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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형무소의 문제점—그 해결책은 무엇인가?
    깨어라!—1977 | 7월 22일
    • 형무소의 문제점—그 해결책은 무엇인가?

      나는 지난 8월 16일 ‘뉴우요오크’ ‘브루클린’에 있는 나의 사무실에서 전화를 받았다. 친한 벗으로부터 걸려온 전화인데 그는 나에게 “‘루이지애나’ 주 ‘앙골라’ 형무소에 와서 몇 번의 강연을 해 줄 수 있겠느냐?”고 묻는 전화였다.

      “제가요? 좋습니다. 그렇게 하죠.” 나는 그 제안을 기꺼이 받아 들였다.

      약 일년 전에 그 형무소가 재소자들의 교화에서 크게 성공하였다는 기사를 읽었기 때문에 그 사실을 직접 확인해 보고 싶었다.a 1976년 11월 4일 비행기로 그곳에 가도록 계획되었다.

      오래 전부터 형무소와 관련해서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으며 현재는 아마도 재소자의 과잉 상태가 중요한 문제일 것이다. 작년에 나는 「덴버 포우스트」(미국)지의 이러한 보도에 유의한 일이 있었다. “형무소 건축은 1970년대의 가장 빨리 성장하는 기업이 될 것 같다 ··· 현재 524건의 새로운 형무소 건립 혹은 확장 계획이 세워지고 있다.”—1976년 4월 25일자.

      그러나 더 많은 형무소를 지으면 문제가 해결될 것인가? 범죄자를 감옥으로 보내는 것이 그들을 다루는 최선의 방법인가?

      형무소의 진정한 목적이 무엇이냐는 문제에 대한 수년 동안의 논쟁에 나는 많은 흥미를 느끼고 있다.

      처벌 혹은 교화?

      논쟁점은 형무소가 주로 처벌하는 곳이 되어야 하느냐 아니면 교화시키는 곳이 되어야 하느냐 하는 점이다. 그러나 역사를 살펴보면 그와는 전혀 다른 방법이 시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고대에는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바와 같은 형무소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범죄자들은 사형을 당하거나 신체적인 벌 즉 체형을 받았다. 체형에는 범죄자에게 채직찍하거나 낙인을 찍거나 불구로 만든 다음 풀어 주는 일도 들어 있었다.

      그후 18세기와 19세기에는 사형에 해당하는 죄목이 줄어들었고 체형도 점차 사라졌다. 대신 범죄자를 감옥으로 보내는 일이 많아졌다. 벌레들이 우글거리고, 불결하고, 사람들이 너무 많은 그러한 감옥은 재소자들에게 음식은 조금 주면서도 노동은 장시간하게 하는 곳이었다. 악조건 때문에 많은 사람이 감옥에서 죽었다. 그러한 감옥은 처벌이 주된 목적이었다.

      근래에 와서는 생각이 변화하였다. 19세기에는 재소자들을 개조 혹은 교화시키는 것이 형무소의 주된 목적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발전하였다. 최근에 와서 1970년에 전 미국 대통령 ‘닉슨’의 재소자 교화 촉진회는 재소자 교화가 장차 교도 행정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최근에는 교화시키려는 노력이 비평을 받게 되었다. 이처럼 급격한 견해의 변화에 나는 깊은 관심이 있었다.

      교화하는 문제는 어떻게 되었는가?

      1975년 1월 4일자 「내셔널 옵저어버」지의 표제는 이러하였다. “150년간 범죄자들의 교화를 위해 노력. 개혁의 주창자들도 ··· 개혁의 실패 인정.”

      「과학」지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적어도 현재 상태에서는 ‘교화’에 대한 실망이 너무 커서 몇년 동안에 많은 저명한 사회학자들이나 행형학자들이 교화에 대한 주장을 포기하였다.”—1975년 5월 23일자.

      「뉴우스위이크」지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전문가들은 범죄자를 감금시켜 처벌하고 그들의 범죄로부터 사회를 보호하는 것이 행형제도의 필수적인 기능이 되어야 한다는 데 ··· 점차 의견의 일치를 보고 있는 것 같다.”—1975년 2월 10일자.

