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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왕국에게 분쇄될 인간 통치권파수대—1979 |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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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의 결론에서 다음과 같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때에 철과 진흙과 놋과 은과 금이 다 부숴져 여름 타작마당의 겨같이 되어 바람에 불려 간 곳이 없었고 우상을 친 [그리스도 예수의 손에 있는 하나님의 왕국을 대표한] 돌은 태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하였었나이다.”—다니엘 2:35.
성서 예언은 이러한 행복한 때가 가까왔음을 알려 준다. 오늘날에 모든 나라의 사람들은 인간 정부를 신뢰하기 보다는 여호와의 주권을 지지하는 편에 서도록 초대를 받고 있다. (시 146:3) ‘여호와의 증인’들은 이 왕국 통치권에 관하여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도록 기꺼이 돕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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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가장 좋은 것을 여호와께 바침파수대—1979 |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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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가장 좋은 것을 여호와께 바침
떼 가운데 수컷이 있거늘 그 서원하는 일에 흠있는 것으로 사기하여 내게 드리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니 나는 큰 임금이요 내 이름은 열방 중에서 두려워하는 것이 됨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말라기 1:14.
1. 인간이 실제로 여호와께 무엇인가를 바칠 수 있읍니까?
불완전한 인간이 위대하신 창조주 여호와께 무엇인가 바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이상하게 들리지 않습니까? 사실 온 우주 가운데서 그분께 속하지 않은 것은 아무 것도 없읍니다! 그분 자신이 다음과 같이 선언하십니다.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라.” (학개 2:8) “삼림의 짐승들과 천산의 생축이 다 내 것이며 산의 새들도 나의 아는 것이며 들의 짐승도 내 것임이로다. 내가 가령 주려도 네게 이르지 않을 것은 세계와 거기 충만한 것이 내 것임이로다. 내가 수소의 고기를 먹으며 염소의 피를 마시겠느냐?” (시 50:10-13) 분명히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아무에게서도 선물을 받으실 필요가 없으십니다. 그분은 완전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자존하시는 분이십니다.
2. ‘다윗’은 여호와께 드린 자진적인 헌물에 관하여 무엇을 인정하였읍니까?
2 ‘유다’ 지파에 속한 ‘이새’의 아들로서 ‘모세’의 율법으로 교육을 받은 젊은이었던 ‘다윗’은 여호와께서 온 땅을 소유하고 계심을 알고 있었읍니다. (출애굽 19:5) 세월이 흘러, ‘예루살렘’에 성전을 짓기 위해 헌물을 할 때, ‘다윗’은 그 지존하신 분께 다음과 같이 신심깊게 말하였읍니다. “나와 나의 백성이 무엇이관대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가 주의 거룩한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려고 미리 저축한 이 모든 물건이 다 주의 손에서 왔사오니 다 주의 것이니이다.”—역대 상 29:14, 16.
3. (ㄱ) 여호와께 바치는 선물에 관하여 어떠한 질문이 생길 수 있읍니까? (ㄴ) 성서는 그러한 질문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대답합니까?
3 그러므로 ‘다윗’은 우리 인간이 어떠한 면으로든 전능하신 분을 부하게 할 수 없음을 인정하였읍니다. 사실상, 우리가 바치는 것은 무엇이든지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의 원천으로부터 우리가 받은 것의 적은 일부를 단지 돌려 드리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야고보 1:17) 그렇다고 이것은 우리의 창조주께 선물을 바치는 것이 무가치하다는 뜻입니까? 그분은 자기의 헌신한 종들이 바치는 것을 일축해 버리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그렇지 않다고 대답해 줍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선물을 가지고 오도록 비천한 숭배자들을 초대하십니다. 시편 96:8에서는 다음과 같이 알려 줍니다.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돌릴찌어다. 예물을 가지고 그 궁정에 들어갈찌어다.”
4.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는 선물은 어떠한 것입니까?
