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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느님은 참되시다 할지어다 제 9장 三位一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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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느님은 참되시다 할지어다 제 9장 三位一体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52
  • 소제목
  • 성령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52
파52 10/15 1-11면

하느님은 참되시다 할지어다 제 9장 三位一体가 있는가?

1. 삼위일체 교리의 정의(定義)를 말하라.

“성 삼위일체”는 소위 그리스도 교국의 기본 교리의 하나로 되어 있다. 그것이 성경적 진리로 인식되어 수 많은 사람들로 말미암어 거룩히 여기게 되었다. 이 교리는 간단히 말하면 하나의 하느님속에 세개의 하느님이 있다는 것인데 즉 “아버지신 아들신 성신” 이 셋이 힘과 본체와 영원성에 있어서 동등하다는 것이다. 천주교 백과사전을 보면 “축복된 삼위일체”라는 제목 밑에 “삼위일체는 기독교의 중심교리를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한 말이다 … 한 신성(神性) 속에는 삼위 즉 아버지와 아들과 성신이 있다. 그러나 이 셋은 각각 구별되어 있으며 아다나시아 신조에 있는 ‘아버지도 신이고 아들도 신이고 성신도 신이다. 그러나 세신이 아니라 하나의 신이다’라는 말과 같다” 하였다.

2. 어떠한 점에서 하느님이 이러한 혼돈의 교리를 지으신 분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는가?

2 그러한 교리는 그 설명 자체가 매우 혼돈되어 있다. “신비 또는 오묘”라는 말로 변명한들 만족을 얻을수 없다. 누구든지 사도의 말과 같이 “하느님은 혼돈의 하느님이 아니시오”라는 말을 기억하면 이 교리는 하느님으로 부터 나오지 않었다는 것을 곧 깨닫게 된다. (고린도 전 14:33, 신세계역) 그러면 하느님께서 이러한 혼돈의 교리를 지은자가 아니라면 도대체 누가 지었을까? 하는 질문이 생길 것이다.

3. 삼위일체 교리는 어데서 시작 되였으며 그리스도 교국의 종교에 드러오게 된 경로는 어떠한가?

3 “삼위일체” 교리의 기원은 고대 바벨론인과 애급인과 기타 신화 시대부터 시작된 것이다. 이들 고대 민족은 마귀들을 숭배 하였음으로 하느님의 선민인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들과 혼돈하지 않기 위하여 접촉하지 않도록 경고 받은 사실은 유대인이나 크리스챤이나 논쟁할 여지도 없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이 교리를 만들지 않었다는 것이 명백하다. 또한 두가지 자미있는 사실이 있다. 첫째는 제 2세기에 아푸리카의 가르다고에 살고 있든 “터-튤리안”이라는 종교가가 “트리니타스”(trinitas) 라는 말을 나전말 교회 문서중에 가져 왔는데 이 “삼위일체”라는 말은 성경 가운데 한번도 사용되어 있지 않다. 둘째로는 이 교리는 같은 시대인 제 2세기에 살고 있는 데오 필러스라는교직자로 말미아머 헬라 말 교회 문서중에 처음 소개된 일이다. 제 4세기인 주후 325년에 소 아세아에 있는 니가야에서 침례 받지 않은 콘스탄틴 황제의 지시 밑에 열린 교직자 회의에서 이 교리를 결정하였다. 그후 이것은 그리스도 교국의 종교 조직의 한 교리로서 내려오게 되여 그때부터 교직자들은 이 복잡한 교리를 항상 신봉하여 왔다. 그럼으로 이상의 결론으로 이 “삼위일체“ 교리의 창작자는 사탄인 것이 분명하다.

4. 이 증거에 관하여 어떠한 질문이 생기는가? 또한 어찌하여 그 문제를 솔직히 검투하여야 하는가?

