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우리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소식을 전한 예언자들
1. 히브리어 성경의 마지막 책들을 기록한 열두 예언자에 관해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느님의 사자 열두 사람을 잘 알고 싶지 않습니까? 이 열두 사람은 예수께서 땅에 오시기 전에 살았으므로 그들을 직접 만나 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을 잘 알 수 있으며, 그들이 어떻게 “여호와의 큰 날”을 가깝게 생각하였는지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알게 될 내용은 여호와의 큰 날을 계속 의식하려고 노력하는 현명한 그리스도인 모두에게 참으로 중요합니다.—스바냐 1:14; 베드로 둘째 3:12.
2, 3. 열두 예언자는 우리와 유사한 어떤 경험을 하였습니까?
2 성경에는 예언자라고 불린 사람들이 많이 나오며, 예언자의 이름이 성서의 책명이 된 경우가 많습니다. 다른 예언자들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살펴볼 이 열두 예언자도 충실함과 용기에 있어서 본이 됩니다. 그중에는 자신이 전한 소식을 사람들이 듣고 정신과 마음을 변화시켜 하느님께 돌아오는 것을 보는 큰 기쁨을 누린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고집 센 사람들이 여호와의 표준을 범하면서 그분의 뜻을 거슬러 행동하는 것을 보고 몹시 실망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또한 이 열두 예언자 중에는, 여호와의 숭배자로 자처하는 주위 사람들이 자기만족과 탐닉에 빠진 것을 보고 좌절을 느낀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3 이 열두 예언자도 우리처럼 정치 불안, 사회적 혼란, 종교적 타락이 특징을 이룬 시대에 살았습니다. 그들도 “우리와 같은 감정을 가진” 사람들이었으므로 필시 그들 나름의 두려움과 어려움을 겪었을 것입니다. (야고보 5:17) 하지만 그들은 우리를 위해 훌륭한 본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소식이 “예언적 성경” 가운데 기록된 것은 “사물의 제도들의 끝에 이른” 우리의 유익을 위한 것이므로 우리는 그들의 소식을 우리 마음에 새겨야 할 것입니다.—로마 15:4; 16:26; 고린도 첫째 10:11.
열두 예언자의 시대적 배경
4. 우리는 열두 예언자가 살았던 순서와 관련하여 무엇에 유의하게 되며,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백성에게 경고하고 그 백성의 마음을 감동시키기 위해 먼저 누구를 일으키셨습니까?
4 우리는 성서에 나오는 호세아서부터 말라기서까지의 순서가 그 예언자들이 살았던 연대순이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렇지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예언자들인 요나, 요엘, 아모스, 호세아, 미가는 모두 기원전 9세기와 8세기에 살았습니다.a 그 시기에 남쪽 유다 왕국과 북쪽 이스라엘 왕국의 많은 왕들은 불충실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백성도 왕들의 나쁜 본을 따름으로 하느님의 진노를 샀습니다. 당시는 아시리아 사람들이 그리고 그다음에는 바빌론 사람들이 세계 패권을 차지하려고 힘쓰던 때였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여호와께서 이 두 세계 강국을 자신의 심판 집행자로 사용하실 것임을 거의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알다시피 하느님께서는 충실한 예언자들을 통해 이스라엘과 유다에게 끊임없이 경고하셨습니다.
5. 유다와 예루살렘에 멸망이 닥치게 되었을 때 어떤 예언자들이 여호와의 심판을 선포하였습니까?
5 여호와께서는 유다와 예루살렘을 심판할 때가 가까워지자 또 다른 강력한 대변자들을 일으키셨습니다. 그들은 누구였습니까? 예언자들인 스바냐, 나훔, 하박국, 오바댜였습니다. 그들은 모두 기원전 7세기에 활동하였습니다. 이 시기를 대표하는 가장 비극적인 사건은 기원전 607년에 예루살렘이 바빌론 사람들에게 멸망되고 유대인들이 유배된 일이었습니다. 이 일 역시 여호와께서 바로 그 예언자들, 그분이 자신의 대변자로 보내신 몇 사람의 예언을 통해 경고하신 대로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이 예언자들은 술 취하는 것이나 폭력을 자행하는 것과 같은 잘못들에 대해 백성에게 경고하려고 애썼지만 백성은 변화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하박국 1:2, 5-7; 2:15-17; 스바냐 1:12, 13.
6. 여호와께서는 유배 생활에서 돌아온 남은 자들의 마음을 어떻게 감동시키셨습니까?
