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치타워 온라인 라이브러리
워치타워
온라인 라이브러리
한국어
  • 성경
  • 출판물
  • 집회
  • 파69 5/15 235-238면
  • 그리스도인 결혼식은 이치적임을 반영해야 한다

관련 동영상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동영상을 불러오지 못했습니다.

  • 그리스도인 결혼식은 이치적임을 반영해야 한다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9
  • 소제목
  • 비슷한 자료
  • 그리스도인은 이치적이다
  • 결혼 관습
  • 결혼식 날 입을 옷
  • 결혼식에 관하여
  • 결혼식 날 기쁨과 품위를 더하는 방법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2006
  • 어떤 식의 결혼식?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74
  • 여호와께 영예가 되는 결혼식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97
  • 즐거움을 가져다 주는 그리스도인 결혼식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4
더 보기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9
파69 5/15 235-238면

그리스도인 결혼식은 이치적임을 반영해야 한다

“내가 어렸을 적부터 바라오던 것이 바로 이것이에요.” 하고 결혼식을 며칠 앞둔 한 처녀는 말하였읍니다.

미국 ‘플로리다’ 주에 사는 이 신부는 결혼식 준비로 흥분에 차 있었읍니다. 이 신부는 값비싼 ‘레이스’와 진주가 달린 10‘미터’ 길이의 ‘웨딩 드레스’를 마출 계획이었읍니다. 식장에 들어갈 때에는 10인조 ‘오케스트라’가 전통적 ‘웨딩마치’를 연주하도록 마련하였읍니다. 또한 그가 계획한 신부 입장은 장관을 이룰 것입니다! 기계 장치로 인조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오를 때, 그는 구름 사이로 21층 계단을 내려와서, 도금한 비둘기장 안으로 들어가 그를 기다리는 신랑 옆에 서는 것이었읍니다.

결혼식에 뒤이어 있을 피로연에서는 ‘샴페인’과 높이 2.5‘미터’의 결혼 축하 ‘케이크’가 나오도록 계획하였고 신부가 ‘케이크’를 자르면, 그 안에 들어있던 두 마리의 ‘잉꼬’가 놓여 나와 장내를 날아 다니게 계획하였읍니다. 이러한 모든 계획에 대해 신랑이 될 사람은 어떠한 반응을 보였을까요? 25,000불짜리 호화판 결혼식의 중압감에 눌린 신랑은 식이 거행되기 아홉시간 전에 도망해 버렸읍니다!a

위에 말한 것과 같은 사치스러운 결혼식은 아마 한번도 보지 못하였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결혼식과 그에 부수되는 축하식이 수수한 것으로부터 호화판, 단순한 것으로부터 사치스러운 것, 경건한 것으로부터 불경한 것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라는 것은 대부분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말씀에 나오는 원칙에 따라 지도받으려는 그리스도인은 자기 결혼식 준비에 대해 어떻게 결정해야 합니까? 어디에 한계선을 그을 것입니까? 설상가상으로 “사회 관습 가운데 가장 깊이 전통에 뿌리박고, 가장 깊이 인습에 얽매여 있는 것이 결혼식”이라고 한 작가는 말하였읍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러한 모든 관습을 따르려고 할 것입니까, 혹은 그 일부만 따를 것입니까, 혹은 전혀 따르지 말아야 할 것입니까? 이치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 결혼식은 어떠한 것입니까?b

그리스도인은 이치적이다

참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이 종교식으로 결혼하든지 혹은 법정이나 등기소에서 민간식으로 결혼하든지, 언제나 국법의 규정을 반드시 지켜야 함을 알고 있읍니다. (누가 20:25) 여호와의 증인들은 어느 나라에 살고 있든지 이러한 사실을 인식하며, 또 그 나라의 결혼 법규를 지킵니다. 그러나 결혼식에 뒤따르는 관습상의 문제가 남아 있읍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해야 할 것입니까?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올바른 결정을 내리는데 크게 필요한 성품은 이치적인 성품입니다. 사실 그리스도인은 매사에 이치적으로 행동해야 하지만, 특히 많은 사람들이 관련되어 있고, 많은 절차가 포함되어 있는 사회 관습에 대하여 이치적으로 행동할 필요가 있읍니다. 영감받은 사도 ‘바울’은 당시 그리스도인들에게 “여러분의 이치적임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고 충고하였는데, 그들도 결혼하였고 결혼식을 가졌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빌립보 4:5, 신세) 제자 ‘야고보’도 이 점을 강조하여, 여호와로부터 난 지혜는 “이치적임”이라고 말하였읍니다.—야고보 3:17, 신세.