4 이러한 질문이 생길 것이다. “삼위일체”를 옹호하기 위하여 인용된 성경구절은 어떠한가? 그 성경 구절들로서 교직자들이 가르치고 있는 삼위일체교리가 고대 바벨론의 삼위일체 교리와 다르다는 것을 증명할수 없는가? 성실하고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누구든지 그 사실을 알고저 할것이다. 그러한 사람은 지식이 착오의 방패라는 것을 인증하며 또한 정확한 지식을 얻기 위하여서는 양편의 논점을 솔직히 검토해 보아야 한다는 것을 인증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삼위일체 교리를 지지하고 있다는 성경 구절들을 잘 살펴 보기로 하자.

5. 삼위일체를 지지하기 위하여 사용하고 있는 네가지 성경 구절을 말하라.

5 첫째로 흠정역과 듀웨이역에 요한 1서 5장 7절을 보면 “하늘에서 증거하는자가 셋이 있나니 곧 성부와 말씀과 또한 성신이시며 그리고 이 셋은 하나이니라” 하였고 둘째로 요한복음 10장 30절에 간단히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였고 셋째로 디모데 전서 3장 16절에 바울이 그리스도 예수께 관하여 기록한 말 “하느님은 육신으로 나타나시고”(영문 흠정역) 다음 네째로 요한복음 1장 1절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느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느님이시니라”고 한 유명한 구절이다.

6. 교직자들은 “삼위일체” 교리를 어떻게 주장하려 하는가? 또한 생각있는 사람들은 교직자들의 설명에 대하여 어떻게 반박 하는가?

6 혹 목사를 쫓는 사람들이 목사에게 묻되 어떻게 세개가 하나로 결합할수 있는가? 한즉 그들은 흔히 대답하기를 “그것은 오묘다”라고 한다. 어떤이는 삼각형이나 세잎을 가진 클로바나 혹은 하나의 목에 셋 있는 상(像)을 들어 설명하려한다. 그러나 참 하느님을 알어 그에게 섬기고저 하는 진실한 사람들은 그와 같이 복잡하고 괴상하게 머리가 셋 달린 하느님을 사랑하고 숭배하는 것은 좀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될것이다. 이러한 교리를 가르치고 있는 목사들은 하느님께서 사람을 자기 형상대로 만드셨다는 기록을 본 다음순간 그들은 자가동착에 빠지게 될것이다. 왜냐하면 이때까지 머리 셋 있는 인간을 본 사람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7. 참된 크리스찬은 어떠한 태도를 취할것인가? 또한 그 이유는?

7 참된 크리스찬이 취할 태도는 로마서 3장 4절에 잘 나타나 있다. 곧 “사람은 다 거되되 오직 하느님은 참 되시다 할지어다.” 또한 그들이 받어들이는 기준은 “하느님의 말씀은 다 순전 하시다”에 있다. (잠언 30:5) 그런고로 여기 인용된 성경구절은 모다 하느님의 순전하신 말씀 곧 성경에 기록된 것임으로 착실히 주의하여 보아야 한다. 이 사실을 명심하여 요한 1서 5장 7절을 자세히 살펴보자. “하늘에서 증거하는자 셋이 있나니 곧 성부와 말씀과 또한 성신이시며 그리고 이 셋은 하나이니라.”

8. 요한 1서 5장 7절에 관하여 더 설명할 필요가 없다는 두가지 사실은 무엇인가?

8 하느님의 말씀에 가감하는 것은 큰 죄로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구절은 하느님의 말씀에 가하였다는 명백한 사실이 있다. 희랍어 성경의 번역자로 유명한 벤쟈민 웰손은 그의 저서인 엠파틱 다이아글롯에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이 천적 증거에 관한 이 구절은 15세기 이전에 기록한 어떠한 희랍어 사본에서도 찾어 볼수 없다. 또한 어떠한 희랍어 교회 문서 저술가들로도 이것이 인용되지 않었으며 또한 초기 나전어 하는 신부들도 그들이 취급한 문제를 증거하기 위하여 그 구절을 인용하여야만 할 경우에도 인용 되지 않었다. 이러한 사실로 보아 날조한 것이 명백하다.” 이 설명이 옳다는 것은 (로마 카돌릭의 번역을 제외한) 모든 현대 번역에는 이 구절이 들어있지 않다는 사실로도 알수있다.

