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과 봉사 집회 교재」 참조 자료
© 2025 Watch Tower Bible and Tract Society of Pennsylvania
11월 10-16일
성경에 담긴 보물 | 솔로몬의 노래 3-5장
내적 아름다움의 중요성
「깨04」 12/22 9면 1-4항
가장 중요한 아름다움
내적 아름다움이 다른 사람의 마음을 끌 수 있습니까? 결혼한 지 거의 10년이 된 헤오르히나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 기간 내내 내가 남편에게 끌린 이유는 남편이 내게 보여 준 정직성과 진실성 때문이었어요. 남편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느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것이지요. 그러다 보니 남편은 사려 깊고 사랑이 많은 사람이 되었어요. 또한 결정을 내릴 때 나를 고려하고 내가 소중한 존재라는 느낌을 받게 해 줘요. 남편이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어요.”
1987년에 결혼한 대니얼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 눈에는 아내가 아름다워 보입니다. 아내의 외모에 끌리는 것도 있겠지만 아내의 인간성 때문에 아내를 더욱더 사랑하게 되죠. 아내는 늘 다른 사람들에 관해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의 기분을 좋게 하는 데 관심을 갖습니다. 또한 소중한 그리스도인 특성들도 가지고 있지요. 그래서 아내와 함께 있는 게 즐겁습니다.”
외양을 중시하는 이 세상에서 우리는 표면 아래에 있는 것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상적인” 외모를 얻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더라도 상당히 어려우며 그 가치가 매우 적다는 것을 깨달을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참된 내적 아름다움을 갖게 해 주는 바람직한 특성들을 기르는 것은 가능합니다. 성서는 이렇게 알려 줍니다. “매혹적인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움도 헛되지만,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여자는 스스로 칭찬을 얻는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성경에서는 이렇게 경고합니다. “돼지 코에 금 코고리, 아름답지만 지각력에서 떠나 있는 여자가 바로 그와 같다.”—잠언 11:22; 31:30.
하느님의 말씀은 우리가 ‘하느님의 눈앞에 큰 가치가 있는 조용하고 온화한 영의 부패하지 않는 옷차림을 한 마음의 숨은 사람’을 가치 있게 여기는 데 도움이 됩니다. (베드로 첫째 3:4) 참으로, 그러한 내적 아름다움이야말로 신체적인 아름다움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아름다움은 우리 모두가 손을 뻗기만 하면 닿을 만한 곳에 있습니다.
11월 24-30일
성경에 담긴 보물 | 이사야 1-2장
무거운 “죄과를 짊어지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희망
「예-1」 14면 8항
아버지와 반역적인 아들들
8 이사야는 자기가 받은 소식을 계속 전하면서 유다 나라에 대해 다음과 같은 강력한 말을 합니다. “죄 많은 나라, 잘못이 무거운 백성, 행악하는 씨, 파멸을 초래하는 아들들에게 화가 있다! 그들은 여호와를 버렸고, 이스라엘의 거룩한 분을 업신여겼고, 그분에게 등을 돌렸다.” (이사야 1:4) 악행은 엄청난 무게가 될 정도로 쌓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 시대에 여호와께서는 소돔과 고모라의 죄가 “매우 무겁다”고 묘사하셨습니다. (창세 18:20) 이제 유다 백성도 그와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음이 분명합니다. 이사야가 그들을 가리켜 “잘못이 무거운” 백성이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사야는 그들을 가리켜 “행악하는 씨, 파멸을 초래하는 아들들”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유다 백성은 비행을 저지르는 자녀와 같습니다. 그들은 “등을 돌렸”습니다. 다시 말해서, 「신 개역 표준역」에서 표현한 것처럼, 자기들의 아버지에게서 “완전히 멀어졌”습니다.
12월 1-7일
성경에 담긴 보물 | 이사야 3-5장
이스라엘은 여호와께 더 많은 것을 드려야 했습니다
「예-1」 73-74면 3-5항
불충실한 포도원에 화가 있다!
3 이사야가 이 비유를 실제로 노래로 들려 주든 그렇지 않든 간에, 이 비유는 틀림없이 듣는 사람들의 주의를 사로잡을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마 포도원을 만드는 일에 대해 잘 알고 있을 것이며, 이사야의 묘사는 생생하고 사실적(寫實的)입니다. 오늘날의 포도나무 재배자들과 마찬가지로, 포도원 주인은 포도 씨가 아니라 “아주 좋은” 즉 품질이 우수한 “붉은 포도나무”—다른 포도나무에서 잘라 온 가지—를 심습니다. 적절하게도, 그 주인은 이 포도원을 “비옥한 언덕 비탈”에 만듭니다. 그런 곳이라면 포도원이 잘될 것입니다.
