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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부음받은 자가 관련된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이 세워지다인간의 유익을 위하여 지금 성공을 거두는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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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기름부음받은 자가 관련된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이 세워지다
1. 인류가 지상에서 어떠한 생활을 하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입니까?
지상에서의 인간 생활은 아름다울 수 있읍니다. 인간의 창조주의 생활은 아름답습니다. 인간 피조물의 생활도 아름답게 되는 것이 창조주의 뜻입니다. 인류의 존재를 파괴시킨 것은 바로 인류입니다. 그러나 인류의 성원 모두가 그렇게 한 것은 아닙니다. 인류는 지금까지 실패하였지만 이제 창조주의 인자한 목적은 인간 남녀가 아직도 지상에서의 생활을 스스로 아름답게 할 기회를 갖게 하는 것입니다.
2. (ㄱ) 인류는 어떠한 종류의 생활로 출발하였읍니까? (ㄴ) 하나님께서 인간이 죽음으로 인도하는 행로를 취하도록 계획하셨는지의 여부를 무엇이 알려줍니까?
2 시초에 인류의 생활은 아름다웠읍니다. 그 생활은 거의 6천년 전에 지상 낙원에서 시작하였읍니다. 그곳에서의 생활은 즐거웠으며, 그러기 때문에 그곳은 ‘에덴’ 동산 혹은 낙원이라고 불리웠읍니다. (창세 2:8, 두에이역 성서) 우리의 첫 인간 부모 즉 첫 인간 남녀는 완전하였으며 건강을 누리며 결코 죽지 않을 전망을 가지고 있었읍니다. 그들은 인간들이었으므로 멸성이었지만 그들의 창조주께서는 낙원에서 영원 무궁토록 살 수 있는 기회를 그들 앞에 두셨읍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시는 그들의 생명의 수여자께서는 그들의 영원한 아버지가 되실 수 있었읍니다. 그분은 그들이 죽음으로 인도하는 행로를 택하고 죽도록 계획하지 않으셨읍니다. 그분이 바라는 것은 그들이 그분의 영원한 자녀로서 영원히 사는 것이었읍니다. 3천여년 후에 그분은 그의 선민(選民)에게 이러한 말씀으로 이 점에 대한 그분의 성실한 감정을 표현하셨읍니다.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어찌 악인의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서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에스겔 18:23.
3.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인류가 낙원에서 계속 사는 것이었으므로 오늘날 우리에게는 어떠한 질문이 생깁니까?
3 그러므로 창조주께서는 낙원에 있는 결백한 인간 부부가 “악”하게 되어 죽기에 합당하게 되는 것을 원치 않으셨읍니다. 그분이 바라는 것은 그들이 계속 사는 것, 계속 살아서 온 땅이 그들과 같은 완전하고 행복한 후손들로 채워지고 그들이 창조주이신 하늘에 계신 그들의 아버지와 평화롭고 사랑에 찬 관계를 즐기는 것을 보는 것이었읍니다. 그러나 오늘날 온 인류는 죽어가고 있으며 이 오염된 지구는 결코 낙원이 아닙니다. 왜 이렇게 되었읍니까? 인간의 창조주께서는 성서 안에 그 설명이 기록되게 하셨읍니다.
4. 뱀이 낙원에서 인간의 눈에 띄게 나타난 것은 왜 이상한 일이었읍니까?
4 낙원을 무대로 하여 성서 창세기 3장이 시작됩니다. 모든 형태의 지상의 하등 동물들은 우리의 첫 인간 조상 ‘아담’과 ‘하와’에게 복종하였읍니다. 그들은 이들 지상의 하등 동물들, 심지어 뱀도, 무서워하지 않았읍니다. 그렇습니다. 낙원에는 뱀들도 있었으며 뱀들은 흥미있는 구경거리였읍니다. 수족이 없이 이동하는 것이 경이로왔으며, 그 설계는 하나님의 다양한 지혜의 표현이었읍니다. 그러나 뱀은 수줍은 동물입니다. 창세기 3:1은 이 파충류에 대하여 이렇게 논평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나하시’]이 가장 간교하더라. [가장 조심성있었다, 신세]” 그러므로 뱀은 인간을 해치기 위하여 숨어서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접촉하기를 꺼리는 경향이 있었읍니다. 그러나 이제 이상하게도, 지면 혹은 나무 위에 뱀이 있는 것이 뚜렷이 눈에 띄었읍니다. 이유는 무엇이었읍니까?
5. 뱀이 ‘하와’에게 질문하는 것은 왜 이상한 일이었으며, 왜 그것은 간접적인 하나님의 음성이 아니었읍니까?
5 창세기 3:1은 이렇게 계속합니다.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뱀이 어떻게 그런 것을 알았읍니까? 아니 뱀은 어떻게 그런 것을 이해하였읍니까? 또한 뱀이 이전에 여자의 남편 ‘아담’과 결코 이야기한 일이 없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도대체 뱀이 어떻게 인간의 언어로 말할 수 있었읍니까? 뱀이 인간에게 말한 일은 이전에 결코 없었으며 그 이후로도 없었읍니다. ‘하와’는 어떤 사람이 자기에게 말한다고 상상하지 않았읍니다. 그는 자신의 생각으로 자신에게 말하는 것도 아니었읍니다. 인간같은 음성이 뱀의 입에서 나오는 것 같았읍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읍니까? ‘하와’가 동산에서 자기 남편 ‘아담’의 음성 외에 들은 유일한 다른 음성은 하나님의 음성이었지만 그는 그분의 음성을 인간보다 낮은 어떤 동물을 통해서가 아니라 직접 들었읍니다. 뱀이 말한 내용으로 볼 때 그 음성은 어느 모로 보나 하나님의 음성이 아니었읍니다. 그 음성은 ‘하와’에게 하나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는지를 묻는 것이었읍니다.
6. 질문을 던지기 위하여 뱀을 사용한 질문자는 어떠한 방법을 사용하였으며, ‘하와’는 왜 대답하였읍니까?
6 ‘하와’가 그 질문에 대답하고 있을 때, 그는 그 뱀에게가 아니라 복화술사와 같이 뱀을 사용하고 있던 보이지 않는 지성적 존재자에게 말하고 있었읍니다. 이 보이지 않는 지성적 담화자는 하나님께 우호적인 자였읍니까, 혹은 그렇지 않은 자였읍니까? 보이지 않는 담화자가 ‘하와’에게 말하는 데 사용한 방법은 확실히 그 여자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 뱀이라고 착각하게 하려는 속임수였읍니다. 그 질문자는 보이는 뱀 배후에 자기의 정체를 숨겨 속이려고 하였읍니다. 그러나 ‘하와’는 뱀을 사용하는 이 담화자가 악의적으로 자기를 속이려 하고 있음을 분별하지 못하였고 인식하지 못하였읍니다. ‘하와’는 수상하게 여기지도 않고 이렇게 대답하였읍니다.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창세기 3:2, 3.
7. ‘하와’는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에 대하여 어떻게 알았읍니까?
7 ‘하와’는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라는 말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지적하였읍니다. 그러나 ‘하와’는 그 나무에 대하여 어떻게 알았읍니까? 하나님의 예언자 역할을 한 ‘아담’이 그에게 알려 주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하와’가 창조되기 전에 ‘아담’이 혼자 있을 때 하나님께서 바로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창세 2:16, 17) ‘하와’의 말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또한 금지된 나무를 만지지도 말라고 말씀하셨읍니다. 이와 같이 ‘하와’는 하나님의 율법을 범할 경우 받을 형벌에 대하여도 알고 있었읍니다. 그 형벌은 죽음이었읍니다.
8. 보이지 않는 질문자가 단순히 알아 보고자 하는 질문을 한 것인지의 여부를 무엇이 증명합니까?
8 만일 뱀 배후에 있던 보이지 않는 담화자가 단순히 알기 위하여 질문한 것이라면 대답을 듣고 나서 대화를 중지하였을 것입니다. 이 때 뱀이 금지된 나무가 위치한 동산 중앙에 있었는지, 혹은 뱀이 지면에 있었는지 아니면 나무 위에 있었는지는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화제가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 바로 그것이었다는 것입니다.
9, 10. 뱀 배후에 있던 보이지 않는 담화자는 어떻게 자신을 거짓말장이, 마귀, ‘사단’이 되게 하였읍니까?
9 평범한 뱀이었다면 어떻게 ‘하와’가 들은 다음과 같은 말을 할 줄 알거나 말할 권위를 가질 수 있었겠읍니까?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창세기 3:4, 5.
10 여기에서 보이는 뱀 배후에 있던 보이지 않는 담화자는 자신을 거짓말장이가 되게 하였읍니다. 그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과 반대되는 말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보이지 않는 담화자는 뻔뻔스럽게도 하나님께서 그릇된 동기를 가지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금하셨다고 주장함으로써 자신을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비방자 즉 마귀가 되게 하였읍니다. 그는 ‘하와’가 영원한 생명을 얻는 데 사랑에 찬 관심을 가지지 않았고, 오히려 그를 사망에 이르도록 책략을 꾸미고 있었읍니다. 사실 그는 ‘하와’에게서 죽음의 두려움을 제거해 주려고 하였읍니다. 곧 자기 손에 죽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알려진 계명을 범함으로 그분의 손에 죽는 것의 두려움을 제거해 주려고 한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담화자는 하나님께 반항하고 있었으며, 이렇게 하여 자신을 반항자를 의미하는 ‘사단’이 되게 하였읍니다. 그는 다른 자들도 하나님께 반항하게 하여 ‘사단’편에 두는 데 관심이 있었읍니다. 우리는 그러한 거짓말과 비방의 말을 한 진정한 담화자가 누구인지를 알고 있읍니다. 그것은 뱀이 아니었읍니다!
11. ‘하와’는 이제 하나님께 대한 충성과 남편에 대한 존경을 어떻게 나타내지 않았으며, 유혹을 받았읍니까?
11 불행히도, ‘하와’는 이 거짓말과 비방의 말을 논박하지 않았읍니다. 그는 사랑과 충성을 가지고 하늘에 계신 그의 아버지를 변호하지 않았읍니다. 그는 이제 자기의 남편 ‘아담’이 자기에 대한 머리 직분을 가지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았으며, ‘아담’에게 가서 이 문제에 있어서 자기가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아담’이 승인하는지의 여부를 물어보지 않았읍니다. ‘아담’은 속임수라는 것을 알려줄 수도 있었읍니다. 그러나 ‘하와’는 완전히 속았읍니다. 그는 거짓말장이, 비방자,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에 대한 반항자가 자기에게 제시한 그릇된 생각을 품었읍니다. 불순종할 때의 끔찍한 형벌에 대한 두려움을 사라지게 하였읍니다. 그는 자기의 마음 속에서 이기적인 욕망이 조성되는 것을 막지 않았읍니다. 그는 이 욕망에 이끌려 유혹을 받았읍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와 ‘아담’이 금단의 실과를 먹는 것이 나쁘다고 말씀하는데도 그는 악이 무엇이고 선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정하기로 결정하였읍니다. 따라서 그는 그의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셨음을 증명하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제 ‘하와’가 그 나무를 응시하자 그 나무는 매력있게 보였읍니다.
12. 금단의 실과를 먹음으로써 ‘하와’는 변명의 여지없이 무엇이 되었읍니까?
12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 먹[으니라].” (창세기 3:6) 이리하여 그는 하나님께 범법자, 범죄자가 되었읍니다. 그가 완전히 속았다는 사실이 그에게 구실이 되지 않았읍니다. 그는 그의 도덕적 완전성을 상실하였읍니다.
13. ‘아담’은 실과를 먹음으로 어떻게 하지 않았으며, 그에게 어떠한 결과가 왔읍니까?
13 그의 남편은 현장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독립적 행동을 막지 못하였읍니다. ‘하와’가 다음에 남편과 함께 있을 때, 남편으로 하여금 먹게 하려면 설복력을 사용하지 않으면 안되었읍니다. 남편은 결코 속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뱀을 통하여 말한 담화자를 거짓말장이로 증명하려고 하거나 여호와 하나님을 의롭고 유익한 방법으로 우주 주권을 사용하는 분으로 입증하려고 하지 않았읍니다. 그러면 ‘아담’이 ‘하와’의 범법 행위에 가담하였을 때 무슨 일이 있었읍니까? 창세기 3:6, 7은 이렇게 알려 줍니다:
“[여자가] 자기와 함께 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
14.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께서 단죄하시기 전에 무엇으로 인하여 그들 자신을 단죄하였으며, 그들은 하나님의 접근에 대하여 어떠한 반응을 보였읍니까?
