 관한 예언들
    깨어라!—1995 | 7월 1일
    • 세상 끝에 관한 예언들

      “수천 년 동안 우울한 예언자들은 세상이 곧 끝날 것이라고 예언해 왔다.”—「예고: 미래를 향한 도약」(Premonitions: A Leap Into the Future).

      그리스도께서 사망하신 지 꼭 1000년이 되는 해인 1033년에, 프랑스의 부르고뉴 주민들은 그 해에 세상이 끝날 것이라고 예언되었기 때문에 큰 두려움에 휩싸였다. 파괴적인 폭풍우가 이례적으로 여러 번 닥치고 심한 기근이 들자 운명의 날이 닥칠 것이라는 예감이 고조되었다. 대규모 군중들이 회개를 나타내는 공개 집회를 열었다.

      이보다 몇십 년 전, (당시 통용되던 연대 계산에 따라) 그리스도의 탄생 후 1000년째 되는 해가 다가옴에 따라 많은 사람들은 세상 끝이 임박하였다고 믿었다. 유럽의 수도원들은 예술·문화 활동을 중단하다시피 하였다고 한다. 에릭 러셀은 자기의 저서 「점성술과 예언」(Astrology and Prediction)에서 이렇게 기술하였다. “‘지금 세계의 종말이 다가오는 것이 보인다’는 말은 10세기 후반기에 집행되던 유언에 흔히 나오는 문구였다.”

      16세기에 프로테스탄트 개혁을 시작한 마르틴 루터는 당시 세상 끝이 가까웠다고 예언하였다. 한 출처에 의하면, 루터는 “나는 심판 날이 바로 눈앞에 다가왔음을 확신한다”고 말하였다. 다른 저술가도 이렇게 설명하였다. “루터는 역사적인 사건들을 성서 예언들과 상호 연관시켜 봄으로 마지막 대격변이 가까웠다고 공언할 수 있었다.”

      19세기에, 재림 교회의 창시자로 널리 인정받는 윌리엄 밀러는 1843년 3월과 1844년 3월 사이의 어느 시점에 그리스도가 돌아오실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그 결과, 당시 일부 사람들은 하늘로 데려감을 받을 것을 기대하였다.

      좀더 최근에 와서, 우크라이나에 본거지를 둔 ‘위대한 백인 형제단’이라는 종교는 1993년 11월 14일에 세상이 끝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미국에서는 라디오 복음 전파자인 해럴드 캠핑이 1994년 9월에 세상 끝이 올 것이라고 말하였다. 세상 끝의 날짜에 관한 이러한 예언들은 분명히 빗나가고 말았다.

      이로써 사람들은 세상이 끝날 것임을 더 이상 믿지 않게 되었는가? 그와는 정반대이다. “새로운 천년기가 시작될 2000년이 다가옴에 따라, 운명의 날에 관한 예언들이 수없이 나돌고 있다”고 1994년 12월 19일자 「U. S.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지는 기술하였다. 동 지는 “미국인 중 거의 60퍼센트가 앞으로 언젠가는 세상이 끝날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 중 거의 3분의 1은 몇십 년 내로 끝날 것으로 생각한다”고 보도하였다.

      세상 끝에 관한 예언이 이토록 난무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세상이 끝날 것이라고 믿을 만한 타당한 이유가 있는가?

  • 세상이 끝날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믿는 이유
    깨어라!—1995 | 7월 1일
    • 세상이 끝날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믿는 이유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거침없이 인정하듯이, 세상은 참으로 절박한 상황에 처해 있다. “나는 세계 여러 곳에서 사람들에게 우리의 미래의 전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 보았다”고 말하면서 복음 전파자인 빌리 그레이엄은 이렇게 기술하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관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다. ·⁠·⁠· 세계 무대에 일어날 사건들을 묘사하는 데 ‘아마겟돈’과 ‘아포칼립스’라는 단어가 자주 사용되고 있다.”

      왜 “아마겟돈”과, “아포칼립스” 즉 묵시라는 단어가 오늘날의 상황을 묘사하는 데 자주 사용되는가? 이 두 단어의 의미는 무엇인가?

      성서적 기원

      성서는 “전능자이신 하느님의 큰 날의 전쟁”을 언급하면서 이 전쟁을 “히브리어로 하르-마게돈이라고 하는” 장소 즉 아마겟돈과 연관시킨다. (계시 16:14-16) 「웹스터 신 대학생용 사전」(Webster’s New Collegiate Dictionary)은 아마겟돈을 “선한 세력과 악한 세력 간의 최후의 결전”으로 정의한다.

