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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코올’ 남용—대가가 비싼 문제깨어라!—1982 | 10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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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코올’ 남용—대가가 비싼 문제
‘알코올’ 남용은 당신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대가가 비싼 문제이다. “나에게요? 나는 ‘알코올’ 중독자가 아닌데요!” 하고 당신은 반문할 것이다. 그러나 놀라웁게 들리겠지만, 당신이 술을 전혀 마시지 않는다 하더라도 당신은 어떤 면으로인가 ‘알코올’ 남용으로 영향을 받고 있다. 모든 사람이 영향을 받고 있다. 어떻게?
미 국립 ‘알코올’ 중독 협의회(NCA)에 의하면, 미국에는 약 천만명의 ‘알코올’ 중독자가 있다고 한다. 한명의 ‘알코올’ 중독자가 네 명의 다른 사람—그의 직계 가족—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할 때, 이것은 약 사천만명의 또 다른 사람들이 ‘알코올’ 중독으로 직접 해로운 영향을 받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것이 단 한 나라의 일임을 기억하라.
그러면 어떤 면으로 영향을 받는가? 만일 당신이 사랑하는 어떤 사람이 너무 심한 음주를 한다면, 두려움, 부끄러움, 실망 및 심지어 분노가 아마 당신에게 생소한 일이 아닐 것이다. NCA가 발표한 통계는 이혼과 청소년 범죄 사건의 적어도 30‘퍼센트’, 가정에서의 다툼이나 폭행의 55‘퍼센트’ 그리고 보고된 자녀 학대 사건의 90‘퍼센트’의 한 가지 요인이 ‘알코올’ 남용임을 밝혀 준다. 참으로 비싼 대가를 치르고 있다!
다음에, 신체적으로도 비싼 대가를 치른다. 장기적인 폭음은 간 경변증, 심장병, 위염, 궤양, 췌장염 및 여러 형태의 암에 걸릴 위험을 포함하여 많은 만성적인 건강 문제들과 관련되어 있다. 따라서, 폭음을 하는 사람은 신체적으로 매우 비싼 대가를 치르는 것이다!
그러나 술을 마시지 않는다 하더라도 당신은 영향을 받는다. 당신은 ‘알코올’ 남용 때문에 의복, 자동차—사실상 모든 제품—를 위해 더 많은 돈을 지출한다. 미국 정부는 ‘알코올’ 남용이 공장에서 생산율을 떨어뜨려 매년 200억 ‘달러’(미화)의 손해를 보는 것으로 추정한다. 그 결과 상품의 가격은 더 오르고 질은 더 나빠진다.
‘알코올’ 남용은 특히 그 음주자가 다른 사람들의 생명에 영향을 미치는 직업을 가졌을 때 비싼 대가를 치른다. 예를 들어, 대중 교통 운전 기사, 비행기 조종사 혹은 외과의들 가운데 음주로 인해 야기되는 판단 착오는 참으로 엄청난 대가를 치르게 된다.
당신은 차를 운전하는가? NCA에 따르면, 치사적인 교통 사고(사망자들 가운데는 무구한 희생자들이 있음) 전체의 50‘퍼센트’가 ‘알코올’ 남용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술취한 운전사의 차와 부딪히는 일을 면한다 하더라도, 자동차 보험료를 지불할 때 당신은 그의 음주 영향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에게 ‘알코올’이 즐거움과 기분 전환의 근원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알맞게 마실 때 ‘알코올’은 사람들에게 거의 혹은 전혀 나쁜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 같다. 그러므로 이렇게 묻는 것은 아주 당연하다. ‘알코올’ 중독이란 정확히 무엇인가? 어떻게 그것을 식별할 수 있는가? 어떤 조처를 취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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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코올’ 중독—사실과 잘못된 생각깨어라!—1982 | 10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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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코올’ 중독—사실과 잘못된 생각
몇번이 전형적인 ‘알코올’ 중독자인가?
1 2 3 4 (출판물의 삽화를 참조하십시오)
4번을 골랐는가? 아마 ‘알코올’ 중독에 관한 가장 잘못된 생각은 빈민가에 쓰러져 있는 사람이 전형적인 ‘알코올’ 중독자라는 생각일 것이다. 사실상 대 도시의 방치된 지역에서 발견되는 ‘알코올’ 중독자는 전체 중독자의 5‘퍼센트’도 안 된다. 나머지 중독자들은? 가정에서 자녀들을 돌보고 있고, 환자들을 돌보는 일을 하고 있고, 사무실에서 사무를 보고 있다.
주요 건강 문제들 중에서, 아마 ‘알코올’ 중독보다 잘못된 생각 속에 더 가리워져 있는 것은 없을 것이다. 그러면 사실들은 어떠한가? ‘알코올’ 중독을 치료하려면 사실들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알코올’ 중독은 성공적으로 치료될 수 있다.