4 포도원이 소출을 내게 하려면 힘든 노력이 듭니다. 이사야는 포도원 주인이 하는 ‘땅을 파고 돌을 골라 내’는 일을 묘사하는데, 그것은 사람을 지치게 만드는 지루한 작업입니다! 그는 아마 큰 돌들을 사용하여 ‘망대를 세울’ 것입니다. 고대에 그러한 망대들은 도둑들이나 동물들로부터 농작물을 지키는 파수꾼의 망보는 장소 역할을 하였습니다. 포도원 주인은 또한 계단식 포도원의 경사지를 따라 층층이 돌담을 쌓습니다. (이사야 5:5) 귀중한 표토가 씻겨 내려가지 않도록 방지하기 위해서 흔히들 그렇게 하였습니다.
5 주인은 포도원을 보호하기 위해 매우 열심히 일해 왔으므로, 포도원에 열매가 맺힐 것을 기대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포도원 주인은 그러한 기대를 가지고 포도 압착조를 깎아 팝니다. 그러면 수확이 바라던 대로 이루어집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 포도원은 들포도를 냅니다.
「예-1」 76면 8-9항
불충실한 포도원에 화가 있다!
8 이사야는 포도원 주인이신 여호와를 “내 사랑하는 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사야 5:1) 이사야가 하느님을 그처럼 친근한 표현으로 부를 수 있는 이유는 오로지 그가 하느님과 친밀한 관계를 누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비교 욥 29:4; 시 25:14) 하지만 하느님에 대한 이 예언자의 사랑은 하느님께서 자신의 “포도원” 즉 그분이 ‘심으신’ 나라에 나타내 오신 사랑에 비하면 무색해집니다.—비교 탈출 15:17; 시 80:8, 9.
9 여호와께서는 가나안 땅에 자신의 나라를 “심”으시고 그들에게 법과 규정을 주셨습니다. 그 법과 규정은 그들이 다른 나라들로 인해 부패하지 않도록 보호해 주는 담 역할을 하였습니다. (탈출 19:5, 6; 시 147:19, 20; 에베소 2:14) 여호와께서는 또한 그들에게 재판관들과 제사장들과 예언자들을 주셔서 그들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열왕 둘째 17:13; 말라기 2:7; 사도 13:20)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이 군사적 공격으로 위협을 받을 때는 구출자들을 일으키셨습니다. (히브리 11:32, 33) 여호와께서 “내가 나의 포도원에서 아직 하지 않은 것, 포도원을 위하여 앞으로 해야 할 것이 무엇이겠느냐?” 하고 물으시는 것도 당연합니다.
「파06」 6/15 18면 1항
‘이 포도나무를 돌보아 주십시오!’
이사야는 “이스라엘 집”을 “들포도” 곧 “부패한(썩은) 열매”를 점점 내는 포도원에 비하였습니다. (이사야 5:2, 7; 영문 신세계역 참조주 성서 각주 참조) 들포도는 재배한 포도보다 훨씬 작고 과육도 거의 없으며 포도의 거의 전체가 씨입니다. 들포도는 포도주를 담그거나 식용으로 사용할 수 없었으므로, 의를 지키기는커녕 법을 어기는 열매를 맺는 배교한 나라를 적절히 상징하였습니다. 그러한 무가치한 열매가 나온 것은 포도나무 경작자의 잘못이 아니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그 나라가 풍성한 수확을 내도록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그분은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내가 나의 포도원에서 아직 하지 않은 것, 포도원을 위하여 앞으로 해야 할 것이 무엇이겠느냐?”—이사야 5:4.
「파06」 6/15 18면 2항
‘이 포도나무를 돌보아 주십시오!’
이스라엘이라는 포도나무가 수확을 내지 못하였기 때문에 여호와께서는 그 나라에게 자신이 자신의 백성을 보호하기 위해 그들 주위로 세운 담을 헐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그분은 더 이상 자신의 비유적인 포도나무를 위해 가지치기를 해 주거나 김을 매 주지 않으실 것이었습니다. 농작물의 성장을 좌우하는 봄비가 내리지 않을 것이었으며, 포도원에는 가시나무와 잡초가 무성할 것이었습니다.—이사야 5:5, 6.