14 그들은 이제 ‘선악을 아는 일에 하나님과 같이’ 되었읍니다. 즉 그들이 더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세우신 선악의 표준을 받아들이지 않고 선악을 판단하는 일에 스스로 재판자들이 되었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양심은 그들을 괴롭히기 시작하였읍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노출되었다고 느꼈고 몸을 가릴 필요를 느꼈읍니다. 그들의 벌거벗은 상태는 그들이 보기에도 여호와 하나님 앞에 나타나기에 더는 깨끗하고 순결한 상태가 아니었읍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옷을 만들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후손을 낳을 존귀한 목적으로 주신 그들의 국부를 가렸읍니다. 그리하여 그들 자신의 양심의 단죄적 증거는 주권자이신 주 여호와께서 그들을 단죄하시기도 전에 그들 자신을 단죄하였읍니다. 그러므로 기록은 이러합니다.
“그들이 날이 서늘할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매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가로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가라사대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고하였느냐?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실과를 네가 먹었느냐?”—창세 3:8-11.
15. (ㄱ) ‘아담’과 ‘하와’가 아무런 회개를 나타내지 않았다는 것이 무엇으로 증명됩니까? (ㄴ) 다음에 하나님께서는 뱀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읍니까?
15 ‘아담’과 ‘하와’는 이제 회개를 나타내지 않고 책임을 남에게 돌리려고 변명하였음에 유의합시다. “‘아담’이 가로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가로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창세 3:12, 13) 그러나 그러한 변명으로 이들 고의적인 범법자들의 죄가 면제 되지는 않았읍니다. 그러면 뱀은 어떠합니까?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육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종신토록 흙을 먹을찌니라.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씨, 신세]도 여자의 후손[씨]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씨]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창세 3:14, 15.
16, 17. (ㄱ) 뱀에게 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실제로 누구에게 적용되었읍니까? (ㄴ) 제1세기의 필자는 이 비하를 무엇에 비유하였읍니까?
16 이것은 뱀 종류 전체에 대한 저주가 아니었읍니다. 표면상으로는 그 한마리의 실제 뱀에게 한 말이었지만 그분은 뱀이 단지 이전에는 하나님의 순종하는 하늘의 아들이었던 초인간적인 보이지 않는 영자의 도구로 이용당하였을 뿐임을 아셨읍니다. 이 영자도 이기적인 욕망에 이끌리어 스스로 유혹을 받게 하였읍니다. 그것은 인류에 대한 주권, 여호와의 우주 주권으로부터의 독립을 얻으려는 욕망이었읍니다. 이 욕망을 그는 마음속에서 뿌리를 박고 자라게 하여 마침내 그것이 무르익어 주권자이신 주 여호와께 대한 범법과 반역을 일으키게 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범법한 영자는 바로 그 낙원에서 자신을 거짓말장이, 비방자 즉 마귀 그리고 반항자 즉 ‘사단’이 되게 하였읍니다.
17 그 이용당한 뱀에게 선언된 비하로 암시된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이 새로 등장한 거짓말장이, 마귀, ‘사단’을 비하시키셨읍니다. 제1세기의 한 성서 해설자는 이 비하를, ‘사단’이 ‘타타루스’ 즉 하나님으로부터의 계몽이 없는 영적 암흑의 승인받지 못하는 상태로 던져지는 것에 비유하였읍니다.—베드로 후 2:4, 신세 참조.
하나님의 기름부음받은 자가 예언되다
18. 이제 새로운 무엇이 발표되었으며, 그것에는 어떠한 특징이 들어 있읍니까?
18 여기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목적을 세우시고 그것을 선언하셨읍니다. 거짓말장이 ‘사단’ 마귀가 등장하였으므로 이제 기름부음받은 자—‘아담’의 언어로는 ‘마시아’(메시야)—를 일으키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 되었읍니다. (다니엘 9:25) 하나님께서는 이 기름부음받은 자, 곧 메시야를 “여자”의 “씨”라고 말씀하셨읍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기름부음받은 자와 뱀으로 상징된 ‘사단’ 마귀 사이에 적의를 두실 것입니다. 이 적의는 더욱 연장되어 기름부음받은 자와 큰 뱀의 “씨” 사이에도 존재할 것입니다.
19. (ㄱ) 이 “적의”는 어떠한 투쟁을 초래케 할 것입니까? (ㄴ) 여호와의 목적에 들어있는 기름부음받은 자는 왜 천적 메시야라야 합니까?
19 예언된 적의는 고통스러운 영향을 줄 전쟁을 초래할 것이지만 그것은 “여자”의 “씨”의 승리로 끝날 것입니다. 발꿈치를 무는 뱀과 같이 (창세 49:17) 큰 뱀 ‘사단’ 마귀는 여자의 “씨”의 발꿈치에 상처를 낼 것입니다. 이 발꿈치의 상처는 치명적이 아닐 것입니다. 그것은 치료될 것이며 여자의 “씨”는 큰 뱀의 머리에 치명상을 입힐 것입니다. 그리하여 큰 뱀은 사멸되고 그의 “씨”도 그와 함께 사멸될 것입니다. 이 투쟁에서 유의해야 할 중요한 점은 여인의 “씨”가 큰 뱀 ‘사단’ 마귀의 머리를 상하고 짓밟으려면 여자의 “씨”는 지상의 단순한 어떤 여자의 아들이 아니라 초인간적 영자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큰 뱀은 하나님의 반역한 천적 아들인 초인간적 영자이기 때문입니다. 지적 여자의 단순한 인간 “씨”는 영계에 있는 ‘사단’ 마귀를 멸할만큼 강력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목적에 들어 있는 기름부음받은 자는 천적 메시야라야 합니다.
20. 그러면 창세기 3:15의 “여자”는 누구입니까?
20 그러면, “씨” 곧 기름부음받은 자 즉 메시야를 낳을 “여자”는 어떠합니까? 그도 천적이어야 합니다. 머리가 상하여지겠다는 선고를 받은 뱀이 ‘하와’를 속이는 데 이용된 그 문자적인 뱀이 아니었듯이, 창세기 3:15에 있는 여호와의 예언의 “여자”도 지상의 문자적인 여자가 아닙니다. ‘하와’는 하나님의 법을 직접 범한 자였으며 그의 남편인 ‘아담’의 유혹자였읍니다. 그러므로 ‘하와’는 약속된 “씨”의 친 어머니가 되기에 합당하지 않았읍니다. 하나님의 예언적 “여자”는 상징적 여자라야 합니다.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기의 선민을 자기의 아내, 자기의 여자로 상징해서 이렇게 말씀하신 바와 같습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배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 나는 너희 남편임이니라.” (예레미야 3:14; 31:32) 이와 같이 거룩한 천사들로 이루어진 하나님의 하늘의 조직은 여호와 하나님에게 아내와 같으며, 이 아내가 “씨”의 천적 어머니입니다. 이 아내가 “여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 “여자”와 뱀 사이에 적의를 두십니다.
원래의 목적이 실패되지 않음
21. 이제 땅에 관한 하나님의 원래의 목적은 범법 사건으로 인하여 실패하게 되었읍니까?
21 그러나 여섯째 창조의 “날” 끝에 ‘아담’과 ‘하와’에게 말씀하신 땅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은 어떠합니까? ‘아담’과 ‘하와’가 사형에 해당하는 범법을 하였기 때문에 이제 실패로 돌아갈 것입니까? 이 원래의 목적은 지구의 전 표면이 낙원이 되고, 지상의 원 첫 남녀 곧 ‘아담’과 ‘하와’의 후손으로 채워지는 것이었읍니다. 하나님께서 밝히신 목적에 실패란 있을 수 없읍니다. ‘사단’ 마귀가 하나님의 목적을 실패로 돌아가게 하고 그분께 불명예를 가져오게 할 수는 없읍니다. 하나님의 원래의 목적이 여전히 성공적인 달성을 향하여 전진하게 되어 있음은 최고 심판관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자 ‘하와’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것으로 분명합니다.
22. (ㄱ) 땅을 사람으로 번성케 하는 일이 누구에 의하여 진행될 것이었읍니까? (ㄴ) 뱀의 머리가 상하는 것이 인류에게 유익이 될 것이라고 믿는 것이 타당하였읍니까?
22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 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창세 3:16) 이것은 이 원래 인간 부부에게서 지상 거주자들이 출생할 것이 허락되었음을 의미하였읍니다. 그 일은 지금까지 계속되어 왔으며 오늘날은 “인구 폭발”에 대한 염려가 화제에 오르내리고 있읍니다. 큰 뱀 ‘사단’ 마귀는 첫 인간 부부의 모든 후손에게 사망을 초래케 하였으므로 이 큰 뱀의 “머리”가 상하는 것은 그의 범법으로 인해 해를 입어온 이들 후손들에게 유익이 되어야 합니다. 정확히 어떻게 그러한 결과가 올 것입니까? 그것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적당한 때에 밝히실 일이었읍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원래의 목적을 성공시키는 데 기여할 것입니다.
23-25. (ㄱ) ‘아담’의 범법 행위에 대하여 언제 그에게 사형 선고가 내려졌읍니까? (ㄴ) 그러면 어떤 면으로, ‘아담’은 금단의 실과를 먹은 날에 죽었으며, 그의 후손은 어떠합니까?
23 이제 마지막으로, 범법의 순서에 있어서 세번째인 남자의 차례가 되었읍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그 금단의 실과를 먹는 날에 그는 정녕 죽으리라고 말씀하신 바 있읍니다. (창세 2:17) 그의 아내 ‘하와’가 해산의 고통 가운데 자녀를 낳으려면 ‘아담’이 그의 남편으로서 계속 살아서 그의 자녀의 아버지가 되어야 하였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경고는 어떻게 이행되었읍니까?
24 창세기 3:17-19은 이렇게 분명히 밝혀줍니다.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라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임이니라.” 이러한 판결의 말로써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 범법자에게 사형 선고를 내리셨으며 이 때는 바로 ‘아담’이 범법한 그 날이었읍니다.
25 사법적으로,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때, ‘아담’은 바로 그 날 사망하였으며 그의 범법한 아내 ‘하와’도 그 날 죽었읍니다. 낙원에서 행복하게 영원히 살 수 있는 기회와 전망은 그 두 사람에게서 사라졌읍니다. 그는 이제 자기의 범법 행위로 말미암아 죽은 자가 되었읍니다. 이제부터 그는 ‘하와’를 통한 후손에게 유전되는 인간 불완전성 때문에 죽어가는 인생과 단죄만을 전달해 줄 수 있었읍니다. 그의 모든 후손은 수천년 후에 시편 필자 ‘다윗’이 말한 바와 같이 이렇게 말할 수 밖에 없게 되었읍니다.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시 51:5) 하나님께서는 자기 선민에게 말씀하신 바와 같이 죄인인 모든 인류에게 이렇게 말씀하실 수 있읍니다. “네 시조가 범죄하였[나니라].” (이사야 43:27) 온 인류는 최고 재판장께서 ‘아담’에게 그의 죄에 대한 선고를 내리신 그 날에 ‘아담’ 안에서 죽었읍니다. ‘아담’은 선고를 받은 후에 신체적 사망을 피할 수 없었읍니다.
26. “하루”를 천년으로 볼 때에도 ‘아담’은 어떻게 그가 범법한 그날에 죽었으며, 그는 무엇으로서의 존재를 그쳤읍니까?
26 매우 적절하게도 “‘아담’의 역사의 책”은 이렇게 알려 줍니다. “[‘아담’이]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구백삼십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창세 5:1-5, 신세 참조.) 그는 천년에서 70년 모자라게 살았읍니다. 그의 후손 중 아무도 만(滿)천년을 산 자가 없었으며, 가장 오래 산 사람인 ‘무두셀라’도 969년 밖에 살지 못하였읍니다. (창세 5:27) 천년을 하루 같이 보시는 하나님의 관점에서도 ‘아담’은 인류 존재의 첫 천년인 첫“날” 안에 죽었읍니다. 그의 몸이 죽었을 때 그는 어디로 갔읍니까? 그의 “영혼”(‘네베스’)이 하늘에서 취한 것이 아니었으므로 그곳으로 “돌아가”지 않았읍니다. 그는 분명히 흙으로 돌아갔읍니다. 왜냐 하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그는 흙에서 취하여졌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그는 “산 영혼”으로서의 존재를 그쳤읍니다. (창세 2:7, 신세) 그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읍니다. 그의 아내 ‘하와’가 사망하였을 때에도 그 역시 “산 영혼”으로서의 존재가 그쳐진 것입니다. ‘바벨론’의 종교적 신화에 나오는 영원무궁토록 존재하는 영혼이란 없었읍니다.
낙원의 상실
27. 땅에 대한 저주는 지구의 어느 부분에 적용되었으며, ‘아담’이 저주받은 땅을 경작한다는 것은 그와 ‘하와’에게 무엇을 의미하였읍니까?
