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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원한 목적”에 따른 하나님의 선택
    인간의 유익을 위하여 지금 성공을 거두는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
    • 제8장

      “영원한 목적”에 따른 하나님의 선택

      1. 하나님으로부터 그분의 언약을 재다짐받은 사람의 후손에 대하여 어떠한 질문이 생깁니까?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하신 언약을 그의 아들 ‘이삭’에게 재다짐하셨읍니다. (창세 26:1-5, 23, 24) ‘이삭’은 40세에 결혼하였지만 60세가 되어서야 자녀 즉 쌍동이 아들을 낳았읍니다. 자녀를 간구한 ‘이삭’의 기도에 응답하신 여호와께서는 그 쌍동이 아들들 가운데서 선택하실 것입니까?

      2. 여호와께서는 쌍동이 중 누구를 선택하실 것인지를 어떻게 알리셨읍니까?

      2 여호와께서는 ‘리브가’의 임신 중에 그가 기도로 자기의 상태에 대하여 질문하였을 때 그분의 선택을 암시하셨읍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태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 ‘에서’가 첫 아들이고 ‘야곱’이 쌍동이 동생이었읍니다. (창세 25:20-23) 그리하여 여호와께서는 ‘이삭’의 이 쌍동이 아들들에게서 하나의 민족, 즉 두 지파로된 한 민족을 만드시지 않을 것을 지적하셨읍니다. 그렇지 않고 두 민족이 나올 것이며 쌍동이 형으로부터의 민족이 더 약하여 쌍동이 아우의 민족을 섬길 것이었읍니다. 이것은 탁월성에 대한 장자의 당연한 권리와 반대였읍니다. 이와 같이 여호와께서는 그분이 누구를 택하실 것인지를 알리셨읍니다.

      3. 그 때의 선택은 인간의 행위에 달려 있었읍니까, 아니면 부르시는 분에게 달려 있었읍니까?

      3 전능하시고 전지하신 하나님께서는 온 인류를 축복하기 위한 그의 목적에 따라 선택할 권리를 가지고 계셨읍니다. 이에 대하여 제1세기의 성서 해설자는 이렇게 기록하였읍니다. “이뿐 아니라 또한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잉태하였는데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목적, 신세]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기록된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로마 9:10-13; 또한 말라기 1:2, 3에서도 인용.

      4. 여호와께서는 출생 전부터 왜 ‘야곱’보다 ‘에서’를 덜 사랑하셨읍니까?

      4 확실히 전능하시고 전지하신 하나님께서는 그릇된 선택을 하지 않으셨읍니다. 의심할 여지 없이 그분은 ‘리브가’의 태 안에 있는 쌍동이의 유전 형질을 아실 수 있으시므로 두 아들이 어떠한 방향으로 삶을 영위할 것인지를 내다 보셨읍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쌍동이 동생을 택하셨지만 그 선택은 합당하였읍니다.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목적에 따라 선택하셨지만 강제로 일을 진행시키지는 않으셨읍니다. 그 분은 형 ‘에서’가 중대한 결정의 날에 자기 동생 ‘야곱’에게 팥죽 한 그릇에 자기의 장자권을 팔도록 계획하지 않으셨읍니다. 그러나 분명히 여호와께서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에서’가 ‘야곱’과 같이 영적 사물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사랑을 나타내지 않을 것을 내다보셨읍니다. 이 때문에 그분은 ‘야곱’보다 ‘에서’를 덜 사랑하셨으며 쌍동이 형제가 아직 그들의 모태에 있을 때 그에 따라 선택하셨읍니다.—창세 25:24-34.

      5. 여호와께서는 ‘이삭’이 말한 축복을 ‘야곱’이 어떻게 받을 것인지 계획하셨읍니까? 그리고 그는 그 축복을 번복하셨읍니까?

      5 ‘야곱’과 그의 어머니 ‘리브가’가 ‘이삭’을 통하여 선언될 축복을 얻기 위하여 마침내 사용한 술책을 여호와께서 계획하지 않으셨지만 여호와께서는 노쇠하여 앞을 못보는 ‘이삭’이 ‘야곱’에게 장자의 축복을 선언하는 것을 허락하셨읍니다. ‘야곱’은 그 축복을 받기에 합당하였기 때문입니다. (창세 27:1-30) 여호와께서는 ‘이삭’으로 하여금 그 축복을 번복하게 하시지 않고 오히려 ‘야곱’이 쌍동이 형 ‘에서’로부터의 살인적 분노를 피하여 도망할 때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이삭’의 축복을 확증하셨읍니다. 이것은 출생 전부터 하나님께서 ‘야곱’을 선택하신 일을 지지하였읍니다. 어떻게 그러하였읍니까?

      6. 하나님께서 ‘야곱’을 선택하신 것이 ‘야곱’이 꾼 천사들이 사용하는 사리에 관한 꿈에서 어떻게 지지되었읍니까?

      6 약속의 땅에 있는 ‘벧엘’이라는 곳에서 도망자 ‘야곱’이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었읍니다.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가 그 위에서 오르락 내리락 하고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서 동서 남북에 편만할찌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찌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창세 28:12-15.

      7, 8. (ㄱ) 이 하나님의 진술은 메시야의 후손 계열에 대하여 무엇을 의미하였읍니까? (ㄴ) ‘에서’와 달리, ‘야곱’은 누구를 숭배하는 데 탁월하였읍니까?

      7 거짓말하시지 않는 하나님의 이 돌이킬 수 없는 진술에 의하면 창세기 12:1-7에 설명된 ‘아브라함’의 약속을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후손 즉 씨를 통하여 이행하실 것이었읍니다.

      8 이것은 하나님의 천적 “여자의 씨”인 메시야가 ‘야곱’의 후손 계열을 통하여 나올 것임을 의미하였읍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메시야 “씨”에 의하여 축복을 받을 나라들과 족속들의 역사보다 ‘야곱’의 후손의 역사를 상세히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아브라함’과 ‘이삭’의 하나님은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불리우게 되었읍니다. ‘에서’(혹은 ‘에돔’)의 하나님이라고는 불리우지 않았읍니다. ‘에서’는 여호와의 숭배에서 탁월하지 않았으며 그의 후손은 여호와의 숭배자들의 원수가 되었읍니다. 우상 ‘코스’는 ‘에돔’의 신이었읍니다. (역대 하 25:14; 에스겔 35장) 후에 ‘예루살렘’에 건축된 성전은 “‘야곱’의 하나님의 전”이라고 불리우게 되었읍니다. (이사야 2:3) 이 재난 많은 시대에 사는 우리를 위한 본으로서 영감받은 시편 필자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니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하고 말합니다.—시 46:11.

      왕족의 선택

      9. (ㄱ) ‘야곱’의 후손들은 왜 ‘이스라엘’이라고 불리웠읍니까? (ㄴ) ‘야곱’은 어느 곳에서 그의 열 두째 아들을 낳았읍니까?

      9 ‘야곱’이 ‘메소포타미아’ 골짜기의 ‘밧단아람’에 가서 20년간 사는 동안 그의 부친 ‘이삭’이 승인하는 가족에서 결혼하여 열 한명의 아들을 낳았읍니다. 다음에 하나님께서는 그의 고향인 약속의 땅으로 돌아가라고 말씀하셨읍니다. (창세 31:3) ‘야곱’이 ‘이스라엘’이라는 다른 이름을 받은 것은 그가 돌아오는 길에서였읍니다. 하나님의 천사는 그에게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 (창세 32:28) 그 후에 ‘야곱’의 후손들은 ‘이스라엘’이라고 불리웠읍니다. (출애굽 17:11) 그 후에 ‘야곱’ 즉 ‘이스라엘’은 그가 사닥다리 꿈을 꾸었던 ‘벧엘’에 다시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그의 열 두째 아들 ‘베냐민’을 낳았읍니다. 그러나 ‘야곱’의 사랑하는 아내 ‘라헬’은 이 둘째 아들을 낳다가 사망하였읍니다. 창세기 35:19에 기록된 바와 같이 “‘라헬’이 죽으매 ‘에브랏’ 곧 ‘베들레헴’ 길에 장사되었”읍니다.

      10. ‘야곱’이 약속의 땅에 더 머무는 동안 ‘르우벤’은 어떻게 자격을 상실하게 되었읍니까?

      10 ‘야곱’은 기원전 1761년에 약속의 땅으로 돌아온 후에 33년간 외국인으로서 그곳에 계속 거주하였읍니다. 그동안 의미심장한 일들이 많이 발생하였지만 그러한 일들은 결코 하나님의 계획에 의한 것이 아니었읍니다. ‘야곱’의 부친 ‘이삭’은 180세에 사망하였읍니다. (창세 35:27-29) ‘야곱’의 큰 아들 ‘르우벤’은 아버지의 첩 ‘빌하’ 즉 ‘라헬’의 여종과 불륜 관계를 가졌읍니다. (창세 35:22) 이 일로 인하여 ‘르우벤’은 그의 아버지 ‘야곱’의 장자권을 누리지 못하고 또한 메시야 왕이 그의 후손 계열에서 나오지 못하게 되었읍니다. 이것은 분명히 여호와 하나님의 계획에 의한 것이 아니었읍니다. 왜냐 하면, 그는 그러한 근친상간에 관련되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창세 49:1-4.

      11, 12. (ㄱ) ‘시므온’과 ‘레위’는 메시야 계열에 있어서의 모든 기회를 어떻게 상실하였읍니까? (ㄴ) 하나님께서는 이제 선택과 관련하여 어떻게 하셔야 합니까?

      11 ‘라헬’이 사망하기 전, 그리고 ‘르우벤’이 충격적인 부도덕 행위를 저지르기 전에 ‘야곱’의 딸 ‘디나’는 약속의 땅의 한 주민, 즉 ‘세겜’ 성에 사는 ‘히위’ 족속의 ‘하몰’의 아들 ‘세겜’에게 능욕을 당하였읍니다. “‘이스라엘’에게 부끄러운” 이러한 일로 인하여 ‘야곱’의 아들들이 크게 노하였읍니다. 그래서 ‘세겜’의 남자들이 할례의 요구에 응하여 무능한 상태에 있을 때 ‘야곱’의 둘째 아들 ‘시므온’과 그의 세째 아들 ‘레위’가 칼을 들고 의심치 않는 모든 ‘세겜’ 남자들을 살육하고 그 도시를 약탈하였읍니다.

      12 하나님의 예언자로서 ‘야곱’은 이러한 폭행을 승인하지 않았읍니다. 그는 ‘시므온’과 ‘레위’에게 그들이 그러한 행동으로 “이 땅 사람 ··· 에게 냄새”가 나게 하였으며 그와 그의 집이 그 땅의 더 많은 사람들에 의하여 멸절되게 하였다고 말하였읍니다. (창세 34:1-30) ‘시므온’과 ‘레위’는 열화처럼 노하여 그러한 잔인한 학살 행위를 하였기 때문에 그들 중 어느 후손 계열에서도 메시야인 “씨”가 나오지 않았읍니다. 그러므로 이 영예로운 특권은 ‘시므온’과 ‘레위’ 및 장자 ‘루우벤’이 아닌 다른 아들에게 옮겨져야 하였읍니다. (창세 49:5-7)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런 식으로 일을 계획하지 않으셨음은 분명합니다. 그는 이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셨읍니다. 그분은 ‘야곱’의 아직 남아 있는 아들 중에서의 선택을 그의 예언자 ‘야곱’ 즉 ‘이스라엘’을 통하여 알리실 것이었읍니다.

      13, 14. ‘야곱’과 그의 집은 어떻게 ‘애굽’으로 가서 ‘요셉’과 함께 살게 되었읍니까?

      13 ‘야곱’의 사랑하는 아내 ‘라헬’의 장자는 그 집안의 열 한째 아들인 ‘요셉’이었읍니다. ‘야곱’은 노령에 특히 이 아들을 사랑하였읍니다. 이 때문에 ‘요셉’의 이복 형들은 그를 질투하였읍니다. 그들은 그들의 아버지 모르게 ‘요셉’을 ‘애굽’으로 내려가는 상인들에게 팔아 넘겼읍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의 아버지 ‘야곱’에게, ‘요셉’이 맹수에게 죽임을 당하였다고 믿도록 수단을 꾸몄읍니다.

