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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온’주의—성서 예언의 성취인가?깨어라!—1976 | 10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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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해 왔다. 그러한 피난민들과 그들의 후손들이 그 땅에 이룩한 것은 종교 국가가 아니라 정치 국가이다. 그 결과 생긴 ‘아랍’ 대 ‘이스라엘’ 사이의 문제는 정치성을 띤 것이다.
세계적인 “징조”의 일부
‘시온’주의와 ‘이스라엘’ 국가가 ‘유대’인들의 고토 복귀에 관한 성서 예언의 성취는 아니지만 중동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우리 시대에 대한 성경 예언의 성취이다. 어떻게 그러한가? 왜냐 하면 이러한 전쟁들은 현 사물의 제도의 결말과 하나님의 다스림이 인간의 다스림을 대치할 새 질서의 임박함에 대한 세계적인 “징조”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인간으로서 돌아가시기 바로 전에, 그는 제자들로부터 “무엇이 ··· 사물의 제도의 결말의 징조가 될 것입니까?” 하는 질문을 받으셨다. (마태 24:3, 신세)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셨다.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끝은 아직 아니니라.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라].” (마태 24:6, 7) 그는 부언하여 전세계를 통하여 “민족들이 ··· 세상에 임할 일을 생각하고 무서워하므로 기절하리[라]”고 말씀하셨다.—누가 21:25, 26.
그러한 상태가 특히 제 1차 세계 대전 이래 현 세대 내에 세계적으로 만연되어 오지 않았는가? 이것은 가까운 장래에 뭔가 일어나리라는 전조이다. 그것은 무엇인가? 다니엘 2:44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이 열왕의 때에 하늘의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시리니 이것은 영원히 망하지도 아니할 것이요 그 국권이 다른 백성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도리어 이 모든 나라를 쳐서 멸하고 영원히 설 것이라.”
그것은 땅과 그 위에 있는 모든 생물이 멸망될 것을 의미하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왜냐 하면, “영원히 설” 하나님의 왕국은 지상에 신민을 가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다니엘 2:34, 35에 보면, 그 왕국이 “태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하게 되는 “돌”로 상징되어 있다. 이것은 땅에 대한 인간의 다스림이 밀려나고 하나님의 다스림이 세계적으로 확장될 것을 알려 준다.
성서 예언의 성취로서 오늘날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은 현 세대가 그러한 웅대한 약속의 성취를 경험하게 될 것을 지적해 준다. (마태 24:34) 어떠한 인간 철학이나 이상 또는 정부도 할 수 없었던 일을 이룩하기 위하여 즉 전 인간 가족을 연합시키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그 하늘 왕국을 사용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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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을 축하하는 것은 어떠한가?깨어라!—1976 | 10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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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의 견해는 무엇인가?
생일을 축하하는 것은 어떠한가?
당신은 친한 사람들과 모이는 것을 좋아하는가? 함께 모여 적절히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 것을 성서는 좋게 말하고 있다. (전도 8:15; 9:7; 욥 1:2, 4, 5) 성경은 하나님의 종들이 특별한 기회에 가진 “잔치”에 대하여 말한다. (창세 19:3; 21:8; 사무엘 하 3:20; 열왕 상 3:15) ‘모세’를 통하여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매년 즐거운 “절기”를 지키라고 명하셨다. (레위 23:2, 37, 38) 분명히, 창조주께서는 그러한 축제가 기쁨이 될 수 있음을 인식하고 계신다.
그렇다고 모든 형태의 축일이 하나님의 승인을 받는다는 말은 아니다. 오늘날 세상에서 인기있는 많은 것들은 사람들과 제도에 영예를 돌리는 데 성경은 그것을 불경건하다고 묘사한다. 많은 경우 축일은 거짓 종교에서 기원하였다. 성경은 여호와의 숭배자들에게 거짓 종교와는 조금도 관련을 갖지 말라고 명령한다. (고린도 후 6:14-18) 생일 축하는 어떠한가?
성서에 의하면 아기가 출생한 날은 보통 부모가 즐거워하고 감사할 날이었다. 그럴수밖에 없는 것이,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기 때문이다. (시 127:3; 누가 1:57, 58) 또한 성서 시대에 하나님의 종들이 그들의 출생 시기를 알았던 것도 분명하다. 예를 들면, 성경은 ‘노아’와 ‘아브라함’의 경우 생존시 여러 경우에 그들의 나이를 명시하였으며 또한 사망시의 정확한 나이를 말하였다. (창세 7:6, 11, 13; 9:28, 29; 12:4; 17:24; 25:7) ‘모세’의 율법하에서 ‘레위’ 지파의 성원들은 그들이 여호와의 성소에서 일할 수 있는 나이가 되는 때를 알기 위하여 그들의 나이에 대한 기록을 보존하였다. (민수 4:46, 47) 이것은 당시의 하나님의 종들이 매년 생일을 축하하였음을 시사하는가?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때때로 욥기 1:4과 호세아 7:5을 지적한다. 첫 귀절은 ‘욥’의 일곱 이들들이 “자기 생일[자기의 날, 신세]이면 각각 자기의 집에서 잔치를 베풀”었다고 언급한다. 둘째 귀절은 “우리 왕의 날에” 잔치에 참석한 ‘이스라엘’ 방백들이 포도주로 인하여 병이 난 것에 대하여 말한다. 이러한 잔치는 과연 생일 잔치였는가? 분명히 그렇지 않다. ‘지이. 마골리우드’ 교수는 ‘해스링’ 편 「종교 윤리 백과사전」에서 이렇게 기술하였다. “욥기 1장 4절에 나오는 잔치의 경우는 분명하지 않다. 칠일이 연속된 것 같으므로 그것은 생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호세아 7장 5절의 우리 왕의 날은 왕이 즉위한 날의 기념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사실, 성서는 ‘요셉’ 시대의 ‘애굽’의 ‘바로’와 기원 제 1세기의 ‘헤롯 안티파스’의 경우에만 생일 축하에 관하여 언급한다. (창세 40:20; 마태 14:6-11) 그러나 이러한 축하는 좋지 않은 면으로 나온다. 두 날 모두 여호와를 숭배하지 않는 사람들이 지킨 생일이었다. ‘마골리우드’ 교수는 이렇게 더욱 논평하였다. “헤롯가에서의 생일 축하는 ··· 분명히 당시 희랍과 로마의 관습을 모방한 것이었다.”
