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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살기 위하여 생명을 취하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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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살기 위하여 생명을 취하는 길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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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52
파52 10/1 11-23면

살기 위하여 생명을 취하는 길

1. 우리는 어떻게 그 생명을 택하며 또한 누구에 조건에 따러 택하는가?

그러면 새 세상에서 살수 있는 생명을 어떻게 취하는가? 손을 높이 들므로 또는 “예”하고 웨침으로서 혹은 “주여 저는 살고 싶습니다”고 함으로서 취할수 있을까? 아니다. 우리가 현재 삶을 취함과 같은 방법으로서 할수 있는 것이다. 즉 호흡하며 마시며 먹으며 잠자며 일을 함으로서 할수 있다. 더 광범위로 말한다면 우리가 취하고 있는 활동으로서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 하여야 할것은 그 활동은 우리 마음대로 결정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육체가 명하는데 따라 활동하게 되는 것이다. 그 육체가 조건을 세워 그 요구에 일치될 것을 강요한다. 새 세상에서 생명을 취하는 것도 그와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다만 살고 싶다는 말로서만은 성립 될수 없으며 우리가 취하는 행동으로서 되는 것이다. 또한 그 행동도 각자의 의견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여호와 하느님은 새 세상을 주시며 거기서 살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시는 분이다. 그리하야 생명도 하느님께서 세우신 조건에 따라 주시게 됨으로 우리는 그 요구에 일치 되어야만 살수 있다. 그 요구에 일치 되는 행동을 거절하는 것은 영원한 생명 대신에 사망을 택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우리 육체가 요구하는 호흡을 거절하는 것이 우리의 육체적 조직에 사망을 가져옴과 똑 같은 것이다.

2. 어떤 사람은 무엇을 주장 하는가 그에 대한 적절한 담화는 무엇인가?

2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행하면 충분하며 인간에게 좋은 일만 하면 하느님의 은총을 얻어 영생을 얻으리라고 믿는다. 우리는 이 중대한 문제에 관하여 불완전한 인간의 소견에 따라 결정할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에 의거하여야 한다. 예수와 부자 청년 통치자와의 담화는 이 문제에 광명을 가져온다.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갈아대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있가? 예수께서 갈아사대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이는 오직 한분이시라 네가 생명에 들어 가랴면 계명을 지키라 갈아대 어느 계명이오니까? 예수께서 갈아사대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 하지 말라 거 증거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것이니라 그 청년이 갈아대 이 모든것을 내가 지켰아오니 아직도 무엇이 부족 하나이까? 예수께서 갈아사대 네가 온전하고져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어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내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쫓으라 하시니 그 청년이 재물이 많은고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여 가니라.”―마태 19:16-22.

3. 영생을 얻기 위하여 깨끗한 행위와 자선 사업 외에 또한 무엇을 행하여야 완전한가?

3 확실히 이 젊은 청년은 좋은 일을 많이 하였다. 그는 깨끗한 생활을 하였다. 살인이나 간음 또는 도적질도 하지 않었고 거짓말 쟁이도 아니였다. 그는 부모도 존경하고 이웃 사람도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며 자선 사업도 많이 하였을 것이며 그의 평판은 이웃까지 널리 전하여 젔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그에게 또한 말한바 “네가 온전 하고져 할진대” 이 말은 확실히 그의 깨끗한 개인적 행동과 그의 자선 사업으로 말미 암어 평판은 높았을 지나 여호와 하느님의 요구에 일치되어 영생을 얻기에는 아직 완전치 못하였다. 그는 그 재산을 돌보기 위하여 많은 시간과 노력을 소비하는 큰 짐을 벗어 놓아야만 하였다. 하느님의 요구에 일치하여 영생을 얻을만한 충분한 봉사를 하기 위하여 그 재산을 운영할 부담과 근심으로 부터 해방 되어야 하였다. 그는 그리스도의 추종자가 되어야 하였다. 다시 말하면 그는 하느님의 말씀을 배워 하느님의 뜻을 살펴 그 뜻을 행하도록 헌신하여 크리스찬의 모범이며 표본인 예수의 발 자최를 조차 왕국 복음을 전파 하여야만 되였다.―베드로 전서 2:21.