      나는 ‘뉴우요오크’ 시민이기 때문에 사회를 범죄자들로부터 보호하는 것을 다시 강조하는 것에 전적으로 찬성한다. 불행하게도 ‘델라웨어’ 주 ‘윌밍튼’ 시장 ‘토마스 말로니’의 말은 사실 그대로이다. “이제 시민들은 쇠사슬, 자물쇠, 문빗장, 쇠창살 등으로 집안에 갇혀 있는 데 반해 범죄자들은 밖에서 활개치며 다니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법을 잘 지키면서도 범행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의 권리를 옹호하자는 그러한 견해를 환영할 것이다. 범죄자들에게 범행에 대한 책임을 지게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이 더욱 습관적인 범죄자가 된 것은 분명한 것 같다. 물론 그 점은 다음과 같은 커다란 의문을 일으킨다. 형의 선고로서 점차 늘어나는 범죄자들을 다 처벌할 수 있는가?

      범죄자들을 어디에 수용할 것인가 하는 문제

      사실상 이미 미국의 형무소들은 체포된 범죄자들로 가득차 있다. 1973년 1월에서 1977년 1월까지 미국의 연방 형무소 및 주 형무소의 재소자 수는 195,000명에서 283,000명으로 늘어 45‘퍼센트’의 증가를 보였다. 「월 스트리이트 저어널」지는 다음과 같이 보도하였다. “대부분의 주에서는 재소자들을 수용하기 위해 현존하는 형무소의 구석구석을 다 사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화장실 위에 설치한 선반이나 ‘샤워’실, 체육관 등에서 잠을 자고 있다.”—1976년 7월 20일.

      커다란 연방 형무소나 주 형무소 외에도 수 많은 군과 시에 형무소가 있다. 작년 6월에 「뉴우요오크 타임즈」지는 ‘뉴우요오크’ 시의 8개 형무소에 매년 60,000명의 남녀가 감금되어 있다고 보도하였다. 한 범죄학자에 의하면 2백만명 이상이 매년 미국의 형무소를 거쳐 간다고 한다.

      매년 1천만건 이상의 중범죄가 경찰에 신고되고 있다는 사실—과거 삼년 동안에 3천만 건 이상—을 생각하면 그 문제가 더욱 심각해진다. 그러므로 모든 범죄자 심지어는 체포되는 사람들 모두를 다 수용할 시설도 없다. 또한 납세자들은 이미 너무 많은 부담을 지고 있다.

      작년 9월 나는 「뉴우요오크 타임즈」지에서 “‘뉴우요오크’ 형무소의 재소자 한 사람을 감금시키는 데는 일년에 약 12,000‘달러’”가 든다는 기사를 읽고 놀랐다. 그것을 기준으로 하면 연방 형무소와 주 형무소들에 있는 250,000명의 재소자들을 보호하는 데는 일년에 30억 ‘달러’가 드는 셈이다. 또한 전하는 바에 의하면 새로운 형무소를 건축하는 데는 재소자 한 사람 당 40,000‘달러’ 정도가 든다고 한다.

      형무소 문제는 정말 심각한 문제이다. 한 전문가가 1980년 중반에 가서 연방 형무소 및 주 형무소의 재소자가 400,000명이 될 것으로 예상한 것을 생각하면 더욱 심각한 문제이다. 그 해결책은 무엇인가?

      기대해 볼 만한 교화

      생각해 보자. 우리 모두는 범죄자들이 개선되어 법을 잘 지키는 쓸모있는 사람들이 되기를 원한다. 그리고 재소자들 대부분이 교화되지는 않았지만 개인적으로 그러한 변화를 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미국 형무국 국장 ‘노르만 칼슨’이 다음과 같이 말한 것도 당연하다. “교화란 개념이 너무 확대되었다 ··· 이제 우리는 모두를 교화시킬 수는 없으며 단지 그들에게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범죄자들에게 올바른 기회가 주어지면 어떤 범죄자들이 자극을 받아 변화될 것을 확신한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켄터키’ 주 ‘아쉬랜드’의 연방 형무소에서 나는 어떤 재소자의 마음이 변화되고 완전히 생활이 변화된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11월에 ‘루이지애나’ 주의 ‘앙골라’ 형무소에 가서 상황을 직접 보기를 원하였다. 그 형무소는 미국에서 두번째로 큰 주 형무소로서 전체 면적이 18,000‘에이커’나 된다. 1975년 신문 보도에 의하면 그 형무소의 정원은 2,600명인데 4,409명이 수용되어 있다고 하였다.

      곧 11월 4일이 되어 나는 여행을 하게 되었다.

      [각주]

      a 1975년 9월 8일호 「깨어라!」

      [4면 삽입]

      “많은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법을 잘 지키면서도 범행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의 권리를 옹호하자는 그러한 견해를 환영할 것이다.”

