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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은 “연합하게 묶는 띠”로서 “완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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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은 “연합하게 묶는 띠”로서 “완전”하다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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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3
파83 3/1 12-17면

사랑은 “연합하게 묶는 띠”로서 “완전”하다

1. 여호와를 어떤 면으로 제조자에 비할 수 있으며, 모든 가족들은 어떠한 면에서 그 이름을 그분으로부터 받았읍니까?

우주에서 가장 위대한 제조자(製造者)이신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영원토록 견고하게 묶어 놓는 “연합하게 하는 띠”를 제조하실 수 있읍니다. 가족적 띠 곧 그것이 지상의 가족적 띠일지라도 매우 강력할 수 있읍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가족, 신세]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라고 일컬음을 받으십니다. (에베소 3:14, 15) 족장 ‘노아’ 시대의 세계적인 홍수 이래 모든 인간 가족은 그 충실한 사람으로부터 갈라져 나왔으며, 하나님께서는 ‘노아’를 그의 가족과 함께 세계를 휩쓴 대홍수를 살아남기에 합당한 자로 승인하셨읍니다. 이 사실로 인하여 현재 지상에 있는 모든 인간 가족은 ‘노아’ 덕분에 “이름”을 갖게 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의 이름을 지니고 살아있게 된 것입니다. 과거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지상에 살던 개인들에게 특정한 이름들을 부여하신 일이 있었기는 하지만, 그분이 인간 가족들에게 직접 이름을 주신 일은 없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들은 그 이름을 그분으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만물의 생명의 수여자이신 그분이 아니었다면 그들은 결코 하나의 이름을 지닌 가족으로서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창세 5:1, 2, 32.

2. 하나님의 가족을 반역한 그 반역자는 어떻게 한 가족의 아버지가 되었으며, 그러므로 우리 각자는 무엇이라고 자문해 보는 것이 적절합니까?

2 천적 아버지의 우주적인 가족으로부터 한 인간이 떨어져 나오는 일이 있게 되었읍니다. 이 일은 한 초인간적인 반역자가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천사들로 된 가족을 반역함으로써 유발되었으며 그 반역자는 ‘사단’ 마귀라고 명명되게 되었읍니다. 그는 하늘에서 추종자들을 자기 편에 모음으로써, 말하자면, 아버지가 되었읍니다. 하지만 그의 가족들을 함께 묶어주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여호와의 우주 가족 가운데 뛰어나게 충실한 성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한 때, 그를 반대한 ‘유대’ 자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하나님이 너희 아버지였으면 너희가 나를 사랑하였으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께로 나서 왔음이라. ·⁠·⁠·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요한 8:42, 44) 이와 관련하여 오늘날 우리 각자는 이렇게 자문해 볼 수 있읍니다. 즉 이러한 표준에 비추어 볼 때 나의 “아버지”는 누구인가?

3. 제 1차 세계 대전 이후의 ‘사단’의 처지는 그 이전의 처지와 어떻게 다르며, 하나님의 조직의 모든 옹호자들을 위하여 특히 무슨 기도가 응답될 필요가 있읍니까?

3 ‘사단’ 마귀는 반역하였을 때 여호와 하나님의 우주 가족으로부터 추방되었으며 나중에 그를 아버지로 섬기는 그의 악귀들도 추방당하였읍니다. ‘에덴’ 동산에서 그는 인류에게 유혹하는 자로 나타났으며, 그는 심지어 그 후에도 악을 선동하고 진리를 반대하며 온 땅을 두루 다니는 것이 허락되었읍니다. (욥 1:7; 2:2) 그러나 1914년에 “열국의 지정된 때”가 끝난 데 뒤이어 하늘에 하나님의 왕국이 탄생한 후의 예언된 “전쟁”이 있은 이래, ‘사단’ 마귀와 그의 악귀들은 하늘의 천사들과 직접 접촉할 수 있었던 하늘로부터 지구로 추방되었읍니다. 그들은 결코 다시는 천사들이 있는 하늘로 들어가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단’이 여호와의 우주 조직과 그 조직의 충성스러운 성원들에 대하여 품고 있는 분노를 잘 이해할 수 있읍니다. (계시 12:1-12; 누가 21:24, 신세) 따라서 지금이야말로 골로새서 1:2에 기록되어 있는 사도 ‘바울’의 사랑에 찬 기도가 현재 지상에 있는 여호와의 조직의 충성스러운 옹호자들을 위해 응답되어야 할 때입니다. 그 기도는 이러합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찌어다.” 그들 가운데 평화가 임하기를 구하는 이러한 기도는 그들의 사회 내에 연합이 없다면 실현될 수 없을 것입니다. 평화는 평화를 주시는 하나님의 보이는 조직 내의 내적 조화 즉 조직 성원들 상호 간의 단합을 요구합니다.