      14 ‘요셉’은 ‘애굽’의 노예로 팔렸지만 그가 충실히 숭배하고 순종한 하나님의 은총으로 ‘바로’ 밑에서 식량 장관 및 국무총리로 높여졌읍니다. 기원전 1728년에 ‘요셉’은 세계적인 기근 중에 식량을 구하러 ‘애굽’에 내려온 그의 회개한 이복 형들과 화해하였읍니다. 그 후 ‘요셉’의 알선으로 그의 아버지 ‘야곱’ 즉 ‘이스라엘’은 그의 집안 식구 모두와 함께 ‘애굽’으로 와서 ‘고센’ 땅에 정착하였읍니다. 거기에서 ‘야곱’은 17년을 살았읍니다.—창세기 37-47장.

      15, 16. ‘야곱’은 그때 아직 무엇의 후사로 ‘애굽’에 들어갔었으며, 이것이 어떻게 시편 105:7-15에 지적되었읍니까?

      15 ‘야곱’이 약속의 땅을 떠나 ‘요셉’의 초대에 응하여 ‘애굽’으로 내려온 것은 하나님의 지시에 의한 것이었읍니다. (창세 46:1-4) 그는 아직 ‘아브라함’의 언약의 후사로서, 그것을 전달해야 할 자로서 그곳으로 내려온 것입니다. 시편 105:7-15은 이 사실을 지적하여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16 “그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시라. 그의 판단은 온 땅에 있도다. 그는 그 언약 곧 천대에 명하신 말씀을 영원히 기억하셨으니 이것은 ‘아브라함’에게 하신 언약이며 ‘이삭’에게 하신 맹세며 ‘야곱’에게 세우신 율례 곧 ‘이스라엘’에게 하신 영영한 언약이라. 이르시기를 내가 ‘가나안’ 땅을 네게 주어 너희 기업의 지경이 되게 하리라 하셨도다. 때에 저희 인수가 적어 매우 영성하며 그 땅에 객이 되어 이 족속에게서 저 족속에게로, 이 나라에서 다른 민족에게로 유리하였도다. 사람이 그들을 해하기를 용납지 아니하시고 그들의 연고로 열왕을 꾸짖어 이르시기를 나의 기름 부은 자[‘히브리’어로, ‘마시아’의 복수 즉 메시야들]를 만지지 말며 나의 선지자[예언자, 신세]를 상하지 말라 하셨도다.”

      17. 여호와께서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왜 “예언자”라고 그리고 “기름 부은 자”라고 부르셨읍니까?

      17 이와 같이 여호와께서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그의 예언자라고 부르셨으며 사실 그들은 예언자들이었읍니다. (창세 20:7) 예언자는 지명되고 임명되기 때문에 정식 기름부음을 받지 않았을지라도 기름부음을 받았다고 말할 수 있읍니다. (열왕 상 19:16, 19; 열왕 하 2:14) 마찬가지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벧엘’이라는 곳에서 ‘야곱’이 실제로 기둥에 기름을 부은 것과 같이 기름부음을 받지는 않았지만 그들은 그들에 대한 여호와의 행동으로 인하여 “기름 부은 자”라고 불리우는 것이 적절하였읍니다. (창세 28:18, 19; 31:13) 여호와께서 그들을 “나의 기름 부은 자”라고 부르신 사실은 그분이 그들을 임명하시고 선택하셨음을 시사합니다. ‘모팻’의 성서 번역판은 시편 105:15을 “내가 선택한 자들을 만지지 말고 나의 예언자들을 해하지 말라”고 번역하였읍니다. (또한 역대 상 16:22) 여호와께서는 그분이 원하시는 사람을 선택하십니다. 그분의 선택 배후에는 목적이 있읍니다.

      18. 따라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통하여 나오게 되어 있는 민족은 또한 어떻게 지명되었으며, 왜 그것이 적절하였읍니까?

      18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여호와의 “메시야”였으며, 메시야 나라가 그들을 통하여 나온 것은 바로 이것과 일치합니다. 성경은 이 선민을 여호와의 “메시야” 혹은 “기름부음받은 자”라고 부릅니다. 시편 28:8, 9에서 시편 필자 ‘다윗’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는 저희의 힘이시요 그 기름부음받은 자[‘히브리’어: 마시야]의 구원의 산성이시로다. 주의 백성을 구원하시며 주의 산업에 복을 주시고 또 저희의 목자가 되사 영원토록 드십소서.” 후에 예언자 ‘하박국’은 여호와께 이렇게 기도하였읍니다. “주께서 주의 백성을 구원하시려고, 기름받은 자[마시아]를 구원하시려고 나오[셨나이다].” (하박국 3:13) 바로 이와 일치하게 이 “기름부음 받은” 민족을 통하여 하나님의 지정하신 때에 진정한 메시야, 하나님의 천적 “여자의 씨”가 나오게 되어 있었읍니다.—창세 3:15.

      19. ‘야곱’의 아들들은 열두 지파의 머리이므로 무엇이라고 불리웠읍니까?

      19 ‘야곱’의 후손들이 수가 많아져서 민족을 이룰 수 있게 된 것은 ‘애굽’에 있을 때였읍니다. 바로 이 무렵, ‘야곱’은 임종을 맞아(기원전 1711년) 그의 아들들에게 이러한 고별의 말을 하였읍니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십 이 지파라. 이와 같이 그 아비가 그들에게 말하고 그들에게 축복하였으되 곧 그들 각인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더라.” (창세 49:28) ‘야곱’의 이들 열 두 아들들은 각자 한 지파의 머리가 됨으로써 “족장” 혹은 “조상”이라고 불리웠읍니다. ‘예루살렘’ ‘산헤드린’ 앞에서 한 때 한 연사가 이렇게 말한 바와 같습니다. “할례의 언약을 ‘아브라함’에게 주셨더니 그가 ‘이삭’을 낳아 여드레만에 할례를 행하고 ‘이삭’이 ‘야곱’을, ‘야곱’이 우리 열 두 조상[족장, 신 영어 성서]을 낳으니 여러 조상[족장]이 ‘요셉’을 시기하여 ‘애굽’에 팔았더니 하나님이 저와 함께 계[셨느니라].” (사도 7:8, 9) 적절하게도, 희랍어를 말하는 ‘유대’인들은 “족장 ‘아브라함’” 또한 “족장 ‘다윗’”이라고 불렀읍니다.—히브리 7:4; 사도 2:29, 신영성.

      20. 그리하여 ‘이스라엘’에 주교직이 세워졌읍니까?

      20 그러나 이것은 ‘애굽’에서 ‘야곱’의 후손들 가운데 주교직이 세워졌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야곱’이 ‘고센’ 땅에서 사망한 후에 ‘애굽’의 ‘바로’의 국무총리였던 ‘요셉’은 그의 부친이 그에게 한 마지막 축복은 장자권이 ‘요셉’에게로 옮겨졌음을 시사하였지만 그는 자신을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의 족장이 되게 하지 않았읍니다.—창세 49:22-26; 50:15-26.

      21. (ㄱ) ‘야곱’은 장자권이 이제 누구에게로 옮아졌음을 시사하였읍니까? (ㄴ) 메시야 왕으로 인도하는 계열의 족장을 선택하는 것은 누구에게 달려 있었읍니까?

      21 족장, ‘야곱’은 그의 열 두 아들에 대한 예언적 축복에서 장자권이 그의 첫 아내 ‘레아’에 의한 장자 ‘르우벤’으로부터 그의 둘째 아내 ‘라헬’의 장자 ‘요셉’에게로 옮겨졌다는 것 이상을 밝혔읍니다. (창세 29:21-32) ‘요셉’의 이복 형들은 ‘요셉’을 ‘애굽’의 노예로 팔아 넘기기 전에 그가 그들을 다스릴 왕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불쾌하게 여겼읍니다. (창세 37:8) 그러나 이보다 오래 전에 하나님께서는 족장 ‘아브라함’에게 할례의 언약을 주셨을 때 왕들이 ‘아브라함’에게서 나올 것이며 이 일이 그의 아내 ‘사라’를 통하여 있을 것임을 예언하셨읍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때에 그의 이름을 ‘사래’에서, “왕녀”를 의미하는 ‘사라’로 바꾸셨읍니다. (창세 17:16) 또한 하나님께서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꾸셨을 때 그는 왕들이 ‘야곱’에게서 나올 것이라고 약속하셨읍니다. (창세 35:10, 11) 그러나 가족의 장자권은 자동적으로 메시야 왕 곧 하나님의 천적 “여자의 씨”로 인도할 왕의 조상 계열이 되는 권리와 영예를 수반하지 않았읍니다. 이 중요한 문제는 하나님의 선택에 달려 있었읍니다. 그는 ‘야곱’으로 하여금 어느 아들이 그러한 왕의 조상이 될 것인지를 지적하게 하셨읍니다.

      22. 축복의 말 가운데서 ‘야곱’은 어느 아들을 “홀”과 “치리자의 지팡이”라고 불렀읍니까?

      22 사망 직전에 ‘야곱’은 ‘르우벤’과 ‘시므온’과 ‘레위’에 대하여 비난의 말을 한 다음에 그의 첫 아내가 낳은 네째 아들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찌라.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네 아비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갔도다. 그의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치리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시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미치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창세 49:8-10.

      23. 홀, 치리자의 지팡이, 백성의 순종, 사자에 비유된 것 등 그 모든 특성은 ‘유다’에 대한 무엇을 말해 주는 것입니까?

      23 ‘야곱’이 ‘유다’를 사자에 비한 것에 유의합시다. 미가 5:8은 사자를 삼림의 동물 왕에 비합니다. 에스겔 19:1-9은 ‘유다’ 왕국의 왕들을 사자에 비유하였읍니다. 그러므로 ‘야곱’이 ‘유다’를 사자에 비유한 것은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리라는 사실과 일치하며 이것은 ‘유다’가 이미 홀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상실하거나 빼앗기지 않을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왕권의 홀이었다는 것은 ‘실로’가 오기까지 역시 ‘유다’로부터 떠나지 않을 “치리자의 지팡이”와 연결된 사실로 지지됩니다. 더구나, 이 ‘실로’에 의하여 대표되었듯이 이 ‘유다’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할 것입니다. (창세 49:10) ‘유다’에 대한 이 모든 특징은 왕권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24, 25. (ㄱ) ‘실로’라는 이름은 무엇을 의미하며, 그것은 누구에게 적용됩니까? (ㄴ) 왜 왕권의 홀은 ‘유다’로부터 떠날 필요가 없을 것입니까?

      24 ‘실로’라는 이름은 “그것을 가지신 분”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당시의 원 ‘히브리’어 원문에서 번역된 고대 ‘라틴어’ 「벌게이트 역」은 “보내질 그분이 오기까지”라고 번역하였읍니다.

      25 이 ‘실로’(“그것을 가지신 분”)의 임함은 주권자이신 주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의 마지막 ‘유다’ 왕에게 하신 이러한 말씀으로 예언하신 분의 임함과 같습니다. “내가 엎드러뜨리고 엎드러뜨리고 엎드러뜨리려니와 이것도 다시 있지 못하리라. 마땅히 얻을 자가 이르면 그에게 주리라.” (에스겔 21:27) 이것은 의심할 여지없이 하나님의 상징적 “여자의 씨”인 메시야 왕의 임함을 가리킵니다. 왜냐 하면, 그분이 오시면 그를 계승할 왕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때에 ‘유다’ 지파의 왕국은 끝에 이르고 영원히 ‘실로’의 손에 머물 것입니다. 이분은 하늘에서 여호와의 우편에 앉을 메시야 왕이며 족장 ‘아브라함’이 전리품의 십분지 일을 바친 ‘멜기세덱’과 같은 왕일 것입니다. (시 110:1-4) 그러므로 왕의 홀은 ‘유다’에서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26. (ㄱ) 역대 상 5:1, 2은 장자의 권리와 왕권은 별개의 것임을 어떻게 알려 줍니까? (ㄴ) 계획되지 않은 사태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여호와께서는 자유로이 어떻게 하실 수 있었읍니까?

      26 장자의 권리와 왕으로서의 영도권의 임명이 다르다는 것은 그리고 하나님께서 임종하는 족장 ‘야곱’을 통하여 ‘유다’에게 왕으로서의 영도권을 임명하셨다는 것은 성경에 명백히 진술되어 있읍니다. 역대 상 5:1, 2에서 ‘야곱’의 아들들에 대한 이러한 말을 볼 수 있읍니다. “‘이스라엘’의 장자 ‘르우벤’의 아들들은 이러하니라. (‘르우벤’은 장자라도 그 아비의 침상을 더럽게 하였으므로 장자의 명분이 ‘이스라엘’의 아들 ‘요셉’의 자손에게로 돌아갔으나 족보에는 장자의 명분대로 기록할 것이 아니니라. ‘유다’는 형제보다 뛰어나고 주권자[군주, ‘리서’역]가 ‘유다’로 말미암아 났을찌라도 장자의 명분은 ‘요셉’에게 있으니라.)” 여기에서 우리는 전능하시고 전지하신 하나님께서 그것을 이러한 식으로 계획하셨다고 말할 수 없읍니다. 왜냐 하면, 그는 ‘르우벤’, ‘시므온’, 및 ‘레위’의 비행과 그 결과를 초래케 하신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 것이 아니고, 계획하지 않은 사태가 발생하므로 하나님께서는 자유로이 ‘유다’를 선택하신 것입니다. 무슨 일이 발생하든지 간에 그분은 원래의 목적에 고착하시고 그 목적을 변경하심이 없이 성취하실 수 있읍니다.

