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치타워 온라인 라이브러리
워치타워
온라인 라이브러리
한국어
  • 성경
  • 출판물
  • 집회
  • 거듭남—구원에 이르는 길인가?
    파수대—2009 | 4월 1일
    • 거듭남—구원에 이르는 길인가?

      “거듭나셨습니까?” 이 질문에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전 세계의 수많은 기독교 신자들은 자신 있게 “물론이지요!” 하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들은 신학자인 로버트 스프라울과 같은 종교 지도자들의 견해에 동의합니다. 그는 이렇게 썼습니다. “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당신도 거듭나는 것이 구원에 이르는 길이라고 생각합니까? 그렇다면 틀림없이 친척들이나 친구들도 그 길을 찾아서 그리로 걷도록 도와주고 싶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그렇게 하려면 먼저 거듭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당신은 그들에게 거듭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떻게 설명해 주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은 “거듭나다”라는 말이 하느님과 그리스도를 섬기기로 엄숙하게 맹세하여 그 결과 영적으로 죽은 상태에서 살아 있는 상태로 변화된 사람을 가리키는 데 사용된다고 생각합니다. 최근에 나온 한 사전은 거듭난 사람을 “대개 그리스도인으로서 특히 강렬한 종교적 경험을 한 후에 신앙 생활에 전념하겠다고 새롭게 다짐한 사람”이라고 정의합니다.—「메리엄-웹스터 대학생용 사전 제11판」(Merriam-Webster’s Collegiate Dictionary—Eleventh Edition).

      이러한 정의는 성서의 설명과 일치합니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면 놀랄지 모릅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거듭나는 것에 대해 실제로 무엇이라고 가르치는지 알고 싶지 않습니까? 이 문제를 자세히 살펴보는 것은 분명 유익할 것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거듭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정확한 이해는 우리의 삶과 미래에 대한 우리의 희망에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서의 가르침

      성서 전체에서 ‘거듭나다’(개역개정판) 즉 ‘다시 태어나다’라는 말이 나오는 유일한 곳은 요한 3:1-12인데, 그 구절에는 예루살렘에서 예수와 한 종교 지도자가 나눈 흥미로운 대화가 나옵니다. 그 성구의 내용 전체가 이 기사에 실린 네모 안에 인용되어 있습니다. 그 내용을 주의 깊이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께서는 그 기록에서 ‘새로 태어나는 것’a의 여러 부면을 강조하셨습니다. 그분의 말씀은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중요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데 도움이 됩니다.

      ◼ 새로 태어나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가?

      ◼ 새로 태어나는 것은 개인이 결정할 일인가?

      ◼ 새로 태어나는 것의 목적은 무엇인가?

      ◼ 사람은 어떻게 새로 태어나는가?

      ◼ 새로 태어나는 것은 하느님과의 관계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가?

      이제 이 질문들을 한 가지씩 살펴보겠습니다.

      [각주]

      a ‘새로 태어나다’(새번역) 즉 ‘새로 나다’라는 말은 베드로 첫째 1:3, 23에 나오며, 이 단어는 ‘거듭나는 것’ 또는 ‘다시 태어나는 것’을 묘사하는 또 다른 성서 용어이다. 이러한 용어들은 모두 그리스어 동사 겐나오에서 유래하였다.

      [4면 네모와 삽화]

      “당신들은 다시 태어나야 한다”

      “그런데 한 바리새인 남자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니고데모였고 유대인의 지도자 중 한 사람이었다. 이 사람이 밤에 예수께 와서 말하였다. ‘랍비, 우리는 당신이 선생으로서 하느님에게서 오신 줄을 압니다. 하느님께서 함께하지 않으시면 아무도 당신이 행하시는 이런 표징들을 행할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진실로 진실로 당신에게 말하는데, 누구든지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의 왕국을 볼 수 없습니다’라고 말씀하셨다. 니고데모가 말하였다.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태어날 수 있습니까? 모태 속에 두 번째 들어가서 태어날 수야 없지 않습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진실로 진실로 당신에게 말하는데, 누구든지 물과 영에서 나지 않으면 하느님의 왕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육에서 난 것은 육이고 영에서 난 것은 영입니다. 내가 당신에게 당신들이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말했다고 해서 이상히 여기지 마십시오. 바람은 그 원하는 곳으로 불며 당신은 그 소리를 듣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당신은 모릅니다. 영에서 난 자도 모두 이와 같습니다.’ 니고데모는 대답하여 ‘어떻게 이런 일들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말씀하셨다. ‘당신은 이스라엘의 선생이면서도 이런 일들을 알지 못합니까? 진실로 진실로 당신에게 말하는데,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을 말하고 우리가 본 것을 증언합니다. 그러나 당신들은 우리가 하는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당신들이 믿지 않는데, 하늘의 일을 말한다면 어떻게 믿겠습니까?’”—요한 3:1-12.