4 물론, 여호와께서는 올바른 인식을 가지고 마음에서 우러나와 바치는 선한 선물을 원하십니다. 그러한 선물이야말로 자신을 부인하고 동시에 기도하는 마음으로 사려깊게 준비된 선물이 될 것입니다. 예를 들면, ‘모세’의 율법이 시행되던 때, ‘이스라엘’ 백성은 아무 동물이나 장막의 뜰 입구에 가져다 놓고 하나님으로부터 은총을 받을 것을 기대할 수는 없었읍니다. 그 율법은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읍니다. “무릇 서원한 것을 갚으려든지 자의로 예물을 드리려든지 하여 소나 양으로 화목제 희생을 여호와께 드리는 자는 열납되도록 아무 흠이 없는 온전한 것으로 할찌니 눈먼 것이나 상한 것이나 지체에 베임을 당한 것이나 종기 있는 것이나 괴혈병 있는 것이나 비루먹은 것을 너희는 여호와께 드리지 말[라].”—레위 22:21, 22.
5. 율법은 곡식을 바치는 일을 어떻게 규정하였읍니까?
5 곡식을 바치는 경우에, 그것은 고운 가루여야 하였읍니다. (레위 2:1, 4; 6:14, 15; 민수 15:4) 이 요구 조건은 모든 거친 가루를, 체질을 잘 하지 않은 가루들은 배제되었읍니다. 그렇습니다. 최선의 것만이 거룩하신 분 여호와께 바치는 선물로 적절하였읍니다.
6. ‘이스라엘’ 백성의 제물이 가납되는 데 마음의 동기는 무슨 관계가 있읍니까?
6 여호와께 가납될 만한 예물을 드리는 일에 대한 또 한 가지 중요한 요구 조건은 올바른 마음의 동기를 가져야 하는 것이었읍니다. 창조주를 기쁘시게 하려는 깊은 내적 욕망이 없이는 ‘이스라엘’ 백성이 제물을 바쳐도 소용이 없었읍니다. 이 점이 다음 성귀에서 어떻게 강조되어 있는지 유의하십시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수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수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증히 여기는 바[니라]. ···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찌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니라.” (이사야 1:11—15) 진정한 헌신과 관대한 정신이 결핍되어 있을 경우, 겉으로 보이는 숭배 형식은 하나님의 은총을 사기 위해 바치는 뇌물과 비교될 수 있었읍니다. 그러한 것들은 전혀 가납될 수 없었읍니다.
여호와께 드리는 우리의 선물
7. 오늘날 우리는 왜 동물 희생을 바치지 않습니까?
7 ‘이스라엘’ 백성과는 달리,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어떠한 물질적 제단에 제물을 바치지 않습니다. 그러한 제사를 명령한 율법 언약은 형주에서 돌아가신 예수의 죽음을 기초로 말소되었읍니다. (골로새 2:13, 14) 따라서 우리는 ‘어떠한 제사를 바칠 수 있읍니까?’ 하는 질문이 생깁니다.
8. 로마서 12:1에서, 사도 ‘바울’은 제물에 관하여 무엇이라고 편지하였으며, 우리는 그의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8 그리스도의 사도 ‘바울’은, 죽음에서 일으킴을 받을 때 육체의 몸을 포기하고 영광스러운 영의 몸을 받게 될 영으로 기름부음받은 신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격려하였읍니다. “형제들이여, 나는 하나님의 연민으로 여러분에게 부탁드리는데, 여러분의 몸을 살아있고, 거룩하며,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제물로, 즉 여러분의 이지력으로 섬기는 거룩한 봉사에 바치십시오.” (로마 12:1, 신세) 그러므로 그들은 창조주를 섬기는 일에서 그들의 힘과 재능을 사용하도록 격려를 받았읍니다. 몸의 부분들은 사람이 말하고 행동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도구입니다. 따라서 이들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몸을 살아있는 제물로 바치기 위해서’ 활동적이어야 하였고, ‘모든 일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해야 하였읍니다. (고린도 전 10:31) 그 제사가 “거룩”한 것이 되게 하기 위해서 그들은 도덕적 및 영적 깨끗함을 유지해야 하였읍니다. 그리고 거짓 없는 사랑에 의해서 행동해야만 자기들의 몸을 바치는 일이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것이 될 것이었읍니다. (고린도 전 13:3) 그들이 신중하게 태도와 말과 행동에 있어서 하나님께 전적으로 헌신한 생활을 해 나아가며, 그들에게 보여 주신 하나님의 연민에 입각하여 그것이 옳다는 사실을 인식할 때, 그들은 “이지력”을 가지고 거룩한 봉사를 수행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현재의 희망이 어떠하든 간에, 즉 천적인 희망을 가졌든 지적인 소망을 가졌든, 우리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온 영혼을 바칠 수 있지 않습니까?
