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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는 어느 정도로 진전되었는가?인생에는 분명히 목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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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장
준비는 어느 정도로 진전되었는가?
1, 2. (ㄱ) “하나님이 죽었다”는 사람들의 표현은 보통 무엇을 의미합니까? (ㄴ) 일부 사람들은 왜 그러한 말을 합니까?
지금까지 하나님의 목적에 관하여 우리가 많이 논의하였읍니다. 그러나 그분은 그 목적을 완성시키기 위하여 무엇을 해 오셨읍니까? 세상 사태가 나아지지 않는 것을 보고 일부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돕기 위한 아무런 행동도 하시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하나님은 죽었다”고 말합니다.
2 땅을 다스릴 의로운 새 사물의 제도에 대한 하나님의 점진적인 준비를 이해하려면 어느 정도의 믿음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러한 태도가 생깁니다. 성서는 “믿음은 바라는 사물의 보증된 기대이며 보지 못한 실체의 명백한 증거”라고 말합니다.—히브리 11:1, 신세.
3. 믿음이 없는 사람에게는 사물이 어떻게 보입니까?
3 믿음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시는 것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께 대한 진정한 기대 혹은 희망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한 사람에게는 보이는 사물이 겉보기에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기대하고 있는 것과 반대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왜 믿음을 요구하십니까?
4. 하나님께서는 왜 믿음을 요구하십니까?
4 하나님은 자녀들이 아버지의 선함 때문에 아버지를 사랑하고 아버지의 말을 믿기 전에 모든 것을 보아야 할 필요없이 아버지의 약속을 믿기를 바라는 아버지와 같습니다. 선한 아버지에 대한 믿음이 없는 자녀는 또한 불순종할 것이며 마침내 가족에게 고통과 수치를 가져 올 것입니다. 그러한 자녀는 부모의 애정을 받기에 합당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선한 아버지와도 같이, 하나님께서는 믿음을 가지고 그분을 바라보는 지적 피조물들에게 응답하시며 그들을 도와 주십니다.—시 119:65-68.
5, 6. (ㄱ)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사태의 외형을 보고 감쪽같이 속을 수 있다는 것을 예를 들어 설명하십시오. (ㄴ) 기원 66-70년에 그리스도인들과 ‘유대’인 대다수 사이에는 어떠한 차이가 있었읍니까?
5 믿음은 참 상태를 간파하지만, 믿음이 없으면 사물의 표면적인 외형에 속을 수 있다는 사실이 기원 70년의 ‘예루살렘’의 멸망으로 예시되었읍니다. 예수께서는 그 사건이 발생하기 약 33년 전에,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일 때가 올 것이라고 예언하셨읍니다. 그분은, 그 일이 발생하면 ‘예루살렘’의 멸망이 가까울 것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즉각 그 도시에서 나와야 한다고 말씀하셨읍니다. (누가 21:20-24) 제 1세기의 ‘유대’인 역사가 ‘요세퍼스’에 의하면, 기원 66년에 ‘세스티우스 갈루스’ 장군 휘하의 ‘로마’인들이 ‘예루살렘’을 점령하고자 그 도시를 포위하였읍니다. 그 다음, 어떤 알려지지 않은 이유로 ‘갈루스’는 철수하였읍니다. 그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이 된 ‘유대’인들과 기타 사람들은 즉시 도망하였읍니다. 왜냐 하면 그들은 이것이 예수의 예언의 정확한 성취임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른 ‘유대’인들은 ‘갈루스’의 군대를 추격하여 많은 피해를 입혔읍니다.
6 ‘예루살렘’의 ‘유대’인 대다수는 자기들의 승리에 대해 득의양양하였읍니다. 위험은 지나간 것 같이 보였읍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 오려 하지 않았읍니다. 이것은 뒤에 남아있던 ‘유대’인들에게는 어리석게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4년이 못되어, ‘티투스’ 장군의 인도하에 ‘로마’인들이 돌아와서 그 도시를 완전히 파괴하고 도시 주민의 10분의 9이상을 살해하였읍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표면에 나타나지 않은 것을 보았으며 자기들의 생명을 보존하였읍니다. 그들은 ‘유대’인들이, 기회가 있었지만 보지 못한 것을 보았읍니다. ‘유대’ 민족은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하였고 따라서 그들에게 구원을 가져 올 지혜를 배척하였읍니다.—예레미야 8:9 비교.
7. 하나님께서 자신의 목적의 실현을 위해 일하여 오셨음을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읍니까?
7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약속과 같이, 인간의 고통을 끝내 주시기 위하여 해 오신 일에 대해 올바른 견해를 가져야 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읍니까? 역사 기록을 조사하여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한다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인간의 고난의 시초부터 그분의 목적을 점진적으로 이루어 오셨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단순한 이론이나 추측이 아니라, 굳은 믿음의 기초가 되는 “실체의 명백한 증거”를 알게 될 것입니다.
기초를 놓음
8. 하나님께서 땅에 대한 그분의 통치를 가져오시는 데 왜 오랜 시간이 걸렸읍니까?
8 여호와께서는 자신이 온 땅을 통치하여 평화와 연합을 이루시겠다고 약속하셨읍니다. 그러나 그분은 단순히 강제적으로 통치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분은 사람들을 계몽하고 교육시켜 그들이 그분을 알고 자진적으로 그분의 다스림에 순복하도록 목적하고 계십니다. (시 110:3) 이것을 목표로, 하나님을 섬길 온 인류 세상을 위한 기초를 확립하는 데 시간이 걸렸읍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의로운 다스림의 표준과 원칙 및 그 다스림의 운영 방법에 대한 지식을 공급하셔야 하였읍니다.
9. 하나님께서 우리를 가르치시는 방법은 왜 그분이 하늘로부터 큰 음성으로 말씀하시는 것보다 더 좋습니까?
9 그러나 여호와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십니다. (디모데 전 1:17) 그분은 혈과 육을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이해하게 하실 것입니까? 그 방법은 하늘로부터 두려움을 일으키는 어조로 말씀하심으로써 단순히 힘을 전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다루심으로써 그분의 원칙과 특성을 나타내실 것입니다. 충실한 사람들이 기록한 하나님의 선언을 읽고 들을 뿐만 아니라 또한 그분이 말씀하신 바를 성취시키신 증거를 역사 기록에서 보는 것은, 훨씬 더 교훈적이고 설득력이 있고 감동을 줍니다.
10.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활동하지 않는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사에 관심이 있으시다는 것을 세상에 언제 처음으로 인상적인 방법으로 증명하셨읍니까?
10 대홍수까지 이르는 인간 역사 초기에,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그분을 믿을 것인지 믿지 않을 것인지를 택하게 하셨읍니다. 그러나 그분은 그 세상을 멸망시키셨을 때 자신이 “죽은” 혹은 활동하지 않는 하나님이 아니심을 증명하셨읍니다. 그 세상이 멸망된 이유는 그 세상이 너무나 부패하여 순수한 숭배와 의를 행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의 생명을 위협하였기 때문이었읍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때에 그분의 통치권을 인정한 사람들 소수를 방주를 통해 보존하셨읍니다.—창세 6:11-13, 17-20; 베드로 전 3:20.
11, 12. (ㄱ)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홍수 후에 일을 진행하셨읍니까? (ㄴ) 그분은 땅을 다스릴 정부의 기초를 놓으시면서, 인간들이 어떠한 것들을 알 수 있게 하셨읍니까?
11 대홍수 후에 하나님께서는 약속된 “씨” 곧 메시야에 의해 지상사를 장차 다스리기 위한 기초를 놓으셨읍니다. 그 동안, 하나님께서는 국가들이 독립적인 행로를 걷게 허락하셨고 인간이 자치 능력이 없다는 증거가 되는 기록을 남기게 하셨읍니다.
12 여호와께서는, 땅을 다스릴 정부의 기초를 놓으시면서, 이러한 필요한 것들을 마련하셨읍니다. (1) 그분이 마련할 다스림에 대한 믿음의 기초, (2) 그분의 정부의 원칙들에 대한 지식, (3) 우주 통치자로서의 그분의 특성의 전시, (4) 메시야 곧 인간의 구출자이며 여호와의 이름으로 통치할 왕이 될 분을 확실하고 틀림없이 식별케 하는 일. (갈라디아 3:24) 동시에, 인간 통치에 비하여 하나님의 통치권은 우월하고 합당하고 의로움이 증명되었읍니다.
모두에게 유익을 주도록 선택된 한 민족
13, 14. 하나님께서는 고대 ‘이스라엘’ 민족을 사용하심으로써 어떻게 우리에게 유익을 주셨읍니까?
13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기초를 놓는 데 어떠한 수단을 사용하셨읍니까? 우선, 그분은 한 민족 즉 고대 ‘이스라엘’ 민족을 선택하여 그분의 원칙과 행동 방식에 대한 산 증거가 되게 하셨읍니다. 그리하여 여호와께서는 자신과, 자신의 놀라운 특성을 나타내셨읍니다. 즉 그분은 ‘이스라엘’ 민족이 거의 모든 면에서 불순종하였을 때 그 죄에 대해 징벌하심으로 공의와 지혜를 나타내셨읍니다. (로마 10:21) 또한, 그들이 회개할 때마다 그분은 그들에 대한 그분의 사랑과 자비와 오래 참음을 보이셨읍니다.
14 또한, ‘이스라엘’인의 역사는 하나님의 현명하고 의로운 율법을 순종할 때와 불순종할 때에 무슨 일이 있는지를 실증합니다. 한편 세상 역사는 하나님의 율법의 혜택없이 생활하는 사람들에게 어떠한 결과가 있는지를 밝혀 줍니다.—고린도 전 12:2; 에베소 4:17-19.
‘이스라엘’이 선택된 이유
15.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선택하신 것은 편벽된 처사였읍니까? 설명하십시오.
15 왜 어떤 다른 민족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선택되었읍니까? 그들이 더 우수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을 하나님께서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신명 7:7, 8; 열왕 하 13:23) 홍수가 있은지 약 사백년 후에, 여호와께서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받아 들이고 의심치 않는 믿음과 순종을 보이는 사람임을 발견하셨읍니다. (창세 15:1, 6; 로마 4:18-22) 따라서, 충실한 아내 ‘사라’를 통한 ‘아브라함’의 후손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염두에 두신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사용하실 민족으로 선택되는 독특한 축복을 받았읍니다. 약속된 “씨”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통하여 나올 것이었읍니다.
16, 17. 하나님께서는 고대 ‘이스라엘’을 다루실 때 다른 민족들을 불공평하게 대하셨읍니까? 설명하십시오.
16 그 당시 다른 민족들은 그들 나름대로 자치권을 행사하였고 하나님께 불순종하였읍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태양과 비와 땅의 소산을 즐기게 허락하셨읍니다. (사도 14:16, 17; 마태 5:45)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 가운데 개인들이 믿음을 가지고 그분께 나아오거나 이들 민족들이 그분의 선민의 일과 관련을 가질 때를 제외하고는 그들을 다루지 않으셨읍니다.—신명 32:8.
17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다른 민족들을 잊지 않으셨읍니다. ‘이스라엘’만 다루시면서도, 다른 민족들이 전혀 모르고 있는 가운데 그분은 후에 그 민족들을 축복하실 목적을 이루고 계셨읍니다.—창세 22:18.
18. ‘이스라엘’은 하나님에 의해 사용되고 축복받은 면에서 더 무거운 심판 아래 있었읍니까?
18 하나님께서 오늘날 우리의 믿음과 이해의 이 기초를 마련하기 위해 한 민족을 선택하신 데 대해 아무도 불평할 수 없읍니다. 이 기간중에 ‘이스라엘’은 다른 민족들보다 더 축복을 받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이름이 그 민족 위에 있었기 때문에, 그 민족은 또한 다른 민족들이 지지 않은 매우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하였읍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직접 대답해야 하였읍니다. 그들이 여호와의 율법을 범하였을 때에는 여호와로부터 엄한 징계를 받았읍니다.—신명 28:15-68.
19. 로마서 3:1, 2에 지적된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고대 ‘이스라엘’을 사용하신 것이 우리에게 어떠한 또 다른 유익이 되었읍니까?
19 한 민족을 사용함으로써 달성된 또 다른 목적은 진리를 보존하는 것이었읍니다. 이렇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그들 주위의 믿지 않는 민족들과 분리시키셨고, 그 민족을 징계하셨고 그분의 율법 언약하에 그들을 결속시키셨읍니다. 그분은 또한 그들에게 성서에 들어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맡기셨읍니다. (로마 3:1, 2) 그 동안 인간 통치를 받던 다른 민족들은 자기들이 만든 여러 가지 거짓 신들을 계속 섬겼으며 혼잡된 여러 가지 교리를 받아 들였읍니다.—시 96:5; 115:2-8.
20. (ㄱ)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율법은 어떠한 기본적인 일을 달성하였읍니까? (로마 10:4) (ㄴ) 「‘히브리’어 성경」을 연구하는 것은 우리에게 어떠한 또 다른 유익을 줍니까?
20 더우기, 이 기간 전체를 통하여 여호와께서는 인간에 대한 가장 훌륭한 선물—약속된 으뜸 “씨”, 그리스도 예수 즉 땅을 다스릴 하나님의 왕국의 왕—을 마련하시기 위하여 일을 추진하고 계셨읍니다. 그분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순종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실 것입니다. (사도 17:30, 31) 오해의 여지가 없는 신분 증거를 제공하고 그렇게 하여 마침내 메시야가 나타났을 때 그분께 대한 믿을 수 있는 기초를 마련하신 점에 하나님의 지혜가 참으로 눈부시게 빛나고 있읍니다! 지존자께서는 「‘히브리’어 성경」에 족보, 연대 및 예언을 포함시킴으로써 메시야의 신분에 대한 명백한 증거를 제공하셨읍니다. (요한 5:39) 더우기, 「‘히브리’어 성경」에 보존된 역사 기록은 위안과 희망을 줄 뿐만 아니라 현재의 생활에 대한 지침이 됩니다. 그것은 “말세를 만난 우리”에게 모범과 본을 제시합니다.—고린도 전 10:11; 히브리 10:1.