      27, 28. (ㄱ) 그러면 우리는 어떠한 민족에 관심을 돌려야 하며, 특히 그중 어느 부분에 관심을 돌려야 합니까? (ㄴ) 하나님께서 제공하시는 증거에 따라 행동할 때 우리에게 어떠한 유익이 있을 것입니까?

      27 하나님께서 기름부음받은 자 메시야와 관련하여 세우신 그의 “영원한 목적”을 고려할 때 하나님의 선택과 행동은 우리에게 확실한 지침이 됩니다. 그분이 운명하는 족장 ‘야곱’에게 영감을 주어 ‘유다’에 대하여 선언하게 하신 예언의 말씀에서 우리는 우리가 따라야 할 행로를 알게 됩니다. 우리는 단지 ‘이스라엘’ 열 두 지파 전체 뿐 아니라 여호와의 천적 “여자의 씨”인 여호와의 메시야와의 직접적인 관련성 때문에 특히 ‘유다’ 지파에 관심을 돌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과 관련된 이 메시야 왕을 식별하도록 돕는 증거는 더욱 더 많아지고 있읍니다.

      28 주권자이신 주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제공하시는 증거에 따라 행동할 때 우리는 실망을 안겨 주는 거짓 메시야를 따르지 않게 될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의 참 메시야를 인정하고 땅의 모든 민족의 영원한 축복의 통로인 그분을 따르는 즐거움을 경험할 것입니다.

  •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한 민족
    인간의 유익을 위하여 지금 성공을 거두는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
    • 제9장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한 민족

      1. 오늘날 국가들은 너무나 유물주의적이어서 누구와 조약 기구를 형성하려고 하지 않습니까?

      국제 무대에서 한 국가가 상호 방위 혹은 평화 관계 혹은 문화 교류 등을 목적으로 다른 국가와 조약을 맺는 것은 통례입니다. 다수의 정치 국가들은 오늘날 북대서양 조약 기구(NATO), ‘바르샤바’ 조약 기구(혹은 ‘바르샤바’ 협정), 혹은 동남 ‘아시아’ 조약 기구(SEATO)와 같은 조약 기구에 가입해 있읍니다. 그러나 오늘날 어떠한 정치 국가가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있읍니까? 오늘날 국가들은 너무나 유물주의적이어서 조약의 상대편으로서 보이지 않는 천적 존재자와 조약 기구를 형성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2. 우리는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한 민족에 대한 어떠한 질문의 답을 알기를 원합니까?

      2 그러나 고대에는, 하늘의 지존하신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진정하고 살아 있는 민족이 지상에 있었습니다. 따라서 이 언약의 한편은 땅에 있는 것이었고 상대편은 하늘에 있는 것이었으며, 한편은 보이는 것이었고 상대편은 보이지 않는 것이었읍니다. 각 언약에는 지정된 목적이 있읍니다. 지상에 있는 한 민족과 하늘에 살아계시고 유일하신 참 하나님 사이의 그 역사적 언약의 목적은 무엇이었읍니까? 그러한 균형 잡히지 않은 것 같은 언약이 어떻게 맺어졌읍니까? 이러한 것이 지금 우리가 알기를 원하는 질문들입니다.

      3. 그러한 언약의 조건, 중보, 조목 및 때를 정하실 적절한 분은 누구일 것입니까?

      3 지존하신 하나님은 전지하고 전능하기 때문에 불완전하고 죄많은 사람들로 이루어진 한 민족에게 그러한 언약을 제의 혹은 제안하시기에 합당한 분일 것입니다. 그러한 형편에서 그분께서 언약의 목적을 밝히시고 조건을 세우시고 그분과 인간 사이의 중보(中保)를 임명하시는 것이 적절할 것입니다. 그분은 언약이 계속되는 데 필요한 조목을 제시하시고 또한 이러한 언약 혹은 협약을 수립할 때를 택하실 것입니다. 오래 전에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는 통용 기원전 16세기였읍니다.

      4. 하나님께서는 희생을 통하여 ‘아브라함’과 정식 언약을 맺으실 때에 그의 씨에 대하여 어떠한 기간을 예언하셨읍니까?

      4 하나님께서는 합당한 때에 민족적 언약을 맺을 이 민족 전체의 조상과 희생을 통하여 정식 언약을 맺으셨읍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희생을 통하여 이러한 정식 언약을 맺으신 것은 ‘살렘’의 왕이며 지존하신 하나님의 제사장인 ‘멜기세덱’이 군사적으로 승리를 거둔 ‘아브라함’을 축복한 후였읍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의 약속이 ‘아브라함’의 후손에게 성취될 것이라는 강한 보증을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저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찌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 네 자손은 사대만에 이 땅으로 돌아 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관영치 아니 함이니라.”—창세 15:13-16.

      5. ‘아브라함’의 씨가 약속의 땅을 차지하기까지 오랫 동안 무슨 일이 있어야 하였읍니까?

      5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육적 씨가 땅을 차지하는 것은 4백년 이상 연기되었읍니다. 이 긴 기간에 선택된 ‘아브라함’의 육적 씨는 이교 “죄악”의 길에서 더욱 더 악화되고 있던 ‘가나안’의 ‘아모리’인들을 대치하기에 충분할 만큼 많은 사람들로 이루어진 민족으로 자랄 것이었읍니다. ‘아브라함’의 육적 씨가 ‘가나안’ 땅 아닌 곳에서 거대한 규모의 백성으로 자라갈 것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약속된 땅의 주민의 “죄악”이 너무 심하여 그들이 그 땅에서 일소되기에 합당할 때까지 그들을 위하여 그 땅을 간수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기회가 무르익었을 때 ‘아브라함’의 육적 씨에게 그 지역을 주실 것임을 이러한 정식 언약으로 보증하셨읍니다.

      “그 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으로 더불어 언약을 세워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 곧 ‘겐’ 족속과 ‘그니스’ 족속과 ‘갓몬’ 족속과 ‘헷’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르바’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여부스’ 족속의 땅이니라 하셨더라.”—창세 15:18-21.

      6. 민족적 언약은 ‘아브라함’과의 약속을 해소할 것입니까? 그리고 그것은 아브라함’의 후손에 대하여 무슨 목적을 수행할 것입니까?

      6 하나님께서 앞으로 맺고자 생각하시는 언약은 단지 한 사람인 ‘아브라함’과 맺은 그 하나님의 언약과는 대조적으로 선택된 후손 계열을 통한 ‘아브라함’의 후손들로 이루어진 큰 민족과 맺을 것이었읍니다. 이 민족적 언약은 ‘아브라함’과의 약속에 부가될 것입니다. 이 ‘아브라함’과의 약속은 ‘아브라함’이 북쪽 ‘유브라데’ 강을 건너서, 희생을 통하여 ‘아브라함’과 맺은 하나님의 정식 언약에 명시된 경계 내에 포함된 구역으로 들어갔을 때 유효하게 되었었읍니다. (창세 12:1-7) ‘아브라함’의 후손들로 된 민족과의 언약 체결은 ‘아브라함’과의 약속을 해소한 것이 아니라 그 약속에 부가된 것이었읍니다. 그것은 현명한 일이었읍니다. 왜냐 하면, ‘아브라함’의 육적 후손 모두가 땅의 모든 민족과 족속이 받을 축복의 실현과 관련된 ‘아브라함’과의 약속에 참여하기에 적합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부가된 민족적 언약은 하나님께서 그의 천적 “여자”의 약속된 “씨” 곧 참 메시야를 보내서 기름부으실 때 합당한 자들이 그 메시야를 받아들이고 충성스럽게 따르도록 준비케 하는 도움 혹은 수단으로서 훌륭한 역할을 할 것이었읍니다.

      7. 무슨 이유로 하나님께서 그 사백년이 끝나기 전에 ‘아브라함’의 후손과 언약을 맺지 않으실 것입니까?

      7 이 부가적인 민족적 언약의 체결은 하나님께서 희생을 통하여 ‘아브라함’과 이 언약을 맺으신 때로부터 4백년 이상이 지난 후에야 있을 것입니다. 그 당시 ‘아브라함’은 아내 ‘사라’가 잉태치 못하므로 아무 후손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하나님께는 ‘아브라함’의 후손이 노예 생활을 하며 이방 나라에 의하여 고통을 당하고 있을 때 그들과 언약을 맺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 언약의 체결은 그들을 괴롭히고 노예화하고 있던 민족에게 가증하고 불쾌한 희생을 요하였기 때문에 특히 그러하였읍니다. (출애굽 8:25-27) 먼저 하나님께서는 압제적인 민족을 불리하게 심판하시고 자기의 백성을 구출하여 자기와의 언약을 이행할 수 있도록 해방시킨 후에 그들과 언약을 제정하실 것이었읍니다. 이 일은 예언된 “사백년”이 끝나자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의 기름부음받은 자인 메시야와 관련하여 그의 “영원한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기간을 정하신 것을 알게 됩니다.

      8, 9. (ㄱ) ‘이삭’이 젖을 뗐을 때 어떠한 기간이 시작되었으며, 어떻게 그러하였읍니까? (ㄴ) 그 기간의 끝은 ‘아브라함’의 육적 씨에게 어떠한 일이 있을 때였읍니까?

      8 ‘아브라함’이 약속의 땅에 들어간지 25년 후 즉 그의 나이 백세에 그는 그의 참 아내 ‘사라’를 통하여 독자를 낳았는데, 이것은 물론 하나님의 기적이었읍니다. 이 일은 아직 ‘아브라함’이나 그의 아들 ‘이삭’에게 속하지 않은 땅에서 있었읍니다. 메시야가 나올 계통인 육적 “씨”가 고통을 당하기 시작한 것은 ‘이삭’이 막 젖을 뗐을 때였읍니다. 이것은 ‘이삭’의 열 아홉살된 이복 형 ‘이스마엘’이 새로이 젖을 뗀 ‘이삭’을 경멸적으로 조롱하였을 때였읍니다. 질투의 표시인 그러한 행동이 자라간다면 ‘아브라함’의 하나님께서 주신 후사 ‘이삭’의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었읍니다.—창세 16:11, 12.

      9 시간 측정에 의하면 ‘아브라함’의 “씨”가 이방에서 고통을 받기 시작한 것은 ‘아브라함’이 105세, ‘이삭’이 5세였을 때였읍니다. 그 때는 기원전 1913년이었읍니다. (창세 21:1-9; 갈라디아 4:29) 따라서, ‘아브라함’의 육적 “씨”에게 임할 “사백년” 간의 고통은 기원전 1513년에 끝날 것입니다. 그 때는 ‘아브라함’의 씨가 압제적인 나라에서 나와 그들의 조상의 땅, 곧 약속의 땅으로 돌아가기 시작할 해일 것입니다. 그때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씨”와 민족적 언약을 수립하여 그들이 그분과의 유효한 언약 안에 있는 민족으로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하실 합당한 때일 것입니다. 사백년의 끝인 이 때는 또한 ‘아브라함’이 ‘유브라데’ 강을 건너 ‘아브라함’과의 약속이 발효한지 43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할 것입니다.—출애굽 12:40-42; 갈라디아 3:17-19.

      민족적 언약의 수립

      10. ‘아브라함’의 육적 씨는 ‘애굽’에서 어느 정도로 증가하였으며. 그러나 마침내 어떠한 상태에 있게 되었읍니까?

      10 ‘아브라함’의 손자 ‘야곱’이 온 가족과 함께 ‘가나안’ 땅을 떠난 때부터 그리고 사백년 기간이 끝날 때까지 ‘야곱’의 후손들 곧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는 ‘함’족의 ‘애굽’(오늘날의 ‘아랍’의 ‘이집트’가 아니라) 땅에서 살았읍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예언하신 바와 같이 ‘아브라함’의 육적 “씨”에게 고통이 임하였고 그 고통은 이제 매우 심하였읍니다. 이 고통의 목적은 하나님의 벗 ‘아브라함’의 백성을 멸절시키기 위한 것이었읍니다. 이러한 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대로 하늘의 별과 같이 그리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이 수효가 셀 수 없이 증가하였읍니다. 마침내 그들은 군복무에 적합한 “60만 가량”의 장정을 소집할 수 있게 되었읍니다. (출애굽 12:37) 하나님께서는 그의 벗 ‘아브라함’과의 언약을 잊지 않으셨읍니다. 그는 또한 이미 발표된 시간표를 지키셨읍니다. 그러므로 그는 합당한 때에 합당한 행동을 하실 준비가 되어 있었읍니다.