● 어떤 사람이 ‘알코올’ 중독자인가?
미 국립 ‘알코올’ 중독 협의회의 창설자이자 고문인 ‘마아티 만’에 의하면, “‘알코올’ 중독자란 음주가 생활의 어떤 부면에서든지 지속적이고 점증하는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이다.” 중요한 단어는 “지속적”이라는 말이다. 예를 들어, 음주가 가정 생활이나 사회 생활, 사업 혹은 직장 생활에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면, 정상적인 음주가는, 비록 단호한 결심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음주량을 줄일 수 있다. 그러나 ‘알코올’ 중독자의 경우는 다르다. 그는a 양을 줄이려고 노력할지 모른다. 그러나 아무리 단호한 결심을 한다 하더라도 일단 술을 마시기 시작하면, 그는 그것을 제어할 수 없게 되며, 그리하여 음주는 그의 생활에 “지속적인”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 왜 ‘알코올’ 중독을 “병”이라고 부르는가?
일반적인 의미로, 병은 “신체의 어떤 기관이나 부분의 기능 혹은 구조에 이상이 생겨, 특정한 알아 볼 수 있는 증상을 나타내는 것”으로 정의된다. ‘알코올’ 중독은 그러한 정의에 부합되는가? 미국 의학 협회와 세계 보건 기구 그리고 다른 수많은 의료 및 정부 기관들에 의하면, ‘알코올’ 중독은 그 정의에 부합된다.
어떻게 ‘알코올’ 중독자의 신체 “기능에 ··· 이상”이 생기는가? 우선, ‘알코올’은 다른 사람들에게 주는 영향과는 다른 방법의 영향을 그에게 준다. 초기 단계에 그는 종종 취하지 않고 굉장한 양의 ‘알코올’을 마신다. 그 다음에는 또한, 비록 의식이 온전히 있었고 다른 사람들에게 정상으로 보였더라도, 기억을 상실하여 자기가 음주중에 한 말이나 한 일을 후에 기억하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앞으로 살펴 보겠지만, 알아볼 수 있는 증상들도 있다.
‘알코올’ 중독은 엄밀히 말해 신체적인 문제가 아니다. ‘알코올’ 중독자는 정신적으로, 감정적으로 그리고 또한 영적으로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에, 그를 도우려고 노력할 때 이러한 요인들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 ‘알코올’ 중독에 더 쉽게 걸릴 소질이 있는 사람들이 있는가?
그럴지도 모른다는 증거가 늘어나고 있다. 예를 들어, 1970년과 1976년 사이에 ‘덴마아크’에서 행한 한 연구는 ‘알코올’ 중독자의 아들이 ‘알코올’ 중독자가 될 가능성은 ‘알코올’ 중독자가 아닌 사람의 아들의 네배임을 밝혀 주었다. 그리고 이 점은 ‘알코올’ 중독자가 아닌 양부모 밑에서 자란 자녀들이라 하더라도 마찬가지였다.
‘시애틀’에 있는 ‘워싱톤’ 대학교에서 행한 또 다른 연구는 ‘알코올’ 중독의 유래가 있는 가정의 청소년들이 ‘알코올’을 섭취하면 혈액 내의 ‘아세트알데히드’b가 고 수준이 된다는 점이 밝혀졌다. 「사이언스 다이제스트」지는 “증가된 ‘아세트알데히드’가 취한 기분과 ‘알코올’이 가져오는 쾌감을 높이고, 그로 인해 술을 더 많이 마시고 싶게 하는 강한 자극제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러한 발견들은 결정적인 것이 아니며, ‘알코올’ 중독에 더 쉽게 걸릴 소질이 어느 정도 유전적일 수 있음을 보여줄 뿐이다.
● ‘알코올’ 중독은 치료될 수 있는가?
만일 “치료”된다는 것이 정상적인 제어된 음주로 되돌아 가는 능력이란 뜻이라면, 그런 일은 거의 없기 때문에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안 된다’고 대답할 것이다. ‘뉴우요오크’ 주 ‘알코올’ 중독 및 ‘알코올’ 남용국 국장 ‘쉐일러 브룸’ 박사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환자들에게 그들이 ‘롱 아일랜드 사운드’의 이쪽 편에 있는데 상어들이 몰려드는 바다를 지나 ‘코네티컷’ 주로 헤엄쳐 가라는 요청을 받았다고 생각해 보라고 말합니다. 수백명의 수영자 중에 해 낼 사람은 한 두명이나 될지 모르는데—당신같으면 뛰어들겠읍니까?”
그러나, ‘알코올’ 중독은 제어할 수 있으며, 대부분의 상담가들과 회복된 ‘알코올’ 중독자들은 제어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은 완전 금주뿐이라는 데 동의한다.
● 그것은 만취와 똑같은 것인가?