예수께서 연합 통치자들을 선택하시다
21, 22. 예수께서는 지상에 계실 때 그분의 친밀한 제자들을 택하는 데 있어서 왜 선택적이셨읍니까? (누가 9:57-62)
21 마침내 오랫 동안 기다린 메시야가 나타나셨읍니다. 하나님의 기름부음받은 자로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께서 선택적이셨던 것처럼 친밀한 제자가 될 사람들에 대하여 선택적이셨읍니다. (누가 8:38, 39) 그분은 대속물을 마련하여 그것을 받아 들이는 모든 사람들을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지상에 오신 것은 사실입니다. (마태 20:28; 요한 3:16) 그러나 그분은 얼마의 시간이 경과한 후에야 온 인류에게 그분의 희생의 유익을 가져 올 왕국의 수반이 될 것임을 아셨읍니다. 그리고 아직 취임하지 않은 통치자가 자기 아래의 행정 요직에 앉힐 사람들을 먼저 생각하듯이, 예수께서도 먼저, 왕국 정부에서 자기와 연합할 사람들에 관심을 두셨읍니다.—누가 22:28, 29; 요한 17:12.
22 따라서, 예수께서는 기도와 하나님의 영의 인도를 통하여, 먼저 사도들을 선택하셨읍니다. (누가 6:12-16) 이들은 자기를 수반으로 하여 운영될 행정 기관의 기초가 될 것이었읍니다.
23. (ㄱ) 예수와 그분의 사도들의 전파를 통하여 어떠한 희망이 제시되었읍니까? (ㄴ) 이들 제자들은 지상에 있는 동안 다른 사람들을 다스릴 것이었읍니까? (고린도 전 4:8)
23 「그리스도인 희랍어 성경」을 읽어 보면, 예수와 그분의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아 들인 모든 사람들에게 제시된 희망은 하늘에서의 왕국 통치에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하는 것이었읍니다. (디모데 후 2:12; 히브리 3:1; 베드로 전 1:1-4) 그러나, 이들 제자들은 지상에 있는 동안 통치자가 되지 않을 것이며, 단순히 “하나님의 회중”으로 알려질 것이었읍니다. 그들은 단순히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사람들에게 선포할 것이었읍니다.—베드로 전 2:9.
24. 그리스도께서 부활되신 때부터 지금까지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중요한 일을 수행하여 오셨읍니까?
24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함께 통치할 사람들을 선택하고 훈련시키고 시험하고 증명하고 자격을 구비시키려면 그리스도께서 사망하고 왕국의 권능을 잡으신 후 오랜 기간이 걸릴 것이었읍니다. 그 요구 조건은 매우 엄격하였읍니다. 성경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아래에 있게 될 이 행정 기관의 구성원을 144,000명으로 제한하셨읍니다.—계시 14:1-3.
25. 그리스도의 왕국 정부의 장래 성원들이 받아 온 엄격한 시험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25 여호와께서는 이들 장래의 왕겸 제사장들을 그들이 받는 많은 시험을 통하여 훈련시키고 징계하십니다. 이렇게 하여 그들은 그분께서 그분의 행정부에서 그들을 위하여 준비된 자리에 꼭 필요한 자격을 얻게 됩니다. (에베소 2:10; 로마 8:29) 또한, 이러한 완전한 훈련과 시험을 통하여, 그분은 그들이 영원히 충성스러울 것과 그들의 통치권이 부패하지 않을 것을 확신하실 수 있읍니다. 그들에 대하여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라고 언급되어 있읍니다. (계시 14:5) 이것은 그들의 헌신과 성실에 흠이 없음을 의미합니다. (로마 7:25 비교.) 그들은 모든 면에서 신뢰할 수 있읍니다. 여호와께서는 안심하고 그들에게 불멸의 천적 생명을 주실 수 있읍니다. (고린도 전 15:50-54)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분의 행정 기관의 구성원으로 사용하실 사람들을 시험하고 승인하시면서 또한 나머지 인류를 염두에 두셨음을 이제 고려합시다.
자비로운 통치자들이 보장됨
26. 그리스도께서는 어떻게 인류의 대제사장과 통치자가 되는 자격을 갖추셨읍니까?
26 회중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기의 자격을 증명하기 위하여 매우 혹심한 시험을 받으셨읍니다. 그분에 대하여 이러한 언급이 있읍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히브리 4:15)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놀라운 지혜와 공정함을 보이셨읍니다! 그러므로 그분께서 인류를 다스리도록 임명하시는 통치자는 결코 불공평하거나 편벽되지 않을 것입니다.
27. 어떠한 경험을 통하여 그분은 우리가 온전한 믿음을 둘 수 있는 통치자가 되기 위한 준비를 갖추셨읍니까?
27 또한 그리스도께서는 이전에 하늘에 계시면서 다른 모든 것들을 창조할 때 아버지와 함께 일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인간 남녀의 구성을 이해하십니다. (요한 1:10; 2:25) 그 외에도 그분은 지상에서 혈과 육을 가진 인간이 되심으로 불리한 상태하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경험을 하셨읍니다. 그분은 인간의 문제들을 온전히 이해하십니다. 그분은 고통을 당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계십니다. (히브리 5:7-9) 모든 사람은 그리스도께서 동일한 시험을 성공적으로 당하셨으며 인간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고 계신다는 점을 인식하고 그리스도의 통치권에 온전한 믿음을 둘 수 있읍니다.—히브리 4:16; 요한 16:33.
28.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1,900년을 허락하신 것은 왜 시간 낭비가 아니었읍니까?
28 또한, 하나님께서 144,000명의 연합 왕겸 제사장들로 구성되는 성원들을 선택하시는 데 나타난 지혜를 고려하여 보십시오. 그것은 시간 낭비가 아니었읍니다. 지난 19세기 동안이라는 긴 기간을 통하여 모든 계층, 모든 인종, 모든 언어, 모든 배경에서 인간 남녀들이 선택되었읍니다. 그들 중 일부가 전혀 직면해서 극복해 보지 못한 문제가 없읍니다. 이들은 또한 동정적이고 자비로운 통치자들이 될 것이며 모든 종류의 인간 남녀들을 도울 수 있을 것입니다.
“새 땅”의 기초
29.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왕국이 하나님의 뜻을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도록 또 어떠한 준비를 하셔야 합니까? (마태 6:10)
29 단순히 그리스도와 함께 일한 천적 왕들 겸 제사장들이 될 마지막 성원들을 선택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준비가 끝납니까? 그것은 그 다음에 천년 통치가 시작되고 죽은 사람들의 부활이 있을 것이라는 의미입니까? 아닙니다. 왜냐 하면 먼저 하나님께서는 현존하는 부패한 사물의 제도를 멸망시켜 땅을 깨끗이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분이 이렇게 하실 때, 그분은 “진공 상태”가 되게 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분은 대홍수 때와 마찬가지로 땅을 생명도 없고 그분을 섬기는 사람도 없는 황무지가 되게 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이사야 45:18) 그렇게 하지 않고, 하나님께서는 생존하여 낙원 상태를 가꾸어 나아가기 시작할 사람들을 두실 것입니다. 그들은 죽은 사람들을 다시 맞이할 때 거기에 있을 것이며 그들이 생명의 길로 나아가도록 도울 수 있을 것입니다.
30.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또 다른 집단을 모아 현 사물의 제도의 멸망을 생존케 하실 것입니까?
30 누가 그 멸망을 생존할 것입니까? 사도 ‘요한’은 그리스도께서 그에게 주신 환상을 묘사하면서 144,000명의 왕국 후사들에 대하여 말한 후 이렇게 기술하였읍니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있더라.]” 이 환상을 전달한 천사는 다음에 이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누구인지를 이렇게 설명하였읍니다.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계시 7:9, 14; 이사야 2:2-4.
31. “큰 무리”는 하나님의 점진적인 목적에서 어떠한 역할을 할 것입니까?
31 이들은 “새 땅”의 핵심, “기초”가 될 것입니다. (이사야 51:16 비교.) 그들은 “큰 환난”을 생존하면 그리스도와 그분의 144,000명의 왕겸 제사장들로 이루어진 “새 하늘”의 인도 아래 땅을 정복하는 일을 즉시 시작할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대표자들로서 지상에서 참 숭배를 수행할 것이며 부활된 죽은 사람들을 참 숭배로 인도할 것입니다. 그들은 이들을 위하여 식품과 가옥을 준비할 것이며 의의 길을 가르치는 선생들로 일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논리적입니다.
32. 누가 “큰 무리”를 구성할 것이며, 그들은 언제 선택되고 모아집니까?
32 “큰 무리”가 “큰 환난”을 생존할 것이므로, 그들이 현 사물의 제도의 끝이 되기 직전에 사는 사람들로부터 모아질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이 모으는 사업 또한 그리스도의 천년 통치가 시작되기 전의 하나님의 준비 사업의 일부입니다. 그러나 “큰 무리”를 모으는 일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다루신 것과 같이 그리고 그 후 그리스도의 144,000명의 공동 후사들을 모으는 일과 같이, 여러 세기가 걸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시간이 걸립니다. 이 선택과 모으는 일은 현재 진행되고 있으며 한 세대의 생애중에 완성될 것이 분명합니다. 그 세대의 일부는 생존하여 그리스도의 천년 통치 기간으로 들어갈 것입니다.—누가 21:32.
33, 34. (ㄱ) 인간 역사 약 6,000년 동안에 하나님께서는 무슨 일을 달성하셨읍니까? (ㄴ) “하나님은 죽었다”거나 그분이 더디다고 말하는 것은 합당합니까?
33 요약컨대, 하나님께서는 확실히 시간을 낭비하지 않으셨읍니다. (베드로 후 3:9) 그분은 인간이 성공적으로 세상을 통치할 수 없다는 분명한 근거를 남기셨읍니다. 그분은 왕국 통치를 가져오시기 위한 점진적인 단계에서 참을성과 선한 특성을 증명하셨읍니다. 그분은 그분이 어떠한 정부를 두시는가를 나타내셨읍니다. 그리고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브라함’의 약속된 “씨”의 주된 분이며, 메시야이며, 땅을 의로 다스릴 왕이라는 풍부한 증거를 우리에게 주셨읍니다.—갈라디아 3:16.
34 따라서, 여호와 하나님을 알기를 성실히 원하는 사람들은 그분을 알 수 있읍니다. 그들은 그분의 목적에 대한 굳은 믿음을 얻을 수 있읍니다. 왜냐 하면 그 믿음의 기초가 될 실체가 있기 때문입니다.
[116면 삽화]
큰 환난 생존자들은 현재 하나님의 약속에 믿음을 나타내는 사람들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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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차 있을 일의 모형인생에는 분명히 목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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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장
장차 있을 일의 모형
1. 오늘날 법체제하에서는 공의를 구하는 것이 왜 어렵습니까?
오늘날 대부분의 나라에 성문화된 법이 너무도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에 공의를 추구하는 사람이 자기 자신의 변호인이 되고자 하는 것은 보통 현명치 못합니다. 게다가, 흔히 부유한 사람들에게 유리한 “허점”이 있읍니다. 똑바르고 간단한 법전이 있어서 평민에게도 재판 비용이 비싸지 않고 빈부에 관계없이 어떤 사람이라도 자기의 문제를 쉽게 법정에 제기하여 편벽없는 재판을 받을 수 있는 체제하에서 산다면 유쾌하지 않겠읍니까?
2, 3.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법을 우리가 고려하는 것이 왜 유익합니까?
2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모세’의 율법이 그러하였읍니다. 이 율법에 대하여 성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의 규례는 확실하여 다 의로우니라.” (시 19:9) 여호와의 규례의 훌륭한 특성은 600가지 법조항을 조금 넘는 이 법전 가운데서 몇 가지 법규를 고찰하여 보면 알 수 있읍니다.
3 그리스도인들은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그 율법하에 있지 않지만 그 율법을 고려하는 것은 유익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왜냐 하면 그 율법은 여호와께서 사물을 보시는 방법을 명확히 밝혀 주며 그 율법은 하나님께서 언제나 그분의 창조물을 다루시는 근거가 되는 원칙들을 밝혀 주기 때문입니다.
4. 여호와께서는 고대 ‘이스라엘’ 정부에서 어떠한 지위와 권위를 가지고 계셨읍니까?
4 ‘이스라엘’ 정부의 행정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정부의 절대적인 최고 통치자였던 점에서 독특하였읍니다. 그분은 왕이셨고, 또한 하나님이셨고 종교의 수반이셨읍니다. 예언자 ‘이사야’는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여호와는 우리 재판장이시요 여호와는 우리에게 율법을 세우신 자시요 여호와는 우리의 왕이시니 우리를 구원하실 것임이니라.”—이사야 33:22.
5. ‘이스라엘’에서, 율법에 순종하는 것은 또한 어떻게 참 숭배의 행위였읍니까?
5 그러므로 우상 숭배 혹은 다른 어떠한 신을 숭배하는 행위는 동시에 반역죄, 정부에 대한 범죄였읍니다. 마찬가지로, 그 땅의 법을 악질적으로 범하는 것은 그 나라의 숭배의 수반이신 하나님께 대한 불경의 행위였읍니다. 고의적으로 법을 어기는 것은 신성 모독과 같았읍니다. 그러므로, 율법에 순종하는 것은 참 숭배의 일부였읍니다.
인권
6, 7. 인권이 어떻게 보호되었는지 설명하십시오.
6 율법하에서 ‘이스라엘’의 재판관들과 통치자들이 하나님께 순종하였을 때에는 인권 문제가 없었읍니다. 율법은 본토인과 외래인, 심지어는 그 나라에 임시 거주하는 외국인까지도 보호하였읍니다.—출애굽 22:21; 23:9; 레위 19:33, 34.
7 율법하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가난하다고 하여 공의를 박탈당하지 않았으며, 부자는 단순히 부자라고 하여 공의를 박탈당하지 않았읍니다.—레위 19:15; 출애굽 23:3.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친절한 고려
8. 율법은 어떻게 가난한 사람들을 고려하였읍니까?
