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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르디스의 멜리토—성서 진리의 옹호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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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르디스의 멜리토—성서 진리의 옹호자인가?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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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2006
파06 4/15 17-19면

사르디스의 멜리토—성서 진리의 옹호자인가?

해마다 참 그리스도인들은 히브리력으로 니산월 14일에 해당하는 날에 주의 만찬을 지킵니다. 그들은 예수께서 하신, “나를 기념하여 이 일을 계속하십시오”라는 명령에 순종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기원 33년의 바로 그날에 예수께서는 유월절을 지키시고 나서 자신의 희생적인 죽음을 기리는 기념식을 제정하셨습니다. 그분은 그날이 끝나기 전에 죽으셨습니다.—누가 22:19, 20; 고린도 첫째 11:23-28.

그런데 기원 2세기에 누군가가 기념식 날과 기념식을 지키는 방식을 바꾸기 시작하였습니다. 소아시아에서는 예수께서 죽으신 날이 계속 사용되었습니다. 하지만 한 자료에서 지적하듯이, “로마와 알렉산드리아에서는 같은 주 일요일에 예수의 부활을 기념하는 것이 관습이었”으며 그날을 ‘부활 유월절’이라고 불렀습니다. 콰르토데키만스(십사 일 교도들)라고 알려진 집단은 니산월 14일에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기념하는 것을 옹호하였습니다. 사르디스(사데)의 멜리토도 그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멜리토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그는 이 성서 진리와 그 밖의 성서 진리들을 어떤 방식으로 옹호하였습니까?

“위대한 선각자”

2세기 말에, 카이사레아의 유세비우스가 저술한 「교회사」(Ecclesiastical History)에 의하면, 에베소의 폴리크라테스는 로마에 편지를 보냈는데 그는 그 편지에서 “복음서에 따라 유월절인 열네 번째 날”을 지키는 것과 “그날을 결코 바꾸어서는 안 된다는 것 그리고 교회의 규칙에 따라 그날을 준수”하는 것을 옹호하였습니다. 이 편지에 따르면, 리디아에 있는 사르디스의 주교인 멜리토는 니산월 14일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들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그 편지에는 멜리토의 동시대 사람들이 그를 죽음의 잠을 자고 있는 ‘위대한 선각자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생각했다고 쓰여 있었습니다. 폴리크라테스는 멜리토가 결혼을 하지 않았고 “전적으로 성령에 따라 살았으며 사르디스에 누워 하늘의 부름을 받고 죽음에서 깨어날 날을 기다리고 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이것은 멜리토가 그리스도의 재림이 있기까지는 부활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믿은 사람들 가운데 포함되어 있었음을 의미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계시 20:1-6.

따라서 멜리토는 용기 있고 결단력 있는 사람이었음이 분명한 것 같습니다. 사실, 그는 기원 161년부터 180년까지 로마의 황제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를 상대로 그리스도인의 「호교론」(Apology)을 저술하기도 했는데, 이 책은 역사상 가장 먼저 기록된 호교론 가운데 하나입니다. 멜리토는 그리스도교를 옹호하고 악하고 탐욕스러운 사람들을 비난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고 그들에게 죄를 뒤집어씌워 소유물을 빼앗을 구실을 만들기 위해 여러모로 황제의 명령을 얻어 내려고 하였습니다.

멜리토는 황제 앞으로 보낸 글에 대담하게도 이렇게 썼습니다. “저희가 폐하께 드리는 청은 이 한 가지뿐이니, 곧 폐하께서 친히 분쟁의 장본인들[그리스도인들]을 조사하시어 그들이 죽음과 형벌을 받아 마땅한지 아니면 안전과 면제를 받을 만한지 정확히 판단해 보시라는 것이옵니다. 그러나 이방인인 적들에게도 합당하지 않은 이 법령과 새로운 칙령을 폐하께서 내리신 것이 아니라면, 더욱 간곡히 청하오니 폭도들에게 그처럼 불법으로 약탈당하고 있는 저희를 못 본 체하지 마시옵소서.”