4. 여호와의 연합되어 있는 증인들은 무엇에 대하여 그분께 감사하고 있으며, 그들은 무엇 가운데서 계속 행할 필요가 있읍니까?

4 오늘날 전세계적인 ‘여호와의 증인’ 조직을 구별시켜 주는 평화를 가져다 주는 조직적인 연합을 위해서, 그들은 ‘골로새’ 회중 성원들이 행하도록 권고받은 일을 행할 수 있읍니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골로새 1:12) 우리는 증가하는 빛 가운데서 계속 행할 필요가 있으며, 낡은 사물의 제도의 이 “마지막 날”에, 더 많은 계몽을 받기에 그리고 새로운 제도에서의 우리의 기업이 무엇이든지 그것을 얻기에 “합당”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하여 특별한 노력을 경주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디모데 후 3:1, 새번역.

“한 무리”로 연합되다

5. 오늘날 ‘여호와의 증인’들은 잠재적인 온갖 분열적 요소들에도 불구하고 무엇으로부터 나왔으며, 그런데도 “한 목자” 아래의 “한 무리”의 결속이 유지되어온 이유는 무엇입니까?

5 오늘날 ‘여호와의 증인’들은 제 1세기 그리스도인들의 경우보다 더욱 많은 인간 가족들로부터 나왔음을 볼 수 있읍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모든 민족으로부터 모든 피부색 및 온갖 계층으로부터 나왔읍니다. 주목을 끄는 그러한 점들은 ‘여호와의 증인’들 가운데 분열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었읍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읍니다! 그들은 민족, 피부색, 언어, 국적 및 사회적 수준에 관계없이 모두가 하나의 공통 근원으로부터 자기들이 존재하게 되었고 진리의 빛을 받게 되었음을 인정하고 있읍니다. 이 늦은 시대에 ‘여호와의 증인’들 가운데는 하늘의 전망을 가지고 있는 영으로 출생한 그리스도인들의 남은 자들과 선한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른 양”이라고 부르신 사람들의 “큰 무리”가 있읍니다. (요한 10:16; 계시 7:9-17; 마태 25:31-46)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그 장기적인 예언은 실패하지 않았읍니다. “저희도 ·⁠·⁠·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그 선한 목자께서는 장래에 대한 희망에 있어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그의 모든 양같은 추종자들을 “한 무리”로 유지시키는 일에서 그의 재능을 발휘해 오셨읍니다. 그들은 자기들 모두를 위해 사랑에서 자신의 인간 생명을 희생하신 “한 목자”를 모두 연합하여 사랑하고 있으며 그에게 충성을 다하고 있읍니다.

6. 하늘의 희망을 가진 남은 자들이 “다른 양”과 관련된 성서 진리를 선포하는 일을 주저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6 오늘날 모든 양들이 그렇게도 깊이 사랑하는 성서 “진리”는 그 목자의 “다른 양”들 가운데 끊임없이 증가하고 있는 “큰 무리”를 위한 낙원의 희망에 대하여 많은 것을 알려 주고 있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 전체를 사랑하는 영적 남은 자들은 시기심이 생긴 나머지 그 “다른 양”들에게서 어떤 유익한 것을 감추려고 하지 않고, 특히 1935년 이래 사랑에서 그 웅대한 지적 희망을 전세계에 발표해 왔읍니다. 그 남은 자들은 자기들이 현재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을 의탁하여 말씀하신바 만유를 회복하실 때”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읍니다. (사도 3:21) 남은 자들에게 있어 이러한 진리의 계시는 그들이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으로 받은 것의 일부였읍니다. 본 「파수대」지 1879년 7월호, 그 창간호 (영문)부터 그것은 대속된 인류를 위한 이 웅대한 낙원의 희망이 되살아나게 하는 데 사용된 하나님의 도구 역할을 해 왔읍니다. ‘워치 타워 성서 책자 협회’의 그 외의 출판물들은 모두 합동으로, “다른 양”의 “큰 무리”가 오늘날 남은 자들에 대한 사랑에 찬 인식을 가지고 매우 기뻐하고 있는 그 희망을 강화하고 확증해 왔읍니다.