  • 성공적인 교화 활동
    깨어라!—1977 | 7월 22일
    • 성공적인 교화 활동

      내가 탄 비행기는 목요일 밤에 ‘루이지애나’ 주 ‘배튼루우쥬’에 도착하였다. 마중나온 친구와 함께 가까운 ‘뉴우로우드’에 있는 그의 집으로 갔다. 그 날 저녁 ‘앙골라’ 형무소에서 진행되고 있는 일들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6명의 그리스도인들이 교육 활동을 펴고 있는데 나의 친구는 그 중의 한 사람이다. 그 6명이 매주 돌아가면서 재소자들의 집회를 인도하고 있다. 재소자들의 평균 참석수는 약 40명이다.

      나의 친구는 “사실 그 활동은 형무소 안에서 시작되었다”고 말하였다. 1973년초에 ‘여호와의 증인’의 출판물을 읽던 재소자 두 사람이 방문을 요청하는 서신을 보냈다. 그 동안 그 두 재소자는 다른 재소자들과 이야기를 나눈 결과 다른 사람들도 들은 내용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 형무소에서 1973년 10월 처음 갖게 된 집회에 18명의 재소자가 참석하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매주 수요일과 일요일에 집회를 보게 되었다. 참석하는 재소자들의 수가 계속 증가되어 때때로 60명 이상이 참석하게 되었다. 그처럼 관심이 높아진 이유는 무엇인가?

      교육 활동

      친구의 설명에 의하면 지금까지 그 집회들은 기본적으로 ‘여호와의 증인’의 왕국회관에서 열리는 집회와 같은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일요일에는 보통 인근 회중에서 초청된 연사가 행하는 한 시간의 강연이 있다. 그 다음에 최근호 「파수대」 기사에 근거한 성서 연구가 있다.

      수요일 밤에는 신권 학교가 열려서 학생들의 성서 지식을 증가시키고 연설하는 능력을 발전시키게 한다. 또한 주로 봉사회에서는 성서 소식을 동료 수감자들에게 효과적으로 전하는 방법을 토론한다.

      놀랍게도 이 재소자들은 새로 발견한 그리스도인 믿음을 아주 활동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전한다고 한다. 몇개월 동안에 그들은 50명 이상의 재소자들과 매주 성서 연구를 하였다. 또한 그들은 작년에 형무소 내에서 하나님의 목적을 설명하는 「파수대」, 「깨어라!」, 대책 등을 약 5,000부나 전하였다.

      그러한 처음 사람들의 열심은 그들과 연구를 하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달되었으며 그것은 성공적인 교화 활동에 보탬이 되었다.

      요구 조건에 달함

      집회는 형무소의 교육사에 있는 방에서 열리는데 그 방은 학교의 교실과 비슷하다고 한다. 그러나 집회에 참석하려면 재소자의 이름이 ‘호출’부에 기입되어야 한다. 그렇게 하면 그 재소자는 여러 건물로 이루어진 커다란 형무소 건물에서 나와 중앙에 자리 잡은 교육사에서 함께 ‘호출’된 사람들과 만날 수 있다.

      놀랍게도 그 재소자 집회에 누가 참석할 것인가를 증인들이 관할하고 있다. 아무나 올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거기에는 이유가 있다. 보통 재소자들은 빨리 형무소에서 나가는 데 도움이 될까 해서 어떤 집단에 가입한다. 그러면 ‘여호와의 증인’들은 재소자가 진실하며 참석할 자격이 있는가를 어떻게 결정하는가?

      먼저 그와 함께 성서 연구를 한다. 그가 진정한 관심을 보일 때 그는 ‘호출’부에 기입된다. 병이 난다든가 하는 등의 정당한 이유 없이 한달에 네 번 이상 집회에 빠지면 형무소 당국자들에게 통지하여 그의 이름은 ‘호출’부에서 삭제되게 된다. 얼마 동안 진정한 관심이 있음을 증명한 후에야 그는 집회에 다시 참석할 수 있다.

      초기의 성공

      1975년 1월 1일호 「파수대」에 실린 지역 대회의 보고를 통해 그 활동이 초기에 성공을 거두었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 보고 내용은 다음과 같다.