영적으로 장성한 그리스도인들은 성경 원칙을 적용해야 할 필요성을 인식하기 때문에 실제 행동면으로 이치적임을 표시합니다. 그들은 기다란 세칙(細則)을 일일히 들어 주지 않아도, 결혼식의 영적 부면이 사소한 절차상의 문제로 방해받는 일이 있어서는 안됨을 알고, 또한 방해받지 않도록 주의합니다.

그러나 ‘브라질’의 어느 왕국 회관에서 얼마 전에 열린 결혼식은, 신랑 신부의 경제 사정으로 볼 때에도 사치스러운 것이었을 뿐 아니라, 성서 강연을 듣는 검소한 왕국 회관이란 장소로 볼 때에도 사치스러운 결혼식이었읍니다. 그 자리에 참석한 많은 사람들은 번잡한 절차, 호사스러운 ‘웨딩 드레스’, 많은 들러리와 시종들, 기타 세세한 것들을 구경하는데 너무나 열중하였기 때문에 성경이 주는 훌륭한 충고가 든 결혼식 연설에는 별로 개의치 않았읍니다. 사실 이치적이 아닐 때, 많은 사람들은 신부와 신랑까지도 잊어버리게 됩니다.

결혼 관습

결혼 관습은 대단히 다양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그 지방의 모든 관습을 배격해야 할 것입니까? 반드시 그렇게 할 필요는 없읍니다. 취사선택할 수 있읍니다. 때때로 결혼 관습이 실용적인 것일 때가 있읍니다. 예를 들면 결혼식 날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직장에서 쉬는 휴일로 정한다든가 어떤 나라에서는 “오수”(午睡)가 지난 선선한 시간으로 정한다든가 하는 일입니다. 혹은 지방적 특색을 가진 관습들이 있을 수 있읍니다. 예를 들어, 한국 사람이 ‘레바논’ 사람이나 ‘핀란드’ 사람이나 ‘피지’ 사람들의 옷을 입고 결혼하는 일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물론 성경에 어긋나는 관습들이 일부 있으며, 그리스도인들은 그러한 관습을 배격합니다. 여러 나라에서는 신랑 신부와 참석자들에게 “행운”이 깃들라는 의미로 행하는 이상한 관습이 있읍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증인들은 운수신을 믿지 않습니다. (이사야 65:11) 그들은 또한 참관자들이 그렇게 오해할 행동도 하지 않습니다. 명백히 거짓 종교에 기초한 관습들도 있읍니다. 그러므로 결혼식을 준비하는 사람은 그가 살고 있는 지방에서 보통 행해지는 관습들을 검토하고, 지방 사람들이 그러한 관습들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를 분석해 본다면 좋을 것입니다. 만약 대부분의 지방 사람들이 거짓 종교나 “행운”과 관련된 것으로 보고 있는 관습이라면, 그리스도인은 그러한 관습을 배격할 것입니다.—고린도 후 6:14-18.