      “아포칼립스” 즉 묵시는 “계시” 즉 “베일을 벗김”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단어에서 나온 말이지만, 다른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계시 또는 묵시라는 성서의 책은 하느님에 의한 악한 자들의 멸망과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천년 통치를 부각시킨다. (계시 19:11-16; 20:6) 따라서 「웹스터 신 대학생용 사전」은 “아포칼립스”를 “하느님께서 악의 통치 세력을 멸하시고 메시아 왕국에서 의로운 자들을 생명으로 일으키실 임박한 우주의 대격변”으로 정의한다.

      오늘날 사람들이 세상과 세상의 상황에 관해 이야기할 때, 성서에 나오는 내용의 영향을 받은 것임이 분명하다. 성서는 세상 끝에 관하여 실제로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성서와 세상 끝

      성서는 세상 끝에 관하여 분명하게 예언한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제자들은 마지막 때 즉 말세에 관해 이야기하였다. (마태 13:39, 40, 49; 24:3; 디모데 후 3:1; 베드로 후 3:3; 「개역 한글판」) 그렇지만 이 땅 자체가 멸망될 것이라는 의미로 이야기한 것은 아니었다. 문자적인 땅에 관해서 성서는 ‘땅을 영원히 요동치 않게 하셨’다고 말한다. (시 104:5) “세상 끝”이라는 표현은 단지 “사물의 제도의 종결”을 의미한다.—「신세계역」.

      사도 베드로는 홍수 전 노아 시대의 세상을 언급하면서 “[경건하지 않은 사람들로 이루어진] 그 때의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을 당하였다”고 말하였다. 그리고 나서 베드로는 계속해서, 우리의 현 세상이 “경건하지 않은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되어 있”다고 말하였다. (베드로 둘째 3:5-7) 사도 요한 역시 이렇게 기록하였다. “세상은 지나가고 있으며 그 욕망도 그러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은 영원히 머물러 있습니다.”—요한 첫째 2:17.

      이 세상 끝에는, 세상의 보이지 않는 경건하지 않은 통치자 역시 제거될 것이다. (계시 20:1-3) 사도 바울은 이 악한 통치자에 관해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였다고 기록하였다. 예수께서는 그에 관해 “이제 ·⁠·⁠· 이 세상 임금[사탄 마귀]이 쫓겨나리라”고 말씀하셨다.—고린도 후 4:4; 요한 12:31; 「개역 한글판」.

      이 세상과 세상의 악한 통치자에게서 벗어나는 것은 축복이 아니겠는가? 그리스도인들은 오랫동안 그렇게 되기를 기도하면서, 하느님의 왕국이 와서 그분의 뜻이 땅에서 이루어지도록 요청해 왔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아버지의 명령에 순종하여 땅에서 모든 악을 제거해 주시기를 기도하고 있다!—시 110:1, 2; 잠언 2:21, 22; 다니엘 2:44; 마태 6:9, 10.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생긴다. 세상 끝에 관한 예언이 거짓된 즉 틀린 것은, 사람들이 성서의 참 예언을 오해하거나 잘못 적용한 것을 근거로 그러한 일이 발생할 날짜를 예언했기 때문일 수 있는가? 함께 살펴보도록 하자.

      1세기의 오해

      1세기에 있었던 일을 고려해 보자. 예수께서 하늘로 올라가시기 바로 전에, 사도들은 “주여, 당신은 이 때에 이스라엘에 왕국을 회복시키실 것입니까?” 하고 간절히 물었다. 사도들은 왕국의 모든 축복을 당장 누리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때나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관할에 두셨으니, 그에 대한 지식을 얻는 것은 여러분에게 속한 일이 아닙니다.”—사도 1:6, 7.

      예수께서는 죽으시기 바로 사흘 전에도 그와 비슷한 이러한 말씀을 하셨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십시오. 여러분의 주가 어느 날에 올는지 여러분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이셨다. “그 날이나 시간에 관하여는 아무도 모릅니다.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십니다. 계속 눈여겨보며 깨어 있으십시오. 여러분은 지정된 때가 언제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마태 24:42, 44; 마가 13:32, 33) 예수께서는 몇 달 전에도 이렇게 격려하신 적이 있었다. “준비하고 있으십시오. 생각하지 않은 시간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누가 12:40.

      예수께서 그렇게 주의를 주셨는데도,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임재와 그 결과 오게 될 축복을 갈구한 나머지, 왕국 약속들이 언제 성취될 것인지 추측하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사람들에게 이렇게 편지하였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와 우리가 그분에게로 함께 모이게 되는 일에 관하여 여러분에게 요청합니다. 영감받은 표현이나 말로 전하는 소식이나 우리에게서 왔다는 편지로나 여호와의 날이 왔다고 하더라도, 여러분은 쉽게 이성을 잃고 흔들리거나 흥분하지 마십시오.”—데살로니가 둘째 2:1, 2.