아니다. 만취는 지나치게 마신 결과 즉 일시적으로 신체 및 정신 기능에 대한 제어력을 상실한 것을 말한다. 그러나 술취한 모든 사람이 ‘알코올’ 중독자는 아니다. 그리고 모든 ‘알코올’ 중독자가 술취하는 것도 아니다. 예를 들어, 회복중의 어떤 ‘알코올’ 중독자가 전혀 술을 마시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알코올’ 중독자이며, 만일 술을 마시기 시작한다면, 그는 결국 제어력을 잃을 것이다.
성서는 폭음과 술취하는 것을 도덕적으로 옳지 않은 일로 정죄한다. (잠언 23:20, 21; 고린도 전 5:11-13; 6:9, 10) 그러나 ‘알코올’ 중독자가 반드시 술취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술을 마시지 않음으로써 맑은 정신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만일 자신의 상태를 잘 알면서도 계속 술을 마시기로 결정하고 계속 취한다면 그에게는 술취함이라는 도덕적인 문제가 있다.
● 그것은 단지 의지력의 문제인가?
“대부분의 ‘알코올’ 중독자들은 기대 이상의 의지력을 가지고 있다.”고 ‘마아티 만’은 대답한다. “다른 사람 같았으면 침대에 누워 의사를 부르고 싶은 기분일 때에도 그들은 일어나서 일하러 나갈 것이다.” 만일 ‘알코올’ 중독자들이 단순히 의지력이 부족한 것이라면, 의심의 여지 없이 그들 대부분이 빈민가에 쓰러져 있을 것이다.
아마 ‘알코올’ 중독자들이 의지가 약할 것이라는 잘못된 생각은 그들이 음주중에—제어력을 잃었을 때 발생하는 일에서 유래한 것 같다. 그러므로 ‘알코올’ 중독자들은 첫 잔을 마시지 않기 위해 자기의 의지력을 사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
● 신경 안정제는 어떠한가?
아침에 일어날 때 떨리기는 하지만 술을 안 마시려고 하는 ‘알코올’ 중독자는 신경 안정제를 찾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가 깨닫지 못할 수 있는 것은 그의 신체에는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알코올’이 진정시키는 기분 전환제인 것처럼, 신경 안정제, 수면제, 진통제, 심지어 (항 ‘히스타민’이 들어 있는) 감기약까지도 기분 전환제들이다. 기분을 전환시키는 물질은 어느 것이든 ‘알코올’ 중독자에게 위험할 수 있다.
그러므로, 회복을 진정시키기 위하여, 많은 전문가들은 ‘알코올’ 중독자들이 ‘알코올’뿐 아니라 기분을 전환시키는 모든 물질들을 삼가할 것을 추천하였다.
● ‘알코올’ 중독자의 음주는 정상적인 음주와 어떻게 다른가?
‘알코올’ 중독자의 음주는 정상이라고 인정받을 수 없는 정도에까지 이른다. 예를 들어, 만일 어떤 사람이 반침에 몰래 들어가 우유를 마시기 시작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분명히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결론을 내릴 것이다. 그것은 정상이 아니다. 그러나 ‘알코올’ 중독자들은 매우 자주 몰래 술을 마시며, 나중에 마시기 위해 병을 숨기기까지 한다. 정상적인 음주가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러나, ‘알코올’ 중독자의 음주와 정상적인 음주 사이의 가장 큰 차이점은 제어력이다. 사교를 위해 술을 마시는 사람은, 폭음가라 하더라도, 언제나 자기가 마시는 시기와 양을 결정할 수 있다. ‘알코올’ 중독자는 그렇게 하질 못한다. 그는 언제나 자기가 예정했던 양 이상을 마신다.
다른 사람들이 당신의 음주에 관해 점점 염려하게 되었는가? 자신에게 정직해야 한다. ‘나는 언제든지 원할 때 중단할 수 있다’고 말할지 모른다. 그리고 아마 그 말이 옳을지 모른다. 그러나 “금주”는 아무런 시험이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가장 심각한 ‘알코올’ 중독자까지도 때때로 잠시동안 그렇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우기, 금주 기간 중에 어떻게 느끼는가—침착하고 긴장이 풀리는가, 아니면 신경질적이고 긴장하는가? 기억하라, 중요한 것은 제어력이다. 그렇기 때문에 「익명의 ‘알코올’ 중독자들」(Alcoholics Anonymous)이라는 책은 이렇게 말한다. “만일 음주를 할 때 당신에게 마시는 양에 대한 제어력이 거의 없다면, 당신은 아마 ‘알코올’ 중독자일 것이다.”
● 왜 ‘알코올’ 중독자는 자기에게 일어나는 일을 깨닫지 못하는가?
‘알코올’ 중독자는 상태가 악화됨에 따라, 자기 가치 의식이 약화되고 그 대신 불안, 죄의식, 부끄러움 및 후회가 늘어난다. 자신의 처지에 대처하기 위하여, 그는 무의식중에 몇 가지 변명을 사용한다.
