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의 침례(浸禮)의 뜻
침례에 대한 본 뜻은 무엇인가? 성경은 그것에 관하여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온 몸이 물속에 들어가는 것은 다만 지엽말단의 사소한 일에 지나지 않는가? 누가 침례를 받게되며 언제 또한 어떻게 받게되는가?
오늘날 많은 종교에서는 침례 요한이 그리스도인들이 받아야할 침례의 본을 보여 주었다고 가르치고 있다. 우선 요한이 왜 전도하였으며 그의 침례의 의의(意義)가 무엇인가를 살펴보자.
요한의 사명
사가랴가 제사직분을 행하고 있었을 때 가브리엘 천사가 그에게 나타나 말하기를 그와 그 아내 엘리사뱃은 그때까지 아이가 없었으나 그들의 연로(年老)임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아들을 보리라하고 하였으며 그 아들의 양육에 대한 특별한 지시를 주고 그의 이름을 요한이라고 부를 것과 그가 장차 행할 일을 예고하였다. 『이는 저가 주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소주를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이스라엘 자손을 여호와 곧 저의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겠음이니라 저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앞에 앞서가서 아비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리는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예비하리라.』—누가 1:15-17, 신세.
때가 됨에 약속의 아들은 출생되었다. 『아해가 자라며 심령이 강하여지며 이스라엘에게 나타나는 날까지 광야에 있느니라.』 그리하여 그는 주후 29년 봄에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고 웨치며 전도를 시작할 때 까지 광야에 있었다.—누가 1:80; 마태 3:2.
여호와께서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는 길을 평탄케 할 자로서 침례 요한이 섬겨야할 필요성은 어데 있었는가?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의 율법이 있지 않었는가? 그 율법은 그들을 그리스도로 인도하는 몽학 선생이 었으며 그들을 이교도의 숭배로부터 멀리하며 그들의 죄를 없애기 위하여 대속할 이의 필요성을 느끼게 하였든 것이다. 또한 모세의 율법으로서 그들의 메시야가 행할 것을 예언적으로 전영하였던 것이다.—갈라디아 3:24; 신명기 7:16; 히브리 10:1.
사실은 그러하였으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율법에 충실치 못하였다. 만일 충실하였더면 여호와께서 그들을 바빌론에게 사로 잡혀가게 하지 않었을 것이다. 또한 그 징벌 조차 그 백성들에게 일시적인 효과 밖에 내지 못하였으며 에스라와 느헤미야에게 말라기가 죽은 후 특히 히랍이 다섯째 세계 강국이 되었을 때 그들의 숭배는 형식적이며 민족적 유대교가 되어 그 율법의 외면만 취하여 히랍의 철학으로 말미암아 불순하게 되며 전통으로 점점 기우러져 하나님의 말씀을 헛되게 만들었다.
종교적 지도자들은 스스로 의로운체하여 여호와의 이름과 말씀을 높이지 않고 저희들만 높이고 일반 대중을 멸시하였으며 특히 세리(稅吏)와 음녀를 천하게 보았다. 그들에게 메시야가 임하였을 때 그들이 메시야를 인정하여 환영하려면 준비사업이 절실히 필요하였다.
침례 요한이 그처럼 필요한 회개의 소식을 전할때 그는 아무도 아껴 보지 않었다. 그는 당시 세리들이 과중한 부담을 과하여 돈을 강요하는 버릇에 대하여 훈계하였으며 병사들이 어떤이를 거짓 고발하여 어떠한 뇌물로서 만족하는 것을 크게 꾸지졌으며 헤롯 아디바스 왕이 불의의 결혼을 한데 대하여 그것을 공공연하게 여러번 책망하였다 『이는 요한이 헤롯에게 말하대 동생의 안해를 취한 것이 옳지 않다 하였음이라.』 또한 그는 특히 당시 종교가들에게 대하여 예수께서도 후에 그들에게 대하여 하신 말씀과 같은 말로서 심히 그들을 책망하였다.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장차 올 진노를 피하리라 하더냐 그런고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 임이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마가 6:18; 누가 3:7-14.
