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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우머’감—하나님의 선물
  • 깨어라!—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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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1981
깨81 02월호 22-25면

‘유우머’감—하나님의 선물

「깨어라!」 남‘아프리카’ 통신원 기

‘샘’의 출근은 또 지각이었다. 최근에 고용주로부터 최종 경고를 들었으므로, ‘샘’은 이번에는 매우 걱정이 되는 것이었다. 그는 사장이 해고 연설을 연습하고 있는 장면을 상상했다.

그리고 사실이 그러했다! ‘샘’이 35분 늦게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사장은 노기등등하여 그에게로 다가왔다.

‘샘’은 재빨리 생각했다. 그는 싱긋이 웃으면서 손을 내밀고 말했다. ‘처음 뵙겠읍니다. 저는 ‘샘 매이나드’입니다. 저는 아마도 35분 전에 비었을 일자리를 구하러 왔읍니다. 부지런한 새가 벌레를 잡는 법이니까요!’ 그의 직장 동료들이 와아 웃음을 터뜨렸다. 사장도, 웃음을 억제하지 못하며, 자기 사무실로 돌아갔다. ‘샘’은 ‘유우머’감 덕분에 그날의 위기를 무사히 넘겼다.

훌륭한 ‘유우머’감이 흔히 팽팽한 분위기를 가라앉힐 수 있다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유우머’는 역경을 대처해 나가도록 도와줄 수도 있다. ‘유우머’감은 사람들로 하여금 긴장을 풀고 웃게 할 수 있으며 따라서 건강에 유익할 수 있다. 「웃음과 건강」이라는 저서에서 ‘제임스 J. 왈쉬’ 박사는 웃을 때의 횡격막 상하 운동은 운동할 때와 비슷한 방법으로 내장 기관들에 영향을 준다고 설명하였다. 웃음은 심장, 간 및 내장에 좋은 영향을 미친다. 그것은 소화 및 노폐물의 제거를 돕는다.

‘유우머’란 무엇인가?

‘유우머’란 사물의 재미있는 혹은 우스운 면을 볼 줄 아는 능력이라고 일컬어진다. 익살스러움 또는 어리석음을 감지하는 능력에 호소하는 특성이라고도 일컬어진다.

어떤 것이 엉뚱할 때 또는 부적합할 때 ‘유우머러스’한 장면이 전개된다. 예를 들어, 접은 우산에다가 신문까지 옆에 낀 ‘런던’의 신사가 쩔쩔매며 바다를 걷고 있다면 그것은 어울리지 않는, 괴상한 장면일 것이며 구경꾼들에게 웃음을 일으킬 것이다. 또 다른 예로서, 고양이나 개가 학교 교실로 들어온다면, 이것은 참으로 큰 웃음거리일 것이다. 이런 동물은 보통 교실에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상황 ‘유우머’는 돌발 사건에 근거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한 남자가 어느 부인에게 인사하려고 모자에 손을 갖다 대는데 그 속에서 비들기 한 마리가 날아 나온다면 보는 사람들은 이런 돌발 사건을 보고 웃게 될 것이다. ‘나이지리아’에서 들어온 한 보고에 따르면 그곳 ‘아프리카’인들은 돌발적인 일에 대한 반응을 매우 스스럼없이 나타낸다고 한다. 그래서, 누가 ‘바나나’ 껍질에 미끄러지기라도 하면 그들은 대개 웃음을 터뜨린다. 그러나 그들은 또한 동정심과 염려를 가지고 즉시 달려가 그를 도와준다.

대부분의 ‘유우머’는 말로 표현된다. 말에 근거한 ‘유우머’는 국적, 사회 관습, 환경 및 다른 요인들에 따라 매우 다양하게 표현된다. 좀 더 지적이고 미묘한 종류도 있고, 익살맞거나 아니면 좀 더 조잡하고 거친 것도 있고, 날카롭고 신랄한(영어로는 흔히 “위트”라고 한다) 것도 있다.