      “‘루이지애나’ 주 ‘배튼루우쥬’ 대회에서는 감동적인 광경이 있었다. ‘여호와의 증인’들이 몇달 동안 ‘앙골라’ 소재 ‘루이지애나’ 주 형무소의 재소자들과의 성서 연구를 사회하였다. 이들 중 많은 사람들은 성서 지식에 있어서 발전하였으며 형무소 관리들은 그들의 행실이 철저하게 변화된 것을 보고 놀랐다. 그리하여 그들 중 여덟명이 ‘배튼루우쥬’ 대회에 참석하는 것이 허락되었다. 족쇄와 수갑을 차고 이들이 차에서 걸어 나와 좌석으로 인도되어 다른 사람들과 함께 그 날 침례를 받는 모습은 마음을 뜨겁게 하였다.”

      어떤 사람이 여호와의 증인의 한 사람으로 침례를 받으려면 높은 성경적 자격에 달해야 한다. 그리고 자격을 갖추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각자에 대해서 검토하게 된다. 침례를 받으려는 사람은 적어도 80가지의 기본적인 성서 질문에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중에는 다음과 같은 질문이 들어 있다.

      “하나님의 왕국이란 무엇인가?” “땅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은 무엇인가?” “재혼할 수 있는 이혼의 유일한 성경적 근거는 무엇인가?” “왜 거짓말을 하여서는 안되는가?” “술취함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견해는 무엇인가?” “성서는 음행, 간음, 동성간의 성적 관계 및 기타 방종에 관하여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그러한 행위를 하는 사람이 침례를 받을 수 있는가?”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은 ‘아니다’이다. 그러나 당신도 알고 있듯이 형무소에 있지 않은 사람들도 보통 그런 행위를 하고 있으며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들 여덟명의 재소자들은 높은 도덕 표준을 받아 들여 그 표준에 따라 생활을 하고 있었다. 얼마 있지 않아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하였다.

      1974년 초가을에 또 다른 8명의 재소자가 침례받을 자격을 갖추게 되었다. 나의 친구는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는 외부에서 사람들이 방문하여 형무소 내에서 침례를 주면 좋겠다고 생각하였다.”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추진하였는데 교육 활동의 훌륭한 결과에 감동된 형무소 관리들이 그것을 허락하였다. 1974년 10월 5일에 특별한 대회가 개최되었다. 「깨어라!」지는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다.

      “외부에서 도착한 사람들은 진귀한 광경을 만들어냈다. 모두 337명이 형무소 문 앞에서 만났다. 그들은 흑백인 구별 없이 깨끗이 차려 입은 남자, 여자와 어린 아이들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700‘마일’이나 되는 곳에서 왔다.

      “명부와 이름을 대조한 후, 문 안으로 들어 갔다. ‘버스’를 타고 여러 동의 건물로 된 거대한 형무소 안으로 약 2‘마일’ 더 들어갔다. 버스를 내린 후 그들은 철 대문을 지나 커다란 강당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깨어라!」에서 이러한 보고를 읽고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교화 활동의 결과에 대해서 그 이상 들어 보지 못했다. 그러므로 저녁 식사를 마친 후 나는 친구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놀라운 성장

      나의 친구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10월의 그 대회는 우리의 활동에 큰 역할을 하였지. 참석한 약 백명의 재소자들은 수백명의 방문객이 나타낸 사랑과 온정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네.”

      그 결과로 이 재소자들 중 많은 사람이 스스로 성서 연구를 요청하였고 훌륭한 발전을 보였다. 나의 친구는 계속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얼마 있지 않아 또 몇명이 생활을 변화시켜 침례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을 갖추었지. 그러므로 더 큰 다른 대회를 갖도록 계획하였어. 다시 형무소 관리들은 승인을 하였는데 이번에는 형무소에 ‘로데오 스타디움’을 사용할 수 있게 하였어. 그리하여 1975년 4월 26일 목요일 이른 아침에 여러 차에 탄 수백 명의 증인들이 ‘앙골라’로 모여 들었지.”

      이번에는 차를 직접 타고 형무소 안으로 들어갔다. 대문에서 조사할 때도 단지 “총기를 가진 사람이 있읍니까?”라는 질문 밖에 하지 않았다. 그 다음에 차를 몰아 ‘로데오’ 운동장으로 갔다. 모두 2,602명이 방문하였다. 그 모임의 절정은 12명의 재소자들이 침례를 받는 것이었다. 그 중에는 살인죄로 사형 선고를 받은 사람도 들어 있었는데 그는 침례를 받기 위해 쇠사슬을 매고 나왔다. 그는 처형될 것을 기다리면서 증인들과 일년 동안 연구해 왔었다.

