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과 봉사 집회 교재」 참조 자료
© 2025 Watch Tower Bible and Tract Society of Pennsylvania
1월 5-11일
성경에 담긴 보물 | 이사야 17-20장
“우리를 약탈하는 자들의 몫”
「예-1」 198면 20항
나라들에 대한 여호와의 뜻
20 그 결과 어떤 일이 있을 것입니까? 이사야는 이렇게 말합니다. “저녁때에, 보라! 갑작스런 공포가 있다. 아침이 되기 전에—그것이 더 이상 없다. 이것이 우리를 약탈하는 자들의 몫이요, 우리를 강탈하는 자들에게 속한 분깃이다.” (이사야 17:14) 많은 사람이 여호와의 백성에게서 강탈하며 그들을 거칠고 무례하게 대하고 있습니다. 참 그리스도인들은 널리 인정받는 세상 종교들의 일부가 아니며 또 그렇게 되기를 원하지도 않기 때문에, 편견을 가진 비평가들이나 광신적인 반대자들이 쉽게 노리는 표적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백성은 자신들에게 닥친 환난이 끝나게 될 “아침”이 신속히 다가오고 있음을 확신하고 있습니다.—데살로니가 둘째 1:6-9; 베드로 첫째 5:6-11.
1월 19-25일
성경에 담긴 보물 | 이사야 24-27장
“이분이 우리 하느님이시다!”
「까」 15면 21항
“보라! 이분이 우리 하느님이시다!”
21 어린아이가 들뜬 마음으로 자기 아버지를 가리키면서 “우리 아빠야!” 하고 친구들에게 자랑스럽게 소개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까? 하느님을 섬기는 사람들도 여호와에 대해 그처럼 자부심을 가질 만한 이유가 많습니다. 성경에서는 충실한 사람들이 “보라! 이분이 우리 하느님이시다!” 하고 외치게 될 때가 올 것임을 예언합니다. (이사야 25:8, 9) 여호와의 특성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될수록, 우리에게 최고의 아버지가 계시다는 확신이 더욱 강해질 것입니다.
1월 26일–2월 1일
성경에 담긴 보물 | 이사야 28-29장
말로만이 아니라 마음으로 여호와를 공경하십시오
「예-1」 299면 23항
이사야가 여호와의 ‘이상한 일’을 예언하다
23 유다의 종교 지도자들은 자기들이 영적으로 슬기롭다고 자처하지만, 여호와를 버린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오히려 옳고 그른 것에 관한 자기들의 왜곡된 견해를 가르치면서, 자기들의 불충실하고 부도덕한 활동을 정당화하고 백성을 하느님의 은혜를 받지 못하는 길로 인도한 것을 정당화합니다. 여호와께서는 그들의 위선 때문에 “놀라운 일”—그분의 ‘이상한 일’—을 통해서 그들에게 책임을 물으실 것입니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백성이 입으로는 가까이 오며, 입술로는 나에게 영광을 돌리지만,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고, 나에 대한 그들의 두려움은 사람의 계명이 되어 가르쳐지고 있으니, 그러므로 여기 내가 있다. 내가 놀라운 방법으로, 놀라운 일로 다시 이 백성에게 놀랍게 행하리니, 그 지혜로운 사람들의 지혜가 소멸되겠고, 그 슬기로운 사람들의 이해도 숨어 버릴 것이다.” (이사야 29:13, 14) 여호와께서 일들을 조종하여 유다의 배도한 종교 제도 전체가 바빌로니아 세계 강국에 의해 제거되게 하실 때, 유다가 스스로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지혜와 이해는 소멸될 것입니다. 1세기에 유대인의 자칭 지혜로운 지도자들이 그 나라로 하여금 길을 잃게 하였을 때에도 똑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우리 시대에 그리스도교국에 그와 유사한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마태 15:8, 9; 로마 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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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 “아리엘” 1항; 「통」 “아리엘” 3번
아리엘
(Ariel) [‘하느님의 제단 화덕’ 혹은 ‘하느님의 사자(獅子)’]
3. 이사야 29:1, 2, 7에서 예루살렘을 부르는 데 사용된 수수께끼 같은 이름. 예루살렘은 하느님의 성전이 있던 곳이었으며, 그 성전 경내에는 희생 제단이 있었다. 그러한 이유로 그 도시는 사실상 하느님의 제단 화덕이었다. 또한 그곳은 여호와께 드리는 순결한 숭배의 중심지가 되어야 하였다. 그런데 이사야 29:1-4의 소식에는 불길한 내용이 담겨 있으며 기원전 607년에 바빌론 사람들의 손에 의해 예루살렘에 멸망이 닥칠 것임을 예고하고 있는데, 그때에 예루살렘은 전혀 다른 의미에서 “제단 화덕”이 될 것이었다. 즉 쏟아진 피가 흐르고, 불에 타고, 불 같은 멸망으로 인한 희생자들의 시체로 가득 찬 도시가 될 것이었다. 그러한 재앙이 일어나는 근본적인 원인은 9절에서 16절에 나와 있다. 하지만 이사야 29:7, 8에서는 예루살렘을 그처럼 처참하게 멸망시키는 나라들도 자기들의 궁극적인 의도 즉 목표는 달성하지 못할 것이라고 알려 준다.