9, 10. (ㄱ) 성경을 살펴 볼때에는 항상 어떠한 원칙이 적용되여야 하는가? (ㄴ) 예수께서는 요한 10:30의 뜻을 어떻게 설명하셨으며 또한 사도 바울도 그렇게 이해하고 있었다는 것을 어떻게 알리고 있는가?

9 다음에 우리가 살펴볼 구절은 요한복음 10장 30절이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이 구절을 읽음으로서 하느님과 예수가 하나라는 주장이 타당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어떠한 면에서 하나이 되는가?. 여호와께서 훈계 하신바 “지혜를 얻으라 모든 너의 얻은 것을 갖여 명철을 얻을지니라” 하셨다 (잠언 4:7) 이 원칙은 항상 적용되어야 할것이며 이러한 경우에도 결코 등한시 할수 없다.

10 예수께서 고난 당하시기 전날 밤에 아버지께 대한 기도 가운데서 요한복음 10장 30절이 무엇을 의미하는 가를 예수 자신이 잘 설명하고 있다.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오 또 저의 말을 인하여 나를 믿는 사람들도 인함이니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것 같이 저희도 다 하나이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것을 믿게 하옵소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게 주었아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이 된것 같이 저희도 하나이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요한 17:20-22) 예수께서는 그의 지체가 될 사람 곧 교회를 위하여 기도하였든 것이다. 바울은 이 생각을 지지하여 고린도 전서 12장 12절에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 하니라” 하였다. 이점을 밝히기 위하여 그는 또 기록하되 “이는 남편이 안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하였다. (에베소 5:23) 또한 이와 연결지어 여호와께서 만유의 머리가 되신 것을 더 설명한바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느님이시니라” 하였다. (고린도 전 11:3) 이 간단하고 명확한 진리는 그리스도와 그의 지체가 하나로 간주 됨과 같이 여호와와 그리스도가 하나로 간주될것으로 잘 알려주고 있다. 그들은 생각과 목적과 조직에 있어서 하나인 것이다. 만일 이것이 논리적이 아니라면 예수께서는 결코 “아버지께서는 나보다. 크심이니라” 따라서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하시지 않었을 것이다. (요한 14:28; 누가 22:42) 그런고로 예수를 포함한 만물이 다 크신 머리 곧 전능하신 하느님께 완전히 복종하게 되어 있다.

11. 영문 흠정역 디모데 전 3:16은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화신하였다는 것을 어찌하여 증명하지 못하는가?

11 교직자들이 주장하고 있는바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사람으로 나타나셨다는 것을 지지하기 위하여 디모데 전서 3장 16절에 “하느님은 육신으로 나타난바 되시고”(흠정역)라는 구절을 가져온다. 벤쟈민 웰손으로 번역된 엠파틱 다이야글롯에는 이 구절에 대한 각주는 다음과 같다. “고대의 원본이나 번역에는 거이다 이 구절에 있는 “하느님”[God]라는 말대신에 “그는”[He, Who]이라는 말을 사용하였다. 이것이 올바른것으로 채용되어 왔다.” 카톨릭 듀웨이역은 다음과 같다. “경건의 비밀은 과연 크도다. 그는(which) 육신으로 나타나셨고” 또한 미 표준역은 그는[He who] 육신으로 나타난바 되시고” 또한 모팟역도 그러하다. 만일 이것이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화신하셨다는 말이며 또한 삼위일체가 올타면 “본래 하느님을 본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자가 나타내셨나니라”고 한 요한의 말은 거짖 말이 되고 만다. (요한복음 1:18) 그러나 이 말은 예수께서 아버지와 완전히 일치되며 육신으로 계셨을 때에 그말과 행동에 있어 모든 사람들 앞에 하느님을 나타내어 선명하였다는 사실을 명시하여 준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나를 본자는 아버지를 보았나니라” 하였다.—요한 14:9.

