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과 봉사 집회 교재」 참조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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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8일
성경에 담긴 보물 | 시편 79-81편
여호와의 영광스러운 이름에 사랑을 나타내십시오
「웹성해」 기사 3 4-5항
로마서 10:13—“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
성경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다”라는 표현은 단지 하느님의 이름을 알고 숭배에서 사용하는 것보다 더 많은 의미가 있습니다. (시편 116:12-14) 그 말에는 하느님을 신뢰하고 그분께 도움을 구한다는 의미가 포함됩니다.—시편 20:7; 99:6.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의 이름을 소중하게 여기셨습니다. 예수께서 알려 주신 모범 기도는 다음과 같은 말로 시작됩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해지게 하십시오.” (마태복음 6:9) 또한 예수께서는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여호와라는 이름을 가지신 분을 알아 가고 따르고 사랑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 주셨습니다.—요한복음 17:3, 6,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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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2 485면
요셉
요셉이라는 이름이 탁월해지다 야곱의 아들들 가운데서 요셉이 차지한 탁월한 위치를 생각해 볼 때, 그의 이름이 때때로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를 가리키는 데(시 80:1), 또는 북쪽 왕국에 속하게 된 지파들을 가리키는 데 사용된 것은 매우 적절한 일이었다. (시 78:67; 암 5:6, 15; 6:6) 그의 이름은 성서 예언에도 등장한다. 에스겔이 본 예언적 환상에서, 요셉의 상속지는 두 몫이고(겔 47:13), “여호와께서 친히 거기에 계시다”라는 이름의 도시의 문들 가운데 하나에도 요셉이라는 이름이 붙여져 있으며(겔 48:32, 35), 여호와의 백성을 재연합시키는 일과 관련하여 요셉은 그 나라의 한 부분의 수장으로, 유다는 다른 한 부분의 수장으로 언급되어 있다. (겔 37:15-26) 오바댜의 예언은 “요셉의 집”이 “에서의 집”을 멸망시키는 일에 참여하게 될 것임을 지적했으며(옵 18), 스가랴의 예언은 여호와께서 “요셉 집”을 구원하실 것임을 지적했다. (슥 10:6) 영적 이스라엘의 지파들 가운데 하나로 요셉의 이름이 에브라임 대신에 나온다.—계 7:8.
계시록 7:8에 요셉의 이름이 열거되어 있다는 사실은 야곱이 임종 시에 한 예언이 영적 이스라엘에게도 적용될 것임을 시사한다. 따라서 야곱의 강력한 분이신 여호와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를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을 훌륭한 목자로 마련해 주신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요 10:11-16) 그리스도 예수는 또한 영적 이스라엘 사람들로 구성된 하느님의 성전이 놓이는 기초 모퉁잇돌이시다. (엡 2:20-22; 베첫 2:4-6) 그리고 목자이자 모퉁잇돌이신 이분은 전능하신 하느님과 함께 계신다.—요 1:1-3; 행 7:56; 히 10:12. 창 49:24, 25 비교.
9월 9-15일
성경에 담긴 보물 | 시편 82-84편
자신이 받은 특권을 소중히 여기십시오
「파배16.6」 8면 2-3항
하늘의 새에게서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
제비는 예루살렘 주민들에게 친숙한 새였습니다. 제비는 건물의 처마 밑에 둥지를 트는 습성이 있는데, 솔로몬의 성전에서도 그런 둥지를 볼 수 있었습니다. 매년 보금자리를 찾는 제비들에게 성전 구역은 방해 없이 새끼를 기를 수 있는 안전한 장소였을 것입니다.
고라의 자손인 시편 84편의 필자는 6개월마다 한 번씩 일주일간 성전에서 봉사했습니다. 그는 성전 구역에 있는 제비 둥지를 보고 자신도 제비처럼 여호와의 집에 계속 머물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그는 자신의 마음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오 만군의 여호와여, 당신의 웅장한 장막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내 영혼이 여호와의 뜰을 애타게 그리워하다가 여위어 갑니다. ··· 새도 그곳에 집을 얻고 제비도 당신의 웅장한 제단 곁에 보금자리를 얻어 새끼들을 돌봅니다. 오 만군의 여호와여, 나의 왕, 나의 하느님이여!” (시편 84:1-3) 청소년을 포함한 우리 모두도 정기적으로 하느님의 백성으로 이루어진 회중에 모이는 것을 그처럼 좋아하며 중요하게 여깁니까?—시편 26:8, 12.