27 ‘아담’에 대한 하나님의 선고문, 특히 “땅은 ··· 저주를 받”으리라는 말씀은 ‘아담’이 낙원을 상실할 것을 의미하였읍니다. 그는 낙원을 상실하였읍니다. 낙원은 ‘하와’와 ‘아담’의 범법 때문에 저주를 받지 않았읍니다. 그 낙원은 여전히 생명의 장소였으며 그 안에는 아직도 “생명 나무”가 있었읍니다. 창세기 3:20-24은 이렇게 알려 줍니다.
“‘아담’이 그 아내를 ‘하와’라 이름하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미가 됨이더라.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 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 나무 실과도 따 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그 사람을 내어 보내어 그의 근본된 토지를 갈게 하시니라.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 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 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28. 무한한 생명이 왜 ‘아담’에게 더 이상 가능하지 않았읍니까?
28 여호와 하나님은 사망의 세력을 가지고 계시므로 ‘아담’에 대한 사형을 시행하기 위하여 그 사람을 생명 나무로부터 격리시키셨읍니다. ‘아담’의 아내는 자녀를 낳기 위하여 그의 남편을 따라갔읍니다. ‘하와’를 유혹하는 데 이용된 뱀이 하나님께 추방을 당했는지의 여부는 기록이 알려주지 않습니다. 무한한 생명은 ‘아담’과 ‘하와’에게 더 이상 가능하지 않았읍니다.
29. (ㄱ) 이제 하나님께서는 “여자”와 “씨” 사이에 어떻게 적의를 두셨읍니까? (ㄴ) 하나님의 발표된 목적은 땅에 대한 그분의 원래의 목적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으며, 지금 우리는 왜 기뻐할 수 있읍니까?
29 ‘에덴’ 동산 밖에서 ‘하와’가 자녀들에게 뱀을 미워하라고 가르쳤다는 기록은 없읍니다. 그러나 거룩한 천사들로 이루어진 하나님의 천적 조직, 창세기 3:15의 하나님의 예언에 나오는 참 “여자”는 즉시 큰 뱀인 ‘사단’ 마귀를 미워하기 시작하였읍니다. 그의 천적 남편인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 때문에 그 여자같은 조직은 그렇게 하였읍니다.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그의 “여자”와 큰 뱀 사이에 적의를 두셨읍니다. 그 여자가 큰 뱀의 머리를 상할 “씨”를 낳을 시기는 여호와 하나님의 목적 안에 들어 있었읍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그의 기름부음받은 자, 곧 그의 메시야가 관련된 목적을 세우셨으며, 그 사실을 거의 6천년 전에 하늘과 땅에 알리셨읍니다. 그것은 여러 시대 전 일입니다. 이 부가된 목적은 지상 낙원에 대한 하나님의 원래의 목적을 강화하고 그 목적의 성취를 확실하게 하는 것이었읍니다. 불변의 하나님께서는 아직도 그의 기름부음받은 자 곧 그의 메시야가 관련된 그 발표된 목적에 고착하십니다. 우리는 그 목적이 인간의 유익을 위하여 지금 성공을 거두고 있음을 크게 기뻐할 수 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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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 밖에서의 인간 생활—대홍수까지인간의 유익을 위하여 지금 성공을 거두는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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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장
낙원 밖에서의 인간 생활—대홍수까지
1. 하나님께서는 그분이 목적하신 “씨”에 대한 어떠한 두드러진 점을 알리셨으며, 따라서 어떠한 의문을 일으키게 합니까?
세월이 경과함에 따라, 하늘에 계신 인간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분께서는 우리의 마음에 공감을 불러 일으키는 “영원한 목적”의 한가지 특징을 알려 주셨읍니다. 그것은 그분이 목적하신 “씨” 곧 그의 천적 “여자”의 “씨”가 인류 가운데서 잠시 지상 생활을 할 것이라는 점이었읍니다. “씨”가 우리 인류 가운데 태어날 것이라는 사실은 우리의 머리에 즉각적인 의문을 일으키게 합니다. 즉 ‘아담’과 ‘하와’의 자손 중 어느 후손의 계열을 통하여 “씨”가 나올 것인가? 하는 의문입니다.
2. 하나님께서는 성서의 내용을 주로 무엇에 제한하셨으며, 왜 우리는 성서를 연구해야 합니까?
2 “씨”를 낳을 인간 후손 계열의 역사는 우리가 알아야 할 중요한 점입니다. 이 “씨”의 생활 행로와 무관한 백성과 나라들의 역사는 반드시 중요하거나 고귀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성서의 내용을 주로 이 “씨”를 낳을 후손 계열의 진행 과정을 알리는 것에 제한하셨읍니다. 우리가 이 성서 역사의 지식을 얻는다면 뱀을 상할 이 “씨”가 누구인지 식별할 수 있을 것이며, 가짜 씨, 거짓 씨에게 속지 않을 것이며 그릇 인도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속는다면 우리는 영원한 멸망을 당할 수 있읍니다. ‘에덴’ 동산에서 속임수를 사용하였고 참 “씨”와 적대관계에 있는 큰 기만자는 아직도 옛 수법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읍니다. 그는 우리 모두를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의 “씨”로부터 떼어 놓으려고 속이고자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서를 연구해야 합니다.
3. ‘아담’의 장남은 누구였으며, 따라서 ‘아담’의 아들 ‘셋’에 대하여 어떠한 질문이 생깁니까?
3 ‘히브리’어 성서에는 마지막에 올라 있는 책이 「말라기」의 예언서가 아니라 두 권의 「역대」기입니다. 이제 우리가 「역대」 상을 열어 보면 그 책은 ‘아담’ 이후의 열 세대의 계열로 시작되는 것에 유의하게 됩니다. 인용하면 이러합니다. “‘아담’, (1) ‘셋’, (2) ‘에노스’, (3) ‘게난’, (4) ‘마할랄렐’, (5) ‘야렛’, (6) ‘에녹’, (7) ‘므두셀라’, (8) ‘라멕’, (9) ‘노아’, (10) ‘셈’, ‘함’과 ‘야벳’.” (역대 상 1:1-4) 낙원 밖에서 ‘아담’의 장남으로 태어난 아들은 ‘셋’이 아니라 ‘가인’이었으며, ‘아벨’이 다음으로 이름이 언급된 ‘아담’과 ‘하와’의 아들이었읍니다. (창세 4:1-5) 그러면 ‘노아’까지 이르는 후손 계열에 왜 ‘셋’이 올라 있읍니까?
4. 하나님께서 ‘셋’이 ‘아담’의 후손 계열에 첫 사람으로 올라 있도록 계획하지 않으셨음을 무엇이 알려줍니까?
4 여호와 하나님께서 당초에 그렇게 계획하신 것입니까? 아닙니다. 만일 그렇게 계획하셨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가인’이 그의 동생 ‘아벨’을 죽일 것과 그렇게 해서 오늘날 인류의 조상이 될 자격을 상실하도록 계획하셨다는 뜻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또한 ‘아벨’이 무참히 살해되어 후손을 낳을 수 있기 전에 일찍 끊어지게 하여 ‘셋’이 그를 대신하도록 계획하시지도 않았읍니다. (창세 4:25) 하나님께서 ‘셋’으로 대치하기 위하여 ‘아벨’이 살해되도록 계획하시지 않았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하신 경고로 보아도 분명합니다. ‘가인’을 하나님께 드린 자기의 제사가 배척되고 그의 동생 ‘아벨’의 제사가 가납된 것을 분개하였을 때 그로 말미암아 심각한 죄에 빠지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경고를 받았던 것입니다.—창세 4:6, 7.
5, 6. ‘셋’이 ‘아담’의 모양과 형상을 닮게 태어 났다는 것은 그에게 무엇을 의미하였으며, 그가 그의 아들에게 ‘에노스’라는 이름을 지어준 것은 그가 이 사실을 알았다는 것을 어떻게 알려 줍니까?
5 결코 여호와 하나님께서 당초부터 그렇게 계획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오랜 후에야 그 약속된 “씨”, 곧 메시아가 육체로 출생하기까지 이어질 후손의 계열을 시작하게 될 ‘아담’의 아들이 태어났읍니다. ‘아담’으로부터 이 은총받은 후손 계열이 늦게 시작하였다는 사실이 창세기 5:3에 나타나 있으며 그 내용은 이러합니다. “‘아담’이 일백 삼십세에 자기 모양 곧 자기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니라].” ‘아담’의 모양과 형상을 닮은 혹은 ‘아담’과 같은 종류인 ‘셋’은 불완전하였고 죄를 유전받았으며 따라서 죽음의 단죄 아래 있었읍니다. 이 사실을 알았다는 것은 ‘셋’이 그의 아들에게 지어준 이름으로 증명되는 것 같습니다. 그에 관한 기록은 이러합니다. “‘셋’도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에노스’라 하[니라].” (창세 4:26) 그 이름은 “병약한, 병적인, 불치의”라는 의미입니다.
6 이와 일치하게 ‘히브리’어 ‘에노스’가 고유명사로 사용되지 않을 때에는 멸성 인간으로 번역됩니다. (신세) 예를 들면, 격심한 고통을 당하던 ‘욥’은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사람[멸성 인간, 신세; ‘히브리’어: ‘에노스’]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크게 여기사 그에게 마음을 두시[나이까?]”—욥 7:17; 15:14; 또한 시편 8:4; 55:13; 144:3; 이사야 8:1.
7-9. (ㄱ) ‘에노스’ 시대에 어떠한 종교적 관습이 시작되었읍니까? (ㄴ) 이 관습이 인간에게 유익하였는지의 여부를 무엇이 알려 줍니까?
7 ‘아담’의 손자 ‘에노스’의 생애에는 주목할 점이 있었읍니다. 창세기 4:26은 이에 주의를 돌려 ‘셋’이 ‘에노스’를 낳은 것과 관련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에노스’는 ‘셋’이 백 오세 되었을 때 태어났으며, 따라서 그 때는 ‘아담’이 창조된 지 235년 후였읍니다. (창세 5:6, 7) 그 때까지는 지상의 인구가 ‘아담’의 많은 자녀들간의 결혼과 그들의 후손의 결혼을 통하여 증가해 있었읍니다. 이와 같이 증가하는 인구 가운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한 것은 인류에게 은혜로운 그리고 하나님께 영예로운 것이었읍니까? 그것은 현대 복음주의자들이라면 “종교적 부흥”이라고 부를 만한 일이었읍니까? ‘애굽’의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들이 번역한 고대 희랍어 「칠십인역」은 이 ‘히브리’어 귀절을 이렇게 번역하였읍니다. “그리고 ‘셋’은 아들을 낳았으며, 그의 이름을 ‘에노스’라고 불렀다: 그는 주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기를 바랐다.”—창세 4:26, 「칠십인역」, ‘에스. 백스터 앤드 선즈’사 판.
8 「예루살렘 성서」 번역판도 비슷한 사상을 표현하고 있읍니다. “이 사람이 야훼의 이름을 염원한 첫[사람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번역은 충실한 ‘아벨’이 질투심으로 가득찬 ‘가인’에게 살해되기 전에 그가 여호와께 가납된 숭배를 드렸다는 것을 고려에 넣고 있지 않은 것입니다. 「신 영어 성서」에는 이렇게 되어 있읍니다. “그 때에 사람들은 이름으로 주를 염원하기 시작하였다.” (또한 「신 미어 성서」) 그러나 고대 ‘팔레스타인 타감’은 호의적이 아닌 견해를 취합니다. 유명한 ‘라시’(기원 1040-1105년의 ‘랍비’ ‘셀로모 이차키’)는 창세기 4:26을 이렇게 번역하였읍니다. “그 때에 속된 것들이 주의 이름으로 불리웠다.” 다시 말하면 사람들과 무생물들에게 여호와의 특성을 부여하여 그렇게 불렀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 때에 여호와의 이름으로 우상 숭배가 시작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9 여호와의 이름으로 부르는 일이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었음은 ‘에노스’가 출생한지 387년 후에야 하나님의 인정을 받은 사람이 태어난 사실로도 증명됩니다. 그 사람은 ‘에녹’이었읍니다.
낙원 밖에서 하나님과 동행함
10. ‘에녹’이 참 하나님과 동행하였다는 말은 그보다 더 오래 산 부친 ‘야렛’에 대하여 무엇을 알려 줍니까?
10 기원전 3404년(즉 세계 기원 622년)에 출생한 ‘에노스’의 이 현손에 관한 기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에녹’은 육십 오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년을 [참]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삼백 육십 오세를 향수하였더라.” ‘에녹’의 생애는 비교적 짧은 것이었읍니다. 그의 아버지 ‘야렛’은 962세를 살았고 그의 아들 ‘므두셀라’는 969세를 살아 기록상 가장 장수한 사람이 되었읍니다. 그러나 ‘에녹’은 “[참] 하나님과 동행”하였읍니다. ‘에녹’이 출생한 후 8백년을 더 산 ‘야렛’에 대하여는 이러한 말이 없읍니다. (창세 5:18, 19) 그러므로 ‘야렛’의 믿음은 하나님께 대한 ‘에녹’의 믿음에 비교되지 않았으며 그는 하나님의 뜻 혹은 선언된 목적에 따라 걷지 않았음이 분명합니다.
