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회에서 서로 사랑을 나타냄파수대—1971 | 7월 1일
-
-
대회에서 서로 사랑을 나타냄
그리스도인 대회들이야말로 이 어려운 “마지막 날”에 크나큰 영적 격려와 정신적 앙양의 근원이 됩니다. 이 대회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증가시켜 줄 뿐 아니라, 여호와의 종들이 그리스도인 사랑을 나타냄으로써 서로 격려할 기회를 마련해 주기도 합니다.—히브리 10:24, 25.
예수께서는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고 말씀하셨읍니다. (요한 13:35) 다른 사람들을 비이기적 정신으로 고려하는 사랑이야말로 하나님의 백성들의 대회를 운영하는데 필수적인 것입니다. 여호와의 종들은 사랑의 동기로써 ‘프로그램’을 준비하며, 식사할 장소 및 숙소를 마련하고, 그 외에도 많은 다른 자진 봉사를 하는데 그들은 시간과 정력을 아낌없이 제공합니다.
이 말은 단지 그러한 자진 봉사를 하는 사람들만이 대회에서 사랑을 나타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사실상 모두가 그리스도인 사랑을 나타낼 필요가 있읍니다. 특히 참석 수가 예측했던 것보다 많을 때는 더욱 그러합니다.
‘왙취 타워 협회’는 모든 대회 참석자들이 편히 수용될 대회를 마련하고자 계획하지만, 때때로 어떤 대회에는 기대한 것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참석하는 수가 있읍니다. 물론 그들의 참석을 우리는 기뻐합니다. 그러나 그 대회의 시설이 작아 붐비게 될 수도 있읍니다.
그러한 환경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할 것을 당신은 기대하십니까? 사실상, 성서 원칙으로 인도받지 못한 사람들이 그러한 동일한 운동장에서 운동 경기를 보고자 참석하고 있었다면, 당신은 별로 사려깊음이나, 친절 혹은 인내심 같은 것을 기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한 무리들은 보통 내가 먼저라는 세상적 태도를 가지고 있읍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종들의 대회에서 넘쳐 흐르는 원칙은 사랑이며, “사랑은 ···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합니다.—고린도 전 13:4, 5.
다른 사람들에 대한 사려깊음
대회장에서 여러 가지 환경을 당하여 이러한 사랑을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은 이렇게 자문해 보는 것입니다. “만일 예수께서 이러한 환경 하에 계셨다면 어떻게 행동하셨을 것인가?” 그분이 친절한 일, 비이기적인 일 및 올바른 일을 하셨을 것이라는 것을 당신은 잘 압니다. 예를 들어 만일 사람들이 식당이나 서적부에 줄을 지어 기다리고 있다고 합시다. 그때 예수께서는 자기의 차례가 올 때까지 인내깊게 기다리는 대신에 앞으로 가서 새치기하는 세상적 방법을 사용하셨을 것입니까? 그렇게 하는 대신에, 그는 참을성있게 기다리셨을 것이며, 아마 심지어 자기 자리를 더욱 더 도움을 필요로 하는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셨을지도 모릅니다.
그러한 경우에, 장성한 그리스도인 사랑을 나타내지 않는 사람을 우리는 가끔 볼 수도 있읍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 대회에 참석하는 모두가 다 장성된 그리스도인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여호와의 율법과 원칙을 알게 된지 불과 얼마 되지 않았을 수 있읍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대회를 처음 참석하는 관심자일 수 있읍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인생의 경험이 아직 부족한 어린이들이 있어서, 어른 여호와의 종들에게서 마땅히 기대할 수 있는 정도의 동일한 그리스도인 사랑을 때때로 나타내지 않을 수도 있읍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모든 사람들이 이 대회에 참석하게 되기를 원합니다. 왜냐 하면 바로 그 장소에서 그들은 그리스도인 성장을 증진시킬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훌륭한 본을 세우고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나타내는 데 있어서 솔선력을 발휘하는 것은 그리스도인 사랑 가운데서 장성된 사람들의 의무입니다. 당신은 그렇게 할 것입니까?
그리스도인 사랑은 또한 대회장을 깨끗이 청소하는 데에도 나타날 수 있읍니다. 세상 ‘스포츠’ 경기 때, 여호와와 동료 인간들에게 사랑이 없는 사람들은 빈 종이‘컵’, 음식 싼 종이, 휴지 및 다른 것들은 바닥에 떨어뜨리는 것을 볼 수 있읍니다. 그러한 행사 후에 남겨진 쓰레기 양은 굉장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 대회에서 당신은 무엇을 기대하십니까? 장성한 사람들은 마땅히 버릴 것들은 쓰레기통에 찾아 가서 그곳에 버릴 것을 기대합니다. 또한 하루의 회기가 끝나자 자기 자리 아래에 혹시 쓰레기가 있는가 살펴서 자기가 떨어뜨린 것이 아닐지라도 주어서 지정된 곳에 갖다 버리는 사람들에게 감탄할 것이며 그들의 본을 받고자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한다는 것은 사랑의 표현입니다. 청소 자진 봉사자들은 그것을 얼마나 감사해 할 것입니까! 그것은 그들이 더 속히 일을 마치게 해서 그들의 친구들이나 가족들과 함께 하게 할 것입니다.