영적 보물 찾기
「예-1」 80면 18-19항
불충실한 포도원에 화가 있다!
18 고대 이스라엘의 경우, 모든 땅은 궁극적으로 여호와께 속한 것이었습니다. 가족마다 하느님께서 주신 유산이 있어서 세를 받고 빌려 줄 수는 있어도 “영구적으로” 팔지는 못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레위 25:23) 이러한 법은 부동산 독점과 같은 횡포를 부리지 못하게 막아 주었습니다. 또한 각 가족은 몹시 가난해지지 않도록 보호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유다의 일부 사람들은 탐욕스럽게 재산과 관련된 하느님의 법을 어기고 있었습니다. 미가는 이렇게 썼습니다. “그들은 밭을 욕심내어 그것을 강탈하고, 집을 욕심 내어 그것을 취하였다. 또 그들은 남자와 그의 집안을, 사람과 그의 유산을 속여 빼앗았다.” (미가 2:2) 그러나 잠언 20:21에서는 이렇게 경고합니다. “처음에 탐욕으로 상속 재산을 취득하여도, 그 미래는 축복을 받지 못한다.”
19 여호와께서는 이 탐욕스러운 자들에게서 그 부정 이득을 제하여 버리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들이 강탈하는 집들에는 “거주하는 자가 없”게 될 것입니다. 그들이 탐내는 땅들에서는 생산할 수 있는 양의 극히 일부분밖에 생산되지 못할 것입니다. 정확히 언제 어떻게 이러한 저주가 성취될 것인지는 명확히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 저주는 아마,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장차 바빌론으로 유배될 때 초래될 상황을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이사야 27:10.
12월 8-14일
성경에 담긴 보물 | 이사야 6-8장
“제가 여기 있습니다! 저를 보내십시오!”
「예-1」 93-95면 13-14항
여호와 하느님께서 자신의 성전에 계시다
13 이사야와 함께 다음의 말씀에 귀기울여 봅시다. “나는 이렇게 말씀하시는 여호와의 음성을 듣게 되었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까?’ 그래서 내가 말씀드리기를 ‘제가 여기 있습니다! 저를 보내십시오’ 하였다.” (이사야 6:8) 여호와께서 이러한 질문을 하시는 것은 이사야에게서 반응을 이끌어 내시기 위한 것임이 분명합니다. 이 환상에는 다른 인간 예언자가 등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틀림없이 이사야에게 여호와의 사자가 되라고 초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호와께서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까?” 하고 질문하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단수 인칭 대명사 ‘나’를 사용하시다가 복수 대명사 ‘우리’를 사용하심으로, 여호와께서는 이제 자기 곁에 적어도 한 존재가 더 있음을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그가 누구입니까? 그분의 독생자, 후에 인간 예수 그리스도가 되신 분이 아니겠습니까? 사실, “우리가 우리의 형상대로 ··· 사람을 만들자”고 말씀하셨을 때에도 하느님께서는 바로 이 아들에게 말씀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창세 1:26; 잠언 8:30, 31) 그렇습니다. 하늘 법정의 여호와 곁에는 그분의 독생자가 계십니다.—요한 1:14.
14 이사야의 응답은 주저함이 없습니다! 전해야 할 소식의 내용이 무엇이든 그는 즉시 “제가 여기 있습니다! 저를 보내십시오” 하고 대답합니다. 그 임명을 받아들이면 자기에게 어떤 이득이 있을 것인지도 묻지 않습니다. 그의 자원하는 영은, ‘사람이 거주하는 온 땅에 왕국의 좋은 소식’을 전파할 임명을 받은 오늘날의 하느님의 종들 모두에게 훌륭한 모범이 됩니다. (마태 24:14) 반응을 나타내지 않는 태도가 널리 퍼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이사야처럼 자기들의 임명에 충실하게 고착하며 “모든 나라 사람들에게 증거”하는 일을 완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의 임명이 가장 높으신 분으로부터 위임받은 것임을 알고 있는 이들은 이사야처럼 확신을 가지고 나아가고 있습니다.