4. 어떤 사람들은 무엇을 행하면 충분하다고 주장하는가? 그러나 그것 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4 많은 사람들은 말하기를 자기 몸같이 이웃을 사랑하면 즉 무사적으로 이웃에 대하여 선한 일을 하면 여호와의 요구에 일치 된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참된 말이 아니다. 왜나하면 예수께서 말씀 하시기를 “네 마음을 다하며 목슴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라” 하신후에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다. 많은 사람이 잘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은 여기 표시된 바와 같이 이웃에 대한 사랑이 여호와의 요구 조건의 맨 나종에 있는 것이다. 우리가 첫째로 바칠 사랑은 여호와께 대한 것이며 또한 그 사랑은 온 마음과 온 목슴과 온 힘과 온 뜻을 다하여 바칠 것인바 어떠한 것으로 말미암어 제한되거나 갈라 질수 없는 것이다. 그러면 이 사랑은 어떻게 완전히 바칠수 있는가?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라.” 첫째로 이것을 행하고 둘째로 이웃을 사랑함으로 하느님의 요구에 일치된다. 예수께서 그와 같이 순종하는 자들에게 일른바 “이것을 행하라 그러면 너희가 생명을 얻으리라” 하셨다.―누가 10:27, 28; 요한 1서 5:3.

5. 자기 개인의 뜻을 쫓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 이유는?

5 누구든지 자기 양심에 따라 선한 일을 행하면 하느님의 뜻에 일치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자기가 이기적인 길을 걷는 것을 연명하는 것이며 자기 생각의 종이 된것을 타당화할려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은 자기 생각의 종이 되며 이기적 마음을 타당화 할려는 것 보다도 더 악한 것이다. 서슴지 않고 말한다면 자기 생각에 따라 선한 일을 행하면 충분 하다고 하는 것은 ______한 우상숭배와 조곰도 다름 없다. 이 ____ 이스라엘 왕 사울이 여호와 하느님의 뜻보다도 자기 개인의 ______ 따라 행하였을 때에 명백히 ____________ 삼우엘은 사울에게 말하기를 “고집은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하였다. (사무엘 상 15:23) (듀웨이 역) 이와 같은 것이 골로새 3장 5절과 에베소 5장 5절 (미현대역)에도 있는바 탐욕으로서 자기 사욕을 채울려는것은 우상 이라는 것이 명시되어 있다. 완고히 고집을 세워 자기 뜻을 하느님 뜻보다 높여 하느님 뜻에 순종하지 않고 자기 뜻을 쫓는 것은 가장 어리석은 자살적 행위로서 자기 뜻을 우상으로 섬기는 것이다.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서 멀리 하라” 하였다. 그 속에는 개인적 헛된 생각도 포함되어 있다. (요한 1서 5:21) 고로 다만 우리가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이웃에 행하는 것은 여호와의 새 세상의 생명을 취하는 길이 아니다. 오히려 우상숭배의 교묘한 옭무에 걸린 것이다. 그 옭무는 사탄으로 말미암은 것이며 인간의 허영심과 자만심으로 조장되는 것이다.

어떠한 종교에 속하여 있는 것으로 서는 충분치 못함

6. 어떤 사람들은 무엇을 주장하는가? 그렇게 행함을 무엇을 우상으로 섬기게 되는가? 그리하여 무엇에 실패 하는가?