  • 새로 태어나는 것—얼마나 중요한가?
    파수대—2009 | 4월 1일
    • 새로 태어나는 것—얼마나 중요한가?

      예수께서는 니고데모와 대화하시면서 새로 태어나는 것 즉 다시 태어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거듭 강조하셨습니다. 어떤 방법으로 그렇게 하셨습니까?

      예수께서 니고데모와 대화를 나누면서 새로 태어나는 것의 중요성을 어떻게 분명히 나타내셨는지 유의하십시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의 왕국을 볼 수 없습니다.” (요한 3:3) 여기서 “않으면”과 “볼 수 없습니다”라는 말은 새로 태어나는 것이 꼭 필요함을 강조합니다. 일례로, “해가 비치지 않으면 사물을 볼 수 없다”는 말은 사물을 보려면 반드시 햇빛이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와 비슷하게, 예수께서는 하느님의 왕국을 보려면 반드시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끝으로, 예수께서는 이 점에 대해 일말의 의문도 남기지 않으려는 듯이 “당신들이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 3:7) 분명 그분의 말씀에 의하면, “하느님의 왕국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요한 3:5.

      예수께서 새로 태어나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셨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이 점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다시 태어나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선택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까?

      [5면 삽입]

      “해가 비치지 않으면 사물을 볼 수 없다”

  • 새로 태어나는 것—개인이 결정할 일인가?
    파수대—2009 | 4월 1일
    • 새로 태어나는 것—개인이 결정할 일인가?

      새로 태어나는 것은 누가 결정할 일입니까? 일부 설교자들은 사람들에게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되라고 권하면서 “당신들이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예수의 말씀을 인용합니다. (요한 3:7) 그 설교자들은 예수의 이 말씀을 명령형으로 사용하여 사실상 “거듭나십시오!”라고 말합니다. 그처럼 그들은 예수의 말씀에 순종하고 새로 태어나기 위해 필요한 단계를 밟는 것이 신자 개인에게 달려 있다고 가르칩니다. 그러한 추리에 따르면, 새로 태어나는 것은 개인이 선택할 일입니다. 그러한 견해는 예수께서 니고데모에게 하신 말씀과 일치합니까?

      예수의 말씀을 주의 깊이 읽어 보면 그분은 새로 태어나는 것이 개인의 선택에 달려 있다고 가르치지 않으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다시 태어나다’로 번역된 그리스어 표현은 또한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a로 번역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번역 표현에 따르면, 새로 태어나는 것은 “위로부터” 다시 말해 “하늘로부터” 혹은 “아버지로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요한 19:11; 야고보 1:17) 그렇습니다. 새로 태어나게 하시는 분은 하느님입니다.—요한 첫째 3:9.

      그러므로 새로 태어나는 것은 개인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위로부터”라는 표현을 생각해 본다면, 그 이유를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실제 당신이 태어난 때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보십시오. 당신이 태어난 것은 스스로 그렇게 하기로 결정하였기 때문입니까? 물론 그렇지 않습니다! 당신은 아버지에 의해 잉태되어 태어났습니다. 마찬가지로 새로 태어나는 것도 하늘의 우리 아버지이신 하느님에 의해서만 가능합니다. (요한 1:13) 따라서 사도 베드로가 이렇게 말한 것은 적절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느님 아버지께서 찬송받으시기를 빕니다. 그분은 자기의 큰 자비에 따라, ··· 우리를 새로 나게 하셨습니다.”—베드로 첫째 1:3.

