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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인구 위기가 존재하는가?깨어라!—1974 | 10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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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인구 위기가 존재하는가?
“우리는 이전에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역사의 시점에 살고 있다. 우리 시대는 세계를 삼킬 기세이다” 하고 저명한 권위자 ‘윌리암 에프. 드레이퍼’는 자주 전망되는 인구 위기에 대하여 말하였다.—1974년 3월 1일호 「사이언스」지.
현재 점점 더 많은 전문가들이 되풀이하여 말하고 있는 세계 인구 재난에 대한 그러한 무서운 전망들 배후에는 무엇이 있는가? 그것은 단순히 군걱정을 하는 사람들의 발언에 불과한가? 그들의 암담한 예언은 그들이 반대쪽 면을 무시하였다는 이유로 널리 의문시되어 왔다. 더구나, 인간의 연구력이 이전에 항상 문제를 극복해 오지 않았는가 하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인구 문제 권위자들은 이 문제가 이전에 인류가 직면한 어떠한 문제와도 다르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인구 증가 방식 때문에 이 문제가 사람들을 속이고 있다고 말한다. 인구는 일정하게 한결같이 확장하는 것이 아니라,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여 마침내 갑자기, 환경의 한계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이다.
인구 증가 방식
현 상황은, 고용주가 첫 주에는 1원을 주고 그후 매주 수입을 2원, 4원, 8원, 이런 식으로 배가시켜 준다면 일하겠다고 동의한 어떤 사람의 일화로 설명할 수 있다. 석달 뒤에는 그는 단지 8,000원 가량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람은 처음에는 엉큼하게도 부진한 출발을 하지만, “배증”의 위력으로 인하여 연말에 가서는, 만일 세계의 통화량이 고갈되지 않는다면, 그는 4,500,000,000,000,000원 이상을 벌게 될 것이다!
인구도, 다른 많은 요인이 결부되어 있지만, 비슷한 식으로 증가한다. 지상에 인구가 지난 세기 중반에 처음으로 십억이 될 때까지 수천년이 걸렸다. 그러나 그 인구가 배증하는 데는 백년도 걸리지 않았다! 또 단지 삼십년 후에 세계 인구가 다시 십억이 늘었고, 1975년까지 15년 동안에 네번째 십억이 불 것이다! 다섯번째 십억은 전문가들은, “기적” 혹은 재난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십년 정도로 추산한다.
현재, 지상 인구의 “배증 기간”은 35년 이하이지만 그 기간은 짧아지고 있다! 1974년 「브리타니카 백과 사전」은 세계의 일부는 현재 “높은 출생률과 낮은 사망률로” 대부분이 젊은 세대라고 지적하였다. 동 사전은 “그러한 상태가 아주 오래 계속된다면 지상 인구는 불과 500년 동안에 32,000배가 증가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제 14권 816면.
상상하여 보라! 당신이 이 기사를 읽기 시작한 이후로 세계에는, 1분에 약 150명씩, 200여명이 늘었다. 어제 이 시간 이후로 약 200,000명의 도시가, 매달 육백만여명의 대도시가, 매년 서독만한 인구를 가진 나라가 생길 수 있다! 1년에 7천 8백만명을 위한 의식주와 교육 및 직장을 마련하는 일이 얼마나 크겠는가 생각하여 보라!
세계는 그들을 수용할 수 있는가?
이러한 요구에 응할 수 있는 세계의 능력은 성장하고 있지만 인구만큼 급성장하지는 않는다. 현재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부족 사태는 인류가 경주에서 뒤에 처지고 있음을 증명한다고 한다. 농업, 교육, 주택 공급 및 기타 필요에 대한 가속도적으로 증가하는 수요로 말미암아 불과 몇년 동안에 세계는 풍요에서 품귀로 바뀌었다. 부유한 “선진국”에까지 번진 전례없는 ‘인플레이션’이 부족 사태를 증명한다.
설상가상으로, 인구는 부유한 공업국에서보다 가난한 “저개발 국가”에서 두배 이상으로 증가하고 있다. 가난한 나라에 이미 거의 삼배나 되는 인구가 있으므로 그러한 나라가 전체 인구 증가의 대부분을 수용해야 한다. 그리고 이십 세 이하의 세계 인구의 절반이 그러한 나라에 주로 살고 있다. 그들에게서 얼마나 많은 아기가 출생할 것인가 생각하여 보라!