      형무소 관리들은 이 하루간의 대회가 훌륭하게 진행된 것과 그것이 재소자들에게 미치는 훌륭한 영향에 대해 만족하게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가을에 하루간의 대화를 가지겠다는 계획을 환영하였다. 이번에는 1975년 11월 29일 토요일에 3,200명이 그곳을 방문하였다. 그리고 8명의 재소자가 침례를 받았다.

      나의 친구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이번 토요일이 형무소에서 열리는 또 하나의 특별 대회일이지. 그 대회를 위해 올 수 있어서 참으로 기쁘네.”

      나는 이제 이전 어느 때보다도 그 형무소에 더 가 보고 싶었다. 놀랍게도 이미 36명이나 침례를 받았고 이번 토요일에 6명이 또 침례를 받을 것이라고 한다. 다음날인 금요일에는 내가 관리들과 인사를 나누고 회견하도록 친구와 함께 ‘앙골라’로 갈 것이다.

      직접 살펴봄

      점심 식사 후에 우리는 차를 타고 한시간 반 가량 늪 지대를 지나서 배로 ‘미시시피’ 강을 건넜다. 그 다음에 굽이치는 몇 개의 언덕을 지나 결국 그 형무소의 정문에 도착하였다. 형무관들은 친구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서로 몇마디 농담을 주고 받았다. 그 다음에 형무소 안으로 들어 가라는 신호를 하였다.

      ‘로데오 스타디움’을 향해 차가 갈 때 그 지역은 커다란 농장을 연상하게 하였다. 길 양쪽에는 새로 만들어진 나무 울타리가 있었다. 그리고 경작된 밭이 있었다. 그 재소자들은 그들이 먹는 식품의 대부분을 생산해 낸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가장 경비가 삼엄한 구역에 도착하였다. 여러 개의 문을 통과한 후 우리는 뒷문을 통해 ‘로데오 스타디움’으로 들어 갔다.

      운동장 한쪽 끝에서는 연대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여러 명의 증인 재소자들이 마지막 손질을 하고 있었다. 그 마지막 손질에는 칠하는 것이나 바닥에 양탄자를 까는 것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들을 만나니 반가왔다. 그 14명은 온정있고 우호적이고 자진적이었다. 나는 그들이 다음날에 있을 대회를 위해 대회장을 돌보도록 관리들로부터 특별한 허가를 받았음을 알게 되었다.

      형무소 내에서 교육 활동을 인도해 온 재소자인 ‘얼빈 세인트 아만드’는 우리가 형무소 관리들과 회견하도록 마련하였다. 그리하여 우리는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떠났다. ‘얼빈’이 우리와 함께 차를 타고 갈 수 없어서 섭섭했지만 형무소 규칙이 그러했기 때문에 우리는 기꺼이 그 규칙에 따랐다. 그는 의족을 하고 있었는데도(몇년 전에 탈옥하려다 한 쪽 발을 잃었다.) 빨리 움직여 우리보다 앞섰다.

      차를 세워 놓고 우리는 다른 재소자들 옆으로 지나갔다. 나는 이 사람들과 조금 전에 우리가 만나고 오던 사람들과는 차이가 있음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만사가 귀찮은 듯이 땅에 누워 있었고 어떤 사람은 허공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이 자신의 운명에 대해 체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참으로 대조적이다.

      관리들의 칭찬

      본부 건물에 도착하자 우리는 ‘리처드 A. 월’ 소령(그 후 중령으로 진급하였다)의 사무실로 안내되었다. 퇴임하게 되는 그는 확실히 우리의 교화 활동을 좋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행형 제도에서 여러 해 동안 일해 왔기 때문에 교화를 위한 여러 가지 노력이 실효를 거두지 못했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우리의 교화 활동에 대하여서는 극구 칭찬하였다.

      나는 ‘얼빈’의 과거 역사—그는 정말 사고 뭉치로서 심술궂은 친구였다—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노골적으로 “이 사람을 신용합니까?” 하고 물었다.

      그는 즉시 “‘세인트 아만드’를 나는 절대적으로 신용합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리고 나서 이렇게 부언하였다. “여러분의 조직은 성원들을 살피기 때문에 나는 여러분의 조직을 좋아합니다. 어떤 사람이 잘못된 길로 가기 시작하면 여러분은 그를 도우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그가 잘못된 길로 계속 나아가기를 고집한다면 여러분은 조직에서 그를 쫓아 냅니다. 우리는 여러분이 언행이 일치한 사람들임을 믿습니다.”

      증인 재소자들이 이 관리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음이 분명하였다. 좀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으나 시간이 없었다.