      명령인가?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이런 의문을 가질지 모릅니다. ‘다시 태어나는 것을 개인이 스스로 결정할 수 없다면, 왜 예수께서는 “당신들이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명령하셨는가?’ 그러한 의문을 갖는 것도 이해할 만합니다. 예수께서 정말 명령의 형태로 그런 말씀을 하셨다면 우리가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을 하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전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그러면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이 표현을 원어로 자세히 살펴보면 명령형이 아니라 평서형으로 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달리 말해서, 예수께서는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말씀하셨을 때 명령을 하신 것이 아니라 사실을 언급하신 것입니다. 그분은 “당신들은 위로부터 태어나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요한 3:7, 「현대 영의 직역 성서」(Modern Young’s Literal Translation).

      명령하는 것과 사실을 설명하는 것의 차이에 관해 한 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어떤 도시에 학교가 몇 개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중 하나는 그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에 사는 원주민 학생들만을 위한 학교입니다. 어느 날 원주민이 아닌 한 남학생이 그 학교의 교장에게 “이 학교에 다니고 싶습니다” 하고 말합니다. 교장은 “우리 학교에 다니려면 원주민이어야 한단다”라고 말합니다. 물론 교장이 한 말은 명령이 아닙니다. 그 학생에게 “원주민이 되어라!”고 명령한 것이 아닙니다. 교장은 단지 사실을, 다시 말해 그 학교에 들어가는 데 필요한 요구 조건을 말한 것에 불과합니다. 마찬가지로 예수께서 “당신들이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하신 말씀도 단지 사실을, 다시 말해 “하느님의 왕국에 들어”가는 데 필요한 요구 조건을 말씀하신 것에 불과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왕국은 새로 태어나는 것의 또 다른 부면, 즉 ‘새로 태어나는 것의 목적은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관계가 있습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알면 다시 태어나는 것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각주]

      a 몇몇 성서 번역판들은 요한 3:3을 그와 같이 번역한다. 예를 들어, 「성경」(가톨릭판)에는 이렇게 되어 있다. “누구든지 위로부터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

      [6면 삽화]

      새로 태어나는 것과 실제로 태어나는 것에는 어떤 유사점이 있습니까?

  • 새로 태어나는 것—그 목적은 무엇인가?
    파수대—2009 | 4월 1일
    • 새로 태어나는 것—그 목적은 무엇인가?

      많은 사람들은 영원히 구원받으려면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새로 태어나는 것의 목적에 관해 예수께서 하신 말씀에 유의하십시오. 그분은 “누구든지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의 왕국을 볼 수 없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 3:3) 그러므로 다시 태어나는 목적은 하느님의 왕국에 들어가기 위한 것이지 구원받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왕국에 들어간다는 것과 구원받는다는 것은 같은 상을 가리키는 것이 아닌가?’ 하고 말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 차이를 이해하기 위해, 먼저 “하느님의 왕국”이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고려해 보겠습니다.

      왕국은 정부의 한 가지 형태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왕국”이라는 말은 “하느님의 정부”를 뜻합니다. 성서는 “사람의 아들” 즉 예수 그리스도가 하느님의 왕국의 왕이며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동료 통치자들이 있다고 설명합니다. (다니엘 7:1, 13, 14; 마태 26:63, 64) 그뿐만 아니라, 사도 요한이 본 환상은 그리스도의 동료 통치자들이 “모든 부족과 언어와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선택된 사람들이며 “왕으로서 땅을 통치”할 것임을 밝혀 줍니다. (계시 5:9, 10; 20:6) 또한 하느님의 말씀은 왕으로서 통치할 사람들이 “땅으로부터 사신 바 된” 14만 4000명의 “적은 무리”로 이루어져 있다고 알려 줍니다.—누가 12:32; 계시 14:1, 3.

      하느님의 왕국은 어디에서 통치합니까? “하느님의 왕국”은 또한 “하늘 왕국”이라고도 하며, 그 점을 통해 예수와 그분의 동료 왕들이 하늘에서 통치할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누가 8:10; 마태 13:11) 따라서 이 왕국은 예수 그리스도와 인류 가운데서 선택된 동료 통치자들로 구성된 하늘 정부입니다.