「예-1」 95-96면 15-16항
여호와 하느님께서 자신의 성전에 계시다
15 여호와께서는 이제 이사야가 전해야 할 말이 무엇이며 그에 대해 어떤 반응이 있을 것인지를 다음과 같이 개략적으로 알려 주십니다. “가거라. 너는 이 백성에게 말해야 한다. ‘너희는 거듭거듭 듣기는 하여도, 이해하지는 말아라. 거듭거듭 보기는 하여도, 지식을 얻지는 말아라.’ 이 백성의 마음을 무디게 하고, 그 귀를 반응이 없게 하며, 그 눈을 봉하여라. 그리하여 그들이 눈으로 보지 못하게 하고 귀로 듣지 못하게 하며, 그들의 마음이 이해하지 못하게 하고 그들이 실제로 돌아와서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여라.” (이사야 6:9, 10) 이 말씀은 이사야가 유대인들을 퉁명스럽고 무뚝뚝하게 대하며 불쾌하게 물리쳐 버림으로 그들이 계속 여호와와 좋지 않은 관계에 머물러 있도록 하라는 뜻입니까? 결코 그런 뜻이 아닙니다. 유대인들은 이사야가 남달리 친근감을 느끼는 그의 동족입니다. 하지만 여호와의 말씀은, 이사야가 얼마나 충실하게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든 간에, 그 백성이 여호와의 소식에 어떤 반응을 나타낼 것인지를 알려 줍니다.
16 여호와께서는 이제 이사야가 전해야 할 말이 무엇이며 그에 대해 어떤 반응이 있을 것인지를 다음과 같이 개략적으로 알려 주십니다. “가거라. 너는 이 백성에게 말해야 한다. ‘너희는 거듭거듭 듣기는 하여도, 이해하지는 말아라. 거듭거듭 보기는 하여도, 지식을 얻지는 말아라.’ 이 백성의 마음을 무디게 하고, 그 귀를 반응이 없게 하며, 그 눈을 봉하여라. 그리하여 그들이 눈으로 보지 못하게 하고 귀로 듣지 못하게 하며, 그들의 마음이 이해하지 못하게 하고 그들이 실제로 돌아와서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여라.” (이사야 6:9, 10) 이 말씀은 이사야가 유대인들을 퉁명스럽고 무뚝뚝하게 대하며 불쾌하게 물리쳐 버림으로 그들이 계속 여호와와 좋지 않은 관계에 머물러 있도록 하라는 뜻입니까? 결코 그런 뜻이 아닙니다. 유대인들은 이사야가 남달리 친근감을 느끼는 그의 동족입니다. 하지만 여호와의 말씀은, 이사야가 얼마나 충실하게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든 간에, 그 백성이 여호와의 소식에 어떤 반응을 나타낼 것인지를 알려 줍니다.
「예-1」 99면 23항
여호와 하느님께서 자신의 성전에 계시다
23 예수께서는 이사야의 말을 인용하셔서 그 예언이 자신의 시대에 성취되고 있음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 백성이 전반적으로 가지고 있던 마음의 태도는 이사야 시대의 유대인들의 태도와 유사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의 소식에 눈멀고 귀먹은 태도를 나타냈으며, 이사야 시대와 마찬가지로 멸망을 당하였습니다. (마태 23:35-38; 24:1, 2) 기원 70년에 티투스 장군 휘하의 로마 군대가 예루살렘을 공격해 와 그 도시와 성전을 허물어뜨렸을 때 그러한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하지만 일부 사람들은 예수의 말씀에 귀기울여 그분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이 사람들이 “행복”하다고 선언하셨습니다. (마태 13:16-23, 51) 예수께서는 이 사람들에게 “예루살렘이 진을 친 군대에게 둘러싸이는 것을” 보거든 “산으로 도피”해야 한다고 알려 주셨습니다. (누가 21:20-22) 그리하여 믿음을 나타내고 “하느님의 이스라엘”이라는 영적 나라를 형성한 “거룩한 씨”는 구원을 받았습니다.—갈라디아 6:16.
12월 15-21일
성경에 담긴 보물 | 이사야 9-10장
“큰 빛”에 관한 예언
「예-1」 126-128면 18-19항
평화의 군왕에 대한 약속
18 그 빛에 좋은 반응을 나타낸 사람들에게는 기뻐할 만한 이유가 많이 있었습니다. 이사야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당신이 이 나라의 인구를 많게 하셨습니다. 이 나라를 위하여 당신이 기쁨을 크게 하셨습니다. 수확할 때에 기뻐하듯이, 전리품을 나눌 때에 기뻐하는 사람들처럼, 그들이 당신 앞에서 기뻐하였습니다.” (이사야 9:3) 예수와 그분의 추종자들의 전파 활동의 결과로, 정직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나아와 영과 진리로 여호와를 숭배하고 싶은 열망을 나타냈습니다. (요한 4:24) 4년도 채 안 되는 기간에,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였습니다. 기원 33년 오순절 날에 30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침례를 받았습니다. 그 후 얼마 안 되어, “남자의 수가 오천 명쯤 되었”습니다. (사도 2:41; 4:4) 제자들이 열성적으로 그 빛을 반사하자, “예루살렘에서 제자들의 수가 계속 크게 늘어났으며, 제사장들의 큰 무리가 믿음에 순종하기 시작하였”습니다.—사도 6:7.