정당화: 그는 자기의 음주와 그 결과에 대해 다음과 같은 갖가지 구실을 댄다. “불안해서요.” “우울해서요.” “빈 속에 마셨거든요.”
투사(投射):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자기의 괴로운 감정이 있는 것으로 여긴다. 이제 그는 다른 사람들을 “미워하는”, “원한을 품은”, “비열한”, “나를 적대하는” 사람들로 본다.
억압(抑壓): 그는 실제로 음주로 인한 고통스러운 일들이 없었다고 확신하면서 그 일들을 무시하게 된다. 따라서 지난 밤의 주정으로 속이 뒤집힌 아내에게 그는 몸을 구부리고 ‘오늘 아침 기분 나쁜 일이 있오?’ 하고 물을지 모른다. 아내는 자기의 귀를 믿을 수 없을 것이다!
유쾌한 기억: 때때로, 음주로 인해 생긴 일에 대한 그의 기억은 유쾌하거나 행복하다. 그래서 그는 ‘응, 어제 밤에 몇잔 했지, 그렇지만 딱 좋았어.’ 하고 말할지 모르지만—실제로 그는 ‘딱 좋’지가 않았다. ‘알코올’이 그의 지각력을 왜곡한 것이다.
이러한 변명들은 사실을 부인하는 벽을 쌓아 올려 ‘알코올’ 중독자가 자기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을 보지 못하게 한다. 그는 도움을 받지 않으면 안 된다.c
● 어떤 종류의 도움이 필요한가?
‘음주를 중단하도록 돕는 것이 그에게 필요한 전부’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에게는 더 많은 도움이 필요하다.
신체적으로: 그는 술로부터 안전하게 떨어져(“해독되어”)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목적으로, ‘알코올’과 관련된 건강 문제들도 치료될 수 있도록 입원시킬 필요가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신체적으로 회복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만약 그것으로 그친다면, 상태가 좋아지자마자 그는 ‘이제는 조절할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정신적으로: 그는 ‘알코올’ 중독에 관한 사실들을 배우고, 자기가 금주를 해야할 논리적인 이유들을 알고 받아들여야 한다. 이러한 지식은 그가 일생 동안 절주를 고수하기 위해 싸우도록 도울 것이다.
사회적으로: 그는 자신 및 다른 사람들과 편안하게 사는 법을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감정적으로: 그는 자신 속의 불안과 다른 부정적인 감정을 극복하는 법을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그는 ‘알코올’ 없이 행복하게 지내는 법을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영적으로: 절망과 두려움에 빠져있기 때문에, 그에게는 희망과 확신 및 기대를 불어 넣어줄 도움이 필요하다.
● 어디에서 그러한 도움을 발견할 수 있는가?
여러 가지 이용 가능한 치료 방법이 있지만, 꼭 필요한 것으로 두드러진 한 가지는—아마 중독되었다가 회복한 경험이 있는 누군가가 통찰력이 있어 동정심을 가지고 대화를 나누어 주는 것일 것이다. 이것은 희망을 불어넣어 줄 수 있다. 왜냐하면 ‘알코올’ 중독자가 자기도 회복할 수 있음을 알게 하기 때문이다.
많은 ‘알코올’ 중독자들이 ‘알코올’ 중독 재활 ‘센터’의 도움을 받아왔다. 그러한 ‘센터’에는 의사, 정신병 학자, 심리학자 및 훈련받은 사회 사업가들을 포함하여 여러 훈련 분야에서 끌어들인 요원들이 있다. 여기에서 환자들은 대개 철저한 교육 과정을 거쳐 그가 받아들일 수 있는 방법으로 ‘알코올’ 중독에 관하여 배우게 된다.
그 밖에 또한 훈련받은 상담가들이 지도하는 집단 요법 과정들이 환자들에게 그의 문제에 대한 실용적인 지원을 제공하며 마음을 털어놓고 무의식중에 그가 사용해 온 변명들을 깨닫도록 돕는다. 자기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을 고칠 수는 없기 때문에, 그러한 통찰력은 그가 회복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사용된 요법이 무엇이든, 근본 목표는 환자가 ‘알코올’에 의존하지 않고 감정적으로 극복하는 법을 배우도록 돕는 것이다.
그러나, 일단 그러한 치료를 받고 나면 그 회복중의 ‘알코올’ 중독자는 이전에 그로 하여금 술을 마시게 했던 현실에 직면하게 될 수 있다. 자신이나 가정 문제 혹은 불안한 직장 상태에 관한 부정적인 감정들이 좀처럼 가시지 않을 수 있다. 분명히, 그에게는 극복하도록 돕는 계속적인 도움이 필요하다. 그러한 도움을 받기 위해 어떤 사람들은 헌신적으로 서로를 돕는, 회복중의 ‘알코올’ 중독자들로 이루어진 지방 지원자 단체들을 찾아간다.d
그러나, 이용 가능한 또다른 도움의 근원이 있는데, 그것은 회복중의 ‘알코올’ 중독자가 매일의 투쟁에서 생활 문제를 극복하고 절주를 고수하도록 “정상을 초월한” 힘을 줄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가?—고린도 후 4:7, 8, 신세.
