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우스’의 진상
“대학살”에 대한 질문
● 최근에 수백만의 독일인이 ‘텔레비젼’을 통하여 “대학살”이란 작품을 시청하고 ‘히틀러’의 ‘유대’인 대량 학살을 알았을 때 많은 사람은 깜짝 놀랐다. “젊은이들은 혐오를 느끼며, 왜 많은 연로자들이 그 살륙에 대해 항의하지 않았는가? 하고 생각한다.”고 「뉴우스위이크」지는 보도한다. “어떻게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교회는 어디 있었는가?” 하고 경악한 한 청년은 묻는다.
‘캐나다’ 역사가 ‘J.S. 컨웨이’ 역시 그의 저서 「1933-1945년 교회에 대한 ‘나찌’ 박해」에 동일한 질문을 제기했다. 그는 묻는다. “이런 대학살의 범행에 대하여 수동적이나마 어떻게 그렇게 많은 유명하고 책임있는 교직자들이 지지할 수 있었는가? 수년간의 ‘나찌’ 학정 기간중 신구교를 막론하고 수백만의 독일 그리스도인들을, 지배한 광적인 열심은 무엇인가?” ‘컨웨이’의 결론은 “교회는 그 상태를 직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으며, 전적으로 적합치 않았다.”
한편 그는 이렇게 말한다. “다수의 교회에 비교하여, ‘여호와의 증인’들은 극도의 반대에도 그들의 교리를 유지하였다 ··· 증인들의 저항은 ‘나찌’의 여하한 일에도 협조를 거부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었다.” ‘히틀러’의 무력 앞에서 그러한 담대함을 갖게 한 것은 무엇인가? 역사가 ‘컨웨이’는 대답한다. “성서의 명령에 근거하여, 그들은 무기를 잡는 것을 거절했다 ··· 그리하여 그들은 사실상 죽음의 선고 아래 놓이게 되었다. 그들 중 다수는 그 형을 받았다. 대다수는 ‘다크하우’(강제 수용소)로 이송되었다.” 따라서 증인들은 ‘히틀러’의 “대학살”의 공범자가 되기 보다는 희생자가 되었다.
정교회의 편견
● 희랍의 「아테네뉴우스」는 최근에 보도하기를, “군복무를 거절한다는 이유로” 2명의 ‘여호와의 증인’들이 10년과 18년의 형을 선고 받았다고 한다. 「아테네뉴우스」지는 후자의 경우를 가리켜 “이곳 박해받는 그리스도교 종파중의 최근 역사상 가장 심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희랍 정부가 ‘유럽’ 회의와 기타 ‘유럽’ 의원회의 및 국제 정치범 구제 위원회의 항의를 만족시키기 위해 최근에 그런 범죄자를 위하여 제정한 최고 형기가 4년임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선고가 내려졌다고 말한다.
양심상 투옥된 인간 처우에 대한 국제 제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그런 편견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가? 미국의 희랍 정교회 정기 간행물, 「더 월드」지는 최근에 이렇게 대답한다. “‘아테네’—희랍 정교회 교직 제도는 하나의 교령을 내렸다. 거기에 ‘여호와의 증인’ 종파는 ‘반종교, 반국가적이고 위험성이 있다’고 규정되어 있다. 교직 제도는 또한 양심적 거부란 근거로 ‘여호와의 증인’들을 군복무에서 면제해 주는 법률상 규정을 보류하도록 국방성 장관 ‘에반젤로스 아베로프’에게 요청하였다.” 이런 상태를 보고, 사람들은 희랍이 서구의 자유 사회의 일원으로서 종교적 관용을 향해 발전할 것인가 아니면 완고한 종교가들의 압력에 굴복할 것인가 하고 의아해 한다. 그 결과는 시간이 알려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