19 풍성한 수확을 거두고 기뻐하는 사람들처럼, 또는 군사적으로 큰 승리를 거둔 후에 값진 전리품을 나누어 가지며 기뻐하는 사람들처럼, 예수의 추종자들은 그러한 증가에 대해 기뻐하였습니다. (사도 2:46, 47) 때가 되자, 여호와께서는 그 빛이 이방 사람들 가운데서도 비치게 하셨습니다. (사도 14:27) 따라서 모든 인종의 사람들은 자기들에게도 여호와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에 대해 기뻐하였습니다.—사도 13:48.
「예-1」 128-129면 20-21항
평화의 군왕에 대한 약속
20 이사야가 다음에 한 말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메시아가 한 활동의 결과는 영구적입니다. “그들 짐의 멍에와 그들의 어깨 위의 몽둥이, 그들을 부리는 자의 막대기를, 당신이 미디안의 날에 하신 것과 같이 산산이 부수셨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9:4) 이사야 시대가 되기 여러 세기 전에, 미디안 사람들은 모압 사람들과 공모하여 이스라엘을 꾀어 죄에 빠지게 하였습니다. (민수 25:1-9, 14-18; 31:15, 16) 그 후에도, 미디안 사람들은 7년 동안 이스라엘 마을들과 농장들을 습격하여 강탈함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습니다. (재판관 6:1-6) 하지만 그때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종 기드온을 사용하셔서 미디안 군대가 참패를 당하게 하셨습니다. 그 “미디안의 날”이 있은 후로, 여호와의 백성이 미디안 사람들의 손에 또다시 고통을 당했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재판관 6:7-16; 8:28) 가까운 장래에, 더 큰 기드온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여호와의 백성의 현대 적들에게 치명타를 입히실 것입니다. (계시 17:14; 19:11-21) 그렇게 되면, “미디안의 날에 하신 것과 같이”, 인간의 용감한 행동에 의해서가 아니라 여호와의 능력에 의해서 완전하고 지속적인 승리를 거두게 될 것입니다. (재판관 7:2-22) 하느님의 백성이 압제의 멍에 아래서 고통을 당하는 일이 다시는 없을 것입니다!
21 하느님의 능력을 전시하는 것이 전쟁을 미화하는 것은 아닙니다. 부활되신 예수께서는 평화의 군왕으로서, 자신의 적들을 섬멸하심으로써 영원한 평화를 가져오실 것입니다. 이사야는 이제 군사 용품들이 완전히 불에 소멸되는 장면을 묘사합니다. “바닥을 울리며 저벅거리는 자의 모든 장화와 피 속에 뒹군 망토가 불의 먹이처럼 태워지게 되었[습니다].” (이사야 9:5) 행진하는 군인들의 장화가 저벅거리며 지나갈 때의 바닥의 울림이 다시는 느껴지지 않을 것입니다. 전투에 단련된 전사들의 피로 얼룩진 제복이 다시는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전쟁이 더는 없을 것입니다!—시 46:9.
영적 보물 찾기
「예-1」 130면 23-24항
평화의 군왕에 대한 약속
23 조언자란 조언을 하는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지상에 계실 때 놀라운 조언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성서에서 우리는 이러한 말을 보게 됩니다. “무리는 그분의 가르치는 방법에 크게 놀랐다.” (마태 7:28) 그분은 감정 이입을 사용하시는 지혜로운 조언자로서, 인간의 본성에 대한 비범한 이해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분의 조언은 견책이나 호된 책망으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습니다. 교훈이나 사랑에 찬 충고로 이루어져 있는 경우가 훨씬 더 많습니다. 예수의 조언은 언제나 지혜롭고, 완벽하고, 절대 오류가 없기 때문에 놀라운 것입니다. 예수의 조언을 따르면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됩니다.—요한 6:68.