      11. 하나님께서는 누구를 ‘이스라엘’의 인도자로 일으키셨으며, 이 사람은 어떻게 자신을 인도자로 나타내려 하였읍니까?

      11 이제 누가 그들의 보이는 인도자가 될 것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유다’ 지파의 족장을 택하지 않으셨읍니다. ‘야곱’이 ‘유다’에게 왕국의 축복을 선언하였다고 하여 꼭 그렇게 해야 할 의무가 있었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창세 49:10; 역대 상 5:1, 2) 지존하신 하나님께서는 그분 본래의 선택권으로 ‘레위’ 지파에서 적합한 사람 곧 ‘레위’의 증손 ‘모세’를 택하셨읍니다. (출애굽 6:20; 민수 26:58, 59) ‘모세’는 사백년이 끝나기 40년 전에 ‘애굽’의 ‘바로’의 궁중 생활을 청산하고 그의 ‘이스라엘’인 동족과 운명을 같이 하기로 결심하고 자신을 그들에게 소개할 때 자기가 그들을 노예 생활에서 구출할 인도자임을 말하였읍니다. “저는 그 형제들이 하나님께서 자기의 손을 빌어 구원하여 주시는 것을 깨달으리라고 생각하였으나 저희가 깨닫지 못하였더라.” 하나님께서는 그 때에 백성을 구출하도록 ‘모세’를 보내지 않으셨읍니다. ‘모세’는 그를 죽이려는 ‘바로’에게서 도피하지 않으면 안되었읍니다. 그는 ‘미디안’ 땅으로 도피해서 결혼을 하고 그의 장인의 목자가 되었읍니다.—출애굽기 2:11에서 3:1; 사도 7:23-29.

      12. ‘모세’는 언제 어디에서 여호와의 “기름부음받은 자”가 되었으며, 무슨 사명을 받았읍니까?

      12 40년이 지나 ‘모세’는 80세가 되었읍니다. 그 때 ‘모세’는 ‘시내’ 반도에서 양떼를 치고 있었는데 하나님의 천사가 오늘날의 ‘수에즈’ 운하에서 동남쪽으로 약 320‘킬로미터’ 떨어진 ‘호렙’ 산 밑에서 ‘모세’에게 기적으로 나타났읍니다. 이 곳 ‘호렙’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자기의 이름을 한 글자 한 글자 말씀하셨읍니다. “‘나는 내가 증명될 자로 증명되겠노라.’ ··· 그대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나는 증명되겠노라가 여러분에게 나를 보내셨오’” (출애굽 3:2-14, 신세) 이렇게 해서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그의 예언자 및 대표자로 임명하셨으며, ‘모세’는 이제 그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동일하게, “기름부음받은 자” 혹은 “메시야”라고 불리울 수 있었읍니다. (시 105:15; 사도 7:30-35; 히브리 11:23-26) 여호와께서는 그 ‘호렙’ 산이 바로 그분이 ‘모세’의 백성과 언약을 맺으실 곳임을 지적하셨읍니다. 왜냐 하면, 여호와께서는 ‘모세’가 그들을 ‘애굽’에서 이 산으로 인도하여 내어 그 곳에서 자기를 섬기게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출애굽 3:12.

      13. ‘바로’는 어떻게 ‘이스라엘’인들에게 ‘애굽’을 떠나라고 명하게 되었읍니까?

      13 ‘바로’가 ‘이스라엘’인들을 해방시키기를 반복적으로 거절하였기 때문에 여호와께서는 그와 그의 백성에게 일련의 재앙을 내리셨읍니다. 열번째이자 마지막 재앙은 ‘바로’의 완고한 마음과 그의 저항을 꺾었읍니다. 이 재앙은 ‘애굽’의 각 가족과 그들의 가축의 초태생을 모두 죽였읍니다. ‘이스라엘’인들은 여호와 하나님께 순종하여 그들의 집에서 첫 유월절(逾越節) 식사를 먹었기 때문에 그들의 장자의 죽음을 면하였읍니다. 여호와의 심판의 천사는 문설주와 인방에 어린 양의 피를 뿌린 것을 보면 지나갔기 때문에 그러한 집에는 죽음이 미치지 않았읍니다. ‘유다’ 지파의 ‘살몬’의 아버지 ‘나손’이 생존하였으며, ‘모세’의 형 ‘아론’의 장자 ‘나답’도 생존하였읍니다. 그러나 ‘바로’의 장자는 죽었읍니다. 슬픔에 잠긴 바로는 장자를 잃은 ‘애굽’인들의 권고를 받고 무사한 ‘이스라엘’인들을 그 나라에서 나가라고 명령하였읍니다.—출애굽 5:1에서 12:51.

      14. 그 첫 유월절 날에 무슨 기간들이 끝났으며, 하나님께서는 그 밤과 관련하여 무엇을 명하셨읍니까?

      14 기원전 1513년 그 중대한 유월절 밤에 여러 가지 지정된 기간이 동시에 끝났읍니다. ‘아브라함’의 육적 씨가 이방에서 고통을 당하는 사백년간이 끝났읍니다. 족장 ‘야곱’이 ‘애굽’에 들어간 때로부터 그 곳에 거주한 215년간이 끝났읍니다. ‘아브라함’이 ‘유브라데’ 강을 건너가 약속의 땅에 거주하기 시작한 때부터 시작된 430년간이 끝났읍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러한 기록이 있읍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 거주한지 사백 삼십년이라. 사백 삼십년이 마치는 그 날에 여호와의 군대가 다 ‘애굽’ 땅에서 나왔은즉 이 밤은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심을 인하여 여호와 앞에 지킬 것이니 이는 여호와의 밤이라. ‘이스라엘’ 자손이 다 대대로 지킬 것이니라.”—출애굽 12:40-42.

      15.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인들을 추격하는 ‘애굽’인들로부터 어떻게 구출하셨으며, 그들은 그 때에 어떠한 노래를 불렀읍니까?

      15 여호와께서는 한 가지 전략적인 이유로 ‘모세’를 통하여 그의 해방된 백성을 홍해 상부 서편 갈래 해안으로 인도하셨읍니다. ‘바로’와 그의 병거 부대와 기병대는 ‘이스라엘’인들이 덫에 걸린 것으로 생각하고, 그들의 도망한 노예들을 추격하여 바짝 다가갔읍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통로를 열어 주어 밤에 ‘이스라엘’인들이 마른 해저를 걸어 ‘시내’ 반도의 해안으로 건너게 하셨읍니다. ‘애굽’인들로는 도망 통로로 들어오게 하신 다음에 하나님께서는 그들 위에 물이 합쳐지게 하여 그들과 그들의 말을 익사케 하셨읍니다. ‘아브라함’의 육적 “씨”를 압제하는 민족을 심판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실패하지 않았읍니다. (창세 15:13, 14) ‘시내’ 해안에 무사히 도착한 여호와의 심판의 목격 증인들은 이렇게 노래하였읍니다. “여호와의 다스리심이 영원무궁하시도다. ··· 너희는 여호와를 찬송하라.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출애굽 15:1-21.

      16. 하나님께서는 ‘호렙’에 진친 백성에게 무엇을 제안하셨으며, 그 목적은 무엇이었읍니까?

      16 ‘이스라엘’인들이 ‘애굽’을 떠나 음력 3월(‘시완’월)에 ‘시내’ 광야에 들어와 “참 하나님의 산”, ‘호렙’ 산 밑에 진을 친 때는 특별한 날이었읍니다. 그 곳이 바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그들이 그를 섬겨야 한다고 말씀하신 곳입니다. (출애굽 3:1, 12; 19:1) 예언자 ‘모세’는 이제 하나님과 진친 백성들 사이에 중보(中保)의 역할을 해야 하였읍니다. 여호와께서는 이제 자기와 이 백성 사이에 한 언약을 제출하시고 그 언약의 목적을 설명하셨읍니다. 여호와께서는 ‘호렙’ 산에서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너는 이같이 ‘야곱’ 족속에게 이르고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라. 나의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특별한 소유, 신세]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출애굽 19:3-6.

      17. 여호와께서 구원받은 ‘이스라엘’인들에게 언약을 강요하셨는지의 여부를 무슨 절차가 알려 줍니까?

      17 지존하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인들에게 이 언약을 강요하지 않으셨읍니다. 하나님께서는 ‘애굽’과 홍해에서 그들을 구원하셨지만 자기와 언약을 맺을 것인지 아닌지를 그들 스스로 택하게 하셨읍니다. 여호와의 “특별한 소유”가 된다고요?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된다고요? 그렇습니다. 그것이 그때, ‘이스라엘’인들이 바란 것이었읍니다. 그러므로 ‘모세’가 하나님께서 제안하신 언약에 대하여 백성의 대표자들에게 말하였을 때 “백성이 일제히 응답하여 가로되 여호와의 명하신대로 우리가 다 행하리이다” 하고 말하였음을 기록은 알려 줍니다. 이제 ‘모세’는 백성의 결정을 여호와께 보고하였고 여호와께서는 동의한 바 대로 그 언약을 세우셨읍니다.—출애굽 19:7-9.

      18. 그로부터 세째 날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무엇을 선언하셨읍니까?

      18 그 후 세째 날에 ‘호렙’의 ‘시내’ 산에서 천사를 통하여 여호와께서는 모여 있는 ‘이스라엘’인들에게 열 말씀 즉 십계명을 선언하셨읍니다. 이 계명들이 출애굽기 20:2-17에 기록되어 있읍니다.

      더 큰 중보가 예언됨

      19. (ㄱ) 장관으로 인하여 ‘이스라엘’인들은 ‘모세’에게 무엇을 요청하였읍니까? (ㄴ) ‘모세’는 무엇이라고 대답하였읍니까?

      19 그 장면은 참으로 장관이었읍니다! “뭇 백성이 우뢰와 번개와 나팔 소리와 산의 연기를 본지라. 그들이 볼 때에 떨며 멀리 서서 ‘모세’에게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말씀하소서. 우리가 들으리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지 말게 하소서. 우리가 죽을까 하나이다.” (출애굽 20:18, 19) 두려움에 질린 ‘이스라엘’인의 요청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은 신명기 18:14-19에 더욱 온전히 설명되어 있읍니다. 거기에서 ‘모세’는 ‘이스라엘’인들에게, 하나님께서 그들과 하나님 사이의 중개인으로서 마술사와 복술자들을 주시지 않으셨음을 말하고 나서 이어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네게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런 일을 용납지 아니하시느니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중 네 형제 중에서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너를 위하여 일으키시니 너희는 그를 들을찌니라. 이것이 곧 네가 총회의 날에 ‘호렙’ 산에서 너의 하나님 여호와께 구한 것이라. 곧 네가 말하기를 나로 다시는 나의 하나님 여호와의 음성을 듣지 않게 하시고 다시는 이 큰 불을 보지 않게 하소서. 두렵건대 내가 죽을까 하나이다 하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들의 말이 옳도다. 내가 그들의 형제 중에 너와 같은 선지자[예언자, 신세] 하나를 그들을 위하여 일으키고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하는 것을 그가 무리에게 다 고하리라. 무릇 그가 내 이름으로 고하는 내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내게 벌을 받을 것이[니라].”

      20, 21. (ㄱ) ‘이스라엘’이 ‘모세’와 같은 또 다른 예언자가 있을 것이라는 것을 믿기가 쉬웠읍니까? (ㄴ) 이 미래의 예언자는 어떠한 면으로 ‘모세’와 같을 것이며, 그 규모는 어떠합니까?

      20 하나님께서 “대면”하여 말씀하셨다고 할 수 있는 ‘모세’와 같은 예언자?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에게 전달하였을 때 ‘이스라엘’인들은 그러한 생각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을 위하여 그러한 예언자를 일으키시겠다고 말씀하셨읍니다. ‘‘모세’와 같은’이라는 말은 단순히 ‘모세’와 동등하다는 뜻이 아닐 것입니다. 약속된 예언자는 ‘모세’와 같을 수도 있지만 ‘모세’보다 더 클 수 있읍니다.

