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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느니라]”—무슨 의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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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1979
깨79 06월호 45-46면

성서의 견해 2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느니라]”—무슨 의미로?

한번은 예수의 제자 ‘빌립’이 이렇게 질문한 적이 있었다.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요한 14:8)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느니라].” (요한 14:9) 예수께서 하신 이 말씀은 무슨 뜻인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알기 전에, 예수의 말씀에 대한 특별한 설명을 고려해 보자. 일부 사람들은 예수를 본 자는 또한 아버지도 본 것이며 예수께서 그의 아버지 여호와와 온전히 동등한 전능하신 하나님임에 틀림없다고 믿는다.

그렇게 믿는 사람들은 또한 여호와 하나님께 적용되는 많은 성귀들을 “구약”에서 인용하여 그 귀절들을 그리스도인 성서 필자들이 (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적용시켰다고 믿는다. 예를 들어 보자. 예언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나 곧 나는 주니라. 나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 (이사야 43:11) 그리고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에서 「시편」 필자는 이렇게 말하였다. “대저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광명 중에 우리가 광명을 보리이다.” (시 36:9) 그러나, 그리스도인 성서 필자들은 인류의 구원자와, 생명과 빛의 원천이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한다.—요한 1:4; 5:26; 8:12.

이와 같은 유사한 귀절들과 하나님의 아들이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고 말씀하신 사실은 예수께서 전능하신 하나님임을 증명하는가? 함께 살펴보자.

성경은 여러 번 예수 그리스도를 수석 대표자로서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언급한다. (그 예로 요한 3:17, 28, 34; 5:23, 24, 30, 37을 보라.) 성서가 자주 다른 사람들을 대표하는 사람들을 마치 그들이 실제 본인인 것처럼 묘사하는 것은 흥미있는 일이다. 두 가지 예를 고려해 보자.

(1) 「마태복음」은 예수께서는 산상수훈을 말씀하신 후에 자기 하인을 낫게 해 달라고 “한 백부장이 나아와 간구하”던 ‘가버나움’으로 들어가셨다고 설명한다. (마태 8:5-13) 그러나 누가 7:1-10에 나오는 내용과 비교해 보면 우리는 그 백부장이 “‘유대’인의 장로 몇을 [예수께] 보내어 오셔서 그 종을 구원하시기를 청”하였다는 것을 보게 된다.

(2) 「마가복음」에서 우리는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주께 나아와” “주의 영광 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라고 요청한 것을 읽게 된다. (마가 10:35-37) 그러나, ‘마태’는 실제로 예수께서 이러한 요청을 한 사람은 그들의 대표자로서 “‘세베대’의 아들의 어미”였다고 한다.—마태 20:20, 21.

물론, 어느 누구도 이러한 성서의 내용이 그 당시 ‘유대’인 장로들이 그 백부장과 동등한 사람이었다거나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그의 아들들과 동등하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성서의 어떤 부분에서 여호와 하나님에 관하여 진술한 것들을 성서의 다른 부분에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적용시켰다고 해서 단순히 예수와 여호와 하나님과 동등하다고 결론지어서는 안된다. 이렇게 한 진정한 이유는 예수께서 하나님을 대표하셨기 때문이다.a

그러한 이유로 하나님의 아들은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고 말씀하신 것인가? 그렇다. 하지만 그 표현에는 단순한 대표 이상의 뜻이 내포되어 있다.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라는 요청은 ‘빌립’이 예수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고대에 ‘모세’, ‘엘리야’ 그리고 ‘이사야’에게 환상으로 보여 주었던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눈에 보이게 나타나시는 것을 원했음을 시사한 것이다. (출애굽 24:10; 열왕 상 19:9-13; 이사야 6:1-5) 그러나, 그러한 환상에서 하나님의 종들은 하나님의 본체를 본 것이 아니라 그분의 상징적인 대표들을 본 것이다. (출애굽 33:17-22; 요한 1:18) 예수의 대답은 ‘빌립’이 이미 그러한 종류의 환상보다 더 나은 것을 갖고 있음을 알려 주었다. 예수께서는 그의 아버지의 속성을 완전히 반영하셨으며, 아들만이 하나님을 온전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면 하나님을 본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마태 11:27.