      바울의 말을 볼 때, 초기 그리스도인들 중에 잘못 기대한 사람들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데살로니가의 그리스도인들은 자기들이 ‘하늘에서 그리스도에게로 모이게 될’ 특정한 날짜를 예언하지는 않았을지 모르지만, 그 일이 일어날 때가 임박하였다고 생각했음이 분명하다. 그들은 견해를 시정할 필요가 있었으며, 바울의 편지가 그러한 역할을 하였다.

      시정이 필요한 사람들이 더 있다

      첫째 기사에서 살펴본 것처럼, 1세기가 지난 다음에도 하느님의 약속이 어느 특정한 때에 성취될 것이라고 기대한 사람들이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의 출생이나 사망을 기점으로 천 년 끝에는 세상 끝이 올 것으로 예언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예언 역시 거짓되었음이, 다시 말해서 틀렸음이 증명되었다.

      여기서 몇 가지 질문이 생긴다. 성서 약속의 성취에 관하여 실수가 있었다는 것은 약속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의미인가? 하느님의 약속은 신뢰할 만한가?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은 이 문제에 관한 시정을 어떻게 받아들였는가?

  • 하느님의 약속을 신뢰할 수 있는가?
    깨어라!—1995 | 7월 1일
    • 하느님의 약속을 신뢰할 수 있는가?

      우리의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느님께서는 항상 그분의 말씀에 충실하시다. “내가 말하였은즉 정녕 이룰 것”이라고 그분은 말씀하셨다. (이사야 46:11) 하느님의 종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한 후에 이렇게 기록하였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씀하신 선한 일이 하나도 남음이 없이 다 응하였더라.”—여호수아 21:45; 23:14.

      여호수아 시대로부터 메시아가 오시기까지, 하느님의 영감받은 수백 가지 예언이 성취되었다. 한 가지 예로서, 예리코(여리고)를 재건하던 사람은 여러 세기 앞서 예언된 형벌을 받았다. (여호수아 6:26; 열왕 상 16:34) 또 한 가지 예는 성취가 불가능해 보이는 약속으로서, 굶주린 사마리아 주민들이 그 예언이 있고 난 다음날 먹을 양식을 충분히 얻게 되리라는 약속이었다. 열왕기 하 7장에서, 하느님께서 그 약속을 어떻게 이행하셨는지를 읽어 볼 수 있다.

      세계 강국들의 흥망

      하느님께서는 성서 필자들에게 영감을 주시어 세계 강국들의 흥망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을 기록하게 하셨다. 예로서, 하느님께서는 자기의 예언자 이사야를 사용하시어 막강한 바빌론이 정복될 것임을 그 일이 있기 거의 200년 전에 예언하셨다. 실제로, 페르시아(바사) 사람들과 제휴한 메디아(메대) 사람들이 정복자로 언급되었다. (이사야 13:17-19) 더욱 놀랍게도, 하느님의 예언자는 정복을 주도할 인물로 페르시아의 왕 키루스(고레스)의 이름까지 언급하였는데, 그 예언이 기록될 당시 키루스는 태어나지도 않았던 것이다! (이사야 45:1) 그러나 그뿐만이 아니었다.

      예언자 이사야는 바빌론의 정복이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지도 예언하였다. 이사야는 그 도시를 보호하는 물줄기인 유프라테스 강이 “마르게 하”고 “[바빌론의] 성문을 ·⁠·⁠· 닫지 못하게 하리라”고 기록하였다. (이사야 44:27-45:1) 이러한 세부점들이 성취되었다고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전하였다.

      바빌론이 아직 최강국이던 당시, 하느님께서는 자기의 예언자 이사야를 사용하시어 바빌론의 뒤를 이을 세계 강국들에 관해 말씀하셨다. 다니엘은 두 뿔 달린 상징적 숫양이 다른 모든 “짐승”을 정복하는 데 성공하는 환상을 보았다. 다니엘은 두 뿔 달린 숫양이 누구를 상징하는지에 관해 일말의 의문도 남기지 않고, 그것이 “메대와 바사 왕들”이라고 기록하였다. (다니엘 8:1-4, 20) 과연, 예언과 일치하게 메디아-페르시아는 기원전 539년에 바빌론을 정복함으로써 다음 세계 강국이 되었다.