더욱 더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동일한 제한된 자연을 이용해야 한다. 불균형은 더욱 심해진다. 이처럼 양쪽으로 간격이 넓어지는 과정을 “양극화”라고 부른다. 간단히 말해서, “부자는 더 부해지고 빈자는 더 빈한해진다.” 다음을 고려하여 보라.
● 작년에 128개의 가난한 나라의 모든 상품과 용역 혹은 국민 총생산의 총 가치는 불과 21개 부유한 나라에서의 증가보다 훨씬 적었다.
● 세계의 여타 인류가 북미인들과 같이 먹으려면 세계 식량 생산고는 여덟배로 증가해야 할 것이다.
● 세계에는 1950년보다 1억의 문맹자가 더 있다.
● 세계 인구의 3분의 1 미만이 세계의 ‘에너지’의 10분의 9를 소비하고, 반면에 3분의 2 이상은 나머지 8‘퍼센트’로 살아가야 한다.
간격을 좁히려는 노력은 어느 정도로 성과를 거두고 있는가? 미국 과학 진흥 협회 1974년 회의에 대한 보고서는, 일반적으로 저개발 국가가 국민의 교육 수준을 높이고 토지 개혁을 통하여 재산을 재분배하려고 할 때에는 생산력이 감소하고 선진국보다 더 뒤떨어진다고 지적하였다.
그 결과, 이 지구는 “호화 1등실”에 승객 4분의 1이 타고 “최하급 객실”에 나머지 4분의 3이 탄 배와 같다고 세계 은행장 ‘로버트 에스. 맥나마라’는 말하였다. 그는, 그러한 불공평으로는 “행복한 배”가 될 수 없다고 말하였다. 오히려, 지구는 굶주림과 불행과 경제적 혼란과 정치적 동요의 증식지가 되었다. 세계 지도자들은 해결책을 발견할 것인가? 일부 권위자들은 이미 때가 늦었다고 말하고 있다.
암담한 전망
위기는 급속도로 심화되고 있다고 점증하는 수의 전문가들이 믿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심지어 숙명론적 태도를 가지고, 출생률 문제에 대한 “사망률” 해결책만을 내다보고 있다. “에너지, 농업, 인구 및 지구 경제 전문가들 대부분”의 주장에 근거하여 “십억 즉 지상 인구의 사분의 일이 다음 열두달 이내에 파산, 사회적 몰락 및 대량 기근을 직면할 것”이라고 예측하는 사람들이 있다.—1974년 3월 3일호 「덴버 포스트」지.
그러한 예측이 옳든지 그르든지, 식량 부족과 인도에서의 고물가 및 아직도 맹위를 떨치고 있는 ‘아프리카’의 기근에 대한 증대하는 불안이 그들의 주장의 우울한 배경이 되고 있다. 인구 7천 5백만으로 인도보다 3배 조밀한 ‘방글라데시’의 한 관리는 “우리가 이곳에서 빨리 인구를 통제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아무 것도 통제할 수 없다. 그것은 민족으로서의 우리의 생존 및 존속과 상호 결부되어 있다”고 말하였다.
남 ‘아시아’와 ‘라틴 아메리카’의 여러 곳에서 사회적 행동이 심하게 타락하고 있다. 보도는 “농민들 간의 예기치 않은 매점 행위”와 널리 퍼진 암거래에 대하여 알려 준다. “상인들이 전례없이 가짜를 식품에 섞어서” 식품량을 늘리며, “때로는 [독을] 타기도 한다.” 또 다른 보고는 이러하다. “1971년 전쟁에서 남은 총을 든 청년들이 떼를 지어 ‘방글라데시’의 읍과 촌을 배회하고 있으며, 예민한 ‘벵골’인들에게 전례없는 사회적 활동을 범하고 있다.” 이와 비슷하게, “‘방탕아’라고 불리는 소년들이 떼를 지어 다니며, 현재 버림받은 개떼 ··· 처럼 일부 ‘라틴 아메리카’의 거리를 배회하고 있다.”
일부 권위자들은 인구 문제가 아마 남 ‘아시아’의 ‘첫 시련’이 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한 사람은 이렇게 말하였다. “이 지역의 생활의 질은 이미 쇠퇴하기 시작하였으며 사회 구조는 허물어지고 있다. 그리고 아무도 해결책을 생각해 낼 만큼 현명하지 않았다.”