7. 1935년에 기름부음받은 남은 자들은 사랑에서 그들 자신의 희망 외에 어떠한 소망을 발표하였으며, 그들이 이 다른 희망을 가진 사람들이 침례받는 것을 허용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7 1935년 봄이 되기까지 여호와의 헌신하고 침례받은 증인들은 참 믿음 안에서, 에베소서 4:4-6(새번역)에 그들 앞에 다음과 같이 제시되어 있는 ‘한 희망’을 품어 왔었읍니다. “몸도 하나요 성령도 하나입니다. 그와 같이 부르심을 받은 여러분의 그 부르심에 따르는 희망도 하나입니다.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침례]도 하나입니다. 만민의 아버지이신 하나님도 한분이십니다.” 그러나 그 기억할 만한 해인 1935년에 ‘워싱턴 D. C.’에서 개최된 대회에서 계시록 7:9-17(흠정역)의 환상 가운데 나오는 “큰 군중”은 요한 복음 10:16에 나오는 선한 목자의 “다른 양”으로 구성된다는 사실이 밝혀졌읍니다. 아직도 그들의 정당한 ‘한 희망’에 고착하고 있는 기름부음받은 남은 자들은 성경에 비추인 이와 같은 발전하는 빛에 대하여 크게 즐거워하였으며 이들 “다른 양”을 모으는 일을 온 마음을 다하여 행하고자 노력해 왔읍니다. 그들은 “다른 양”이 물에 잠김으로 “침례도 하나”라는 원칙을 침해하는 것으로 보지 않았읍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다른 양”의 침례는 기름부음받은 남은 자들의 경우처럼 그리스도를 통한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헌신을 상징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옷입고 있던 사랑은 이제 자신들의 목자의 이들 사랑스러운 “다른 양”을 포용할 만큼 넓어졌읍니다.

8. “한 무리” 안의 두 반열 사이에 존재하는 사랑은 고대 ‘이스라엘’ 시대의 누구의 사랑에 비할 수 있읍니까?

8 더 큰 ‘다윗’이신 예수 그리스도 휘하의 “한 무리”의 모든 양같은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상호 간의 사랑은 발전되고 깊어져 왔읍니다. 사랑으로 맺어진 이러한 연합의 띠는 기름부음받은 왕으로 택함을 받은 ‘유다’ 지파의 ‘다윗’이 그 당시의 통치하는 왕 ‘사울’의 아들로서 비이기적인 사랑을 보였던 ‘요나단’에게 나타낸 끊을 수 없는 불멸의 사랑과 상응합니다. (사무엘 하 1:25-27) 그들이 마지막으로 헤어지기 직전에, “‘요나단’이 ‘다윗’을 사랑하므로 그로 다시 맹세케 하였으니 이는 자기 생명을 사랑함 같이 그를 사랑”하였기 때문이었읍니다. (사무엘 상 20:17) ‘요나단’이 그의 아버지와 함께 싸움터에서 죽은 것을 알게 된 ‘다윗’은 애가를 지어 노래하였으며 다음과 같은 말로 그 절정에 이르고 있읍니다. “내 형 ‘요나단’이여, 내가 그대를 애통함은 그대는 내게 심히 아름다움이라. 그대가 나를 사랑함이 기이하여 여인의 사랑보다 승하였도다.” (사무엘 하 1:26) 그들 상호 간의 사랑은 “완전히 연합하게 묶는 띠”였읍니다. 다만 죽음만이 그들 사이를 떼어 놓을 수 있었읍니다.

9. “다른 양”은 여기에서 누구에 의해 상징되었으며, 어떻게 그 두 반열의 사람들은 결국 작별할 것이지만 상호 간의 사랑이 감소되지 않을 것입니까?