8 ‘이스라엘’의 경제는 주로 농업에 기초하고 있었으며, 각자는 상속 토지를 가지고 있었읍니다. 어떤 ‘이스라엘’인들은 잘못된 경영이나 재정상의 실패로 인하여 가난하게 되어 토지를 팔지 않으면 안될 경우도 있었으며, 어떤 외래인들의 생계가 어려워질 수도 있었읍니다. 그들을 위한 친절한 마련이 있었읍니다. 즉 추수할 때 농부는 밭 가장자리에 있는 곡식을 거두어 들이지 말아야 하였으며, 추수군들이 잊어버리고 밭에 놓고 온 곡식단은 그대로 두어야 한다는 것이었읍니다. (레위 19:9, 10; 신명 24:19-21) 이것은 가난한 사람들이 이삭으로 줍게 하기 위한 것이었읍니다.—룻 2:15, 16.
9, 10. 가난한 사람들을 보호하는 율법으로부터 어떻게 모든 사람이 유익을 얻었읍니까?
9 물론, 그것은 가난한 사람이 일해야 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왜냐 하면 이삭을 줍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읍니다. 결과적으로, 이 정부의 관리하에서는 게으른 빈곤자가 없었읍니다. 그 나라는 실업 수당을 지급하는 나라도 아니었고 복지 국가도 아니었읍니다. (신명 15:11; 룻 2:3, 7) 이것은 데살로니가 후서 3:10에서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고 말한 그리스도교 원칙과 일치합니다.
10 가난한 사람들이 생계를 유지하게 하기 위한 마련과 아울러, 모든 시민들은 궁핍한 사람들을 관대하게 대할 의무가 있었읍니다. 이것은 형제 우애와 국가적 연합을 촉진하였읍니다.—레위 25:35-38.
압제적이 아닌 “노예 제도”
11. 근대의 “노예 제도”와 달리, 고대 ‘이스라엘’의 노예 제도는 왜 가혹하거나 압제적이 아니었읍니까?
11 ‘이스라엘’의 “노예 제도”는 근년의 압제적인 노예 제도와 같지 않았읍니다. 사실 ‘이스라엘’의 “노예 제도”는 재정적인 실패 혹은 재난으로 인해 상속 토지를 팔게 되고 팔아서 받은 돈을 마침내 모두 사용하고 빈곤해진 가족을 보호하는 마련이었읍니다. 또는 그들이 엄청난 빚을 지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되면 경영자의 신분을 떠나 그 가족 혹은 그 가족의 어떤 성원들이 “노예”가 될 수 있었읍니다. 그러나 이 제도는 다른 사람을 위하여 일하여 주는 현대 고용의 원칙과 흡사하였읍니다. 오늘날 그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경제 노예 제도’의 한 형태입니다.
12. ‘히브리’ “노예들”을 위한 어떠한 마련이 있었읍니까?
12 예를 들면, ‘히브리’ “노예”는 재산으로가 아니라 “품군”으로 대우하여야 하였읍니다. 더우기, 6년 노예 생활 끝에는 해방시켜 주어야 하였읍니다. (레위 25:39-43) 그를 해방시켜 줄 때 그의 주인 즉 “고용주”는 그에게 물질적인 것을 공급해 주어야 하였읍니다. 고용주는 능력껏 그와 그의 가족에게 새 출발의 기초가 될 물질을 주어야 하였읍니다. (신명 15:12-15) 이러한 마련을 통하여 한 가족은 궁핍함을 면할 수 있었고 그 가족이 자립할 때까지의 음식과 의복을 가질 수 있었읍니다.
13. (ㄱ) 정상적으로 6년간 노예 생활을 하기 전에 어떻게 해방될 수도 있었읍니까? (ㄴ) 노예가 되는 ‘히브리’인 딸을 위한 어떠한 보호의 마련이 있었읍니까?
13 더우기, 그 사람은 “노예”로 있는 동안 사업이나 혹은 기타 영업 혹은 투자를 하여 어떤 경우에는 자기 자신을 자기 능력으로 노예 신분에서 사낼 수 있었읍니다. 혹은 가까운 친척이 빚을 청산하여 주어 그 사람을 자유인으로 해방시킬 수도 있었읍니다. (레위 25:47-54) 노예로 간 딸은 종종 그 주인의 아내가 되었으며, 그 경우 어떠한 아내와도 같은 정당한 대우를 받아야 하였읍니다.—출애굽 21:7-11.
여자들을 위한 보호
14. 이혼당한 여자는 어떻게 보호를 받았읍니까?
14 여자들은 혼인법에 의하여 보호를 받았읍니다. 남자가 그의 아내와 이혼을 하려면 타당한 이유가 있어야 하였고, 또한 그 여자에게 이혼 증서를 주어야 하였읍니다. 이혼 증서는 재혼을 할 경우 여자가 거짓 비난을 받지 않도록 보호하여 주었읍니다.—신명 24:1; 또한 마태복음 19:3-9에 있는 이혼에 대한 예수의 설명 참조.
15. 어떠한 율법이 음행을 막는 역할을 하였읍니까?
15 약혼하지 않은 처녀를 유혹한 남자는 그 처녀의 아버지의 재량에 따라 그 처녀와 결혼해야 하였으며, 그 여자와 결코 이혼할 수 없었읍니다. (신명 22:28, 29; 출애굽 22:16, 17) 약혼한 여자의 경우에는, 남자를 사형시킴으로써 살인과 마찬가지로 심각하게 여겨졌던 강간으로부터 여자를 보호하였읍니다.—신명 22:25-27.
16. (ㄱ) 일부다처는 하나님의 원래의 마련이었읍니까? (마태 19:4-6) (ㄴ) 왜 하나님께서는 고대 ‘이스라엘’에서 일부다처를 묵인하셨읍니까?
16 일부다처가 허용되었지만, 여자에게 유리하도록 규제되었읍니다. 오래 전부터 있던 일부다처제는, 모든 일을 바로 잡을 하나님의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허용되었읍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교 시대까지 기다렸다가 일부일처의 원래 상태로 회복시키셨읍니다. (고린도 전 7:2) 하나님의 길은 그분의 백성을, 그들이 이해하고 시정할 수 있는 정도에 따라 가르치고 인도하는 것이었읍니다. 요한복음 16:12을 보면, 예수께서는 그의 제자들에게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고 말씀하셨읍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죽으시고 부활되신 후에, 많은 것들이 그들에게 명백하여지고 분명하여졌읍니다.
17. 일부다처 생활에서 덜 사랑받는 아내는 어떻게 보호를 받았읍니까?
17 일부다처 생활에서는, 대개 남편이 아내들 중 한 사람을 특히 사랑하였읍니다. 그러나 율법은 덜 사랑받는 아내를 보호하여 주었읍니다. 예를 들면, 그 아내의 아들이 아버지의 장자라면, 그 아들은 장자권을 박탈당하지 않았읍니다. 아버지가 가장 사랑하는 아내에게서 나중에 태어난 아들에게 장자권을 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신명 21:15-17.
18. ‘이스라엘’의 적들 가운데 있는 여자들도 어떻게 보호를 받았읍니까?
18 적대 관계에 있는 도시에 사는 여자들도 성적으로 괴로움을 당하지 않았읍니다. 진영 근처에는 창녀들이 없었읍니다. 전쟁에 가담하는 군인들에게는 성관계가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신명 21:10-14.
형법
19. 고대 ‘이스라엘’에 감옥이 없었기 때문에 어떻게 유익하였읍니까?
19 형법은 오늘날 법전 가운데서 볼 수 있는 어떤 형법보다 훨씬 훌륭하였읍니다. 율법하에서는 감옥이 없었읍니다. 얼마 후 왕이 통치하던 기간에, ‘이스라엘’에 부당하게 감옥이 설치되었읍니다. (예레미야 37:15, 16; 38:6, 28) 감옥이 없었기 때문에 어떠한 범죄자도, 법을 순종하여 열심히 일하는 백성의 비용으로 먹여지거나 수용되는 일이 없었읍니다.
20. 도적질에 대한 형벌은 무엇이었으며, 그것은 어떠한 유익이 있었읍니까?
20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물건을 훔친 경우에는, 그를 감옥에 가두지 않고 노동을 하게 하여 그가 훔친 것을 배상할 수 있게 하였읍니다. 따라서 도적맞은 사람은 손해를 보지 않았읍니다. 또한, 도둑질한 사람은 그가 도둑질한 물건에 따라 그리고 그가 그것을 처분한 방법에 따라 배 혹은 그 이상으로 배상하게 되어 있었읍니다. (출애굽 22:1, 4, 7) 만일 그가 지불하지 못하면, 노예로 팔려가야 하였으며 그가 도적질한 것에 대한 판결대로 지불할 때까지 도난당한 사람 밑에서 혹은 다른 ‘이스라엘’인 밑에서 일해야 하였읍니다. (출애굽 22:3) 만일 그가 주제넘게도 선고에 따라 이행하기를 거절한다면, 그는 죽음에 처해질 것이었읍니다. (신명 17:12) 이 법은 도적맞은 사람에게도 유익하였고 도적질에 대한 강력한 억제책이기도 하였읍니다.
21. (ㄱ) 고의적인 살인에 대한 형벌은 무엇이었읍니까? (ㄴ) 과실 치사자를 위한 어떠한 마련이 있었읍니까?
21 율법하에서는 생명이 신성시되었읍니다. 고의적인 살인죄는 무죄가 될 수 없었읍니다. 그는 반드시 죽임을 당해야 하였읍니다. 그러므로 민수기 35:30-33은 이렇게 말합니다. “무릇 사람을 죽인 자 곧 고살자를 증인들의 말을 따라서 죽일 것이나 한 증인의 증거만 따라서 죽이지 말 것이요 살인죄를 범한 고살자의 생명의 속전을 받지 말고 반드시 죽일 것이며 ··· 너희는 거하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피는 땅을 더럽히나니 피흘림을 받은 땅은 이를 흘리게 한 자의 피가 아니면 속할 수 없느니라.” 이 법은 그러한 악한 자를 ‘이스라엘’ 사회에서 일소하였읍니다. 그는 또 다시 살인을 범하도록 해방되지 않았읍니다. 그러나 과실 치사자는 자비를 받을 수 있었읍니다.—민수 35:9-15, 22-29.
22. 생명의 신성함이 어떻게 특히 강조되었읍니까?
22 미해결된 살인 사건은 반드시 속죄되어야 하였읍니다. 살인이 발생한 곳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는 하나님 앞에서 피흘린 공동 책임을 벗기 위하여 성읍 장로들이 요구된 의식을 행하지 않는 한 피흘린 죄를 범한 것으로 간주되었고 저주하에 있었읍니다. 그리하여 백성들은 생명의 신성함에 대하여 깊은 인상을 받았읍니다.—신명 21:1-9.
23. 납치 행위를 규정한 율법을 설명하십시오.
23 사람의 몸은 침범할 수 없는 것으로 간주되었읍니다. 납치 행위는 사형에 해당하는 범죄였읍니다. 사람을 납치하여 그 사람을 수하에 두거나 노예로 판 사람은 반드시 사형에 처하게 되어 있었읍니다.—출애굽 21:16; 신명 24:7.
청소년 범죄가 없음
24. 가족에 대한 존경심이 어떻게 유지되었으며, 그 결과는 무엇이었읍니까?
24 그 나라가 율법을 따르는 한 청소년 범죄 문제가 별로 없었읍니다. 그 나라의 본질적인 단위는 가족이었읍니다. 그 나라의 유사들 및 부모에 대한 커다란 존경심에 대한 가르침이 있었읍니다. (출애굽 20:12; 22:28) 집단 폭행은 단죄되었읍니다. (출애굽 23:1, 2) 책임 연령에 달한 아들이 고칠 수 없을 만큼 반항적이고, 예를 들어, 탐식가나 술고래가 되면 처형하였읍니다. (신명 21:18-21) 아버지나 어머니를 구타하거나 욕하는 자는 죽음에 처하였읍니다. (출애굽 21:15, 17; 레위 20:9) 가정과 가족에 대한 존경심의 결과로 국가의 통치자들 특히 수석 통치자이신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존경심이 길러졌읍니다.
재산권에 대한 존중
25. 습득한 분실물은 어떻게 취급되었읍니까?
25 현대에는 분실한 물건을 습득한 사람이 그 물건을 갖는 것이 보편화되었읍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에서는 동물이나 물건을 습득한 사람이 반드시 그 습득물을 소유자에게 반환하게 되어 있었읍니다. 소유자가 멀리 살고 있고 알 수 없는 경우에는, 소유자가 그 물건을 찾을 때까지 보관하도록 되어 있었읍니다. (신명 22:1-3) 분실한 물건을 찾으러 그 마을에 온 소유자를 돕기 위하여, 습득자는 자기가 그 물건을 습득하였다는 사실을 그 도시의 장로들이나 역원들에게 물론 신고해야 할 것입니다.
26, 27. (ㄱ) 사람의 가정과 재산이 어떻게 존중되었읍니까? (ㄴ) 이러한 법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어떻게 유익하였읍니까?
26 가정의 신성함이 대단히 존중되었읍니다. 어떤 사람이 채무자의 집에 들어가서 보증물로 저당잡힐 물건을 가지고 나올 수 없었읍니다. 채권자는 밖에서 기다리고 채무자가 그에게 저당잡힐 물건을 가지고 나오게 해야 하였읍니다. (신명 24:10, 11) 또한 채권자는 생활하는 데 당장 필요한 물건이나 필수적인 의복을 저당물로 잡을 수도 없었읍니다. 왜냐 하면 가난한 사람은 가족을 위한 식량이 조금 밖에 없거나 겉옷이 하나 밖에 없을지 모르기 때문이었읍니다.