9. 히브리서 13:15, 16에서 우리는 어떠한 격려를 받습니까?
9 ‘히브리’인들에게 보내진 편지 가운데서, 우리는 가납될 만한 제사에 관하여 더 배울 수 있읍니다. 히브리서 13:15, 16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 주기를 잊지 말라. 이같은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느니라.”—호세아 14:2 비교.
10. “입술의 열매”에는 무엇이 포함되며,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어떠한 질문을 스스로 해 볼 수 있읍니까?
10 입술의 열매를 바치는 일에는 마태복음 24:14의 “이 왕국의 좋은 소식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사람이 거주하는 온 땅에 전파될 것입니다” 하는 말씀의 성취에 참여하는 것이 포함됩니다. 우리는 이 중대한 전파 사업에 있어서 진실로 가장 좋은 것을 바치고 있읍니까? 우리는 증거를 하기 위한 기회를 열렬히 포착하고 있읍니까? 우리의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생활은 본이 되어 “입술의 열매”가 가납될 만한 찬미의 제사가 되게 합니까?—로마 2:21, 22.
11. 그리스도인 집회에 관한 우리의 태도를 조사해 보는 것이 유익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11 그리스도인 집회에서 공개적으로 발표하는 것도 우리의 제사의 일부입니다. 이것은 분명히 동료 신자들이 숭배를 위해 모일 때 우리가 참석해 있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정말로 동일하게 귀중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기를 열망합니까? 그렇지 않으면, 기타 활동과 관심사들이 우리의 형제들과 함께 있을 수 있는 시간을 불필요하게 빼앗아 버리도록 허용합니까? 우리는 시편 필자의 본을 따르는 것이 좋습니다. 그는 자기가 동료 숭배자들과 연합하여 여호와 하나님과 통신하고자 하는 강렬한 욕망을 암사슴이 물을 갈구하는 것에 비교하였읍니다. 물이 없다면 사슴은 살아남을 수 없을 것입니다. (시 42:1, 2) 우리는 정말로 “생수의 근원”이신 여호와 없이는 살아 갈 수 없다는 점을 인식합니까?—예레미야 2:13.
12, 13. 우리는 그리스도인 집회로부터 어떻게 최대의 유익을 이끌어 낼 수 있읍니까?
12 집회에서 우리는 분명히 최대의 유익을 얻고자 할 것입니다. 다음의 영감받은 충고를 적용하고자 함으로써 그렇게 할 수 있읍니다. “우리는 서로 고려하여 사랑과 선한 일을 격려하며 ··· 서로 격려하되, 그날이 다가옴을 여러분이 볼수록 더욱 그렇게 하십시다.” (히브리 10:24, 25, 신세) 심판을 집행할 여호와의 큰 날이 매우 임박하였으므로, 우리에게는 우리의 형제들을 강화시키고 격려해 주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고려해야 할 당연한 이유가 있지 않습니까? 분명히 우리는, 그들 중에서 아무도 그날이 왔을 때 승인받지 못하는 상태에 있게 되기를 원치 않을 것입니다. (누가 21:34-36) 우리의 말은 그들의 영적 복지에 진정으로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나타냅니까? 집회에서의 해설을 통해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영원한 복지에 대한 사랑, 비이기적인 관심을 고취시킵니까? 우리의 해설은 모두가 계속해서 선한 일을 수행하고, “좋은 소식”을 선포하는 데 열심을 내고, 또 일상 생활의 모든 면에서 본이 되도록 격려를 줍니까?—디도 2:1-14 비교.
