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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느님은 참되시다 할지어다] 안식일의 모형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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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느님은 참되시다 할지어다] 안식일의 모형과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52
  • 소제목
  • 안식일의 소개
  • 그리스찬은 안식의 율법 아래 있는가?
  • 그림자와 실체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52
파52 11/1 1-13면

[하느님은 참되시다 할지어다] 안식일의 모형과 실체

1. (ㄱ) 창조시대에 칠일만에 창조주께서 당하신 일은 무엇인가? (ㄴ) 그의 모든 활동중 칠일 만에 무엇에 관하여 중지하셨는가?

“나 여호와가 엿새동안에 천지를 창조 하시고 제 칠일에 쉬어 안식 하였노라.” (출애굽기 31:17) 하느님께서 그의 일을 쉬신것 혹은 중지하신것은 하느님께서 목적 하셨든 그의 창조적 일을 다 마치셨기 때문에였다. 그러므로 그는 지구에 관한 창조적 활동을 중지 하신것이 다 하느님께서 그 맘큼 일을 마치신 후에 그는 창조를 마치신 지구를 도라보셨다. 기록된바 “하느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기에 심히 좋았더라.” (창세기 1:31) 그러한 이유로 그때 여호와 하느님은 그때 안식을 노끼셨든 것이다. 즉 그의 뜻을 하느님께서 원하셨든 정도의 일을 마치셨음으로 다만 지구에 관하여 그의 창조적 활동을 중시하셨든 것에 틀림 없이 하느님께서 기타 모든 우주에 관하여 그의 창조적 활동을 중지 하셨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치로나 성경적으로 합당치 않다.

2. 그 하루는 바루 얼마나 되는가? 또한 그날은 지났는가?

2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라 하느님의 지으시든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시니 … 하느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륵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느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든 모든 일을 마초시고 이 날에 안식 하셨음이더라.” (창세기 2:1-3) 하느님께서 이 지구 창조로부터 중지하신 “일곱째 날”은 24시간인 하루로 생각 할수 없다. 이 일곱째 날은 앞서 창조하신 엿새 동안과 관련되어 있다. 모든 증거는 그 앞선 엿새가 각각 24시간 보다 더 길다는 결과를 준다. 실로 그날들은 수천년에 이르는 커다란 기간이었다. 하느님께서 그 일을 중지하신 일곱째 날은 7천년으로 계산 된다. 사람은 엿새날 마지막에 이르러 창조 되었음으로 지구를 준비 하신 4만2천년의 마지막에 이르러 지구상에 두어진 것이다. 그리하여 그 커다란 연대를 가진 칠일은 시간이 감에 따라 사만 구천년에 이를것이다. 성경의 시간표는 천년이 약간 넘는 큰 연대가 아직 남은것을 알려준다.

3. “쉬었다”라는 말은 무엇으로부터 번역 되었는가? 또한 그 “이렛날”을 24시간으로 주장하면 어떠한 곤란한 문제가 생기는가?

3 쇄받[Shä·vath]은 창세기 2:1-3에 사용된 톡특한 히브리 말이며 “쉬었다”라고 번역 되었으며 영어의 새받도 그로부터 나왔다. 어떤 종교가들은 인간 바로 시초에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안식의 율법으로 매어 놓았다고 한다. 그리하여 그돌은 그 지지의 중거로서 창세기 2:1-3을 인용한다. 그러한 사람들과 기타 모든 사람들은 하느님께서 축복하시고 거륵히 하신 그 “날”은 24시간의 하루가 아닌 것을 알어야 한다. 창조 기간인 6일에 하루 기리와 같은 제 7일에 우리는 살어 왔으며 또한 살고 있다. 제7일 안식일을 엄수하는 종교가들의 계산 방법은 이러하다. 그들은 24시간의 창조의 엿새만에 동물을 만드신 후에 인간을 만드셨다고 한다. 만일 그러하다면 사람이 있은지 제일 첫째 날 하루는 사람이 그 일주일에 일을 끝 마치기 커녕 시작도 하기 전에 안식일이 되었어야 할것이다. 즉 그는 일을 시작하기 전에 쉬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하느님의 이랫날은 해가 질 때부터 다음날 해가 질 때까지의 하루보다 더 길다는 것을 명백히 말하고 있다. 창세기 2:4에 말한 그 “날”은 24시간을 말할수 없다. 즉 “여호와 하느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날에 천지의 창조된 대략이 이러 하니라.” (미 표준역) 성경에 의하면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느님께 관련된 그 “이렛날”은 아직 계속 되고 있다.