9 ‘요나단’은 현 시대의 “다른 양”을 전영하였읍니다. ‘아마겟돈’에서의 “전능하신 하나님의 큰 날에 전쟁”이 끝나고 난 뒤 언제인가, 생존한 ‘요나단’ 반열은 ‘다윗’ 반열의 남은 자들과 작별하게 될 것입니다. (계시 16:14, 16) 이러한 일이 있게 되는 것은 오로지 사랑받는 남은 자들이 죽음을 통해 데려가심을 받게 되어 그들이 죽음으로부터의 즉각적인 영의 부활을 통하여, 말하자면,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데살로니가 전 4:17) 그들은 지상에 남겨진 “다른 양”을 계속 사랑할 것입니다. 사실상 그 때 그들의 사랑은 더욱 강력하게 표현될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제일은 사랑”

10, 11. 고린도 전서 13:13에 언급된 대로 믿음과 희망이 사랑 만큼 크지 않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10 이것은 고린도 전서 13장에 나오는 ‘바울’의 훌륭한 묘사를 끝맺는 다음과 같은 말을 생각나게 해 줍니다. “그러므로 믿음과 희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언제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제일은 사랑입니다.” (고린도 전 13:13, 새번역) 어떻게 그러합니까? 먼저 히브리서 11:1(신세)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말씀을 고려해 보도록 합시다. “믿음은 바라는 사물에 대한 보증된 기대이며 보이지 않는 실체의 명백한 증거입니다.” 확실히 그러한 사물에 대한 희망이란 그러한 것들이 “보이지” 않을 때만을 위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아브라함’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여호와께 대한 믿음과 죽은 자를 일으키시는 그분의 능력에 대한 믿음을 나타냈읍니다. 그리하여 그는 자기가 죽기 전에 보지도 못한 것들을 확신을 가지고 기다렸읍니다. 따라서 오늘날의 ‘여호와의 증인’들도 그분께 대한 강력한 믿음 때문에 아직 보이지 않는 것들을 바라며 따라서 그것들을 기다립니다. 때가 되어 그들이 “바라는 사물”을 보게 되면 그러한 사물에 관한 그들의 믿음과 희망은 끝나고 그 성취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 점이 바로 ‘바울’이 로마서 8:24, 25(새번역)에서 한말로 지적되고 있는데, 그곳에서 우리는 이러한 내용을 읽어볼 수 있읍니다.

11 “우리는 이 희망으로 구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는 희망은 희망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을 바랄 까닭이 없지 않겠읍니까? 그러나 우리가 보이지 않는 것을 바랄 때에는 참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12. ‘여호와의 증인’들은 사도 행전 3:21에 기술된 대로 어떠한 면으로 “만유를 회복”하시는 것을 보아왔으며, 따라서 시간이 지나면서 무슨 특성들은 폐하여질 것이나 무슨 특성은 그렇지 않을 것입니까?

12 마찬가지로 전후의 해인 1919년 이래로 지상에 있는 ‘여호와의 증인’들은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을 의탁하여 말씀하신바 만유를 회복”하시는 것을 보아왔읍니다. 그들은 여호와의 보이는 조직이 제 1차 세계 대전의 치명적인 타격으로부터 회복되어 재건되는 것을 목격해 왔읍니다. 그 조직은 바로 이곳 지상의 영적 낙원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다시 숭배하고 있읍니다. (이사야 35장) 거짓 종교 세계 제국인 큰 ‘바벨론’으로부터 구출되는 일이 있게 되었읍니다. (계시 18:1-4) 성서의 맨 마지막 책인 「계시록」에 예언된 많은 일들이 성취되어 왔거나 목하 성취 중에 있읍니다. 이와 같이 그러한 성서적인 믿음에 기초한 믿음과 희망은 자체의 목적을 이루고 있으며 일단 그 목적이 온전히 달성되면 그것들은 폐하여질 것입니다. 하지만 사랑에 대하여는 어떠합니까? 그것은 이제까지 남아 있으며 앞으로도 남아 있을 것입니다. 세상은 분열 상태에 있으며 격렬한 열기로 말미암아 세상 요소들이 곧 녹아 사라지려 하고 있지만 하나님으로부터 기원한 사랑에 기초한 “연합하게 묶는 띠”는 해체되는 일이 없읍니다. 하나님과 그분의 승인받는 조직에 대한 사랑 그리고 “적은 무리”의 남은 자들과 환영받고 있는 “다른 양”의 “큰 무리” 사이의 사랑은 여전히 그대로 있게 됩니다. 그것은 “완전”함이 입증되고 있읍니다. “묶는 띠”로서의 사랑은 하나님의 영의 열매입니다.

13. 사랑은 왜 결코 죽지 않을 것입니까?