분명히 이것은, 노력 부족 때문이 아니다. 해결책이 시도되어 왔고 지금도 시도되고 있다. 그 성과는 어떠한가?
[4면 그래프]
(온전한 형태의 본문을 보기 원한다면, 출판물을 참조하십시오)
기원 1600년 이후의 인구 증가
1975 40억
1960 30억
1930 20억
1850 10억
1600 5억
[3면 삽화]
매분 7명 출생, ‘방글라데시’의 최대의 장기적 문제
THE NEW YORK TIMES, February 1, 1974
인구 증가의 위협
THE DAILY OKLAHOMAN, November 6, 1973
인구 감소 아니면 멸절
SUNDAY INDEPENDENT, October 21, 1973
지구상에 남아 도는 한 가지 품목: 인구
LOS ANGELES TIMES, December 9, 1973
다음의 위기: 인구와 자연
THE NEW YORK TIMES, December 22, 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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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인구 조절을 시도한다깨어라!—1974 | 10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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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인구 조절을 시도한다
선의의 인간들과 조직체들은 오랫 동안 인구 증가를 초래한 여러 가지 문제를 제거하고자 활동을 펴 왔다. 많은 농업적, 경제적, 정치적, “해결책”이 시도되었다.
그러나, 질병의 원인이 아니라 증세를 퇴치하는 대부분의 “치료”가 그러하듯이, 결과는 실망을 가져다 주었다. 대부분의 활동은 별 성과가 없거나 명백히 실패하였거나 문제를 더욱 악화시켰다. 이러한 “해결책”의 일부를 고찰하여 보면 이유를 알게 된다.
무료 식량
증가하는 인구는 생존을 위하여 많은 것을 요하지 않지만, 필수적으로 식량을 요한다. 여러 해 동안 다산의 북미 대평원은 굶주리는 국가들이 “마지막으로 의지하는 곡창지대”였다. 겨우 연명하는 사람들에게 흉작이 들었을 때에, 그들은 항상 식량이 풍부한 나라가 수백만 ‘톤’의 잉여 농산물을 보내어 위기를 모면시켜 주기를 기대하였다.
이제는 잉여 농산물이 거의 없다. 세계 식량 보유고는 지난 여러 해 중에서 가장 낮다고 보도되었다. 다음 해에 먹을 식량이 충분할 것인지의 여부는 현재의 농사철 동안의 기후에 좌우된다. “세계는 위험하게도 현재의 생산에, 따라서, 기후에 의존하고 있다”고 ‘유엔’ 식량 농업 기구장 ‘에이. 에이치. 뵈마’는 말하였다.
악천후를 치르면 사람들이 자기들의 감소된 식량으로 굶주리는 사람들을 도울 것이라고 당신은 참으로 생각하는가? 혹은, 현대 식량 생산이 ‘에너지’에 의존하기 때문에 그들은 이들을 돕기 위하여 자기들의 ‘에너지’ 공급량을 희생할 것인가? 「뉴욕 타임즈」지는 최근 사설에서 이렇게 지적하였다. “부유한 미국인들은 ‘에너지’를 고속도로와 냉난방 장치에 소비할 것인가 아니면 ‘아프리카’와 ‘아시아’에 있는 전체 인구를 먹여 살리기 위하여 식량 생산에 사용할 것인가를 선택하는 문제에 멀지 않아 직면할 수 있다.”—1974년 3월 25일자.
농업 자급자족
가난한 국가들로 하여금 자급자족하도록 돕는 계획은 실속없이 시작되었다. ‘노먼 볼로그’ 박사의 1970년 ‘노벨’ 평화상 표창장은 그가 “앞으로 수년 동안에 개발 도상국의 굶주림을 해소시킬 수 있는 기술적 돌파구”를 마련하였다고 치하하였다. 그러나, ‘볼로그’ 박사는 자기의 녹색 혁명이 “해결책이 아니”라고 말하였다. 그것은 국가들이 인구 조절을 위하여 노력하는 동안 식량 위기를 늦출 수 있을 뿐이며, “세계 인구가 같은 비율로 증가한다면 종족 자멸에 이를 것이다” 하고 그는 말하였다.