회복중의 한 ‘알코올’ 중독자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성공한 것은 여호와께 대한 나의 믿음과 기도의 힘 그리고 그리스도인 형제들이 나에게 베푼 도움 때문이지요. 그런 것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쯤 ‘알코올’로 인해 시궁에 빠져있거나 죽었을 거예요.” 그렇다, ‘여호와의 증인’과 성서를 연구하고 그리스도인 집회에 참석함으로써 이 남자는 하나님께 대한 진정한 믿음과 사랑하는 동료 그리스도인 벗들을 얻었다. 그러나 어떤 방법으로 이들은 도움이 되어 줄 수 있는가?
하나님의 말씀의 연구는 회복중의 ‘알코올’ 중독자로 하여금 자기의 사고 방식을 바꾸도록 도움을 줄 수 있다. (로마 12:1, 2) 죄의식과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일은 여호와께서 자비롭고 용서하시는 하나님임을 알게 됨에 따라 완화된다. (출애굽 34:6, 7) 또한, 성서 원칙은 그에게 가정 생활을 개선시키는 방법과 어떤 고용주라도 기뻐할 만한 일군이 되는 방법 및 지나친 염려와 걱정을 야기시키는 생각과 행동을 피하는 방법을 알려 준다.—에베소 5:22-33; 잠언 10:4; 13:4; 마태 6:25-34.
여호와 하나님과의 신뢰하는 관계를 세워나감에 따라, 그는 자신의 염려와 짐을 확신을 가지고 기도로 여호와께 맡길 줄 알게 된다. 사랑하는 그리스도인 친구들의 도움으로, 그는 자기의 감정과 필요를 분명히 알릴 줄 알게 되며 두려움 없이 다른 사람들에게 친밀해질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러한 관계는 회복중의 ‘알코올’ 중독자에게 매우 필요한 안전감과 자기 가치 의식을 불어넣어 준다.—시 55:22; 65:2; 잠언 17:17; 18:24.
그러므로, 당신이나 다른 사람들이 당신의 음주에 대해 염려하게 되었는가? 음주가 당신의 생활의 한가지 혹은 그 이상의 부면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가? 그렇다면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렇게 많은 고통과 근심을 일으킬 수 있는 일에 매여있을 이유가 무엇인가? (잘못된 생각이 아니라) 사실을 배워 알고 그 사실과 일치하게 행동함으로써, ‘알코올’ 중독에서 회복되어 행복하고 생산적인 생활을 영위하는 것은 참으로 가능하다.
[각주]
a 물론, ‘알코올’ 중독자는 남자일 수도 있고 여자일 수도 있다.
b ‘아세트알데히드’는 신체가 ‘알코올’을 분해할 때 생성되는 물질이다.
c 가족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토론은 앞으로 이 간행물에 실릴 것이다.
d 물론, 성서 원칙에 따라 살기를 바라는 사람은 도움을 택하는 데 있어서 매우 선택적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는 어떤 면으로든 그로 하여금 그리스도인 원칙을 타협하게 하거나 그렇게 하도록 권장하는 치료 방법이나 조직 활동에 관련되기를 원치 않을 것이다.
[7면 삽입]
“정상을 초월한” 힘을 줄 수 있는 이용 가능한 도움의 근원이 있다
[8면 삽입]
음주가 생활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가? 그렇게 많은 고통과 근심을 일으킬 수 있는 일에 매여있을 이유가 무엇인가?
[5면 네모]
‘알코올’ 중독의 증상
(여기에 있는 것들은 ‘알코올’ 중독 증상의 일부이며 이러한 증상의 시작은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하라.)
초기에 일어날 수 있는 증상
● 벌컥벌컥 마심 (“다른 사람들은 너무 천천히 마신단 말야”)
● 몰래 숨어서 마심
● 음주 전의 음주 (“‘파아티’ 전에 한잔 합시다”)
● 관용의 증가
● 기억 상실 (“어제 밤에 어떻게 집에 왔지?”)
중기에 일어날 수 있는 증상
● 제어력을 상실하기 시작
● 문제가 있음을 부인
● 음주 방식의 변화 (“맥주로 바꾸는 게 낫겠어. ‘스카치’는 조절할 수가 없단 말야.”)
● “금주”(술을 끊기)를 시도한다
● 혼자 마심
말기에 일어날 수 있는 증상
● 제어력의 완전 상실
● 빈번하고 강렬한 주연(술잔치)의 증가
● 관용의 감소
● 비이치적인 두려움과 불안
● 섬망증
[6면 삽화]
이 여자의 신체에 차이가 있는가?