13 하나님은 사랑의 구현체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결코 죽는 일이 없으시므로 사랑도 결코 죽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고 한 말은 정확한 표현입니다.

14. 사랑의 연합시키는 힘에 관하여 어떠한 진리를 다시 말할 수 있읍니까?

14 사랑의 연합시키는 힘에 관하여 요한 1서 4:8, 16(신세)에 진술된 영감받은 진리는 다음과 같이 반복하여 상술될 수 있읍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리고 사랑 안에 머무는 자는 하나님과 연합해 있고 하나님도 그와 연합해 계십니다.”

15. 인간을 창조하실 때의 하나님의 동기는 무엇이었으며, 인간이 마음을 움직이는 그 힘을 인식하고 그에 따라 적절한 반응을 나타낼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5 따라서 하나님께서 지상에 첫 인간 피조물을 산출하셨을 때 그분이 이 일을 하신 동기는 사랑이었읍니다. 창세기 1:27에 그 점이 설명되어 있는 바와 같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니라.]” 그 첫 인간은 하나님의 신체적인 모양을 가졌었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가지고 계신 것과 같은 특성들을 선물로 받았으며 이러한 정신적, 영적 및 심적 특성들은 그를 지상의 하등 생물과 구별시켜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이유에서 이러한 선물을 받은 인간 피조물은 자기에 대한 창조주의 사랑을 인식할 수 있었으며, 아들이 아버지에게 하듯 그 사랑에 대하여 적절한 방법으로 반응을 나타낼 수 있었읍니다. 상호 간의 정기적인 친밀한 교제로 말미암아 그들 사이에는 실재적인 가족의 띠가 형성되었읍니다. 아버지가 지상의 자녀에게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그러하였읍니다. 그것은 사람이 하나님을 보고는 계속 살 수가 없기 때문이었읍니다. 이 사실을 하나님께서는 나중에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출애굽 33:20) 이 법칙은 변하지 않았읍니다. 왜냐하면 1,500년 후에 사도 ‘요한’은 동료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렇게 편지하였기 때문입니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자가 나타내셨느니라.”—요한 1:18, 난외주.

16. ‘요한’과 그의 동료 제자들은 하나님의 부성애에 무엇으로 응하였으며, “사랑의 띠”는 기름부음받은 남은 자들 및 “다른 양”과 관련하여 어떠함이 입증되었읍니까?

16 하나님의 영으로 출생한 아들인 사도 ‘요한’은 여호와 하나님 및 그분의 아들이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가족 관계 안에 있었읍니다. ‘요한’과 그의 동료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부성애에 대하여 자녀의 애정으로 응하였읍니다. 그러한 사랑은 그들과 그들의 보이지 않는 천적 아버지 사이를 “연합하게 묶는 띠”였읍니다. 그것은 또한 영으로 출생한 자들을 하나님의 영적 자녀들로서 그리고 그리스도인 형제 자매들로서 함께 결속시켜 주었읍니다. 오늘날의 그 “연합하게 묶는 띠”를 조사해 봄에 따라 우리는 그것이 “완전”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왜냐하면 기름부음받은 남은 자의 성원들은 동료 숭배자들 및 여호와 하나님의 증인들로서 분리될 수 없도록 굳게 결합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사랑은 그들이 하나님의 가족 안에 그리고 그리스도인 형제 관계 안에 계속 머물러 있게 합니다. 하나님의 전에 있는 그들의 동료 숭배자들인 그리스도의 “다른 양”의 “큰 무리”도 오늘날의 ‘여호와의 증인’들을 그토록 완전하게 묶어주는 끊을 수 없는 그 동일한 사랑을 나타내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입니다. 확실히, 우리도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을 것이라는 사도 ‘바울’과 같은 확신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로마 8:38, 39.

당신은 어떻게 대답하겠는가?

◻ 모든 가족은 어떠한 면에서 그 이름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는가?

◻ 그 사실은 그리스도인 회중에 속한 사람들 모두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어야 하는가?

◻ ‘요나단’은 누구를 전영하였는가?

◻ 사랑이 믿음 및 희망보다 더 큰 이유는 무엇인가?

◻ 사랑은 어떻게 우리를 하나님과 연합시켜 주는가?

[15면 삽화]

‘다윗’과 ‘요나단’ 사이의 깊은 사랑은 기름부음받은 자들과 “다른 양” 사이의 사랑을 전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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