27 이에 대한 신명기 24:6, 12, 13의 기록은 이러합니다. “사람이 맷돌의 전부나 그 위짝만이나 전집하지 말찌니 이는 그 생명을 전집함이니라. 그가 가난한 자여든 너는 그의 전집물을 가지고 자지 말고 해질 때에 그 전집물을 반드시 그에게 돌릴 것이라. 그리하면 그가 그 옷을 입고 자며 너를 위하여 축복하리니 그 일이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네 의로움이 되리라.”
동물에 대한 친절
28. 하나님께서는 동물에 관한 율법 가운데서 어떻게 그분의 사려깊음과 친절을 나타내셨읍니까?
28 동물 역시 친절한 대우를 받았읍니다. 만일 사람이 고통하는 동물을 보았다면, 그 동물이 심지어 원수의 소유일지라도, 도와 주어야 하였읍니다. (출애굽 23:4, 5; 신명 22:4) 짐을 운반하는 짐승을 과도하게 부리거나 혹사하지 못하게 되어 있었읍니다. (신명 22:10; 잠언 12:10) 소가 타작을 할 때, 타작하는 곡식을 먹지 못하도록 망을 씌우지 못하게 되어 있었읍니다. (신명 25:4) 야생 동물도 친절하게 취급하게 되어 있었읍니다. 어미새와 알을 함께 취하여 그 종족이 멸절되게 하지 못하게 되어 있었읍니다. (신명 22:6, 7) 가축 가운데서 소나 양을 그 새끼와 함께 같은 날 도살하지 못하게 되어 있었읍니다. 이 모든 일은 잔인한 정신을 막는 역할을 하였읍니다.—레위 22:28; 요나 4:11과 레위 25:4, 5, 7에 표현된 동물에 대한 하나님의 배려 비교.
사실에 대한 열성
29, 30. 법적 사건에서의 증언을 규정하는 어떠한 법이 있었읍니까?
29 공의와 자비를 위하여, 법적 사건에서 증인은 그 사건에 대하여 아는 바를 무엇이든지 증언하게 되어 있었읍니다. 만일 그가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재판관들 앞에서 공적으로 저주를 받게 되어 있었읍니다. 그러한 저주를 하나님께서 시행하게 되어 있었읍니다. (레위 5:1; 잠언 29:24) 그는 위증을 해서는 안되었읍니다. 왜냐 하면 이것은 “여호와 앞에”서 거짓말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을 고발하는 사람이 고의적으로 거짓말한 것이 드러나면, 고발자는 거짓 고발당한 사람이 받을 동일한 형벌을 받게 되어 있었읍니다.
30 따라서, 신명기 19:16-19에는 이러한 말이 있읍니다. “만일 위증하는 자가 있어 아무 사람이 악을 행하였다 말함이 있으면 그 논쟁하는 양방이 같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 당시 제사장과 재판장 앞에 설 것이요 재판장은 자세히 사실하여 그 증인이 위증인이라 그 형제를 거짓으로 무함한 것이 판명되거든 그가 그 형제에게 행하려고 꾀한 대로 그에게 행하여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하라.”
31. 어떠한 또 다른 법이 의에 대한 열성을 촉진하고 또한 법적 사건에서 거짓 증언 혹은 경솔한 증언을 방지하였읍니까?
31 아무도 간접 증거만으로는 사형을 시킬 수 없었읍니다. 사실을 확증하기 위해 적어도 두명의 목격 증인이 있어야 하였읍니다. (신명 17:6; 19:15) 사형에 해당하는 범죄자의 증인들이 먼저 그에게 돌로 치게 되어 있었읍니다. 이 법은 ‘이스라엘’에서 의에 대한 열성을 촉진하였읍니다. 재판장만이 아니라 이와 같이 모든 국민이 하나님 앞에서 그 땅을 피흘린 죄로부터 깨끗이 유지하기 위한 욕망을 나타내게 되어 있었읍니다. 그것은 또한 거짓 증언이나 경솔한 증언을 방지하였읍니다. 이 유익한 법이 신명기 17:7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읍니다. “이런 자를 죽임에는 증인이 먼저 그에게 손을 댄 후에 뭇 백성이 손을 댈찌니라. 너는 이와 같이 하여 너의 중에 악을 제할찌니라.”
금지된 성관계
32. 어떠한 불의한 성관계가 사형에 해당하였읍니까?
32 간음한 쌍방은 사형을 당하였읍니다. (레위 20:10) 동성애와 수간과 같은 가증한 행위 역시 사형에 해당하였읍니다. 레위 20:13, 15에 의하면 이러합니다. “누구든지 여인과 교합하듯 남자와 교합하면 둘 다 가증한 일을 행함인즉 반드시 죽일찌니 그 피가 자기에게 돌아가리라. 남자가 짐승과 교합하면 반드시 죽이고 너희는 그 짐승도 죽일[찌니라.]”—또한 레위 20:16, 17; 로마 1:24-28 참조.
정결
33, 34. 율법은 어떻게 신체적 정결을 촉진하였읍니까?
33 율법은 사람들에게 도덕적 정결 뿐만 아니라 신체적 정결도 요구하였읍니다. 정결함에 대한 법에 따라 ‘이스라엘’인들은 스스로 죽은 동물과 접촉한 질그릇은 깨뜨려야 하였읍니다. 다른 그릇들과 의복은 씻어야 하였읍니다. 그러한 법은 ‘이스라엘’인들이 항상 깨끗한 상태에 있도록 일깨워 주었읍니다. 전염병이 있는 사람은 격리되어 있었읍니다. (레위 13:4, 5, 21, 26) 감염된 의복과 집들은 격리되었고, 어떤 경우에는 불살라졌읍니다. (레위 13:47-52, 55; 14:38, 45) 아무 피든지 먹지 못하게 되어 있었읍니다.—레위 7:26.
34 의학적인 견지에서, 위생과 격리의 법은 도덕법과 피의 금지법과 함께 장‘티푸스’, 발진 ‘티푸스’, 흑사병, 간장염, 임질, 매독과 기타 허다한 질병으로부터 보호해 주는 놀라운 역할을 하였읍니다.
회개한 사람들에게 베풀어진 자비
35. 법적 사건을 다루는 재판관들은 경우에 따라 자비를 베풀 수 있는 자유가 있었읍니까?
35 율법은 가혹하거나 완고하지 않았읍니다. 재판관들은 자비를 베풀 자유가 있었읍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동료 인간에게 죄를 범하였지만 회개하면, 먼저 피해자와 문제를 해결하고 다음에 여호와께 속건제를 바침으로써 하나님의 은총으로 회복될 수 있었읍니다. (레위 6:2-7)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법을 언급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마태 5:23, 24) 오늘날, 하나님의 종들은 동료 인간들에게 악행을 한다면 하나님과 평화로운 관계를 가질 수 없읍니다.
희년
36. 희년법은 어떠한 훌륭한 역할을 하였읍니까?
36 매 50년째 해에 돌아오는 희년은 크게 즐거워하는 때였읍니다. 팔았던 모든 상속 토지가 주인에게 돌려졌읍니다. ‘히브리’인 종들은, 그들의 6년 노예 생활이 끝나지 않았을지라도, 자유케 되었읍니다. (레위 25:8-13, 39-41) 이 율법은 경제 상태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약속된 땅에 들어갈 때 확립시킨 원래의 균형잡힌 상태로 회복시켜 주는 훌륭한 역할을 하였읍니다. 그것은 오늘날 많은 지역의 상태—극도로 부유한 지주 계급과 극도로 가난한 “농노” 계급을 방지하였읍니다. 그 법이 시행되는 한 토지 독점이 불가능하였읍니다.
37. 요약하면,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법을 우리가 연구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37 그러므로 율법은 국민을 자유인이 되게 하였읍니다. 모든 가족은 영구적인 궁핍 상태에 빠지지 않도록 보호를 받았읍니다. 가족의 존엄성이 유지되었고 가족의 영성은 높은 수준으로 유지되었읍니다. 아버지는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었읍니다. 안식일과 안식년이 되면 자녀들을 가르치는 일을 할 시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오늘날 ‘모세’의 율법 아래 있지 않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길과 일을 행하시는 방법을 암시해 주며 “장차 오는 좋은 일”을 “그림자”로 알려 주는 것이었읍니다.—히브리 10:1.
[120면 삽화]
율법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이 이삭을 줍도록 밭 가장자리에 있는 곡식을 남겨 두게 함으로써,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마련이 있었다
[128면 삽화]
희년이 공포되면 모든 토지를 원래의 소유자에게 되돌려 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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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와 불공평의 제거인생에는 분명히 목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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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장
범죄와 불공평의 제거
1. 현 세상은 어떻게 의에 따라 살아가는 것을 어렵게 만듭니까?
당신이 아무리 선하게 살려고 노력하여도, 주위 환경상 그렇게 하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 아닙니까? 경제적 생존을 위해 투쟁하는 사업계에서 경쟁에 맞서기 위하여 속이려 들기가 쉽습니다. 일상 생활에서 우리는 부도덕, 마약 남용, 욕설, 증오 및 보복 정신을 봅니다. 그리고 이러한 행위들은 대체로 연예계와 선전 수단을 통하여 정상적이고 올바른 것처럼 보이게 되었읍니다.
2. 사람들은 나쁜 환경의 영향을 인정합니까?
2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나쁜 환경의 강력한 영향을 인식하고 특히 자녀들의 유익을 위하여 더 나은 환경을 찾아 이 곳에서 저 곳으로 이사를 합니다. 그들은 그들이 자녀들에게 가르쳐 준 선한 원칙들을 나쁜 환경이 해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읍니다.
3, 4. (ㄱ) 고대 ‘이스라엘’의 환경은 그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었읍니까? (ㄴ) 나쁜 환경을 조성하는 주 요인은 무엇이었읍니까?
3 고대 ‘이스라엘’에서도 ‘모세’의 율법 자체는 좋은 것이었지만, 환경이 언제나 하나님의 충실한 숭배에 유리하지는 않았읍니다. ‘이스라엘’은 우상을 숭배하는 나라들에 둘러싸여 있었읍니다. (신명 13:6, 7, 12, 13) ‘이스라엘’인들은 온 인류와 마찬가지로 죄인들이었읍니다. 그리고 율법이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을 하나님의 참 숭배에 굳게 머물도록 도와 주고 있던 동안 대다수는 불순종을 나타냈읍니다. (역대 하 36:15, 16) 그들은 그들의 환경에 굴복하였읍니다. 더우기, ‘사단’ 마귀는 첫 인간이 타락한 이래 사람들이 하나님의 지식을 얻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강력한 영향력을 여러 세기 동안 행사하여 왔읍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기술하였읍니다.
4 “만일 우리 복음이 가리웠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운 것이라.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고린도 후 4:3, 4.
변화된 환경
5, 6. 하나님께서는 현재의 우리의 환경을 어떻게 하실 목적을 가지고 계십니까?
5 그러므로 변화된 환경은 죄있는 인간들이 하나님의 선한 원칙에 순종하기 위하여 ‘정신을 새롭게 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 분명합니다. (로마 12:2, 신세)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천년 통치하에서 바로 그러한 환경을 가져 오실 목적을 가지고 계십니다.
6 우선, 악한 사물의 제도가 하나님에 의하여 멸망되고 지나가야 합니다. (요한 1서 2:17) 다음에, “이 세상 신”인 마귀가 결박되어 인류가 여호와 하나님께 반역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게 되어야 합니다. (계시 20:1, 2) 그는 그들을 속이고 그들의 불완전성을 이용하여 그들이, 사망을 초래하는 죄를 범하게 함으로써 이 일을 하여 왔읍니다.—계시 12:9; 히브리 2:14, 15.
7-12. 그리스도의 왕국 통치에 의하여 초래될 상태를 설명하십시오.
7 시편 필자는 그리스도께서 왕으로 이 땅을 통치하실 때에 있게 될 상태에 관하여 이렇게 예언적으로 알려 줍니다.
8 “저의 날에 의인이 흥왕하여 평강의 풍성함이 달이 다할 때까지 이르리로다.” “산꼭대기의 땅에도 화곡이 풍성[하리라.]” “진리는 땅에서 솟아나고 의는 하늘에서 하감하였도다. 여호와께서 좋은 것을 주시리니 우리 땅이 그 산물을 내리로다”—시 72:7, 16; 85:11, 12.
9 예언자 ‘이사야’는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이렇게 기술하였읍니다.
10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이사야 9:6, 7.
11 새로운 사물의 제도가 가져 올 유익한 환경을 설명하여 ‘이사야’는 이렇게 말합니다.
12 “의인의 길은 정직함이여. 정직하신 주께서 의인의 첩경을 평탄케 하시도다. 여호와여, 주의 심판하시는 길에서 우리가 주를 기다렸사오며 ··· 주께서 땅에서 심판하시는 때에 세계의 거민이 의를 배움이니이다.”—이사야 26:7-9.
13. 부활되는 사람들이 그들의 이전 생활에서보다 하나님에 관한 진리를 배우기가 더 쉬울 것입니까?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13 여호와의 심판이 온 땅에서 선포되고 시행될 것이므로 현 사물의 제도의 멸망을 생존하여 그 새로운 제도로 넘어가는 “큰 무리”는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악한 반대자들의 방해를 받지 않고 부활된 자들을 가르칠 수 있을 것입니다. (계시 7:9, 10, 14-16) 공의와 평화가 풍성할 것이므로, 진리가 훨씬 분명하게 나타날 것입니다. 진리의 말씀을 듣는 사람들은 훨씬 더 쉽사리 순종할 것이고 그들의 생활의 길을 “평탄케” 할 것입니다!
14. 현 사물의 제도는 우리가 불완전한 부모로부터 유전받은 나쁜 경향을 어떻게 강조하여 왔읍니까?