이제 그 결과가 나타나고 있다. 우선, 이 과학 기술은 더욱 비싸지는 ‘에너지’와 비료와 살충제를 다량으로 요한다. 그 결과 부유한 경작자는 가난한 경작자들보다 훨씬 더 큰 유익을 얻고 있으며, 후자는 흔히 사용 엄두도 내지 못한다. 또한 부유한 농가는 가난한 농부의 토지도 모두 사들이므로 실직 문제만 가중되고 있다.
바로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한 국가가 녹색 혁명 기술을 사용하려고 집중적인 노력을 기울인 데 대한 보고서는 이렇게 지적하였다. “그들은 실패하고 있다. 그들의 낙관적 설계와 계획은 인간의 고통을 증가시켰을 뿐이며 동일한 고통이 더 있을 것을 깨닫게 해 주었을 뿐이다.”—1974년 1월호 「박물학」지.
경제 개발
태어나는 모든 사람을 먹여 살리려는 노력이 아니라 인구 성장률을 낮추려는 노력도 있다. 부유한 공업국들은 일반적으로 낮은 성장률을 가지고 있으며, 일부 국가는 “인구 무증가”라는 널리 칭송받는 목표에 접근하기까지 하고 있다. 그러한 나라의 국민은 물론 적게 낳아 잘 기르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반면에 농촌이 대부분인 저개발 국가에서는 자녀들이 일종의 재산으로 간주되고 있다. 부모는 그들이 농사일을 돕고 부모가 노령에 이르렀을 때에는 부모를 부양할 것을 기대한다.
그 결과 이러한 나라의 가족은 공업국의 가정보다 평균 거의 두배의 자녀를 두고 있다. 또한, “사람들은 두 세 자녀는 죽을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여섯 혹은 그 이상의 자녀를 둔다”고 ‘방글라데시’의 한 관리는 말하였다. 그리고 연구 조사에 의하면, 자녀를 잃는 가족은 흔히 자녀 모두가 생존하는 가정보다 더 많은 살아있는 자녀를 출산함으로 과잉 보상을 받는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은 인구 과잉에 대한 해결책이 경제 개발과 공업화 및 부모들이 과잉 보상을 받지 않도록 자녀를 잃지 않게 하는 충분한 조치에 있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그러나 「브리타니카 백과 사전」은 “인구의 과속 성장은 [경제적 투자]의 과도한 필요성을 수반한다. ··· 의식주를 제공해 주어야 할 증가하는 인구와 보조를 맞추기만 하는 데도 그러하다.”—제 14권 823면.
이것을 인정하고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현재 가난한 나라들을 발전시켜 출생률을 자연적으로 낮출 충분한 시간과 정력과 기타 자원이 없다는 데 동의하고 있다. 그러한 나라들을 발전시킬 수 있을지라도 그 결과가 느껴지려면 적어도 한 세대는 지나가야 한다. 그러므로 전문가들은 인구 성장이 먼저 줄어야 다음에 경제 개발을 이룩할 수 있을 것으로 말하고 있다. 그리하여 대두되는 문제가 있다.
산아 제한
많은 사람들은 성공적인 인구 계획의 일환이 어떤 형태의 산아 제한이라고 믿고 있다. 따라서 일부 국가는 가족 계획 운동에 자금을 투자하고 있으며 다른 부면의 도움을 줄이고 있다. 이 “해결책”에 대한 전망은 어떠한가? 실망이다.
낙태와 불임수술과 같은 “과격한” 산아 제한 조치에는 도덕적으로 파멸적인 부작용이 있다. 일본은 1948년에 낙태를 합법화하였다. ‘도꾜 니혼 대학교’ ‘우에노’ 교수는 “우리는 이제 그 법이 악법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하였다. 성 개방과 태아의 생명에 대한 무시는 그가 지적한 도덕적 문제에 속한다. “낙태가 피임의 대용이 되었음”은 1972년에 행해진 150만건의 수술로 증명된다. 그는 생명이 그처럼 경시될 때 다음 단계는 특정한 연령을 넘은 사람들을 죽음에 처하는 안락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아마 세계에서 최초로 가족 계획 운동을 펴 왔을 인도는 최근에 1980년에 출생률을 40‘퍼센트’ 감소시키려는 목표를 삭제하였다! 국민 대부분과 그들의 지도자들도 정부와 국제적 운동을 반대하고 있다.