6 그러나 어떤 사람은 또 말하기를 “숭배에 관하여 나는 조곰도 나의 생각을 우상으로 만들지도 않으며 또한 나의 뜻대로 행하는 바도 없으며 사회에서 모다 인정하고 있는 교회 단체에 속하여 있으며 그 단체에서 가르치는 것을 순종하며 나의 일상 생활을 그 훈계에 일치시키고 있다. 내 생각은 누구든지 많은 종교 가운데서 어느것이 든지 하나를 택하여 그 하나에 충실하면 여호와 하느님께서 기쁘게 보실것이다” 라고 한다. 이러한 생각은 과연 정당한가? 만일 어떠한 종교 단체에서 성경에 기록된 하느님의 뜻대로 순종치 않으며 그 뜻대로 행하지도 않고 자기들의 신조만을 실행한다면 그 행위는 자기 자신의 생각을 쫓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조곰도 다름 없이 그것도 또한 우상 숭배다. 다만 이번에 다른 것은 자기 자신을 우상으로 한것이 아니라 하나의 조직을 우상으로 한것이다. 이 중대한 문제에 관하여 하느님께서 그 아들을 통하여 말씀 하신 것을 다시 읽어 보면 다음과 같다. “나다려 주여 주여 하는자 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오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자 라야 들어가리라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다려 일아대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예언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 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 내가 저희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모지 아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라 하리라.” 또 예수께서 계속 하여 말씀하신 바 예수의 가르침을 쫓아 행하는 자는 바위 위에 집을 세우는 자와 같아서 강한 폭풍우 속에서도 그 짐은 너머 가지 않는다 하였다. 그와 반대로 예수의 말씀의 가르침을 따라 행하지 않는자는 모래 위에 집을 세우는자 같아서 그 집은 폭풍우 가운데서 너머 가리라 하였다.―마태 7:21-27.

7. 영생을 얻는길에 있어 무엇을 행하여도 충분치 못한가?

7 만일 사람이 그의 사업을 나쁜 기초 위에 세우면 그 일은 오래 계속되지 못할 것이다. 만일 어떤 동료의 집이 하느님의 말씀으로 된 굳은 토대 위에 세우지 않고 전설이나 어떠한 신조와 같은 모래 위에 세운다면 아마게돈의 폭풍우에는 온전히 쓸어질 것이다. 어떤 사람이나 혹은 어떠한 조직이 입설로만 하느님과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것으로 만은 충분치 못하다. 하느님의 이름으로서 자선사업이나 종교적 의식을 행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또한 어떤 종교 조직이 결정한 여러가지 형식의 행사를 하는 것이 하느님을 기쁘게 하는 것도 아니다. 표면적으로 입술로의 봉사나 의식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자가 영생을 얻게 된다. 만일 종교조직이 하느님의 뜻을 가르치지 않으며 그 뜻대로 순종치 않는다면 그 종교 조직에 속한 신자들이 그 종교 조직의 뜻에 아모리 충실하게 순종 하여도 그것 또한 목적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서 아모리 많은 일을 하였다 주장하여도 그것은 다만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라” 하신 그리스도의 대답을 얻을것이다. 하느님의 뜻에 일치되는 것은 합법적이다. 그러나 개인이나 조직의 뜻은 여호와 앞에서는 불법이 된다.

8. 열매를 맺지 않는 거짓 종교 조직과 맹목적인 추종자 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8 마태복음 15장 12-14절의 기록을 보면 “이에 제자들이 나와 갈아대 바리새인들이 이 말씀을 듣고 걸림이 된줄을 아르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심은것 마다 내 천부께서 심으시지 않은것은 뽑힐 것이니 그냥 두어라 저희는 소경이 되어 소경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 하였다. 바리새인들은 그 당시 인정 받은 종교 조직의 으뜸이었다. 그리하여 그들 중 얼마는 그리스도를 믿었다 하는 기록을 보아 바리새인 중에 얼마의 그들의 추종자들은 충실 하였다는 것을 짐작할수 있다. (사도 6:7; 15:5) 그들은 어떠한 종교조직에 속하여 있기만 하면 그것으로서 충분하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가지고 언제까지나 바리새교를 고집하려고 하지 않었다. 그들은 그 종교 조직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알었을 때에는 그것을 포기하였다. 그들은 하느님께서 심으시지 않은자는 뽑혀 멸망될 것과 눈먼지도자와 그 추종자들은 다 함께 멸망의 구덩이에 떠러질 것을 알었든 것이다. 만일 이러한 종교적 실물 즉 종교조직이 여호와의 뜻과 요구에 일치하여 하느님께 영광의 열매를 맺지 않는다 면은 베어 버리게 되어 뿌리나 가지가 남지 않을 것이다.―마태 3:10.

9. 새로운 종교를 시작하는것이 얼마나 가증한 것인가를 무엇이 증명하는가?