또한 이치적이 못되고 사랑의 행동이 못되는 관습들도 있읍니다. 흔히 신랑 신부에게 쌀을 던지는 것이 통례입니다. 쌀을 던지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어떤 사람들은 쌀을 던지면 악귀들이 신랑 신부에게 접근하지 못한다고 믿는다. 어떤 사람들은 쌀을 던지면 신랑 신부가 자녀를 많이 나을 수 있다고 말한다.” (「사이언스 뉴스 레터」지, 1963년 6월 8일호, 357면) 이 경우에서도 알 수 있듯이, 어떤 관습의 기원은 흔히 모호합니다. 그러나 그 기원이 여하하든지 간에, 그리스도인들이 쌀을 신랑 신부에게 던져서 주위를 더럽게 하는 일을 보통의 경우 볼 수 있읍니까? 또한 이웃을 자기 자신같이 사랑하라는 원칙을 고려해 보도록 하십시오. 그리스도인 사랑을 가진 사람이 신랑 신부를 골탕먹이려고 짓궂은 농담이나 장난을 할 것입니까? 예수께서는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고 말씀하셨읍니다.—누가 6:31; 10:27.

다음으로 결혼 반지를 주는 관습이 있읍니다. 이 관습이 생긴 기원과 그 의미에 관해서도 여러 가지 설이 있읍니다. 그러나 정설은 아직 없읍니다. 성서에는 결혼 반지에 관한 직접적 언급이 없지만 여호와의 종들이 반지를 낄 수 있음은 명백합니다. (욥 42:11, 12; 누가 15:22) 그러나 그 나라 사람들이 결혼 반지를 부부의 신의와 사랑과 헌신의 상징으로 본다면 어떠합니까? 그리스도인들은 결혼 생활에서 그러한 성품들을 배양하며, 심지어 세상의 많은 사람들도 위선적으로나마 그러한 성품들을 표시한다고 주장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결혼 반지에 어떠한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습니다. 결혼 반지는 아무 것도 보증하지 못합니다. 결혼 반지는 단순히 결혼했음을 공개적으로 표시하는 역할을 할 뿐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독일에서와 같이 오른손에 반지를 끼든지 혹은 왼손에 반지를 끼든지 결혼 반지를 통해 자기가 결혼하였음을 표시하는 것은 부당한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법적으로 결혼 반지를 요구하지 않는 곳에서라면 꼭 결혼 반지를 교환해야 한다는 법칙은 없읍니다. 그러므로 결혼할 사람들은 각자의 재정 상태와 취미에 따라 결정할 수 있읍니다.

그러므로 각자는 결혼 관습 가운데서 취사선택할 수 있읍니다. 그 때 다음과 같이 자문해 보십시오. 이 지방에서는 현재 이 관습을 무엇의 상징으로 생각하고 있는가? 남에게 해를 끼칠 것인가? 사랑의 행동인가? 이치적인가?

결혼식 날 입을 옷

결혼식이 있기 전에 그 날 무엇을 입을 것인가를 결정하지 않으면 안될 것입니다. 결혼이란 그 사람의 생애에 있어서 중요한 행사이므로 사람들은 보통 유쾌하고 매력있는 옷을 입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신랑 신부가 특정 형식의 예복이나 양복을 반드시 입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당사자는 그 지방의 ‘스타일’, 경비, 취미를 고려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성서 시대의 신랑 신부는 흔히 대단히 아름다운 옷을 입었읍니다. (시 45:13, 14; 예레미야 2:32) 심지어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도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다고 묘사되어 있읍니다. (계시 21:2) 그러므로 우아한 결혼 의상을 입는 것은 성경에 어긋나는 행동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아한 의상이 행복한 결혼식의 필수 요건은 아닙니다. 영적 의복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베드로 전 3:3, 4.

예를 들어 결혼식을 가지려는 남녀가 특별한 예복을 사기를 원하거나, 또 사정이 허락한다면, 그렇게 하는 것은 당사자들이 결정할 문제입니다. 그러나 그들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재정적 부담을 끼치는 일이라면, 그렇게 비싼 옷을 사는 것이 이치적일까요? 북구에 사는 한 그리스도인은 아름다운 ‘웨딩 드레스’를 장만하기 위해서 특별 파이오니아 봉사를 중단하고 세속 직장을 얻었읍니다. 당신은 어느 쪽이 그 신부에게 더 영속적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또한 들러리를 서도록 마련하였다면, 들러리 서는 사람들은 어떠합니까? 신부가 값진 의상을 입는다는 이유로 그들도 값비싼 옷을 사야겠다고 의무감마저 느낍니까?