      21 ‘모세’ 이후의 ‘이스라엘’ 예언자들로부터 ‘말라기’에 이르기까지 ‘모세’와 같은 예언자가 없었으며, ‘모세’보다 더 큰 예언자가 없었읍니다. (신명 34:1-12) 그러나 하나님의 천적 “여자의 씨”가 될 약속된 기름부음받은 자 곧 메시야는 어떠하였읍니까? (창세 3:15) 하나님께서는 ‘시내’ 산에서 ‘모세’와 같은 미래의 예언자에 관하여 ‘모세’에게 말씀하실 때 이분에 관하여 말씀하신 것이 분명합니다. 이 메시야 “씨”는 ‘모세’와 같이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가 될 것이지만 ‘모세’보다 더 클 것이었읍니다. 살아계시고 유일하신 참 하나님의 오늘날의 숭배자들에게는 ‘모세’가 고대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한 것보다 그들을 위하여 수행되어야 할 일들이 더 많은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모세’는 장차 올 여호와의 더 큰 예언자를 전영하였읍니다.

      22. ‘모세’와 같은 미래의 예언자는 왜 하나님을 숭배하기 위하여 형상을 사용하는 것을 반대할 것입니까?

      22 그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또한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라. 내가 하늘에서부터 너희에게 말하는 것을 너희가 친히 보았으니 너희는 나를 비겨서 은으로 신상이나 금으로 신상을 너희를 위하여 만들지 말[라].” (출애굽 20:22, 23) 부인할 여지 없이 이 말씀은 하늘에서 말씀하신 하나님을 숭배하기 위하여 생명없고 말할 수 없는 인조 형상을 사용하는 것을 금하시는 명령입니다. 그것은 출애굽기 20:4-6에 나오는 하나님께서 십계명에서 두번째로 말씀하신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모세’와 같은 메시야 예언자는 그와 같은 종교적 형상을 사용하는 것을 반대할 것입니다.

      23. ‘이스라엘’과의 그 언약을 왜 흔히 율법 언약이라고 합니까?

      23 하나님께서는 중보 ‘모세’를 통하여 언약을 세우시기 전에 ‘모세’에게 십계명에 부가하여 기타 율법들을 주셨읍니다. 이러한 율법이 출애굽기 21장에서 23장에 열기되어 있읍니다. 이러한 율법이 두루마리 혹은 “책”에 기록되었으며 언약이 정식으로 세워질 때 가지고 있었읍니다. 이 언약은 특히 하나님의 선민이 지켜야 할 하나님의 율법을 수여하는 것으로 특징을 이루었기 때문에 율법의 언약이었으며 그러므로 흔히 율법 언약이라고 불리웁니다. 이 법전 곧 정리된 형태의 법률을 성경에서 “율법”이라고 합니다.

      24. 율법 언약은 ‘아브라함’과의 언약 후 얼마 뒤에 세워졌으며, ‘아브라함’과의 약속은 아직도 유효합니까?

      24 ‘이스라엘’과의 이 언약의 율법은 ‘애굽’에서 있었던 유월절밤 후 약 50일 혹은 51일 후에 십계명의 형태로 소개되었기 때문에 이 율법이 “사백 삼십년 후(기원전 1943년의 ‘아브라함’과의 언약 이후로)에 생긴 율법”이라고 말할 수 있었읍니다. 그러한 오랜 기간 후에 ‘이스라엘’에게 주신 율법은 ‘아브라함’과의 언약을 무효화하지 않으므로 “그 약속을 헛되게 하”지 않았읍니다. (갈라디아 3:17) ‘아브라함’의 “씨”로 땅의 모든 나라와 족속을 축복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은 아직도 유효합니다. 그것은 실패하지 않을 것입니다!

      25. 율법 언약은 누구에게 구속력이 있었으며, 그것에 무엇을 사용함으로써 그렇게 되었읍니까?

      25 ‘이스라엘’과의 율법 언약은 희생의 피의 사용으로써 언약 양편을 엄숙히 구속하도록 유효하게 되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출애굽기 24:6-8에 있는 기록은 이렇게 알려 줍니다. “[중보] ‘모세’가 피를 취하여 반은 여러 양푼에 담고 반은 단에 뿌리고 언약서를 가져 백성에게 낭독하여 들리매 그들이 가로되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모세’가 그 피를 취하여 백성에게 뿌려 가로되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또한 출애굽 24:3 참조.

      26. 피를 하나님의 제단에 뿌린 것은 무엇을 상징하였으며, 피를 백성에게 뿌린 것은 무엇을 상징하였읍니까?

      26 모세가 ‘시내’ 산 밑에 세운 제단은 여호와 하나님을 대표하였으며 이 제단에서 그분께 희생이 드려졌읍니다. 그러므로 동물 희생의 피의 절반을 제단에 뿌림으로써 상징적으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언약 안에 들어오게 되셨으며 그 언약의 당사자로서 그 언약에 구속되게 되셨읍니다. 한편, 희생의 피의 반은 백성에게 뿌려짐으로써 그들도 그 언약의 다른 편 당사자로 언약 안에 들어오게 되었으며 그들에게 적용된 그 언약의 조항들을 지킬 엄숙한 의무 아래 있게 되었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이스라엘’ 민족 양편은 피에 의하여 언약 안에서 연합되었읍니다.

      27. 율법 언약을 세우는 것과 관련하여 ‘이스라엘’인들이 모르고 혹은 강요에 의하여 언약을 맺게 된 것이 아님을 무엇이 증명합니까?

      27 ‘이스라엘’ 민족은 모르고 혹은 압력과 강요에 의하여 이 언약을 맺게 된 것이 아니었읍니다. 그들은 피로써 언약을 엄숙히 체결하기 전날 하나님의 말씀과 율례를 들었으며 그것을 받아들였읍니다. 출애굽기 24:3이 알려 주는 바와 같습니다. “‘모세’가 와서 여호와의 모든 말씀과 그 모든 율례를 백성에게 고하매 그들이 한 소리로 응답하여 가로되 여호와의 명하신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이튿날 ‘모세’가 백성에게 “언약서”를 읽어 준 후에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받아들인다는 말을 반복하였읍니다. 그 후에 그들에게 희생의 피가 뿌려졌읍니다. 이제 ‘이스라엘’ 민족 전체는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 하고 말씀하시면서 언약을 제의하실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행할 의무를 갖게 되었읍니다.—출애굽 19:5, 6.

      28. 율법 언약의 조항들을 충성스럽게 지키는 점에 있어서 언약의 어느 편이 문제가 되었으며, 거룩하게 되려면 무엇이 요구되었읍니까?

      28 이 상호 언약에 대하여 전능하신 하나님 편에서는 충실하실 것을 기대할 수 있읍니다. 왜냐 하면, 그분은 변하지 않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말라기 3:6) 문제는 ‘이스라엘’인들이었읍니다. 그들은 그들이 기꺼이 행하겠다고 말한 일을 충성스럽게 하나님 앞에서 이행할 것입니까? 그들은 시편 50:4, 5의 성취로 여호와께 모여질 충성스러운 사람들에 포함될 것입니까? “하나님이 그 백성을 판단하시려고 윗 하늘과 아래 땅에 반포하여 이르시되 나의 성도[충성스러운 자들, 신세]를 [내] 앞에 모으라. 곧 제사로 나와 언약한 자니라 하시도다.” (신세 참조) 개인들로서가 아니라 전체 백성으로서, 민족으로서, 그들은 온 백성을 위한 제사를 통하여 이 율법 언약을 세웠읍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거룩한 백성”임을 나타낼 것입니까? 이렇게 하기 위하여 그들은 이 세상에서 분리되어 있어야 하였읍니다.

      29, 30. (ㄱ) 단순히 율법 언약을 맺었다는 이유로 ‘이스라엘’은 “제사장 나라”가 되었읍니까? 혹은, 제사장을 위한 어떠한 마련이 있었읍니까? (ㄴ) ‘레위’ 지파 중 다른 가문의 적합한 남자들은 무엇이 되었읍니까?

      29 그들이 단순히 지존하신 하나님과의 이 언약에 들어왔다고 하여 즉시 “제사장 나라”가 되지는 않았읍니다. 그들은 그 당시 결코, 지상의 다른 모든 나라를 위한 제사장 나라가 아니었으며 남자 모두가 하나님께 제사장이 된 것은 아니었읍니다. 다음과 같은 이사야 61:6의 예언은 그들에게 아직 성취되지 않았읍니다. “오직 너희는 여호와의 제사장이라 일컬음을 얻을 것이라 사람들이 너희를 우리 하나님의 봉사자라 할 것이며 너희가 열방의 재물을 먹으며 그들의 영광을 얻어 자랑할 것이[니라].” 그렇지 않고, 율법 언약의 조항에 따라 ‘이스라엘’에서 단지 한 가문의 자격 있는 남자들만이 제사장이 되었으며, 그 민족의 다른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봉사하였읍니다. 이 가문은 ‘레위’ 지파 중 ‘모세’의 형 ‘아론’의 가문이었읍니다. 그는 하나님의 대제사장이 되었으며, 그의 아들들은 제사장보가 되었읍니다. 그렇게 해서 그들은 ‘아론’계 제사직을 형성하게 되었읍니다.

      30 ‘레위’ 지파 중 다른 가문의 적합한 남자들은 ‘아론’ 제사직의 봉사자들이 되어 그들을 도와 하나님의 집 혹은 회막에서 종교적 업무를 수행하게 되었읍니다. 그것이 율법 언약에 규정되어 있었읍니다.—출애굽기 27:20에서 28:4; 민수 3:1-13.

      31. 왜 ‘아론’계의 제사장들은 또한 ‘이스라엘’에서 왕이 아니었읍니까?

      31 그러므로 ‘유다’ 지파는 고대 ‘이스라엘’의 제사직에 참여하지 않았읍니다. 왜냐 하면, 이 지파로부터는 메시야인 “인도자” 곧 “모든 백성이 복종”할 “실로”라는 분이 나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창세 49:10; 역대 상 5:2) 그러므로 고대 ‘이스라엘’에서 왕권과 제사직은 구별되어 있었읍니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왕 겸 제사장이 아니었으며, 따라서 ‘멜기세덱’과 같지 않았읍니다.

      32. ‘이스라엘’은 어떠한 절기를 매년 지켜야 하였읍니까?

      32 율법 언약에 의하면 모든 백성은 매년 숭배의 회막 혹은 성막에서 세번의 전국적인 절기를 기념하게 되어 있었읍니다. “너의 중 모든 남자는 일년 삼차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의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께 보이되 공수로 여호와께 보이지 말고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의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물건을 드릴찌니라.” (신명 16:16, 17; 출애굽 34:1, 22-24) 무교병(無酵餅)의 절기는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구출을 받은 것을 기념한 연례 유월절 식사와 관련이 있었읍니다. 칠칠절(七七節)은 ‘니산’월 16일로부터 시작하여 50일째 되는 날 즉 7주 후에 지켰으며, 밀 추수의 첫 열매를 그 50일째 되는 날(즉 오순절)(五旬節)에 여호와께 바쳤읍니다. 초막절(草幕節)(혹은 장막절)은 또한 “수장절”이라고도 하였으며 해가 바뀐 때 있었읍니다. 이 연례 절기에 규정된 희생을 여호와께 바쳤읍니다.—레위 23:4-21, 33-43.

      33. 속죄일은 언제였으며, 속죄 희생은 왜 매년 반복될 필요가 있었읍니까?

      33 초막절 절기가 시작되기 5일 전에 연례 “속죄일”(‘욤 키푸르’)이 봄달인 ‘니산’월이나 ‘아빕’월부터 계산하여 음력으로 일곱째 달 10일에 있었읍니다. 그날은 ‘티쉬리’월 10일이 될 것입니다. 이 날 여호와와 언약 관계에 있는 온 국민의 죄를 위하여 속죄제가 있었으며, 일년 중 이날 하루에 한하여 ‘아론’계 대제사장이 회막 지성소에 들어가 여호와의 기록된 율법이 들어 있는 거룩한 언약궤 앞에서 속죄 희생(황소와 염소)의 피를 뿌렸읍니다. (레위 23:26-32; 16:2-34) 물론 인간보다 낮은 이러한 동물 희생물의 죽음과 뿌린 피가 그러한 동물을 지배하는 인간들의 죄를 실제로 제거할 수는 없었읍니다. 그러한 희생된 동물의 죽음과 피가 인간의 죄를 참으로 제거하지 못하기 때문에 속죄일의 희생이 매년 반복되어야 하였읍니다.

      34. 율법 언약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를 제거하기 위하여 무엇이 요구됨을 지적하였으며, 왜 ‘이스라엘’인 중 아무도 요구된 것을 바칠 수 없었읍니까?