      그 다음에는 구내 세탁소에 들렸다. 그곳에서 나는 세탁소를 감독하는 ‘로렌스 와츠’에게 소개되었다. 그는 1973년 이래 우리의 재소자 교육 활동을 후원해 주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여러분의 도움을 받은 재소자들의 훌륭한 본은 어느 정도 전염성을 가지고 있읍니다. 나는 그 결과 재소자들의 전반적인 행실이 개선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앙골라’에서 수행되고 있는 일에 대해 우리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고 말하였다. 아주 즐겁게 대화를 나눈 후 그곳을 떠나 ‘로데오’ 운동장에서 일하고 있는 재소자들에게 인사를 하려고 그곳으로 다시 갔다. 그들에게 다음날 만나자고 말한 후 집으로 향하였다.

      대회

      다음날 아침은 날씨가 추웠다. 우리는 ‘프로그램’이 시작되기 2시간 전인 7:30에 ‘로데오 스타디움’에 도착하였다. 나는 침례를 받게 되는 여섯명을 만나보고 싶었다. 그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그들의 순수함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인식에 깊은 감동을 느꼈다.

      금방 시간이 지나 ‘프로그램’이 시작되었다. 10시에 나는 “하나님의 뜻 혹은 자기의 뜻 어느 쪽인가?”라는 주제로 연설하였다. 그 다음에 침례 연설이 있었고 그들은 연단 근처에 설치된 통에서 1,970명의 방문객들이 지켜 보는 가운데 침례를 받았다. 한 사람씩 물에서 나올 때마다 우뢰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어떤 재소자가 물을 뚝뚝 흘리면서 “오늘이 나의 생애에서 가장 행복한 날이다”라고 말하듯이 만면에 웃음을 띠고 있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침례식 후에 두 시간의 휴게 시간이 있었다. ‘뉴우로우드’ 회중은 모두가 염가로 들 수 있는 음식을 마련하였다. 청중 가운데 자진자들이 배식을 도왔다. 재소자들은 외부에서 온 사람들과 함께 식사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다. 그들은 연단 가까이에 마련된 장소에서 식사를 하였다.

      나는 재소자들이 모여 있는 그 운동장의 안쪽으로 들어가서 ‘여호와의 증인’들의 활동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얼마의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한 재소자는 나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여러분은 종교적 신조를 전할 필요가 없읍니다. 여러분이 어떤 사람의 벗이 되어 주기만 하면 그는 여러분의 행실과 우호적인 태도 때문에 어느 땐가 여러분의 편을 들게 될 것입니다.”

      그 두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으며, 다시 ‘프로그램’을 시작할 때가 되었다. 공개 강연 제목은 “살아있는 실체인 하나님의 왕국”이었다. 그 후에 침례받은 재소자들이 제공하는 「파수대」 요약이 있었는데 그들은 참으로 훌륭하게 해 내었다.

      오후 4시에 노래와 기도로 ‘프로그램’를 마쳤다. 여러 해 동안 증인 생활을 해 온 한 친구는 우리 대부분의 느낌을 다음과 같은 말로 대변하였다. “우리는 이전에 우리가 참석하였던 어느 대회에서 보다도 그 대회에서 더 많은 사랑과 온정을 느꼈다.”

      ‘루이지애나’ 주 형무소 재소자들의 출판물인 「앙골라이트」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이번 대회는 증인들이 ‘앙골라’에서 개최한 네번째의 대회이며 증인들이 더 많은 재소자들의 마음에 이르도록 계속 노력함에 따라 앞으로도 대회가 있게 될 것이다. 그들은 이곳에 있는 재소자들이 스스로 개선하고 더 의미있는 생활을 하도록 설득하고 도와주기 위해 어떠한 종교 조직보다도 더 많이 그리고 더 지속적으로 노력해 왔다.”—1976년 11-12월호.

      유일한 활동?

      나는 보고 들은 내용을 통해 참으로 깊은 감명을 받았다. ‘뉴우요오크’에 돌아 와서는 형무소 내에서 진행되는 비슷한 활동에 관해 알아 보려고 자료를 조사하고 서신을 써 보내기 시작하였다. ‘앙골라’에서 진행되는 활동이 가장 규모가 크고 가장 성공적이었지만 다른 곳에서도 그런 활동이 전개되고 있었다. 몇 가지 예만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매주 수요일에 ‘여호와의 증인’의 한 장로는 ‘오하이오’ 주 ‘칠리코스’ 감화원을 방문하고 있다. 그는 평균 8명 내지 14명의 재소자들이 참석하는 성서 연구를 사회한다. 두 사람이 침례를 받았고 또 다른 두 사람이 침례를 고려하고 있다.