[7면 삽화]
정상적인 음주가가 이렇게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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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코올’ 중독으로부터의 회복깨어라!—1982 | 10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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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코올’ 중독으로부터의 회복
어느 남자의 이야기
전화기의 번호들이 헷갈려 보였으며 나는 간신히 집 전화 번호를 돌렸다. 조금 전에 먹은 진정제 다섯알이 그 때 최고조에 달하였다. 쓰러지지 않으려고 공중 전화기를 붙잡고 늘어지면서, 나는 “여보세요, 누구십니까?” 하는 어머니의 음성을 들었다.
“저예요” 하고 나는 있는 힘을 다해 떠듬거렸다. “오늘 밤에 집에 못 들어가요. 친구하고 있겠어요.” 간신히 한마디 하였다. 혀가 오십 ‘파운드’는 나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 안 된다!” 하고 어머니는 다그쳐 말했다. “너 또 진정제를 먹었구나! 참 한심스럽구나!”
나는 전화를 끊고 비틀거리며 차로 갔다. 나는 그 날 밤을 친구와 보내지 않았다. 대신, 나는 바닷가로 차를 몰았다. 차를 몰다가—주 고속 도로 위에서 중앙선을 넘어서서 달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였다. 내가 중앙선을 넘어 바닷가로 차를 몰 때 마주오는 차들은 나를 아슬아슬하게 지나쳤다. 나는 차를 세워놓고 다음 날까지 잠들었다.
이것은 ‘알코올’ 중독으로 내가 어떻게 거의 생명을 잃을 뻔 하였는가를 보여주는 단 한가지 사건에 불과하다. ‘그러나 진정제 복용이 ‘알코올’ 중독자가 되는 일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하고 당신은 물을 것이다. 한때 나 역시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뼈아픈 방법으로 그것을 알게 되었다.
먼저, 나의 배경을 조금 설명하겠다. 나는 십대였을 때 진정제를 복용하기 시작하였다. 나는 몰래 진정제를 훔치기 시작하였는데—어머니 주위에는 언제나 그것이 많이 있었다. 몇년 후에, 직장의 한 친구가 나에게 아주 강한 진정제인 ‘세코바르비탈’을 소개하였다. 이제 나는 똑같은 효과를 얻기 위하여 진정제를 몇 알 더 먹어야 하였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이미 나에게 ‘헤로인’과 ‘마리화나’에 관하여 경고했었다. 그러나 내가 먹고 있는 진정제는 그렇게 위험하지 않았으며—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하였다.
일년이 못되어 나는 심하게 중독되었으며, 하루에 삼십 알씩 먹었다.
나는 언제나 환각 상태에 있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a 나는 단지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 몇알의 진정제가 필요하였다. 만일 그것을 먹지 않으면, 나는 극도로 신경질적이 되어 불안하게 되고, 억제하기 어렵게 몸을 떨었다.
여러 대의 차와 충돌 사고를 일으켜 구속되자, 부모님은 치료하기 위해 나를 입원시켰다. 거기에서 나는 서서히 해독되었다. 내가 겪은 고통은 이루다 형언할 수가 없다. 환각 상태에 빠지고, 덜덜 떨며 극단적이고 비이치적으로 두려워하는 일이 있었다. 예를 들어, 여자 친구에게 전화가 없었고 내가 전화를 받을 수 없었기 때문에, 미리 약속한 시간에 나는 공중 전화기에 있는 그에게 전화하곤 하였다. 그러나 항상 그가 거기에 없을까봐 걱정하였으며—지나치게 그것을 걱정하였다.
아뭏든, 약 3주 후에 나는 퇴원하였으며, 새로 시작할 준비를 갖추었다. ‘나의 근심거리들은 이제 끝났다’고 나는 속으로 생각하였다. 사실상, 나의 근심거리들은 전혀 끝난 것이 아니었다.
나는 술을 마시기 시작하였다. 놀랍게도, 나는 바로 시초부터 취하지 않고도 많은 양의 ‘알코올’을 마실 수 있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나는 점점 더 깊은 우울증에 빠져드는 자신을 발견하였다. 나는 몹시 불안해 하는 병에 걸려 차를 몰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조차 두려워하곤 하였다. 나는 손을 덜덜 떨곤 하였으며 식은 땀을 흘리곤 하였다. 여러 날을 떨며 겁에 질려 거의 일을 하지 못하곤 하였다. 어떤 날은 전혀 일을 하지 못하였다. 나는 혼란과 과대망상에 사로잡혔고—신체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파괴되었다. 마침내, 어느 날 나는 사장에게 전화하여 일을 하러 갈 수 없다고 말하였다. “그렇게 되면 해고된다는 걸 알고 계시죠” 하고 그는 경고하였다.
“압니다. 하지만,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는 걸요. 아무래도 신경쇠약에 걸린 것 같습니다.” 나는 전화를 끊었고 몇분 후에 전화가 왔다.