12. 예수께서 지상에 계셨을 때에는 어찌하여 하느님이 될수 없었는가?

12 다윗은 영감을 받어 기록하기를 “사람은 천사들 보다 조금 못하게 지음을 받었다”고 하였다. 히브리서 2장 9절에 예수께 관하여 인용된 똑 같은 말을 볼수있다. “우리가 천사들 보다 잠간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자 곧 죽엄의 고난받으심으로 인한 … 예수를 보니.” 만일 삼위일체 교리가 참되다면 하느님은 지상에 계셨을때 천사들 보다 못하였을 것이다. 그것은 하느님의 지상지존함에 반대되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께서 지상에 오신것은 완전한 인간 생명으로서 속가를 준비하기 위하여 오신것을 잘안다. 그러므로 속가는 이져버린것 즉 아담이 에덴에서 가졌든 완전한 인간생명과 꼭 같어야만 한다. 그러므로 예수께 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그는 근본 하느님의 형상으로 계셨으나 하느님과 동등됨을 탈취할려는 생각을 두지 않고 오히려 자기를 뷔여 종의 형상을 가저 사람들과 같이 되였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나초시며.” (빌립보 2:6-8, 신세계역) 하느님의 의는 속가로서의 예수를 완전한 인간 이상의 것으로 하시지 않었을 것이다. 따라서 예수는 육신으로 전능하시고 지상지존하신 하느님이 결코 될수 없었다.

13. 요한 1:1은 그 말과 문법적 구성으로 보아 두하느님이 각각 다르다는 것으로 어떻게 증명하는가?

13 삼위일체를 지지하는 것으로 보고 있는 마지막 구절은 요한복음 1장 1절이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느님과 함께 계섰으니 말씀은 곧 하느님이시니라.” 우리는 외면적으로 나타난 모순으로 밝히기 위하여 희랍어 원본 밑에 말과 말으로 대역한 에파틱 다이야글롯을 보면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느님[the God]과 함께 계셨고 이 말씀은 한 하느님[a god]이시니라.” 이 말씀이 하느님[the God]과 함께 계셨고”라는 구절을 잘 주의하여 보면 하느님이라는 [God] 말 앞에 “the”라는 정관사가 붙어 있다. 그러나 그다음 그 말씀은 한 하느님 “a god“이시라는 구절에는 하느님이라는 말 앞에 “a”라는 부정관사가 붙어 있다. 이것은 두 하느님이 각각 다르며 이 둘이 같은 하느님이 아니라는것을 잘 증명하고 있다. 그러므로 신세계역은 다음과 같이 정확하게 번역 되였다. “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느님과 함께 계셨고 이 말씀은 한 하느님이 였더라. 이분은 최초에 하느님과 함께 계셨나니라.”—요한 1:1, 2.

14. 예수의 시작은 삼위일체의 잘못을 어떻게 증명하여 주는가?

14 이 구절을 냉정히 생각하여 보면 명백한 진리를 깨닫게 된다. 시편 90편 2절에는 하느님께서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시다고 하였다. 이것이 참 될때에 만일 말씀이 하느님이라면 어떻게 시작을 가질수 있었는가? 그 일의 참은 이러하니 곧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가 된 하느님의 아들이며 따라서 처음 또는 시작이 있었든 것이다. 묵시록 3:14에는 그가 하느님의 창조의 시작이였다고 명백히 말하였다. 그런고로 그를 아버지의 “독생자”라고 하였으며 요한 1장 14절에는 “말씀이 육신이 되여 우리가운데 거하시매(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오) 은혜와 진리가 충만 하더라” 하였다. 또한 사도 바울은 이 진리를 확정하여 예수께 관하여 말한바 ”모든 창조물 중에서 먼저 나신자”라 하였다. (골로새 1:15, 영문 참조) 이쯤 되고 보니 삼위일체의 선생들은 “그것은 오묘다”라고 하여 변명할수 밖에 없다.

