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좋은 소식이 “땅끝까지” 이르다파수대—1977 | 1월 15일
-
-
진리에 대하여 굳건한 입장을 가지고 있었으며, 과음하던 이전의 습관을 끊었고 부도덕하게 함께 생활하던 여자와 완전히 헤어졌었다. 이 마을에서 320명이 공개 강연에 참석하였다.
이 사람들이 하나님에 관하여 배우고자 하는 관심은 단순히 피상적이고 일시적인 감정에 지나지 않았던가? 그 대답은 그들이 서로간에 나타낸 깊은 사랑에서 명백히 나타났다. 태풍 ‘피이피이’ 호가 1974년 9월에 ‘카리브’ 해안을 강타하였을 때, 그들은 자기 동료 증인들과 관심자들, 친척들과 기타 자기들이 그 재해 기간 동안 도울 수 있는 사람들을 신속히 도와 주었다. 23명이나 되는 한 가족은 그 재난으로 인하여 집 두채, 차고 및 공장을 잃어 버렸다. 그 가족 중 두명만이 여호와의 증인이었다. 하지만, 그곳 증인들은 그 가족 모두를 보호하였다. 5개월 동안 그들은 재산을 전부 잃은 이 가족에게 집과 음식 기타 도움을 베풀었으며, 그들을 위하여 새로운 토지를 마련해 주고 집을 지어 주었다. 그 가족 중 다른 19명은 이같은 그리스도인 사랑의 증거를 보고 그후 성서를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므로 좋은 소식이 사람이 거주하는 온 땅에 전파되리라는 예수의 말씀은 성취되고 있으며, 이 사업이 ‘온두라스’ 내에서 신속히 퍼지고 있다. ‘카리브’ 해에 있는 몇개의 섬들도 ‘온두라스’ 지부의 도움을 받고 있다. 사람들 가운데에는 영어를 말하는 집단, ‘모레노’ 방언을 말하는 ‘아프리카’ 계통의 집단, 얼마의 ‘아랍’계와 중국어를 말하는 사람들, 그리고 밀림 지역에서 살고 있는 ‘삼보 인디언’ 종족이 있다.
아직도 많은 일이 수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 ‘온두라스’에는 하나님의 왕국의 활동적인 선포자가 3,000명 이상 있다. 50여 회중이 집회 장소인 왕국회관을 소유하고 있으며, 모든 면에서 더욱 발전되리라는 전망이 있다. 그렇게 전망하는 근거는 1975년 3월 27일 그리스도의 죽음을 기념하는 기념식에 12,092명이 참석한 점이다. 그 수자는 그 나라에 있는 활동적인 증인 수의 3배를 넘는다.
그곳에서 이러한 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온두라스’를 놀랄 만큼 아름다운 나라라고 말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러나 그 나라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그 나라의 훌륭한 사람들의 속에 존재한다.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은 조만간 ‘온두라스’뿐 아니라 전 지구를 낙원으로 만들 예수 그리스도의 왕국 통치에 관한 좋은 소식에 열정적으로 호응하고 있다.—계시 21:3, 4.
-
-
충고—당신은 그것을 받아들이는가?파수대—1977 | 1월 15일
-
-
충고—당신은 그것을 받아들이는가?
“우리가 다 실수가 많”다고 하는 성경 말씀에 당신은 동의할 것이다. (야고보 3:2) 인간은 누구나 시정하는 충고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충고에 대해 어떠한 반응을 보이는가? 그들은 충고로부터 유익을 얻고 있는가? 당신은 어떤가?
아마 당신은 사람들이 잘못에 대한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시키려고 하는 것을 많이 보았을 것이다. 그러한 태도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첫 인간 부부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어떤 과일을 따 먹은 후 그 문제에 대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심문을 받았을 때 나타낸 태도에서도 그 점을 볼 수 있다. 다음의 내용을 읽어보자.
“‘아담’이 가로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가로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창세 3:12, 13.