      그러면 “하느님의 왕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예수의 말씀은 무슨 뜻이었습니까? 하늘에서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통치자가 되려면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뜻이었습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새로 태어나는 것의 목적은 하늘에서 통치권을 행사할 제한된 수의 사람들을 마련하기 위한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새로 태어나는 것이 매우 중요하고 하느님에 의해 일어나며 이를 통해 하늘에서 통치권을 행사할 사람들이 마련되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사람이 실제로 어떻게 새로 태어납니까?

      [7면 삽입]

      새로 태어나는 것의 목적은 하늘에서 통치권을 행사할 제한된 수의 사람들을 마련하기 위한 것입니다

      [7면 삽화]

      예수 그리스도와 인류 가운데서 선택된 동료 통치자들이 하느님의 왕국을 구성합니다

  • 새로 태어나는 것—실제로 어떻게 일어나는가?
    파수대—2009 | 4월 1일
    • 새로 태어나는 것—실제로 어떻게 일어나는가?

      예수께서는 니고데모와 나눈 대화에서 새로 태어나는 것의 중요성 그리고 그 일이 일어나게 하시는 분과 그 목적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분은 새로 태어나는 것이 어떻게 일어나는지에 대해서도 알려 주셨습니다. 예수께서는 “누구든지 물과 영에서 나지 않으면 하느님의 왕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요한 3:5) 따라서 사람은 물과 영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그러면 “물과 영”은 무엇을 가리킵니까?

      “물과 영”—무엇을 의미하는가?

      유대교 학자였던 니고데모는 히브리어 성경에서 “하느님의 영”이라는 말이 어떻게 사용되는지 분명 잘 알고 있었을 것인데, 그 영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쳐 특별한 일을 해낼 수 있게 하는 하느님의 활동력입니다. (창세 41:38; 탈출 31:3; 사무엘 첫째 10:6) 따라서 예수께서 “영”이라는 말을 사용하셨을 때, 니고데모는 그것이 성령 곧 하느님의 활동력임을 이해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께서 말씀하신 물은 어떠합니까? 그분이 니고데모와 대화를 나누시기 바로 전후에 있었던 일에 관한 기록을 고려해 보십시오. 거기에는 침례자 요한과 예수의 제자들 모두 물에서 침례를 베풀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요한 1:19, 31; 3:22; 4:1-3) 그 일은 예루살렘에 사는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물에 관해 말씀하셨을 때, 니고데모는 그분이 일반적인 의미로가 아니라 침례와 관련하여 물을 언급하신 것임을 알아차렸을 것입니다.a

      “성령으로” 베풀어지는 침례

      ‘물에서 나’는 것이 물에서 침례를 받는 것과 관련이 있다면, “영에서 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니고데모와 예수의 대화가 있기 전에, 침례자 요한은 물만 아니라 영도 침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알렸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물로 침례를 베풀었지만, 그분[예수]은 여러분에게 성령으로 침례를 베푸실 것입니다.” (마가 1:7, 8) 복음서 필자인 마가는 그러한 침례가 처음으로 베풀어진 때에 관해 묘사하면서 이렇게 썼습니다. “그 무렵 예수께서는 갈릴리 나사렛에서 오시어 요르단에서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셨다. 그리고 물에서 올라오셔서 곧 보시니, 하늘이 갈라지고 영이 비둘기처럼 자기 위에 내려왔다.” (마가 1:9, 10) 예수께서는 요르단에서 물에 잠기셨을 때 물로 침례를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하늘에서 내려온 영을 받으셨을 때 성령으로 침례를 받으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침례를 받으신 지 약 3년이 되었을 때 제자들에게 “여러분은 이후 몇 날이 못 되어 성령 안에서 침례를 받을 것입니다”라고 분명히 약속하셨습니다. (사도 1:5) 언제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기원 33년 오순절 날 약 120명의 예수의 제자들이 예루살렘의 한 집에 모여 있었습니다. “갑자기 하늘로부터 거센 바람이 불어 닥치는 듯한 소리가 나더니, 그들이 앉아 있는 온 집을 채웠습니다. 그리고 마치 불 같은 혀들이 그들에게 보이더니, ··· 그들은 모두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었습니다.” (사도 2:1-4) 같은 날, 예루살렘에 있던 다른 사람들도 물에서 침례를 받으라는 권고를 들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각자 자기 죄를 용서받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으십시오. 그러면 거저 주는 선물인 성령을 받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그의 말을 마음으로 받아들인 사람들은 침례를 받았으니, 그날에 삼천 명쯤 되는 영혼들이 더하여졌습니다.”—사도 2:38, 41.