13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사랑과 선한 일”을 하도록 격려함으로써 우리 자신도 자극하고, 또한 우리의 정신과 마음에 믿음과 일치한 행함의 중요성을 깊이 새기게 합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매우 유익한 결과를 가져다 줄 수 있고, 우리로 하여금 자신을 살펴서 그리스도인 생활과 활동에서 발전하도록 만들 수 있읍니다. 그리고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말을 잘 듣고 그러한 성경적인 격려를 적용할 때,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는 데서 오는 행복을 맛보게 됩니다.—야고보 1:22-25.
14, 15. 영적으로 주는 일 외에도, 우리의 “제사”에는 그 밖에 어떠한 것이 포함됩니까?
14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이 편지는 다른 사람들의 필요에 부응하고 나누어 주는 일을 하도록 격려합니다. 이 편지를 받는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은 권고가 주어졌읍니다. “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에 참은 것을 생각하라. 혹 비방과 환난으로써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혹 이런 형편에 있는 자들로 사귀는 자 되었으니 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산업을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산업이 있는 줄 앎이라.” (히브리 10:32-34) 우리 역시 그와 같이 고통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동정심을 나타내며, 그들에게 도움을 베풉니까?
15 하나님의 종들이 처하여 있는 상태는 상당히 다양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가난으로 고생할지 모릅니다. 어떤 사람들은 병고와 침울감에 시달려 위안과 우정을 몹시 그리워 할지 모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심각한 개인 문제로 인해 낙심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의인들이 온전히 버림을 당하도록 하시지 않으시리라는 점은 사실입니다. (시 37:25)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대행자들로서 친절과 도움을 베푸는 책임을 개인적으로 느껴야 하지 않겠읍니까? 이러한 면에서 우리가 무관심한 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사도 ‘요한’은 다음과 같이 편지하였읍니다. “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 보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요한 1서 3:17, 18.
우리가 선물을 바치도록 초대된 이유
16, 17.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제물을 바치라고 초대하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6 영적 제물을 바치는 일에 충실하기 위하여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도록 우리를 초대하시는 이유를 올바로 인식할 필요가 있읍니다. 우리의 천적 아버지께서는 이미 우리의 속 생각과 태도를 알고 계십니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행하는 적극적인 선을 통하여 그분께 대한 우리의 사랑을 나타내기를 원하십니다. 그분의 종들이 친절과 관대함을 나타내는 면에서 그분을 닮기를 그분은 바라십니다. (마태 5:43-48) 이것은 그분께서 인간을 자기에게로 가까이 오도록 하시는 마련입니다. 어떻게 그렇습니까? 다른 사람들이 우리의 훌륭한 생활 태도를 관찰함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데서 오는 진정한 행복을 인식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마태 5:16.
17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셨으므로, 그분은 우리에게 최선의 유익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계십니다. 이것은 그분께서 선물을 바치도록 초대하시는 또 한 가지 이유가 됩니다. 관대한 정신은 우리의 생각과 마음의 평화 및 현재의 진정한 행복에 기여합니다. 성서는 이렇게 알려 줍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사도 20:35) 그 밖에도 우리는 우리의 천적 아버지께서 현재와 또한 영원한 장래에 우리에게 풍성한 상을 주시리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읍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 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희 아버지가 갚으시리라.” (마태 6:3, 4) “잔치를 배설하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저는 자들과 소경들을 청하라. 그리하면 저희가 갚을 것이 없는고로 네게 복이 되리니 이는 의인들의 부활시에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니라.”—누가 14:13, 14.
18. 우리의 주는 일은 어떠해야 하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18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바치는 제물에 대한 그러한 포괄적인 견해를 가지고, 집회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소식”을 전할 때, 그리고 태도와 말과 행동에서, 그렇습니다. 생활의 모든 면에서 우리의 가장 좋은 것을 베풀 수 있는 준비를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중대한 문제에 관하여 마음이 나뉘어져서는 안됩니다. 중요한 것은 여호와의 승인과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의 보증과 일치하게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불의치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히브리 6:10.
[33면 삽화]
모두가 참여할 수 있다
집회에서 해설하는 일
전파하고 가르치는 일
다른 사람들을 영적으로 그리고 물질적으로 격려하는 일
사랑과 선행을 하도록 다른 사람들을 고무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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