복장 문제는 여러 가지 다른 방법으로 다룰 수 있읍니다. 많은 사람들은 “결혼” 의상을 사거나 빌리지만, 어떤 신부들은 절친한 친구나 친척의 의상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혹은 자기 손으로 신부복을 만들기도 합니다. 아마 그렇게 만들어 두면, 나중에 다른 때에 사용할 수도 있읍니다.—잠언 31:13, 22.

결혼할 신랑 신부가 평소 입던 옷 중에서 가장 좋은 옷을 골라서, 결혼식을 위해 단정하고 깨끗하게 하여 입는 것도 무방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파이오니아 봉사를 시작하거나 혹은 계속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돈을 절약하기 위해서 그렇게 합니다. 혹은 어떤 사람들은 집안 사정이 넉넉하여 호사한 결혼식을 가질 여유가 있기는 하지만,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때의 긴급성을 알고 있기 때문에 “조용한 결혼식”을 가지기를 원합니다.—베드로 후 3:12.

호의를 가진 친지들이 결혼식 준비를 하는데 여러 가지 제안을 하기도 하고, 또 어떤 제안들은 경험에 기초한 것이기 때문에 유익하기도 하지만 신랑 신부는 그들의 취미와 그들의 장래 계획을 반영하는 결혼식을 가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만약 신랑 신부 사이에 사소한 의견차이가 생긴다면 사랑의 방법으로 해결하도록 할 것입니다. 모두는 하나님께서 가족 안에 마련해 주신 머리를 인정하고, 결혼식을 올린 후에도 그렇게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의견 차이가 생겼다면, 그것은 그들이 사랑으로 협조하고 경건한 원칙에 따라 행동할 능력을 보이는 하나의 기회가 될 것입니다.—에베소 5:22-33.

‘그러나 흰 ‘드레스’를 입고, 면사포를 쓰는 것은 어떠합니까?’ 하고 질문할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다른 관습의 경우와 같이, 흰 ‘드레스’와 면사포의 의미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설이 있읍니다. 독일에서 어떤 사람들은 흰 ‘드레스’는 처녀성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다른 독일 사람들은 흰 ‘드레스’는 악령이 신부를 알아보지 못하게 만든다고 믿고 있읍니다. 일본의 어떤 사람들은 흰 ‘드레스’는 애곡의 상징이라고 생각합니다. 신부가 자기 부모에 대하여는 ‘죽고’ 남편과 백년해로할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흰 ‘드레스’를 단순히 하나의 관습으로 보며 거기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 신부는 흰 ‘드레스’를 반드시 입어야 한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으며, 또한 절대 입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할 필요도 없읍니다.

면사포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은 여자가 자기 신랑될 사람 앞에서 머리덮개를 쓰는 것을 반대하지 않습니다. (창세 24:63-67) 그러므로 신부가 아름다운 신부복의 일부로서 면사포를 쓰는 데는 아무런 이의가 있을 수 없읍니다. 그러나 그 지방 사람들이 신부 면사포에 거짓 종교나 미신에 기초한 의미를 강력히 부여하고 있다면, 신랑 신부는 그러한 감정을 고려해야 합니다.

결혼식 날 입을 옷에 관해서는 이 이상 더 부가할 필요가 없는 것 같습니다. 기억할 요점은 결혼식 날 입을 옷이 호사한 것이든지 단순한 것이든 간에 그 옷이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옷으로 인하여 실족하거나 실망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고린도 전 8:13) 무슨 옷을 입었는가는 곧 기억에서 사라지지만, 이치적인 그리스도인 결혼식의 행복감은 남편과 아내가 성경 원칙을 적용하는 동안 계속될 것입니다.