2월 2-8일
성경에 담긴 보물 | 이사야 30-32장
여호와의 날개 아래로 도피하십시오
「파01」 11/15 16면 7항
여호와는 우리의 도피처이시다
7 여호와를 도피처로 삼는 우리는 다음과 같은 말로부터 위로를 얻습니다. “네게 가까이 오는 것을 그분이 그 날개 끝으로 막아 주시리니, 너는 그 날개 아래로 도피할 것이며, 그분의 진실함이 큰 방패와 보루가 되리라.” (시 91:4) 하느님은 우리를 보호해 주십니다. 마치 어미 새가 새끼 위에 머물러 있으면서 새끼를 보호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이사야 31:5) ‘그분은 우리에게 가까이 오는 것을 그 날개 끝으로 막아 주’십니다. “날개 끝”이란, 넓은 의미로 새의 날개를 가리킵니다. 어미 새는 날개로 새끼를 덮어서, 포식자로부터 새끼를 보호합니다. 이제 막 날갯짓을 시작하는 새끼 새처럼 우리는 여호와의 상징적인 날개 끝 아래 안전하게 거합니다. 우리가 그분의 참 그리스도인 조직 안으로 도피하였기 때문입니다.—룻 2:12; 시 5: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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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 “빵” 16항
빵
비유적 용법 성서에서 사용하는 “빵”이라는 말은 여러 가지 비유적인 의미로 적용된다. 예를 들어, 여호수아와 갈렙은 모여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가나안 주민들이 “우리의 밥”[문자적으로는 ‘빵’]이라고 말하였는데, 이것은 그들이 쉽사리 정복될 수 있고 그러한 경험은 이스라엘을 지탱시켜 주고 강화시킬 것이라는 의미인 것 같다. (민 14:9) 시편 80:5에는 하느님의 은혜를 잃는 일과 관련된 것일 수 있는 큰 슬픔이 나타나 있는 것 같은데, 그 성구에서는 이스라엘의 목자 여호와에 관해 “당신은 그들이 눈물의 빵을 먹게 하”신다고 말한다. 여호와께서는 또한 자신의 백성에게 “고난의 형태로 된 빵을 주시고 압제의 형태로 된 물”을 주시는 분으로 묘사되어 있는데, 이것은 그들이 포위 공격을 받을 때 경험하게 될 상태, 그리고 그들에게 빵과 물만큼이나 흔한 것이 될 상태를 언급하는 것으로 보인다.—사 30:20.
2월 9-15일
성경에 담긴 보물 | 이사야 33-35장
“그분은 너의 시대에 안정을 주시는 분이다”
「예-1」 352-355면 21-22항
“어떤 거주자도 ‘내가 병들었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21 하지만 이사야의 예언은 현대에도 성취됩니다. 오늘날의 여호와의 백성도 영적인 병 고침을 받고 있습니다. 그들은 영혼불멸이나 삼위일체, 지옥불과 같은 거짓 가르침에서 해방되었습니다. 그들은 부도덕한 행위에서 벗어나게 해 주고 올바른 결정을 내리도록 도와 주는, 도덕과 관련된 인도를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희생 덕분에, 하느님 앞에서 깨끗한 신분을 가지고 깨끗한 양심을 누리고 있습니다. (골로새 1:13, 14; 베드로 첫째 2:24; 요한 첫째 4:10) 이 영적인 병 고침은 신체적으로도 유익을 줍니다. 예를 들면, 부도덕한 성관계나 담배의 사용을 피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성매개 질환이나 특정 형태의 암으로부터 보호를 받습니다.—고린도 첫째 6:18; 고린도 둘째 7:1.