      하느님께서 보여 주신 이 환상에서, 그 다음에 다니엘은 ‘두 눈 사이에 현저한 뿔이 있는 수염소’를 보았다. 다니엘은 계속해서 이렇게 묘사하였다. ‘그것이 수양에게로 가까이 나아가서는 그 수양을 땅에 엎드러뜨리고 짓밟았으나 능히 수양을 그 손에서 벗어나게 할 이가 없었더라. 수염소가 스스로 심히 강대하여 가더니 강성할 때에 그 큰 뿔이 꺾이고 그 대신에 현저한 뿔 넷이 하늘 사방을 향하여 났더라.’—다니엘 8:5-8.

      하느님의 말씀은 이 모든 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관해 일말의 의문도 남기지 않는다. 그에 대한 설명에 유의해 보자. “털이 많은 수염소는 곧 헬라 왕이요 두 눈 사이에 있는 큰 뿔은 곧 그 첫째 왕이요 이 뿔이 꺾이고 그 대신에 네 뿔이 났은즉 그 나라 가운데서 네 나라가 일어나되 그 권세만 못하리라.”—다니엘 8:21, 22.

      역사는 이 “헬라 왕” 즉 그리스의 왕이 알렉산더 대왕임을 알려 준다. 기원전 323년에 알렉산더가 사망하자, 그의 제국은 결국 그의 네 장군—셀레우코스 니카토르 1세, 카산드로스, 프톨레마이오스 1세, 리시마코스—에 의해 분할되고 말았다. 성서의 예언 그대로 “그 대신에 네 뿔이 났”던 것이다. 또한 예언된 대로 이 네 뿔 중 알렉산더만큼 권력을 누린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실로, 이러한 성서 예언들은 너무나 놀랍게 성취되었기 때문에 “미리 기록된 역사”라고 불리게 되었다.

      약속된 메시아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죄와 죽음의 영향으로부터 구출할 메시아를 약속하셨을 뿐 아니라, 약속된 분의 신분을 밝혀 줄 예언도 수백 가지나 하셨다. 그 중 몇 가지로서 예수께서 스스로 성취시킬 수 없었던 예언들만 고려해 보자.

      약속된 분이 베들레헴에서 태어날 것과 처녀에게서 날 것이 수백 년 앞서 예언되었다. (비교 미가 5:2과 마태 2:3-9, 이사야 7:14과 마태 1:22, 23) 그분이 은화 서른 닢에 배반당할 것이 예언되었다. (스가랴 11:12, 13; 마태 27:3-5) 또한 그분의 몸의 뼈가 하나도 부러뜨려지지 않을 것과 그분의 옷을 차지하려고 제비를 던질 것이 예언되었다.—비교 시 34:20과 요한 19:36, 시 22:18과 마태 27:35.

      특히 의미 심장한 사실로, 성서는 메시아가 언제 올 것인지를 예언하였다. 하느님의 말씀은 이렇게 예언하였다.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와 육십 이 이레가 지날 것이[라].” (다니엘 9:25) 성서에 의하면, 예루살렘 성벽을 중건하라는 영은 아닥사스다(아르타크세르크세스) 왕 20년에 났다. 세속 역사를 보면 그 해는 기원전 455년이었다. (느헤미야 2:1-8) 해로 된 이 69이레는 483년(7 × 69 = 483) 후인 기원 29년에 끝났다. 바로 그 해에 예수께서는 침례를 받으시고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아 메시아 즉 그리스도가 되셨다!

      의미 심장하게도, 예수 시대 사람들은 당시에 메시아가 나타나기를 기대하고 있었다고 그리스도인 역사가 누가는 기술하였다. (누가 3:15) 로마 역사가 타키투스와 수에토니우스,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 그리고 유대인 철학자 필론 주다에우스 역시 사람들이 기대에 부푼 상태였다고 증언하였다. 애바 힐렐 실버까지도 자기의 저서 「이스라엘의 메시아 고찰사」(A History of Messianic Speculation in Israel)에서 “메시아가 기원 1세기의 이사분기경에 나타날 것으로 기대되었다”고 인정한다. 이것은 다니엘서에 일부 근거한 “그 당시 보편화된 연대 계산” 때문이었다고 그는 말하였다.

      이러한 사실에 비추어 볼 때, 메시아가 돌아와 왕으로서 통치하기 시작할 때가 언제인지를 성서에서 알려 주는 것도 놀랄 일이 아닐 것이다. 다니엘의 예언에 들어 있는 연대적인 증거는 “지극히 높으신 자”가 땅에 대한 통치권을 “지극히 천한 자”인 예수에게 넘겨 주실 확정적인 시점을 지적하였다. (다니엘 4:17-25; 마태 11:29) “일곱 때”라는 기간 즉 예언적인 일곱 해가 언급되어 있는데, 이 기간은 계산해 보면 1914년에 끝났다.a

      끝날 날짜는 제시되지 않음

      그러나 1914년은 그리스도께서 “원수 중에서” 통치를 시작하시는 해일 뿐이다. (시 110:1, 2; 히브리 10:12, 13) 계시라는 성서의 책은 그리스도께서 하늘에서 그 통치를 시작하실 때에 사탄 마귀와 그의 천사들을 땅으로 내던지실 것이라고 알려 준다. 그리스도께서 이 악한 영자들을 제거하시기 전에 그들은 ‘짧은 기간’ 땅에 많은 화를 초래할 것이라고 성서는 말한다.—계시 12:7-12.