좌석의 마련
좌석의 마련들에 대한 균형잡힌 견해를 가짐으로 또 다른 면으로 사랑을 나타낼 수 있읍니다. 대회 때,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때때로 자리를 잡아 두는 것을 볼 수 있읍니다. 반면에 어떤 사람들은 결코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생각이 실용적입니까?
예를 들어, 한 결혼한 여자가 자기 자녀들과 함께 앉아 있다 합시다. 그의 남편은 자진 봉사를 하고 있으며 회기가 시작하자마자 가능하면 속히 가족과 함께 앉을 계획을 하고 있읍니다. 또한 휴회 중 자녀 하나가 변소에 갈 필요가 있었을지 모릅니다. 어머니는 아마 더 나이 든 아이가 그를 데리고 가게 했다고 합시다. 이러한 경우, 그 가족이 남편으로 하여금 대회에서 일하도록 바쳐서 크나큰 사랑을 나타내고 있는데, 그 부인이 이 세개의 자리를 잡아 두는 것이 잘못입니까?
혹은 한 부부가 회기가 시작하기 전에 두 자리를 잡아 두고 있다고 생각합시다. 아마 그 자리들은 아들과 며느리의 자리이며 그들은 부모의 집에서 먼 거리에 있는 임명지에서 전 시간 여호와를 섬기고 있으며, 아마 이번 대회에서도 자진 봉사에 참여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 가족은 사전에 함께 앉도록 마련해서 서로 간에 더 많은 시간을 즐길 수 있도록 했을지 모릅니다. 자기들의 아들 딸들을 여호와의 특별 봉사에 바친 이 부모들이 대회 중 그들과 함께 앉기를 원하는 것이 잘못입니까?
또한 처음으로 대회에 참석한 관심자들이 있을지 모릅니다. 서먹서먹하지 않게 해 주기 위하여 증인들은 친절하게도 함께 앉도록 마련했는데 이들 관심자들이 도착하는데 좀 늦었을지 모릅니다. 그리스도인 형제 자매들이 이들 새로운 관심자들을 위하여 잠간 동안만이라도 자리를 잡아 두는 것이 실제적으로 사랑의 일이 아닙니까?
물론, 그러한 예들은 어떤 사람들이 혹시 아는 사람이라도 오면 아무에게든지 주려고 단순히 자리 한줄 전체를 잡아 두는 것과는 대단히 다릅니다. 틀림 없이 와서 함께 앉을 사람을 위해서만 자리들을 잡아 둘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이치적인 시간이 지나갔음에도 불구하고 잡아둔 자리에 앉을 사람이 오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 것입니까? 그때는 안내인에게 말해서 그 자리에 다른 사람을 인도해 올 수 있게 하는 것은 대단히 사랑의 일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공개 강연과 같은 어떤 특별한 회기에는 어떤 일정한 시간부터는 아무도 자리를 잡아 둘 수 없다는 광고가 있을지 모릅니다. 그렇게 해서 모든 자리가 회기가 시작하기 전에 다 차게 하는 경우도 있읍니다.
자리 문제에 있어서, 그 이전에 한번도 만나 보지 못했던 사람들, 즉 그분이 그리스도인 형제 자매이건, 혹은 대회에 처음으로 참석하는 사람이건 간에, 그들에게도 사려깊음을 나타낼 때, 그리스도인 사랑의 증거가 된다는 것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한 사람이 편히 앉아 있다가 노인이나, 애기를 안고 있는 어머니 혹은 외견으로 약해 보이는 사람들에게 그의 자리를 서슴치 않고 제공할 때, 그것은 그 모두에게 얼마나 가슴 흐뭇하게 해 주는 일입니까! 만일 당신이 깨어 있다면 당신은 틀림없이 그러한 사랑에 근거한 관심을 나타냄으로 오는 행복에 참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대회의 모든 면에서 여호와의 종들이 나타내는 그리스도인 사랑은 다른 사람들에게 큰 주목 거리가 되었읍니다. 작년 ‘미주리’ 주 ‘캔자스시티’ 대회에 단 한 시간 참석해 본 한 관리는 이렇게 말했읍니다. “당신네들이야말로, 참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았읍니까?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 그렇습니다. 그것이야말로, 바로 우리가 대회에서 서로 그리스도인 사랑을 나타낼 때 얻는 결과입니다.
-
-
빠져서는 안될 대회파수대—1971 | 7월 1일
-
-
빠져서는 안될 대회
당신은 왕국이 임할 것을 기도해 오셨읍니까? 당신은 그 왕국이 악을 행하는 자들을 멸망시키고 이 땅을 낙원으로 만들므로써 인간의 창조주의 말씀을 성취시킬 때를 기다려 왔읍니까? 만일 그러하다면 “모든 나라들이 하나님과 정면으로 충돌할 때”라는 강연을 듣도록 최선을 다하십시오. 이것이 여러 대회에서 있을 주요 연설입니다.