24 예수의 조언은 단순히 그분의 명석한 정신의 산물에 불과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가르치는 것은 나의 것이 아니고 나를 보내신 분에게 속한 것입니다.” (요한 7:16) 솔로몬의 경우처럼, 예수의 지혜의 근원도 여호와 하느님이십니다. (열왕 첫째 3:7-14; 마태 12:42) 그리스도인 회중에서 가르치는 사람들이나 조언하는 사람들은 예수의 모범을 통해, 언제나 하느님의 말씀에 근거해서 교훈을 베풀고자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잠언 21:30.
12월 22-28일
성경에 담긴 보물 | 이사야 11-13장
메시아는 어떤 분입니까?
「예-1」 159면 6항
메시아의 통치 아래 있을 구원과 기쁨
6 메시아는 어떤 통치자가 될 것입니까? 북쪽의 열 지파 이스라엘 왕국을 멸망시키는 잔인하고 자기 고집대로 하는 아시리아 사람 같을 것입니까? 물론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메시아에 관하여 이사야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 위에 여호와의 영이 머물리니, 지혜와 이해의 영, 조언과 위력의 영, 지식과 여호와에 대한 두려움의 영이다. 그에게는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가운데 즐거움이 있을 것이다.” (이사야 11:2, 3ㄱ) 메시아는 문자적인 기름이 아니라 하느님의 성령으로 기름부음받으십니다. 이 일은 예수께서 침례받으실 때 있게 되는데, 침례자 요한은 그때 하느님의 성령이 비둘기의 형태로 예수 위에 내려오는 것을 보게 됩니다. (누가 3:22) 여호와의 영은 예수 ‘위에 머무르고’, 예수께서는 지혜와 이해와 조언과 위력과 지식을 가지고 행동하심으로 그 증거를 나타내십니다. 통치자가 갖추어야 할 참으로 훌륭한 특성들입니다!
「예-1」 160면 8항
메시아의 통치 아래 있을 구원과 기쁨
8 메시아가 나타내는 여호와에 대한 두려움이란 무엇입니까? 물론, 예수께서는 하느님의 유죄 판결이 두려워 그분을 무서워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이 아니라, 메시아는 하느님에 대해 존경심에서 우러나온 경외심, 사랑에서 우러나온 숭상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예수와 마찬가지로, 언제나 “그분에게 기쁨이 되는 일을 하기”를 원합니다. (요한 8:29) 예수께서는 매일 여호와에 대한 건전한 두려움 가운데 걷는 것보다 더 큰 기쁨은 없다는 사실을 말씀과 모범으로 가르쳐 주십니다.
「예-1」 161면 9항
메시아의 통치 아래 있을 구원과 기쁨
9 이사야는 메시아의 특성에 관해 더 많은 점을 예언합니다. “그는 자기 눈에 보이는 대로만 재판하지 않으며, 단지 자기 귀에 들리는 대로 책망하지도 않을 것이다.” (이사야 11:3ㄴ) 당신이 법정에 서야 할 일이 있다면, 이러한 재판관에게 고마움을 느끼지 않겠습니까? 메시아는 온 인류의 심판관으로서, 거짓 주장이나 교활한 법정 술책이나 소문에 의해, 혹은 재물과 같이 겉으로 보이는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메시아는 속임수를 간파하고 호감이 가지 않는 외모 이면을 살펴서, “마음의 숨은 사람” 즉 “숨겨져 있는 사람”을 분별해 냅니다. (베드로 첫째 3:4, 신세계역 참조주 성서 각주 참조) 예수의 최상의 모범은 그리스도인 회중에서 심판하는 일을 맡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모본 역할을 합니다.—고린도 첫째 6:1-4.
「예-1」 161면 11항
메시아의 통치 아래 있을 구원과 기쁨
11 예수께서는 자신의 추종자들이 시정을 받을 필요가 있을 때, 그들에게 가장 유익이 되는 방법으로 시정을 베푸십니다. 그리스도인 장로들이 따라야 할 훌륭한 모범입니다. 반면에, 악을 행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엄한 심판이 베풀어질 것으로 예상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이 사물의 제도에 책임을 물으실 때, 메시아는 모든 악한 자를 멸하라는 판결을 내리심으로 권위 있는 목소리로 ‘땅을 치실’ 것입니다. (시 2:9; 비교 계시 19:15) 마침내, 인류의 평화를 교란시킬 악한 사람은 하나도 남지 않게 될 것입니다. (시 37:10, 11) 의와 충실함으로 허리띠와 허리끈을 띠고 계신 예수께서는 이러한 일을 달성하실 권능을 가지고 계십니다.—시 45:3-7.