9 기록된 하느님의 말씀과 뜻에 반대하여 누가 새로운 종교를 시작할수 있겠는가? “우리나 혹 하늘로 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라고 영감을 받은 바울은 기록 하였다. (갈라디아 1:8) 만일 하늘로 부터 나려온 높고도 힘 있는 천사일지라도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게될 것이면 하물며 지상의 인간이 그러한 일을 시작하여 저주를 면할수 있겠는가? 복음을 전하는 자가 아모리 성실히 전하였다 하여도 기록된 여호와의 말씀과 다른 것을 전할 때에는 그는 하느님 앞에 악을 행하는 것이 된다. 성실은 악한 것을 옳은것으로 만들수 없다.

성실만으로 서도 충분치 못함

10. 성실과 열심 만으로서는 불 충분 하다는 것은 무엇이 입증 하는가?

10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치 않는 종교 조직에서 아무러 성실과 열심도 충분치 못하다는 것을 로마서 10:2, 3에 명시 하였다.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느님께 열심이 있으나 그 열심은 정확한 지식을 쫓은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느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 하였나니라.” 이 사람들은 열심과 성실을 바치나 그것이 하느님의 말씀의 정확한 지식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들은 하느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애를 쓴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종교적 관념을 고집하여 자부하며 또한 그것을 열심히 입증할려고 노력 함으로 그들은 하느님의 의와 하느님의 말씀에 어기게 된다.

11. 로마 10:2, 3은 오늘날의 거짓 종교에 어떻게 합당한가? 또한 그들은 심지어 어떠한 일까지 행하는가?

11 오늘날 이처럼 잘못된 길을 걷고 있는 많은 거짓 종교가 있다. 그들은 각각 자기의 신조와 자기의 교리적 신앙을 가지고 있다. 그리하여 그들의 교리를 지지하기에 편리한 성경 구절만을 뽑아 내고 자기들의 교리에 합당치 않은 구절은 제외하여 버린다. 그들은 자기들의 신앙을 옳은 것으로 결정하여 그것을 열심히 주장한다. 하느님의 말씀으로써 결론을 얻으려고도 하지 않고 또한 성경 전체로 부터 옳은 것을 찾으리라고 하지 않고 다만 자기네들의 목적에 합당한것 만을 택하고 합당치 않은 것을 억지로 해석을 부치려고 한다. 그리하여 사사로히 풀수도 없고 가감할 수 없는 순결한 성경의 진리에다 신앙을 세우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겸손함이 없으며 또한 가리침에 귀를 기우리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들은 교만하며 완고하며 잘못된 것을 용서 할줄 모른다. 그들은 자기네 종교적 신조를 끝끝내 고집하여 그들 자신을 우상 숭배로 만드러 버리고 만다. 또한 그들은 심지어 참된 여호와의 증인을 죽이기 까지 한다. 그러한 일을 행하는것을 하느님께 참으로 봉사하는것 같이 생각하고 있다. “때가 이르면 므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느님을 섬기는 예라 하리라 저희가 이런 일을 할것은 아버지와 나를 아지 못함이라”고 예수께서 말씀 하셨다. 그들이 아모리 성실할지라도 살인자를 의롭게 만들수 없다.

12. 어찌하여 오늘날 성경은 그처럼 필요한가?

12 만일 성실로 말미암어 모든 일이 해결 된다면 하느님께서 어떤 연고로 귀찮게 그러한 성경을 마련 하셨는가? 하느님께서는 각 사람의 마음을 보시며 그 사람의 성의와 무성의에 따라 심판하시며 구원도 하시고 멸망도 하신다. (사무엘 상 16:7) 그러나 정확한 지식이 필요하다. 이 지식이 부족할 때에는 자칭 여호와의 증인들에게도 멸망이 왔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음으로 망하는 도다 네가 지식을 바렸으니 나도 너를 바리리라.” (호세아 4:6) 그처럼 여호와 하느님 께서는 우리를 인도하기 위하여 성경을 준비하셨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오 내 길에 빛이니이다.” (시편 119:105; 예레미야 10:23) 성경은 인간적 생각이나 개인의 뜻이나 종파적 신조 앞에 양보할 만치 힘 없고 불 필요한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교국의 많은 종파는 모다 한 구원의 장소에 이르는 여러 갈래의 길이라 할수 없다. 사망으로 이르는 길은 넓어서 수백종의 종파와 교리를 포함할수 있으나 생명으로 이르는 길은 좁고 험하여 성경의 교훈과 조곰이라도 다르면 용납되지 못한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드러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험하여 찾는 이가 적음 이니라.”―마태 7:13, 14.