      34 이 이유를 우리는 이해할 수 있읍니다. 율법 언약 가운데서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이렇게 명령하셨읍니다. “그러나 다른 해가 있으면 갚되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데운 것은 데움으로, 상하게 한 것은 상함으로, 때린 것은 때림으로 갚을찌니라.” (출애굽 21:23-25; 신명 19:21) 다시 말하면, 같은 것으로, 동등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갚아야 하였읍니다. 그러므로 단죄 아래 있게 된 인간 생명을 위하여 단죄받지 않은 인간 생명이 필요하였읍니다. 그러기 때문에 시편 49:6-10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읍니다.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고 풍부함으로 자긍하는 자는 아무도 결코 그 형제를 구속하지 못하며 저를 위하여 하나님께 속전을 바치지도 못할 것은 저희 생명의 구속이 너무 귀하며 영영히 못할 것임이라. 저로 영존하여 썩음을 보지 않게 못하리니 저가 보리로다. 지혜 있는 자도 죽[는도다].” 상응하는 대속물이 있어야 하며, 죄 있는 ‘이스라엘’인 중 아무도 ‘아담’이 상실한 완전한 생명을 되찾기 위하여 그러한 대속물을 마련할 수 없었읍니다.

      35. ‘아론’계 제사직은 어떻게 되었으며, 그러므로 대속 희생을 위하여 어디에 기대해야 합니까?

      35 하나님의 거룩한 전(殿)에서 단순한 동물 희생을 비치던 ‘아론’계 제사직은 십구세기 전 곧 ‘예루살렘’과 그 곳 성전이 ‘로마’ 군대에 의하여 멸망당한 기원 70년에 없어졌읍니다. 이제 여호와 하나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한 제사장”을 삼으시겠다고 맹세하신 메시야 왕만을 기대해야 합니다. (시 110:1-4) 그분은 하나님의 천적 “여자의 씨” 즉 하나님께서 ‘에덴’에서 “뱀”으로 상징된 악한 자의 머리를 상하도록 임명하시고 능력을 부여하시는 씨일 것입니다. 만일 이 분이 온 인류를 위하여 대속물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우리 인간에게는 구제책이 없으며, 여호와 하나님의 의로운 새 질서에서 즐길 영원한 생명에 대한 전망이 있을 수 없읍니다. 그러므로 기원 1세기까지 ‘이스라엘’의 “속죄일”에 바쳐졌던 동물 희생은 상징적이었음이 분명합니다. 그러한 희생은 예언적으로 ‘멜기세덱’과 같은 제사장, 뱀의 머리를 상할 자가 되실 메시야가 바칠 대속 희생을 상징하는 것이었음이 분명합니다.

      36. 마찬가지로, 율법 언약 하의 절기들을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36 하나님의 언약이 고대 ‘이스라엘’에게 부과한 그 연례 절기도 마찬가지였읍니다. 그러한 절기는 단순히 국민의 오락과 휴식을 위한 무의미한 행사가 아니었읍니다. 그러한 절기들은 예언적 의미를 지니고 있었읍니다. 그 절기들은 행복한 행사일이었으므로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미래의 행복한 마련들을 상징하였읍니다. 그러한 절기의 축복된 의미를 하나님께서는 그의 “영원한 목적”에 따라 합당한 때에 알리십니다.

      놀라운 기회를 가진 민족

      37. 율법 언약은 ‘이스라엘’인들에게 어떠한 기회를 주었읍니까?

      37 그러나, ‘이스라엘’인으로서 한 사람이라도 하나님과의 언약의 율법의 아주 사소한 것이라 할지라도 범하는 일이 없이 완전히 지킴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었읍니까? 율법 언약은 ‘이스라엘’인 각자가 그렇게 할 수 있는가를 증명할 기회를 주었읍니다. 레위기 18:5에는 이러한 기회를 지적하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읍니다. “너희는 나의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사람이 이를 행하면 그로 인하여 살리라. 나는 여호와니라.” 그러므로 만일 어떤 ‘이스라엘’인이 율법을 흠없이 지키고 자기 자신의 행위로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면 그는 율법 언약의 희생의 유익을 필요로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는 ‘아브라함’과의 약속의 축복도 필요치 않을 것입니다. (창세 12:3; 22:18) 그처럼 율법을 완전히 지키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 의롭고 생명을 받을 가치가 있음을 확립할 것입니다.

      38, 39. (ㄱ) ‘이스라엘’인 중에 율법을 완전히 지킴으로 생명을 얻은 사람이 있는지의 여부를 무엇이 알려 줍니까? (ㄴ)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누구의 제사직 봉사가 필요합니까?

      38 그러나, 심지어 예언자 ‘모세’도 사망하였읍니다. 대제사장 ‘아론’도 사망하였읍니다. 그리고 율법 언약을 세운 때로부터 기원 70년에 ‘아론’계 제사직이 없어질 때까지, 아니, 오늘날까지 다른 모든 ‘이스라엘’인이 죽었읍니다. ‘로마’인들이 ‘예루살렘’ 성전을 파괴한지 19세기 후에도 오늘날의 정통 ‘이스라엘’인들은 속죄일 즉 ‘욤 키푸르’를 지킵니다. 이 사실 자체는 그들이 죄로부터 깨끗해질 필요가 있다는 것 즉 그들이 율법을 완전히 지킬 수 없으며 그들 자신의 의로운 행위로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만일 그들이 율법 언약 하에서 그렇게 할 수 없었다면 그 외의 사람들 즉 우리 불완전한 인간이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겠읍니까?

      39 율법 언약으로 명백해진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우리 모두는 완전한 활동을 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단죄받은 입장에 있읍니다. (신명 32:4) 예언자 ‘이사야’가 ‘이스라엘’과의 율법 언약이 체결된지 7백여년 후에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다고 말한 바와 같습니다. (이사야 64:6) 우리 모두는 약속된 ‘멜기세덱’과 같은 제사장 즉 영원히 제사장이 될 분의 봉사를 필요로 합니다.

      40. ‘모세’는 기원전 1512년 ‘니산’월 1일에 하나님의 숭배와 관련하여 무엇을 하였으며, 다음에 무슨 일이 있었읍니까?

      40 중보 ‘모세’를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그 언약이 세워진 해를 돌이켜 생각하여 보십시오. 그 해가 끝나고 기원전 1512년 ‘니산’월 1일이 되었읍니다. 그 날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숭배가 시작될 장소인 “회막의 성막”을 세웠읍니다. 다음에 ‘모세’는 그의 형 ‘아론’과 ‘아론’의 아들들에게 예복을 입히고 대제사장과 제사장보로 봉사하도록 거룩한 기름으로 그들을 기름부었읍니다. “‘모세’가 이같이 역사를 필하였더라. 그 후에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수 없었으니 이는 구름이 회막 위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 함이었[더라].”—출애굽 40:1-35.

      41. 그러한 표현은 무엇의 증거였으며, 제사직 설치는 언제 끝났읍니까?

      41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 숭배의 건물을 받아들이고 그의 목적에 따라 그것을 거룩하게 하셨다는 보이는 증거가 있었읍니다. 그 첫 달 ‘니산’월(‘아빕’월) 7일에 ‘아론’계 제사직을 취임시키고 권한을 부여하는 일이 끝나고 그 후에 그들은 거룩한 성막에서 하나님의 숭배의 모든 면을 공적으로 감독할 수 있었읍니다.—레위 8:1에서 9:24.

      42. 그 때 여호와는 그들이 숭배할 하나님일 뿐 아니라 ‘이스라엘’에게 보이는 대표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 무엇이기도 하셨읍니까?

      42 이 ‘이스라엘’ 민족이 숭배하도록 명령을 받았고 또 숭배할 의무를 가진 하나님은 여호와이었읍니다. 그분은 그들의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통치자 곧 왕이었읍니다. 그들은 그분께 복종하고 충성을 나타내야 하였읍니다. 그러므로 그분의 율법과 계명에 대한 불순종은 반항과 불충성일 것입니다. 예언자 ‘모세’는 그 사실을 확증하여 신명기 33:5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율법 언약을 맺었기 때문에 그 민족을 ‘여수룬’ 즉 “곧은 자”라고 불러 이렇게 말합니다 “‘여수룬’에 왕이 있었으니 곧 백성의 두령이 모이고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함께 한 때에로다.” 그리고 고(故) ‘제이. 에이치. 헤르츠’ 박사는 그 귀절에 대하여 “그리하여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하나님의 왕국이 시작되었다”고 각주를 달았읍니다. (「오경과 하프토라」. ‘손시노’판 910면) 여호와는 그들의 보이지 않는 천적 왕이었읍니다. 그에게는 ‘이스라엘’에서 그분을 대표할 지적인 보이는 인간 왕이 필요하지 않았읍니다.—창세 36:31.

      43, 44. 지상의 다른 모든 나라에 비할 때 고대 ‘이스라엘’은 어떻게 특별한 은총을 입었으며, 그러므로 그들은 어떻게 여호와를 찬양할 수 있었읍니까?

      43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후손들로 이루어진 그리고 살아계시고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이 민족은 참으로 크게 은총을 받았읍니다! 그들은 그분을 참으로 숭배하게 되었으며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백성”이 될 전망을 가졌읍니다.

      44 예언자 ‘아모스’는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께서 너희를 쳐서 이르시는 이 말씀을 들으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리신 온 족속을 쳐서 이르시기를 내가 땅의 모든 족속 중에 너희만 알았[느니라].” (아모스 3:1, 2) 시편 필자가 ‘할렐루야’ 시에서 이렇게 말한 것은 정확한 비교였읍니다. “저가 그 말씀을 ‘야곱’에게 보이시며 그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보이시는도다. 아무 나라에게도 이같이 행치 아니하셨나니 저희는 그 규례를 알지 못하였도다. 할렐루야.” (시 147:19, 20) 그 은총받은 민족은 참으로 여호와의 언약을 지킴으로써 그분을 찬양하는 것이 마땅하였읍니다. 그들이 그렇게 할 것인지는 이제 시작된 율법 언약 시대라고 불리울 수 있는 기간 중에 나타날 것이었읍니다.

  • ‘다윗’과 맺은 왕국 언약
    인간의 유익을 위하여 지금 성공을 거두는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
    • 제10장

      ‘다윗’과 맺은 왕국 언약

      1. 열왕기 상 6:1에는 어떠한 기간이 구분되어 있으며, 이 기간 측정은 왜 적절하였읍니까?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영원한 목적”에 따라 기간을 구분하십니다. 그중 한 기간이 열왕기 상 6장 1절에 나오는데, 그 기록은 이러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지 사백 팔십년이요 ‘솔로몬’이 ‘이스라엘’ 왕이 된지 사년 ‘시브’월 곧 이월에 ‘솔로몬’이 여호와를 위하여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였더라.” 이것은 적절한 기간 측정이었읍니다. 왜냐 하면, 그 기간은 ‘이스라엘’인들이 ‘애굽’에서 구출을 받은 때로부터—그 직후 그들은 ‘시내’ 광야에서 숭배의 전을 건축하기 시작하였음—‘다윗’의 아들 ‘솔로몬’ 왕이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기 시작한 때까지였기 때문입니다. 이 기간은 기원전 1513년 ‘니산’월 15일부터 기원전 1034년 ‘시브’월(혹은 ‘이야르’월) 1일까지였읍니다.—민수 33:1-4; 열왕 상 6:37.

      2, 3. (ㄱ) ‘이스라엘’인들은 왜 ‘시내’ 광야에서 오랫 동안 방황하였읍니까? (ㄴ) 그들은 얼마 동안 약속의 땅을 정복하였으며, 그 후 여러 세기 동안 그들은 어떻게 통치하였읍니까?

      2 물론 거의 5세기에 걸친 이 동안에 많은 일이 발생하였읍니다. ‘이스라엘’인들은 당시 약속의 땅에 거주하던 민족들을 정복하실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믿음이 약하였기 때문에 거의 40년간 ‘시내’ 광야에서 방황하지 않으면 안되었읍니다. ‘애굽’에서 나온지 둘째 해에 하나님의 인도 하에 약속의 땅을 침공하는 것을 반대한 나이 많은 ‘이스라엘’인들은 그 동안에 모두 죽었읍니다. (민수 13:1에서 14:38) 사십년 끝에 하나님께서는 기적으로 그들이, 범람하는 ‘요단’ 강을 건너 약속의 땅 곧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하셨읍니다.