‘아담’은 자기의 잘못을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하게 하신 여자”에 돌림으로써 심지어 하나님에게도 잘못이 있음을 암시하였다. 그러나 그처럼 자기를 정당화하려는 노력은 아무런 유익을 주지 못하였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에덴’ 동산에서 쫓아 내셨고 결국 그들이 죽게 됨으로써 하나님의 심판이 집행되었기 때문이다. (창세 2:16, 17; 3:23, 24; 5:5) 후에 여호와께서는 “나는 악인을 의롭다하지 아니하겠노라”고 선언하셨다. (출애굽 23:7) 잘못된 행로를 올바른 것처럼 꾸민다 해도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아무 소용이 없다.
“용서의 선행 조건”
반면에 선뜻 좋은 충고를 받아들여 잘못된 행로를 바로 잡으면 많은 유익을 얻을 수 있다. 하나님의 법을 크게 범한 ‘다윗’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다윗’은 다른 사람의 아내인 ‘밧세바’와 간음을 하였을 뿐만 아니라 자기의 부도덕을 은폐하기 위하여 ‘밧세바’의 남편을 전투에서 죽게 하였다. (사무엘 하 11:1-27) 그 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는 예언자 ‘나단’을 통해서 ‘다윗’을 엄하게 견책하셨고 그의 가계에 재난이 있을 것을 예언하셨다. 그러나 성서는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하매 ‘나단’이 ‘다윗’에게 대답하되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하[리이다]”—사무엘 하 12:1-13.
그러한 경험에 관하여 ‘다윗’은 후에 이렇게 기록하였다.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의 악을 사하셨나이다.” (시편 32:5) 「손시노의 성서 책들」이라는 책에는 이러한 해설이 있다. “그는 그의 행위를 다 아시는 하나님께 범죄 사실을 보고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하나님께 고백함으로써 잘못을 자인한 것이다. 그것은 고백의 목적이며 용서의 선행 조건이다 ··· 죄인이 자기의 할 일을 하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용서하시는 분으로서의 자기 역할을 수행하셨다.” ‘다윗’은 책망을 받아들임으로써 아주 많은 유익을 얻었다! 당신도 책망으로부터 유익을 얻을 것인가?
아무런 법에도 저촉되지 않을 때
법에 저촉되지 않는 행위에 대해서 충고를 받게 되면 어떤가? 당신은 그러한 문제를 ‘아무도 상관할 바 없는 나 혼자만의 일’로 보는가? 바로 그러한 경우와 관련하여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
“무릇 시장에서 파는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 [이방인] 불신자 중 누가 너희를 [식사에] 청하매 너희가 가고자 하거든 너희 앞에 무엇이든지 차려 놓은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누가 너희에게 이것이 제물이라 말하거든 알게 한 자와 및 양심을 위하여 먹지 말라. 내가 말한 양심은 너희의 것이 아니요 남의 것이니[라].”—고린도 전 10:25-29.
당신은 그 충고에 내포된 기본 원칙을 이해하였는가? 그리스도인 각자는 다른 사람의 양심을 존중하지 않으면 안된다. 「신약의 언어 묘사」라는 책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바울’은 재치있게 자신을 그러한 잔치에 참석한 강한 형제의 입장에 둔 다음에, 그 강한 형제는 어떠한 특별한 고기를 문제시하는 약한 형제의 양심에 따라 자기의 양심을 조절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것은 두 개성이 충돌할 때 약한 형제의 유익을 위하여 자기 개인의 자유를 박탈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게 하는 유일한 이유는 덕을 세우는 사랑이다. (고린도 전 8:2과 13장 전체)”
오늘날 당신도 비슷한 충고로부터 유익을 얻고 있는가? 당신이 사는 곳에서는 음식이 양심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다른 것이 문제가 될 수 있다. 예를 들면 머리 모양이나 의상 ‘스타일’이나 오락 형태 등이 문제될지 모른다. 어떤 사람이 당신의 선택은 동료 그리스도인의 양심을 괴롭힌다고 지적할 때 당신은 그러한 충고로부터 유익을 얻고 사랑으로 ‘자기 개인의 자유를 박탈’하겠는가?