4. 여호와께서는 어떻게 그 “일헷날”을 축복하셨으며 거륵히 하셨는가?

4 그 “달”에 시초에 하느님께서 축복 하사 충실한 피조물과 하느님 영광에 그 모든 것이 좋으시다고 말씀하셨다. 지금부터 약 천년이 되는 마지막 날에 있어 그 “날”이 또한 축복될 것이며 이 저주 받은 상태는 완전히 제거될것이다. 하느님의 거륵한 목적으로 그 날을 거륵히 하셨으며 그 태초로부터 하느님께서 그가 모든 좋은 것을 이루신 분이시며 보존자로서 증명되고 창조주로 증명될것을 미리 정하셨다. 또한 이 “이렛날”의 끝에 다시는 방해되지 않을 하나님의 거륵하심과 지존하심과 전능하심의 완전한 증거가 영광적으로 이루어질 곳으로 이 지구를 만드러 그 위에 사람울 둠으로서 하느님의 근본 목적이 또한 증명될것이다. 이 “이렛날”의 마지막이 될 때 까지에는 이 지구는 어느곳이나 에덴동산과 같은 아름다운 낙원으로 변할것이다. 그때에 지구는 창조주와 일치하여 그의 대리자로서 모든 날즘생과 고기와 따위를 기어다니는 모든 생물들을 지배하는 의로운 인간오로 충만될 것이다.

5. 어찌하여 하나님의 종속된 아담과 해와의 안식일 규례를 주장할 근거가 없는가?

5 하나님께서 완전한 아담과 해와를 축복하여 이 지상을 의로운 후손으로 채울 것과 이 땅을 개척하며 낮은 생물을 지배할 거륵한 사명을 주셨을 때 하느님께서는 안식일의 규례에 관한 명령을 포함하지 않었다. 사탄의 꾀임과 아담과 해와의 죄는 그들이 24시간의 길이를 가진 안식의 율법을 범할 어떠한 관계도 가질 수 없었다. 만일 하나님께서 그들이 범죄하기 전에 에덴에서 그들에게 그러한 율법을 주시지 않았다면 그들이 에덴으로 부터 쪼껴난 후에도 그러한 율법을 주시지 않은 것은 확실하다. 하느님께서 그렇게 하셨다는 기록은 없다.—창세기 2:15-17; 1:28.

6. 노아는 “일곱”이라는 수자에 관하여 어떻게 보여 주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찌하여 그가 안식의 율법규례 밑에 있는 것을 말하지 않었는가?