      중요한 점으로서, 성서는 이 ‘짧은 기간’이 끝나고 그리스도께서 아마겟돈에서 하느님의 적에 대한 심판 집행자로 행동하실 날짜를 알려 주지 않는다. (계시 16:16; 19:11-21) 사실, 앞의 기사에서 살펴본 것처럼, 예수께서는 그 일이 일어날 날짜를 아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항상 준비하고 있으라고 말씀하셨다. (마가 13:32, 33) 데살로니가의 초기 그리스도인들이나 그 후의 사람들처럼 누군가가 예수께서 말씀하신 바를 넘어선다면, 거짓된 즉 부정확한 예언을 하게 될 것이다.—데살로니가 둘째 2:1, 2.

      견해를 시정할 필요성

      1914년 후반기 이전에,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가 그 때 돌아오셔서 자기들을 하늘로 데려가실 것으로 기대하였다. 그래서 1914년 9월 30일에 있었던 연설에서, 성경 연구생이던 A. H. 맥밀런은 “우리가 곧 집으로[하늘로] 가게 될 것이기 때문에 이것이 아마도 나의 마지막 공개 연설이 될 것”이라고 말하였다. 분명히, 맥밀런의 예상은 빗나갔다. 그러나 맥밀런이나 그의 동료 성경 연구생들의 기대에 어긋난 것은 그 때만이 아니었다.

      1931년부터 여호와의 증인으로 알려진 성경 연구생들도, 성서의 놀라운 예언들이 1925년에 성취될 것으로 기대하였다. 그들은 그 때 지상 부활이 시작되어 아브라함, 다윗, 다니엘과 같은 고대 충실한 사람들이 돌아올 것이라고 추측하였다. 좀더 최근에 와서, 많은 증인들은 그리스도의 천년 통치의 시작과 관련된 사건들이 1975년에 일어나기 시작할지도 모른다고 추측하였다. 그들의 그러한 예상은 인간 역사의 일곱째 천년기가 그 해에 시작될 것이라는 이해에 근거한 것이었다.

      그들이 이렇게 틀린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고 해서 하느님의 약속이 잘못된 것은, 다시 말해서 하느님께서 실수를 하신 것은 아니었다. 결코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러한 실수나 오해를 한 것은 1세기 그리스도인들의 경우와 같이, ‘그 때는 알 수 없다’는 예수의 주의에 유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잘못된 결론을 내린 것은 그리스도에게 악의를 품거나 그분에게 불충실했기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의 약속이 자기 시대에 성취되는 것을 보고 싶은 열렬한 욕망 때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A. H. 맥밀런은 나중에 이렇게 설명하였다. “우리는 실수를 인정하고 더 많은 계몽을 얻기 위해 하느님의 말씀을 계속 조사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때때로 우리의 견해를 어떻게 조정할 필요가 있든지 간에, 은혜로운 대속 마련과 영원한 생명에 대한 하느님의 약속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참으로, 하느님의 약속은 신뢰할 수 있다! 인간은 곧잘 실수를 한다. 따라서 참 그리스도인은 예수의 명령에 따라 기다리는 태도를 유지할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심판 집행관으로 반드시 오실 것이므로 항상 깨어서 그에 대비할 것이다. 그들은 그릇된 예측으로 지각력이 무뎌져 세상 끝에 대한 참된 경고를 무시하게 되는 일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세상이 끝날 것이라는 믿음은 어떠한가? 머지않아 우리 생애 중에 이 세상이 끝날 것이라는 증거가 과연 있는가?

      [각주]

      a 사단 법인 워치 타워 성서 책자 협회 발행 「우리는 지상 낙원에서 영원히 살 수 있다」 책 138-41면 참조.

      [7면 삽화]

      바빌론 함락에 관한 세부점들이 예언되었다

      [9면 삽화]

      예수에 관한 예언 중 다수는 그분 스스로 성취시킬 수 없는 것들이었다

  • 예언된 세상 끝은 가까웠는가?
    깨어라!—1995 | 7월 1일
    • 예언된 세상 끝은 가까웠는가?