14 오늘날, 사람들은 범죄 행위를 자행하며, 일부 사람들은 이른바 ‘상습범’이 됩니다. 모든 사람은 이모 저모로 죄에 대하여 약점을 가지고 있읍니다. (로마 6:19) 모든 사람은 이러한 약함을 유전받았읍니다. (시 51:5)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감정과 폭력을 억제하는 데 약한 경향이 있읍니다.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공격적이어서, 부당하다고 느낄 때에는 법을 무시하고 자기 멋대로 해결하려고 듭니다. 부도덕, ‘알코올’ 남용 등에 쉽게 빠지는 사람도 있읍니다. 그러나 이들 중에서 보통 범죄 행위를 하는 사람들은 비교적 소수입니다. 그것은 ‘배양기’로서 나쁜 경향이 조성되고 조장되는 나쁜 환경 및 불법적인 행동을 야기시킬 혹은 기회나 자극을 줄 환경을 요합니다.—고린도 전 15:33.
15. (ㄱ) 그리스도의 왕국하의 환경은 어떻게 좋은 특성을 세워 줄 것입니까? (ㄴ) 사람이 원래의 상태로 회복되려면 그 사람이 무엇을 해야 할 것입니까?
15 그러나 이 악한 세상이 제거되고 ‘사단’이 결박되어 그가 방해 활동을 할 수 없을 때, 인간은 점차 원래의 상태로 회복될 수 있을 것입니다. 좋은 환경에 의하여 사람들의 좋은 경향이 조성되고 촉진될 것입니다. 나쁜 특성은 억제될 것입니다. 나쁜 욕망과 행동은 부적절할 것이며 버려야 할 것으로 간주될 것입니다. 그러나, ‘악의와 훼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을 벗어 버리고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좇아 새로와져서 지식에 이르고 새 사람을 입’는 데는 그 사람의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골로새 3:8-10) 우리는 변화하고자 하는 강렬한 욕망이 있어야 합니다. 왜냐 하면 하나님은 자진적으로 순종하는 신민을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시 81:11-13) 그리스도와 그분의 연합 왕겸 제사장들의 행정 아래에서 변화하는 사람들은 가능한 모든 면으로 도움을 받을 것이며, 그의 노력이 방해를 받지 않을 것입니다.—계시 7:17.
생명을 얻지 못할 자들
16, 17. (ㄱ) 새로운 사물의 제도에서 누가 생명을 얻지 못할 것입니까? (ㄴ) 예수께서 지상에 계실 때에, 종교 지도자들은 어떻게 자신들을 커다란 위험 가운데 두고 있었읍니까?
16 ‘성령을 모독하는’ 사람들만 그 새로운 사물의 제도에서 죽을 것입니다. (마태 12:31, 32) 이 죄는 하나님께 대한 고의적이고 계획적이고 반역적이고 모독적인 행위입니다. 그러면 그 죄는 어떻게 ‘성령을 거스립’니까?
17 예를 들어, ‘바리새’인들을 고려하여 보십시오. 그들은 자신들을 이 죄를 지을 커다란 위험 가운데 두었으며, 일부 사람들은 분명히 이 죄를 범하였읍니다. 그들은, 후에 사도 ‘바울’이 된 ‘사울’의 경우와 같이, 단순히 믿음의 부족으로 인하여 예수께서 메시야이심을 믿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디모데 전 1:12, 13) 그러나 예수께서 용서받을 수 없는 죄에 대하여 말씀하셨을 때에,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영이 예수께 임하여 있는 결과로 예수께서 강력한 말씀과 기적을 행하시는 것을 방금 목격하였읍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영이 예수를 통하여 작용하고 있는 것을 보고 알았을 때 그들은 실제로 성령을 모독하는 죄가 있었읍니다. 어떻게? 그들은 예수께서 행하시는 기적을 마귀의 능력이라고 고의적으로 주장하였읍니다. ‘바리새’인들은 전적으로 이기적인 목적을 염두에 두고 있었읍니다. 그들은 사람들을 그릇 인도하여 사람들을 계속 지배하기를 원하였읍니다.—마태 12:22-30.
18. 그리스도인이 영원한 생명을 상실할 수 있읍니까?
18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가 나중에 고의적으로 하나님의 순결한 숭배에서 돌아서는 사람들의 경우도 이와 같을 수 있읍니다. 히브리서 10:26, 27은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이 있으리라.]” 하고 말합니다.—히브리 6:4-6 비교.
19. (ㄱ) ‘사망을 초래하는 죄’는 무엇입니까? (ㄴ) 참 그리스도인은 분명히 그러한 죄를 범하는 것 같은 사람을 어떻게 볼 것입니까? (ㄷ) 그리스도인은 어떤 사람이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범하였다고 판단할 수 있읍니까? 설명하십시오.
19 사도 ‘요한’은 또한 “사망에 이르는 죄”와 사망을 초래하지 않는 죄를 대조합니다. (요한 1서 5:16, 17; 또한 민수 15:30 비교.) 참 그리스도인은 그가 보는 증거로 볼 때 하나님의 영을 모독하는 것 같은, 분명히 고의적으로 그리고 회개의 증거없이 죄를 범하는 자칭 그리스도인과 교제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한 2서 9-11) 그리스도인이 그러한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없으며, 어떤 사람이 실제로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범하였는지 판단할 수 없읍니다. 그는 그 사람이 후에 회개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실히 알 수 없읍니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을 대신하여 심판하실 것임을 인정하며 그분이 “폐부”(가장 깊은 감정과 생각)와 “심장”(동기의 본거지)을 살피고 어떤 사람이 성령을 거스르는 모독 죄를 범하였는지를 결정하실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계시 2:23; 요한 5:22, 30.
20. 교화할 수 없고 고칠 수 없는 죄인들은 그리스도인의 천년 통치중에 어떠한 처우를 받을 것입니까?
20 그러한 고칠 수 없고 교화할 수 없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천년 통치중에 죽음에 처해질 것입니다. 그들이 영구적으로 처형되는 것이 성경에는 그들이 상징적인 “불못” 즉 ‘아담’으로부터 유전된 사망과 다른 “둘째 사망” 즉 상징적 “불못”에 던져지는 것으로 표현되었읍니다. (계시 20:14, 15) 따라서, 그 새로운 사물의 제도의 평화의 교란자들은 재난을 초래하도록 남아 있는 것이 허락되지 않을 것입니다.
현재에도 더 나은 생활
21, 22. (ㄱ) 우리는 더 나은, 더 행복한 생활을 하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천년 통치까지 기다려야 합니까? (ㄴ) 사도 ‘바울’이 디모데 전서 4:8에서 이 문제에 대하여 한 말을 논하십시오.
21 그러나, 지금 이 책을 읽는 분들에게, 우리는, 사도가 하나님의 장성한 종이 되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말한 바와 같이, 이렇게 말합니다. “사랑하는 이들이여, 우리가 이렇게 말하지만 여러분에게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더 좋은 것이 있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히브리 6:9, 새번역)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좋은 출발을 하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천년 통치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읍니다. 우리는 지금 그렇게 할 수 있으며 또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합니다.
22 사도는 또한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디모데 전 4:8) 우리는 세상 일에 얽매이지 않으며, 마음의 평화와 인생의 목적을 가질 수 있읍니다. 우리는 인생을 즐겁게 살 수 있으며, 우리의 가족 및 이웃과 더 나은 관계를 가질 수 있읍니다. 그 외에도 우리는 죽지 않고 다가오는 “큰 환난”을 통과하여 하나님의 새로운 사물의 제도에서 온전한 생명을 얻을 것을 기대할 수 있읍니다.
23, 24. (ㄱ)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이라고 말하는지 보았으므로, 우리는 진리를 위하여 기다리거나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할 것입니까? (ㄴ) 우리는 우리를 구출할 또 다른 메시야 혹은 어떤 위대한 사람이 일어날 것을 기대할 필요가 있읍니까? (ㄷ) 그러면 해야 할 올바른 일은 무엇입니까?
23 우리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직전의 ‘이스라엘’ 민족과 비슷한 입장에 있읍니다. ‘모세’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한 이 명령은 네게 어려운 것도 아니요 먼 것도 아니라.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올라가서 그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할꼬 할것이 아니요 이것이 바다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바다를 건너가서 그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할꼬 할것도 아니라, 오직 그 말씀이 네게 심히 가까와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신명 30:11-14.
24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무엇을 요구하시는지를 알고 그것을 행하는 것은 사실 어렵지 않습니다. 만일 당신이 믿음을 실천하고 이 믿음에 따라 행동한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도와 주실 것입니다. (마태 11:28-30) 당신은 하늘에 올라가서 필요한 소식을 가지고 내려 오도록 사람을 보낼 필요가 없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하셨으며 성서에 그분의 계명이 들어 있읍니다. 당신은 어떤 먼 곳—“바다 밖”—으로 여행을 하여 그곳의 인간들로부터 지혜나 철학을 구할 필요가 없읍니다. 당신은 진리를 발견하기 위하여 더 고등한 교육을 받을 필요도 없고, 현재와 과거의 모든 종교를 탐구할 필요도 없읍니다. 당신은 성서에서 하나님의 목적에 관하여 읽었읍니다. 그것은 당신의 입과 마음에 있읍니다. 그것은 “왕국의 좋은 소식”입니다. (마태 24:14, 신세) 그리스도의 사도가 이렇게 말한 바와 같습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로마 10:5-10.
25.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서 커다란 일을 요구하십니까, 아니면 무엇을 요구하십니까?
25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당신으로부터 크고 강력한 행위를 요구하시지 않지만,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미가 6:8) 이것이 논리적이며, 모든 사람이 참으로 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26, 27. 우리가 지금 미리 출발하기 위하여 할 수 있는 일들은 무엇입니까?
26 그러므로, 당신은 지금부터 미리 출발하여 당신 자신의 생활에서 불공평을 제거할 수 있읍니다. 당신은, 당신의 길에서 나쁜 환경으로 인해 이탈하지 않기 위하여, 나쁜 일을 계속하는 사람들과의 가까운 교제를 끊을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을 섬기려고 하던 사람들에게 이렇게 기술하였읍니다. “내가 너희에게 쓴 것에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 하였거니와 이 말은 이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이나 탐하는 자들과 토색하는 자들이나 우상 숭배하는 자들을 도무지 사귀지 말라 하는 것이 아니니 만일 그리 하려면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라.” (고린도 전 5:9, 10) 당신에게는 악을 행하는 친구들이나 직장 동료가 있을 수 있으며, 물론 당신은 그들과의 교제를 완전히 끊을 수 없읍니다. 그러나 당신은 그들의 악행에 관련을 가지거나 혹은 항상 그들과 친밀하게 어울리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이 관찰해 볼 때 올바른 일을 행하는 그리스도인들과의 교제를 추구할 것입니다. 이것은 당신에게 힘을 줄 것입니다.—히브리 13:7.
27 이러한 일들을 한 다음에, 이 길에 굳게 머무십시오.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께서 그분의 의롭고 새로운 사물의 제도에서 불공평과 범죄와 불행을 완전히 일소할 때를 기다리십시오.—이사야 32:1, 16-18.
[131면 삽화]
나쁜 환경은 범죄를 조장한다
[132면 삽화]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하에서의 건전한 환경은 선행을 고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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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과 사망의 종결인생에는 분명히 목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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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장
병과 사망의 종결
1. 사망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사람들은 어떠한 일을 하였읍니까?
인류에게 슬픔과 고통을 가져온 것 가운데 병과 사망이 으뜸입니다. 심지어, 사망에 대한 두려움도 사람들을 일종의 속박 가운데 몰아 넣었으며, 사망의 위협을 받게 되자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의 양심을 범하는 행동을 하였읍니다. 예를 들면, ‘나찌’ 치하에서, 일부 사람들은 두려움에 질린 나머지 자기들의 친구들을 배신하였읍니다. (히브리 2:15) 이러한 원수들 즉 병과 사망이 없어질 때 인류는 참으로 감개 무량한 해방을 경험할 것입니다!—고린도 전 15:26.
2, 3. (ㄱ) 사망이 없어지면 어떠한 다른 바람직하지 않은 일들이 제거될 것입니까? (ㄴ) 사망을 없애 주실 하나님의 약속은 현재 우리를 무엇으로부터 해방시켜 줍니까?
2 단지 창조주께서만이 이러한 슬픈 상태에서 사람들을 건져내실 수 있읍니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그렇게 하실 것을 약속하셨을 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연합 왕 겸 제사장으로 이루어진 “새 하늘”의 통치하에서 사망을 완전하고 영구적으로 제거하실 기초를 놓으셨읍니다. 하나님께서는 인류에게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할 것이라고 약속하셨읍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믿음과 확신을 주시기 위하여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다고 부언하셨읍니다. (계시 21:4, 5) 병과 사망이 제거되면, 주름살과 흰 머리를 포함한 노쇠 과정의 영향이 사라질 것입니다.
3 만일 우리가 이러한 하나님의 약속을 알고 믿는다면, 사망이 초래하는 많은 슬픔이 제거됩니다. 우리는 “소망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을 것입니다.—데살로니가 전 4:13.
새로운 희망이 아님
4. 왜 우리는 사망이 없어질 것이라는 희망이 새로운 희망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읍니까?
4 이 희망은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수천년 전에 하나님을 섬긴 인간 남녀들은 그들을 위안하고 힘 준 이 희망을 가지고 있었읍니다. 그들은 그들이 죽을 것을 알았지만, 또한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부활시켜 영원한 생명을 얻을 기회를 주실 것을 믿었읍니다. 이들 충실한 사람들 중 일부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예언자들을 통하여 그리고 예수와 사도들을 통하여 행하신 부활의 목격자들이었읍니다. 물론, 그 당시 부활된 사람들은 마침내 다시 죽었읍니다. 그러나 그 때에 하나님의 종들은 메시야 왕국하에서의 “더 좋은 부활”을 기다리고 있었으며, 그 때가 되면 고의적으로 불순종하지 않는 한 다시 죽을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히브리 11:16, 35.
5. ‘아브라함’과 ‘욥’과 ‘다니엘’이 죽을 때 그들이 영원히 죽음 가운데 있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는 어떠한 증거가 있읍니까?