또한, 한 민족의 사람에게는 재미있는 것이 다른 민족에게는 무의미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한 백인 선교인이 ‘아프리카’인 청중에게 연설을 하다가 ‘유우머러스’하다고 생각되는 말을 덧붙인 적이 있었다. 전혀 무반응이었다. 그후 그는 원숭이를 언급하였다. 통역은 구태여 그 단어를 번역하지 않고 단지 자기 팔을 들어서는 겨드랑 밑을 긁었다. 와르르르 폭소가 터졌다!

‘유우머’는 도대체 어디에서 유래하였는가?

하나님에게 ‘유우머’감이 있는가?

성서는 창조주께서 “행복하신 하나님”이시며 사람을 ‘자기의 형상대로’ 만드셨음을 알려 준다. (디모데 전 1:11, 신세; 창세 1:26) 모든 인류가 타고난, 행복할 수 있고, 즐겁게 놀 수 있고, ‘유우머’감을 즐길 수 있는 능력은 논리적으로 이 창조주로부터 나왔어야만 한다.

많은 동물들은 익살맞은 짓을 한다. 털실 뭉치를 쫓아다니는 새끼 고양이를 보고 웃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강아지들이 함께 노는 것, 원숭이들의 짓궂은 장난, 또는 앵무새들의 희극적인 말을 듣고 누가 웃지 않을 수 있겠는가? 여호와께서는 일부 동물들을 우리 인간에게 커다란 즐거움이 되도록 만드셨으며, 이것은 행복과 재미의 끝없는 근원이 되고 있다. ‘유우머’감은 분명 하나님의 선물이다.

각양각색의 언어 ‘유우머’가 어떤 한 나라 혹은 민족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민족들은 특정한 유형의 ‘유우머’와 다소간 결부되어 있다. 미국인들은 과장법, 즉 강조 또는 ‘유우머러스’한 효과를 노리는 고의적인 과장을 좋아한다고 한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것을 “고양이와 개가 쏟아진다”라고 하는 것이 한 예다. 또한 “우스워서 죽을 뻔했다.” “나는 천번이나 해봤다.”라는 표현도 있다. 이런 말들은 물론 문자적으로는 사실이 아니며 듣는 사람도 대개는 그렇다는 것을 안다.

영국인은 무뚝뚝한 ‘유우머’ 즉 뭔가 재미난 것을 말할 때면 언듯 생각난듯이 진지한 얼굴로 말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영국인은 또한 줄잡아 말하는 것을 좋아한다. ‘조지 마이크스’의 「‘유우머’에 바침」이라는 책은 이 점에 관해서 이렇게 말한다. “과소 표현은 단순히 농담의 한 가지 방법이 아니다. 영국에서는 이것이 하나의 생활 방식이기도 하다. 다른 민족들도 과소 표현 법을 사용한다.—영국인들만의 저작권은 아니다. 「뉴우욕커」지에 실린 한 만화는 두 사람이 공중 그네를 타다가 한 사람이 공중 30여 ‘미터’ 높이에서 다른 사람의 손을 놓쳐 버린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이런 얼빠진 실수를 저지른 남자가 말했다. ‘이크, 미안.’ 분명히 과소 표현인 것이며 그것도 미국판 과소 표현이었다. 그러나 다른 나라들의 경우 과소 표현은 우연하며 우발적인 것이다. 영국의 경우 이것은 국민성에서 유래한다. 그것이 보편적이다. 이 표현은 흔히 농담이라기보다 보통의 표현이다.”