      「디트로이트 프리 프레스 매거진」 1994년 2월 6일자는 이렇게 언급하였다. “핵시대의 막이 오르면서 종말론적인 악몽은 강박 관념이 되어 버렸다. 1945년 8월 6일에 히로시마가 잿더미로 변하자, 이제 세상이 정말로 끝날 수 있다는 것이 모두에게 분명해졌다!”

      지난 12월에, 뉴욕의 정신 분석학자이자 역사학 교수인 찰스 B. 스트로지어는 “모든 것이 느닷없이 또는 신음하다가 아니면 에이즈의 고통 속에서 끝날 수 있다는 것을 더 이상 시인이 우리에게 읊어 줄 필요가 없게 되었다”고 말하였다. 결국, 그는 이렇게 덧붙여 말하였다. “이제는 오히려 인류의 종말을 생각하지 않으려면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이 끝날 것이라고 가르치셨으므로, 우리는 그분의 가르침으로부터 끝이 정말 가까웠는지 알아낼 수 있는가?

      끝—언제?

      예수의 제자들은 언제 이 세상 즉 사물의 제도가 끝날 것인지를 알려 주는 “표징”을 가르쳐 달라고 그분에게 요청하였다. 그들은 “언제 이런 일들이 있겠으며, 무엇이 당신의 임재와 사물의 제도의 종결의 표징이 되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마태 24:3) 당신은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예수께서 제시하신 “표징”을 검토할 수 있다. 성서 마태 24장과 마가 13장 그리고 누가 21장에 그 기록이 나온다. 그 표징을 이루는 주요 사건 중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큰 전쟁: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고 왕국이 왕국을 대적하여 일어날 것입니다.’ (마태 24:7) 우리는 표징의 이 부분이 성취되는 것을 분명히 보아 왔다. “[1914년에 시작된] 제1차 세계 대전은 최초의 ‘전면’ 전쟁이었다”고 한 역사가는 지적하였다. 하지만 제2차 세계 대전은 그보다 몇 배나 더 참혹하여, 약 5000만 명의 인명을 앗아 갔다. 그리고 전쟁은 여전히 이 땅을 휩쓸고 있다.

      식량 부족: “식량 부족[이] ·⁠·⁠· 있을 것입니다.” (마태 24:7) 제1차 세계 대전에 뒤이어 심한 기근이 있었고, 그 때 이후로 기근이 계속 세계 여러 지역을 휩쓸고 있다. 심지어 비교적 부유한 나라에서도, 굶주림과 영양 실조가 만연해 있다.

      큰 지진: ‘큰 지진이 있을 것입니다.’ (누가 21:11) 주요 지진을 몇 개만 생각해 보아도, 1920년 중국에서 사망 20만 명, 1923년 일본에서 인명 피해 14만 3000명, 1970년 페루에서 사망 6만 6800명, 그리고 1976년 중국에서 사상자 24만 명(80만 명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음)을 냈다. 한 내진 공학 전문가는 1976년에 중국에서 발생한 지진을 가리켜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지진 재해”라고 하였다.

      질병: “곳곳에 역병.” (누가 21:11) 제1차 세계 대전 직후, 약 2100만 명이 스페인 독감으로 사망하였다. 「사이언스 다이제스트」지는 “역사상 그처럼 가차없이 순식간에 죽음이 덮친 적은 없었다”고 보도하였다. 그 후로 심장병, 암, 에이즈를 비롯한 많은 질병으로 수억 명이 죽어 갔다.

      범죄: “불법의 증가.” (마태 24:12) 많은 나라에서 범죄는 통제 불능이다. 살인, 강도, 성폭행, 테러 행위, 부정 부패—우리는 날마다 이러한 범죄에 대하여 듣거나 그런 범죄를 직접 당한다.

      이 밖에도 성서에는 마지막 날에 있게 될 상태에 관한 예언이 더 들어 있다. 예로서, 계시의 책에 보면 네 명의 말 탄 자에 관한 환상이 나온다. (계시 6:1-8) 첫째 말을 탄 자는 예수를, 이기는 왕으로 묘사한다. 각기 말을 타고 있는 다른 기수들은 예수 통치의 시작을 알리는 지상 사건들 즉 전쟁, 기근, 그리고 여러 요인에 의한 불시의 죽음을 상징한다.

      또한 성서 예언은 “이 세상의 마지막 시대”에 팽배하게 될 태도와 상황도 묘사한다. 예수의 한 사도가 기록한 것을 고려해 보자. 이 예언을 읽으면서 ‘이것은 오늘날의 어지러운 세태를 그대로 묘사하는 것이 아닌가?’ 자문해 보라.