      거쳐야 할 두 가지 단계

      이러한 침례들은 새로 태어나는 것에 관해 무엇을 알려 줍니까? 새로 태어나려면 두 가지 단계를 거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먼저 물로 침례받으셨다는 점에 유의하십시오. 그런 다음 그분은 성령을 받으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초기 제자들도 (일부는 침례자 요한에게) 먼저 물에서 침례를 받았고, 그런 다음 성령을 받았습니다. (요한 1:26-36) 또한 3000명의 개종자도 먼저 물로 침례를 받았고, 그런 다음 성령을 받았습니다.

      기원 33년 오순절에 있었던 침례를 고려해 볼 때, 오늘날 새로 태어나는 일이 어떻게 일어날 것으로 예상해야 합니까? 예수의 사도들과 초기 제자들의 경우와 똑같은 방법으로 일어날 것입니다. 먼저 죄를 회개하고, 잘못된 길에서 돌아서서, 여호와를 숭배하고 그분을 섬기기로 헌신하고, 물침례를 통해 자신이 헌신한 사실을 공개적으로 알려야 합니다. 그런 다음 하느님이 그 사람을 그분의 왕국의 통치자로 섬기도록 선택하실 경우, 그는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게 됩니다. 이 두 가지 단계의 첫 번째 부분(물로 베풀어지는 침례)은 개인에게 달려 있지만, 두 번째 부분(영으로 베풀어지는 침례)은 하느님에게 달려 있습니다. 이 두 종류의 침례를 모두 받는 사람이 새로 태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께서는 니고데모와 나눈 대화에서 왜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다’(쉬운성경)라는 표현을 사용하셨습니까? 물과 영으로 침례를 받는 사람들이 엄청난 변화를 겪게 된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다음 기사에서는 새로 태어나는 것의 그 부면을 살펴보겠습니다.

      [각주]

      a 이와 비슷하게 사도 베드로도 침례를 베풀 때 ‘어느 누가 물을 금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한 적이 있다.—사도 10:47.

      [9면 삽화]

      요한은 회개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물로 침례를 주었습니다

  • 새로 태어나는 것—어떤 변화를 가져오는가?
    파수대—2009 | 4월 1일
    • 새로 태어나는 것—어떤 변화를 가져오는가?

      예수께서는 성령으로 침례를 받는 것에 관해 말씀하셨을 때 왜 ‘성령으로 태어나다’라는 표현을 사용하셨습니까? (요한 3:5, 쉬운성경) “태어나다”라는 말은 비유적으로 사용될 때 “시작하다”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새로 태어나는 것”은 “새로운 시작”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태어나다”와 “새로 태어나는 것”이라는 비유적인 표현은 하느님과 성령으로 침례를 받은 사람들 사이에 새로운 관계가 시작된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그러면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그와 같은 커다란 변화가 어떻게 일어나게 됩니까?

      사도 바울은 하느님이 하늘에서 통치할 사람들을 어떻게 마련하시는지 설명하면서 가족 관계에서 이끌어 낸 예를 사용하였습니다. 그는 당시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들이 “아들로 입양”될 것이며 하느님은 그들을 “아들처럼” 대하실 것이라고 썼습니다. (갈라디아 4:5; 히브리 12:7) 입양의 예는 성령으로 침례받는 사람이 어떤 변화를 겪는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어떻게 그러한지 살펴보기 위해, 원주민 학생들만을 위한 학교에 다니고 싶어 하는 한 남학생의 예를 다시 고려해 보겠습니다.