예를 들면, 하나님의 아들이 행하신 기적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속성인 인간 복지를 위한 사랑과 동정어린 관심을 나타내 주었다. 예수께서 ‘갈릴리’의 ‘나인’ 성에서 과부의 죽은 아들을 부활시키신 후에 구경하던 사람들이 이렇게 외친 것은 하나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아보셨다.”—누가 7:11-16.

사람들이 ‘아버지를 볼’ 수 있는 (즉 그분의 성품, 뜻과 목적을 이해할 수 있는) 더 많은 기회들이 예수께서 말씀하신 바에 의해서 즉 말씀의 내용과 방법으로 주어졌었다. 예수의 말씀을 청종한 자들은 하나님께서 부, 교육, 형식적인 청결이나 국적과 같은 외적인 환경보다 그들의 마음 상태에 따라 사람들을 판단하신다는 것은 배웠다. (마태 5:8; 8:11, 12; 23:25-28; 요한 8:33-44)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가지고 있던 견해와 얼마나 다른가!—요한 7:48, 49에 유의하라.

또한 예수께서 말씀하신 방법은 그의 청중이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저희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으로 그들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소식을 듣고 있다고 느끼게 하였다. (마태 7:29) 예수께서는 (서기관들 가운데 있었던 관습처럼) 다른 인간 선생들의 이름으로 간접적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주 일인칭을 사용하시어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리고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고 말씀하셨다. (마태 5:20, 22; 6:2, 5, 16; 요한 1:51; 3:3, 5, 11; 5:19, 24, 25에 유의하라.) 한때 예수께서는 심지어 어떤 사람들의 죄가 사하여졌다고 말씀하셨다. 이 일은 일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만이 가지고 계신 유일한 권리를 침해한 것이므로 참람하다고 그분을 비난하게끔 만들었다.—마가 2:1-7; 누가 5:17-21; 7:47-49.

그러나 예수께서는 결코 하나님의 지위를 침해하신 적이 없으셨다. 그분은 자신이 말하고 행하는 권세가 자신에게서 나온 것이 아님을 기꺼이 인정하셨다.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셨기 때문에 그 권세를 위임받은 것이었다. (요한 13:3; 마태 11:27; 28:18; 요한 3:35; 17:2과 비교)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요한 5:19; 요한 5:30; 8:28, 42과 비교.

예수께서 행하신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과 온전히 일치하였기 때문에 예수를 본 자들은 하나님께서 행동으로 나타내시는 것을 보고 있는 것과 같았다. 요한 14:9에 대한 주석에서 성서 주석가인 ‘앨버어트 바네스’는 이와 같이 훌륭하게 표현하였다. “아버지를 보았다. 이 말은 하나님의 본질 즉 본체라고 할 수 없다. 왜냐 하면 그분은 볼 수 없는 분이시며 어느 때나 그런 식으로 하나님을 본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보였다고 말할 때 그것은 그분의 현시가 일부 이루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는 우리가 그분의 성품 그분의 뜻 그리고 그분의 계획을 배울 수 있는 그러한 전시를 뜻한다. ··· 물론 아들에 대한 지식이 곧 아버지에 대한 지식이었다. 그들의 본성과 목적에 있어서 친밀한 연합이 있었기 때문에 예수를 이해하는 사람은 또한 하나님을 이해할 수 있다.”—요한 10:30과 비교.

[각주]

a 대리인이 그들이 대표하는 자들로 말해진 또 다른 예들을 마태 10:40; 18:5; 누가 9:48; 요한 4:1, 2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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