6 하느님의 백성이 유배 생활에서 돌아온 후에는 탁월한 인도와 위로를 받을 필요가 있었으며 참 숭배에 계속 초점을 맞추라는 교훈을 받을 필요가 있었습니다. 또 다른 예언자들인 학개, 스가랴, 말라기가 그러한 필요를 충족시켰습니다. 이들은 기원전 6세기와 5세기에 활동하였습니다. 여호와의 주권을 확고부동하게 옹호한 이 열두 사람과 그들의 활동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면, 이 위험한 시대에 우리의 봉사의 직무에 적용할 중요한 교훈들을 분별하게 될 것입니다. 이제 이 예언자들이 활동한 시대 순서에 따라 그들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완고한 나라들을 구하려고 힘써 노력한 사람들
7, 8. 요나의 경험은 우리가 확신이 약해지는 것을 극복하는 데 어떻게 격려가 될 수 있습니까?
7 혹시 자신의 믿음이 약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면서, 확신이 흔들린 적이 있습니까? 그러하다면 요나의 경험을 살펴보는 것은 특히 유익합니다. 요나는 기원전 9세기에 살았습니다. 하느님께서 요나에게 강성해지고 있는 아시리아 제국의 수도인 니네베로 가라고 하셨다는 것을 아마 알고 있을 것입니다. 요나는 니네베 사람들의 악함을 질책해야 하였습니다. 그런데 요나는 자신이 가게 되어 있는 곳—예루살렘에서 북동쪽으로 약 900킬로미터 떨어진 곳—으로 간 것이 아니라 아마도 스페인에 있었을 항구로 가는 배를 탔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반대 방향으로 3500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으로 가려 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한 이유가 무엇이었겠습니까? 요나는 두려웠거나 일시적으로 믿음이 약해졌기 때문에, 혹은 니네베 사람들이 회개해 보았자 나중에는 이스라엘에 대해 침략 근성을 드러낼 수 있다는 생각으로 못마땅하게 여겨서 그렇게 한 것입니까? 성서는 구체적으로 알려 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잘못된 생각에 빠지지 않도록 경계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깨닫게 됩니다.
8 우리는 요나가 하느님의 징계를 받고서 어떤 반응을 나타냈는지도 압니다. 요나는 자기를 삼킨 “큰 물고기”의 뱃속에 있을 때 “구원은 여호와께 속해 있”다고 인정하였습니다. (요나 1:17; 2:1, 2, 9) 요나는 기적을 통해 구출되자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였습니다. 그런데 니네베 사람들이 요나의 소식에 유의하고 회개해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멸망시키는 일을 보류하시자 그는 크게 실망하였습니다. 자기 본위적인 태도를 나타낸 이 예언자를 이번에도 여호와께서는 사랑으로 시정해 주셨습니다. 요나의 과실에 초점을 맞추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하느님께서는 그를 순종적이고 충실한 종으로 귀하게 여기셨습니다.—누가 11:29.
9. 요엘이 예언한 소식으로부터 어떤 유익을 얻을 수 있습니까?
9 사람들이 성서에 근거한 우리의 소식을 두려움을 조장하는 낭설이라고 비난하기 때문에 낙담한 적이 있습니까? “여호와는 하느님이시다”를 의미하는 이름의 예언자 요엘의 동족도 그가 전한 소식을 그와 같이 여겼습니다. 그는 웃시야 왕이 통치한 때인 기원전 820년경에 유다에서 자신의 예언을 기록한 듯합니다. 요엘과 요나가 봉사한 시기는 겹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요엘은 메뚜기 떼가 물밀듯이 밀려와 그 땅을 황폐시킬 파괴적인 메뚜기 재앙에 대해 말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의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날이 매우 가까웠습니다. 하지만 요엘의 소식이 오로지 파멸에 관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충실한 사람들은 ‘피한 사람들이 될 것’임을 알려 주는 격려적인 소식도 있었습니다. (요엘 2:32) 회개한 사람들은 여호와의 축복과 용서를 받는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전하는 소식에도 그러한 내용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참으로 마음이 든든해집니다! 요엘은 하느님의 활동력인 성령이 “모든 부류의 육체에게” 부어질 것임을 예언하였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도 이 예언에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까? 그리고 요엘은 확실하고 유일한 구원의 길을 이렇게 강조하였습니다.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안전하게 피할 것이다.”—요엘 2:28, 32.
10. 여호와께서는 한낱 계절 노동자에 불과한 사람을 어떻게 사용하셨습니까?