      입양이 가져오는 변화

      예 가운데, 그 남학생은 원주민이 아니기 때문에 그 학교에 다닐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큰 변화가 일어납니다. 한 원주민 가정의 아버지가 그를 법적으로 입양한 것입니다. 이 일은 그 남학생에게 어떤 영향을 미칩니까? 아들로 입양되었기 때문에 이제 다른 원주민 청소년들과 똑같은 권리를 갖게 되며, 그 학교에도 다닐 수 있게 됩니다. 입양으로 인해 그의 미래는 완전히 바뀌게 되었습니다.

      이 예는 새로 태어나는 사람들이 훨씬 더 의미심장한 방법으로 겪게 되는 일을 예시합니다. 몇 가지 유사점을 생각해 보십시오. 예에 나오는 남학생은 입학에 필요한 조건을 갖추어야만 다시 말해 원주민이어야만 그 학교에 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힘으로는 그 조건에 달할 수 없습니다. 그와 비슷하게 사람들도 필요한 조건에 달해야만, 즉 “다시 태어나”야만 하느님의 하늘 정부에서 다스리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새로 태어나는 것은 하느님께 달려 있기 때문에 그들 자신의 힘으로는 그 조건에 달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그 남학생의 상황은 어떻게 해서 바뀌게 되었습니까? 법적인 입양 절차를 통해서였습니다. 물론 그러한 절차를 밟았다고 해서 그 학생이 바뀐 것은 아니었습니다. 입양된 후에도 여전히 똑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입양에 필요한 법적 요구 조건이 충족된 후에 새로운 신분을 얻었습니다. 사실 그는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말하자면 새로 태어난 것과 같았습니다. 그 학생은 양아버지의 아들이 되어, 그 가족의 일원이 되고 원주민 학생들만을 위한 학교에 입학할 권리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와 비슷하게, 여호와께서도 일단의 불완전한 사람들을 자신의 자녀로 입양하는 법적 절차를 밟음으로 그들의 상황을 바꾸셨습니다.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인 사도 바울은 동료 신자들에게 이렇게 썼습니다. “여러분은 ··· 아들로서의 입양의 영을 받았습니다. 그 영으로 우리는 ‘아바, 아버지!’라고 외칩니다. 바로 그 영이 우리 영과 함께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라는 것을 증언합니다.” (로마 8:15, 16) 그렇습니다. 그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입양 절차를 통해 하느님의 가족의 일원 즉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요한 첫째 3:1; 고린도 둘째 6:18.

      물론 그처럼 하느님에 의해 입양된다고 해서 그들의 본성이 바뀐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불완전하였기 때문입니다. (요한 첫째 1:8) 그렇지만 바울이 더 설명한 바와 같이, 입양에 필요한 법적 요구 조건이 충족된 후에 그들은 새로운 신분을 얻었습니다. 동시에 하느님의 영은 그 입양된 아들들에게 그들이 하늘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살게 될 것이라는 확신을 심어 주었습니다. (요한 첫째 3:2) 성령에 의한 그와 같은 분명한 확신은 그들에게 완전히 새로운 삶의 전망을 열어 주었습니다. (고린도 둘째 1:21, 22) 그렇습니다. 그들은 새로운 시작을 맞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새로 태어난 것입니다.

      성서에서는 하느님의 입양된 아들들에 관해 “그들은 하느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될 것이며, 그리스도와 함께 천 년 동안 왕으로 통치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계시 20:6) 하느님의 입양된 아들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의 하늘 정부의 왕이 될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동료 신자들에게 그들을 위해 “하늘에 예비된”, “부패하지 않고 더럽혀지지 않고 시들지 않는 상속 재산”을 그들이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베드로 첫째 1:3, 4) 참으로 놀라운 상속 재산이 아닙니까!

      하지만 이 통치권과 관련하여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다시 태어나는 사람들이 하늘에서 왕으로 통치할 것이라면, 그들은 누구를 통치할 것입니까? 이어지는 기사에서 그 점을 고려할 것입니다.

      [10면 삽화]

      바울은 입양에 관해 무엇이라고 말했습니까?

한국어 워치 타워 출판물 (1958-2025)
로그아웃
로그인
  • 한국어
  • 공유
  • 설정
  • Copyright © 2025 Watch Tower Bible and Tract Society of Pennsylvania
  • 이용 약관
  • 개인 정보 보호 정책
  • 개인 정보 설정
  • JW.ORG
  • 로그인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