요한의 침례의 중요성
요한은 그의 전도와 함께 침례를 주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이스라엘 사람중 침례를 받은 자들은 실제적으로나 혹은 상징적으로 죄를 씻어 없게하였던가? 그리스도교국에서는 일반적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대부분의 종교는 침례가 아담으로 부터 내려오는 죄를 깨끗이 씻어버리는 것이 그 목적이라고 한다. 그러나 성경은 그러한 결론을 조금도 지지하지 않는다. 우선 요한은 이스라엘 백성이 그들의 메시야를 영접할 준비를 위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만 보냄을 받았다는 것을 명심하라 또한 더 알것은 요한의 침례는 예수의 이름으로서 주어진 침례와는 판이(判異)하다는 것이다. 만일 요한의 침례 만으로 충분 하다면 바울이 에베소에서 요한의 침례를 받은 사람들을 예수의 이름으로 다시 침례를 주어야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사도 19:1-6) 요한의 목적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메시야를 영접할 준비로서 회개를 하여 마음에 변화를 가져오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자기 죄를 고백하고 회개한 사람들은 그 사실에 대하여 공중(公衆)의 인정 밑에 요한으로 말미암아 침례를 받게 되었던 것이다. 그 침례는 회개를 표상한 것이었으므로 그 회개로 말미암아 죄사함을 얻을수 있었다.
특히 그리스도인의 히랍어 성경의 현대역은 이것을 명백히 하고 있다. 마태 3:11은 이러하다. 『나는 너희 회개 때문에 물로 침례를 주거니와.』(신세) 『나는 너희 회개의 증거로써 물로 침례를 주거니와.』(아메리카역) 『나는 너희 회개를 상징하여 물로 침례를 주거니와.』(윌리암역) 또한 현대역 누가 3:3을 보면 침례 요한이 각처에 와서 『죄사함을 위하여 회개하는 자들의 침례를 전파하니.』(신세) 『회개의 조건 밑에 주는 침례를 전파하니.』(윌리암역) 『죄사함을 얻기 위하여 사람들이 회개한 침례를 전파하니.』—녹크스역.
이와 같은 뜻이 사도 19:4로 더욱 분명한바 이 구절은 바울이 에베소 인에게 요한의 침례에 관하여 편지한 말이다. 『요한이 회개하는 자들에게 주는 침례를 베풀며.』(난외주 회개의 침례, 신세) 『요한의 침례는 회개의 증거로 주는 침례였다.』(아메리카역) 『요한은 회개를 표현하는 침례를 베풀었다.』(윌리암역) 이러한 구절을 볼때 요한의 침례는 침례로 말미암아 상징된 죄인의 회개의 행동이 였으나 죄사함을 주는 하나님의 행동은 아니였다.
초대 그리스도인들도 그처럼 이해하였다는 것을 사도 2:38에 나타난 윌리암역의 각주로서 알수 있다 『너희가 죄사함을 얻기 위하여 회개하여야하며 그 표현으로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으라.』 각주에 그 구절을 설명한 『그 표현으로』라는 말은 『문장의 전후 관계와 초대교회의 관습으로 암시 되어있다.』 그러므로 『회개의 침례』를 베푼 요한은 예수께서 침례를 받으러 오셨을때 도저히 이해할수 없었다. 『요한이 말려 가로되 내가 당신에게 침례를 받아야 할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예수께서는 그때 일일히 설명하지 않으시고 다만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셨다.—마태 3:13-15.
예수께서는 회개하실 죄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침례를 받고저 하셨는가? 예수의 침례에 대하여 성경은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가? 이에 대한 대답과 침례에 관한 비슷한 질문의 답을 알기 위하여 다음 제목을 읽어 보라.