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과 봉사 집회 교재」 참조 자료
© 2024 Watch Tower Bible and Tract Society of Pennsylvania
5월 6-12일
영적 보물 찾기
「통」-1 1056면
산
안정성, 영속성, 높음 산의 특성 가운데는 안정성과 영속성이 있다. (사 54:10; 합 3:6. 시 46:2 비교) 따라서 시편 필자는 여호와의 의가 “하느님의 산들”과 같다고 말하였는데(시 36:6), 이 말은 여호와의 의가 확고부동하다는 의미였을 것이다. 또는 산이 높기 때문에, 하느님의 의가 사람의 의보다 훨씬 우월하다는 점을 언급하는 것일 수 있다. (사 55:8, 9 비교)
5월 13-19일
성경에 담긴 보물 | 시편 38-39편
지나친 죄책감이라는 무거운 짐을 벗어 버리십시오
「파02」 11/15 20면 1-2항
어떻게 여호와 앞에서 우리의 날을 가치 있는 것이 되게 할 수 있는가?
우리의 생애는 아주 짧고 순식간에 지나가 버리는 것 같습니다. 시편 필자 다윗은 인생이 짧다는 사실을 곰곰이 생각해 보고는 마음에서 우러나와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오 여호와여, 내게 나의 끝을 알려 주시고, 내 날의 분량을—그것이 얼마나 되는지 알려 주십시오. 그러면 내가 얼마나 덧없는 존재인지를 내가 알게 될 것입니다. 보십시오! 당신이 나의 날을 몇 날 안 되게 하셨으니, 나의 수명은 당신 앞에서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다윗의 관심사는 말과 행동을 통해 하느님을 기쁘시게 하는 방식으로 사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하느님께 의존해 있음을 이러한 말로 토로하였습니다. “나의 기대는 당신을 향하여 있습니다.” (시 39:4, 5, 7) 여호와께서는 다윗의 말을 들어 주셨습니다. 실로 그분은 다윗의 행동을 평가하셨고, 그에 따라 다윗에게 상을 주셨습니다.
하루를 순간순간 바쁘게 보내다 보면, 여러 가지 활동으로 가득 차서 숨가쁘게 돌아가는 생활에 휘말리게 되기가 쉽습니다. 그렇게 살다 보면 염려가 생길 수 있는데, 특히 할 일이나 경험해 보아야 할 것은 너무나 많은데 그것을 할 시간은 턱없이 부족할 때 그럴 수 있습니다. 우리의 관심사는, 하느님의 승인을 얻으려는 목표로 삶을 살려고 했던 다윗의 관심사와 동일합니까? 우리는 영적 우선순위를 정해 놓고 하느님의 명령에 순종하고 우리의 시간을 지혜롭게 사용함으로, 그분 앞에서 우리의 날을 가치 있는 것이 되게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점들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고려해 보도록 합시다.
「파21.10」 15면 3항
여호와와의 관계를 회복하려면
여호와께 자주 이야기하십시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당신이 사라지지 않는 죄책감 때문에 그분께 기도하기를 어려워할 수 있음을 이해하십니다. (로마 8:26) 그렇다 해도 “꾸준히 기도”하면서 당신이 얼마나 여호와와 좋은 관계를 누리고 싶어 하는지 말씀드리십시오. (로마 12:12) 안드레이는 이렇게 말합니다. “죄책감과 수치심이 얼마나 컸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매번 기도하고 나면 그런 감정이 누그러졌어요. 마음이 더 평온해졌습니다.” 기도할 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시편 51편과 65편에 나오는 회개한 다윗왕의 기도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5월 20-26일
영적 보물 찾기
「통」-2 265면
여호와
성서 기록 전체는 여호와의 주권 입증을 중심으로 한 것이며, 이 사실은 여호와 하느님의 주된 목적을 분명히 드러내 주는데, 그 목적은 그분 자신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거룩하게 하려면 하느님의 이름에 쌓인 온갖 모욕을 깨끗이 씻어 내는 일이 필요하다. 그뿐만 아니라 하늘과 땅에 있는 지성 있는 피조물이 모두 그 이름을 신성한 것으로 존중히 여기게 되어야 한다. 그래서 그들이 여호와의 주권적 지위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그것도 그분에 대한 사랑 때문에 기꺼이 그렇게 하고 그분을 섬기고 싶어 하며 그분의 신성한 뜻을 행하기를 기뻐하는 것이 거룩하게 하는 것의 의미이다. 시편 40:5-10에서 다윗이 여호와께 드린 기도는 그런 태도와 여호와의 이름을 참으로 거룩하게 하는 일을 잘 표현한다. (사도 바울이 히브리 10:5-10에서 이 시의 일부를 그리스도 예수에게 적용한 것에 유의)
5월 27일–6월 2일
성경에 담긴 보물 | 시편 42-44편
하느님의 교육을 온전히 활용하십시오
「파06」 6/1 9면 4항
시편 제2권의 주요점
42:4, 5, 11; 43:3-5.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어떤 이유 때문에 일시적으로 그리스도인 회중과 떨어져 지내게 될 경우, 전에 그러한 교제를 나누면서 누렸던 기쁨을 기억한다면 견딜힘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처음에는 이러한 기억 때문에 외로움이 느껴지면서 더욱 고통스러울지 모르지만, 이러한 기억은 또한 하느님께서 우리의 도피처이시며 우리가 구제받기 위해 그분을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을 생각나게 해 줄 것입니다.