10 대체적으로 반응이 없는 사람들에게 심각한 소식을 선포해야 하는 것이 때때로 매우 부담스럽게 생각된다면 우리는 아모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모스는 예언자의 아들도 아니었고 예언자들의 무리에 속해 있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한낱 양치기이자 계절 노동자였습니다. 그는 기원전 9세기 말엽, 유다 왕 웃시야 시대에 예언하였습니다. 아모스(“짐이 되는, 짐을 지는”이라는 의미)는 신분이 미천하였지만 유다와 이스라엘과 주변 국가들에게 막중한 소식을 전달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는 평범한 사람이라도 그처럼 중대한 일을 하게 하실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격려가 되지 않습니까?
11. 호세아는 하느님의 뜻을 어느 정도나 기꺼이 행하려고 하였습니까?
11 ‘나는 여호와의 뜻을 행하기 위해 어느 정도나 기꺼이 희생할 것인가?’ 하고 자문해 본 적이 있습니까? 이사야나 미가와 비슷한 시기에 살면서 약 60년 동안 예언자로 활동한 호세아를 생각해 보십시오. 여호와께서는 호세아에게 “음행의 아내”인 고멜과 결혼하라고 지시하셨습니다. (호세아 1:2) 나중에 고멜이 낳은 세 아이 가운데 호세아의 자녀는 하나뿐이었던 것 같습니다. 여호와께서 배우자의 부정이라는 모욕적인 일을 인내하라고 하신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여호와께서는 충성과 용서에 관한 교훈을 가르치고 계셨던 것입니다. 간음하는 여자가 남편을 배신하듯 북쪽 왕국은 하느님을 배신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백성에게 사랑을 나타내시고 그들이 회개하도록 도우려고 하셨습니다. 참으로 가슴 뭉클한 일입니다.
12. 미가의 본과 그의 예언이 미친 영향을 살펴보면 어떤 유익을 얻을 수 있습니까?
12 오늘날은 담대히 여호와를 전적으로 신뢰하는 태도를 발전시키기가 어려운 위급한 때가 아닙니까? 그럼에도 우리가 그러한 특성들을 나타낸다면 우리는 미가와 같은 사람일 것입니다. 호세아나 이사야와 같은 시대에 살았던 미가는 기원전 8세기에 유다의 왕들인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가 통치할 때에 유다 나라와 이스라엘 나라에 대한 소식을 선포하였습니다. 북쪽 이스라엘은 극심한 도덕적 타락과 우상 숭배로 더럽혀져 있었습니다. 그 나라는 기원전 740년에 사마리아가 아시리아 사람들에게 함락되면서 멸망당하였습니다. 유다는 여호와에 대한 순종과 불충실 사이에서 머뭇거렸습니다. 불길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지만, 미가는 자신이 전하는 하느님의 소식으로 인해 유다가 영적으로 타락하여 결국 재앙으로 돌진해 가는 것을 잠시나마 멈추는 것을 보면서 위안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일부 사람들이 우리가 전하는 구원의 소식에 좋은 반응을 나타내는 것을 보면 참으로 위안이 됩니다!
임박한 재난의 폭풍을 예고한 사람들
13, 14. (ㄱ) 스바냐의 본은 우리의 숭배에 어떻게 도움이 됩니까? (ㄴ) 스바냐의 활동은 어떤 영적 개혁이 이루어지는 데 기여하였습니까?
13 세계 강국들인 이집트와 아시리아가 쇠퇴함에 따라 바빌론이 더욱 두각을 나타내고 있었습니다. 바빌론의 세력 확장으로 곧 유다 나라는 크게 영향을 받을 것이었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하느님의 예언자들은 여호와의 숭배자들에게 경고를 발하고 교훈을 베풀었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도 그들처럼 경고의 소식을 전파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그러한 예언자들 몇 사람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4 우리가 여호와의 뜻을 행하려면 가족의 전통을 거슬러야 할 경우 스바냐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아마 히스기야 왕의 현손으로서 요시야 왕의 친척—따라서 유다의 왕족—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스바냐는 하느님께 순종하여 유다의 부패한 지도층을 질책하는 소식을 전하였습니다. 그의 이름은 “여호와께서 감추셨다” 혹은 “여호와께서 숨기셨다”를 의미합니다. 그는 오로지 여호와의 자비를 통해서만 사람들이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숨겨질”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였습니다. (스바냐 2:3) 기쁘게도 스바냐가 용기 있게 선포한 일은 결실을 맺었습니다. 젊은 요시야 왕이 영적 개혁에 솔선하여 우상을 제거하고 성전을 수리하고 순결한 숭배를 회복시켰습니다. (열왕기 둘째 22-23장) 스바냐와 그의 동료 예언자들(나훔과 예레미야)은 필시 왕을 보좌하고 왕에게 조언하는 중책을 맡았을 것입니다. 유감스럽게도 유대인들 대부분의 회개는 피상적인 것에 불과하였습니다. 요시야가 전사하자 그들은 우상 숭배로 돌아갔습니다. 오래지 않아 그들은 바빌론으로 사로잡혀 가게 되었습니다.