      3 다음에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의 인도를 받아 그 땅을 정복하는 전쟁이 시작되었읍니다. ‘유다’ 지파의 ‘여분네’의 아들 충실한 ‘갈렙’의 말에 의하면 점령한 땅을 ‘이스라엘’의 각 가문에 분배할 때 ‘이스라엘’인들은 6년간 그 땅을 정복하고 그 주민을 내쫓고 있었읍니다. (여호수아 14:1-10) 그 후에 하나님께서는 새로 정착한 ‘이스라엘’인들에게 여러 세기 동안 일련의 사사(士師)들을 주셨으며, 마침내 예언자 ‘사무엘’ 시대에 국가 정부 형태가 소개되는 변화가 있었읍니다. 천 구백년 전에 ‘유대’ 연대 학자 한 사람은 이 기간을 간단히 약술하였읍니다. 소‘아시아’의 ‘비시디아’ ‘안디옥’에 있는 한 회당에서 어느 안식일에 이 연대 학자는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4, 5. (ㄱ) 그 성서 연대 학자는 ‘이스라엘’이 사사를 갖기 전 ‘이스라엘’ 역사를 어떠한 기간으로 구분하였읍니까? (ㄴ) 그 기간은 어떠한 사건으로 시작되고 끝났읍니까?

      4 “‘이스라엘’ 사람들과 및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들으라, 이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이 우리 조상들을 택하시고 ‘애굽’ 땅에서 나그네된 그 백성을 높여 큰 권능으로 인도하여 내사 광야에서 약 사십년간 저희 소행을 참으시고 ‘가나안’ 땅 일곱 족속을 멸하사 그 땅을 기업으로 주시고(약 사백 오십 년간)[그 모든 일이 약 450년 동안에 있었다, 신세] 그 후에 선지자 ‘사무엘’ 때까지 사사를 주셨더니 그 후에 저희가 왕을 구하거늘 하나님이 ‘베냐민’ 지파 사람 ‘기스’의 아들 ‘사울’을 사십 년간 주셨[느니라].”—사도 13:14-21. 또한 기원 1610년 발행 ‘두우에이’역 성서 참조. 또한 기원 1897년 발행 ‘제이. 비이. 로더함’역 「강조된 성서」.

      5 그 땅은 ‘갈렙’과 기타 ‘이스라엘’인들에게 주거지로 할당하는 일은 기원전 1467년에 있었읍니다. “약 사백 오십년”을 거슬러 올라가면 기원전 1918년이 됩니다. 그 해가 바로 ‘사라’에 의한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이 출생한 해이며 하나님께서는 ‘사라’의 ‘애굽’인 여종 ‘하갈’에 의한 ‘아브라함’의 큰 아들 ‘이스마엘’ 대신에 ‘이삭’을 택하셨읍니다. 하나님께서는 맹세로써 ‘이삭’에게 ‘가나안’ 땅의 소유에 대한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을 ‘이삭’에게 확인하셨으며 그리고 이제 이 450년 기간의 끝에 하나님께서는 ‘이삭’의 후손들에게 약속의 땅을 유산으로 분배하셨읍니다. 충실하시게도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온 인류를 축복하실 그의 “영원한 목적”에 고착하셨읍니다.

      6. (ㄱ) 사사 ‘기드온’은 어떻게 하나님의 주권에 충성을 나타냈읍니까? (ㄴ) ‘기드온’의 아들 ‘아비멜렉’은 어떻게 왕으로 행세하였읍니까?

      6 ‘여호수아’로부터 ‘사무엘’에 이르기까지 열 다섯명의 사사 기간 중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여섯째 사사인, ‘므낫세’ 지파의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을 설득시켜, 여호와 하나님을 왕으로 갖는 대신, 그의 가문에서 통치자들의 왕조를 세우게 하려고 시도하였읍니다. 그러나 ‘기드온’은 ‘이스라엘’ 주권 통치자에게 충성스러웠으며, 통치권에 대한 그러한 제의를 물리쳤읍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내가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하겠고 나의 아들도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시리라.” (사사 8:22, 23) ‘기드온’의 여러 아들 중 ‘아비멜렉’(“나의 아버지는 왕”이라는 의미)은 ‘세겜’의 지주들을 감화시켜 자기를 왕으로 추대하게 하였읍니다. 그는 하나님의 불리한 심판을 받았고 삼년간 통치한 후에 한 여인이 전쟁에서 그로 죽게 하였읍니다.—사사 9:1-57.

      ‘이스라엘’ 전체를 다스릴 왕

      7. 언제 어떻게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택한 인간 왕을 가지게 되었으며, 그는 얼마 동안 통치하였읍니까?

      7 열 다섯째 사사이며 예언자인 ‘사무엘’이 늙었을 때 ‘이스라엘’의 장로들은 그에게 와서 “열방과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 하고 요청하였읍니다. ‘사무엘’은 이것이 자기가 하나님의 임명을 받은 사사임을 배척하는 것으로 생각하였으나 여호와께서는 그에게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고 말씀하셨읍니다.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사무엘’은 ‘이스라엘’인들에게 그들이 보이는 인간 왕을 가지면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하였으나 그들은 그래도 왕을 두는 것이 더 좋다고 말하였읍니다.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주권자이신 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첫 인간 왕이 될 사람을 택하셨읍니다. 그분은 ‘사무엘’을 보내어 ‘베냐민’ 지파의 ‘기스’의 아들 ‘사울’을 왕으로 기름붓게 하셨읍니다. 기원전 1117년에 ‘사울’은 ‘미스바’ 시에서 왕으로 취임하였읍니다. “모든 백성이 왕의 만세를 외쳐” 불렀읍니다. ‘사울’은 사십년간 통치하였읍니다.—사무엘 상 8:1에서 10:25; 사도 13:21.a

      8. (ㄱ) ‘사울’의 통치 제11년에 ‘베들레헴’에서 누가 출생하였읍니까? (ㄴ) ‘미가’는 ‘베들레헴’에 대하여 무엇을 예언하였읍니까?

      8 ‘사울’의 통치 제11년에 ‘유다’ 지파의 구역에 있는 ‘베들레헴’에서 사소하게 보이는 한 가지 일이 있었읍니다. ‘베들레헴’ 사람 ‘이새’가 ‘다윗’이라고 이름지은 여덟째 아들을 낳은 일입니다. ‘사울’ 왕이나 다른 아무도 이 신생아가 장차 매우 탁월해져서 그의 출생지인 ‘베들레헴’이 장차 “‘다윗’의 성”이라고 불리우게 될 줄을 안 사람은 없었읍니다. 그 때에는 아무도 약 3백년 후에 이 ‘다윗’ 성에 대하여 이러한 예언이 있을 줄을 알지 못하였읍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찌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 (미가 5:1, 2) 통용 기원전 1세기의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바로 이 예언이 메시야에게 적용되는 것으로 이해하였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여자의 씨”는 ‘베들레헴’에서 태어나게 되어 있었읍니다.

      9. ‘사울’의 경솔함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왕국에 대하여 ‘사울’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으며, 하나님께서는 누구를 왕으로 택하실 것입니까?

      9 그러나, 이보다 전에, ‘사울’ 왕이 2년간 통치한 후에 그는 믿음의 부족을 나타내었고 왕위에 있으면서 주제넘고 경솔한 행동을 하였읍니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하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리하였더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를 영영히 세우셨을 것이어늘 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그 백성의 지도자를 삼으[실 것이라].” (사무엘 상 13:1-14, 신세 참조)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은 아직 태어나지 않았었읍니다. 왜냐 하면, 그 말은 ‘베들레헴’에서 ‘다윗’이 출생하기 전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지존하신 하나님께서 능력과 권한을 사용하여 ‘사울’ 왕을 계승할 ‘이스라엘’인을 선택하실 것이 분명하였읍니다. 그렇게 하실 때 그분은 메시야와 관련된 그의 “영원한 목적”에 고착하실 것입니다.

      10, 11. (ㄱ) ‘다윗’은 어떻게 ‘이스라엘’의 장래 왕으로 지명되었읍니까? (ㄴ) ‘사울’은 어떻게 ‘다윗’에게 살인적인 질투심을 갖게 되었으며, ‘다윗’은 어디에서 처음으로 왕이 되었읍니까?

      10 ‘다윗’이 ‘베들레헴’에서 10대 목동에 불과하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를 그의 마음에 맞는 사람으로 지명하셨읍니다. ‘다윗’은 ‘이새’의 장자가 아니라 여덟째 아들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을 ‘베들레헴’으로 보내어 ‘다윗’을 ‘이스라엘’의 장래 왕으로 기름붓게 하셨읍니다.

      11 ‘다윗’은 모든 ‘이스라엘’인들 가운데서 단독으로 전쟁터에서 도전해 오는 ‘블레셋’의 거인 ‘골리앗’에게 자진 응수하여 ‘골리앗’의 이마에 겨냥한 물매로 그를 죽였을 때 각광을 받게 되었읍니다. (사무엘 상 16:1에서 17:58) ‘다윗’은 ‘사울’ 왕의 군대에 편입되었으며, 백성들 가운데서 ‘다윗’의 인기는 왕의 인기보다도 높아갔읍니다. 그러므로 ‘사울’은 심한 질투심을 갖게 되어 ‘다윗’을 죽이려고 하였으며, 그리하여 자기의 아들들 중 하나가 앉게 될 ‘이스라엘’의 보좌를 그가 찬탈하는 일이 없게 하려고 하였읍니다. 마침내 ‘사울’은 전쟁에서 치명적 중상을 당하게 되었으며, 그는 자기 칼에 엎드러져 죽음을 재촉하여 그의 왕위는 종말을 고하였읍니다.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은 ‘사울’의 가계에 집착하는 사람들에 의하여 왕으로 추대되었지만 그는 ‘이스라엘’의 열 한 지파만을 다스렸읍니다. ‘유다’ 지파 사람들은 ‘다윗’을 ‘유다’ 구역의 ‘헤브론’에서 그들의 왕으로 기름부었읍니다. 그 일은 기원전 1077년에 있었읍니다.—사무엘 하 2:1-11; 사도 13:21, 22.

      12. 언제 어떻게 ‘다윗’은 ‘이스라엘’ 전체를 다스리는 왕이 되었으며, 이제 “홀”과 “치리자의 지팡이”에 대하여 어떠한 질문이 생깁니까?

      12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은 ‘이스라엘’의 보좌에 7년 6개월 정도 앉았었으며 그후 그는 그의 신하들에게 암살당하였읍니다. (사무엘 하 2:11에서 4:8) 이제 모든 지파가 ‘다윗’을 여호와께서 선택하신 자로 인정하였으며 그들은 ‘다윗’을 ‘헤브론’에서 온 ‘이스라엘’을 다스릴 왕으로 기름부었읍니다. 그것은 기원전 1070년의 일이었읍니다. (사무엘 하 4:9에서 5:5까지) 그러므로, 창세기 49:10에 기록된 ‘야곱’의 임종시의 예언과 일치하게 “홀”과 “치리자의 지팡이”는 ‘유다’ 지파에 있게 되었읍니다. 이제 이 충성의 상징물들은 무엇을 근거로, “‘실로’가 오시기까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할 것입니까?

      13. ‘다윗’은 어떻게 참으로 “기름부음받은 자”였으며, 그는 누구의 예언적 모형이 되었읍니까?

      13 ‘다윗’ 왕은 왕권을 위하여 세번 기름부음을 받았기 때문에 사무엘 하 19:21, 22; 22:51; 23:1에 있는 바와 같이 참으로 “기름부음받은 자” 즉 “메시야”(‘히브리’어: 마시아)라고 불리울 수 있었읍니다. 두드러지게도 ‘다윗’은 하나님의 천적 “여자의 씨”인 탁월한 메시야의 예언적 모형으로 사용되었읍니다. (에스겔 34:23 참조) 사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의 메시야로 절정에 이르는 계열로 택하시는 것이 좋다고 여기셨읍니다. 어떻게 그 일이 있게 되었읍니까?

      14. ‘다윗’은 어느 도시를 온 ‘이스라엘’의 수도로 삼았으며, 그는 그 때 어떠한 거룩한 물건을 그 곳에 가져다 두었읍니까?

      14 기원전 1070년에 ‘다윗’은 재통합된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기름부음받은 왕이 된 직후 ‘여부스’ 사람들로부터 ‘여부스’ 성을 함락하고 그곳을 ‘예루살렘’이라고 불렀읍니다. 그는 그 곳이 ‘헤브론’보다 중심지였기 때문에 그곳으로 그의 행정부를 옮기고 이 고지 도시를 자기의 수도로 삼았읍니다. 왜냐 하면, 그 도시가 ‘유다’와 ‘베냐민’ 구역의 경계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사 1:21; 사무엘 하 5:6-10; 역대 상 11:4-9) 오래지 않아 ‘다윗’ 왕은 여호와의 거룩한 언약궤에 관심을 돌렸읍니다. 수십년간 언약궤는 ‘에브라임’ 지방의 실로에 있는 회막의 지성소에서 옮겨진채 있었읍니다. (사무엘 상 1:24; 4:3-18; 6:1에서 7:2) ‘다윗’은 언약궤가 수도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였읍니다. 그래서 그는 그것을 가져다가 그의 궁전 근처 장막에 두게 하였읍니다.—사무엘 하 6:1-19.