과소 표현의 한 예로서 ‘조지 마이크스’는 다음의 예를 들고 있다. 기선 한척이 영불 해협을 건너고 있던 참이라고 그는 말한다. “다른 한 남자와 나만 갑판에 있었는데 맹렬한 폭풍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엄청난 바람이 산더미 같은 파도를 밀어오고 있었다. 우리는 한 마디 말도 없이 얼마 동안 그곳에서 나뒹굴었다. 갑자기 가공할 바람이 불어와 그 다른 친구를 배 밖으로 밀쳐내 버렸다. 배 아래 물 속에서 그의 머리가 단 한번 나타났다. 그는 나를 침착하게 쳐다보면서 대수롭지 않은 말투로 ‘좀 심한 바람이죠?’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아일랜드’식 ‘유우머’에는 독특한 맛이 있다. ‘스테펜 리코크’는 자기의 저서 「유우머」에서 이러한 예를 들고 있다. “‘맨 끝 객차는 기차에서 떼어 낼 것, 언제나 불유쾌한 충격과 진동을 받기 쉽기 때문임’이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또한, “‘패트’, 사다리를 내려오지 말게나, 내가 치워버렸으니 말야.”

상기 필자는 때로 음울하다는 평이 있는 ‘스코틀랜드’ ‘유우머’의 예를 들고 있다. “한 ‘스코틀랜드’인의 아내가 병이 나서, 죽은 것 같이 보였다. 장례식 때 교회뜰 문으로 관을 내가다가 관 멘 사람들이 우연히 관을 문기둥에 부딪혔다. 이 때의 충격으로 이 여인은 소생됐다. 관에서 꺼내낸 이 여인은 여러 해 동안 생존했다. 그러다가 이 여인은 다시 병에 들어 이번에는 진짜로 죽었다. 장례식 때 관이 교회뜰 문으로 다가가자 부인을 잃은 남편은 관 멘 사람들에게 ‘여보게들, 천천히, 천천히, 부딪히지 않도록 조심하게나.’”

‘스페인’의 ‘유우머’는 자조(自嘲)적인 성향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 「엘뜨리운포」 잡지의 한 만화는 두 사람의 대화를 실었다. 한 사람이 말한다. “지금은 문화가 유행하고 있지. 우린 교육성도 있고 ·⁠·⁠· 문화성도 있고 ·⁠·⁠· 그리고 대통령 직속의 문화 담당 고문도 있다구.” 다른 사람이 맞장구친다. “장하다! 이제 학교만 있으면 되겠군.” 자기의 약점을 두고 웃는 것은 ‘유우머’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면이다.

독일 사람들은 먹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이를 소재로 한 농담들은 잘 먹혀 들어간다. 예를 들어 독일에서 ‘여호와의 증인’의 여행하는 감독자 한 사람은 영적 양식을 정규적으로 섭취해야 할 필요성을 육적 양식을 정규적으로 섭취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예로 들어 설명하였다. “우리는 대부분 하루에 세끼씩 식사를 합니다.” 그는 말을 이었다. “물론 하루에 한번만, 아침부터 밤까지 먹는 사람들도 있기는 합니다만.” 독일인 청중들은 모두 폭소로써 이에 응답했으나 똑같은 예를 다른 언어 집단의 모임에서 사용했을 때는 전혀 무반응이었다.

‘나이제리아’인들은 호언장담을 좋아하는데 특히 ‘피진’ 영어를 쓸 때 그러하다. 멋지고 길다란 단어들을 잔뜩 섞어 연설하는 연사는 틀림없이 열렬한 반응을 얻을 수 있다. ‘요루바’족들 간에는 누가 상대방의 호언장담 능력을 끝나게 하느냐에 따라 싸움의 승패가 결정되는 때도 있다.

‘유우머’와 거짓 종교

‘유우머’는 매우 효과적으로 거짓 종교의 어리석음, 위선 및 겉껍데기 신앙을 폭로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예언자 ‘이사야’는 목공이 월계수를 베어서 그 중 일부로는 불을 피워 음식을 만들기도 하고 몸을 따뜻하게 하기도 하면서 “그 나머지로는 신상 곧 자기의 우상을 만들고 그 앞에 부복하여 경배하며 그것에게 기도하며 이르기를 너는 나의 신이니 나를 구원하라 하는도다.”라고 묘사하고 있다.—이사야 44:14-17; 예레미야 10:2-5 비교.