11. ‘에녹’은 무슨 예언을 하였으며, 이것은 사람들의 어떠한 상태를 반영하는 것이었읍니까?
11 신빙성있는 기록은 ‘에녹’이 참 하나님의 예언자였음을 알려줍니다. 기원 제1세기에 기록된 서한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읍니다. “‘아담’의 칠세 손 ‘에녹’이 사람들에게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여호와]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이는 뭇 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치 않은 자의 경건치 않게 행한 모든 경건치 않은 일과 또 경건치 않은 죄인의 주께 거스려 한 모든 강퍅한 말을 인하여 저희를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 (유다 14, 15) 이 예언은 틀림없이 당시 ‘에녹’ 시대에 있었던 종교적 상태를 반영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모든 경건치 않은 자들에게 여호와의 불리한 심판이 다가 온다는 영감받은 예언, 이미 발생한 것 같이 확실한 예언을 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이겠읍니까? ‘에녹’은 당시 경건치 않은 사람들 중 한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를 예언자로 사용하실 수 있었읍니다. ‘에녹’은 그 당시 아직도 ‘그룹’이 지키고 있는 낙원밖에서 살고 있었지만 그는 “참 하나님과 동행”하였읍니다.
12, 13. ‘유대’교 사상과 그리스도교국의 사상에 의하면 ‘에녹’은 어디로 옮겨졌읍니까?
12 그러면 ‘에녹’이 그 당시 비교적 짧은 생애를 가졌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창세기 5:24이 알려 줍니다. “‘에녹’이 [참]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13 하나님께서 ‘에녹’을 데려가셨을 때, 아마 그는 어떤 비참한 곤경에 처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에녹’의 적들이 그를 죽이려고 위협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가 횡사당하지 않도록 그를 데려가셨읍니까? 우리는 알 수 없읍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그를 어디로 데려 가셨는가? 라는 질문이 생깁니다. 일부 ‘유대’교 사상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를 하늘로 데려가셨읍니다. 그것이 오늘날 그리스도교국 내의 사상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기원 제1세기에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편지 안에 ‘에녹’에 대한 논평이 있었는데, 금세기의 ‘제임스 모팻’ 박사에 의한 성서 새번역은 히브리 11:5을 이렇게 번역하였읍니다. “바로 믿음 때문에 ‘에녹’은 하늘로 옮겨졌으며 따라서 그는 결코 죽지 않았다(그에게 죽임이 닥친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그를 데려가셨기 때문이다.)” 「신 영어 성서」에는 이렇게 되어 있읍니다. “믿음에 의하여 ‘에녹’은 죽음을 거치지 않고 다른 생명으로 이동되었다. 하나님께서 그를 데려 가셨기 때문에 그는 보이지 않았다. 왜냐 하면 그가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다는 것이 성경의 증거이기 때문이다.”—또한 「예루살렘 성서」 참조.
14.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에녹’에게 하늘로 옮겨질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였는지의 여부를 무엇이 알려줍니까?
14 그러나 시편 89:48은 이렇게 질문합니다. “누가 살아서 죽음을 보지 아니하고 그 영혼을 음부의 권세에서 건지리이까?” 그러므로 ‘에녹’은 죄인 ‘아담’으로부터 죽음의 유전을 받았으며 그도 역시 참 하나님과 동행하였지만 죽지 않을 수 없었읍니다. 그 후의 기록을 보면 ‘에녹’의 증손 역시 “[참] 하나님과 동행”하였읍니다. 그러나 이 후자의 생명은 감하여지지 않았읍니다. 그는 ‘아담’보다 더 장수하여 950년 즉 50년 모자라는 천년을 살았읍니다. (창세 6:9; 9:28, 29) 따라서 ‘에녹’이 그의 증손보다 짧은 기간 하나님과 동행했다고 해서 그가 하늘 혹은 다른 생명으로 이동할 수 있는 자격은 부여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마치 ‘노아’가 오랫 동안 하나님과 동행했다고 해서 그에게 그러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자격이 부여되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15. 그러면 어떻게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도록 옮기웠을 것입니까?
15 예언자 ‘모세’는 120세에 사망하였고 하나님께서 그를 매장하셨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아무도 ‘모세’의 매장지를 알지 못합니다. (신명 34:5-7) 하나님께서 ‘에녹’을 동시대의 사람들로부터 갑자기 옮기셨으므로 ‘에녹’이 어디에서 사망하였는지 그의 무덤이 어디에 있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는 적들의 손에 횡사당하지 않았읍니다. 그는 예언자였으므로 예언적 황홀경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하나님의 새로운 사물의 질서에 관한 환상을 보고 있었을 수도 있읍니다. (이사야 25:8) ‘에녹’은 그 새 질서에서 낙원이 된 땅에서 살 것을 기대하였읍니다. ‘에녹’이 인류가 하나님의 자비로운 마련에 의하여 사망에서 벗어날 낙원에 대한 그 환상의 힘에 압도되어 있을 때 하나님께서 그를 그 곳에서 옮기어 그의 현 생명을 끝나게 하심으로 ‘에녹’이 죽는 것을 느낄 수 없게 하셨을 수도 있읍니다. 그러한 놀라운 방법으로 히브리 11:5에 기록된 다음의 내용이 성취되었을 것입니다.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 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홍수 전 시대
16. 우리는 ‘아담’과 ‘므두셀라’가 서로 알았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아낼 수 있읍니까?
16 ‘에녹’의 아들 ‘므두셀라’는 세계적인 대홍수가 있기 969년 전에 태어 났으며 따라서 그는 대홍수가 나던 해에 죽었읍니다. ‘므두셀라’는 ‘아담’으로부터 계산하면 8대손이지만 그는 그의 첫 인간 조상 ‘아담’을 알고 있었읍니까? 그렇습니다. ‘아담’은 홍수가 있기 1656년 전에 창조되었읍니다. 그는 930년을 살았읍니다. ‘므두셀라’의 나이에 그의 나이를 더하면 1899년이 됩니다. 그 수에서 1656년을 빼면 243년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아담’과 ‘므두셀라’의 생애는 243년간 서로 겹쳐 있읍니다.—창세 5:5, 21, 25-27.
17. ‘므두셀라’의 아들 ‘라멕’은 ‘노아’가 출생할 때, 어떠한 예언을 하였으며, 그 이름은 왜 적절하였읍니까?
17 ‘므두셀라’는 다가오는 세계적 대홍수에 대한 경고가 선포되는 것을 그의 생애에 들을 수 있었읍니다. 그리고 그는 인류 가운데에서 얼마의 사람들이 그 세계적 재난을 생존할 준비를 거의 완성시키는 것을 보았읍니다. 그는 그의 손자 ‘노아’가 의를 전파하고 인간이 구원받을 수 있는 수단을 준비하는 것을 볼 수 있었읍니다. ‘므두셀라’의 모든 아들들 가운데서 ‘노아’를 낳은 아들은 ‘라멕’이었읍니다. ‘노아’가 출생할 때 ‘라멕’은 영감을 받아 그에 관하여 예언하였읍니다. 그 예언은 ‘라멕’의 아들 ‘노아’를 사용하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임을 알려 주었읍니다. 그 기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라멕’은 일백 팔십 이세에 아들을 낳고 이름을 ‘노아’라 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로이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하였더라.” ‘라멕’은 대홍수가 있기 약 5년전까지 살았읍니다. (창세 5:27-31) ‘노아’라는 이름은 ‘라멕’의 예언과 일치하였읍니다. 왜냐 하면, 그것은 “휴식”을 의미하며 휴식으로부터의 위안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아담’의 범법 때문에 하나님께서 저주하신 땅으로부터 하나님의 저주는 거두어질 것이었읍니다.—창세 3:17.
18. ‘노아’의 생애 중 언제 대홍수가 시작하였으며, 그 후 언제 끝났읍니까?
18 대홍수는 ‘노아’의 나이 6백세가 되던 해에 닥쳤으며 그의 601세가 되던 해까지 계속하였읍니다. (창세 7:11; 8:13; 7:6) ‘노아’ 시대에 발생한 세계적 재난은 우리 세대내에 불원간 발생할 더 큰 세계적 재난을 전영하였으며, 이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고려할 가치가 있읍니다.—잠언 22:3.
19. ‘노아’의 행로는 어떻게 ‘에녹’과 같았읍니까?
19 기원전 2970년(세계 기원 1056년)에 출생한 ‘노아’는 여러 세기 동안 자식이 없었읍니다. “‘노아’가 오백세된 후에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더라.” (창세 5:32) ‘노아’는 아들을 낳기 전에도 그가 어떠한 사람임을 증명하였읍니까? “‘노아’의 사적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더라.]” (창세 6:9, 10) 그러므로 ‘노아’는 ‘에녹’과 같았읍니다.
20. ‘노아’ 시대에 지상에 있었던 것으로 보고된 “하나님의 아들들”에 대하여 어떠한 질문이 생깁니까?
20 ‘노아’는 ‘셋’과 ‘에녹’의 후손으로서 역시 “[참] 하나님과 동행하였”지만 ‘참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리우지는 않았읍니다. 그가 그와 같이 불리우지 않았었다면 죄인 ‘아담’의 후손이 살던 그 시대에 지상의 다른 누가 그렇게 불리울 수 있었겠읍니까? 그렇다면 ‘노아’ 시대에 지상에 나타났다고 보고된 다음과 같은 자들은 누구였읍니까?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참]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 이십년이 되리라 하시니라.”—창세 6:1-3.
21. “[참] 하나님의 아들들”은 누구였으며, 그들은 무엇을 하려는 욕망에 사로잡히게 되었읍니까?
21 이들 “[참] 하나님의 아들들”은 하늘에서 온 천사들이었음이 분명하며 그들은 그때까지 거룩한 “참 하나님의 아들들”로 이루어진 여호와의 천적 조직 곧 약속된 “씨”의 어머니가 될 여호와의 상징적 “여자”의 일부였읍니다. 그들은 인간이 거주할 땅의 기초가 놓일 때에 여호와의 창조 사업을 관찰하고 환성을 올렸었읍니다. (욥 38:7; 창세 3:15) 그들은 인류 사이에서 행하여지는 결혼, 특히 아름다운 여자들의 결혼을 관찰하고 지상에서 자기들도 여자들과 성생활을 즐기려는 욕망에 사로잡히게 되었읍니다.
22. 이들 “[참] 하나님의 아들들”은 어떻게 그들의 욕망을 충족시켰으며, 그리하여 범죄하였읍니까?
22 영물들인 그들이 어떻게 지상에서 육체를 가진 여자들과 성관계를 가질 수 있읍니까? 그들은 멋진 남성의 육체로 물질화하여 인간 아내들을 취하고 그들과 성관계를 가졌읍니다. 창조주이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같은 본성을 가진 지상의 육적 피조물 사이의 결혼만 인정하시고 영물과 육적 인간 피조물 사이의 결혼을 인정하신 일이 없읍니다. 그러므로 이들 “[참] 하나님의 아들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임명과 파견을 받아 그의 사자로 봉사하기 위하여 지상에 왔거나 물질화한 것이 아니었읍니다. 그들은 영과 인간, 천적인 것과 지적인 것의 본성을 혼란시키기 시작하였읍니다. (레위 18:22, 23) 분명히 이들 “[참] 하나님의 아들들”은 범죄하고 있었읍니다.
23. 하나님께서는 죄많은 인류를 오랫 동안 어떠한 정신으로 대하셨으며, 그러나 그는 어떻게 선언하셨읍니까?
23 ‘아담’이 ‘에덴’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우주 주권에 반역한지 천년 이상이 지나갔읍니다. 여호와께서는 죄 많은 인류에 대하여 참을성과 인내의 정신을 가지고 행동하셨읍니다. 이미 ‘노아’의 증조부 ‘에녹’ 시대에도 인류는 전반적으로 ‘불경건’하기로 유명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그들은 여자들과 물질화한 천사들 사이의 결혼을 통하여 새로운 형태의 도덕적 부패와 성 도착 행위를 시작하고 있었읍니다. 참을성있는 창조주께서 관용과 자제의 정신으로 타락한 인류를 대하는 일을 중지할 때가 오기에 합당하였읍니다. 하나님께서 마침내 이렇게 선언하신 것은 전적으로 정당하였읍니다.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 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 이십년이 되리라.”—창세 6:3, 신세 참조.
24. (ㄱ) 하나님께서는 그 때 ‘모세’의 경우와 같이 연령을 제한하신 것입니까? (ㄴ) 그러면 무엇이 시작되었으며, 왜 관대하게 시간을 허용하셨읍니까?