5 ‘아브라함’은 탁월한 방법으로 부활에 대한 믿음을 나타냈읍니다. (히브리 11:17-19) 충실하고 인내가 강한 ‘욥’은 ‘스올’ 즉 무덤에 있다가 하나님의 정하신 때가 되면 하나님에 의해 기억되는 일에 관하여 말하였읍니다. (욥 14:13) 그리고 예언자 ‘다니엘’이 “마지막 때”에 성취될 그의 장기적인 예언의 의미를 질문하였을 때 하나님의 천사는 그에게 “네가 평안히 쉬다가 끝날에는 네 업을 누릴 것임이니라.” 하고 말하였읍니다.—다니엘 12:8, 9, 13.
누가 지적 부활을 받을 것인가?
6. (ㄱ) 어떠한 두 집단의 사람들이 지적 부활을 받을 것입니까? (ㄴ) 사망 전에 하나님의 종들이었던 사람들의 부활 후의 태도는 어떠할 것입니까?
6 사망으로부터의 부활은 사망한 사람들을 인간의 원래 상태로 회복시키려는 하나님의 목적의 첫 단계에 불과할 것입니다. 현 악한 사물의 제도의 멸망 후 그들은 무덤에서 나와, “큰 환난”의 생존자들의 “큰 무리”로부터 환영과 영접을 받을 것입니다. 두 집단의 사람들 즉 (1) 히브리 11장에 언급된 사람들을 포함하여 과거에 하나님께 충실한 사람들 및 (2) 사망 전에 하나님의 종들이 아니었던 사람들이 지상에서 다시 살도록 부활될 것입니다. “의로운 사람이나 불의한 사람이나 다 같이 부활한다”고 사도 ‘바울’은 말하였읍니다. (사도 24:15, 새번역) 첫 집단의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한 하나님의 생명의 마련을 배우고 그 마련을 굳게 잡는 데 어려움이 없을 것입니다. 그들은 그 때에 있게 될 법에 기꺼이 순종할 것입니다. 그러한 충실한 사람들은 아직 무덤 속에 있지만 지금도 하나님께서 “살았”다고 간주하십니다. 왜냐 하면 그분께서 틀림없이 부활시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누가 20:37, 38.
7. 과거에 하나님을 섬기지 않은 부활되는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행해질 것입니까?
7 이전에 하나님을 섬기지 않은 사람들은 부활 후에 참 하나님 여호와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친절한 마련에 대하여 배워야 할 것입니다. 큰 환난의 생존자들인 “큰 무리”가 그들을 가르칠 책임을 질 것입니다. (로마 10:14) 좋은 소식이 이들 부활되는 사람들에게 분명히 이해되어야 할 것입니다. 왜냐 하면 하나님께서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무덤 속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실 것이라고 선언하셨기 때문입니다.—빌립보 2:10, 11.
8. 부활되는 사람들이 심판을 받는 기초는 그들의 과거의 행위일 것입니까, 아니면 무엇일 것입니까?
8 부활하는 사람들은 그 때에 시행되는 법에 순종해야 할 것이며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계시 20:12) “책들”은 분명히 그 천년기중에 인류에게 주어질 하나님의 뜻의 계시를 상징하는 것 같습니다.
즉시 완전성에 이르는 것이 아님
9. “큰 무리”의 상태는 어떠할 것입니까?
9 “큰 무리”의 성원들은 “큰 환난”이 끝난 직후에 완전하게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믿음과 순종으로 인하여 이 사물의 제도의 멸망을 생존하여 “새 땅”의 “기초”를 형성할 것입니다. (계시 7:14-17; 또한 이사야 51:16 비교.) 그러므로 그들은 분명히 충실한 길로 갈 것이며, 그들이 “책들”에 기록된 대로 행함에 따라 완전성을 향하여 신속히 발전할 것입니다.—시 37:30, 31.
10. “큰 무리” 성원들과 부활되는 사람들이 가졌던 주요한 신체 장애는 어떻게 될 것입니까?
10 이 “큰 무리” 가운데서 심장병, 마비증, 시력 상실, 팔 다리의 상실 등 심각한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될 것입니까? 그들이 이러한 결함을 조기에 고침받을 것으로 믿는 것이 이치적입니다. 예수께서는 지상에 계실 때에 그러한 병을 고치셨읍니다. 그분은 즉석에서 마른 손과 팔을 고치셨고 절름발이를 고치셨으며 소경의 시력을 회복시키셨읍니다. 이러한 신체 부분은 점차적으로 회복된 것이 아니었읍니다. (누가 6:8-10; 요한 5:5-9) 마찬가지로, 부활받는 사람들은 논리적으로 건전한 몸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부활되었던 것으로 성경에 기록된 사람들의 경우도 모두 그러하였읍니다. (누가 8:54, 55) 예를 들면, ‘나사로’는 신체의 일부가 부패하였지만, 부패한 부분이 새로와진 상태로 부활되었읍니다. (요한 11:39-44) 하나님께서는 그분께서 고대에 고토로 회복시키기로 목적하신 그분의 백성들에게 이렇게 약속하셨읍니다. “그 거민은 내가 병들었노라 하지 아니할 것이라. 거기 거하는 백성이 사죄함을 받으리라.” 사람들은 아직 완전하지 않을지라도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이사야 33:24.
어떻게 완전성에 이르는가
11. (ㄱ) 어떻게 완전성에 도달할 것입니까? (ㄴ) 신체적인 고침이 이루어지기 전에 영적인 변화가 먼저 이루어져야 할 이유는 무엇입니까?
11 그러나, 개인적으로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 때문에 ‘새로운 인간성을 옷입’는 면에서 영적으로 발전함에 따라 온전히 신체의 완전성에 이를 것이 분명합니다. 주요한 신체 장애가 고침을 받을지라도, 의를 행함에 따라 그는 점점 완전성에 다가갈 것입니다. 그는 정기적으로 그리스도의 속죄 희생을 통하여 고침을 받기 위한 하나님의 마련에 참여할 것입니다. (계시 22:2) 그리스도께서는 자비롭게도 사람의 불완전성을 모조리 제거하실 것입니다. 이 영적인 변화가 먼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왜냐 하면 죄는 사망의 원인이며, 사람은 죄가 완전히 제거되기까지는 신체적으로 완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서는 언제나 병과 죄를 결부시킵니다.—누가 5:18-25; 고린도 전 15:56; 로마 6:23.
12. 하나님의 종 각자는 현재 자기의 성품을 변화시키는 데 어떠한 투쟁을 하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12 사도 ‘바울’은 성품을 변화시켜 하나님을 온전히 기쁘시게 하고자 하는 사람 각자가 현재 행하는 “싸움”을 묘사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원하는 이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그것을 함이라 ···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로마 7:15-20) 모든 인간은 유전을 통하여 “죄악 중에” 즉 죄 가운데 태어났읍니다. (시 51:5) 또한, 모든 사람은 그들의 생애중에 환경이 그릇된 영향을 받아 그 죄를 가중시켰읍니다.
13. 사람은 (ㄱ) 그가 그의 환경에서 ‘얻은’ 나쁜 경향을, (ㄴ) 유전받은 나쁜 경향을 어떻게 할 수 있읍니까?
13 오늘날도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의 도움과 그의 영과 하나님의 종들과의 연합을 통하여, 그가 그의 환경에서 ‘얻은’ 것들을 진정으로 제거할 수 있읍니다. 그러나 신체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그의 일부가 된 그의 유전적 구성으로 인한 것들은 다릅니다. 물론, 그는 이러한 결함과 싸워 상당한 성공을 거둘 수 있읍니다. 사도들이 우리에게 ‘우리가 정신을 변화시킬 수 있고’, ‘새로운 인간성을 입’으며, ‘영의 열매를 맺’고, ‘선한 양심을 가지’며 ‘선한 행실을 유지’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읍니다. (로마 12:2; 에베소 4:24; 갈라디아 5:22, 23; 베드로 전 3:16; 2:12) 그러나 우리는 단순히 그러한 노력을 통하여 이러한 유전받은 나쁜 경향을 완전히 일소하지는 못합니다. 사도는 자기의 입장을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로마 7:24, 25.
14. (ㄱ) 그리스도인의 유전받은 약함으로 인하여 죄를 범할 때, 하나님의 은총에 머물기 위하여 어떻게 할 수 있읍니까? (ㄴ) 어떻게 마침내 죄와 고난을 초래하는 모든 유전받은 약함으로부터 구출이 있을 것입니까?
14 오늘날,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우리의 죄를 대신한 그분의 생명의 희생을 통하여 죄사함을 받을 수 있읍니다. 그리고 그는 죄사함을 간청하는 그의 기도와 일치하게 자신을 의로운 길에 조화시키고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는 그릇된 경향에 대항하는 싸움을 결코 중단할 수 없으며, 하나님의 영의 도움을 받는다면 그 싸움에서 패하지 않을 수 있읍니다. 그의 양심은 깨끗할 수 있읍니다. (로마 8:2, 11-13; 히브리 9:14) 그러나 새로운 사물의 제도에서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희생의 온전한 유익을 적용시켜 유전받은 약함, 조상들로부터 받은 유전적 “그릇된 정보”가 시정될 것입니다. 그는 모든 면에서 고침을 받을 것입니다! 참으로 흐뭇한 해방입니다. 사람이 언제나 자기 마음으로 원한 좋은 일을 행할 수 있다면 그것은 얼마나 즐거운 구출입니까!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15. (ㄱ) 어느 때가 되면 사람이 항상 의를 행하기 위하여 투쟁을 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까? (ㄴ) 사도 ‘바울’은 디모데 전서 1:8, 9에서 이 점을 어떻게 강조합니까? (ㄷ) 어떻게 예수께서는 의로운 사람에게 살인, 절도 등을 금하는 법이 필요하지 않다는 사실의 본이었읍니까?
15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천년 통치중에, 사람은 죄있는 경향의 짐을 점점 벗을 것입니다. 그는 점점 더 의로운 일을 행할 것입니다. 다음에, 완전성에 이르게 되면, 그 때에는 의를 행하기 위한 투쟁이 없을 것입니다. 의를 행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입니다. 사람은 도적질하고 부도덕을 행하고 다른 사람들을 미워하거나 중상하려는 경향이 없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일들을 법으로 금한 ‘모세’의 율법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사람이 율법을 법있게 쓰면 율법은 선한 것인줄 우리는 아노라. 알 것은 이것이니 법은 옳은 사람을 위하여 세운 것이 아니요 오직 불법한 자와 복종치 아니하는 자며 경건치 아니한 자와 죄인[을 위함이니라.]” (디모데 전 1:8, 9) 완전한 사람에게는 이러한 악한 일을 하지 말라고 경고하는 법이 필요치 않습니다. 예수께서 지상에 계셨을 때에 그분이 의를 행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읍니다. 그분은 ‘의를 사랑하고 불법을 미워’하셨읍니다. (히브리 1:9) 그분은 선을 행하고 악을 배척하는 즉각적이고 마음에서 우러나는 반응을 보이셨읍니다. ‘사단’이 그분을 유혹한 일과 ‘베드로’가 하나님께서 예수 앞에 두신 일을 예수께서 피하도록 헛되이 권한 일에 대한 기록을 고려하여 보십시오.—마태 4:1-11; 16:21-23.
부활되는 사람들을 맞이함
16. (ㄱ) 부활되는 사람들을 자신들과 그들의 친구들이 알아 볼 것입니까? (ㄴ) 사람을 지상에 부활시키는 하나님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ㄷ) 부활되는 사람이 과거의 행위에 따라 심판을 받지 않지만, 그러한 과거의 행위는 부활 후의 생애에 영향을 줄 것입니까?
16 부활되는 사람들에 대하여 고찰하여 봅시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을 그의 전체 생활 방식, 성품, 기억에 있어서 이전과 정확히 같은 사람으로 “재창조”하실 것입니다. 부활되는 사람은 자신이 동일인임을 분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그의 이전의 친구들은 그를 그의 외모와 특징을 보고 알아 볼 것입니다. 그때에 그는 사망에 의해 중단되었던 생명을 다시 누릴 것이며 그가 이전에 나타냈던 동일한 동기, 경향 및 특성을 지닐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과거의 죄와 과오는 그에게 불리한 혐의로 문제시 되지 않을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왜냐 하면 그를 지상에 부활시키는 하나님의 목적은 그가 그리스도의 희생의 혜택으로 죄에서 해방될 기회를 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과거에 악한 일을 행하였다면 그것은 그의 성품에 영향을 줄 것이며 그 결과 생기는 나쁜 특성은 극복해야 할 것입니다. 그의 과거의 행로가 불의하였을수록, 그는 더 많은 변화를 해야 할 것입니다. 일부 사람들은 변화하기 위하여 그 기회를 이용하지 않을지 모릅니다.—이사야 26:10.
17. 어떤 사람이 여러 세기 전에 사망하였다면, 본인에게는 그의 사망과 그의 부활 사이에 긴 기간이 흐른 것 같을 것입니까?
17 부활되는 사람에게는, 그가 죽어 있던 기간은 단지 순간일 것입니다. 사망은 존재를 그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서에서는 그것이 깊은 잠에 비유되어 있읍니다. (요한 11:11-14; 데살로니가 전 4:13, 14; 전도 9:5, 10) 수천년이건, 하루이건, 단지 순간과 같을 것입니다. 부활되는 사람에게, 그 경험은 현 악한 사물의 제도에서 의롭고 질서있는 새 사물의 제도로 들어가는 문을 통과하여 걷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18. (ㄱ) 부활되는 사람들은 무엇을 배워야 할 것입니까? (ㄴ) 논리적으로, 부활되는 사람들은 어떻게 ‘대화의 장벽’이 있는 전혀 낯선 세상에 부활되지 않을 것입니까?