‘멕시코’에서는 종교적인 주제들도 ‘멕시코’인들의 활력넘치는 ‘유우머’ 가운데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들에게도 위의 「이사야」서의 비유와 매우 유사한 이야기가 있다. 천한 태생임을 알고 있는 사람을 비웃을 때는 이런 말을 하곤한다. “‘구아바’ 나무인 줄을 아는데 어떻게 그를 그리스도로 숭배할 수 있겠소?” 이 말의 유래는 이렇다. 한 사제가 지방의 어느 부자에게 그리스도의 상을 만들겠으니 나무를 좀 달라고 청했다. 사제는 ‘구아바’ 나무 조각을 받아서 상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후 미사 도중에 사제는 그 부자가 상을 보고 싱긋 웃는 것을 보았다. ‘미사’가 끝난 후 사제는 그렇게 숭배하는 법이 어디 있느냐고 하면서 그 부자를 책망하자 그 부자는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구아바’ 나무인 줄을 아는데 어떻게 그리스도로 숭배할 수 있겠읍니까?”

하나님의 선물을 남용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성에 관한 농담이 세계 도처에 만연되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 성서는 “추잡한 말”을 정죄하며, 그러므로 성서의 높은 표준에 따라 살고자 하는 사람들은 그러한 말을 피한다. (에베소 5:4, 공동번역) 그런 농담들은 그리스도인 사회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일종의 정신적 오물이다.

깨끗하고 건전한 농담 및 익살스런 이야기를 적당한 때와 장소에서 하는 것은 좋으며 이는 재미와 즐거움을 갖다 줄 수 있다. 그러나 농담은 도에 지나치게 되는 경우가 흔하다. 어떤 사람들은 익살스런 이야기들의 긴 목록을 가지고 있어서 이들을 이야기하는 데 많은 시간을 바친다. 성서는 이것 역시 경계한다. 현명한 왕 ‘솔로몬’이 전도서 3:4에서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다고 말한 것은 사실이지만, 2장 2절에서 그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내가 웃음을 논하여 이르기를 미친 것이라 하였[다].” 그의 말은 무슨 뜻인가? ‘솔로몬’이 웃음을 일컬어 “미친 것”이라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생각없는 웃음이 건전한 판단을 흐려 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유우머’는 사람들로 하여금 매우 심각한 문제를 가볍게 생각하도록 만들어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상하게 하거나 격분시킬 수 있다. 그러므로 ‘유우머’감은 여호와로부터 온 다른 많은 놀라운 선물들과 마찬가지로 남용될 수 있는 선물이다.

어리석은 웃음에 대하여 전도서 7:6은 말한다. “우매자의 웃음 소리는 솥 밑에서 가시나무의 타는 소리 같[다].” 가시나무는 좋은 연료가 되지 못한다. 탁탁 시끄러운 소리를 내면서 재빨리 타오르기는 하지만 흔히 솥 속에 있는 것을 익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가시나무의 요란하고 시끄러운 소리는 그러므로 쓸데없는 것이었음이 드러난다. 어리석은 사람의 천박한 웃음도 마찬가지다. 어리석고 떠나갈듯한 폭소 및 때에 맞지 않는 ‘유우머’는 감정을 상하게 하고 해를 끼칠 수 있다.

‘유우머’의 여러 면을 숙고함에 따라서 우리는 이것이 우리의 관대하신 천적 아버지로부터 온 기쁨의 선물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다. 그렇지만 이것은 적당하게 그리고 건전한 판단력에 일치하게 쓰여지지 않으면 안된다. 이렇게 할 때 ‘유우머’는 우리의 매일의 생활에 흥취와 생기를 더해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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