      재소자가 1,700명인 ‘오하이오’ 주 ‘런던’ 감화원에서 ‘여호와의 증인’들은 매주 네번의 집회를 사회하고 있다. 이러한 집회는 약 이년 동안 계속되어 왔으며 세명의 재소자가 침례를 받았다. 침례받을 준비가 된 한 재소자는 올해 초에 석방되었다.

      ‘오하이오’ 주 ‘루커스빌’ 남부 ‘오하이오’ 감화원에서는 그러한 활동이 아주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 활동은 1972년 가을에 시작되었다. 평균 집회 참석수는 약 22명인데 최근의 특별한 집회에는 33명이 참석하였다. 1975년 4월과 1976년 3월에는 7명의 재소자가 물통에서 침례를 받았는데 물통은 그 특별한 행사를 위하여 구입된 것이다.

      1973년 후반에 ‘메릴랜드’ 주 형무소에서 훌륭한 활동이 시작되었다. 얼마 있지 않아 많은 재소자들과 성서 연구를 하게 되었고, 시간이 흘러 가면서 ‘여호와의 증인’의 장로들이 정기적으로 집회를 사회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8명이 (형무소 병원의 목욕통을 사용하여) 침례를 받았다.

      ‘뉴우요오크’ 시 ‘라익커스 아일런드’에서는 8명의 장로들이 재소자들과 성서 연구를 하기 위하여 매주 방문하고 있다. 또한 ‘뉴우요오크시’의 다른 형무소도 방문하고 있다.

      이 말은 ‘여호와의 증인’들의 이러한 교화 활동이 엄청난 형무소 문제 및 범죄 문제의 해결책이란 의미인가? 결코 그렇지는 않다. 사실상 그러한 문제의 해결을 위한 그들의 역할은 미소하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진정한 해결책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고 믿는다.

      [6면 삽입]

      “집회는 형무소의 교육사에 있는 방에서 열리[고 있다.]”

      [7면 삽입]

      “단지 ‘총기를 가진 사람이 있읍니까?’라는 질문 밖에 하지 않았다.”

      [8면 삽입]

      “우리는 여러분이 언행이 일치한 사람들임을 믿습니다.”

      [8면 삽화]

      침례식이 있기 직전에 여섯명의 침례 지원자들이 연사 앞에 서있는 모습. 뒤쪽에는 청중의 일부가 보인다

      [9면 삽화]

      침례받은 후 물이 뚝뚝 떨어지는 가운데 행복한 웃음을 짓고 있는 재소자

  • 해결책은 무엇인가?
    깨어라!—1977 | 7월 22일
    • 해결책은 무엇인가?

      적어도 제한된 수의 재소자들에게는 형무소 내에서의 성서 교육이 해결책이었다. 그들이 배운 건전한 지식은 그들의 생활을 피상적으로가 아니라 급격하게 변화시켰다.

      지난 삼년 동안 ‘루이지애나’ 주 ‘앙골라’ 형무소에서는 42명의 재소자가 침례를 받았다. 그 중 14명이 석방되었다. 나는 그들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조사를 해 보았다. 단지 한 사람만 다시 범죄하는 길로 돌아갔다.

      다른 사람들은 아주 잘 하고 있다. 적어도 한 사람은 회중에서 봉사의 종으로 일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지적한 대로 형무소 내에서의 이러한 성서 교육 활동이 모든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아니다. 그러한 활동은 단지 원하는 자들에게 유익을 얻을 기회를 제공해 주는 것이다.

      그러나 성서는 범죄자들을 처벌하는 데 대한 구체적인 지침을 제공하고 있다. 그러한 지침이 적용되면 형무소 문제와 범죄 문제가 상당히 감소될 수 있을 것이다.

      피해자에 대한 보상

      고대 ‘이스라엘’에게 주신 하나님의 법에는 형무소에 구속시키는 마련이 없었다. 절도나 사기 사건 등 재산과 관련된 범죄에 있어서는 피해자에게 보상하게 하는 것이 처벌의 기본이었다.

      그러나 현재에는 범죄의 피해자들에게 보상하는 일이 있다 해도 극히 드물다. 도난당한 돈은 보통 주인에게 되돌아 오지 않으며 사람이나 재산에 끼쳐진 해에 대하여도 보상되는 일이 별로 없다. 그러나 성서는 범행에 대한 책임을 범행자가 지게 해야 함을 알리고 있다.