15. (ㄱ) 니네베가 나훔의 나쁜 소식을 들어 마땅하였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니네베에 일어난 일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
15 우리는 자신이 사람들의 주목을 받을 만큼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의 “동료 일꾼”이 되는 큰 특권을 누리고 있지만, 그들 대부분은 개인적으로 볼 때 아주 탁월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고린도 첫째 3:9) 그와 비슷하게 예언자 나훔도 아마 유다에 있었을 엘고스라는 작은 성읍 출신이라는 것 말고는 알려진 바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소식은 엄중하고 중요하였습니다. 왜 그러하였습니까? 나훔은 아시리아 제국의 수도인 니네베에 대해 예언하였습니다. 그곳 사람들은 요나가 전파할 때 좋은 반응을 나타냈지만 얼마 안 있어 이전 생활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고대 니네베의 유적에서 발견된 석조 조각품들은 그곳이 나훔의 말처럼 “피흘림의 도시”였음을 보여 줍니다. (나훔 3:1) 그 조각품들에는 전쟁 포로들을 얼마나 잔인하게 다루었는지가 나타나 있습니다. 나훔은 묘사적이고 생생한 표현으로 니네베가 철저히 멸망될 것임을 예언하였습니다. 그가 전한 소식은 성취되었으며 오늘날 우리가 전하는 소식도 그처럼 성취될 것입니다.
16, 17. 끝에 대한 우리의 기대가 아직 온전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면 하박국의 예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
16 여러 세기에 걸쳐 일부 성서 독자들은 여호와의 날에 대해 품었던 기대가 이루어지지 않는 경험을 하였습니다. 하느님의 심판이 늦어지는 것 같아서 낙심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는 어떠합니까? 하박국은 이러한 질문을 통해 공감할 만한 염려를 나타냈습니다. “오 여호와여, 언제까지 제가 도와 달라고 부르짖어야 하며, 당신은 듣지 않으시렵니까? ··· 어찌하여 제 앞에 탈취와 폭력이 있[습니까]?”—하박국 1:2, 3.
17 하박국은 유다의 역사에서 혼란스러운 시기에 예언하는 일을 하였는데, 그때는 선한 왕 요시야의 통치가 끝난 후였고 기원전 607년에 예루살렘이 멸망되기 전이었습니다. 불공정과 폭력이 만연해 있었습니다. 하박국은 유다가 이집트와 동맹을 맺어도 피에 굶주린 바빌론 사람들로부터 보호받지는 못할 것이라고 경고하였습니다. 그는 생동감 넘치고 호소력 있는 문체로 기술하면서, “의로운 사람, 그는 자기의 충실함으로 계속 살 것”이라는 위로가 되는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하박국 2:4)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 있는 세 권의 책에 이 말씀을 인용한 것을 보면 이 말씀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것임이 분명합니다. (로마 1:17; 갈라디아 3:11; 히브리 10:38) 더 나아가 여호와께서는 하박국을 통해 우리에게 이처럼 보증하십니다. “그 환상은 지정된 때에 대한 것이며, ··· 늦어지지 않을 것이다.”—하박국 2:3.
18. 여호와께서 오바댜가 에돔에 대해 예언하게 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18 예언자 오바댜는 히브리어 성경에서 가장 짧은 책—불과 스물한 개 구절로 된 책—을 기록하였다는 면에서 독특합니다. 오바댜에 대해서는 그가 에돔에 대해 예언하였다는 것 외에는 알려져 있는 점이 없습니다. 에돔 사람들은 야곱의 형제의 후손이었으며, 따라서 이스라엘의 ‘형제’였습니다. (신명 23:7) 그런데도 에돔이 하느님의 백성을 대한 방법은 전혀 형제답지 않았습니다. 기원전 607년에 오바댜가 자신의 책을 기록할 무렵, 에돔 사람들은 길을 막고서, 도망하는 유대인들을 적들인 바빌론 사람들에게 넘겨주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에돔이 철저히 황폐될 것임을 예언하셨으며, 그 예언은 성취되었습니다. 나훔과 마찬가지로 오바댜에 대해서도 우리가 아는 바는 거의 없지만, 하느님께서 대단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자신의 사자로 사용하실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격려적입니다!—고린도 첫째 1:26-29.