영적 보물 찾기
「통」-2 708면
자칼
성경에서 자칼은 비유적 배경에서 여러 번 나온다. 욥은 자신의 한탄스러운 처지를 묘사하면서 자기가 “자칼의 형제”가 되었다고 외쳤다. (욥 30:29) 하느님의 백성의 치욕스러운 패배와 관련하여, 시편 필자는 아마도 자칼이 죽은 자들의 시체를 먹기(시 68:23 비교) 위해 모이는 전쟁터를 가리켜 말하면서 “당신은 우리를 자칼의 처소에서 짓밟으셨[습니다]”라고 한탄하였다. (시 44:19)
6월 3-9일
성경에 담긴 보물 | 시편 45-47편
왕의 결혼에 관한 노래
「통」-2 757면
전쟁
이 전쟁이 종결되면 땅은 천 년 동안 평화를 누리게 될 것이다. “[여호와께서] 땅 끝까지 전쟁을 그치게 하시니, 활을 꺾고 창을 부러뜨리시며 수레를 불에 사르[신다]”고 선언하는 시편은, 하느님께서 적의 전쟁 도구를 부수심으로 이스라엘 땅에 평화를 가져오셨을 때 처음으로 성취된 바 있었다. 그리스도께서 하르-마게돈에서 전쟁 도발자들을 쳐부수신 후에, 이 지구에는 땅 끝까지 온전하고 만족스러운 평화가 있게 될 것이다. (시 46:8-10)
6월 10-16일
영적 보물 찾기
「통」-1 914면
부(富)
이스라엘 사람들은 번영하는 민족으로서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즐길 수 있었으며(왕첫 4:20; 전 5:18, 19), 그들의 부는 가난 문제로부터 그들을 보호해 주는 역할을 하였다. (잠 10:15; 전 7:12) 그러나 이스라엘인들이 수고하여 번영을 누리는 것이 여호와의 목적과 일치한 것이기는 했지만(잠 6:6-11; 20:13; 24:33, 34 비교), 그분은 또한 그들이 자기들의 부의 근원인 하느님을 잊고 그 부를 신뢰하기 시작할 위험이 있음을 그들에게 경고하기도 하셨다. (신 8:7-17; 시 49:6-9; 잠 11:4; 18:10, 11; 렘 9:23, 24) 그들은 부란 일시적인 것에 불과하고(잠 23:4, 5), 사람을 죽음에서 구출할 대속물로 하느님께 바쳐질 수도 없으며(시 49:6, 7), 죽은 자들에게는 아무런 가치도 없다(시 49:16, 17; 전 5:15)는 것을 일깨움 받았다. 그들은 부를 지나치게 중시하게 되면 사취 행위를 하게 되고 여호와의 승인을 잃게 된다는 교훈을 받았다. (잠 28:20. 렘 5:26-28; 17:9-11 비교) 또한 ‘그들의 가치 있는 것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는 권고를 받기도 하였다.—잠 3:9.
6월 17-23일
영적 보물 찾기
「통」-1 470면
도엑
사울 왕의 목자들의 우두머리로 섬겼으며 감독하는 책임 있는 지위에 있던 에돔 사람. (삼첫 21:7; 22:9) 도엑은 개종자였던 것 같다. 도엑은 아마도 서원이나 어떤 부정이나 나병으로 의심되는 병으로 인해 놉에서 “여호와 앞에 붙들려” 있었기 때문에, 대제사장 아히멜렉이 다윗에게 진설빵과 골리앗의 칼을 주는 것을 목격하였다. 후에 사울이 자기 종들에게 그들이 자기를 대적하여 모반을 꾀하고 있다는 의견을 말했을 때, 도엑은 자기가 놉에서 본 것을 털어놓았다. 사울은 대제사장과 놉의 다른 제사장들을 불러 모으고 아히멜렉을 심문한 뒤, 달리는 자들에게 그 제사장들을 죽이라고 명령하였다. 이들이 그렇게 하기를 거절하자, 도엑이 사울의 명령에 따라 주저하지 않고 도합 85명의 제사장들을 죽였다. 이 악한 행동을 한 뒤에, 도엑은 놉을 멸망에 바쳤고 노소를 가리지 않고 그 주민들을 모두 살육했으며 가축 떼도 살육하였다.—삼첫 22:6-20.
시편 52편의 머리글에서 알 수 있듯이, 다윗은 도엑에 관하여 이렇게 썼다. “너의 혀가 재난을 꾸미니, 면도칼처럼 날카롭고 기만적으로 행하는구나. 네가 선한 것보다 악한 것을, 의를 말함보다 거짓을 더 사랑하는구나. 너 기만적인 혀야, 네가 모든 삼키는 말을 사랑하는구나.”—시 5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