「파08」 7/15 30면 3-4항
합리적인 기대를 갖고 기쁨을 유지하십시오
나이가 들거나 건강이 약해지게 되면 여호와께 드리는 봉사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에 제약이 생길지 모릅니다. 어린 자녀를 둔 부모라면, 자녀를 돌보는 데 많은 시간과 힘을 쏟느라 개인 연구나 그리스도인 집회에서 거의 유익을 얻지 못한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처럼 자신의 한계에만 너무 몰두하다 보면, 자신이 여전히 할 수 있는 일을 보지 못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수천 년 전에 한 레위인은 자신이 결코 이룰 수 없는 일에 대한 열망을 표현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해마다 2주씩 성전에서 봉사하는 특권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일평생 제단 가까이에 거하며 봉사하고 싶다는 칭찬할 만한 열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시 84:1-3) 이 충실한 사람은 어떻게 자신의 삶에 만족할 수 있었습니까? 그는 성전 뜰에서 단 하루 봉사하는 것도 소중한 특권임을 깨달았습니다. (시 84:4, 5, 10) 우리 역시 우리의 한계에 계속 마음을 두기보다는, 할 수 있는 일을 분별해 내고 소중히 여기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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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2 34면
아버지 없는 소년
이들 가족을 잃고 무방비 상태에 있는 자들을 등한히 하기가 쉽기 때문에,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이 얼마나 의로운지 또는 얼마나 의에서 벗어났는지를 묘사하는 데 “아버지 없는 소년”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셨다. 그 나라가 영적으로 건강하였을 때, 아버지 없는 소년은 돌봄을 받았다. 그 나라에서 공의가 왜곡되었을 때, 아버지 없는 소년은 어김없이 등한히 여겨졌으며, 이것은 그 나라가 부패하였음을 알리는 증상이었다. (시 82:3; 94:6; 사 1:17, 23; 렘 7:5-7; 22:3; 겔 22:7; 슥 7:9-11; 말 3:5) 아버지 없는 소년을 압제하는 자들에게는 여호와의 저주가 있었다. (신 27:19; 사 10:1, 2) 여호와께서는 자신을 아버지 없는 소년들의 구속자(잠 23:10, 11), 도와주시는 분(시 10:14), 아버지(시 68:5)라고 표현하신다. 그분은 그들을 위하여 심판을 집행하시며(신 10:17, 18), 그들에게 자비를 베푸시고(호 14:3), 그들을 구제하시며(시 146:9), 살려 두시는 분이다.—렘 49:11.
참 그리스도교를 식별하는 표 가운데 하나는 남편이나 부모를 잃은 사람들에 대한 배려이다. 제자 야고보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이와 같이 편지하였다. “우리 하느님 아버지의 관점에서 깨끗하고 더럽혀지지 않은 숭배 방식은 이것입니다. 곧 환난 가운데 있는 고아와 과부를 돌보고 세상으로부터 점이 없는 상태로 자기를 지키는 것입니다.”—야 1:27.
9월 30일–10월 6일
성경에 담긴 보물 | 시편 90-9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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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배17.5」 5면
우리 각자에게 수호천사가 있는가?
성경은 수호천사가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물론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작은 이들[그리스도의 제자들] 중에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여러분에게 말하는데, 하늘에 있는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뵙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8:10) 이 말씀은 각 사람에게 수호천사가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천사들이 예수의 제자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큰 관심을 갖고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따라서 참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의 천사가 자신을 보호해 줄 것이라고 기대하면서 경솔하게 위험을 무릅쓰지 않습니다.
그러면 천사들은 인간에게 전혀 도움을 주지 않습니까? 그런 것은 아닙니다. (시편 91:11) 어떤 사람들은 하느님이 천사를 통해 자신을 보호하고 인도해 주셨다고 확신합니다. 첫 기사에서 언급한 케네스도 그렇게 느꼈습니다. 우리가 단정할 수는 없지만 그의 생각이 맞을 수도 있습니다. 여호와의 증인은 전도 활동을 하면서 천사의 도움을 받았다고 느끼는 경우가 자주 있습니다. 하지만 천사들이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하느님이 우리 개개인을 도와주실 때 그들을 어느 정도나 사용하시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어떤 식으로든 전능하신 하느님의 도움을 받았다고 느낄 때 그분께 감사를 표현하는 것은 잘못이 아닙니다.—골로새서 3:15; 야고보서 1:17, 18.