      고대 ‘이스라엘’에게 주신 하나님의 법은 소나 양을 한 마리 훔친 사람은 피해자에게 소나 양 두 마리를 갚도록 규정하였다. 그리고 그 동물을 죽였을 경우에는 두 마리보다 더 많이 배상해야 하였다. 그렇게 할 수 없다면 피해자에게 주어야 할 금액이 배상될 때까지 고용된 일꾼으로 일해야 하였다.—출애굽 22:1-9.

      그처럼 범죄자로 하여금 범행에 대한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은 분명히 유익이 있었다. 첫째로 피해자는 그가 입은 손해는 물론 그의 고통에 대하여도 보상을 받을 수 있었다. 둘째로 그러한 일을 통해 범법자는 좋은 교훈을 받을 수 있었다. 세째로 형무소 유지비 때문에 사회가 무거운 짐을 질 필요가 없었다.

      지금은 이러한 마련이 제한된 범위로 시행되고 있다. 1975년 12월 19일자 「밀워키 저어널」지는 다음과 같이 보도하였다.

      “‘레이’는 형무소에 감금되어서 사회에 대한 빚을 갚는 것이 아니라 사회로 돌아와 일하면서 피해자들에게 보상하고 있다. ‘레이’는 형무소에서 풀려나서 ‘미네소타’ 감화국이 설치한 배상회에 소속된 강도, 위조범을 비롯한 87명의 범죄자들 중 한 사람이다. 그 범죄자들은 삼년 전 그러한 계획이 시작된 이후 피해자들에게 총 15,000‘달러’를 배상하였다.”

      그리고 1977년 2월 6일자 ‘UPI’ 발신 기사는 다음과 같이 전하였다.

      “정부는 범죄자들을 투옥시키는 대신 그들의 노동을 통해서 피해자에게 보상하는 방법을 평가하려고 이백만 ‘달러’를 사용하고 있다 ··· 그 방법이 몇 가지 면에서 적용되었는데 그 결과는 상당히 훌륭하였다.”

      그러나 범죄자에게 피해자의 손해를 보상하게 하는 것 외에 필요한 것이 또 있다.

      사형 제도

      고대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이 주신 법은 살인, 유괴, 근친 간음, 수간 등을 포함한 여러 가지 범죄에 있어서는 사형을 내리도록 규정하고 있다. (민수 35:30, 31; 출애굽 21:16; 레위 18:6-23, 29) 보통 돌로 쳐 죽였으며 공개적으로 시행되었다.—신명 17:5.

      그 당시 사형 제도는 범죄에 대한 커다란 억제력이었다. 오늘날에도 신속히 일관성있게 적용된다면 범죄를 막는 데 도움이 될 것이며 결국 형무소와 관련된 문제도 상당히 해소될 것이다. 이 문제에 있어서 하나님의 지혜를 받아 들이기를 거절하는 많은 사람들은 “잔인”하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권장한 방법은 인류를 어디로 인도하였는가? 범죄자들이 아니라 피해자들이 역사상 가장 잔인한 대우를 받게 되었다.

      또한 사형 제도나 범죄 해결을 위한 다른 방법을 시행한다 할지라도 범죄 문제가 인간에 의해서 해결될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완전하고 만족스런 해결책이 있다.

      확실한 해결책

      ‘하아버드’ 대학 정치학 교수 ‘제임스 Q. 윌슨’은 「범죄에 대한 고찰」이라는 그의 저서에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지적하고 있다. 마지막 문단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악인은 존재한다. 선량한 사람들을 그들과 분리하지 않고는 어떤 방법도 소용이 없다.”

      그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누가 악한 사람과 선량한 사람을 판단하며 악인들을 철창 속에 넣어 두지 않고 영구적으로 분리할 수 있는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실 수 있으며 그렇게 하는 것이 그분의 확실한 목적이다. 그분의 약속은 이렇다. “대저 정직한 자는 땅에 거하며 완전한 자는 땅에 남아 있으리라. 그러나 악인은 땅에서 끊어지겠고 궤휼한 자는 땅에서 뽑히리라.”—잠언 2:21, 22.

      그 후에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법에 따라 통치를 받게 될 것이다. 그러한 법은 그리스도인들이 기도하도록 가르침을 받은 인자하고도 굳건한 정부 즉 그리스도 아래 있는 하나님의 왕국에 의해 시행될 것이다. 그 때는 형무소가 전혀 필요없으며 지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벗으로 신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곳에서 사는 것은 참으로 훌륭한 일일 것이다. (마태 6:9, 10)—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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