성령

15. 삼위일체의 제 삼위에 관한 사실은 무엇인가 또한 그것은 사실상 무엇인가?

15 교직자들이 삼위일체를 지지하기 위하여 잘못 인용하고 있는 네가지 성경구절중 처음 인용한 (요한 1서 5:7, 듀웨이역) 구절에만 “성신“이란 말이 들어 있다. 또한 이 말은 날조된 말이 명백하다. “성신”에 대한 일반적 생각은 이렇다. 즉 그것은 삼위의 일위로서 하느님과 그리스도와 더브러 능력과 본체와 영원성에 있어 동등한 하나의 신이라 한다. 헬라 말로 “령”에 해당되는 말이 영어로 “령”또는 “호흡”이라는 뜻을 가진 “꼬스트”[Ghost]라는 고대 영어로 번역 되었다. 누구든지 헬라-영어(希-英) 사전을 조금만 들쳐보면 “령”으로 번역된 헬라말 “푸네우마”[Pneuma]라는 말이 성경에 “바람”이라고 번역된 말과 똑같은 단어인것을 발견할것이다. 마치 바람이 사람 눈에 보이지 않는것과 같이 하느님의 령도 그러하다. 만일 사람이 하느님의 령을 받었다 함은 그일이 어떠한 일이든 그 일을 행하도록 하느님으로부터 권한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으로 성령은 하느님의 뜻을 행하기 위하여 그의 종을 활동시키는 전능하신 하느님의 보이지 않는 활동력인것이다.

16, 17. 예수께서 침례받으실때에 삼위일체를 반증하는 어떠한 일이 생겼는가?

16 더 논의하기 위하여 예수께서 지상에 생존하사 침례를 받었을때까지 그 능력과 영원성에 있어 하느님과 동등하였다고 가장하자. 그렇다면 삼위일체의 제 삼위인 “성신”은 도대체 어데 있었는가? 삼위일체론자들은 그 기간을 통하여 셋이 하나가 되여 있었다고 말할것이다. 그러나 성경에는 예수께서 침례를 받고 있는 그때에 비둘기 같은 성령이 예수 위에 나려 왔고 예수께서는 곧 그 성령에 이끌리어 광야로 갔다고 기록되어 있지 않는가? 그러나 삼위일체론자들은 그때에 “삼위일체”의 제 삼위가 확실히 그 장면에 나타났다고 주장하여 마태복음 3장 16절, 17절을 인용할것이다. “예수께서 침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성령이 비닭이 같이 나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서 소래가 있어 말씀하시대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자라 하시니라.”

17 그러나 이구절에 관하여 삼위일체론자들이 대답하기 거북한 몇가지 질문이 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오”라고 하늘로 부터 들려온 소래는 누구의 소래였는가? 예수 자신의 소래였는가? 그때 처음 예수께 나려 온것이 보였다면 그때까지 “성신” 또는 성령은 도데체 어데 있었는가? 만일 그가 하느님이였다면 예수께서 지상에 생존하신 삼십년간 하늘은 예수께 대하여 열리지 않었는가? 만일 예수께서 하느님이 였고 삼위일체의 하나로서 능력과 본체와 영원성에 있어 하느님과 동등하였다면 예수께서는 언제나 하늘에 올라갈수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또는 저러한 거북한 질문에 대하여 교직자들은 그것은 큰 오묘라고 말해 버리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18. 만일 예수께서 지상에 생존하신 동안 전능하신 하느님이었다면 통치권에 관하여 어떠한 혼란이 생겼을 것인가?