6 창세기에만 하여도 61회나 나오는 “일곱”이라는 수짜는 도대체 무엇인가? 노아에 관하여 예를 들면 노아와 그의 가족과 동물들이 그 방주속에 칠일 동안 있었다. “칠일후에 홍수가 따에 덮이니.” (창세기 7:1-10) 노아의 방주가 그해 칠월 십칠일에 아라랏산에 멈을렀으며 물이 감하여 짐을 기다린 후에 가마귀와 비들기를 내 보냈다. 그 비들기는 도라왔다. 또 칠일을 기다려 다시 비들기를 내여 보내매 그 비들기가 감람 입사귀를 입에 물고 도라온 후에 또 칠일을 기다려 비들기를 내여 놓으매 다시는 그에게로 도라오지 아니 하였더라.” 그리고 태양력으로 꼭 일년동안 그 방주 속에 가처 있다가 노아와 그의 가족과 동물들은 그 보호의 방주에서 나왔다. (창세기 8:4) 먼저 말한 기록은 노아가 칠일씩으로 나누운것을 알려 준다. 그러나 노아와 그의 가족이 일곱째 날에 그 위에서 아모 한일 없이 안식일을 엄수 하였다고 말하지 않었다. 하느님께서 영원한 언약을 하신 직후 무지개로 상증 하였으나 안식일 엄수에 관하여 조금도 말씀하시지 않았다. 또한 하나님께서 노아와 그의 아들들에게 축복을 다시 할 때에도 안식일 엄수에 관하여 아무런 명령도 없었다. 이것은 그때까지 그들이 안식이 율법을 지켜 왔으므로 그 율법에 대하여 반복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그때까지 그러한 안식의 규례가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었든 것이 확실하다.—창세기 9:1-17.

7. 어찌하여 창세기 26:4, 5에 있는 말은 아브라함이 안식의 계명밑에 있었다는 근거가 되지 못하는가?

7 창세기 26:4, 5에도 아브라함이 안식 엄수에 율법 밑에 있었다는 아무런 증거도 없다.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명하신 중에는 칠일 안식 엄수에 관하여는 아무 말씀 하지 않었다. 하느님께서 그의 충실한 자들에게 대한 명령은 어느때나 동일하지 않었으며 어떤자는 어떤일을 하게 하였으나 다른 자에게는 그처럼 하게 하지 않었다. 다만 아브라함에게만 그의 귀여운 아들을 번재로 드리게 하였으나 아브라함 후에는 하나님의 종들중 한사람에게도 명하지 않었다. 아브라함이 99세에 비로서 할례 받을 것을 명하셨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추종자들은 할례를 받어야 할것을 조금도 명하시지 않었다.—창세기 17, 22.

8.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매주일 안식을 지키지 않은 것이 어찌하여 율법을 범한자가 되지 않는가?

8 위에 말한 증거는 아브라함이 하느님께서 명하신 말씀으로서 안식일 계약 밑에 있었다는 것에 반대된다. 하나님서 주일의 일곱째 날을 은총으로서 특히 정하셨을 것인바 위의 증거는 하느님 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 일곱째날 계명을 기뻐하셨다는 증거가 되지 않는다. 안식일의 율법이 적용되지 않을에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것은 율법을 범한 것이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의로움이 그의 첫 할례에 의하지 않었음과 같이 안식일 엄수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로마 4:3-13.

안식일의 소개

9. 어느때 누구에게 주일마다 오는 안식의 율법이 처음 주워젔는가? 또 무엇에 포함 되었는가?

9 히브리 말 “쇄받”은 “중지” 또는 “휴식”을 의미하며 출애굽기 16:23에 처음으로 나타나며 그때가 안식일 율법을 유대인에게 소개된 때로 되어 있다. (출애굽기 16:23-30) 기적적으로 칠일 마다 만나가 하늘에서 떠러지게 하며 하나님께서 바로 유대인에게 명하신 일곱째 날 안식울 실시 하게 하였다. 그럼으로 그 율법은 비공식적으로 광야에서 주어 젔으며 안식일의 율법은 여호와께서 호렙산에서 율법의 언약의 식을 하실 때 모세를 통하여 유대인에게 주신 그 법전에 포함되였다. 그것은 거기서 주어진 십계명의 넷째 조항이며 다음과 같은 말로 기록 되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륵히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다. 제칠일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딸이나 네 남종이나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육하는 객이라도 아모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세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따와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런고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야 그날을 거륵게 하였나니라.”—출애굽기 20:8-11.

10, 11. 모세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그 넷째 계명 밑에 있지 않었다는 어떠한 증거를 주는가? 또한 이방인들이 그 계명밑에 있지 않었다는 것이 확실한가?