마음을 감동시키고 위로하고 경고한 사람들
19. 학개는 어떻게 하느님의 백성에게 힘을 북돋워 주었습니까?
19 학개는 기원전 537년에 충실한 남은 자들이 바빌론의 유배 생활에서 돌아온 후에 활동한 세 명의 예언자 가운데 첫 번째 사람입니다. 학개는 맨 먼저 돌아온 무리 가운데 속해 있었을 것입니다. 학개는 총독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함께 그리고 예언자 스가랴와 협력하여, 유대인들이 외부의 반대와 물질주의로 인한 그들 자신의 무관심을 극복하도록 마음을 감동시키려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돌아온 목적대로 여호와의 성전을 재건하는 일을 완수해야 하였습니다. 기원전 520년에 주어진 학개의 직선적인 네 가지 소식은 여호와의 이름과 주권을 강조하였습니다. 그 책을 읽어 보면 “만군의 여호와”라는 표현이 열네 번 나오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학개의 강력한 소식은 백성이 성전 건축을 다시 시작하도록 의욕을 북돋워 주었습니다. 우리도 여호와께서 주권자인 통치자로서 무한한 능력을 갖고 계시며 영적 피조물들로 이루어진 거대한 군대를 지휘하신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힘이 솟지 않습니까?—이사야 1:24; 예레미야 32:17, 18.
20. 스가랴는 널리 퍼져 있던 어떤 태도와 싸웠습니까?
20 때때로 우리는 하느님을 섬기는 일부 사람들이 열심을 나타내지 않는 것을 보고 실망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언자 스가랴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스가랴도 동시대 사람이었던 학개처럼 동료 숭배자들이 공사를 계속해서 성전을 완공시키도록 독려해야 하는 도전에 직면하였습니다. 스가랴는 백성이 그 중대한 일을 해낼 수 있도록 강화시키기 위해 힘써 노력하였습니다. 그는 주위 사람들의 자기 탐닉적인 태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강한 믿음을 나타내고 그에 따라 행동하도록 의욕을 북돋우기 위해 애썼습니다. 그의 활동은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스가랴는 그리스도에 관해서도 많은 예언을 기록하였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는 그분의 은혜를 구하는 사람들을 잊지 않으신다는 소식으로부터 우리 역시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스가랴 1:3.
메시아를 기다림
21. (ㄱ) 말라기의 예언이 절실히 필요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말라기는 히브리어 성경을 끝맺으면서 무엇을 보증합니까?
21 열두 예언자 가운데 마지막 사람인 말라기는 “내 사자”라는 자신의 이름의 의미에 걸맞은 삶을 살았습니다. 기원전 5세기 중반에 살았던 이 예언자에 대해 알려져 있는 바는 별로 없습니다. 하지만 그의 예언을 보면 그가 두려움을 모르는 대변자로서 하느님의 백성의 죄와 위선을 책망한 사람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말라기가 묘사한 상태는 말라기와 같은 시대 사람이었을 느헤미야가 설명한 상태와 매우 비슷합니다. 말라기의 소식이 절실히 필요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예언자 스가랴와 학개가 수십 년 전에 북돋워 주었던 열심과 열정이 사그라져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영적으로 매우 개탄할 만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말라기는 거만하고 위선적인 제사장들을 담대하게 고발하였고 백성이 나뉜 마음으로 숭배하고 희생을 바치는 것을 비난하였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말씀이 미래에 대한 밝은 전망을 보증하듯이, 말라기도 메시아의 선구자인 침례자 요한이 올 것을, 그리고 그 후에는 그리스도가 올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말라기의 소식은 히브리어 성경을 격려적인 분위기로 끝맺으면서 하느님의 이름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틀림없이 의로운 해가 빛나게’ 될 것을 약속합니다.—말라기 4:2, 5, 6.
22. 열두 예언자의 특성과 소식을 살펴보고 당신은 어떤 느낌이 들었습니까?
22 이처럼 히브리어 성경의 마지막 열두 권의 책을 기록한 사람들은 믿음과 확신이 있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히브리 11:32; 12:1) 그들의 본과 소식은 “여호와의 날”을 간절히 고대하는 우리에게 값진 교훈이 될 수 있습니다. (베드로 둘째 3:10) 이제 그들의 예언의 소식이 우리의 영원한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a 이 내용을 20, 21면에 나오는 연대표와 비교해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그 연대표를 보면 미가와 호세아는 이사야가 예루살렘에서 하느님의 예언자로 있을 때 활동하였음을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