성서는 재삼재사 ‘나라들이 내가 여호와인줄 알게 되리라’고 선언합니다. 우리는 지금 하나님께서 나라들이 이전에 결코 몰랐던 방법으로 하나님을 알도록 행동하실 때가 매우 가까운 때에 살고 있읍니다. 모든 인류를 위한 가까운 미래는 무엇입니까? 이러한 흥분할 만한 사건들이 머지 않아 개최되는 여호와의 증인의 “하나님의 이름” 지역 대회에서 고려하게 될 주요 제목입니다. 당신은 참석하실 것입니까?
각 대회 기간은 5일간입니다. 수요일 오후 1:40에 개회되어 일요일 오후 5:15경에 폐회될 것입니다. 하루도 빠지지 않도록 하십시오.
대회의 중요한 ‘프로그램’은 결코 마지막 수일간에만 들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첫 회기부터 시작해서 ‘프로그램’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를 원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최대의 관심사가 되는 문제들로 가득차 있읍니다. 매우 실제적이고 건설적인 연설과 실연들이 있을 것입니다. ‘프로그램’의 일부는 오늘날 우리에게 중요한 뜻이 내포되어 있는 성서 사건의 강력한 ‘드라마’를 포함하여 부모들과 젊은이들을 위한 특징을 지니고 있읍니다. 그리고 금요일 아침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침례를 받을 준비를 갖춘 사람들을 위한 침례식의 마련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당신이 대회 도시에 일찍 도착하심으로써 수요일 오후 ‘프로그램’이 시작될 때에는 이미 자리에 앉아 계시게 되기를 간절히 권하는 바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하여는 지금부터 계획해야 할 것입니다. 당신이 만일 대회 도시 근처에 살지 않는다면 숙박 신청을 해야 할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숙박소를 원한다면 대회 조직을 위하여 자진 봉사하는 사람들이 기꺼이 당신의 숙박소를 마련하는 일을 도울 것입니다. 당신이 참석하고자 하는 하기 ‘왙취 타워’ 대회 본부로 “숙박” 신청서를 보내시면 됩니다.
이 대회에 참석하기 위하여 확정적으로 계획하고, 그렇게 하려는 당신의 노력에 여호와의 축복이 있을 것을 간구하십시오.
8월 4-8일: 전주시 종합 경기장 배구장.
숙박: 520 전주시 서서학동 124-33호.
대구시 경북대학교 육상 경기장(미확정)
숙박: 630-10 대구시 중구 봉산동 168.
8월 11-15일: 서울 경희대학교 노천극장, 동대문구 회기동 1번지.
숙박: 120 서울 서대문 우체국 사서함 7호.
-
-
창조물은 설계를 나타낸다파수대—1971 | 7월 1일
-
-
창조물은 설계를 나타낸다
● 생물학자 ‘더불류. 제이. 팅클’과 원예가 ‘더불류. 이. 라머트’는 창조물에 나타난 설계에 관하여 논평하였다. 그들이 이에 관하여 말한 것이 「현대 과학과 그리스도인 믿음」이라는 책에 다음과 같이 나온다. “창조주께서는 식물과 동물의 세포를 배열함에 있어서 훈련된 사람이 읽을 수 있는 설명서를 기록하셨다. ··· 잎의 겉면을 벗겨서 강도 높은 ‘렌즈’로 조사할 경우 정밀한 배열을 나타내는 잎의 조직이 확대된다. 그것은 서로 정밀하게 잘 맞추어진 세포층이며 모든 세포는 크기와 모양이 같다. 그리고 각 세포 안에는 세포핵이라고 부르는 조그만 입체가 들어 있다. 뿌리 끝을 엷게 썰어서 복합 현미경을 사용하여 더 많이 확대하여 볼 경우 세포핵이 막대기 모양의 ‘크로모롬’을 위시하여 고른 모양의 요소로 이루어져 있음을 관찰하게 된다. 우리가 자연의 사물을 확대하여 볼수록 우리는 질서를 보게 된다.
“그와 같이 복잡한 구조는 사람의 독특한 솜씨가 아니다. 예리한 면도날 끝을 확대하여 보면 톱날, 마치 신경질적인 사람이 눈을 감고 톱날을 세운 것과 같은 매우 고르지 못한 톱처럼 보인다. 만일 우리가 정밀 인쇄를 본다면 십자형의 종이 질 위에 고르지 못하게 ‘잉크’가 묻혀 있음을 보게 된다. 그러나 누가 면도날이나 훌륭한 인쇄를 보고 그것을 만든 인간의 지성적 설계를 부정할 것인가?
“우리가 자연에서 관찰하는 그러한 질서와 설계는 설계자를 요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