영적 보물 찾기
「예-1」 165-166면 16-18항
메시아의 통치 아래 있을 구원과 기쁨
16 순결한 숭배는 에덴에서 처음으로 공격을 받았습니다. 사탄은 그때 아담과 하와에게 영향을 미치는 데 성공하여 여호와께 불순종하게 하였습니다. 사탄은 오늘날까지도,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을 하느님에게서 돌아서게 하려는 목표를 포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호와께서는 결코 순결한 숭배가 지상에서 사라지게 허락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분의 이름이 관련되어 있으며, 그분은 자신을 섬기는 사람들에게 관심이 있으십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이사야를 통해 다음과 같이 놀라운 약속을 하십니다. “그 날에는 이새의 뿌리가 뭇 백성들을 위한 깃발로서 서 있게 된다. 이방 사람들이 물으려고 그에게 향하리니, 그의 쉬는 곳이 영광스럽게 될 것이다.” (이사야 11:10) 다윗이 국가의 수도로 삼았던 도시 예루살렘은 기원전 537년에, 흩어져 있던 유대 백성의 충실한 남은 자들에게 돌아와서 성전을 재건하라고 부르는 깃발 역할을 하였습니다.
17 하지만 그 예언은 그보다 더 많은 일이 있을 것임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그 예언은 모든 나라 사람들을 위한 하나밖에 없는 참된 지도자 메시아의 통치가 있을 것임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사야 11:10을 인용하여, 그 시대의 이방 사람들이 그리스도인 회중의 성원이 될 것임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는 이 성구의 표현을 「칠십인역」에서 인용하여 이렇게 썼습니다. “이사야는 말합니다. ‘이새의 뿌리가 있고, 이방 사람들을 통치하기 위하여 일어나는 이가 있을 것이다. 그에게 이방 사람들이 희망을 둘 것이다.’” (로마 15:12) 뿐만 아니라, 그 예언은 한층 더 나아가 우리 시대에도 성취되는데, 이방 사람들이 메시아의 기름부음받은 형제들을 지원함으로 여호와에 대한 사랑을 나타냅니다.—이사야 61:5-9; 마태 25:31-40.
18 현대의 성취에서, 이사야가 언급한 “그 날”은 메시아가 1914년에 하느님의 하늘 왕국의 왕으로 즉위하셨을 때 시작되었습니다. (누가 21:10; 디모데 둘째 3:1-5; 계시 12:10) 그때 이후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의로운 정부를 갈망하는 영적 이스라엘과 모든 나라 사람들에게 분명한 깃발 즉 집결 지점이 되어 오셨습니다. 메시아의 지도 아래, 왕국에 관한 좋은 소식이 예수께서 예언하신 대로 모든 나라 사람들에게 전파되어 왔습니다. (마태 24:14, 마가 13:10) 이 좋은 소식은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모든 나라에서 나온 아무도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순결한 숭배에서 기름부음받은 남은 자들과 연합함으로 메시아에게 복종하고 있습니다. (계시 7:9) 많은 수의 새로운 사람들이 여호와의 영적 “기도하는 집”에 있는 남은 자들과 계속 연합함에 따라, 메시아의 “쉬는 곳” 즉 하느님의 큰 영적 성전의 영광이 더해지고 있습니다.—이사야 56:7; 학개 2:7.