      15. 여호와께서는 이제 ‘다윗’과 어떠한 언약을 맺으셨으며, 그것은 ‘다윗’의 어떠한 점을 인식하셨기 때문입니까?

      15 그러나 ‘다윗’은 송구스러움을 느끼게 되었읍니다. 왜냐 하면, 단순히 인간 왕에 불과한 자신은 왕궁에 거하면서 참 하나님이며 ‘이스라엘’의 진정한 왕이신 여호와의 언약궤는 수수한 장막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적절히 균형을 잡기 위하여 지존하신 하나님 곧 우주 주권자를 위하여 합당한 집 즉 성전을 건축할 생각을 품게 되었읍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다윗’이 그러한 성전을 건축하는 것을 승인하지 않으셨읍니다. 그분은 그의 예언자 ‘나단’을 통하여 ‘다윗’에게 그의 평화스러운 아들이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는 특권을 가질 것이라고 말씀하셨읍니다. 그리고 여호와께서는 하나님의 순결한 숭배에 대한 ‘다윗’의 전심을 인식하시고 자기의 “마음에 맞는” 이 사람과 놀라운 일을 하셨읍니다. 그분은 자진하여 ‘다윗’과 영원한 왕국 언약을 맺으신 것입니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여호와가 또 네게 이르노니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이루고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잘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자식을 네 위에 세워 그 나라를 견고케 하리라. 저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 나라 위를 영원히 견고케 하리라. 나는 그 아비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니 저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내가 네 앞에서 폐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 같이 그에게서는 빼앗지 아니하리라. 네 집과 네 나라가 네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사무엘 하 7:1-16; 역대 상 17:1-15.

      16. ‘다윗’은 이에 대하여 여호와께 어떠한 감사의 기도를 드렸읍니까?

      16 ‘다윗’은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이러한 말로 그 기도를 끝맺었읍니다.

      “주 여호와여 오직 주는 하나님이시며 말씀이 참되시니이다. 주께서 이 좋은 것으로 종에게 허락하셨사오니 이제 청컨대 종의 집에 복을 주사 주 앞에 영원히 있게 하옵소서. 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사오니 주의 은혜로 종의 집이 영원히 복을 받게 하옵소서.”—사무엘 하 7:18-29; 역대 상 17:16-27.

      17. 이 언약은 또한 하나님의 무엇으로 지지되었읍니까?

      17 ‘다윗’에 대한 이 약속의 언약은 하나님의 이러한 맹세로 지지되었읍니다.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성실히 맹세하셨으니 변치 아니하실찌라. 이르시기를 네 몸의 소생을 네 위에 둘찌라. 네 자손이 내 언약과 저희에게 교훈하는 내 증거를 지킬찐대 저희 후손도 영원히 네 위에 앉으리라 하셨도다.”—시 132:11, 12.

      “저를 위하여 나의 인자함을 영구히 지키고 저로 더불어 한 나의 언약을 굳게 세우며 또 그 후손을 영구케 하여 그 위를 하늘의 날과 같게 하리로다. ··· 내 언약을 파하지 아니하며 내 입술에서 낸 것도 변치 아니하리로다. 내가 나의 거룩함으로 한번 맹세하였은즉 ‘다윗’에게 거짓을 아니할 것이라. 그 후손이 장구하고 그 위는 해 같이 내 앞에 항상 있[도다].”—시 89:28-36; 또한 예레미야 33:20, 21 참조.

      18. ‘이사야’의 예언은 ‘다윗’의 왕국이 무슨 더 큰 왕국의 기초를 마련해 줄 것을 선언합니까?

      18 ‘다윗’ 왕에 대한 그 언약에 의하면 그의 왕국은 장차 올 더 큰 메시야 왕국의 기초를 마련해 주어야 하였읍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러 세기 후에 예언자 ‘이사야’는 영감을 받아 이렇게 예언하였읍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이사야 9:6, 7, 흠정역, 개표, 신영성, 예루살렘 성서; 신세 참조.

      19. ‘미가’의 예언에 의하면 이 “아기”는 어느 도시에서 태어나게 되어 있었으며, 이것은 누구를 식별하는 표가 되었읍니까?

      19 미가 5:2의 예언에 의하면 이 메시야 아기 곧 왕이 될 아들은 ‘유다’ 지방 ‘에브라다’의 ‘베들레헴’에서 태어나게 되어 있었읍니다. 인간으로 출생할 이곳은 하나님의 상징적 “여자의 씨” 곧 메시야를 식별하는 한가지 표가 될 것입니다. 그의 조상 ‘다윗’ 왕의 출생지는 왕도(王都) ‘예루살렘’이 아니라 ‘베들레헴’이었으며 그러므로 그 도시는 ‘다윗’ 성이라고 불리우게 되었읍니다.

      ‘다윗’ 왕조

      20. ‘다윗’ 왕조는 얼마 동안 보좌에 앉았었으며, ‘이스라엘’인들은 얼마 동안 왕을 가지고 있었읍니까?

      20 ‘다윗’에 대한 이 왕국 언약의 성취로 ‘예루살렘’의 왕들은 모두 ‘다윗’ 왕의 가문에서 나왔읍니다. 기원전 1070년에 ‘예루살렘’에서 ‘다윗’이 왕이 된 때부터 계산하여 ‘예루살렘’의 ‘다윗’ 왕조로 이어질 이 왕국은 463년간 즉 기원전 607년까지 존속하였읍니다. 그러므로 예언자 ‘사무엘’이 ‘사울’을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부은 때부터 계산하면 ‘이스라엘’ 나라는 510년간 보이는 왕을 가진 셈이 됩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보이지 않는 왕이었읍니다.

      21. ‘다윗’은 사망시에 하늘에 올라갔읍니까? ‘다윗’은 누가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라는 초대를 받을 것이라고 예언하였읍니까?

      21 ‘이스라엘’을 다스릴 왕으로 하나님의 선택과 기름부음을 받아 하나님을 대표하는 왕이 된 ‘다윗’은 ‘예루살렘’의 “여호와의 보좌”에 앉았었읍니다. (역대 상 29:23, 신세) 그러나 그가 여호와의 우편에 앉지는 않았읍니다. 왜냐 하면,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66:1) ‘다윗’이 기원전 1037년에 사망할 때 그는 영의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며 그곳에서 여호와의 우편에 앉지 않았읍니다. 그는 그렇게 하도록 초대를 받지 않았읍니다. 그러나 통용 기원 제1세기까지 ‘이스라엘’인들은 ‘다윗’의 무덤이 있는 곳을 알 수 있었읍니다. ‘다윗’ 자신은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시편 110:1-4에서 왕겸 제사장인 ‘멜기세덱’과 같을 그의 후손인 메시야가 여호와께서 하늘 그의 우편에 앉도록 초대받을 분이라고 예언하였읍니다.

      22. ‘솔로몬’과 그의 보좌의 계승자들 대부분은 어떠하였으며, ‘예루살렘’에는 언제부터 보좌에 앉은 ‘다윗’ 왕계의 왕이 없었읍니까?

      22 ‘다윗’의 젊은 아들 ‘솔로몬’이 그를 이어 ‘예루살렘’의 보좌 “여호와의 보좌”에 앉았읍니다. 하나님의 약속에 따라 그는 ‘예루살렘’의 ‘모리아’ 산에 성전을 건축하는 은총을 받았으며, 그것을 기원전 1027년에 완성시켰읍니다. (열왕 상 6:1-38) ‘솔로몬’이 고령이 되었을 때 그는 자기가 건축한 성전의 하나님께 불충실하게 되었읍니다. ‘예루살렘’의 보좌에 앉은 그의 계승자들 대부분도 역시 악하였읍니다. ‘예루살렘’의 보좌에 앉은 ‘다윗’ 왕계의 마지막 왕은 ‘시드기야’였읍니다. ‘시드기야’가 자기를 속국의 왕으로 삼은 ‘바벨론’ 왕을 반항하므로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갔으며 ‘예루살렘’ 시와 그 곳의 찬란한 성전은 황폐되었읍니다. (열왕 하 24:17에서 25:21) 기원전 607년 그 비극의 해 이후로 ‘예루살렘’의 보좌에 앉은 ‘다윗’ 계통의 왕은 아무도 없었읍니다.

      23. 왕국 언약은 실패 혹은 취소되었읍니까? 하나님께서는 이에 대하여 ‘에스겔’을 통하여 무슨 보증을 하셨읍니까?

      23 그것은 ‘다윗’에 대한 왕국 언약이 실패 혹은 취소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읍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보증하셨읍니다. 하나님께서는 ‘시드기야’가 폐위되어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가기 대략 네째 해 전에 예언자 ‘에스겔’에게 영감을 주어 ‘예루살렘’의 보좌에 앉은 이 마지막 왕에게 이렇게 말하게 하셨읍니다.

      “너 극악하여 중상을 당할 ‘이스라엘’ 왕아, 네 날이 이르렀나니 곧 죄악의 끝 때니라.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관을 제하며 면류관을 벗길찌라. 그 대로 두지 못하리니 낮은 자를 높이고 높은 자를 낮출 것이니라. 내가 엎드러뜨리고 엎드러뜨리고 엎드러뜨리려니와 이것도 다시 있지 못하리라. 마땅히 얻을[합법적 권리를 가진, 신세] 자가 이르면 그에게 주리라.”—에스겔 21:25-27.

      24. 무엇이 낮아지게 되어 있었으며, 언제 이러한 역전이 있었으며, 어떻게 있었읍니까?

      24 우리는 그 취지를 이해합니까? 여호와께서는 친히 ‘예루살렘’에 있는 ‘다윗’ 왕가의 왕국을 엎드러뜨리신다는 것입니다. 상태가 전과 같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 낮았던 이방 통치 강국들이 높여지고 여호와의 선민의 지적 왕국은 낮아져서 이방 세계 강국에 굴복하게 될 것입니다. ‘예루살렘’의 하나님의 모형적 왕국의 간섭없이 이방 세계의 우월함을 나타내는 기간은 “합법적 권리를 가진” 분 곧 약속된 참 메시야가 오기까지 계속될 것이며 주권자이신 주 여호와께서는 그에게 왕국을 주실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이방 세계 강국은 더는 땅을 지배하도록 높여 있지 않을 것입니다. 메시야 왕국이 세계를 지배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다윗’에 대하여 세운 언약에 따라 그의 왕국은 영원한 정부가 될 것입니다. 그의 보좌는 영원히 존속해야 합니다!

      25. 기원전 607년에 ‘예루살렘’이 황폐되었지만 어떠한 언약과 목적은 여전히 지속되었읍니까?

      25 그러므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중동 ‘예루살렘’에 어떠한 ‘다윗’의 보좌도 재설립되지 않았다 하여 약속된 메시야 곧 하나님의 천적 “여자의 씨”를 바라는 사람들은 모든 것을 상실한 것이 아닙니다. 기원전 607년 가을에 왕도 ‘예루살렘’ 시와 성전이 파괴된 것은 사실입니다. 가까운 도시 ‘베들레헴’ 곧 ‘다윗’ 성은 ‘바벨론’인 정복자들에 의하여 파괴되었읍니다. 그러나 ‘아라비아’ ‘시내’ 산에서 ‘이스라엘’과 맺은 율법 언약은 계속 유효하였읍니다. 또한 ‘다윗’과 맺은 영원한 왕국 언약도 계속 적용되었읍니다. 메시야와 관련된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은 지속되었읍니다. 하나님의 왕국 언약은 실패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목적도 실패하지 않을 것입니다!

      [각주]

      a 「유대인 고대 풍습제도」 10권 8장 4항에서 제1세기의 ‘플라비우스 요세퍼스’는 ‘사울’ 왕이 이십년을 다스렸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제6권 14장 9항에서 ‘요세퍼스’는 “‘사무엘’이 살아있을 때에 18년간을 통치한 ‘사울’은 그의 사후에 2년간을 다스렸다”고 기술하였는데, 일부 ‘요세퍼스’의 사본은 “그리고 이십년을 다스렸다”는 말을 부가하였다. 따라서 도합 사십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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