18 만일 삼위일체 교리가 참되다면 과연 그것은 오묘한 일이다. 제일 오묘한 일의 하나는 예수께서 죽으셔서 삼일동안 무덤속에 계셨을 동안과 “천사들 보다 잠간 못하게” 지상에 생존하신 33년간에는 누구가 우주를 통치하였을 것인가? 만일 예수께서 하느님이 였다면 하느님은 죽어서 삼일동안 무덤에 계신 셈이 된다. 그렇다면 사탄이 완전한 통치를 탈취하는데 얼마나 좋은 기회였을까?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하였다는 사실로 보아 그는 독생자였고 홀로 그이만 죽었었다는 것이 증명된다. 성경에는 디모데 전서 1장 17절에 하느님께서는 “만세의 왕 곧 죽지 아니하고[immortal]”라 하였다. (영문 참조) 그러므로 만일 예수께서 불멸의 하느님이였다면 그는 죽을 수 없었을 것이다. 예수께서 지상에 계셨을 때에 악마는 가진 노력을 다하여 그를 죽이려 하였다. 또한 마침내 죽였은즉 그 죽은것이 전능하신 하느님이 였다면 악마는 결코 예수께서 부활되지 못하게 하였을 것이다. 삼위일체에 의한다면 모든것이 얼마나 모순 뿐인가?

19, 20. 예수께서 스스로 부활할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논증하기 위하여 어떠한 구절이 인용되며 또한 어떠한 올바른 결론이 내리게 되는가?

19 요한복음 14장 28절에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니라” 하신 예수의 말씀은 타당하다. 이 말은 다만 그 직분만이 아니라 그 위에 있어서도 크시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그 약속대로 아버지께서는 그의 아들을 삼일만에 부활시켰다. 만일 여호와와 죽은 예수께서 그 본체에 있어서 하나이였다면 부활은 불가능 하였을 것이다. 종교가들은 예수의 말씀인 요한복음 10장 17, 18절을 인용할것이다.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바림이라 이를 내게서 빼았는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사로 바리노라 나는 바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 에게서 받었노라 하시니라.” 그리하여 그들은 예수께서 하느님이였고 자기 스스로 부활 할수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려 한다.

20 그러나 요한복음 10장 17, 18절을 흠정역에 의하여 논리적 결론을 내리면 예수께서 기뻐 자기 생명을 바친것은 그가 부활되어 다시 생명을 얻으리라는 아버지의 계명을 확신하였기 때문이다. 부활로 말미암어 하느님께서 그에게 생명을 주었을 때에 예수는 생명을 다시 찾게 되었다. 올바로 번역된 신 세계역을 보면 “내가 다시 영혼을 받기 위하여 내 영혼을 바리노라 나는 그것을 바릴 권한도 있고 또한 그것을 다시 받을 권한도 있다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었노라.” 이것을 보아 예수께서는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여 대속으로서 그의 생명을 자발적으로 바치었고 그 충성에 대한 보답으로 아버지의 손으로 그가 부활됨으로 생명을 다시 받을 권세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 명백하다.

21. 이 교리에 관하여 두가지 신기한 사실은 무엇인가? 또한 그 교리가 생긴 이유를 간단히 말하라.

21 삼위일체의 교리는 예수나 혹은 초기 그리스찬들로 말미암어 생각되지 않었든 것이다. 성경의 어데를 보아도 삼위일체에 관하여 말한 곳이 없다. 그러므로 그들이 주장하는바와 같이 삼위일체가 “기독교의 중심교리”라 하면 이와 같이 복잡하고 혼돈된 교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어 한번도 설명 또는 교훈이 없었다는 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더욱이나 신기한 것은 그때부터 백년 이상이 지난후 불완전한 인간들이 이교도로 부터 그 생각을 그들의 종교속에 주입하여 마치 성경적 진리 같이 가르치고 있는 사실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즉 이것은 사탄이 하느님을 경외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여호와와 그의 아들인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진리를 배우지 못하게 할려는 또 하나의 꾀임인 것이다. 결코 삼위일체는 존재할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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