10월 7-13일
성경에 담긴 보물 | 시편 92-95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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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 176면 18항
‘오, 하느님의 지혜는 참으로 깊습니다!’
18 사도 바울이 비길 데 없는 여호와의 지혜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했는지 유의해 보십시오. “오, 하느님의 부와 지혜와 지식은 참으로 깊습니다! 참으로 그분의 판단은 헤아릴 수 없고, 그분의 길은 찾아낼 수 없습니다!” (로마서 11:33) 바울은 이 성구를 “오”라는 감탄사로 시작함으로 깊은 외경심을 나타냈습니다. 그가 사용한 “깊다”라는 그리스어 단어는 “무저갱”이라는 단어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따라서 그의 말을 들으면 머릿속에 생생한 그림이 그려집니다. 여호와의 지혜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마치 끝이 없고 바닥이 안 보이는 구덩이를 들여다보는 것과 같습니다. 그분의 지혜는 너무 깊고 너무 넓어서 어떻게 생겼는지 확인하거나 세밀한 지도를 만들기는커녕 얼마나 거대한지 파악조차 할 수 없는 구덩이처럼 한계가 없습니다. (시편 92:5) 그 점을 생각해 볼 때 우리는 정말 겸손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10월 14-20일
성경에 담긴 보물 | 시편 96-99편
‘좋은 소식을 선포하십시오!’
「파11」 3/1 6면 1-2항
좋은 소식이란 무엇인가?
그리스도인들은 사람들에게 왕국에 대해 말하고 그 왕국이 앞으로 이 땅을 의로 다스릴 세계 정부임을 설명함으로 “왕국의 좋은 소식”을 전파해야 합니다. 그런데 “좋은 소식”이라는 말은 성서에서 여러 가지로 표현됩니다. 이를테면 “구원의 좋은 소식” (시 96:2), “하느님의 좋은 소식” (로마 15:16),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좋은 소식”이라고도 합니다.—마가 1:1.
그러므로 간단히 말해서 좋은 소식에는 예수께서 말씀하시고 제자들이 기록한 진리가 모두 포함됩니다. 예수께서는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가서 모든 나라 사람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침례를 베풀고 내가 여러분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지키도록 가르치십시오.” (마태 28:19, 20) 따라서 참그리스도인들은 사람들에게 왕국에 대해 알려 주기만 할 것이 아니라, 제자를 삼으려는 노력도 해야 합니다.
10월 21-27일
성경에 담긴 보물 | 시편 100-102편
영적 보물 찾기
「통」-1 1004면
사다새
사다새는 배를 가득 채우면, 종종 한적한 곳으로 날아가서, 머리를 어깨에 파묻고서 우울한 듯한 자세를 취하며, 정말 꼼짝하지 않고 있어서 멀리서 보면 하얀 돌로 착각할 정도이다. 이 새가 그런 자세를 한번 취하면 여러 시간 그대로 있기 때문에, 이 자세는 시편 필자가 자신의 통렬한 슬픔을 예시하기 위해 “나는 광야의 사다새를 꼭 닮았”다고 기록할 때에 가리켜 말한 우울한 듯이 꼼짝 않고 있는 모습과 잘 맞는다. (시 102:6) 여기서 “광야”는 꼭 사막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단지 사람의 주거지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 어쩌면 소택지를 의미할 수도 있다. 어떤 계절에는 북부 요르단 골짜기의 소택지들이 지금도 사다새의 서식지가 되기도 한다. 이스라엘에서는 세 종의 사다새가 발견된다. 가장 흔한 종은 분홍색사다새(Pelecanus onocrotalus)이며, 회색사다새(Pelecanus crispus)와 분홍색등사다새(Pelecanus rufescens)는 그보다 수가 적다.
사다새는 사람의 방해가 없을 개간되지 않은 곳을 유난히 좋아한다. 거기에 보금자리를 짓고 새끼를 부화하며, 물고기를 잡고 나서 그리로 돌아간다. 인적이 없고 황폐된 곳을 이처럼 좋아하기 때문에, 이 새는 성서에서 완전한 황폐의 상징으로 사용된다. 이사야는 에돔의 임박한 황폐의 상징으로, 사다새가 그 땅을 차지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사 34:11) 스바냐는 사다새가 니네베의 기둥머리들 사이에서 머무를 것이라고 예언하였는데, 이것은 완전한 멸망과 사람이 전혀 없을 것임을 시사한다.—습 2:13,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