이기적인 관심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가족 계획에 협조하지 않고 있다. 그들은 그들의 인종이나 종교 혹은 언어 집단이 정치적 세력을 획득 혹은 유지하기 위하여 수적으로 우월하기를 원하면서도 그들은 다른 집단은 인구가 감소하는 것을 기뻐한다. ‘라틴 아메리카’의 한 주요 나라는 금세기 내에 인구를 배증하기 위하여 그 곳의 산아 제한을 최근에 억제시켰다. 국력 증강의 기대와 인구 과잉의 인접국에 대한 우려가 이유로 지적되었다.
‘가톨릭’ 교회는 오랫 동안 종교 교리를 사용하여 여하한 형태의 “인위적” 산아 제한도 막아왔으며, 그리하여 궁핍한 대중을 크게 증가시켰다. 「브리타니카 백과 사전」은 전반적인 전망을 이렇게 약술하였다.
“인위적인 인구 조절이 강력한 도덕적 제한과 금기로 억제되는 것을 부인하는 것은 무익할 것이다. ··· 인구 조절의 가장 낙관적인 운동도 20세기 말까지 증가율을 약간 저하시킬 것을 기대할 수 있을 뿐이다.”—제 18권 54면.
25년 동안의 “약간 저하”가 당신에게 “해결책”으로 생각되는가?
“연합된” 행동?
이상의 모든 “해결책”의 실패는 인구 성장이 세계적 문제임을 세계 지도자들에게 인식시켜 주고 있다. 문명은 밀접히 상호 의존하게 되었으며, 국가들은 국제적 영향을 고려하지 않고는 더 이상 행동할 수 없게 되었다. 점점 더 많은 수의 지도자들이 세계가 협동적으로 인구와 관련된 제반 문제를 해결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따라서, 국제 연합은 1974년을 “세계 인구의 해”로 선언하였으며, 8월의 인구 조절 세계 회의를 소집할 계획이다.
이 회의에서 “세계 인구 대책”이 대두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것은 효력이 있을 것인가? 한 관측자는 그 계획이 “제안이라고 불러야 더 적절할 것”이라고 말하였는 데, 그것은 국가들이 각기 그들의 여건 하에서 참여하기를 “원할” 조치를 제시할 것이다. 급속도로 격화되는 상태를 고려할 때, “이 모든 것은 참으로 약한 시정책으로 보인다”고 이 저술가는 논평하였다.—「사이언스」 1974년 3월 1일호 833면.
많은 사람들은 강경한 세계적 행동이 없다면, 인구와 자연의 독재적 통제와 및 인간 자유의 상실로 인도할지 모르는 일련의 충격적 난관이 있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그들은 강제 낙태, 불임 수술과 심지어는 유전적 조절 및 약자의 제거와 같은 일도 예견하고 있다. 당신은 그러한 “해결책”이 당신에게 강요되는 것을 원하겠는가? 더 나은 해결책이 있는가?
[7면 삽화]
원인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증세를 퇴치할 때 세계 인구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은 실패로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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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 인구에 대한 진정한 해결책깨어라!—1974 | 10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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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 인구에 대한 진정한 해결책
당신은 “전문가들”이 제시한 “해결책”이 진정한 질병을 전혀 무시하고 문제의 증세 만을 퇴치함에 유의하였는가? 근본적인 문제는 참으로 인구 과잉인가?
그런 것이 아니라, 현 세상의 이기적으로 분열된 경제적 정치적 및 종교적 사물의 제도가 아닌가? 일부 사람들은 바로 그 점을 인식하기 시작하고 있다. 그들은 지상사를 관리하는 현재의 체제가 아닌 다른 새로운 체제의 필요성을 깨닫고 있다. 「환경 윤리학」이라는 책은 인간이 지상에서 생존하기 위한 첫 단계는 ‘인류가 인류 전체를 다룰 수 있는 어떤 형태의 세계 정부’임이 분명하다고 지적하였다.
그러나 인간들은 자기들의 이기적인 국가적 경쟁을 포기하고 공통적인 선을 추구할 것인가?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 예를 들면, 국제 연합은 최근에 강대국들이 군사비를 10‘퍼센트’ 감축하고 그만큼을 가난한 나라를 원조하는 데 사용하라는 제안을 승인하였다. 그러나 강대국들은 어떻게 하였는가? 그들은 그 제안을 무시하였을 뿐이다. 또한 국가들 내에서도 이기심이 보편적이다. 불공평이 존재한다. 예를 들면 미국에서 인구의 5분의 1은 재산의 76‘퍼센트’를 소유하고 있고 마지막 5분의 1은 단지 1‘퍼센트’를 소유하고 있다! 만일 국가들이 그러한 국내의 불공평을 조정하지 못한다면 그들이 어떻게 세계적인 규모로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믿을 수 있겠는가?