10 다음에 신명기 5:1-15절에 있는 기록을 참조하라. “모세가 이스라엘을 불러 그들에게 이라대 이스라엘아 오늘 내가 너의 귀에 말하는 규례와 법도를 듣고 그것을 배우며 지켜 행하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서 호렙산에서 우리와 언약을 세우셨나니 언약은 여호와께서 우리 열조 (아브라함 이삭과 야곱) 와 세우신 것이 아니오 오늘날 여기 살어있는 우리와 세우신것이라 여호와께서 산위 불 가운데서 너희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되 … 나는 너를 애급 따에서 종되였든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라 … 안식일을 지켜 …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급에서 종이 되었던 것이 너의 하느님 여호와께서 강한 손과 편 팔로 너를 거기서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런고로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를 명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명하였나니라.”

11 그 말가운데는 확실히 이스라엘의 열조를 특히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그의 열두 아들이 이 율법의 언약 밑에 있지 않었다. 이들 열조들은 완전히 쉼으로서 주일마다의 안식일을 지키라는 넷째계명을 지킬 의무아래 있지 않었다. 또한 모세가 그들 자손들에게 더 말한바와 같이 “여호와께서 그 언약을 너에게 반포 하시고 … 두 돌판에 친히 쓰신 것이라 그때에 여호와께서 내게 명하사 너에게 규례와 법도를 교훈하게 하셨나니 이는 너희로 건너가서 얻을 따에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신명기 4:13, 14) 안식의 계명은 이스라엘과 맺은 하나님의 언약의 한 성분이었으며 따라서 그 언약과 분리될수 없었다. 이방인들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결코 하나님의 언약의 넷째 계명 밑에 있지 않었다. “저가 그 말씀을 야곱에게 보이시며 그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 에게 보이시는 도다 아모나라에게도 이 같이 행치 아니 하셨나니 저희는 그 규례를 아지 못하였도다.”—시편 147:19, 20.

12. 많은 백성 가운데서 안식이 다만 이스라엘 백성에 국한 되었었다는 것을 하나님의 예언으로서 어떻게 증명 되는가?

12 안식은 여호와께서 다만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의 한 특별한 것이었다.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사이에 너의 대대의 표증이니 … 이는 나와 이스라엘 자손 사이의 영원한 표증이며 나 여호와가 엿새 동안에 천지를 창조하고 제 칠일에 쉬어 평안하였음이니라 하라.”—출애굽기 31:13-17; 또한 에스겔 20:12 ; 느헤미야 9:13, 14 참조.

그리스찬은 안식의 율법 아래 있는가?

13. 예수께서 그 율법을 지키는 것이 어찌하여 합당하였는가? 예수서 지키신 규례를 또 다시 그리스찬이 지킬 의무가 없다는 이유는 무엇인가?

13 예수는 어찌하여 특별히 안식일에 성전에 가서 전도 하심으로 안식일을 지키셨는가? (마태복음 12:1, 9; 마가 1:21; 누가 4:16, 31) 바울은 어찌하여 “그의 습관에 따라” 안식일에 성전에 드러가 유대인들에게 전도하며 또한 토론하였는가? (사도 13:14, 44; 16:13; 17:2; 18:4) 우리는 대답하되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께서 나게 하시고 율법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아래 있는자들을 속량하려 하심이라.” (갈라디아 4:4, 5) 그러므로 예수께서 육신으로 계신은한 그는 그 율법을 지켜야 할 의므를 가졌었다. 예수는 할례를 받고 유월절과 기타 명절을 지키셨다. 그러나 예수께서 유대의 안식을 지키는 것은 그의 제자들이 지켜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예수께서 할례를 받으시고 유대의 명절을 지키신 것은 그의 제자들에게 더는 요구되지 않는다. 그는 갈아대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페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페하러 온 것이 아니오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마태 5:17) 예수께서 그러한 율법이나 선지자들을 이루러 오셨다 함은 그를 따르는 그의 제자들이 율법의 언약이나 안식의 규례를 지켜야 할 의무가 없다는 것을 증명한다.