      그 사도는 이렇게 기록하였다. “마지막 날[“이 세상의 마지막 시대”]에 대처하기 어려운 위급한 때가 올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자만하고, 거만하고, 신성을 모독하고, 부모에게 불순종하고, 감사하지 않고, 충성스럽지 않고, 본연의 애정이 없고, 쉽게 합의하지 않고, 중상하고, 자제하지 않고, 사납고, 선을 사랑하지 않고, 배반하고, 제 고집대로 하고, 교만으로 우쭐대고, 하느님을 사랑하기보다는 쾌락을 사랑하고, 경건한 정성의 형태는 있으나 그 능력에 대하여는 거짓됨을 드러낼 것입니다.”—디모데 둘째 3:1-5, 「신 영어 성서」 참조.

      세상 끝에 관한 또 하나의 중요한 예언으로서 하느님께서 “땅을 파멸시키는 자들을 파멸”시킬 것을 약속하시는 예언이 있다. (계시 11:18) 이전 세대의 인간들에게는 지구를 파멸시킬 과학 기술 역량이 결코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인간들에게 그럴 역량이 있다. 그리고 오늘날에는 신기술들이 환경 오염의 주범 노릇을 하고 있다. 1992년 11월에 여러 신문은 “최고 과학자들, 지구 멸망 경고”와 같은 표제를 실었다.

      참 예언을 식별하라

      다음의 사실에 대해 의문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성서가 “마지막 시대” 즉 “사물의 제도의 종결” 기간에 일어나리라고 예언한 모든 일이 바로 지금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참 예언이 성취되고 있는 것을 보고 있으며, 따라서 우리가 그 예언에 유의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예수께서는 “의의 전파자”였던 노아 시대의 세상이 끝나기 직전의 상황을 묘사하시면서 그 점을 밝히셨다.—베드로 둘째 2:5.

      예수께서는 이렇게 설명하셨다. “홍수 전의 그 날들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고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홍수가 닥쳐 그들을 모두 쓸어 버릴 때까지 그들은 유의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의 아들의 임재도 그러할 것입니다.” (마태 24:38, 39) 참 예언을 무시하면, 비참한 결과가 오게 된다.

      독자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그렇다. 나는 이 성서의 예언들을 믿는다. 끝이 언젠가는 오겠지만, 아직은 좀더 있어야 한다.’ 정말 그렇다고 생각하는가? 지금 경고를 청종하지 않아도 되는가?

      청종해야 할 경고

      분명히, 근거 없는 경고도 있으며 그런 경고를 청종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그러나 청종해야 할 경고도 있다. 단지 사회 저명 인사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경고를 소홀히 여긴다고 해서, 그것이 경고를 무시할 이유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한 가지 예를 고려해 보자.

      1902년 3월이었다. 카리브 해의 아름다운 섬 마르티니크에서 펠레 화산이 활동을 시작하였다. 4월이 되자 연기와 화산재, 돌조각을 메케한 가스와 함께 내뿜었다. 8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생피에르의 시민들은 불안해하기 시작하였다. “도시가 화산재로 덮였다. 많은 사람은 젖은 손수건으로 코와 입을 막아 독한 가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고 한 주민은 썼다.

      5월 초가 되자 화산 활동이 증가하였다. 그 고장 신문은 이렇게 보도하였다. “빗발치는 화산재가 그칠 줄 모른다. ·⁠·⁠· 거리에 마차가 지나가도 이제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화산재 때문에 바퀴 굴러가는 소리가 나지 않는 것이다.” 열기로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그러다가 5월 5일, 화산이 뜨거운 물질을 분출하여 그것이 흐르면서 수십 명이 사망하였다. 그러나 도시의 지도자들은 무엇이라고 말하였는가?

      사탕수수 수확철이 다가오고 있었으므로, 사업가들은 큰 위험은 없을 것이라며 사람들을 안심시켰다. 정치가들도 5월 10일로 다가온 선거를 의식하고서 사람들이 대피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 역시 사람들의 두려움을 가라앉히려고 노력하였다. 그에 더하여, 교직자들까지 사업 및 정치 집단들과 합세하여 교구민이 떠나지 못하도록 설득하였다.

      기어이 일이 터지고 말았다. 5월 8일 오전 8시 직전에, 펠레 산은 엄청난 굉음을 내며 폭발하였다. 뜨겁게 달구어진 거대한 검은 구름이 믿어지지 않는 속도로 생피에르를 덮쳤다. 뜨거운 가스가 순식간에 수천 명의 생명을 앗아 갔다. 3만여 명에 달하는 생피에르의 주민이 사실상 전멸하였다. 유일한 생존자는 교도소 맨 밑의 지하 감옥에 있던 젊은 죄수였다.