진정한 해결책은 새로운 종류의 세계 정부에 있다. 그러나 그러한 정부는 불완전하고 이기적인 인간들이 다스릴 수 있는 정부가 아니다. 비이기적이고 편벽이 없는 통치자가 다스리는 세계 정부의 필요성은 절실하다. 당신은 성서에서 하나님께서 그러한 세계 정부를 인류를 위하여 목적하셨음을 알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기록은 이러하다. “내가 또 밤 이상 중에 보았는데 인자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에게 나아와 그 앞에 인도되매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로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라. 옮기지 아니할 것이요 그 나라는 폐하지 아니할 것이니라.”—다니엘 7:13, 14.
당신이 그러한 생각을 비현실적이라고 혹은 종교적 망상이라고 일축하기 전에 세계 정부가, 그리고 하늘과 땅에서 목적이 일치한 통치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하여 보라. 그리스도는 완전하시므로, 그분과 모든 일들을 조화시킨다는 것은 세계적인 연합을 의미할 것이다. 그것은 수백 수천만의 인간이 필요한 의식주를 소유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한 모든 분열 요소에 종지부를 찍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이 지구가 인류에게 행복하고 안락한 집이 되도록 설계되었음에는 의문이 있을 수 없다. 창조물의 미묘한 아름다움과 폭넓은 다양성은 분명히 그것을 감식할 수 있는 지성있는 피조물을 위한 설계이다. 인간 자신이 땅의 자연미를 즐기며 그 자연적 순환과 조화하여 살도록 설계되었음을 증거한다. 매우 무디어진 도시 거주자들이라 할지라도 그들이 가까운 공원에라도 가면 때때로 시골과 숲속의 매력을 느끼지 않는가?
인구 과잉에 부가된 나쁜 상태는 현 이기적인 사물의 제도가 멀지 않아 예수 그리스도를 수반으로 하는 세계 정부로 대치될 징조라고 성서는 알려준다. (시 72:7, 8; 마태 24:3, 7, 8, 14; 누가 21:11, 25-28; 계시 6:1-8) 그 정부 하에서 사물을 올바른 상태로 회복할 때는 가까왔다. 그 다스림하에서 창조주께서 인간들을 지구의 자연 환경에 적절히 조화시키실 창조주의 표현이 마침내 달성될 것이다. 창조주께서 첫 인간 부부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고 말씀하신 바와 같다. (창세 1:28) 인류는 그러한 임명에 의도된 대로 땅을 ‘채웠’고 ‘정복’하였는가?
‘땅을 채움’
인간은 땅을 의미있게 정복하지 않고 지구의 자원을 악용하여 왔다. 그들은 파괴하는 일을 하여 왔다. 집중적인 대공업과 그 생산 방법은 지구의 천연 순환을 방해하여 왔고, 지금도 계속 그러하다. 산업 공해외에도 불량한 농사 관리는 “땅을 망하게” 하여 왔으며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어 증가하는 인구를 부양할 지구의 능력을 위태롭게 하고 있다.—계시 11:18.
수백만의 인간들은 땅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거대하고 불결한 도시에 집중하였다. 또한 국가들에 인구가 불평등하게 분포되어 있는 것은 “땅을 채우”는 일이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지적한다. 예를 들면, ‘캐나다’는 그 광대한 영토의 매 평방 ‘마일’에 평균 여섯명이 살고 있는 데 비하여, ‘방글라데시’는 200배가 넘는 1,300명이 살고 있다! 그러나 ‘땅을 채우려’는 창조주의 목적은 논리적으로, 어느 정도의 균일을 요하였을 것이다. 그러한 문제에 대한 그 분의 견해가 기원전 15세기에 ‘유다’ 땅을 소유한 사람들에 대한 그분의 이러한 명령에 나타나 있다. “그 땅을 ··· 나눌 것이니 수가 많으면 많은 기업을 주고 적으면 적은 기업을 [줄 것이니라].”—민수 33:54; 26:53-56.