“당신이 어떻게 하든 상관하지 않겠오. 하지만 회사 의료부로 내려가 보시오—지금 당장 말이요!” 하고 사장은 말하였다.
나는 그렇게 하였다. 나는 의사들에게 진정제에 대한 나의 경력과 아무래도 신경쇠약에 걸려 있는 것 같다고 설명하였다.
“‘프레드’, 당신은 신경쇠약에 걸린 게 아닙니다.” 하고 한 의사는 설명하였다. “당신은 ‘알코올’ 중독입니다.”
“그러나 그럴 리가 없어요” 하고 나는 반박하였다. “나는 하루 밤에 맥주 서너잔 밖에 마시지 않는걸요.”
“그것은 당신이 마시는 양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알코올’이 당신 개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방법을 말하는 것입니다. 당신의 전체적인 문제는 당신에게 중독성 생리 현상이 있다는 것입니다. 당신은 ‘알코올’이든 알약이든간에 어떤 종류의 약물도 사용하지 않고 사는 법을 배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당신은 약물을 사용하지 않고 행복해지는 법을 배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런 다음 그는 나를 몇달 동안 ‘알코올’ 중독 재활 ‘센터’로 보냈다. 거기에서 나는 ‘알코올’ 중독에 관해 많은 것을 배웠다. 예를 들어, ‘알코올’ 중독자인 나는 진정제는 모두 피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그런 것들이 액체 형태(‘알코올’)로든지 (신경 안정제와 같은) 알약 형태로든지 다를 바 없다. ‘알코올’ 중독자의 몸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동일하다. 그 ‘센터’에서 나는 또한 영양 공급과 ‘비타민’ 그리고 자기 징계를 하여 조직적인, 체계적인 생활을 하는 것의 가치를 배웠다.
그러나, 회복되는 실제 비결은 “당신은 약물을 사용하지 않고 행복해지는 법을 배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는 의사의 말에 들어 있었다. 당신도 알다시피, ‘알코올’ 중독자는 극도로 불안해 하며 무엇이나 다 걱정한다. 그러나 성서 연구를 통하여 나는 “약물을 사용하지 않고 행복”해지는 법을 배웠다. 나에게 이전에 성서에 대한 지식이 있었더라도, 그러나 보다 진지한 연구 결과로, 나는 여호와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그분께 친밀해져서 아버지와 아들 같은 관계가 되었다. 나는 나의 염려를 그분께 맡길 수 있게 되어 생활 문제에 대해 지나친 걱정을 하지 않게 되었다. (마태 6:34) 나는 또한 나를 가족 성원처럼 대해 주는 동료 그리스도인들과 교제하게 되었다. 나는 그들의 지속적인 사랑과 지원에 대해 깊이 감사한다.
물론, 나는 ‘알코올’과 기분 전환제를 완전히 끊는 것이 나에게 절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제는 벌써 여러 해가 되었다. 그러나 나는 참으로 만족하며 행복하다. 나에게는 나의 하나님 여호와와 나의 가족 그리고 사랑하는 그리스도인 형제 자매들이 있다. 그 이상 더 무엇을 원하겠는가?—기고.
어느 여자의 이야기
나는 사교를 위해 술을 마셨었다. 돌이켜 보면, 남편과 나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집에서는 좀처럼 ‘알코올’ 음료를 들지 않았다. 그러나 그 당시 나는 음주를 계속함에 따라 내 몸이 내성을 키워 마침내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 음주에 의존하게 되리라는 것을 거의 깨닫지 뭇하였다.
나의 음주는 점차 개성에 심한 변화를 일으켰다. 나는 호전적이고 폭력적이 되는 자신을 발견하였다. 나는 자녀들을 때리곤 하였으며, 사실상, 그렇게 하는 것은 온전히 정당하다고 생각하였다. 돌이켜 보면, 나는 실제로 자신에게 화를 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는 과대 망상과 의혹에 사로잡혔다. 방에 들어올 때 두 사람이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그들이 나를 싫어하기 때문에 나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라고 확신하였다. 자녀들은 “엄마, 우린 엄마를 사랑해요” 하고 말하면서 나를 안심시키려고 애쓰곤 하였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나를 사랑할 수 없다고 확신하였다.
내 속에서 일어났던 끔찍한 싸움은 이루다 묘사할 수 없을 정도이다. 음주로 인한 일이 생긴 후에는 언제나 죄의식과 부끄러움을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다짐하곤 하였다. 그러나 나는 몇번이고 또다시 그러고 말았다.