14. 율법과 선지자들을 이루는 것과 페하는 것과 어떻게 틀리는가?

14 하나님의 율법의 언약을 범함으로 그 율법을 페하는 것과 그것을 이루워 그 의무를 제자들로부터 올려서 제거하여주신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확실히 그 선지자들을 이루는 것은 그 예언들을 과거의 것으로 만들고 더는 적용되지 않으며 이룰 필요가 없게 만든 것이다. 그와 같이 그 율법을 이루는 것은 그 율법을 과거의 것으로 만드러 그 제자들을 그 의무로부터 해방 시키셨다. 그리하여 그 율법과 선지자들을 이루기 위하여 예수께서는 유대인으로 탄생됨으로 “율법아래” 나시게 되셨다. 더 설명한다면 그 율법은 해 마다 어린 양을 잡어 유월절을 지킬것을 명령하셨다. 예수께서는 그 유월절을 페하신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이루우심으로 제거 하셨다. 그리하여 예수께서 참된 유월절의 어린양이 되셨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요한 1:29; 고린도 전 5:7; 에베소 2:13-15.

15. 바울은 어찌하여 안식일에 성전에 갔었는가?

15 예수께서 하나님의 령으로서 기름부음을 받었을 때 그가 성전에 모인 군중에게 전도 하기 위하여 안식일에 가셨던 것과 꼭 같이 사도 바울도 성전에 유대인이 모였을 때 안식일에 그곳에 갔었다.—이사야 61:1-3; 누가 4:14-21.

그림자와 실체

16. (ㄱ) 바울은 골로새인에게 그 율법의 언약과 또한 그 판단에 대하여 어떻게 말하였는가? (ㄴ) 그러면 그리스찬은 무엇을 지켜야 하는가?

16 골로새 2:12-17에 바울은 그리스도의 추종자들의게 편지하되 “죽은자들 가운데서 그를 이르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매암어 그 안에서 함께 이르키심을 받었나니라 또 너희의 범죄와 육체의 무 할례로 죽었든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에게 모든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거사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 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 그럼으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야 누구던지 너희를 평론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니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갈라디아 4:9-11에는 바울이 어떤 속임을 받은자들에게 묻되 “너희가 어찌하여 다시 악하고 천한 초등학문으로 도라가서 다시 저에게 종노릇 하려 하느냐?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시키니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것이 헛될가 두려워 하노라.”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유대의 율법과 십계명을 예수께서 죽으신 그 나무에 못박힘으로 제거 하셨다. 그러므로 그리스찬은 그 율법의 언약을 지킬 것이 아니라 본체를 지켜야 한다.

17. 시편을 쓴 다윗은 하나님의 안식에 관하여 무엇을 말하였는가? 또한 다윗이 시편을 쓸때에는 얼마나 때가 경과 되었는가?

17 하나님의 안식언 일곱째 날이 7천년 계속됨을 바울은 가리처 히브리 4:9에 말하되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어 있도다.” 바울은 그 많은 성경 구절에서 한번도 24시간의 일곱째날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말하지 않었다. 그대신 그는 창세기 2:2에서 인용하되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에 그 하시든 일을 마초시고 그날에 안식 하셨으니.” 이 사실은 그리스도전 4천년 이상이나 앞서 시작된 것이다. 다음에 바울은 민수기 14:28-35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참조하였으되 즉 믿지 않는 유대인은 광야에서 죽되 약속한 때에 드러가지 못하며 또한 안식을 얻지 못한다는 것어다. 이 맹서한 하나님의 선언은 그리스도 전 천5백년 이상이나 앞서 만드러진 것이다. 다음 바울은 시편 95편 7-11에 다윗의 말을 인용하되 “너희가 오늘날 그 음성을 듣거든 너희는 므리바(다름)에서와 같이 또 광야 맛사(시험)의 날과 같이 너희 마음을 강팍하게 말지어다. 그때 너희 열조가 나를 시험하였노라 … 그러므로 내가 노하여 맹서하기를 저희는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었도다.” 이 다윗의 시편은 약 주전 1077년에 기록 되였다. 그처럼 여호와 하나님은 주전 4천년부터 주전 1077년 까지도 아직 그의 안식에 관하여 말쏨 하셨다. 다윗 왕때에는 벌서 거이 3천년이나 경과 되었었다. 다음에는 어떠한가?