13. 그리스찬이 갈 길을 알리는 지도는 무엇인가? 많은 거짓 종교의 길은 어떠한 길이며 결국 어데로 가는가?

13 각각 다른 많은 자동차 길이 같은 지점에 이르지 못함과 같이 각각 다른 많은 종교적 길이 같은 장소에 이르지 못한다. 먼저 인용한 예수의 말씀은 많은 종교가 멸망의 종점으로 달리는 길인것을 잘 표시 하셨다. 성경은 크리스찬이 거러갈 도로의 지도이며 생명에 이르는 좁은 길과 멸망으로 이르는 넓은 길을 지적한다. 많은 종교 조직은 의식과 신조로서 꾸며진 종교적 도로를 성경 위에 두려고 노력하고 있다. 멸망의 길은 거짓 종교를 죄다 포함 하리 만치 넓은 것이다. 그러나 생명에 이르는 길은 협착하여 그들중 하나도 합당되지 못한다. 그들이 구원의 길이라 하여 부뜰고 있는 전통과 신조는 넓고 유혹적인 길이다. 그러나 그 종점은 사망이다.

14. 어떠한 질문에 대하여 어떠한 예를 들수 있는가?

14 다음 설명을 심중히 생각하여 보라. 한 사람이 어떠한 목적지 를 향하여 자동차로 여행을 한다 하자. 그사람은 도로의 지도는 가지고 있었으나 귀찬케 생각하여 그 지도를 보지 않고 다른 사람이 가르키는 것을 맹신하여 그것을 옳은 줄로만 알고 달린다 하자. 그러나 그길이 다른 길이라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때에 그 사람이 그 잘못된 길이 자기가 목적한 곳에 통할 것이라고 믿고 자동차를 몰진대 그가 다만 성실 하다는 것이 그의 잘못된 길을 목적지로 향하는 길로 변갱 시킬수 있을 것인가? 만일 그가 잘못된 길을 달리고 있으나 잘못된 것을 알지 못할 때에 다른 사람이 옳은 길을 알려주면 그는 감사의 마음을 표시할 것인가? 혹은 성을 낼것인가? 또는 편역된 사람이라 하겠는가 또는 그 사람이 몬저 길을 잘못 가리켜 준 사람을 미워하기 때문에 그러한 말을 한다고 하겠는가? 만일 그때에 지도를 펴 놓고 잘못된 것을 지적하면 그것을 믿을것인가? 혹은 그 잘못된 것을 거절하고 완고와 교만한 마음으로 여전히 그 잘못된 길을 달릴 것인가? 그러한 어리석은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15. 잘못된 종교적 길을 걷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의 지도를 모르고 어리석은 일을 행한다는 것을 이 예로서 어떻게 설명되는가?