12월 29일–1월 4일
성경에 담긴 보물 | 이사야 14-16장
하느님의 백성의 적들은 처벌을 피할 수 없습니다
「예-1」 180면 16항
여호와께서 오만한 도시를 낮추시다
16 이러한 일이 기원전 539년에 즉시 일어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바빌론에 관하여 이사야가 예언한 일이 모두 이루어졌음을 아주 분명히 볼 수 있습니다. 바빌론은 “현재 그리고 지난 여러 세기 동안, 넓은 범위에 걸쳐 황폐된 모습을 하고 있고, 현재 폐허 더미를 이루고 있다”고 한 성서 해설자는 말하면서 이렇게 부언합니다.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이사야와 예레미야의 예언이 얼마나 정확하게 성취되었는지를 상기하지 않을 수는 없다.” 이사야 시대에 살던 사람이 바빌론의 무너짐과 바빌론에 최종적으로 닥칠 황폐에 대해 예언할 수는 없었음이 분명합니다. 아무튼, 바빌론이 메디아 사람들과 페르시아 사람들에게 무너지는 일은 이사야가 그의 책을 쓴 지 약 200년 후에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바빌론에 최종적으로 닥친 황폐는 여러 세기가 더 지난 후에 있었습니다. 이 일은 성서가 하느님의 영감받은 말씀이라는 사실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강화시켜 주지 않습니까? (디모데 둘째 3:16) 더욱이, 여호와께서 과거에 예언들을 성취시키신 것을 볼 때, 우리는 아직 성취되지 않은 성서 예언들도 하느님께서 정하신 때에 이루어질 것이라는 절대적인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예-1」 184면 24항
여호와께서 오만한 도시를 낮추시다
24 성서에서는 다윗 왕조의 왕들을 별에 비하고 있습니다. (민수 24:17) 다윗 이후로, 그 “별들”은 시온 산에서 통치하였습니다. 솔로몬이 예루살렘에 성전을 지은 후, 시온이라는 이름은 그 도시 전체를 가리키는 말이 되었습니다. 율법 계약 아래서, 모든 이스라엘 남자들은 일년에 세 차례 시온으로 올라가야 하였습니다. 따라서 시온은 “모임의 산”이 되었습니다. 느부갓네살은 유대의 왕들을 정복한 다음 그들을 그 산에서 제거하기로 결심함으로, 자신을 그 “별들” 위로 높일 의향이 있음을 선포합니다. 느부갓네살은 그 별들에 대해 승리를 거두게 해 주시는 것에 대한 영예를 여호와께 돌리지 않습니다. 사실은, 오히려 오만하게도 자신을 여호와의 위치에 올려 놓습니다.
「예-1」 189면 1항
나라들에 대한 여호와의 뜻
여호와께서는 나라들을 사용하여 자신의 행악하는 백성을 징계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나라들이 불필요하게 잔인함이나 교만이나 참 숭배에 대한 적대감을 나타낼 때는 용서해 주지 않으십니다. 따라서 그분은 오래 전에 미리 이사야에게 영감을 주시어 “바빌론에 대한 선언”을 기록하게 하십니다. (이사야 13:1) 그런데 바빌론은 미래에 위협이 될 나라입니다. 이사야의 시대에는, 아시리아가 하느님의 계약 백성을 압제하고 있습니다. 아시리아는 북쪽의 이스라엘 왕국을 멸망시키고 유다도 상당 부분 황폐시킵니다. 하지만 아시리아가 거둘 승리는 제한되어 있습니다. 이사야는 이렇게 기록합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맹세하여 말씀하셨다. ‘분명히 내가 생각한 대로 그렇게 되[리니], ··· 내가 아시리아 사람을 나의 땅에서 쳐부수고, 그를 나의 산에서 짓밟아, 그의 멍에가 실제로 그들에게서 떠나고 그의 짐도 그들의 어깨에서 떠날 것이다.’” (이사야 14:24, 25) 이사야가 이 예언을 한 지 얼마 안 되어, 아시리아가 가하던 위협이 유다에게서 벗겨집니다.
「예-1」 194면 12항
나라들에 대한 여호와의 뜻
12 이러한 예언은 언제 성취될 것입니까? 곧 성취될 것입니다. “이것은 여호와께서 모압에 관하여 전에 이르신 말씀이다. 또 이제 여호와께서 말씀하여 이르셨다. ‘품꾼의 햇수에 따라 삼 년 안에, 모압의 영광도 온갖 큰 소동과 함께 치욕을 당하고 말 것이며, 남아 있는 자들은 보잘것 없이 적어 위력이 없을 것이다.’” (이사야 16:13, 14) 이 말씀과 일치하게, 기원전 8세기에 모압이 극심한 고통을 겪었고 많은 지역에서 주민이 사라졌음을 알려 주는 고고학적 증거가 있습니다. 디글랏-빌레셋 3세는 자기에게 조공을 바치는 통치자들 가운데 모압의 살라마누가 있음을 언급하였습니다. 산헤립은 모압 왕 캄무수나드비에게서 조공을 받았습니다. 아시리아의 군주들인 에살핫돈과 아슈르바니팔은 모압 왕들인 무수리와 카마샬투를 자기들의 신하로 언급하였습니다. 모압 사람들이 한 민족으로서 존재하지 않게 된 지 이미 여러 세기가 지났습니다. 모압 사람들의 도시로 여겨지는 폐허가 여러 개 발견되기는 했지만, 한때 이스라엘의 강력한 적이었던 이 사람들에 대한 실제적인 증거가 발굴된 것은 아직까지는 거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