24 그것은 120세까지 산 예언자 ‘모세’의 경우와 같이 인간의 연령을 제한한다는 말이 아니었읍니다. 그것은 불경건한 인류 세상이 세계적 대홍수까지 단지 120년을 더 존재할 것이라는 하나님의 명령이었읍니다. 그러므로 이 명령은 세계 기원 1536년 즉 기원전 2490년에 발표되었읍니다. 이것은 그 때에 ‘노아’ 시대의 그 불경건한 세상에 “마지막 때”가 시작되었음을 의미하였읍니다. 목적을 가지고 계신 하나님께서는 일의 시기를 정하신 것입니다. 그분께서 “[참] 하나님의 아들들”이 행하는 그러한 충격적인 일을 계획하시지 않았지만 그분은 여전히 전적인 지배권을 가지고 계셨고 의외의 사건을 처리하실 수 있었읍니다. 그분은 전지 전능하십니다. 그분이 그 불경건한 세상이 끝나기 전에 그러한 긴 기간을 허락하신 것은 사려깊은 일이었읍니다. 왜냐 하면 ‘노아’가 아버지가 되기 20년 전에 하나님의 명령이 있었고 그는 세 아들을 낳아 이들이 자라서 결혼을 하고 아버지와 함께 험악한 대홍수를 생존하기 위한 준비를 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창세 5:32; 7:11.
‘네피림’
25, 26. 천사와 여자들 사이의 결혼 생활에서 나온 후손은 무엇이라고 불리웠으며, 그 이유는 무엇이었읍니까?
25 ‘[참] 하나님의 정욕적인 아들들’과 여자들 사이의 잡혼이 끝날 날은 정해졌읍니다. 그러나 물질화한 영들과 생식 능력을 가진 육적 여성들의 혼합으로 후손이 출생하는 것이 가능하였읍니까? 창세기 6:4이 대답이 되는 사실을 알려 줍니다.
“당시에 땅에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취하여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이 용사라. 고대에 유명한 사람이었더라.”
26 이들 잡혼에서 태어난 자식들은 잡종이었으며 ‘네피림’이라고 불리웠읍니다. 이 이름은 “넘어뜨리는 자들”을 의미하며, 이들 힘센 잡종 아들들이 난폭하게 다른 사람들을 쳐서 넘어뜨리거나 약한 사람을 넘어지게 하였음을 암시합니다. 이들 ‘네피림’이 태어나고 자라서 난폭한 생활을 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을 것입니다. 그들은 잡종이었으므로 보통 그들과 같은 잡종을 낳을 수 없었읍니다.
27. 무엇을 지면에서 쓸어버리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었으며, 그 이유는 무엇이었읍니까?
27 불순종하여 물질화한 “[참] 하나님의 아들들”이 그렇게 인간들과 밀접히 섞인 것은 인간 가족에게 유익하지 못하였읍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 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창세 6:5-8) 여호와께서는 자기가 창조한 인간이 그렇게 도덕적으로 영적으로 타락한 것을 유감스럽게 여기셨읍니다. 그렇게 타락한 성품을 가진 사람들이 땅에 있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었읍니다. 이들을 땅에서 쓸어버리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었읍니다. 그러나 의로운 ‘노아’가 끼어있는 인종을 없애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 아니었읍니다.
28. 왜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께서 홍수 전의 땅의 그 폭력 상태를 끝내실 목적을 가지신 것에 대하여 감사할 수 있읍니까?
28 ‘노아’와 그의 가족과는 매우 대조적으로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패괴하여 강포가 땅에 충만”하였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패괴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있는 자의 행위가 패괴”하기 때문이었읍니다. (창세 6:11, 12) 대홍수 전 그 시대에 인류 세상은 폭력 시대에 돌입한 것입니다. 오늘날의 세상은 기원 1914년 이래 관측자들이 말하는 이른바 “폭력 시대”에 돌입하였으며, 그 해에 제1차 세계 대전은 모든 폭력과 함께 발발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질문할 수 있읍니다. 만일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대홍수 전의 그 “폭력 시대”가 중단되지 않고 계속되도록 허락하셨다면 오늘날 세상 상태는 어떠할 것인가? 그 가능성은 생각만하여도 끔찍합니다. 땅은 너무나 위험하여 벌써 오래 전에 사람이 살지 못하는 장소가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 홍수 전의 “폭력 시대”를 중지시킬 목적을 가지신 것에 대하여 감사할 수 있읍니다.
한 세상은 끝났으나 한 인종은 생존하다
29. ‘노아’에 대한 여호와의 지시는 땅에 대한 하나님의 어떠한 목적과 일치하였읍니까?
29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낙원 상태 가운데 첫 인간 남녀의 후손으로 땅을 충만케 하시려는 원래의 목적에 고착하셨읍니다. 또한 메시야를 낳을 후손 계열이 보존되어야 하였읍니다. 이와 일치하게 여호와께서는 순종적인 ‘노아’에게 ‘노아’와 그의 가족 및 육서 동물과 비둘기, 까마귀 등 하늘의 나르는 피조물의 기본 종류를 수용할 수 있는 크기의 방주(즉, 물에 뜨는 상자)를 만들라고 지시하셨읍니다. 방주에는 그것을 다른 곳으로 이동시키기 위한 ‘스티임 엔진’이나 ‘디이젤 엔진’이 없었고 연료가 없었읍니다. 그것은 타고 있는 산 사람들과 동물들 및 1년 혹은 그 이상 필요한 식량을 실은채 떠 있었읍니다.—창세 6:13-7:18.
30. 둘째 창조의 “날” 이후로 지구와 지구 주위에 있었던 어떠한 천연 상태가 그러한 전 지구적 홍수를 가능하게 하였읍니까?
30 이러한 지구 전체를 덮는 홍수의 가능성을 이해하기 위하여 우리는 이 지구 전체와 관련된 상태를 머리에 그려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지구 표면에는 바다위에 솟아있는 크고 작은 육지들이 있었읍니다. 이 모든 것 위로 인류와 기타 생물들이 호흡하는 대기가 있는 궁창 혹은 창공이 있었읍니다. 그러나 그 위에는 담요와 같이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깊은 물덮개가 있었으며 창조주께서는 둘째 창조의 ‘날’에 과학적으로 정확히 그것을 높이셨읍니다. 그것은 지구 주위의 포장지같이 공중에 떠 있었으며, 창조주의 목적과 명령에 따라서만 지구로 다시 내려 앉을 수 있게 되었읍니다. (창세 1:6-8) 제1세기의 영감받은 성서 해설자는 그것을 이렇게 훌륭히 묘사하였읍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옛부터 하늘이 있었고 땅은 물에서 조밀하게 나와 물 가운데 서 있었읍니다.”—베드로 후 3:5, 신세; 예루살렘 성서.
31, 32. ‘노아’의 통계는 대홍수에 대하여 무엇을 알려 주었읍니까?
31 세계적 대홍수는 ‘바벨론’에 근원을 둔 신화가 아닙니다. 그것은 오늘날까지 지상에 영향을 미친 역사적 사실입니다. 홍수가 있었던 일자와 시간이 기록되어 있읍니다. ‘노아’의 방주 일지에 따르면 홍수는 그의 6백세 되던 해 음력 둘째달 17일에 시작하였읍니다.
32 다음에 ‘노아’는 물이 하늘에서 40일간 계속 내렸다고 일지에 기록하였읍니다. 당시 산 꼭대기도 15‘규빗’의 깊이로 홍수에 덮였읍니다. 음력 7월 17일에 방주는 ‘아라랏’ 산에 닿았읍니다. 창조주의 능력에 따라서 지구의 표면에 새로운 물 웅덩이가 형성되어 홍수물이 빠지기 시작하였읍니다. 다음해 정월 1일에 물은 완전히 빠졌읍니다. 2월 27일 즉 홍수가 시작된 지 1년 열흘 후에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방주를 떠나고 그 안에 있는 모든 동물도 내놓으라고 말씀하셨읍니다.—창세 7:11에서 8:19.
33. 대홍수에서 무엇이 멸망되었으며, 무엇이 생존하였읍니까?
33 이렇게 하여 ‘아담’으로부터 내려온 인종은 하나님의 보호를 받아 세계적 대홍수를 생존하였지만 불경건한 세상 즉 경건치 않은 사람들의 세상은 끝났읍니다. 또한 평판 나쁜 잡종들인 ‘네피림’도 인류의 다른 모든 사람들과 같이 육체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멸망되었읍니다. 단순하고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영감받은 제1세기의 성서 해설자는 그것을 정확히 이렇게 묘사하였읍니다.
“[하나님이] 옛 세상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오직 의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 일곱 식구를 보존하시고 경건치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으며 ··· 이로 말미암아 그 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느니라].”—베드로 후 2:5; 3:6.
34. ‘모세’에 의하면 땅에 있는 생물과 방주 안에 있는 생물이 어떻게 되었읍니까?
34 이것은 예언자 ‘모세’의 진술과 일치합니다. “육지에 있어 코로 생물의 기식을 호흡하는 것은 다 죽었더라. 지면의 모든 생물을 쓸어버리시니 곧 사람과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라. 이들은 땅에서 쓸어버림을 당하였으되 홀로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던 자만 남았더라. 물이 일백 오십일을 땅에 창일하였더라.”—창세 7:22-24.
35.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 집행의 “악한 날”을 위하여 예비되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지금 ‘노아’와 같이 어떻게 해야 합니까?
35 세계적 규모의 이 대홍수는 과연 “하나님의 행동”이었읍니다. 그것은 오늘날 우리가 명심해야 할 점을 극적으로 예시합니다. 어느 점 말입니까? “주[여호와]께서는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시고 불의한 자는 형벌 아래 두어 심판 날까지 지키”신다는 점입니다. (베드로 후 2:9)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씌움[목적, 신세]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 (잠언 16:4) 그러므로 만일 우리가 지상의 모든 경건치 않은 사람들에게 의로운 심판을 집행하기 위하여 여호와께서 정해 놓으신 날인 급속히 다가오는 “악한 날”에 멸망되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노아’와 같이 ‘하나님과 동행’하고 그의 목적에 순응해야 합니다.
36. (ㄱ) 대홍수 시에 ‘네피림’은 어떻게 되었읍니까? (ㄴ) 또한 불순종한 “[참] 하나님의 아들들”은 어떠한 결과를 당하게 되었읍니까?
36 대홍수 시에는 단지 불의한 사람들과 ‘네피림’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불순종한 “하나님의 아들들”도 합당한 심판을 받았읍니다. 대홍수로 온 땅이 물에 덮였을 때, 그들 “하나님의 아들들”은 아내와 가족을 떠나 비물질화하여 익사를 면하였읍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들의 정당한 거처인 영계로 돌아갔을 때 어떻게 되었읍니까? 그들은 그 때, 그들이 이전에 가졌던 하나님과의 친교를 되찾았읍니까? 하나님과 그들과의 관계는 이전과 같았읍니까? 그들은 여전히 “[참] 하나님의 아들들”로서 계속 거룩한 하늘 조직에 있을 수 있었읍니까? 그렇지 않았읍니다. 이들 불순종한 영물들에게서 예언자 ‘모세’가 말한 “악귀들”(‘사단’ 마귀를 제외한)이 비롯되었읍니다. (신명 32:17 신세; 또한 시 106:37) 그러나 제1세기의 성서 해설자들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들 불순종한 영들에게 하신 일을 더욱 구체적으로 이렇게 알려 줍니다.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느니라].” (유다 6) “저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 하나님의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명 뿐이니 겨우 여덟명이라.” (베드로 전 3:19, 20)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지옥[타타루스]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느니라].”—베드로 후 2:4.
37. 불순종한 “[참] 하나님의 아들들”이 영계에 돌아왔을 때, 그들의 신분은 어떻게 되었읍니까?
37 그러므로 불순종한 “[참] 하나님의 아들들”이 비물질화하여 영계로 돌아갔지만 그들이 다시 한번 거룩한 천사로 변하지는 못하였읍니다.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최초의 반역자 ‘사단’ 마귀 편에 있게 되었읍니다. 그들은 거룩하고 순종적인 “[참] 하나님의 아들들”로 이루어진 여호와의 아내같은 천적 조직 내에 머물기에는 더 이상 합당하지 않았읍니다. 이 때문에 그들은 “악귀”의 신분으로 낮아졌읍니다. 이러한 낮고 불명예스러운 상태는 희랍어에서 유래한 ‘타타루스’라는 말로 적절히 불리웠읍니다. ‘시리아’어 성서 번역판은 그것을 “가장 낮은 장소”라고 불렀읍니다. (또한 희랍어 칠십인역 욥 40:15; 41:23 참조.) 그 불순종한 영들은 더는 하나님께서 그의 충실한 천사 아들들에게 베푸시는 바와 같은 영적 계몽을 받지 못하였읍니다. 이리하여 그들은 짙은 암흑에 던져졌으며 “영원한 결박”을 당한 것같이 그 곳에 갇혀 있으며 “큰 날의 심판”까지 예비되어 있읍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인류에게 진정한 영적 계몽을 줄 수 없읍니다.