충고를 받아들이는 데 방해가 되는 장애물
어떤 사람이 당신의 잘못을 지적하거나 생활의 어떤 부면을 개선하도록 제안한다면 당신은 어떠한 반응을 보이는가? 당신보다 나이가 어리거나 경험이 적은 사람 혹은 부하 직원이 그러한 제안을 하는 경우에는 어떤가? 괘씸한 생각이 들어서 좋은 충고로부터 유익을 얻지 못하는가? 왜 그와 같은 일이 있게 되는가?
로마서 12:3은 인간의 경향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라].” 범인은 바로 자만심이다. 자만심이란 지나친 자기 존중 혹은 비이치적인 우월감을 의미한다. 당신은 자만심이라는 장애물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
그 기초는 로마서 3:23에 나오는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라].” 당신도 그렇게 믿는가? 당신은 선뜻 ‘그렇다’고 대답할지 모른다. 그러나 당신의 생활 행로는 당신이 실제로 믿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는가? 좋은 충고를 받아 들이지 않고 당신이 “항상 옳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면 사실상은 그렇지 않은 것이다.
자존심 때문에 시정하는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어떤 나쁜 결과가 오게 되는지 생각해 보라! 한 가지 결과는 고립이다.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과 교제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그보다 더 큰 문제가 있다. 창조주께서는 “나는 교만과 거만 ··· 을 미워하느니라”고 선언하셨다. (잠언 8:13) 거만한 생각은 개인과 여호와와의 관계를 손상시킨다. 그러므로 그러한 태도는 아무런 유익도 주지 못한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언 16:18.
반면에 “훈계의 책망은 곧 생명의 길”이다. (잠언 6:23) 충고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다른 사람과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으며, 가장 중요한 점으로 여호와와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그러한 사람은 좁은 소견으로 꽉 막혀 있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다른 사람의 생각으로부터 유익을 얻을 뿐만 아니라 폭 넓은 견해의 유익을 다른 사람에게도 나타내준다. 충고는 참으로 유익하다. 문제는 당신이 충고로부터 유익을 얻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
-
1978년 국제 대회파수대—1977 | 1월 15일
-
-
1978년 국제 대회
“이 세상의 형적은 지나”간다고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는 분명히 말하고 있읍니다. (고린도 전 7:31) 현 사물의 제도가 그 끝에 다가감에 따라 불안과 긴장이 고조되고 있지만, 하나님의 백성이 온 땅에 “영원한 좋은 소식”을 선포하는 활동은 전진해야 합니다. (계시 14:6, 신세) 그러므로, 만일 하나님의 뜻이라면, 1978년에 일련의 국제 대회가 열릴 것입니다. 이렇게 일찍 광고를 하는 것은 형제들이 휴가 계획을 짜고 기타 필요한 준비를 하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각 대회에는 5일간의 ‘프로그램’이 있을 것입니다. 북반구에서는 대회가 6월, 7월, 8월에 열릴 것이며, 남반구에서는 1978년 12월과 1979년 1월 중에 열릴 것입니다. 미국, ‘캐나다’ 및 기타의 큰 나라에서는 소수의 큰 대회가 몇 군데서 열릴 것입니다. 또한 ‘카리브’ 해 연안, 중앙 ‘아메리카’, 남‘아메리카’, ‘스칸디나비아’, ‘유럽’, 서‘아프리카’, ‘아시아’, 남 태평양, ‘이스라엘’ 등 특별한 지역에 여행을 하는 참석자들의 단체 여행 마련이 있을 것입니다.
각 대회에서는 그 지방 언어 이외의 다른 언어로 특별 ‘프로그램’을 마련할 예정입니다. 특히 외국인 참석자가 많을 경우에는 그렇게 할 것입니다.
얼마 후에 협회는 모든 회중을 통하여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왙취타워’ 단체 여행에 참여하여 여러 대회에 참석하고자 하는지 알아볼 것입니다. 대회 여행 단체 중 몇몇은 미국이나 ‘캐나다’ 이외의 지역에서 출발할 것을 예상하고 있읍니다.
그 문제에 대한 문의 편지는 우리가 각 회중을 통하여 예비 조사를 실시한 후까지 기다려 주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