분명히, 산악 지대와 기후가 특이한 어떤 지역은 다른 지역만큼 많은 사람을 부양할 능력이 없다. 그러나 인간이 만든 갈래갈래의 국경은 인간이 전체 인구로 공정하게 ‘땅을 채우지’ 못한 주된 원인이라는 것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하늘의 하나님이” 세우실 정부는 “다른 백성에게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그 정부는 세상의 이기적이고 분열된 “이 모든” 정부를 “쳐서 멸”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통치권과 영광과 왕국을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가 연합하여 “그를 섬기게” 하셨다. 그 목적이 실현될 때 모든 분열적 국경은 사라질 것이다! 그리스도에 의한 하나님의 왕국은 땅의 탐욕적이고 욕심많은 오염자들로 인하여 “폐하여 지지 아니할” 것이다.—다니엘 2:44; 7:13, 14.
땅이 다시는 지상 인구를 먹여 살리지 못한다는 비난을 받지 않을 것이다. 인간들이 자연의 순환과 법칙에 일치하게 일을 처리할 때 땅은 오늘날보다 훨씬 많은 인구를 돌볼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지구의 육지의 10분의 1정도가 식량 생산에 이용되고 있다. 다른 5분의 1은 목장과 초장이다. 지구의 육지 표면의 3분의 2가 넘는 “나머지는 숲이거나 생산 목적에 이용되고 있지 않다”고 「브리타니카 백과사전」은 설명하고 있다.
이 땅의 대부분을 개발할 수 있는 가능성을 생각하여 보라! 그리고 인류는 하나님께서 일찌기 지구를 창조하실 때에 “우두머리 일군”으로 사용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인도 하에 이 목적을 위하여 일할 것이다. “우두머리 일군”으로서 그분은 특히 “[하나님의] 땅의 생산적인 토지를 보고 기뻐”하셨으며 인류를 “좋아”하셨다. (잠언 8:22-31, 신세; 또한 골로새 1:16, 17 비교.) 우리는 그분이 이치적인 수용량까지 이 땅을 ‘채우는 일’을 인자하게 돌보실 때에 인류가 그분의 기뻐하심을 온전히 느낄 것을 확신할 수 있다.
지금도 자녀를 두기를 원하는 그리스도인은 그들이 ‘돌볼’ 수 있는 수보다 많지 않은 자녀를 두는 것이 성경적이다. (디모데 전 5:8) 그러므로 그때에 지상의 인구는 환경을 파괴하지 않을 혹은 후손을 굶주리게 하지 않을 지역 사회 생활과 전원 생활 혹은 그중 어느 생활의 표준에 맞을 만큼만 증가하도록 허락될 것이다.
그때에 인간들은 땅이 지상의 인구를 위한 온전한 생산력을 발휘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현대적인 관계와 재배 방법을 사용함으로써 일부 황무지가 놀랍게 변하였음을 깊이 생각하여 보라. 그리고 창조주의 축복으로 지구가 번영할 때에, ‘이사야’의 다음과 같은 말에 설명되어 있듯이, 지구의 생산력이 어느 정도가 될 수 있겠는가 생각하여 보라. “광야와 메마른 땅이 기뻐하며 사막이 백합화 같이 피어 즐거워하며 ···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이사야 35:1-6.
그 때에는, ‘솔로몬’ 왕 통치시대와 같이, “산꼭대기의 땅에도 화곡이 풍성할 것”이다. (시 72:16; 또한 이사야 65:17, 20-24; 25:6 비교) 이것이 유일하고 진정한 해결책이다.
오늘날 지상에는 모든 나라에 곧 실현될 이 해결책과 일치하게 지금 생활하는 법을 배우고 있는 그리스도인이 약 2백만명이 있다. ‘콜럼비아’ 대학교 생물학 교수 ‘데이비드 더불류. 에렌펠드’는 자기의 최근 저서(Conserving Life on Earth)에서 이 점을 지적하였다. “현대의 유대교 및 그리스도교 집단 가운데서 여호와의 증인만이 (살아있는 자연이 감할 수 없는 전체라는 신앙)을 공식으로 나타냈고 인간의 환경과 관련하여 인간의 철학을 균형 잡은 것 같다. (1971년 10월 8일호 「깨어라!」 참조)” 그들이 이것을 창시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성서에 있다. 그들은 당신도 그것을 배우도록 돕는 것을 기뻐할 것이다.—이사야 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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