성경을 사용하여 그리스도교를 옹호하다

멜리토는 성경 연구에 대해 깊은 관심을 나타냈습니다. 그가 지은 저술물들의 제목을 빠짐없이 정리해 놓은 목록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일부 제목을 보면 그가 성서적인 주제에 대해 흥미를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의 저술물을 몇 가지만 열거하자면, 「그리스도인 생활과 예언자들에 관하여」(On Christian Life and the Prophets), 「인간의 믿음에 관하여」(On the Faith of Man), 「창조에 관하여」(On Creation), 「침례와 진리와 믿음과 그리스도의 탄생에 관하여」(On Baptism and Truth and Faith and Christ’s Birth), 「후대에 관하여」(On Hospitality), 「이해의 열쇠」(The Key), 「마귀와 요한 묵시록에 관하여」(On the Devil and the Apocalypse of John) 등이 있습니다.

멜리토는 성서의 땅에 직접 가서 히브리어 성경을 구성하는 책들의 정확한 수를 조사하였습니다. 이 점과 관련하여 그는 이렇게 기술하였습니다. “따라서 나는 동방에 가서 이 일들이 전파되고 행해지던 곳에 있으면서 구약을 구성하는 책들을 정확히 알아내어 그 사실을 기록한 다음, 당신에게 보냈습니다.” 이 목록은 느헤미야서와 에스더기를 언급하지 않지만,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저술물에 나오는, 히브리어 성경의 정경을 열거하는 목록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입니다.

이 연구를 하는 동안, 멜리토는 예수에 관한 예언이 들어 있는 히브리어 성경 구절들을 수집하였습니다. 「발췌」(Extracts)라는 그의 저서는 오랫동안 기다려 온 메시아가 예수였으며 모세의 율법과 예언자들도 그리스도를 언급했다고 설명합니다.

대속의 가치를 옹호하다

소아시아의 주요 도시들에서는 유대인들의 영향이 상당히 강했습니다. 멜리토가 살던 곳인 사르디스의 유대인들은 니산월 14일에 히브리인의 유월절을 지켰습니다. 멜리토는 「유월절」(The Passover)이라는 설교집을 써서 율법 아래 유월절을 지키는 것은 정당하다는 점을 설명하고 그리스도인들이 니산월 14일에 주의 만찬을 지키는 것을 옹호하였습니다.

멜리토는 탈출기 12장에 관해 해설하고 유월절이 그리스도의 희생을 예표한다는 점을 보여 주고 나서 그리스도인이 유월절을 지키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하느님께서 모세의 율법을 폐지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다음, 그는 그리스도의 희생이 필요한 이유를 설명하였습니다. 즉, 하느님께서 아담으로 하여금 낙원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게 해 주셨지만, 그 첫 남자가 선악에 대한 지식의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는 명령에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속이 필요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멜리토는 믿는 인류를 죄와 죽음으로부터 대속하기 위해 예수가 땅으로 보냄을 받아 기둥에서 죽으셨다고 설명하였습니다. 흥미롭게도, 멜리토는 예수께서 달려 죽으신 기둥에 관해 기술할 때 “나무”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단어 크실론을 사용하였습니다.—사도 5:30; 10:39; 13:29.

멜리토는 소아시아 밖에서도 알려져 있었습니다. 테르툴리아누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 오리게네스는 멜리토의 저술물에 대해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역사가 라니에로 칸달라메사는 이렇게 기술하였습니다. “일요일 유월절 관습이 우세해진 후에 콰르토데키만스가 이단자로 몰리기 시작하면서 멜리토의 명성이 쇠퇴 일로에 들어서더니 그의 저술물은 점차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결국, 멜리토의 저술물은 거의 완전히 사라져 버렸습니다.

배교의 희생자인가?

사도들이 사망한 후에, 예언된 배교가 참 그리스도교에 스며들었습니다. (사도 20:29, 30) 배교는 분명히 멜리토에게도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그의 저술물들의 현란한 문체는 그리스 철학과 로마 세계의 저술물들의 영향을 받은 것 같습니다. 아마 그렇기 때문에 멜리토는 그리스도교를 “우리의 철학”이라고 부르고, 또한 소위 그리스도교와 로마 제국의 결합을 “성공의 ··· 가장 큰 증거”로 여겼을 것입니다.

멜리토는 사도 바울의 다음과 같은 교훈을 마음에 새기지 않은 것이 분명합니다. “조심하십시오. 혹시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여러분을 자기 먹이로 끌어갈 사람이 있을지 모릅니다. 그것은 사람의 전통을 따르는 것이요 세상의 초보적인 것들을 따르는 것이며,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멜리토가 어느 정도 성서 진리를 옹호하기는 했지만, 그는 여러 면에서 성서 진리를 배척하였습니다.—골로새 2:8.

[18면 삽화]

예수께서는 니산월 14일에 주의 만찬을 제정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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