흥미롭게도 동 「백과사전」은 고대 희랍인들과 ‘로마’인들에 대하여 이렇게 말한다. 특별한 경우에 선물을 주는 것은, 흔히 미신적인 두려움에서 비롯되었다. 생일 선물의 경우가 그 예이다. “동 사전은 이러한 선물을 주는 관습이 “이전에는 마력을 가진 것으로 간주되었다”고 지적하였다.
동 사전은 또한 고대 희랍에서 생일 축하의 특별한 목적이 “두 기간의 경계선에서 특히 악령들이 그들의 영향력을 행사하기 쉬운 때에 선한 귀신(아가토스 다이몬)의 도움을 기원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많은 생일 관습이 이교에서 기원하였고 생일 축하에 관한 유일한 성경 기록이 거짓 숭배자들과 관련된 사실에 비추어 볼 때에, 고대 ‘유대’인도, 통용 기원 초의 그리스도인들도 생일을 축하하지 않았다. 그리스도인들에 관하여 역사가 ‘아우구스투스 네안더’는 이렇게 기술하였다. “생일 축제”의 개념은 이 기간의 일반 그리스도인의 생각에서 멀었다.” 통용 기원 3세기 중엽에 ‘오리겐’은 자기의 주해서에서 마태복음 14장에 관하여 이렇게 해설하였다. “우리보다 앞선 어떤 사람이 ‘바로’의 생일에 관한 「창세기」의 기록을 보고 생일과 관련된 것을 사랑하는 쓸모없는 사람이 생일 축제를 지킨다고 말하였다. 그로부터 이러한 암시를 받는 우리는 의로운 사람이 생일을 지켰다는 것을 성경에서 볼 수가 없다.”
그러나 기원 제 4세기에 변화가 있었다. 어떠한 변화였는가?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사람들이 맞지도 않은 날인 12월 25일에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기 시작하였다. 「일반 관습의 진풍경」이라는 책은 이렇게 지적한다. “그리스도 탄생의 축하와 함께 보통 사람의 생일 축하가 복귀되었다.”
본 기사의 서두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즐거운 우정을 나누기 위하여 친구들과 모이는 것은 좋은 일이다. 선물에 대하여는 그리스도인들이 “주라”는 예수의 충고를 따른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기 때문이다. (누가 6:38; 사도 20:35) 성서는 연중 언제 혹은 얼마나 자주 그러한 축제를 즐길 수 있는지에 대한 규칙을 세우지 않는다. (로마 14:5) 그러나 항상 좋은 판단력과 분별력을 사용해야 한다.
성경에 언급된 하나님께서 승인하시는 축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유익한 원칙들을 제공해 준다. 이러한 행사는 하나님을 영예롭게 하였으며 그의 행적에 주의를 환기시켰다. (신명 16:1-15; 레위 23:42, 43) 그리스도의 죽음의 연례 기념식도 하나님과 하나님의 목적 안에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역할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마태 26:26-29) 다른 모든 때와 마찬가지로, 축제에서도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 영예를 돌려야 한다.—고린도 전 10:31; 로마 14:6.
그러나 생일 ‘파아티’는 매년 사람을 영예롭게 하기 위해 구별된 날이다. 그러한 절차로 인해 쉽게 죄많은 인간이 과도한 영예를 받게되지 않겠는가? (로마 3:23) 사도 ‘요한’이 자기에게 미래에 대한 환상을 보여준 죄없는 천사를 숭배하기 위하여 그 앞에 엎드렸을 때에 천사는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고 경고하였다. (계시 22:9) 오늘날 우리는 창조를 받은 인간들에게 영예를 돌리기가 더 쉽지 않은가?
하나님의 말씀은 어디에서도 생일 축하를 명하지 않았으며 참 하나님을 숭배하지 않은 사람들과 관련해서만 생일 축하를 언급하였다. (창세 40:20; 마태 14:6-11) 생일 잔치에서의 일반 관습이 이교 미신에서 기원하였으므로 고대 ‘유대’인들도 초기 그리스도인들도 생일을 축하하지 않았다. 오늘날 참 그리스도인들도 거짓 종교 관습과 그러한 관습을 행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러한 명령에 순종한다.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리라]”—고린도 후 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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