38. 그들 불순종한 영들은 누구의 “씨”가 되었으며, 그들은 어떠한 활동으로 인간을 속이고 노예화합니까?
38 그러한 불순종한 영들은 큰 뱀 ‘사단’ 마귀의 보이지 않는 “씨”가 되었읍니다. 그들이 ‘사단’ 마귀와 함께 ‘타타루스’의 “어두운 구덩이”에 던져진 것은 하나님의 천적 “여자”의 약속된 “씨”가 뱀의 머리를 상한 것이 아니었읍니다. 거룩한 “씨”는 아직 출생하지 않았으며 그 감금된 악령들은 그 “씨”의 “발꿈치”를 상하는 데 가담하기 위하여 그 씨가 누구일 것인지를 몹시 알고 싶어 하였읍니다. (창세 3:15) 그러한 이유로 그들의 우두머리인 ‘사단’ 밑에 있는 그 악령들은 인류에게 항상 가까이 하고 “씨”가 나타날 때에 그들을 속이고 그들을 “씨”로부터 멀어지게 하려고 하였읍니다. 그들은 영매를 통하여 인간들과 통신하려고 합니다. 왜냐 하면, 그들은 더 이상 육체로 물질화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죽은 인간의 “육체에서 분리된 영혼”으로 가장합니다. 그들은 정신이 약한 사람들을 귀신들리게 하고 공격하고 굴복하는 사람들을 소유하기까지 합니다. 예언자 ‘모세’는 영감을 받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이들 악귀적 원수들과 아무런 관련을 갖지 말라고 경고하였읍니다. (신명 18:9-13) 그러므로 영매술을 경계하십시오!
39. 우리는 악귀로부터가 아니라면 무엇으로부터 영적 계몽을 받아야 합니까?
39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에 따라 계몽을 받기를 원하므로 인류 대다수를 하나님의 진리에 눈멀게 하는 그들 어두움의 영적 권세자들을 피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인 성서는 우리에 대한 영적 빛의 통로입니다. 시편 필자가 영감을 받아 여호와 하나님께 이렇게 말한 바와 같습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 119:105.
40. 인간과 천사가 반역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천적 조직이 충성과 협조를 나타낸다는 것을 무엇이 알려 줍니까?
40 하나님의 말씀의 빛으로 우리는 ‘아담’의 창조시로부터 ‘노아’ 시대의 대홍수까지 사람이 지상에 존재한 처음 1656년 간을 돌이켜 보았읍니다. 천사들과 인간들이 반역하였지만 불변의 하나님께서는 지상의 인류에 대하여 그분이 처음에 세우신 목적에 고착하셨읍니다. 언급되지 않은 수의 천사들이 이기적인 욕망에 빠져 범죄하여 하나님의 아내같은 천적 조직으로부터 추방되는 일이 있었지만 이들은 마치 사랑이 있는 남편에게 충실한 아내와 같이 하나님의 거룩한 조직 내에 머물러 하나님께 충실성을 유지한 천사들에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수천년 후에 예언자 ‘다니엘’은 환상 가운데서 지존하신 하나님,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순종하는 1억의 충성스러운 천사를 보았읍니다. (다니엘 7:9, 10) 이 천적 “여자” 곧 예언된 “씨”의 장래의 어머니는 큰 뱀인 ‘사단’ 마귀 및 그의 “씨”와 적의를 가지게 되었읍니다. 이 “여자”는 여호와께서 택하신 때에 “씨”를 낳을 그분의 새로 발표된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여호와 하나님께 협조하기로 굳게 결의하였읍니다.
41. ‘사단’은 악의를 가지고 모든 창조물 앞에서 무슨 논점을 증명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으며, 그는 대홍수 전에도 그렇게 하는 데 완전히 성공할 수 있었읍니까?
41 지상에서 그리고 낙원에서 완전한 인간으로 창조된 ‘아담’과 ‘하와’는 여호와의 우주적 조직의 보이는 일부였읍니다. 유혹을 받았을 때 그들은 그들의 창조주이신 그들의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대한 성실을 유지하지 못하였읍니다. 그들은 사형선고를 받고 여호와의 우주 조직에서 추방되었고 더는 그의 자녀로 간주되지 않았읍니다. 그러나 그들의 후손은 어떠합니까? 성실을 어긴 ‘아담’와 ‘하와’를 기준으로 판단한다면 그들의 불완전하게 태어나고 죄를 유전받는 후손들은 큰 뱀 ‘사단’ 마귀의 유혹과 압력 아래서 창조주께 대한 성실을 유지할 수 없을 것입니다. 분명히 ‘사단’ 마귀는 하늘과 땅의 모든 창조물 앞에서 그들 중 아무도 성실을 유지하지 못할 것을 증명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읍니다. 그는 자기의 논점을 대홍수 전에도 증명할 수 있었읍니까? 이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관점을 알리는 성서 기록은 적어도 세 사람 즉 ‘아벨’, ‘에녹’ 그리고 ‘노아’가 그들의 성실을 유지하였음을 알려 줍니다.
42, 43. (ㄱ) ‘아벨’과 ‘에녹’과 ‘노아’의 경우는 무슨 증거를 확립하였읍니까? (ㄴ) 여호와의 예견은 더 많은 증거를 제공하는 것과 관련하여 어떻게 정확하였읍니까?
42 그 세명의 충실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그들의 창조주이신 여호와의 우주 주권을 옹호하였읍니다. 그들은 ‘사단’ 마귀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낙원 상태하에서도 ‘사단’ 마귀의 유혹과 압력 아래 여호와께 성실을 지킬 사람을 지상에 두실 수 없다고 주장한 점에 있어서 그가 뻔뻔스러운 거짓말장이임을 증명하였읍니다. ‘아벨’과 ‘에녹’과 ‘노아’는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죄인 ‘아담’과 ‘하와’의 후손인 인류가 지상에 계속 존재하도록 허락하신 것이 정당하였음을 증명하였읍니다. 낙원 밖에서의 인간 생활이 계속됨에 따라 ‘아벨’과 ‘에녹’과 ‘노아’ 외에도 여자들 및 남자들이 분명히 인류 가운데 나타나 하나님께 대한 마귀의 거짓말과 비방을 반박하는 더 많은 증거를 쌓을 것이었읍니다.
43 여호와의 예견은 정확하였으며 그의 목적은 틀림없이 성공하게 되어 있었읍니다. ‘에덴’ 동산에서 큰 뱀 앞에 선포된 그의 메시야적 목적은 하나님의 원래의 목적을 보강하였으며 그 성취를 확실하게 하였읍니다. 세계적 대홍수에서 매우 강력하게 증명된 지상에 대한 하나님의 우주 주권은 영원히 인류를 다스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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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의 인간 후손 계열의 경로를 살펴봄인간의 유익을 위하여 지금 성공을 거두는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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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장
“씨”의 인간 후손 계열의 경로를 살펴봄
1. ‘아벨’과 ‘에녹’과 ‘노아’의 경우는 왜 ‘사단’ 마귀로 하여금 약속된 “씨”를 파멸시키려는 목표로 더욱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이게 하였읍니까?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의 핵심을 이루는 것은 하나님의 “여자”가 낳을 “씨”입니다. ‘사단’과 하나님 사이에 ‘에덴’ 동산에서 시작된 시합은 이 신비의 “씨”를 중심으로 한 것이었읍니다. 그것이 당연하였읍니다. 왜냐 하면, 그 “씨”는 정해진 때에 태어나서 큰 뱀의 머리를 상하게 되어 있었으며, ‘사단’ 마귀는 그 “머리”가 자기의 머리임음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창세 3:15) ‘사단’은 장차 임할 “씨”의 성실성을 깨뜨려 그로 하나님의 목적에 합당치 않게 하려고 결심하였읍니다. ‘사단’과 하나님 사이의 시합의 제1회전은 대홍수시에 ‘사단’의 패배로 끝났읍니다. 그는 성실을 깨뜨리려고 시도했던 첫 남녀의 후손 중 적어도 세명의 성실을 꺾는 데 실패하였읍니다. ‘아벨’과 ‘에녹’과 ‘노아’는 ‘사단’의 자신만만한 태도를 약화시켰으며, 그로 하여금 “씨”를 파멸시키려는 목표로 더욱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이게 하였읍니다.
2. 오늘날 인류는 ‘노아’가 대홍수 후에 인류에게 어떠한 삶을 출발시킨 것에 대하여 감사해야 합니까? 어떻게 그러합니까?
2 대홍수가 끝난 후 다음 6백 58년 동안에 하나님의 “여자”의 “씨”에 대한 세부점이 많이 밝혀지게 되어 있었읍니다. 대홍수 이후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온 인류는 대홍수로 견딘 방주의 건축자 ‘노아’로부터의 후손의 경로를 살필 수 있읍니다. 이제 인류 세계는 의로운 출발을 하게 되었읍니다. 왜냐 하면, ‘노아’는 참 “하나님과 동행”하였기 때문입니다. (창세 6:9) 그는 유전에 의하여 불완전한 사람이었지만 도덕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흠없고 나무랄데 없는 사람이었읍니다. 그의 후손인 우리는 그 점에 대하여 크게 감사해야 합니다! ‘노아’는 방주를 떠나 ‘아라랏’ 산에 발을 디딘 직후 인류를 보존하신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숭배에서 인류를 인도하였읍니다.
“‘노아’가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 중에서와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취하여 번제로 단에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흠향하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인하여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멸하지 아니 하리니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창세 8:20-22; 또한 이사야 54:9.
3. ‘노아’가 출생할 때의 ‘라멕’의 예언은 어떻게 적중하였으며, 무지개는 무엇의 상징이 되었읍니까?
3 ‘노아’의 아버지 ‘라멕’이 ‘노아’의 출생시에 그에게 선언한 예언은 옳았읍니다. (창세 5:29) ‘아담’이 범법한 후 ‘에덴’ 동산 밖에서 땅에 내린 하나님의 저주는 거두어졌으며, ‘노아’(그의 이름은 “휴식”을 의미한다)는 그의 번제에서 휴식을 주는 향기가 하나님께 올라가게 하였고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인류에게 저주받은 땅을 경작하는 수고에서 쉬라고 선언하셨읍니다. 하나님께서는 또한 물 덮개가 제거되었기 때문에 땅에 직접 비치는 태양 광선에 의하여 기록에 나타난 첫 무지개가 보이게 하셨읍니다. 여호와께서는 그 무지개를 보증의 표시로 지적하시면서 “다시는 물이 모든 혈기있는 자를 멸하는 홍수가 되지 아니할찌라”고 약속하셨읍니다. 다시는 대홍수가 없을 것입니다.—창세 9:8-15.
4. ‘노아’의 세 아들과 그들의 아내가 ‘노와’와 함께 대홍수를 생존하였으므로 약속된 “씨”에 대하여 어떠한 질문이 생깁니까?
4 ‘노아’의 세 아들들 ‘셈’과 ‘함’과 ‘야벳’과 그들의 아내들은 ‘노아’와 그의 아내와 함께 생존하였읍니다. 이제 이 세 아들 중 어느 아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여자의 씨”가 지상에 출현할 때까지 후손 계열이 이어질 것입니까? 그 선택에 따라 세명의 족장인 ‘셈’과 ‘함’과 ‘야벳’으로부터 내려올 세 종족에게 다르게 영향이 미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영감을 주시어 어느 중요한 기회에 그의 세 아들에게 선언하게 하신 예언은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의 방향을 제시해 주었읍니다. 그 근거는 무엇이었읍니까?
5. 무슨 일 때문에 ‘노아’는 ‘함’의 아들 ‘가나안’에게 저주를 선언하였읍니까?
5 땅에 번성하라는 ‘노아’의 아들들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셈’은 대홍수가 시작된지 2년 후에 ‘아르박삿’을 낳았읍니다. (창세 11:10) 얼마 후에 ‘함’도 ‘가나안’을 낳았읍니다. (창세 9:18; 10:6) ‘가나안’이 출생한지 얼마 후에 밝혀지지 않은 어떤 이유로 ‘노아’가 자기 포도원에서 난 포도주에 취한 일이 있었읍니다. ‘함’은 ‘노아’의 장막에 들어가 ‘노아’가 옷을 벗은 채 누워 있는 것을 보았지만 그의 아버지의 알몸을 덮으려고 하지 않았읍니다. 오히려 그는 ‘셈’과 ‘야벳’에게 가서 자기가 본 것을 퍼뜨렸읍니다. ‘셈’과 ‘야벳’은 아버지에 대한 합당한 존경심을 가지고 ‘노아’의 알몸을 보려고 하지 않고 뒷걸음으로 들어가서 아버지의 몸을 덮었읍니다. 그들은 아버지의 벌거벗었음을 이용하려고 하지 않고 그를 그들의 아버지로 그리고 여호와의 예언자로 게속 높이 존경하였읍니다.