18. 바울이 시편을 썼을 때까지 하나님의 안식은 얼마나 경과 되었었는가? 또한 어떻게 그 안식이 7천년이라는 것이 계산 되었는가?

18 다음에 뱌울은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감에 관하여 아직 그때까지도 말하였다. 그곳으로서 하나님의 쉬시는 때가 사천년 이상이나 경과된 바울 시대까지 내려온 것을 증명한다. 그 이유는 바울이 히브리서를 그리스도 탄생후 4십년 이상이나 경과 되었을 때 기록하였기 문이다. 더욱 비을이 말한바 그리스찬이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감에 관하여 말한 것은 아직 적용되며 즉 창세기 2:2에 쓴 그때부터 거이 6천년이나 되는 1940년인 오늘날까지 적용된다. 지금 아마게돈 전쟁은 가까웠으며 그후 곧 이어 그리스도의 천년 통치가 시작될 것이다. 그때에 구속된 인간들은 하나님의 안식에 드러갈 특권이 주워질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모두하여 하나님의 안식은 7천년 간이 된다. 이것이 그 “일곱째 날”의 길이가 되며 그날에 하나님께서 쉬시며 그가 창조주 이심을 증명함으로 그날을 거륵하게 만드신다.

19. 그러면 히브리서 4:3-11에 있는 바울의 말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하게 되는가?

19 히브리 3:13-19과 4:1-11에 기록된 것으로 우리는 잘 이해할 수 있다. 히브리서를 인용하면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드러가는도다 그 말씀하신 바와 같이 (주전 약 1천 5백년) 내가 노하여 맹서한 바와 같이 저희가 내 안식에 드러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으나 세상을 창조한때부터(주전 약 4천년) 그 일이 이루었나니라 … 오래후에(주전 약 천년) 다윗의 글에 다시 어느날을 정하여 오늘날이라고 미리 이 같이 일렀으되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강팍케 말라 하였나니 만일 여호수아(모세의 후계자) 저희게 안식을 주었드면 그 후에(다윗왕부터 약 4백년) 다른날을 말씀하지 않었으리라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어 있도다 이미 그의 안식(하나님의 안식)에 드러간자는 하나님이 자기일을 쉬임과 같이 자기 일을 쉬나니라 그런고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 가기를 힘슬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치 아니하는 본에(믿지 않는 유대인에 의하여 주어진)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히브리 4:3-11.

20. 그리스찬은 언제 어떻게 안식을 지키는가?

20 그러므로 그리스찬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매일 매일 충실히 순종하여 일하는 것이 곧 안식 즉 하나님의 안식을 지키고 있는것이다. 그들은 일주일에 어느날을 다른날보다 더 낫게 여기지 않는다. (로마서 14:4-6) 아직 이루지 않은 그의 날에 하나님과 같이 완전한 안식을 즐기지 못하게 타락되어 실패하지 않도록 그들이 믿음을 굳게 보존 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21. 일주일의 일곱째 날인 주일의 안식온 무엇을 전영 하였는가?

21 유대의 율법의 언약이 “장차올 좋은것의 그림자요 참 형상(또는 본체) 이 아닌 것”을 명심하라. (히브리 10:1) 유대인의 주일 마다의 안식의 한 그림자로 장차올 좋은 것은 무엇이었는가? 그 주일의 일곱째 날이라 함은 그 주일의 안식이 7천년간의 하나님의 안식일의 마지막 천년을 전영한 것이다. 그 천년간을 하나님께서 주 예수 그리스도께 그 때에는 하늘과 땅의 악마의 조직 제도로부터 오는 아무런 장해도 없이 다사릴 것을 정하셨다. 그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처년 통치는 묵시 20:1-6에 예언한 바와 같이 사탄이 결박된 후 다시 말하면 모든 증조로 보아 우리 세대에 시작될 아마게돈 전쟁후에 시작된다.—묵시 16:14-16.

