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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 자유를 강조하는 이유가 무엇인가?깨어라!—1979 |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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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었다. 하나님을 불쾌하게 만들지 않기 위해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인 자유를 옹호해야 했다.
오늘날도 역시 우리는 그리스도인 자유를 옹호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렇게 하는 것은 우리가 무법한 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와는 반대로, 우리는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종들이다. 우리가 죄를 거듭 행하는 자가 된다면,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를 위하여 죽으신 목적 즉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키기 위한 바로 그 목적을 부정하는 것이 될 것이다.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과분하신 자비를 당연한 것으로 상상한다면, 그것은 정말로 옳지 않은 일이다! (로마 8:2-11; 베드로 전 1:17-19) 그러나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 어떤 특정한 일을 행함으로써 가능하게 된다는 생각의 올무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바리새’인들처럼 우리 자신을 너무 중요시하게 되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와 자신의 성령을 통하여 이루시는 일에 대해 우리 자신에게 영예를 돌리게 될 것이다. (로마 7:21-25; 고린도 전 3:6, 7 비교) 우리가 행하는 훌륭한 일과 행위는 단지 우리의 활동적이고 살아있는 믿음의 표현에 불과하다. (야고보 2:26) 우리의 이같은 행함은 우리 자신들이 천적 아버지이신 여호와와 그분의 아들에 의해 그분들의 도구로 사용되고 있음을 증명해 준다. 그리하여 모든 영광은 여호와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돌아간다.
우리가 하나님을 올바른 동기로 섬기는 데 있어서 그리스도인 자유의 가치를 결코 망각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결코 어떠한 하나의 완전한 법전이 어떤 사람을 의롭게 만들 수는 없다. 하나님의 승인을 받기 위해 우리의 죄많은 육체의 경향을 억제하는 법보다도 더 강력한 어떤 힘을 우리 생활에서 필요로 한다. 보다 강력한 그 힘은 하나님의 성령이다. 그 성령은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의 마련에 대한 순수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온전히 작용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 자유를 ‘유대’ 법전과 바꾸는 것은 그리스도인 믿음을 부정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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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들이 당신을 어떻게 보는가를 염려해야 하는가?깨어라!—1979 |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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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의 견해 2
다른 사람들이 당신을 어떻게 보는가를 염려해야 하는가?
참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 자기들이 ‘이 구부러지고 비뚤어진 세대 가운데서 ··· 흠 없’는 사람임을 입증할 책임이 있다. 하나님으로부터 소외된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충실한 제자들은 빛으로 나타나지 않으면 안된다. (빌립보 2:15, 새번역) 본이 되는 매일의 행실과 하나님의 진리를 알리고자 하는 열심으로써 그들은 심각한 영적 암흑에 빠져 있는 세상에서 빛의 역할을 한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마땅히 자기가 일상 생활에서 어떠한 본을 보이고 있는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자신에게 달려 있는 모든 일에서 그는 어느 누구에게도 자기를 도덕률을 범하는 사람 혹은 자연스런 예의감에 거스려서 행동하는 사람으로 간주할 수 있는 정당한 근거를 주어서는 안된다. 사도 ‘베드로’는 동료 신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권고하였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덕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라].” (베드로 전 4:15) 장로로 임명된 자들이 그러해야 함과 같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기 위하여 분투 노력하지 않으면 안된다.—디모데 전 3:7.
하나님의 종이 주위 사람들의 양심적인 느낌 혹은 그들이 꺼려 하는 것들에 대해 고려하는 것 또한 대단히 중요하다. 예를 들어 어느 지역에서는 절도있게 마신다 하더라도 ‘알코올’ 음료를 마시는 사람 또는 어떤 종류의 음식을 먹는 사람을 죄인으로 간주할지 모른다. 이런 경우 그리스도인은 약간의 포도주를 마실 권리 혹은 돼지고기든 그의 이웃들이 모독적인 것으로 여기는 어떤 다른 고기든 먹을 권리를 고집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는 “좋은 소식”에 호응할지도 모르는 사람들 앞에 불필요한 장애물을 놓지 않기 위해 그의 권리를 포기하기로 결심할 것이다.