신뢰받고 존경받는 친구들이 나에게 술을 줄이고 적당히 마시라고 충고하였다. 나는 음주를 억제하기 위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일은 다 해 보았다. 나는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하면서 다른 곳으로 이사하였다. 그 당시 나는 주류를 바꾸는 것이 해결책이라고 확신하였다. 그래서 나는 포도주를 마시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하여도, 음주를 줄이거나 조절할 수가 없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나는 계속, 몰래 그리고 다른 사람이 알고 있던 것보다 더 심하게 술을 마시기 시작하였다. 나는 ‘알코올’ 기운으로 적절히 기능을 발휘하였다. 술을 마시는 한 나는 여전히 직장 생활을 하고 가족과 가정을 돌볼 수 있었다. 가족이 못 보게 술을 숨기기 위하여, 속임수를 쓰는 데 능숙하게 되었다. 거실의 술장에 있는 술병들은 위장에 불과하였다. 나의 가족은 술을 하수구에 쏟아버리거나 물을 타놓곤 하였다. 그러나 나에게는 숨겨논 다른 술병들이 있었다. 사실상, 한때 내가 집 주위 여러 곳—욕실, 차고, 자동차, ‘린네르’류 벽장, ‘핸드 백’ 그리고 경대 서랍 등—에 숨겨둔 술병은 25개나 되었다.
이 무렵, 나는 밤에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알코올’로는 잠이 들기에 충분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의사에게 가서 수면제를 처방받았다. (나는 의사에게 나의 음주에 관해 말하지 않았다.) 나는 매일 밤 ‘알코올’과 수면제를 함께 먹어야 잠이 들곤 하였다.
이 모든 일로도, 나의 가족은 나에게 ‘알코올’ 중독자임을 납득시킬 수 없었다. “나를 보세요!” 하고 나는 변명을 늘어놓곤 하였다. “나는 빈민가의 부랑아가 아니란 말이예요! 나는 직장 생활을 하면서 아이들을 키워왔어요. 어떻게 내가 그런 무시무시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단 말이죠?”
그러던 어느 날 밤, 나는 ‘알코올’이 떨어져 있음을 알게 되었다. 약 팔년 동안 나는 잠이 들기 위해 ‘알코올’과 수면제에 의존해 왔었다. 그 날은 나의 전 생애에서 가장 무서운 밤이 되었다. 나는 환각 상태에 빠졌고 이상한 소리들이 들렸다. 누군가가 나를 죽이려고 한다고 생각했으며, 사실상 그것을 확신하였다. 밤이 깊어감에 따라 상태는 점점 더 악화되었다. 나는 아침이 되기 전에 죽을 것이라고 확신하였다.
그렇지만, 다음 날 아침이 되자마자 나는 술집으로 갔다. 그리고 술을 벌컥벌컥 들이키고 나자, 참으로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갑자기 신체가 다시 통제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날 나중에 나는 실제로 모든 자제력을 상실하였다. 나는 딸애를 아주 심하게 구타하였다. 그 때, 나는 나에게 전문적인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고 ‘알코올’ 중독 재활 ‘센터’에 들어가는 데 동의하였다. 나는 여전히 ‘알코올’이 나의 문제라고 생각지는 않았다! 나는 제 정신이 아니었으며 그것이 내가 술을 마셔야 했던 이유라고 확신하였다.
“술을 드십니까?” 하고 그 ‘센터’의 상담가는 물었다.
“네, 하지만 그렇게 많이 마시지는 않습니다.” 하고 나는 변명조로 말하였다. 그런 다음 그는 나에게 ‘알코올’ 중독의 여러 가지 증상을 설명하는 도표를 보여주고 나서 나에게 적용되는 것들에 표시해 보라고 요청하였다. 다 끝나갈 즈음에, 나는 ‘아마 내가 ‘알코올’ 중독자일지 모른다’고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나는 겁이 났다.
그 ‘센터’에 삼개월간 있는 동안에, ‘알코올’ 중독에 관하여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나 개인에게 영향을 미쳤으며 어떻게 나를 변화시켰는지에 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다른 회복중의 ‘알코올’ 중독자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들이 나와 똑같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나의 계속되는 회복 계획 가운데는 나를 크게 도와준 다른 일이 포함되어 있다. 사실, 나에 관한 한 편지에서 재활 ‘센터’는 이렇게 말하였다. “그 여자의 종교는 그 여자의 회복 계획에 더 많은 균형을 갖다 주었다.” 짐작하였겠지만, ‘여호와의 증인’의 한 사람인 나는 매주 정기적으로 집회에 참석하여 그곳에서 성서 원칙들을 적용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 이 일로 인해 나는 술을 마시지 않고도 행복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성경으로부터 배운 놀라운 일들을 알려줌에 따라 나의 행복은 증가되었다.
여호와 하나님과 좀더 가까와짐에 따라, 나는 빌립보서 4:6, 7의 이러한 말씀이 참됨을 체험해 왔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모든 생각보다 뛰어난 하나님의 평화가, 신세]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그렇다, “모든 생각보다 뛰어난 하나님의 평화”에 힘입어 나는 하루하루가 다르게 회복되어 가고 있다.—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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