22. 누구를 위하여 영광스러운 안식일이 될것인가? 또 누구가 안식일의 주인이 될것인가?

22 그것은 인간에게 영광스러운 안식의 날일 것이다. 그것은 예수께서 예언적으로 말씀 하신바와 같은 안식일것이다. 즉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것이오 사람이 안식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마가 2:27, 28) 유대인의 제사장들이 안식일에 성전 안에서 그들의 희생의 의무를 행함으로 안식일을 더럽히는 것 같이 보였으나 죄가 없었든 예루살렘의 성전보다도 그리스도 예수논 더 크시였다. (마태 12:1-8) 그리스도 예수는 “살어 있는 돌들”인 그의 제자들로서 된 하나님의 크신 영적 성전의 으뜸이시다. 그러므로 하니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로 하여금 그 안식의 참 형상인 즉 왕국의 천년동안 주가 될것을 정하셨다.

23. 안식을 지킨자와 안식을 범한자는 그때에 어떻게 대우를 받게 될것인가?

23 유대의 안식은 왕국의 안식을 전영하였음으로 예수께서는 주일의 안식일에 믿는 사람들을 치료 하시며 악마의 구속으로부터 구원하시는 많은 일을 하셨다. 그는 장님을 고치고 절롬바리를 이르키시고 하실때 예수는 한 쇠약한 여인을 고침으로 종교가들에게 비난을 받었을 때 한신 말씀은 “그러면 십팔년 동안 사탄에게 매인바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치 아니하냐?” (누가 13:16) 그처럼 예수께서 주로서 통치하실 천년기 안식일에 죽은자 까지라도 무덤으로부터 이르키시는 놀랠만한 석방과 구원의 행적을 하실것을 전영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오고 있는 안식일을 사람을 위하여 사람의 이익을 위하여 정하시되 사람의 압박을 위하여 정하신 것이 아니다. 그러모로 믿음이 있고 순종하는자들은 그때 따에서 노예적 활동과 죄와 사탄과 독제자의 통치와 종교의 속박으로부터 석방되어 안식에 드러갈것이다. 하나님께서 구 율법의 언약의 안식일을 범한자는 죽엄에 처할것울 명하셨음으로 믿음과 또한 죄와 종교로부터 오는 이기적 행동을 중지함으로 왕국의 안식을 지킬것을 거절하는자들은 안식의 주로 말미암여 처단되며 영원히 멸망될것이다.—출애굽기 35:2.

24. 여호와의 대 안식의 끝에는 어떠한 결과를 맺게 되는가? 또한 어찌하여 하나님서 크게 안식하게 될것인가?

24 그처럼 여호와의 7천년 안식일의 끝에는 그의 지구의 창조와 그 위에 사는 인간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시든 그의 창조의 일을 엿새날 끝에 마치셨을 때와 똑 같이 완전하며 깨끗하며 그의 축복으로 기쁨에 넘칠것이다. 이것을 미리 아신 여호와 하나님은 이 길고 긴 안식일 동안에 묘든것을 쉬실수 있었다. (창세기 3:15) 그리하여 그리스도 밑에 있을 그의 왕국에 의하여 여호와의 지구창조의 모든 일은 그의 솜씨를 나타낼것이며 하나님의 이름이 영원히 의롭게 나타낼 증거가 될것이다. 하나님의 지구 창조의 훌륭하신 목적은 결코 실패되지 않을것이며 이 성공의 승리의 노래속에 7천년 안식일의 끝에 이르러 크게 안식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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