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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떻게 진정한 친구를 사귈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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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떻게 진정한 친구를 사귈 수 있는가?
  • 깨어라!—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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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급히 서두를 수 없는 일
  • “다른 사람들에 대한 능동적인 관심”
  • “마음에 이르는 길”
  • 충성스러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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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82 7/1 20-22면

청소년들은 묻는다 ·⁠·⁠·

어떻게 진정한 친구를 사귈 수 있는가?

‘제프’는 친구 사귀기가 간단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학교 다닐 때는 그도 어느 누구 못지 않게 친구가 많았다. 그러나 학교를 갓 졸업하고 다른 도시로 이사를 하자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일이 참으로 어렵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나는 극도로 고독했어요.” ‘제프’가 말했다.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데 필요한, 긴장을 풀고 편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솜씨를 지니지 못한 때문이었죠. 여섯달이나 머물렀는데 그것은 내 생애에서 가장 고된 기간이었어요.”

이 젊은이의 경험은 흔한 일이다. 독자가 청소년 중 하나라면, ‘제프’처럼 다른 도시로 가서 친구 없는 상태가 될 필요가 없으리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친구를 사귀는 일은 어려울 수 있다. 왜 그런가?

급히 서두를 수 없는 일

어떤 사람들은 진정한 우정a이 하룻밤 사이에 싹터 자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인스턴트’(즉석) 식품에서 ‘인스턴트’ 우정에 이르기까지—모든 것을 “인스턴트 서어비스”를 기대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진정한 친밀감이란 오랜 기간을 경험과 감정을 나눔으로써 오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을 시작하여 원만히 발전시키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특정한 기술이 있다. 이 기술은 대단히 강력한 우정을 세워 나갔기 때문에 친구들이 그분을 위해 기꺼이 죽기까지도 한 어느 분이 예시한 기술이다. 그분 역시 자기 친구들에 대한 깊은 사랑으로 말미암아 고통을 받고 죽으셨다. 이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신데, 그런 깊은 우정을 창조하기 위해 어떻게 하셨는가? 어떻게 우리는 이분을 모방하여 비슷한 성공을 거둘 수 있을 것인가?

“다른 사람들에 대한 능동적인 관심”

예수께서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셨다. 이분은 다른 사람들에게 나아가서 능동적으로 그들을 도우셨다.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이분의 관심은 생각 정도가 아니라 실제로 참여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니, 이는 그분이 “원”하셨던 까닭이다. (마태 8:3) 당시 이로 인해 깊은 우정이 이룩되었는데, 그 원칙은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예를 들어, 친구 사귀는 일에서 특별히 성공적인 현대의 한 젊은이는 어떻게 그렇게 했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는 예수의 다른 사람들에 대한 관심을 모방했다고 하였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진정한 사랑을 가지며, 다른 이들에 대해 능동적인 관심을 갖는 것”이라고 ‘데이빗’은 말했다. “가장 큰 것 중 하나는 그 사람의 이름을 아는 일이죠. 이름을 기억할 정도로 자기에게 관심이 있음에 사람들은 흔히 감명을 받게 됩니다. 이로 인해 어떤 경험이나 문제를 함께 이야기하게 되고, 우정이 세워지기 시작합니다.”

‘수동(手動) ‘펌프’처럼 외향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까? 그렇다면 난 안 됩니다!’라는 식의 반응을 보일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항상 이런 식으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예수께서는 ‘마음이 겸손’하셨고, 따라서 요란스럽거나 과시적이 아니셨다. (마태 11:28, 29)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 ‘이르는’ 것은 그들에 대한 진정한 관심이다. 이를테면, 묘목을 재배하여 팔던 보잘 것 없는 어떤 사람이 있었다. 한 이웃 사람은 그를 가리켜, “내가 만난 사람 중 가장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 종묘원 주인이 죽었을 때, 그의 장례식은 그 작은 동네의 역사상 가장 성대한 것이었다. 이유가 무엇인가?

“‘허버트’는 친구 사귀는 법을 알고 있었다”고 ‘앨런 로이 맥기니스’는 「우정의 요소」라는 자기 저서에서 회고했다. “그는 관심을 나타내는 원칙을 터득했고, 60년 이상이나 사람들을 첫째로 두었다.” 우리도 그렇게 하고 있는가? 물질적 재산에보다 사람들에게 더 큰 관심을 두고 일을 함께 함으로써, 우리는 많은 지속적인 우정을 발전시킬 수 있다. 때때로 친구와 함께 식사를 나누거나, 어떤 작업하는 것을 도와 주는 따위의 극히 단순한 일도 우정을 깊게 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마음에 이르는 길”

“너희가 어떻게 듣는가 스스로 삼가라”고 예수께서는 권고하셨다. 그분은 자기 소식을 듣고 따를 사람들에 대한 그 말씀의 가치를 알고 계셨다. (누가 8:18) 그러나 잘 듣는 자가 되는 것이 우정을 세워 나가는 데 또한 필수적이다. “어떤 때는 단지 들어 줄 사람이 아쉬울 때가 있어요.” 22세된 ‘가이’의 말이다. “기꺼이 들어 주려는 이 마음이 친밀감을 불러 일으키죠.” 그렇다, “마음에 이르는 길은 귀이다.”라고 쓴 ‘볼테르’의 글과 같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말에 진실한 관심을 기울이면, 그들은 대개 우리에게 이끌려 온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가 “자신의 일에 대한 [아마 우리가 말하고 싶은 것에 대한] 개인적 관심만이 아니라 남의 일에 대한 개인적 관심에도 눈을” 둘 것을 요구한다.—빌립보 2:4, 신세.