18 물론, 여러 해 전에 죽은 사람은 부활되어 지상의 환경이 매우 달라진 것을 보고 놀랄 것입니다. “큰 무리”의 성원들은 그에게, 하나님께서 그 동안에 행하신 일 특히 그분의 아들을 속죄 희생으로 보내 주신 일에 대하여 알려 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는 또한 그리스도의 왕국 통치의 결과로 좋은 상태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가족과 친구들은 자기들의 사랑하는 사람들을 부활로 맞이할 것이라고 보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친절에 부합합니다. 그것은 성서에 기록된 부활의 경우와 같습니다. (누가 7:12-15; 8:49-56; 히브리 11:35) 그 때에, 교육 기간 후에 부활된 자들은 이제 그들보다 나중에 부활되는 사람들을 환영하고 도와 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전혀 낯선 세상에 부활되는 것이 아니라, 부활되어 따뜻한 교제를 즐길 것이며, 거기에는 ‘대화의 장벽’도 없을 것입니다. 마침내 대속된 모든 사람이 부활되기까지 이러한 과정이 계속될 것입니다. 그 때는 참으로 즐거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만유의 주”가 되시다
19. 그리스도의 천년 통치에 의하여 완전성에 이르게 되지만, 지상에 있는 사람들은 언제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입니까?
19 천년 끝에는, 죄와 그 결과인 사망의 마지막 흔적마저 없을 것입니다. (고린도 전 15:26) 그러나 그 때에 지상에 있는 모든 사람이 이처럼 완전성에 이른다는 말은 그러한 사람들이 죄를 지을 수 없다는 뜻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 하면 성서는 그러한 상태에 이르는 사람들이 ‘사단’ 마귀에 의한 최종 공격에서 충실성을 증명해야 비로소 영원한 생명을 보장받는다고 알려 주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왕국과 제사직이 완전성으로 회복시키는 일을 완성할 때, 그리스도께서는 왕국을 하나님께 반환하며 인간은 ‘아담’의 경우와 같이 하나님 앞에 서게 됩니다. 이제 시초와 같은 상태로 회복되며, 각 사람의 최종적이고 영원한 장래는 하나님께서만이 결정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단’과 그의 악귀 무리에 의한 이 공격을 허락하십니다.
20. 천년 끝에 지상의 완전한 거민들에게 어떠한 시험이 있을 것입니까?
20 계시록 20:7-10은 지상의 거민들이 이 시험을 받을 때에 무슨 일이 있는지를 이렇게 묘사합니다. “천년이 차매 ‘사단’이 그 옥[천년이 시작되기 직전에 그가 들어간 무저갱]에서 놓여 나와서 땅의 사방 백성 곧 ‘곡’과 ‘마곡’을 미혹하고 모아 싸움을 붙이리니 그 수가 바다 모래[언급되지 않은, 따라서 인간이 알 수 없는 수] 같으리라. 저희가 지면에 널리 퍼져 성도들의 진과 사랑하시는 성을 두르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저희를 소멸하고 또 저희를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지우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계시 20:1-3, 비교.
21. (ㄱ) 어떠한 문제가 다시 제기될 것입니까? (ㄴ) 그 결과는 어떠할 것입니까?
21 이 예언은 그 때에 지상에 있을 사람들 중 일부가 지상의 충실한 사람들을 공격하기 위하여 집단을 만들 것임을 지적합니다. 그들은 ‘사단’과 그의 악귀들의 꾀임을 받아 그렇게 할 것입니다. 완전한 사람들이 왜 이 일을 할 것입니까? ‘아담’과 ‘하와’가 그렇게 한 것과 같이,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독립을 얻고자 시도할 것입니다. 그들은 그렇게 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고 확신합니다. 그리하여 ‘사단’은 그가 원래 제기하였던 커다란 쟁점 즉 하나님의 통치권이 의로운가 하는 문제를 둘러싼 그의 투쟁에서 승리하기 위하여 ‘최후의 공격’을 감행합니다. 그는 실패합니다. 왜냐 하면 분명히 인류 대다수를 이룰 충실한 사람들이 확고함을 유지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때에 ‘사단’과 그의 추종자들은 “불못”에 던져집니다. 이것은 “둘째 사망”이며, 그들은 거기에서 영원토록 ‘괴로움’을 받습니다. (고대에는 간수들이 “괴로움을 주는 자들”이라고 불리웠음 [마태 18:34, 흠정역]) 그들은 영원히 무존재 상태에 ‘갇힙’니다.
22. (ㄱ) 하나님께서는 최종 시험에서 충실을 유지하는 사람들에게 지상에서의 영원한 생명을 어떻게 안심하고 보장하실 수 있읍니까? (ㄴ)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이 결코 죄를 짓지 아니할 것임을 확신할 정도로 그 사람을 철저히 아실 수 있다는 것을 예를 들어 설명하십시오.
22 하나님의 통치권 혹은 주권을 옹호하여 충실히 굳게 서는 사람들은 그 때에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입니다. 그들은 ‘생명’ 즉 진정으로 보장된 생명에 이를 것입니다. (계시 20:4-6, 신세 참조)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만유의 주”가 되십니다. (고린도 전 15:28) 그러나 하나님께서 어떻게 안심하고 이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보장하실 수 있읍니까? 왜냐 하면 그분께서는 그들이 그분을 사랑하며 결코 그분으로부터 돌아서지 않을 자들이 누구인지를 온전히 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경우에 하나님의 이 능력이 나타났읍니다. 하나님께서는 매우 철저하고 완전하게 아셨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어떠한 시험에도 충실할 것임을 예언하실 수 있었읍니다. 하나님께서는 심지어 그리스도께서 혹심한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순종하여 행한 일들의 많은 세부점들을 그분의 예언자들을 통하여 미리 기록케 하셨읍니다.—이사야 53:7, 11; 시 40:7-10; 45:7.
땅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이 달성되다
23. 어떻게 인생이 즐거울 것이며 지상의 모든 사람의 복지를 위해 재능과 능력을 사용할 온전한 기회가 있을 것입니까?
23 그러므로, 시간이 걸렸을지라도, 땅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은 영광스럽게 달성될 것입니다. 지구는 웅대한 낙원이 될 것이며 하나님을 찬양하고 서로 사랑을 나타내는 사람들로 채워질 것입니다. 그러나 그 때에 지구는 너무 붐빌 것입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지구에 안락하게 살 수 있는 사람들의 수를 아시고 계심을 확신할 수 있읍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산들과 바다를 위한 공간을 충분히 확보해 두실 수 있으며 야생 동물의 서식지를 위한, 아름다움을 위한 그리고 오락을 위한 공간이 있을 것입니다. 그분은 환경을 조정하여 오늘날의 대도시에서와 같이 붐비는 느낌이 없도록 하실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인생은 즐거울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성품과 재능과 기술이 다양할 것이므로, 흥미있는 끝없는 추억이 있을 것이며 함께 누릴 끝없는 즐거움이 있을 것입니다. 여러 가지 분야의 활동이 진정하고 영속적인 목적을 가진 흥미진진한 연구, 탐구, 사업이 있게 할 것입니다. 각 사람은 공공 복지를 위하여 자기의 재능과 능력을 사용할 것이며 그렇게 하기 위하여 ‘에너지’와 시간을 사용할 것입니다.—이사야 40:29-31과 전도 5:18-20에 표현된 원칙 비교.
24. (ㄱ) 그 때에 인간은 동물과 어떠한 관계에 있을 것입니까? (ㄴ) 심각한 사고가 발생할 것입니까?
24 하나님께서 인간 남녀를 창조하셨을 때에, 그분은 인간에게 땅을 정복하고 동물들을 지배하라고 말씀하셨읍니다. (창세 1:28) 지구는 인간에게 선물로, 인간의 거처로 만들어졌읍니다. (시 115:16) 그러므로 인간은 땅을 돌보고 동물을 적절하고 인자하게 감독하는 방법을 알 것입니다. 동물들은 인간의 친구들이 될 것이며 본능적으로 인간의 지배에 순종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대 ‘이스라엘’을 ‘바벨론’의 생활에서 회복시키셨을 때에 이것을 증명하셨읍니다. (호세아 2:18) 인간은 온전한 기능을 가질 것이고 모든 감각이 예민할 것이므로, 인간은 심각한 사고를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천연 서식지에 있는 동물들을 보십시오. “음파 탐지기”를 갖추고 있는 박쥐는 암흑 속을 나르며 ‘피아노’ 선과 같이 가느다란 물체에도 실수로 부딪치는 일이 없읍니다. 새는 크고 작은 나무 가지에 완전하게 날아와 앉습니다. 새들은 그들이 살기에 온전하게 갖추어져 있으며, 그들은 삶을 즐기고 있읍니다. 더욱 강력한 논리로, 우리는 동물보다 우월한 인간이 인간의 환경 속에서 완전하게 아늑함을 느낄 것을 확신할 수 있읍니다.
25. 그 때의 인생은 왜 결코 지루하거나 단조롭지 않을 것입니까?
25 그 때에 일은 즐거울 것입니다. 식량을 얻기 위하여 인간은 ‘아담’이 범죄한 후에 들은 말과 같이 반드시 ‘얼굴에 땀을 흘리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창세 3:19) 사람들은 모든 기능을 사용하여, 건전하고 의미있는 일을 추구하는 데 전념할 것입니다. 고대 ‘이스라엘’인들이 율법에 순종하였을 때에 전영된 바와 같이 가장 가깝고 가장 친밀한 사람들과 교제할 충분한 시간이 있을 것이며, 새로운 친구를 사귈 충분한 시간을 가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온 땅에 언제나 변치 않는 친구들이 있을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은, 인간을 가장 사랑하신 여호와 하나님과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친구들과 사귀기 때문에 가능할 것입니다.—요한 15:14.
[140면 삽화]
예수께서 지상에 계셨을 때, 그분은 실제로 죽은 사람들을 생명으로 일으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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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상을 확신할 수 있다인생에는 분명히 목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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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장
우리는 상을 확신할 수 있다
1. 우리가 이 지상에 살고 있는 것에 대하여 우리는 누구에게 감사할 수 있읍니까?
생명은 하나님으로부터의 선물입니다. 하나님께서 관대함의 표시로 첫 인간 남녀를 창조하시지 않았더라면 아무도 생명을 누리지 못할 것입니다. (계시 4:11) 우리는, 죄많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의 행위를 참아 주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살아 있지 못할 것입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죄악을 감찰하실찐대 주여 누가 서리이까?” 하고 시편 필자는 기술하였읍니다.—시 130:3.
2. 생명이 값없이 받은 선물일지라도, 생명은 무엇에 달려 있읍니까?
2 생명은 참으로 값없이 받은 선물입니다. 그리고 인류가 계속 삶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디모데 전 2:3, 4) 그분은 인류에게 단지 생명만이 아니라, 목적있는 생명을 주셨읍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원수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지 않으십니다. 왜냐 하면 그들은 지상에 무질서를 초래하고 남을 해치기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느냐 하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믿음에 달려 있으며, 그것은 참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친구가 되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히브리 11:6.
3. 성서를 연구하는 주목적은 무엇입니까?
3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과의 우정을 획득하며, 이 우정은 우리에게 상이 있게 합니다. 당신이 지금과 같이 성서를 연구하는 것은 실제로 그분을 찾는 것입니다. 즉, 그분을 알고 그분을 기쁘시게 하고 그분의 친구가 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그분에 대하여 더욱 더 배워감에 따라 당신의 믿음은 더욱 강해질 것이며 더욱 굳은 기초 위에 세워질 것입니다.—베드로 후 1:5-8.
4. 만일 당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함으로써 그분을 성실히 찾고 있다면 당신은 무엇을 확신할 수 있읍니까?
4 당신은 아마 ‘나의 많은 친구들과 친지들이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목적에 대한 이러한 일들을 왜 나는 알 수 있는가?’ 하고 의아하게 생각할지 모릅니다. 당신은 당신이 알게 된 것에 대하여 참으로 기뻐할 수 있읍니다. 왜냐 하면 하나님께서는 수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당신이 그분의 목적에 대하여 아는 것을 합당하게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그분이 원하시는 사람을 이끌지만, 독단적으로 혹은 좋은 이유 없이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을 볼 수 없읍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께서 지적하신 것처럼, 하나님에 관하여 알기를 성실히 원하는 사람들에게 그분의 비밀을 알려 주십니다. (마태 13:10-15) 그리고 그분은 각 사람이 좋은 소식에 관한 진리를 이해하고 굳게 잡기에 환경상 좋은 때가 언제인지를 아십니다. (사도 8:25-36) 하나님께서 친구를 선택하는 일은 올바릅니다. 그분은 실수를 범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당신에게 열려져 있음을 확신할 수 있읍니다.—사도 13:48.
5. 하나님께서는 성실히 그분을 찾는 사람들에게 어떠한 인자한 인식을 보이십니까?
5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마음을 보십니다. 그분은 추리력을 사용하여 성실히 그분의 말씀을 연구하는 사람들을 축복하십니다. 그분은 그분께 대하여 약간의 봉사라도 하는 사람들이면 높이 평가하시고 은혜를 베푸시며 그들에게 그분을 알 수 있는 더 많은 기회를 주십니다.—마태 10:40-42.
6. 우리는 왜 하나님께서 우리가 그분을 알도록 열어 주시는 기회를 과소평가하거나 경시해서는 안됩니까?
6 그러나, 사도 ‘바울’은 이렇게 경고하였읍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고린도 후 6:1) 그것을 인식하고 더 나아가 그분과의 진정하고 영속적인 관계를 맺는 데 이르는 것은 하나님의 친절로써 그분의 은혜를 받은 그 사람이 할 일입니다. (고린도 후 6:2)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도 돌아서서 훌륭한 상을 상실하는 사람은 참으로 가련합니다!—잠언 4:5-9.
현생에서의 개인의 목적
7. (ㄱ) 우리가 지금까지 검토한 바로 볼 때, 우리는 어떠한 결론을 내릴 수 있읍니까? (ㄴ) 만일 한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는 목적을 추구한다면 무슨 일이 있을 것입니까?
7 당신은 지금까지 하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의 목적에 관하여 고려하였으므로, 당신 자신의 생활에도 역시 참으로 분명히 목적이 있다는 사실이 명백해졌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우리의 생활을 그분의 목적에 일치시키는 것입니다. 왜냐 하면 하나님의 지혜와 인도만이 우리를 바람직하고 행복한 목표에 도달하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남녀를 막론하고 좋은 의도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일에 착수하고 그 목적이 한 동안 성공할 것으로 보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지시를 무시한다면, 그것은 실패로 끝나고 맙니다. 그러한 사람은 실제로 하나님의 다른 창조물들과 조화하지 못할 것입니다.