22 더욱이, 이사야 33:24의 말씀은 아마겟돈 후 하느님의 신세계에서 한층 더 웅장하게 성취될 것입니다. 메시아 왕국의 통치 아래서 사람들은 영적인 병 고침과 더불어 신체적인 병 고침도 대규모로 경험할 것입니다. (계시 21:3, 4) 사탄의 사물의 제도가 멸망되고 나서 얼마 안 있어, 예수께서 지상에 계실 때 행하셨던 것과 같은 기적들이 틀림없이 전세계적인 규모로 행해질 것입니다. 눈먼 사람들이 보게 될 것이며, 귀먹은 사람들이 듣게 될 것이고, 저는 사람들이 걷게 될 것입니다! (이사야 35:5, 6) 그렇게 되면 큰 환난 생존자들은 모두 이 땅을 낙원과 같은 상태로 회복시키는 웅대한 일에 참여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2월 16-22일
성경에 담긴 보물 | 이사야 36-37장
“그 말을 듣고 두려워하지 마라”
「예-1」 386면 10항
한 왕이 믿음으로 상을 받다
10 이어서 랍사게는 유대인들에게 그들이 군사적인 면에서도 형편 없이 열세임을 상기시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오만하게 도전을 합니다. “내가 그대에게 말 이천 마리를 줄 터이니, 그대가 그 말 탈 사람들을 내놓을 수 있나 봅시다.” (이사야 36:8) 하지만 사실, 유다에 훈련받은 기병의 수가 많든 적든 그것이 중요한 문제가 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유다의 구원은 군사적 힘의 우위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잠언 21:31은 그 점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전투의 날을 위하여 말을 준비하지만, 구원은 여호와께 속해 있다.” 다음으로, 랍사게는 여호와의 축복이 아시리아 사람들과 함께 있지 유대인들과 함께 있지 않다고 주장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아시리아 사람들이 유다의 영토 내로 그렇게까지 깊숙이 침투해 들어오지 못했을 것이라고 그는 주장합니다.—이사야 36:9, 10.
「예-1」 388면 13-14항
한 왕이 믿음으로 상을 받다
13 랍사게는 그의 주장의 무기고에서 또 하나의 무기가 되는 말을 꺼냅니다. 그는 유대인들에게 히스기야가 “여호와께서 우리를 구출하실 것이다”라고 말해도 그 말을 믿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랍사게는 유대인들에게, 사마리아의 신들이 열 지파가 아시리아 사람들에게 정복되지 않도록 막아 주지 못하였다는 사실을 상기시킵니다. 그리고 아시리아가 정복한 다른 나라들의 신들은 어떠하였습니까? 그는 다그쳐 묻습니다. “하맛과 아르밧의 신들이 어디 있느냐? 스발와임의 신들이 어디 있느냐? 그들이 사마리아를 내 손에서 구출하였느냐?”—이사야 36:18-20.
14 물론, 거짓 신들의 숭배자인 랍사게는 배교한 사마리아와 히스기야의 통치 아래 있는 예루살렘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사마리아의 거짓 신들에게는 열 지파 왕국을 구원할 능력이 없었습니다. (열왕 둘째 17:7, 17, 18) 반면에, 히스기야의 통치 아래 있는 예루살렘은 거짓 신들을 배척하고 여호와를 섬기는 길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유다의 세 대표자들은 그 점을 랍사게에게 설명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잠자코 있고 그에게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에게 응답해서는 안 된다’라는 왕의 명령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사야 36:21) 엘리아김과 셉나와 요아는 히스기야에게로 돌아와 랍사게가 한 말을 공식적으로 보고합니다.—이사야 3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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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 “재갈, 굴레” 5항
재갈, 굴레
여호와께서는 아시리아의 산헤립(센나케리브) 왕에게 “내가 반드시 네 코에 내 갈고리를 꿰고 네 입술 사이에 내 재갈을 물릴 것이다. 내가 정녕 너를 네가 왔던 그 길로 돌아가게 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왕둘 19:28; 사 37:29) 산헤립은 자의가 아니라 여호와의 손에 의해서 예루살렘에 대한 포위 공격을 그만두고 니네베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으며, 후에 그곳에서 자기 아들들에게 암살되었다. (왕둘 19:32-37; 사 37:33-38) 여호와께서 적대적인 뭇 백성들의 턱에 재갈을 물리시는 것은, 재갈로 동물을 제어하듯 그 백성들을 온전히 제어하시는 것을 가리킨다.—사 30:28.
2월 23일–3월 1일
성경에 담긴 보물 | 이사야 38-40장
“그분은 목자처럼 자신의 양 떼를 돌보실 것이다”
「까」 70면 7항
보호 능력—“하느님은 우리의 도피처이시다”
7 여호와께서는 자신을 목자에 비하심으로 우리를 보호해 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는 것을 확신시켜 주십니다. (에스겔 34:11-16) 이 책 2장에서 설명한 것처럼, 이사야 40:11에서 여호와에 대해 어떻게 말하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그 성구는 이러합니다. “그분은 목자처럼 자신의 양 떼를 돌보실 것이다. 어린양들을 팔로 모으시고 품에 안으실 것이다.” 이 성구에 나오는 “품”이란 목자의 윗옷에 있는 접힌 부분을 가리킵니다. 그러면 어린양이 어떻게 목자의 “품”에 있게 됩니까? 어린양이 목자에게 다가왔을지 모르며, 심지어 목자의 다리를 살며시 건드렸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목자는 몸을 굽혀 어린양을 들어 올린 다음 안전한 자기 품에 부드럽게 안아 주었습니다. 우리를 기꺼이 지켜 주고 보호해 주시려는 우리의 위대한 목자의 마음을 참으로 아름답게 묘사하는 비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