      오늘날의 상황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은 성서의 예언이 성취되고 있다는 증거를 소홀히 한다.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설득력이 있는, 이 제도의 끝이 가까웠다는 증거에 그들은 유의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성서는 그들이 나타낼 태도까지도 이렇게 예언하였다. “마지막 날에 비웃는 자들이 비웃으며 와서 그들 자신의 욕망에 따라 행하면서 말하기를 ‘이 약속된 그분의 임재가 어디 있소? 우리의 조상들이 죽어 잠들었을 때부터, 모든 것이 창조물의 시작부터 그대로 있소’ 한다는 것입니다.”—베드로 둘째 3:3, 4.

      그러나 오늘날의 비웃는 자들은 잘못 생각하고 있다. 사실은 상황이 바뀐 것이다. 성서 예언들이 성취되고 있다. 끝이 가까웠다는 증거가 압도적이다.

      생명을 보존하는 행동을 지체 없이 취하는 것이 현명하다. 그러면 어떻게 할 필요가 있는가?

      [10면 사진 자료 제공]

      U.S. National Archives photo

      [10면 사진 자료 제공]

      WHO/E. Hooper

      [11면 사진 자료 제공]

      WHO photo by W. Cutting

  • 밝은 미래를 위하여 준비하라
    깨어라!—1995 | 7월 1일
    • 밝은 미래를 위하여 준비하라

      “준비하고 있으”라고 예수께서는 강력히 권하셨다. (누가 12:40) 우리가 준비하고 있다면, 예수께서 “권능과 큰 영광으로” 오실 때 그분의 이러한 명령에 기쁘게 응할 수 있을 것이다. “몸을 똑바로 일으키고 머리를 드십시오. 여러분의 구출이 가까워지고 있기 때문입니다.”—누가 21:27, 28.

      어떤 종류의 구출인가? 바로 노아와 그의 가족이 받은 것과 같은 종류의 구출, 실로 이 세상의 끝을 통과하는 구출이다! “세상은 지나가고 있”지만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은 영원히 머물러 있”다고 사도 요한은 기록하였다.—요한 첫째 2:17.

      여호와의 신세계에서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 신민은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될 것이다. “의인이 땅을 차지함이여 거기 영영히 거하리로다”라고 성서는 말한다. (시 37:29) 하느님께서는 자기 백성에게 참으로 놀라운 미래를 약속하신다! 그분의 말씀은 이러하다. “하느님께서는 친히 그들과 함께 계실 것이다. 그분은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다. 그리고 더 이상 죽음이 없고, 애통과 부르짖음과 고통도 더는 없을 것이다.” 이것이 참 예언이다!—계시 21:3, 4.

      그러나 이러한 미래를 누리기 위하여 당신은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지식을 얻는 일이 필수적인 첫 단계이다. 성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이것은 영원한 생명을 의미합니다. 곧 오직 한 분의 참 하느님이신 당신과 당신이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지식을 섭취하는 것입니다.”—요한 17:3.

      당신은 또한 이 지식을 구하는 다른 사람들과 정기적으로 함께 모일 필요가 있다. 한 사도가 이렇게 강력히 권하는 바와 같다. “서로 남을 고려하여 사랑과 훌륭한 일을 격려하며, ·⁠·⁠· 함께 모이는 일을 그만두지 말고, 도리어 서로 격려하며 그 날이 다가오는 것을 볼수록 더욱더 그렇게 합시다.” (히브리 10:24, 25) 실로, 여호와의 백성은 구출되어 하느님의 신세계로 들어갈 날이 그 어느 때보다도 더 가까워지고 있음을 보고 있으며, 그래서 그들은 함께 모이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큰 스타디움에 모인 한 모임에 관해 논평하면서, 런던의 「선데이 텔레그래프」지는 이렇게 보도하였다. “‘끝이 가까웠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우울한 기색이라고는 없다. 끝이 가까웠는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모두가 차분하고 올바르고 경건하면서도 명랑한 태도로 즐거워하는 모습이다.” 그리고 나서 동 지는 이렇게 부언하였다. “현 세계 질서가 정말로 곧 붕괴될 것이라면, 트위크넘에 모인 증인들이야말로 신 세계 질서를 조직할 준비가 잘 되어 있는 것 같다.”

      준비하고 있다는 것은, 홍수 전 시대에 “의의 전파자”로 봉사한 노아가 한 것과 같은 일을 계속 바쁘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베드로 둘째 2:5) 준비하고 있다는 것은 또한 “거룩한 행실과 경건한 정성의 행위”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독자도 여호와의 백성과 함께 “여호와의 날의 임재를 기다리며 그것을 깊이 유념”하도록 권하는, 아니, 강력히 권하는 바이다.—베드로 둘째 3:1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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