8, 9. 목적없는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어떠한 결과가 있을 것입니까?
8 사도 ‘바울’은 젊은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 가운데서 하나님의 길을 추구하는 것을 우리의 목적으로 삼아야 할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였읍니다.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분의 아들의 희생을 통하여 온 인류를 사셨음]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디모데 후 2:20, 21.
9 그러나 이 세상에서 목적없이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은 쉽게 나쁜 영향에 희생이 되어 “인간의 간교한 꾐수나 속임수로 꾸민 교활한 교훈들의 온갖 풍조에 흔들려 이리 저리 밀려다니”게 될 것입니다. (에베소 4:14, 새번역) 그는 천히 쓸 그릇이 될 것입니다.
침례, 심각하지만 필수불가결한 단계
10. 왜 침례를 받아야 합니까?
10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배우고 안 다음, 그리고 영원히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로 그리스도를 통하여 헌신한 다음, 당신은 물에서 침례를 받을 수 있읍니다. 이 단계는 매우 심각합니다. 당신은 이것이 당신이 취하기를 원하는 길임을 확신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당신은 예수의 본을 따라 그분의 명령에 순종하고 있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추종자가 되려면 침례는 필수적입니다. (히브리 10:7; 마태 3:13-15; 28:19, 20) 인생에서의 당신의 목적이, 당신에게 하나님의 뜻과 목적이 알려짐에 따라 온전히 하나님을 섬기는 것임을 공개적으로 선포하는 것이 침례입니다. 당신 스스로 결정을 내리십시오. 당신이 침례받는 이유는 어떤 사람의 “압력”을 받기 때문이거나 단순히 다른 어떤 사람이 침례를 받기 때문이어서는 안됩니다.
11. 새로 침례받는 사람은 현재 자기가 더 많은 조언이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느껴야 합니까?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11 당신의 헌신을 상징하는 침례는 당신의 그리스도인 행로의 시작에 불과합니다. 당신이 세상에서 어떠한 교육을 받았든지 혹은 어떠한 경력을 가졌든지 간에, 당신은 성경적으로 영적 “아이”입니다. 당신이 계속 공부하고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 사람들로부터 계속 도움을 받는 것은 절대 필요합니다. (고린도 전 14:20) 당신은 그리스도인 회중과의 정기적인 교제를 필요로 합니다. ‘혼자 힘으로’ 하려 하지 마십시오.—히브리 10:24, 25.
12. ‘진리 안’에서의 오랜 연륜 자체가 장성한 그리스도인임을 의미합니까?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12 ‘진리 안’에서의 연륜은 당신의 영성의 유일한 척도가 아닙니다. 계속 성서 원칙을 연구하고 적용시키는 것이 또한 장성을 나타내는 열매를 맺는 데 필수적입니다. (히브리 5:14; 로마 12:1, 2) 사도 ‘바울’은 초기 ‘히브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러한 점들을 분명히 하였읍니다. 그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니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었도다.” 그는 그들에게 “장성으로 매진”하자고 조언하였읍니다.—히브리 5:12; 6:1, 신세.
상을 바라보는 것은 이기적이 아님
13. 상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이기적입니까? 설명하십시오.
13 예수 그리스도의 추종자로서 인생의 목적을 추구할 때 하나님께서 그분께 대한 당신의 충실성에 대하여 상주실 것을 기대하는 것은 전적으로 합당하며 이기적이 아닙니다. (골로새 3:24)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하나님임을 우리가 알기를 원하십니다. 그분은 사랑과 충성을 행동으로 보이는 사람들을 인식하거나 고려하지 않는 세상의 많은 사람들과 같지 않습니다. 그리고 인식과 충성이 없는 신, 종들에게 결코 상을 준 일이 없는 신은 숭배를 받기에 합당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충성스러우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계시며 그분의 벗들에게 가까이 하십니다. (예레미야 3:12) 당신이 잘못을 저지를지라도 기도로 용서를 간청하십시오. (요한 1서 1:9; 2:1, 2; 누가 18:1-8) 동료 그리스도인들로부터 도움을 구하십시오. (야고보 5:16-18) 만일 당신이 그분께 대한 믿음을 굳게 잡는다면, 그분은 ‘결코 우리를 버리거나 우리를 떠나지 아니’ 하실 것입니다.—히브리 13:5, 6.
14. 우리가 우리의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길지라도, 우리의 태도는 어떠해야 할 것입니까?
14 그러나, 예수께서는 우리 쪽에서 우리가 하나님께 “은총”을 베푼다고 혹은 그분을 섬기는 데 대한 보수로 생명을 번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고 말씀하셨읍니다. 그분은 자기의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너희도 명령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 뿐이라 할찌니라.” (누가 17:10)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며 우리의 노력이 그분께 무가치한 것이라고 느끼지 않으신다는 것을 압니다.
15. 충실성은 현재와 장래에 어떠한 상을 가져다 줍니까?
15 그러므로 우리가 기대할 만한 커다란 상이 있읍니다. 그 상은 우리의 상상을 훨씬 초월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충실성을 유지할 때 첫째로 현재 우리의 생활은 목적있는 더 나은 생활이 됩니다. (디모데 전 4:8) 또한, “새 땅”의 “기초”의 일부가 될 전망이 있읍니다. 땅을 낙원으로 만드는 “기초 공사”에 참여하는 것은 참으로 즐거울 것입니다! 그 뿐 아니라, 그 때에 부활받아 돌아오는 사람들을 환영하고 그들을 가르치고 돕고 훈련하는 것은 얼마나 상쾌하겠읍니까! 장래의 인생에는 훌륭한 목적이 있읍니다!
16. 현재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왜 매우 큰 특권입니까?
16 그러나 당신이 현재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놀라운 기회를 얕잡아 보지 마십시오. 왜냐 하면 이것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전체 세상 가운데서 우주 통치권의 쟁점의 하나님 편에 설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더우기, 그것은 반대를 받아가면서 그러한 사람들에게 좋은 소식을 선포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당신의 충성을 증명할 수 있는 참으로 훌륭한 방법입니다! (마태 24:14) 이렇게 할 때 가장 큰 상이 있읍니다. 지금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의 진리의 기둥과 터”인 “하나님의 집”과 협조하여 왕국의 좋은 소식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선포할 절호의 때입니다.—디모데 전 3:15.
반대를 받아도 낙심해서는 안됨
17. 왜 반대를 기대할 수 있으며, 당신은 그것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입니까?
17 당신은 하나님께서 자신과 자기의 목적에 관한 진리를 “맡겨 두신” 이 회중과 연합할 수 있읍니다. 그러나 당신이 당신의 생활에서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를 실천하고 진리를 말하고자 한다면, 반대를 직면해서도 놀라거나 낙심하지 마십시오. 사도 ‘베드로’는 이러한 말로 위안을 주었읍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베드로 전 4:12-14.
18. (ㄱ) 당신은 당신을 반대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어떻게 더욱 동정심을 배양할 수 있읍니까? (ㄴ) 당신은 당신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절대 악하다고 느껴야 할 것입니까? (ㄷ) 심지어 불쾌한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우리의 반응은 어떠해야 할 것입니까?
18 반대를 받을 때 할 수 있는 좋은 일은 당신의 이전의 상태—당신이 하나님의 목적을 알기 전에 가졌던 당신의 생활과 당신의 태도—를 돌이켜 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당신이 당신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입장을 이해하고 그들에게 동정심을 나타내도록 도와 줄 것입니다. 당신은 이전에, 하나님의 길을 알지 못하고 당신도 역시 현재 그들이 행하고 있는 그릇된 일들 중 많은 일을 행하였음을 알게 될지 모릅니다. 당신은 심지어, 하나님에 대하여 성서에 대하여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의 증인들에 대하여도 나쁜 태도를 가졌었을지도 모릅니다. (골로새 3:5-7 비교.) 당신이 그 때 가졌던 태도를 돌이켜 봄으로써, 당신은 이러한 사람들이 듣지 않는다고 하여 절대 “악”하다고 하는 생각을 피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신은 그들을 단죄하거나 그들이 가망없는 사람들이라고 단념하지 않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불쾌한 태도로 당신의 믿음에 도전할 때, 당신은 언제나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온유한 기질과 깊은 존경심으로, 신세]” 변호할 것입니다.—베드로 전 3:15.
‘지나친 의인’이 되지 말라
19. (ㄱ) 어떻게 사람이 “지나치게 의인”이 되려는 함정에 빠질 수 있읍니까? (ㄴ) 당신이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사람들보다 낫다고 느낄 것이 아니라, 당신은 무엇을 인식하고 행해야 합니까?
19 의로운 생활을 “지나치게 의인”이 되는 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어떤 유혹이 있읍니다. 그러한 사람은 “완전주의자”가 되고자 하는 경향이 있을 수 있읍니다. 그리하여 그는 다른 사람들에 대하여 비평적이고 되고, 다른 사람들을 경시하고 동료 인간들을 판단하게 되기 쉽습니다. (전도 7:16; 마태 7:1, 2) 그에게는 자기가 아직 진리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보다 약간 낫다는 생각이 자랄 수 있읍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온 인류를 위하여 돌아가셨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당신은 인류 중 한 사람이며 그분의 도움이 없다면 당신은 다른 사람들과 같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모두에 대한 동정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분은 환경으로 인해, 그리고 ‘사단’이 신으로 군림하고 있는 이 세상의 영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나쁜 생활을 하게 되었음을 알고 계십니다. 그 사실이 “어두움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우”리라는 말로 예언되었읍니다. 오늘날 실정이 그러합니다. (이사야 60:2) 그러므로 비난하고 단죄할 것이 아니라 이해하고 동정하고 돕는 것을 우리의 목표로 삼는 것이 필요합니다.—데살로니가 전 2:7, 8.
20, 21. 당신은 당신과 가까이 교제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어떠한 원칙과 행로를 보여야 할 것입니까?
20 따라서, 진리를 알게 되는 남편이나 아내는 자신을 더 나은 남편 혹은 아내가 되고자 힘써야 할 것입니다. 자녀라면 더 나은 더 순종적인 자녀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말보다 더 큰 영향력을 가질 수 있읍니다. 진리를 받아 들이는 모든 사람이 열정적이고 열심이어야 하지만, 믿지 않는 배우자, 친척 혹은 친구에게 “강요”하면 실제로 상대방은 듣는 데서 멀어지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당신이 승인하지 않는 습관이나 신념을 가지고 있다고 하여 “잔소리”를 하는 것은 금물입니다. 오히려 참을성과 보통 이상의 친절을 나타내십시오. 적의를 나타내는 사람들에게도,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여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다른 사람들이 진리를 깨닫도록 사랑으로 도우십시오. (마태 10:16; 고린도 전 9:20, 23) 당신이 아내이든, 남편이든, 혹은 자녀이든, 사도 ‘베드로’가 베드로 전서 3:1, 2에서 표현한 원칙을 따르십시오.
21 “아내된 자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하라. 이는 혹 도를 순종치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위를 봄이라.”
성실을 유지하는 행복한 사람이 되라
22. (ㄱ) 당신이 성서 원칙을 적용시키려고 노력하면 항상 문제들이 제거될 것입니까? (ㄴ) 환경이 당신에게 순조롭지 않을지라도, 당신은 어떠한 태도를 피해야 할 것입니까?
22 당신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생활하는 동안, 당신의 환경이 언제나 순조롭지는 않을 것입니다. 왜냐 하면 아직도 하나님의 새로운 사물의 제도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성서 원칙을 적용시키려는 당신의 노력은 당신의 문제를 언제나 완전히 해결 혹은 제거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노력은 당신이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며, 그러한 문제를 덜 부담스럽게 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일 당신을 괴롭히는 문제가 발생하면, 당신은 불평하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오히려 기뻐하십시오. 진리를 즐거워하십시오. ‘아담’의 죄와 “이 세상 신” ‘사단’의 영향이 원인이지, 하나님이 원인이 아님을 인식하십시오.—고린도 후 4:4.
23. 만일 하나님의 백성의 회중 내에서 나쁜 일이 발생하면, 이것은 낙심하고 기분 상하고 불평할 이유가 됩니까?
23 그러므로, 당신이 하나님의 백성들 사이에서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던 고난이나 바람직하지 않은 일에 대하여 불평할 것이 아니라, 그 기회를 이용하여 당신이 성실을 유지하신 분 즉 그리스도와 같음을 보이십시오. 마귀가 주장한 바와 같이, 모든 사람이 난관에 부딪쳤을 때 하나님을 등지는 것이 아니라 성실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함으로써 여호와의 이름을 입증하십시오.
24. (ㄱ)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면 어떻게 우리의 인생에는 만족스러운 목적이 있게 됩니까? (ㄴ) 우리는 결코 지루함이나 단조로움이 없이 인생에 계속 목적이 있을 것임을 확신할 수 있읍니까?
24 인생에는 참으로 보람있는 목적이 있읍니다!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모든 가치있는 일을 할 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선물” 즉 재능을 모두 사용하여 하나님께 영예를 돌리고 동료 인간을 돕는 일을 할 때, 삶에는 진정한 만족이 있으며, 인생에서의 우리의 위치가 분명해질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용하실 때에, 그분은 우리에게 정상적이고 생산적인 생활을 단념하고 금욕주의자가 되라거나 광신자가 되라고 결코 요구하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분은 더 나은 인생을 가능하게 해 주시며 영속적인 가치가 있는 일들을 산출하게 하십니다. 더우기, 우리는 달성할 수 있는 새롭고 흥미진진한 사업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것이며, 그리하여 인생에는 언제나 더욱 더 뜻깊은 목적이 있을 것이며, 결코 단조롭지 않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그의 그리스도인 동료들에게 이렇게 쓴 바와 같습니다. “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영광 가운데서 그의 부요하심을 따라 여러분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실 것입니다.”—빌립보 4:19, 새번역; 시 145:16; 로마 8:38,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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