“‘노아’가 술이 깨어 그 작은 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 이에 가로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또 가로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케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창세 9:20-27.
6. ‘노아’의 예언에 의하면 어느 아들을 통하여 메시야에 이르는 후손 계열이 이어지게 되어 있었읍니까?
6 ‘노아’가 그러한 선언을 할 때에 그의 정신은 맑았었읍니다. 그는 ‘함’의 존경심이, 특히 하나님의 예언자에 대한 존경심이 부족하였다고 하여 ‘함’에게서 나올 민족 전체를 저주하지는 않았읍니다. 그러므로 ‘노아’는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함’의 단지 한 아들 즉 ‘가나안’만 저주하였는데, 그의 후손은 ‘팔레스티나’ ‘가나안’ 땅에 거주하게 되었읍니다. ‘가나안’인들은 과연 하나님께서 ‘히브리’인 ‘아브라함’에게 하신 그의 약속대로 ‘이스라엘’인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을 때 ‘셈’의 후손들의 종이 되었읍니다. ‘셈’은 대홍수가 시작된 후 502년을 살았읍니다. 그러므로 그의 생애는 ‘아브라함’의 생애와 150년간 겹쳤었읍니다. (창세 11:10, 11) ‘노아’는 여호와를 ‘셈’의 하나님이라고 선언하였읍니다. 여호와는 축복받으실 분이었읍니다. 왜냐 하면 ‘셈’에게 하나님의 예언자 ‘노아’에 대하여 합당한 존경을 나타내도록 움직인 것은 그분께 대한 두려움이었기 때문입니다. ‘야벳’은 ‘가나안’과 같은 노예로가 아니라 ‘셈’의 장막의 손님으로 다루어지게 되어 있었읍니다. 그러므로 ‘셈’은 그의 형제 ‘야벳’의 주인이 되므로 예언에서 그보다 우월한 지위에 있었읍니다. 이와 일치하게 ‘셈’의 후손 계열이 메시야로 인도할 것이었읍니다.
‘바벨론’의 설립
7. ‘함’의 어느 손자가 최초의 ‘바벨론’ 제국을 설립하였으며, 어떻게 설립하였읍니까?
7 좋지 않게 된 또 다른 ‘함’의 후손은 그의 손자 ‘니므롯’이었읍니다. ‘노아’는 대홍수가 시작한 후에도 350년을 더 살았으므로 자기의 이 증손자의 세력 상승과 그의 몰락을 보았을 것입니다. (창세 9:28, 29) ‘니므롯’은 큰 뱀 ‘사단’ 마귀의 보이는 “씨”의 일부와 같이 행동한 조직을 세웠읍니다. 창세기 10:8-12은 이렇게 알려 줍니다. “‘구스’가 또 ‘니므롯’을 낳았으니 그는 세상에 처음 영걸이라. 그가 여호와 앞에서 [반대하는, 신세] 특이한 사냥군이 되었으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아무는 여호와 앞에 [반대하는, 신세] ‘니므롯’ 같은 특이한 사냥군이로다 하더라 그의 나라는 ‘시날’ 땅의 ‘바벨’과 ‘에렉’과 ‘악갓’과 ‘갈레’에서 시작되었으며 그가 그 땅에서 ‘앗수르’로 나아가 ‘니느웨’와 ‘르호보딜’과 ‘갈라’와 및 ‘니느웨’와 ‘갈라’ 사이의 ‘레센’(이는 큰 성이라)을 건축하였[느니라].” 이 내용에 의하면 ‘니므롯’이 최초의 ‘바벨론’ 제국을 설립하였읍니다.
8, 9. (ㄱ) 여호와께서는 왜 ‘바벨’을 자기의 이름을 둘 도시로 택하지 않으셨읍니까? (ㄴ) ‘바벨’에서 누구의 언어는 변하지 않았읍니까?
8 인류의 언어에 혼란이 일어난 곳은 바로 ‘바벨’(희랍어를 말하는 ‘유대’인들은 ‘바벨론’이라고 부름)이었읍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도시와 그 곳에 거짓 종교 탑을 세우는 것을 승인하지 않으심을 나타내셨을 때 그러한 일이 일어났읍니다. 이 건축자들의 목적은 자기들의 이름을 내고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려는 것이었읍니다. 그들은 오늘날 도시들이 겪는 부패상을 예견하지 못하였읍니다. (창세 11:1-9) 이 ‘니므롯’의 ‘바벨론’ 제국은 지상에 존재한 최초의 제국이었지만 성서 기록상 첫째 세계 강국이 되지는 못하였읍니다. 첫째 세계 강국은 고대 ‘애굽’이었읍니다. ‘바벨’의 정치 세력은 약화되었읍니다. 왜냐 하면 여러 가지 언어로 분열된 그 도시 건축자들은 여호와에 의하여 온 땅으로 흩어졌기 때문입니다.
9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을 자기의 이름을 둘 도시로 택하지 않으셨읍니다. ‘노아’와 그의 축복받은 아들 ‘셈’은 ‘바벨’과 거짓 종교의 탑을 건축하는 데 가담하지 않았읍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언어는 혼잡되지 않았읍니다.
10, 11. (ㄱ) ‘셈’의 시대에 약속된 “씨”의 후손 계열은 그의 어느 후손으로 좁혀졌읍니까? (ㄴ) 이것은 누구에게 한 무슨 발표로 지적되었읍니까?
10 ‘노아’가 기원전 2020년에 사망한지 2년 후에 ‘아브라함’이 ‘셈’의 계열에서 태어났는데 이 때에 ‘셈’은 아직 살아 있었읍니다. 이 후손은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숭배하였읍니다. ‘셈’은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알리신 감동적인 발표를 듣고 큰 만족을 얻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여호와께서 ‘아담’과 ‘하와’가 범법한 후에 ‘에덴’ 동산에서 세우신 그의 “영원한 목적”에 고착하고 계심을 증명하는 것이었읍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여자”의 “씨”가 ‘셈’의 모든 후손 중에서 ‘아브라함’의 계열에서 나올 것으로 좁혀진 것입니다. 그러면 그때 ‘아브람’이라고 불리웠던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발표하셨읍니까?
11 이 발표가 있을 때 ‘아브람’(‘아브라함’)은 ‘메소포타미아’ 즉 ‘바벨론’(‘바벨’)에서 멀지 않은 ‘갈대아’의 ‘우르’ 시에 있었읍니다. 창세기 12:1-3은 이렇게 알려 줍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12. 그 발표는 누구를 위한 좋은 소식이었으며, 그 발표와 함께 무슨 시대가 시작했다고 말할 수 있읍니까?
12 “땅의 모든 족속”—그 가운데는 현 이십 세기에 살고 있는 오늘날 우리 가족도 포함됩니다! 우리 가족은 이 고대 ‘아브람’(‘아브라함’)을 인하여 축복을 얻을 수 있읍니다! 그것은 참으로 좋은 소식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통용 기원전 20세기 당시의 홍수 후 인류 세상에 분명해졌읍니다. 후에 의미가 이러한 영감받은 말로 해설되었읍니다.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인줄 알찌어다.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이 너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갈라디아 3:7, 8) 이에 비추어 볼 때 ‘좋은 소식의 시대’(어떤 사람들은 복음시대라고 부르기를 원할지 모른다)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기 직전인 그 당시에 시작하였다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13. (ㄱ) 하나님의 명령이 ‘아브함’에게 발하여 졌을 때 ‘아브라함’의 육체의 상태는 어떠하였으며, 그러므로 하나님께 중요한 것은 무엇이었읍니까? (ㄴ) ‘아브라함’은 언제 ‘유브라데’ 강을 건넜읍니까?
13 또한 여기에서 유의해야 할 사실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은 모든 족속과 민족을 축복할 통로로 선택하였을 때 그는 육체의 할례를 받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와 그의 집의 모든 남자들이 할례를 받아야 한다는 하나님의 명령은 적어도 24년 후까지, 그의 아들 ‘이삭’이 출생한 해까지 발하여지지 않았읍니다. (기원전 1918년) 하나님께 중요한 것이 ‘아브라함’의 육적 상태가 아니라면 무엇이었읍니까? ‘아브라함’의 믿음이었읍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음을 아셨읍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그의 고향을 떠나라고 명령하신 것은 헛되지 않았읍니다. ‘아브라함’은 즉시 떠나 그의 가족과 함께 북서쪽으로 ‘하란’으로 이동하였으며 그 곳에서 그의 아버지 ‘테라’가 사망한 후에 그는 ‘유브라데’ 강을 건너 하나님께서 그에게 보이실 땅을 향하여 이동하였읍니다. 그는 기원전 1943년 봄 ‘니산’월 14일에 ‘유브라데’ 강을 건넜는데, 그 때는 ‘아브라함’의 후손이 ‘애굽’에서 첫 유월절을 기념하기 430년 전이었읍니다.—출애굽 12:40-42, 신세; 갈라디아 3:17.
14. 여호와께서는 ‘가나안’ 땅에서 ‘아브라함’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으며 그 후에 ‘아브라함’은 어떻게 하였읍니까?
14 예언자 ‘모세’는 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읍니다.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 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그 나이 칠십 오세였더라. ‘아브람’이 그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아브람’이 그 땅을 통과하여 ‘세겜’ 땅 ‘모레’ 상수리 나무에 이르니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하였더라.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그가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를 위하여 그 곳에 단을 쌓[았더라].”—창세 12:4-7; 사도 7:4, 5.
15. ‘아브라함’에게 하신 하나님의 “씨”에 관한 약속은 왜 기적을 요하였으며, 이보다 더 큰 어떠한 기적이 관련되어 있읍니까?
15 그러므로 그 당시 75세인 ‘아브라함’이 65세인 그의 아내 ‘사래’에게서 낳은 자식이 없었지만, 여호와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씨 혹은 후손이 있을 것이며 그 후손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읍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그 약속을 믿음으로 받아들였읍니다. 사실 그 때 당시의 여자의 생식력에 의하면 이것은 하나님께서 기적을 약속하신 것과 다름 없었읍니다. 24년 후에 ‘아브라함’이 그의 아내 ‘사라’에게서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는 웃으며 마음 속으로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아브라함’이 엎드리어 웃으며 심중에 이르되 백세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세니 어찌 생산하리요?” (창세 17:17; 18:12-14) 만일 그것이 ‘놀랍’다면 창세기 3:15에 있는 하나님의 예언을 성취할 기적은 더욱 놀라울 것입니다. 왜냐 하면, 하나님의 “여자”는 천적 여자이지만 그 “씨”는 ‘아브라함’의 지적 후손 계열과 관련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여자”의 이 “씨”는 “‘아브라함’의 씨”,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불리울 수 있었읍니다.
16. ‘아브라함’과 ‘사라’에게서 열국과 열왕이 나오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은 “씨”에 관한 어떠한 의문을 일으켰읍니까?
16 하나님께서 천사를 통하여 ‘아브라함’에게 그가 그의 아내 ‘사라’에게서 ‘이삭’이라는 이름을 가질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을 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내가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니 나라들이 네게로 좇아 일어나며 열왕이 네게로 좇아나리라 ··· 내가 그[‘사라’]에게 복을 주어 그로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열국의 어미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열왕이 그에게서 나리라.” (창세 17:6, 16) 그러므로 이제 그 “열국” 중 어느 나라가 여호와의 은총받은 나라가 될 것입니까? 그 나라는 왕을 가질 것입니까? 하나님의 “여자의 씨”가 그 왕이 될 것입니까? 이러한 질문이 생기는 것은 지극히 당연합니다.
‘멜기세덱’
17. ‘아브라함’이 ‘가나안’ 왕들과 접촉한 가장 탁월한 경험은 무엇이었으며, 왜 ‘아브라함’은 그에게 십분의 일을 바쳤읍니까?
17 이보다 앞서 ‘아브라함’은 지상의 여러 왕들과 접촉하였읍니다. 그러한 접촉 중 가장 중요한 사건은 ‘가나안’ 땅의 유명한 왕과 만난 일이었읍니다. ‘가나안’ 땅을 침공해서 그곳의 다섯 왕들을 패배시키고 ‘아브라함’의 조카 ‘롯’을 포함해서 포로로 잡아가는 네 왕의 손에서 ‘아브라함’은 ‘롯’을 구출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읍니다. ‘아브라함’이 약탈자들인 그 네 왕에게 고통스러운 패배를 안겨 주고 돌아올 때, 그는 사해 서쪽 산악 지대에 있는 ‘살렘’ 성에 가까이 이르렀읍니다.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그가 ‘아브라함’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의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찌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창세 14:18-20)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에게 말한 바와 같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압제자들을 그의 손에 붙이셨으므로 ‘아브라함’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 ‘멜기세덱’에게 전리품의 십분의 일을 준 것은 참으로 적절한 일이었읍니다.