15 그러나 잘못된 종교의 길을 걷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그와 같이 어리석은 일을 실지 행하고 있다. 그들은 하느님의 길을 가르킨 성경에 의하여 인도를 받고 있지 않고 그 대신 자기자신의 생각이나 어떠한 목사의 지도나 혹은 어떠한 종교 조직의 지도에 순종하고 있다. 또한 그렇게 함으로써 천당에 갈줄만 믿고 있다. 그들이 잘못된 길을 걷고 있는 것을 알려주라. 그들이 신조에 마취된 것과 다 아는체 하는 교만심과 완고한 고집쟁이가 된것을 깨우치라. 그들이 가지고 있는 성경을 열어 다음 구절을 읽게 하라. “범죄한 영혼은 반듯이 죽으리라.” 그러나 그들은 영혼 불멸을 주장할 것이다. 그러면 다음 구절을 읽게 하라. “그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도라가서 당일에 그 생각이 소멸 하리로다. … 죽은자는 아무것도 아지 못하나니라.” 그러나 그들은 죽은자가 의식이 있다는 종교 교리를 떠나지 못할 것이다. 또 그들에게 “죄의 값은 사망이라”는 구절을 읽게 하라. 그러나 그들은 죄의 값은 영원한 고초라는 종교적 신조를 버리지 못할 것이다. 또 “땅은 영원히 있도다”라는 것을 읽게 하라. 그러나 그들은 지구가 타서 없어진다는 목사의 말을 굳게 믿는다. 그 길을 명시한 지도 즉 성경으로서 그들에게 참된 숭배의 길을 공손히 알려주라. 또한 그 참된 길이 거짓 종교 지도자들의 전통과 교리로 말미암어 가리워 질수 있다는 성경의 경고를 보여주라. 그래도 그들은 잘못된 길에서 돌아슬 것을 거절하고 울분과 완고와 교만으로서 그 마음의 문을 꼭 닫어 버린다. 그들은 실로 성실한가? 아마 그럴지 모른다. 그러나 명심할 것은 소경의 인도를 받는 소경은 그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하고 멸망의 구렁텅이에 빠지고 말것이다.―시편 146:4; 전도 1:4; 9:5; 에스겔 18:4; 마태 15:1-9; 로마 6:23.

16. 성실만으로서는 불 충분 하다는 것을 어떠한 성경 구절이 명시하고 있는가?

16 성실 만으로서는 불 충분하다는 진리를 명시하는 허다한 성경구절이 있다.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 악을 행하는 자는 그 행위의 열매를 거두게 되나니라.” (잠언 14:12, 14) 옳다고 생각하는 길도 사망으로 이르는 길이 있다. 다만 옳다는 생각은 그 악한 길로 말미암은 화를 면하게 하지 못한다. “미련한 자는 자기 행위를 바른 줄로 여기나 지혜로운 자는 권고를 듣나니라.” (잠언 12:15) 허다한 옳바른 권고의 원천은 하느님의 말씀이며 지상의 참된 여호와의 종은 이 권고에 유의하며 그것을 널리 전하고 있다. 지혜 있는 자는 귀를 기우려도 어리석은 자는 지고한 마음으로 제 고집대로 행한다. “지혜를 늘리는 자는 그에게 한 벗이 되며 …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을 세우나 오직 여호와의 뜻만이 서리라.” (잠언 19:8, 21, 모팟역)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 자신의 벗이 되려면 우리는 지혜로워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의 생각과 계획으로 말미암어 하느님의 뜻을 어기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우리가 어떠한 것을 꾀할지라도 여호와 하느님은 우리의 계획으로 말미암어 속박되는 일이 없다. 여호와께 순종하는 자에게 생명을 주시는 것이 여호와의 목적 이시면 자기 자신을 쫓는 자에게는 생명을 주시지 않는다. 또한 이 구원에 대한 목적을 반듯이 성취될 것이다.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다 정직 하여도 여호와는 사람의 생명을 판결 하시나니라.” (잠언 21:2) 그런고로 인간이 생명을 얻는가 또는 사망에 이르는 자를 결정 짓는 것은 사람의 성의로서 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뜻으로 되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아모리 성실한 자라 할지라도 거짓 종교가 만들어 놓은 사망의 길로 하여금 여호와 께서 예비하신 새 세상의 영생길로 변갱 시킬수는 없는 것이다.

생명을 택하는 길

17. 무엇을 근거로 하여 사람은 옳은 길을 찾을수 있는가? 그리하여 모든 사람은 그것을 배우려 시간을 내는가?