그러므로 이렇게 자문해 보라. 다른 사람들이 말할 때 나는 진정으로 듣고 있는가, 아니면 자신이 다음에 할 말을 생각하고 있는가?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이끌어 내기 위해 질문을 하는가? 몸짓이나 얼굴 표정으로 내가 대화에 참여하고 있음을 나타내는가?

충성스러울 것

예수께서는 친구들에게 충실히 고착하셨다. 그분은 “자기 사람들을 ·⁠·⁠· 끝까지 사랑”하셨다. (요한 13:1) 이를 깨달은 22세된 ‘고르돈’은 벗과의 가까운 우정을 이룩한 후 이렇게 말했다. “친구의 주요 특성은 충성심입니다. 나의 형편이 어려울 때 그가 진정으로 내게 고착할 것인가? 내 친구와 나는 다른 사람들이 흠잡는 이야기를 하면 서로를 변호합니다. 우리는 진정으로 서로를 지지합니다. 물론 우리가 올바를 때만 그렇습니다.”

위선과 험담으로 가득찬 오늘날 이런 충성심은 참으로 감사의 염을 불러 일으킨다. “친구를 망치는[험담으로 그의 명성을 “망치는”] 사람도 있고 동기보다 가까운 벗도 있다.”—잠언 18:24, 공동 번역.

감정을 나눌 것

자신의 가장 부드러운 감정도 기꺼이 드러내신 예수의 태도는 친구들로 그분을 따르게 했다. 때때로 그분은 ‘동정심을 느끼셨고,’ ‘사랑을 느끼셨으며,’ ‘깊이 슬퍼하’셨다. 그분은 최소 한번은 “눈물을 흘리”셨다. 예수께서는 자신이 신뢰하던 사람들에게 마음을 털어 놓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셨다.—마태 9:36, 신세; 마가 10:21; 마태 26:38, 신세; 요한 11:35.

우리의 감정을 편 책처럼 얼굴에 나타내고, 우연히 만난 사람에게 염려거리를 온통 쏟아 놓을 수 없음은 아주 당연하다. “합당하게 처신해야 해요” 14세 된 ‘펠리치아’의 말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정직하게 대해야 한다. 감정적 “가면”을 쓰면, 사람들이 거리감을 두게 된다. 만일 우리가 의미깊은 우정을 세워 나가고자 한다면, 다른 사람들에 대한 동정심 즉 “동료감”을 갖고, 그들과 함께 ‘고통을 겪을’ 수 있게 되는 것이 필수적이다.—베드로 전 3:8, 신세.

그러나 조심해야 할 일이 있다. 이성을 가까운 친구로 사귀게 되면 낭만에 빠져들 위험성이 항상 있다는 것이다. 감정적으로 상대방에게 기울게 되기가 십상이다. 그러므로 그런 경우 어느 한쪽이라도 결혼할 처지가 못 된다면, 말로 다할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입게 될 수 있다. 결혼 배우자를 고를 준비가 될 때까지는 동성 가운데서 가까운 친구를 구하는 것이 훨씬 낫다.

완전을 기대하지 말 것

친구를 사귀다 보면 때로는 거북한 경우가 생기게 된다. “우리는 모두 온갖 행로에서 잘못을 저지른다. 하지만 잘못된 것을 결코 말하지 않는다고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은 스스로를 완전하다고 여길 수 있다.” (야고보 3:2, ‘필립스’역) 친구를 사귀는 데 열심히 노력함으로써, 지속적인 많은 우정을 즐겨왔다고 증언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다.

우정이 이룩된 때에도, 완전을 기대하지 말 것이다. 시골에서 외아들로 자라난 어느 젊은이는 대도시 생활밖에 모르며 동기가 넷이나 되는 젊은이와 강력한 우정을 발전시켰다. 그들은 어떻게 그렇게 다른 배경에 대처했는가? “기꺼이 주고자 해야 합니다.” ‘프레슬리’의 말이다. “그것이 우정의 큰 부분이죠. 사물에 대한 우리 자신의 견해가 있겠지만, 친구의 감정과 의견에 기꺼이 양보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 이 모든 것을 위하여는 시간을 바쳐야 하고 감정을 교환해야 한다. 그러나 사랑하지 않는 것은 더 많은 것을 희생시키게 할 것이다. 공허하고 고독한 생활이라는 대가가 그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진실한 관심을 보이는 점에서 예수를 모방한다면 틀림없이 우리도 사람들에게 “너희가 ·⁠·⁠· 나의 친구라”고 하신 그분처럼 말할 수 있게 될 것이다.—요한 15:14.

[각주]

a 진정한 친구가 실제 무엇이고, 친구를 고를 때 선택적이 되어야 할 필요성에 대한 기사가 1982년 6월 15일호 「깰 때이다」지에 게재된 바 있다.

[20면 삽화]

친구를 사귀는데 어려움이 있는가?

[21면 삽화]

다른 사람들이 말할 때 진정으로 듣는가?

[22면 삽입 성구]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 같이 사람이 그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느니라.”—잠언 2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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