결혼식에 관하여

결혼식의 영적 부면을 강조하는 이러한 장성된 견해는 식 그 자체에 특히 적용됩니다. 반드시 이러저러하게 해야 한다든가, 국가법이 요구하는 이상의 무엇을 해야 한다든가 하는 특별한 절차는 없읍니다. 그러므로 세세한 절차는 당사자가 계획할 수 있읍니다. 그러한 세세한 절차 가운데는 신랑 신부가 어떤 방법으로 입장할 것인가, 어떤 사람이 신부를 인도해 올 것인가, 들러리가 설 것인가, 다른 사람들이 식에 참여할 것인가, 기타 사소한 절차상의 문제들이 있읍니다. (시 45:14; 요한 3:29) 만약 그러한 절차 중 어떠한 것이든지 식에 첨가되어 그 즐거움을 깨트릴 위험이 있다면, 그러한 절차를 포함시킬 이유가 어디 있겠읍니까?

그리스도인 신랑 신부가 여호와의 증인의 왕국회관에서 결혼식을 할 계획이라면, 사전에 회관을 책임맡고 있는 전도인들의 승락을 받아야 합니다. 이 장성한 사람들은 결혼식을 자기 생각대로 주관할 의사는 추호도 없읍니다. 단지 그들은 왕국회관에서 하는 일들이 그곳에서 열리는 집회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혹은 그 회중이나 그 지방의 사람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보살필 뿐입니다. 그들은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가를 분간할 줄 알게 되고 ··· 순결하고 흠없이” 되라는 충고를 명심합니다.—빌립보 1:10, 새번역; 시 133:1.

그러나 그리스도인 신랑 신부는 그 동일한 성서 원칙을 적용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방해되는 일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신랑과 신부는 결혼식 시간을 정하고 그 시간을 지킬려고 노력함으로써 참석한 사람들에게 원칙에 입각한 사랑과 사려를 표시할 수 있읍니다. 예수께서 열 처녀의 비유(마태 25:10-12)에서 칭찬하신 이 시간을 잘 지키는 습관은 그리스도인의 결혼식과 세상의 많은 결혼식과를 구별지워 줄 것입니다. 세상의 많은 결혼식에서는 참석자들을 무시하고 여성을 우상화하는 일이 있는데 흔히 신부가 일부러 늦게 입장하는 경우가 그러한 좋은 예입니다.

만약 신랑 신부의 친척 중 신자가 아닌 사람이 처음으로 왕국회관에 참석하였다면, 아마 그러한 차이점을 보고 감명을 받을지 모릅니다. 그들은 또한 음악이 사용되는 경우에는 여호와의 증인들의 노래책에서 택한 성경 주제에 기초한 음악이며, 세상 음악이 포함된 ‘웨딩 마치’와는 다르다는 점을 주목할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의 영감받은 말씀에 기초한 결혼식 주례 연설은 그들에게 큰 감명을 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여러 가지 생활 부면에 있어서 세상과 다르게 하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결혼식 절차를 논한 결혼 백과 같은 책을 반드시 읽어 보아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끼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러한 책에 나오는 세속 결혼식은 흔히 사치스럽고 위세를 보이려는 것이며, 그 결과로 관련된 사람들이 식이 끝나면 지치고 실망하고 빚에 시달리게 만드는 것임을 인식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결혼식에서는 물질적인 것과 절차에 지나친 시간과 주의를 바치기 때문에 결혼식이 지닌 깊은 영적 의미는 상실 당합니다. 그러나 결혼식을 준비하는 장성한 그리스도인들은 어느 곳에 살고 있든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여 얻는 균형과 이치적임을 표시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그들은 중용을 지키고 사려깊고 사랑에 입각하여 행동합니다. 그들은 이러한 방법으로 그들이 “이치적임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합니다.—빌립보 4:5, 신세.

[각주]

a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지 1966년 8월 13일자 29면.

b 결혼 잔치와 같은 결혼에 관련된 사회 관습은 후에 따로 고려하기로 한다.

    한국어 워치 타워 출판물 (1958-2025)
    로그아웃
    로그인
    • 한국어
    • 공유
    • 설정
    • Copyright © 2025 Watch Tower Bible and Tract Society of Pennsylvania
    • 이용 약관
    • 개인 정보 보호 정책
    • 개인 정보 설정
    • JW.ORG
    • 로그인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