17 우리가 새 세상에서 생명을 얻을수 있는 옳은 길로 인도를 받으려면 어떠한 행동의 코-쓰를 취할것인가? 그 코-쓰는 가톨릭 사제가 말하는 것도 아니오 신교도의 전도인이나 유대교의 랍비(스승)가 가르치는 것도 아니오 또한 여호와의 증인의 한 사람이 말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또한 이 세상 통치자가 말하는 것도 아니고 신문이나 라듸오나 테레비죤에서 듣고 보는 것도 아니다. 또한 우리 마음에 주입 시킬려는 여러 가지 선전도 아니다. 그것을 사람이 말하는 것이 아니다. 여호와 하느님 자신이 말씀 하시는 것이다. 하느님 자신이 잠간 말씀하게 하라. 하느님 자신의 말씀을 들어보라. 성경을 연구하라.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나는 매우 바뿌다”라는 구실을 부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사람은 신문을 읽고 라듸오를 듣고 테레비죤을 보고 소설을 읽고 영화를 구경 하는등 기타 여러가지 방법으로 이 세상 쾌락을 찾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시간을 허비할 것인가? 그들은 매우 어리석은 가치 판단을 한다. 어떤 사람은 외과 의사가 되기 위하여 7, 8년 연구한다. 그러나 여호와의 종이 되기 위하여서는 7, 8분의 여유를 내지 못한다. 그들은 월급이나 좀 오를만 한 곳에는 항상 눈을 두고 있으나 영생의 지침인 성경에는 전혀 백지다. 돈이라도 좀 생기는 일에는 한 마듸도 노칠 새라 하고 들으려 하나 하느님의 말씀이 시작되자 그는 귀먹어리가 되어 버린다. 그러나 또한 지상에 있는 수억만의 사람중에는 수십만의 사람들이 많은 시간을 소비하여 생명을 얻기 위하여 배우며 들으며 공부하고 있다.

18. 온유한 사람들은 새 세상의 생명으로 인도하는 어떠한 길을 발견 하는가?

18 이와 같이 온유한 사람들이 연구 할 때에 그들은 그리스도의 왕국만이 인간을 구원하는 유일한 희망인 것을 배우며 이 보이지 않는 왕국이 하늘에 건설 되였을때 땅에 발생되는 징조를 알게 되여 또한 이때야 말로 사탄의 세상의 마지막 때인 것과 여호와의 새 세상이 오고 있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하여 그들은 이 기쁜 소식을 거리에서 집집을 방문 하면서 가정에서나 공적 집회에서 널리 전하고 있다. 예수께서도 그처럼 행 하셨다. 그의 추종자들도 그와 같이 행하는 것이 당연하다. (마태 24:14; 누가 8:1; 13:26; 사도 5:42; 17:17; 20:20) 그 충성된 행로에는 박해가 있다. 그러나 끝까지 인내하는 자는 새 세상에서 영생을 얻게 된다.―마태 5:10-12; 24:9-13; 디모데 후서 3:12; 4:2.

19. 새 세상의 생명을 원하지 않는자는 어떠한 사람들 인가?

19 새 세상에서 생명을 얻기 전에 닥쳐오는 박해를 누구나 다 참을수 없다. 또한 모든 사람이 다 새 세상의 생명을 원하고 있지 않는다는 것을 알어야 한다. 만일 그들이 이 세상 희락을 좋와하여 담배 연기를 자기 폐속에 담북 채운다 든지 마취제를 코로 드리킨다든지 알콜을 물먹듯이 드려 마신다든지 또한 한 수가락도 더 먹지 못 하리만치 기름진 음식으로 배를 채운다 든가 하는 사람들은 새 세상을 원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또한 이웃 유부녀를 원하며 자기 처와 이혼 할것을 꾀하든가 이웃 사람의 물건을 훔처 내려 하거나 대포나 수류탄으로 사람을 죽이거나 폭탄으로 부인이나 아해들을 죽일것을 원하는 자들도 새 세상을 원하지 않는다. 또한 그들이 다른 사람에게는 손해를 주든 말든 자기만 돈을 많이 모으려 하든지 또한 호화로운 교직자가 되어 많은 사람의 찬사를 받으려 하든지 또한 뽐내는 군인이 되어 많은 사람에게 호령하며 사람들을 죽이는 것을 좋와하는 사람들도 새 세상에 대한 애착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 이러한 행동은 전혀 새세상에서는 볼수 없다.

20. 그러면 생명을 원하는 사람은 어떠한 사람인가?