어떤 사람은 사도 ‘바울’의 훌륭한 본과 일치하게 행하고자 하였다. 그는 자신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었다. “내가 모든 사람에게 자유하였으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유대’인들에게는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있는 자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고린도 전 9:19-21) “우리는 수치스러운 숨은 일들을 버렸읍니다. 우리는 교활한 길을 걷지 않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비뚤어지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진리를 밝히 드러냄으로써 하나님 앞에서 우리 자신들을 모든 사람의 양심에 추천합니다.” (고린도 후 4:2, 새번역) ‘바울’과 같이 오늘날 참 그리스도인들도 그들의 말과 행실이 관찰자들의 선한 양심에 호소하는 것이 되도록 관심을 기울여야 마땅하다.
하지만, 세상적인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충실한 제자를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로 경멸하는 경우 그는 염려할 이유가 없다. 그는 자신의 믿음 때문에 조롱받고 신체적인 학대를 당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한 경우 그는 현명하게도 다음과 같은 영감받은 충고를 따른다.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은즉 부끄러워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베드로 전 4:16)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을 받는 것, 그것은 정말 영광이 아닐 수 없다. 그의 권세는 어떤 인간 혹은 인간 집단의 권세보다 훨씬 크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자기 아들에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주셨다. (마태 28:18) 더우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기의 크신 사랑의 증거로 자신의 생명을 희생으로 바치심으로써 제자들이 창조주 앞에서 깨끗한 신분을 획득하고 그리하여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에 놓이도록 하셨다. (요한 3:16; 15:13) 그리스도의 크신 권세와 우리를 위한 그분의 사랑의 깊이를 고려할 때 우리는 확실히 그분의 이름을 위해 받는 고난을 부끄러워할 이유가 없다.
더우기 참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 회중 안팎의 영적이 아닌 사람들이 자기를 어떻게 평하는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없다. 사도 ‘베드로’는 다음과 같은 말로써 이 점을 강조하였다. “이를 위하여 [영적으로]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이는 육체로는 사람처럼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처럼 살게 하려 함이니라.” (베드로 전 4:6) “좋은 소식”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영적인 관점에서 생명으로 들어오게 됨에도 불구하고 영적이 아닌 사람들은 여전히 육적인 관심을 근거로 이들을 평가할지 모른다. 즉 그들은 세상적 영향력, 권력, 지위 및 재산이 없는 사람들을 아주 하찮게 여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염려해서는 안된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판단하시느냐 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분께서 우리가 참으로 영적인 삶을 살고 있는 것으로 간주하시기를 바란다.
험담꾼들을 만족시킨다는 것은 어차피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므로 양심적인 그리스도인들은 자기가 다른 사람들에 비해 뒤진다는 평을 받는다 하여도 그에 대해 염려할 필요가 없다. 그리스도의 사도 ‘바울’은 ‘고린도’ 회중의 어떤 성원들로부터 그렇게 깎아 내리는 비교를 당한 적이 있다. 그가 이러한 그릇된 평가에 대해 어떠한 반응을 보였는가 하는 것을 알 때 우리는 격려를 받는다. 그는 이렇게 기록하였다.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치 아니하노니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그러나 이를 인하여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판단하실 이는 주시니라.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치 말라. 그가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고린도 전 4:3-5.
분명히 사도 ‘바울’은 자신의 행동의 이유 및 동기에 대해 감히 그를 판단한다고 혹은 그의 가치를 평가한다고 생각했던 사람들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양심적으로 그리스도의 본과 가르침에 일치하게 행동했다. 그러므로 그는 이러한 판단을 “매우 작은 일” 즉 심각히 고려할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으로 여겼던 것이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이 임명하신 심판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리시는 평가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그리스도인들도 이들을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께 판단받는 일이 얼마나 심각한가를 마음에 간직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하면 영적이 아닌 사람들이 내리는 평가로 마음이 상하게 되는 일이나 스스로 그러한 영적이 아닌 판단을 내리는 일을 피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성서는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보는가를 염려해야 할 때가 있으며 또한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혹은 말하는 것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서는 안될 때가 있음을 명백히 하고 있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과 동료 인간들 앞에서 깨끗한 양심을 보존함으로써 우리의 하나님 앞에서 흠이 없음을 증명하는 일에 관심을 집중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영예를 돌릴 수 있는 방법으로 우리의 모든 일을 해 나아감과 동시에 근거없는 험담, 조롱, 혹은 비성서적인 판단은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간주하지 않으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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