18.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축복한 말은 왜 헛된 것이 아니었으며, ‘다윗’은 어떻게 그가 하나님의 목적 안에서 중요함을 지적하였읍니까?
18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축복한 말은 헛된 것이 아니었읍니다. 그 축복은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으며, ‘아브라함’이 땅의 모든 족속에게 축복이 될 것이라는, 즉 모든 족속이 그를 통하여 축복을 얻을 것이라는 여호와의 약속과 일치한 것이었읍니다. (창세 12:3) 이 신비의 왕겸 제사장이었던 ‘멜기세덱’은 역사에 그처럼 간단히 언급되어 있지만 그는 망각되지 않았읍니다. 9백년 후에 지존하신 하나님께서는 또 다른 ‘살렘’의 왕인 ‘예루살렘’의 ‘다윗’ 왕에게 영감을 주어 ‘멜기세덱’이 지존하신 하나님의 목적 안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예언하고 알리게 하셨읍니다. 이에 의하면 ‘멜기세덱’은 더 큰 왕, ‘다윗’보다도 더 큰 왕, ‘다윗’도 “내 주”라고 부르지 않을 수 없는 왕을 예표하고 있었읍니다. 이 예표된 왕은 메시야 곧 하나님의 “여자”의 씨 외에 다른 분일 수 없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성령의 힘에 의하여 ‘다윗’은 시편 110:1-4에서 이렇게 기록하였읍니다.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으라 하셨도다. 여호와께서 ‘시온’에서부터 주의 권능의 홀을 내어 보내시리니 주는 원수 중에서 다스리소서.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치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19. ‘시온’ 산에서 권능의 홀을 사용하리라고 예언된 분은 누구의 후손이어야 하였으며, ‘다윗’은 ‘솔로몬’에서 ‘시드기야’에 이르는 왕들에 대하여 예언한 것이 왜 아니었읍니까?
19 그 영감받은 말씀이 의미하는 바에 유의하십시오. ‘다윗’ 왕이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권능의 홀을 보내실 것이라고 말한 사실은 왕이 ‘다윗’의 육적 후손일 것임을 시사합니다. 여호와께서 영원한 왕국을 위하여 ‘다윗’과 맺으신 언약에 의하면 ‘다윗’의 육적 후손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왕으로서 ‘시온’ 산에 앉아서 권능의 홀을 사용할 수 없게 되어 있었읍니다. (사무엘 하 7:8-16) 그러므로 ‘시온’으로부터 권능의 지팡이를 받을 이분은 “‘다윗’의 자손”이라고 불리울 것입니다. 그러나 이 경우에 ‘다윗’은, ‘시온’ 산에 앉아 그의 백성의 열 두 지파 전부를 통치한 ‘솔로몬’ 왕 즉 ‘다윗’의 계열의 가장 영화로운 왕을 예언적으로 지적한 것이 아닙니다. ‘다윗’은 그의 아들 ‘솔로몬’을 “내 주”라고 부른 일이 결코 없었으며, ‘솔로몬’의 뒤를 이어 ‘시드기야’ 왕까지 이르는 다른 어떠한 ‘시온’의 왕도 그렇게 부르지 않았읍니다. 또한 ‘솔로몬’을 계승한 ‘시온’ 산의 어떠한 왕도 ‘멜기세덱’과 같은 왕겸 제사장이 아니었읍니다.—역대 하 26:16-23.
20. 이 예언된 분은 ‘다윗’의 후손이지만 어떻게 ‘다윗’의 “주”가 될 것입니까?
20 그러나 이 약속된 통치자는 ‘다윗’ 왕의 “후손”이어야 하였는 데 왜 ‘다윗’은 그를 “내 주”라고 불렀읍니까? 이것은 ‘다윗’의 이 탁월한 “후손”이 ‘다윗’보다 훨씬 높은 왕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땅의 ‘시온’ 산에서 “여호와의 보좌”에 앉았었지만 그는 결코, 사망시에도, 하늘에 올라가서 여호와의 “우편”에 앉지 못했읍니다. 그러나 ‘다윗’의 “주”가 될 분은 그렇게 할 것입니다. 하늘의 여호와의 우편에 있는 그의 왕위는 땅의 ‘시온’ 산으로 상징되었기 때문에 하늘의 ‘시온’ 산이라고 불리울 수 있었읍니다. 땅의 ‘시온’ 산은 과거에는 ‘예루살렘’ 성벽 안에 둘러 싸여 있었으나 오늘날은 그렇지 않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친히 시편 89:27에서 메시야에 관하여 “내가 또 저로 장자를 삼고 세계 열왕의 으뜸이 되게 하[리로다].”고 말씀하셨읍니다. 그는 고대 ‘살렘’ 왕 ‘멜기세덱’과 같이 ‘다윗’보다 높은 주와 왕이 될 뿐 아니라 영원히 지존하신 하나님의 “제사장”이 될 것입니다.—시 76:2; 110:4.
21. 그러면 왜 ‘아브라함’의 이름이 크게 될 것입니까?
21 기원전 20세기 당시에 족장 ‘아브라함’은 자기와 자기의 아내 ‘사라’의 후손인 “열왕” 가운데 ‘아브라함’이 그의 전리품의 십분의 일을 바친 ‘멜기세덱’에 의하여 전영된 메시야 왕이 포함될 것임을 알지 못하였읍니다. 그러한 왕 겸 제사장과의 관련 때문에 ‘아브라함’의 이름이 크게 될 것이라는 것은 당연합니다! ‘멜기세덱’과 같은 이 왕겸 제사장을 통하여 땅의 모든 족속이 ‘아브라함’으로 인하여 축복을 얻을 것이라는 것은 당연합니다.—창세 12:3.
하나님의 “벗”
22. 하나님께서는 그의 선민이 ‘아브라함’의 육적 아들 및 후사를 통하여 나올 것을 어떠한 예로 설명하셨읍니까?
22 침공해 온 네 명의 왕에게 ‘아브라함’이 승리를 거둔 후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보호를 약속하셨고 또한 그의 친아들이 그의 “후사”가 될 것을 약속하셨읍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의 선민이 이 아들 곧 후사를 통하여 나올 것을 이러한 예로 보증하셨읍니다.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 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니라].”—창세 15:1-6.
23. 무엇을 근거로 ‘아브라함’은 의로 여겨졌으며, 그는 무엇에 합당하였읍니까?
23 이 때에 ‘아브라함’은 아직도 할례받지 않은 ‘히브리’인이었음을 잊지 맙시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육체의 할례를 받는다고 해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질 수 없었읍니다. ‘아브라함’이 의로 여겨진 것은 그에게 자기의 목적의 일부를 계시하신 여호와를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여호와 앞에서 의로 간주되었으며, 따라서 그는 여호와 하나님과 우정을 누리기에 합당하였읍니다. 여러 세기 후에 ‘예루살렘’의 ‘여호사밧’ 왕은 ‘아브라함’을 여호와의 친구 혹은 “벗”이라고 불렀읍니다. 그 후 여호와께서는 예언자 ‘이사야’를 통하여 그를 “나의 벗 ‘아브라함’”이라고 부르셨읍니다. (역대 하 20:7; 이사야 41:8) 이것은 “씨”와 관련하여 여호와께 대한 믿음이 실제로 얼마나 가치있고 얼마나 중요한가를 증명합니다.
24. ‘아브라함’은 어떻게 ‘이스마엘’의 아버지가 되었으며, 다음에 어떻게 ‘이삭’의 아버지가 되었읍니까?
24 ‘아브라함’은 기원전 1932년에 그의 잉태치 못하는 노년의 아내 ‘사라’의 제안에 따라 ‘애굽’인 여종을 통하여 아들을 낳았으며 그의 이름을 ‘이스마엘’이라고 불렀읍니다. (창세 16:1-16) 그로부터 13년후 기원전 1919년에 여호와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이스마엘’이 참다운 “씨”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그의 참 아내 ‘사라’를 통한 아들이 선택된 “씨”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읍니다. 그 “씨”는 자유한 여자의 아들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듬해에 ‘사라’가 90세였을 때 ‘이삭’이 출생하였읍니다.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낳을 때에 백세라.” ‘이삭’은 8일째 되는 날 그의 아버지가 그 전해에 할례를 받은 것과 같이 할례를 받았읍니다.—창세 21:1-5.
25. 기록은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의 모든 서자를 포함시켜 하나의 민족이 나오게 하셨는지의 여부에 대하여 무엇을 알려 줍니까?
25 하나님께서 이제 그의 두 아들 곧 큰 아들 ‘이스마엘’과 ‘이삭’에게서 하나의 민족, 곧 두 지파로 된 민족이 나오게 하시지 않은 점은 흥미있는 일입니다. 그렇게 하시지 않고 5년 후에 ‘아브라함’은 그의 아내 ‘사라’의 독촉으로 ‘하갈’과 그의 아들 ‘이스마엘’을 집에서 내어 보내 그들이 원하는 곳에 가서 살게 하였읍니다. (창세 21:8-21) 또한 그 후, 기원전 1881년에 ‘사라’가 사망한 후에도 하나님께서는 ‘이삭’과 ‘아브라함’의 후처 ‘그두라’를 통하여 낳은 다른 아들들로부터 한 민족, 일곱 지파로 된 한 민족이 나오게 하시지 않았읍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에게 자기 모든 소유를 주었고 자기 서자들에게도 재물을 주어 자기 생전에 그들로 자기 아들 ‘이삭’을 떠나 동방 곧 동국으로 가게 하였더라.”—창세 25:1-6.
26. ‘아브라함’은 믿음을 어떻게 놀랍게 나타냈기 때문에 ‘모리아’ 땅에서 특별한 축복을 받았으며, 그 내용은 무엇이었읍니까?
26 ‘아브라함’은 믿음을 매우 놀랍게 나타냈기 때문에 이 여호와의 “벗”은 큰 축복을 받았읍니다. 그 축복은 ‘아브라함’이 믿음의 날카로운 시험을 받고 지존하신 하나님에 대하여 순종한 후에 있었읍니다. 하나님의 승인의 축복은 ‘모리아’ 땅의 산꼭대기에서 선언되었는데, 많은 사람들은 그 곳이 ‘솔로몬’ 왕이 여러 세기 후에 여호와의 웅장한 성전을 건축한 곳이라고 생각하고 있읍니다. (역대 하 3:1) 여호와께서 지정하신 그 곳에서 새로 만든 돌 제단에 펴 놓은 나무 위에 성장기의 한 소년이 누워 있었읍니다. 그는 ‘이삭’이었읍니다. 제단 옆에는 그의 아버지 ‘아브라함’이 손에 도살용 칼을 들고 서 있었읍니다. 그는 지금 막 ‘이삭’을 희생하여 그 소년을 기적으로 주신 하나님께 번제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이행하려는 참이었읍니다. 바로 그때였읍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가라사대 ‘아브함아’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두번째 ‘아브라함’을 불러 가라사대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창세 22:1-18.
27. 하나님의 이러한 진술은 “씨”의 선택에 대하여 그리고 그 “씨”를 통하여 축복을 얻는 일에 관하여 무엇을 알려 주었읍니까?
27 이것은 모든 민족이 축복을 받을 통로가 될 약속된 “씨”가 ‘이삭’의 후손 계열에서 나올 것을 의미하였읍니다. 그리하여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분이 후손 계열을 선택하고 계셨으며 ‘이삭’의 모든 이복 형제들은 그 “씨”를 마련하는 데 참여하지 않을 것을 알리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삭’의 이복 형제들로부터 내려온 민족들은 그 “씨”를 통하여 축복을 얻을 수 있었읍니다. 오늘날 모든 민족, 즉 오늘날 모든 나라 사람들은 마찬가지로 ‘아브라함’의 “씨”를 통하여 축복을 얻을 수 있읍니다.
28. ‘셈’은 장수하였기 때문에 그의 후손 계열과 관련하여 어떠한 일들을 살아서 보았읍니까?
28 세계적 홍수를 생존한 족장 ‘셈’은 그러한 하나님의 축복이 ‘아브라함’에게 선언될 때 살아 있었으며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읍니다. 사실 ‘셈’은 ‘이삭’이 ‘메소포타미아’ ‘하란’ 출신인 아름다운 ‘리브가’와 결혼하는 것까지 보았읍니다. ‘셈’은 그 결혼이 있은지 10년 후인 기원전 1868년까지 살았지만 그 결혼으로 말미암은 후손을 보지는 못하였읍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보았읍니다.—창세 11:11; 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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