20 그러나 그와 반대로 그 사람이 이 땅을 정복하여 산물이 많이 나게하고 아름다운 공원을 만들며 사막에서 꽃이 필것을 원하며 가시나무나 찔레 대신에 잣나무와 화석류가 날 것을 원하며 또한 깊은 밀림지대나 산악지대를 적당히 보존하여 많은 짐승의 거처로 만드러 그들로 말미암어 여호와께 영광을 드리게 될것을 원한다면 그는 새 세상을 원하는 사람이다. 그가 총이나 채찍이나 방맹이 대신에 사랑과 신의로서 동물을 다스릴 것을 원하며 또한 곰이 송아지와 함께 누우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먹으며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을 평화스러운 때를 원하며 그 동물들이 어린아해 손에 끌리는 날을 볼것을 원한다면 그는 새 세상을 원하는 사람이다. 또한 칼과 창을 처서 보습과 낫을 만들며 군사 훈련 학교도 없고 전쟁도 배우지 않고 폭탄도 만들지 않고 전쟁 선동자가 없을것을 충심으로 원한다면 그는 새 세상에서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이다. 왜냐하면 새 세상에서는 그대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또한 압제적인 정치 지배가 소멸되고 상업적 탐욕도 없어지고 각사람이 자기 포도 나무와 무화과 나무 아래서 평화 스럽게 살며 어린이들의 기뻐 뛰여 노는 소리가 여기 저기서 들리며 새들은 유쾌한 노래로 재재 거리며 바람에 불려오는 꽃 냄새는 마음을 상쾌 하게 하는 등 닥쳐오는 새 세상의 광경은 생각만 하여도 가심을 울린다. 절름바리가 사슴같이 뛰며 벙어리의 혀가 노래하며 소경의 눈이 밝으며 귀먹어리의 귀가 열리게 되며 애통하는 소리가 미소로 변하며 눈물과 신음소리가 웃음으로 변하며 애통과 사망은 건강과 영생으로 바뀌어지는 날을 충심으로 원한다면 그 행복스러운 상태가 영원히 계속되는 새 세상에 들어가는 것을 방해하는 장해물이 하나도 없을 것이다.―이사야 2:4; 11:6-9; 35:1-10; 55:13; 65:17-25; 묵시 21:1, 4.

21. 우리는 무엇을 기뻐 행할 것인가?

21 우리는 오늘날 24시간의 하루를 거이 다 우리가 사는데 소비하고 있다. 그중 8시간은 수면에 소비하고 또한 8시간 이상은 노동에 소비한다. 그러나 그것은 고통과 실망에 가득찬 인생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품을 얻기 위하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새 세상의 생명을 얻기 위하여 몇 시간이나 바쳐야 할 것인가? 하로에 8시간을 바칠 것인가? 우리는 낡은 세상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하여 8시간 노동을 하나 새 세상의 생명은 낡은 세상의 생명의 3배의 가치가 있다. 하여 24시간 일을 할것인가? 아니다. 3배란 당치도 않은 말이다. 백 배 천 배 이상의 가치가 있는것이다. 새 세상의 생명은 현세의 생명과 족히 비교할수 없다. 우리는 그것을 얻기 위하여서는 아무것도 아낌없이 모든것을 바쳐야 한다. 그 길은 우리 마음에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성실히 행하는 것도 아니오 정통파나 기타 종교 조직의 숭배의 형식에 충실히 순종하는 것도 아니오 다만 성경에 기록된 하느님의 뜻을 성실히 행함에 있다는 것을 잘 인식하여야 한다. 그것만이 새 세상의 생명에 도달하는 코스인 것이다. 예수께서 온 백성을 목자가 양과 염소로 갈라내는것 같이 심판하시는 오늘날에 있어 온 백성은 각자에 영원한 운명이 오늘날 결정되고 있다는 것을 잘 알아야 한다. 그들이 지금 행하고 있는 것과 또한 행하지 않는 것으로 말미암어 그들이 생명을 취하고 있는가 혹은 사망을 취하고 있는가가 결정되는 것이다. (마태 25:31-46) 지금이야 말로 그것을 택할 때다. 당신은 지금 생명과 사망중 그 어느것을 택하고 있는가? 당신이 걷고 있는 코-스는 곧 그 답이 될 것이다. 당신의 코-스는 어떠한 답을 줄것인가?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유할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거할자 누구오니까?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일삼으며 그 마음에 진실을 말하는 자나이다.―시편 15:1, 2, 미표준역.

    한국어 워치 타워 출판물 (1952-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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